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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40화 (40/134)

40화<몰살(6)>

“빌리지.”

당연명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검과 박도를 꼬나 쥔 사내들을 향해서였다.

손놀림이 워낙 쾌속했기에, 두 사내는 꼼짝없이 무기의 날 부분을 잡히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들이 당황하며 황급히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파(破).’

당연명은 이미 파(破)의 묘리를 실은 진기를 흘려보낸 뒤였다.

쩌저정─!

평범한 쇠로 만들어진 날붙이는 순식간에 흉년의 논바닥마냥 수십 개의 실금이 그어지며 갈라졌다. 그 상태에서 사내들이 무기를 휘두르니 그것들은 완전히 조각나 수백 조각의 철편으로 부서져 내렸다.

“...!”

그 광경을 가까이서 목도한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별다른 힘을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명검이랄 수는 없지만 제법 튼튼한 무기들이 박살이 났다. 이건 상대의 내력 운용이 범상치 않음을 의미했다. 단순히 좀 뛰어난 후기지수로 볼 수 있는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당연명은 비산하는 철 조각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얼 하려는 걸까.

와중에 눈을 빛내는 몇몇이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당연명은 허점투성이였다. 신법이 귀신같긴 했지만, 지금은 틈을 보이고 있으니 공격하는 게 옳다─ 그렇게 판단하고 검과 창 따위를 내지른다.

그때였다.

당연명의 손바닥에서 거센 기류가 터져 나온 것은.

후욱─!

머리칼이 뒤로 휘날릴 정도로 강력한 기파의 회오리였다. 떨어지던 철편들이 하강을 멈춘다. 일견하기에 섭리를 거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돌아라.’

당연명은 기파에 산(散)과 파(破)의 묘리를 실어 온갖 방향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어난 기파의 회오리는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연명이 의념을 실어 통제하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기파의 회오리 안에 갇힌 수백 개의 날카로운 쇳조각들이 기류에 따라 자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만천화우...!”

짓쳐들던 이들의 입에서 당혹한 목소리가 터졌다. 누가 봐도 저건 사천당가의 암기무학 중에서도 정점에 있다는 만천화우였다.

당연명은 그대로 손을 그들에게 향했다. 자연스레 철편의 회오리 역시 당연명의 손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회오리와 사람이 겹쳐졌다.

프스스스스슷─

가속이 붙은 쇳조각들은 그대로 안에 들어온 이들을 유린했다. 순식간에 전신 옷자락이 찢어지고 살갗이 베여 핏물이 터져 나온다. 경동맥과 같은 주요 혈맥을 당한 이들은 순식간에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들이 옅은 비명과 함께 절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육신은 곧 오래된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졌고.

당연명은 몇 명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붉어진 회오리를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닿는 족족 비명과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당연명은 쇠붙이 몇 개를 더 주워 조각낸 후 기파의 회오리 안에 던져 넣었다.

“...정말 만천화우인가?”

“그럴 리가 없소. 놈의 나이를 헤아려보시오!”

“물러나지 마! 물러나는 놈은 목을 벨 거다. 문주의 말씀대로 차륜진으로 대응해...!”

“젠장. 웃기지 마라. 저런 걸 휘두르는데 차륜진은 무슨....”

사파 무인들의 투기는 금세 꺾이고 말았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차륜진 따위를 시도할 계제가 아니었다. 말려들면 그냥 개죽음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온통 지배했다.

당연명은 양떼 틈에 파고든 늑대마냥 적들을 유린했다. 한 번 손을 휘저을 때마다 몇 명씩 숨이 끊어진다.

일백에 달하던 인원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쓸 만하군.’

당연명은 새롭게 만들어 낸 암기무학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신법이 뛰어난 이나 일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에게는 써먹지 못할 무학이었지만, 적당한 수준의 하수들을 대량 살상하는 데는 적합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말이다.

철편표(鐵片飄)─ 만천화우로부터 영감을 얻은 암기무학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후 당연명은 힐끗 한쪽을 바라봤다. 차가운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중년 사내가 있었다.

다름 아닌 태을묵검파 문주 막인후였다.

기수식이 특이했다.

양손을 부(父)자로 교차하고 언제든지 쏘아져나갈 수 있도록 한쪽 발뒤꿈치를 들고 있다. 그의 흑색 묵검에서는 불길한 검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묵검기라 불리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검기가 아니군.’

당연명은 한눈에 묵검기를 꿰뚫어봤다. 보통의 검기와는 기질 자체가 달랐다. 마치 유형화시킨 살기를 보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막인후가 익힌 태을쌍검식은 그가 지닌 살기를 극대화하는 무공이었다. 검강이란 강력한 의념이 깃든 검기를 말하는 게 아니던가. 그렇다면 강력한 살의가 결합된 검기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묵검기였다. 제대로 된 검강보다는 못했지만, 보통의 검기보다는 그 위력이 훨씬 강했다. 막인후의 무공을 폐하러 왔던 무당의 태청검수들이 속절없이 쓰러진 것이 바로 이 묵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검기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막인후는 이 묵검기를 믿고 있었다. 강기가 아닌 이상 묵검기를 당해낼 순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제깟 놈이 아무리 잘나봤자 화경에 이르렀을 리는 없지 않나. 그의 주군인 흑사련주 유길준조차도 약관을 넘어서야 화경에 이르렀을진대.

하지만 막인후는 끝까지 신중을 기울였다. 남은 수하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조금이라도 당연명의 기력을 빼놓고 결전에 임하고자 했다. 만천화우를 연상케 하는 암기무학─ 철편표에 의해 아주 빠르게 수포로 돌아갔지만.

‘반드시 죽인다.’

남은 수하들은 십여 명뿐이었다. 이 정도면 몰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지켜봐야 허점을 노릴 수도 없겠다 생각한 막인후가 마침내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깊게 팬 고랑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청난 각력으로 땅을 찍어 누르고 그 반탄력으로 돌진한 것이다.

후욱 끼치는 바람과 함께 당연명의 정면에서 막인후가 모습을 드러낸다.

‘분쇄해주마.’

속으로 뇌까리는 것과 동시에 막인후가 교차했던 팔을 휘둘렀다.

극쾌, 극강의 검공─ 태을쌍검식을 펼쳐낸 것이다. 순식간에 수백 번의 칼질이 허공을 갈랐다. 극한의 긴장 속에서 최고의 집중력으로 펼친 까닭일까. 막인후는 여태 펼쳤던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게 태을쌍검식을 쏟아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곧 굳어졌다.

쩌어엉─!

한바탕 쏟아낸 칼질로 인한 소음이 뒤늦게 하나처럼 들린다. 그런데 피륙을 가르는 소리가 아니라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다.

“어떻게...?”

막인후가 뒤로 훌쩍 물러나며 믿을 수가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두 자루 흑검으로 펼쳐 낸 수백 번의 검격이 모조리 막혔다. 이게 말이 되나? 심지어 묵검기를 둘렀는데.

“원래 검술에 일가견이 있다.”

당연명은 어느새 수리검 하나를 꺼내들고는 빙글거리며 말했다. 막인후가 구사한 태을쌍검식이 제법 쾌속하고 그 기세가 매섭긴 했다만, 그래봐야 검신의 영역에 다다랐던 그의 눈에는 평범한 검로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쳐내고 흘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묵검기는....

"네놈이 묵검기를 어찌...?"

막인후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어느새 당연명의 수리검에서 흑색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묵검기와 거의 흡사했다. 형상이나 기질 모두.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흑사련주로부터 하사받은 태을쌍검식을 부단히 익혀 그 성취가 어느 정도 깊어지고 나서야 겨우 쓸 수 있게 된 기예가 묵검기였다. 그런데 그걸 어찌 당가 놈이 능수능란하게 구현하는 것이지...?

"묵검기? 그렇게 부르나?"

당연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살기가 짙은 검식이니 검기에 살의가 담겼겠지. 어렵지 않은 기예다. 살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누구나 흉내낼 수 있겠는데. 하긴 그 정도 경지에 이르면 이런 잡기는 쓰지 않겠지만."

"뭐?"

막인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이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어렵지 않다? 잡기?

묵검기는 말처럼 간단한 기예가 아니었다. 그 무당의 태청검수들마저 무참히 도륙내버린 검기의 극의였다. 그걸 그냥 한 번 보고서 흉내낸다고?

말도 안 된다─ 그렇게 되뇌던 막인후는 문득 당연명이 짧은 시간 저지른 일을 떠올렸다. 삼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별다른 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했다. 천진방주 정연송마저 죽고 이제는 자신의 절초마저 먹히지 않음을 확인했다. 남은 것은 십여 명의 수하들뿐.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거기에 하나쯤 더해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을까.

'당가에 누가 있어 이런 괴물을 키워냈단 말인가.'

설마하니 혼자서 저만한 무위를 쌓아올렸으리라고는 정말 눈곱만큼도 짐작할 수 없었기에 하는 생각이었다.

"보아하니 방금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은데."

이만 끝내지─ 당연명이 그렇게 말하며 수리검을 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손을 꺼냈는데, 촤르륵 하는 미세한 금속음과 함께 묘하게 생긴 표창 여덟 개가 허공에 떠올랐다. 표창은 둥근 고리에 작은 칼날 여러 개가 붙어 있는 모양새였는데, 표창보다는 반지에 가까운 암기였다. 그래서 당연명은 회선환(回旋環)이라 부르고 있었다.

공중에 머물러 있는 회선환에 당연명이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을 끼웠다. 그러면서 나직이 읊조린다. 회(回).

곧 슈아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회선환이 고속으로 휘돌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위협적인 암기무학이 곧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그에 막인후와 남은 사파 무인들은 한껏 경계심을 끌어올렸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암기무학의 고수를 상대로 어느 정도의 간합을 둬야 할지 좀처럼 예측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당연명의 눈이 진녹색으로 물든다. 안법 시류안을 통해 흐름을 보고, 감각도 주사망역으로 기감을 벼린다. 그리고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엄청난 회전력을 품은 회선환이 손가락을 벗어나더니 잔상을 남기며 휘리릭 날아갔다. 곧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검신이 창안한 암기무학─ 회선난무표였다.

한편.

'어디냐.'

정적 속에서, 막인후는 극도로 긴장한 채 기감을 일깨웠다. 시각이나 청각 따위 오감에 의존해서는 당연명이 던진 회선환을 감지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촤라라라락─!!

회선환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무언가를 거세게 난도질하는 소리와 함께였다. 십여 명의 사파 무인들이 순식간에 절명했다. 회선환은 엄청난 회전력으로 그들의 복부를 뚫거나 두개골을 부수고 들어갔고 목젖을 관통하기까지 했다. 중간에 걸리는 날붙이들마저 순식간에 잘려나간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사파 무인들을 정리하고 난 후 회선환은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다시 모이더니 막인후를 노렸다.

'여기서 죽을쏘냐!'

막인후는 힘을 주어 눈을 부릅뜨고는 태을쌍검식을 펼쳤다. 다시 한 번 그의 묵검기가 짙게 피어오른다.

채채채채채챙─!

엄청난 쾌검이 작열했다. 대체 회선환에 어느 정도의 회전력이 가미된 것인지 묵검기로 보호받고 있음에도 막인후의 흑색 쌍검에는 미세한 실금이 생겼고, 이내 스걱!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결국 막인후는 회선환을 모조리 쳐내고 흘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일단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하며 안도할 때였다.

당연명이 손가락을 작게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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