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41화 (41/134)

41화<생환>

암기회수 무학 연기륜을 이용한 연계기였다.

막인후가 쳐냈던 회선환이 사방팔방에서 다시금 그를 노리고 짓쳐든다.

"...!"

막인후는 기겁했다. 전력을 다한 태을쌍검식을 막 쏟아낸 직후였다. 한쪽 팔을 잃어가며 겨우 막아냈건만 조금의 틈도 없이 이렇게 다시 공격해오다니?

남은 한 손을 필사적으로 휘둘러보지만, 양손이 멀쩡할 때도 당해낼 수 없었던 회선난무표를 외팔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촤라라라락─!!

소름끼치는 절삭음이 연달아 들린다. 막인후의 팔다리가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화끈한 감각에 막인후가 눈을 크게 뜨며 비명을 토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목과 안면에 붉은 실선이 수도 없이 생기더니 그 틈으로 핏물이 푸확 치솟으며 산산조각났다.

다리를 잘린 그의 신형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도륙에 걸린 시간이 촌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때 무당파의 속가제자였으며 흑사련 휘하 태을묵검파의 장문인 막인후가 최후를 맞이했다. 태을쌍검식으로 수많은 이들을 무참히 도륙해왔던 그가 이렇듯 산기슭에서 허망하게 죽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여덟 개의 회선환은 연기륜에 따라 다시금 당연명의 손가락으로 돌아와 끼워졌다. 그에게 연기륜을 가르쳐준 당원진이 보았다면 입이 떡 벌어졌을 광경이었다. 암기를 회수하는 과정을 이용해 다시 한 번 공격을 가하다니...!

게다가 사실 회선난무표는 발출보다 회수 때가 더 위력적인 무공이었다. 발출 때는 단순히 당연명으로부터 쏘아지는 것이지만, 회수 때는 전후좌우를 비롯한 팔방에서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까닭이다.

"......."

주변은 고요했다. 침묵을 강요하는 시신들만이 온전치 못한 형태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을 뿐.

노을빛으로 한 층 더 붉게 물들어가는 참상 속에서 미형의 청년 하나만이 우뚝 서 있다.

'끝이군.'

당연명은 표정 없이 뇌까렸다. 제법 소득이 있었다고. 삼백이라는 거창한 숫자의 인원들을 대상으로, 창안한 암기무학들을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이런저런 사소한 결점들을 보완할 수 있었다. 사천 사파 세력의 수준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고.

'조금만 가르치면 되겠어.'

당원진을 비롯한 봉위대를 떠올리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당연명이었다.

소가주 경합─ 고독전은 이걸로 끝났다. 당연명은 자신이 진법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임을 알고 있었다. 경합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가 승자였다. 가문에서 정한 절차에 어긋남이 없었으니 정당하게 소가주의 위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소가주가 되면 마땅히 가문을 위해 '적당히' 힘쓸 생각이었다. 사천의 사파 세력 따위에 일일이 위협 받아서야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테니까.

'일단은 나가야겠지.'

당연명은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시시각각 좁아지는 진법이 자연스레 소멸하길 기다린다면 얼마의 세월이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당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진법의 경계를 통해 나간다면 괜한 트집을 잡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짐작대로라면, 이번 일에는 제갈가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고독전의 진법 세계가 미묘하게 뒤틀리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 진입하자마자 느꼈던 감시의 눈길도 있었고, 또 당영령으로부터 들은 얘기도 있었다. 삼백의 사파 무인들이 들어온 것도 제갈창신 등이 묵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물론 같잖은 수작들은 무엇 하나 당연명에게 해를 끼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고이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은혜는 두 배, 원한은 열 배로─ 그게 당가의 가규였으니까. 당가의 사람으로 살기로 한 이상 가규는 준수해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당연명이 수리검을 꺼냈다.

허공을 향해 내리그으며 의념을 싣는다.

'찢어져라─'

진녹색 검기가 짙어지더니 화악! 하고 불길이 타오른다. 화경을 넘어선 이들만의 고유한 특권, 강기를 수리검으로 펼쳐낸 것이다.

쩌저저저적─!

거짓말처럼 진법 세계가 찢어지며 그 속살을 드러냈다. 당연명은 균열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또 한 번 검강을 휘둘렀다. 그 후로도 여섯 번을 반복했다.

그렇게 제갈가의 진법 비기─ 칠쇄환궁진이 모조리 파훼됐다.

****

"제갈 무인.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어렵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라 해도 고독전이 펼쳐지는 진법 세계에는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경합의 공정성을 위함이었지요. 설마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당원진의 물음에 제갈창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삼백에 달하는 무인들을 고독전이 펼쳐지는 진법 세계로 들인 것도 제갈창신이었고, 직후에 당연명이나 당영령이 나오지 못하도록 진법 세계 자체를 아예 봉쇄한 것도 그였다. 봉위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말했지만.

제갈가에서 고독전에 개입한 흔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함이었다. 가문의 존속이 달려있는 일이었기에, 제갈창신은 이번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살아나올 일은 없겠지.'

당원진을 비롯한 봉위대를 설득해 남은 참가자 전원을 데리고 칠쇄환궁진 밖으로 빠져 나오자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삼십여 명 있었다. 하나 같이 사천 사파 세력의 무인들이었는데, 봉위대에 의해 간단히 제압당했다. 인원수로나 실력으로나 봉위대쪽이 우위였던 덕이다.

개중 몇 놈을 문초해 몇 가지 정보를 캐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천 사파 세력 중에서도 태을묵검파가 주도해서 인원을 모았다는 것과, 그곳의 장문 막인후 뿐만 아니라 흑사련 휘하에서도 중견에 해당하는 천진방의 방주 정연송까지 진법 안으로 들어섰다는 것.

애당초 행색을 보고 막인후의 존재까지는 짐작했었지만, 설마하니 천진방주 정연송까지 함께했을 줄이야.

두 자루 흑검으로 펼치는 막인후의 태을쌍검식도 유명했지만, 정연송의 천진장 역시 만만찮은 절기라는 것은 꽤나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들에 더해 삼백의 사파 무인들까지 있는 마당이다. 아무리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들에게서까지 살아남을 수는 없을 터─

제갈창신은 안심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당원진 무사. 일단은 몸을 빼는 게 어떻겠습니까? 단순히 삼백의 인원이라 해도 지금의 전력으로 결전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코 작지 않은 방파의 두 주인들마저 있다고 하니 미적거리다 자칫 불상사가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28호의 자질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분명 아까운 자질이었지요. 그러나 남은 경합 참가자들 역시 훌륭한 인재들입니다. 그들이 곧 당가의 미래일진대, 그들이라도 지켜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섭선마저 접고 말을 쏟아내는 제갈창신은 정말로 당가의 안위를 염려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냉정히 말해서, 고독전의 진법에 갇힌 참가자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만 미련을 버리시는 것이...."

그렇게 제갈창신이 말을 하는 와중이었다.

쩌저저저저저적─

칠쇄환궁진이 있던 자리─ 절벽의 풍경이 난데없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태연하게 걸어나오는 인영이 있었으니.

"...연명이야!"

"거봐. 살아있을 줄 알았지."

"미려야. 눈물 자국이나 제대로 닦고 말해...."

당유리와 당미려, 당이전이 가장 먼저 당연명을 알아보고 말했다. 당정일은 그들 근처에서 작게 손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역시 괴물이야.

한편.

'어떻게?'

제갈창신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살아 나올 수 있었던 거지? 삼백에 달하던 사파 놈들은 대체 뭘 한 거지? 막인후는? 정연송은?

의문이 샘솟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어떻게 칠쇄환궁진을 뚫고 나온 거지?'

칠쇄환궁진은 말 그대로 일곱 개의 진법이 각각의 진법세계를 형성하고 서로 중첩된 제갈가 비전의 절진이었다. 거기에 더해 고독전을 위한 진법세계까지 펼쳐 놓았으니 사실상 팔중뇌옥(八重牢獄)이나 다름없었다. 정해진 기한이 되기 전에는 절대 무너질 일이 없는 궁극의 진법이라 여겼는데, 28호가 그걸 가르고 나온 것이다.

처음 진명안으로 그를 감시하려 했을 때 공간을 찢는 검격을 보인 적이 있는 28호였지만 그것과 이건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제대로 구현된 진법세계는 크기의 대소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그걸 깨뜨리려면 필연적으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깨뜨린 자여야만 했다.

세계가 그 모습을 유지하려는 것보다 훨씬 강한 의념으로 부숴야만 했으니까.

'설마....'

불현듯 스친 예감에 제갈창신이 살짝 몸을 떨었다. 어쩌면 자신은 터무니 없는 실책을 저지른 게 아닐까. 가문을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만 느낌이었다.

'아니. 아직 모르는 일이다.'

제갈창신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28호는 진법세계 안에만 있었으니, 제갈가가 관여된 부분을 모를 수도 있었다. 고독전에 개입한 것도, 사파 무인들을 들여보낸 것도 말이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2호... 그녀가 뭔가 발설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지금 날 보고 있는 건가?'

제갈창신은 28호와 눈이 마주치는 느낌을 받았다. 서늘한 눈빛. 진녹색 빛이 희미하게 일렁이는 게 몹시 신비로우면서도 섬뜩했다.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제갈가라.'

당연명은 왠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갈창신을 보며 확신했다. 진법세계 안에 태을묵검파를 비롯한 사파 무인들이 들어온 것도 제갈가의 짓임을 말이다. 이 자리에서 그들을 모두 참해버릴 수도 있었다. 고작해야 일곱 명 아닌가.

하지만.

'아직은 아냐.'

당연명은 제갈가에 대한 일을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확실히 소가주의 자리를 거머쥐기 전까지는 책잡힐 구실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어쨌거나 겉으로는 당가와 같은 정도 무가였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관련된 이들이 모조리 죽고 심증뿐인 까닭이다. 물론 그 심증으로 족하긴 했다.

'일단은 집안정리부터.'

그 후에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게 순서에 맞지 않을까. 어차피 소가주가 되면 굳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도 제갈가를 말려죽일 수 있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당연명이 저벅저벅 걸어 봉위대 등에게로 다가갔다.

당원진이 앞으로 나와 그를 반겼다.

"28호. 아니, 당연명. 무사했구나...!"

"염려를 끼쳤습니다. 교두."

"아니. 무사했으니 되었다. 그나저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느냐며 당원진이 자초지종을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구구구구궁─!!

당연명이 나오면서 찢어졌던 절벽의 풍경이 굉음과 함꼐 무너져 내렸다. 칠쇄환궁진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약간의 먼지가 일었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산중턱을 깎아 만든 듯 거대한 공터였다. 한쪽 편에는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작은 장원이 일곱 개가 주르륵 늘어서 있었고, 반대 쪽에서는 이런저런 짐승들이 놀라 굳은 모양새로 눈알을 굴리다가 부리나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공터의 중앙에는 수백에 달하는 시신들이 온갖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당연명을 제외한 모두가 드러난 참상에 경악하는 와중에,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당유리가 중얼거렸다.

"저거, 태을묵검파 장문 막인후의 병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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