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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37화 (37/134)

37화<몰살(3)>

단 한 명의 소행일 지도 모른다─

천진방주 정연송이 제시한 가능성에 막인후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 않지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이가 둘 이상이라는 것은 오히려 더 끔찍한 일일 수 있었다.

“...같은 생각이오. 정 방주.”

“귀신같은 암기술에 더해 극독까지 사용하는 녀석이외다. 처음엔 경합에 참가한 어린 녀석일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없지. 실력과 손속을 보니 당가에서도 손꼽히는 강자가 이곳에 있는 것 같소. 어쩌면 지금도 우릴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르고.”

“흩어지는 것은 지양해야겠구려. 각개격파 당할 뿐일 테니.”

“당연한 말씀이오. 이미 당한 수하들의 수준을 생각해 보면 놈의 공격은 웬만한 기감으로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은밀하다고 봐야 하오. 차라리 모여 있는 것이 안전하겠지.”

“...그건.”

막인후는 뭐라 말하려다 음, 아니오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도리어 이쪽이 사냥당하는 꼴 아닌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내뱉어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이미 분위기가 묘해진 마당이었다. 일방적인 학살을 예상하고 왔는데 오히려 이쪽이 터무니없이 죽어나갔으니까.

“먼저 놈을 찾는 게 우선이오. 모두 기감을 돋우고, 가급적 시야가 트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낫겠소.”

“그렇겠구려.”

“또 대열이 기니, 우리 중 하나는 후열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소. 수하들의 기감으로는 놈의 기습을 대비할 수 없는 모양이니.”

“...그럽시다.”

어느 샌가 지휘의 주도권은 천진방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죽은 이들 중 대부분이 태을묵검파 소속인 까닭일까. 사도 문파에 흐르는 힘의 논리는 이 순간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적용됐다.

막인후는 입맛이 썼다. 그러나 지금은 분란을 일으킬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연송에게 힘을 실어주어 지휘 체계를 확고하게 할 때였다.

“그렇담 정 방주가 전위를 맡아주시오. 본인과 본파 제자들은 뒤에서 따르겠소.”“그래도 되겠소?”

정연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가의 예비 소가주로 뽑힌 재능 있는 싹들을 일거에 죽여 없애자는 이번 일은 원래 태을묵검파에서 주도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번 출진에서 삼백이 넘는 인원을 긁어모은 것도 막인후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듯 자진해서 후열로 물러난다는 것은 지휘를 포기하고 정연송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훗날 태을묵검파가 아니라 천진방이 주도한 일로 알려지게 된다는 의미다. 사천의 사파 세력들 사이에서 천진방의 위명이 한층 더 높아지겠지.

“부탁드리겠소.”

“맡겨주시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막인후는 태을묵검파 제자들을 챙겨 후열 가장 뒤쪽으로 이동했다. 아직 백이십에 달하는 인원이 있었기에, 줄이 제법 길었다.

‘더 이상 제자들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막인후는 사십여 명밖에 남지 않은 태을묵검파 전력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곳에 데려온 인원은 모두 문파의 정예였다. 막내아들의 원한을 갚고자 공동파와의 마찰까지 감안해서 과하다싶을 정도의 전력을 데려온 것이었는데, 이렇듯 허망하게 당할 줄이야.

후열로 물러난 것은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괜히 전열을 맡았다가 만약 다시 놈이 나타난다면, 그땐 제자들까지 지켜줄 여력이 없을 지도 몰랐다. 그럴 바엔 차라리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뒤로 물러나 안전을 도모하고, 놈이 나타났을 때 달려가서 합세해도 늦지 않을 듯했다.

이미 밝혀진 정황으로 봤을 때 놈은 상당한 고수였다. 쉽사리 당하지는 않겠지.

그리 생각하며 막인후는 발걸음을 옮겼다.

숲속은 그 후로도 한동안 조용했다.

****

한편.

움직이는 대열을, 사냥감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백이십삼 명이라.’

당연명은 한 순간에 침입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감각도 주사망역으로 확장된 기감에 사냥감들의 기척이 선명하게 잡히고 있었다.

‘이미 처리한 놈들과 대부분 비슷한 수준. 그나마 두 놈이 좀 낫고.’

당연명은 대열의 양 끝단에 있는 막인후와 정연송의 무위를 한눈에 꿰뚫어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만약 당연명의 이러한 평을 두 사람이 들었다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한 문파의 수장인 그들이었는데 고작 수하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니.

그러나 검신의 눈높이는 아득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바닥에서 한 치가 떨어져 있건 두 치가 떨어져 있건 거기서 거기로 보일 뿐이었다.

‘독은 거의 바닥났고.’

당연명은 단장열지독이 들어 있던 독병을 살짝 기울여 안에 든 양을 가늠했다. 제법 넉넉하게 단장열지독을 챙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백팔십에 달하는 인원을 우모침과 단장열지독만으로 처리했으니까.

이제 우모침우를 한 번 정도 더 전개하는 것이 한계일 성싶었다.

물론 당이전이 챙겨준 다른 독들이 아직 남아 있긴 했지만 단번에 사람을 죽일 정도의 극독은 아니었기에 지금의 상황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독요청광기를 이용해 독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당연명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독을 이용해 살상력을 높인 암기무학의 효율성은 이미 확인을 했다.

이제는 순수 암기 무학의 위력을 시험해볼 참이었다.

‘수틀리면 검을 들지 뭐.’

그렇게 당연명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예!”

전위를 맡은 천진방주 정연송은 주의를 기울이며 전진했다.

‘어서 놈을 찾아야 하는데.’

겉보기와 달리 정연송은 조급해하고 있었다.

노을빛이 붉기를 더해가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두 시진 뒤에는 짙은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할 터. 그 안에 기습한 놈을 찾지 못하면 끔찍한 밤이 될 수도 있었다. 원래 암기와 독을 쓰는 놈이다. 거기에 어둠이 덧씌워진다면, 은밀함이 한층 더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어쩌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진법에 얽매여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여차하면 그냥 몸을 뺄 것도 생각해야겠군.’

들어선 진법 세계가 시시각각 좁아져 오는 것은 정연송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가의 어린놈들이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일부러 진법을 깨뜨리지 않고 수색을 했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밤이 닥쳐오기 전에 진법을 벗어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됐다. 전력의 손실만 있고 소득은 전혀 없었지만 추가적인 피해를 입는 것보단 그게 낫다.

정연송이 입을 열었다.

“반 시진 뒤에 이곳을 벗어난다. 진법을 깨고....”

“누구 마음대로?”

“!”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정연송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높다란 나무 위.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미형의 청년이 얇은 나뭇가지를 딛고 서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정연송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기감을 예리하게 세우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것일까. 만약 그대로 은밀하게 기습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할 때였다.

“이런! 모두 피해라!”

정연송이 황급히 뒤를 보며 외쳤다. 하늘 위에서 우모침 수백 개가 소나기마냥 내리꽂히고 있었다. 대체 언제 손을 쓴 거지?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달려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였다. 일부러 노린 것일까. 게다가 아직 나무 위의 청년이 신경 쓰였기에, 결국 정연송은 움직이지 못했다.

피비비비비빅!

우모침은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게 아니라, 기이하게 휘면서 교묘하게 무인들의 사각을 노렸다. 정연송의 외침을 듣고 제법 빠르게 방비했는데도 몸에 몇 개씩 우모침이 박히는 이들이 삼십이 넘었다. 대열에 갇혀 우왕좌왕하다 아예 고슴도치 같은 꼴이 되어버린 자도 있었다.

‘무슨 암기술이....’

정연송이 당황한 눈빛으로 수하들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빛에 반사된 우모침들이 눈에 들어온다. 암기 무학에 조예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이런 건 일반적인 광경이 아니다.

저 정도로 미세한 세침류 암기는 확실히 적들이 감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만큼 살상력도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아니, 살상력이야 극독으로 보강한다손 치더라도 투척 자체가 쉽지 않다. 빠르게 던져내려면 충분한 경력을 실어야 할 테고, 경력을 실어 던진다 해도 공기나 바람의 저항 때문에 속도가 금세 깎이기 마련인 까닭이다. 가는 바늘을 던져 본 경험이 있다면 쉽사리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연송의 그러한 상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한 호흡이나 지났을까. 우모침이 하나라도 꽂힌 이들이 거짓말처럼 픽픽 쓰러졌다. 눈을 까뒤집고 피부의 핏줄이 도드라지는 게, 누가 보아도 끔찍한 극독에 중독된 모양새였다.

끄륵 거리는 신음조차 길지 않았다. 한두 호흡이 더 지나자 쓰러진 이들은 모조리 숨이 끊어졌다.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기식이 엄엄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었으니까.

“.......”

일순 적막이 내려앉는다. 간발의 차로 우모침을 비껴간 이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대로 이승을 하직할 뻔했음을 아는 까닭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것도 적당한 위기를 벗어났을 때나 가능하지, 이렇듯 죽음이 코앞을 스쳐 지나간 게 선명히 느껴질 때는 제대로 안도하는 것도 어려웠다.

놀라운 것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인지 시신들의 몸에 꽂혀 있던 우모침들이 저절로 쑤욱 뽑혀 나오더니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신 주변에 위치해 있던 이들이 다급하게 방어 태세를 취했지만 우모침들은 그냥 그대로 나무 위의 청년에게 되돌아갔다.

‘...설마하니 허공섭물은 아니겠지.’

정연송은 우모침을 회수하는 청년을 살피며 생각했다. 먼 거리를 격하고 물건을 의지대로 다루는 허공섭물은 화경에 이른 고수들이나 겨우 가능한 기예로 알려져 있었다. 거기다 이렇듯 정밀하게 우모침만을 골라서 움직인다? 짐작되는 청년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암기 무학의 한 종류로 추측하는 것이 타당했다.

‘다시 쓰지는 않는 건가?’

청년이 선보인 우모침을 이용한 암기 무학은 분명히 위력적이었다. 단 한 수에 수십의 인원을 죽였으니까. 정연송은 자신이나 후열의 막인후 정도가 아니면 그 우모침의 비를 막거나 피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미형의 청년은 우모침을 회수하더니 다시 품속에 챙겨 넣는 게 아닌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정연송은 대충 짐작했다. 그 정도로 위력적인 기예였으니, 분명 적잖은 내공을 소진하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청년은 그대로 나무 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착지가 깃털처럼 가볍다. 흙이 부서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신법 성취가 말도 안 되게 깊다는 의미였다.

‘...고수다.’

정연송은 새삼 청년의 무위를 인지했다. 암기술과 신법이 저 정도라면 다른 건 볼 것도 없었다. 한 문파의 문주를 대한다는 느낌으로 상대해야 옳다.

“가긴 어딜 가.”

청년이 문득 말했다. 입매를 살짝 말아 올리면서.

“아직 시험해 볼 것이 남았는데 말야. 이리 와줘서 고맙군.”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청년의 모습에 정연송은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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