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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49화 (49/134)

< 49화<제가(5)> >

'방금. 웃은 건가...?'

삼장로 당석형은 어이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놈, 당연명이 입 꼬리를 올리는 것을 보았다. 지금 그를 포함한 다른 장로들이 내뿜는 기세는 추상같이 서늘했다.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압박감을 견디기 위해 제각각 인상을 쩡그리며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니.

'믿는 구석이 있는 게로군.'

확실히 기감으로 느껴지는 당연명의 수준은 상당했다. 암왕대주 당적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보인다.

약관 직전 청년의 모습이긴 했지만, 당연명의 나이가 외손녀인 당영령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발육이 빠른 것일 테지. 실제 나이는 열다섯, 혹은 열여섯일 터다. 연배를 생각하면 엄청난 성취였다. 앞으로 십년, 이십년이 흐르면 드넓은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강자가 될 지도 몰랐다.

'자질이 아깝긴 하다만.'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대로 당연명이 소가주가 되도록 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놈은 독봉의 아들이었다. 귀환하자마자 하는 짓을 보니 장로원에 가지고 있는 감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겠지. 제 어미가 소가주의 자리를 박탈당한 것이 장로원 때문이라 여기고 있을 테니. 사실이기도 했고.

아무리 휘황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 미래에 자신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당석형은 그리 생각하며 결정했다. 절대 당연명이 소가주가 되게 해선 안 되겠다고.

"지금, 허가라고 하셨습니까."

당연명이 말했다. 오장로 당명후가 내려서면서 했던 말一 장로원의 허가도 없이 얼렁뚱땅 소가주의 자리에 앉으려는 거냐는 것에 대한 반문이었다.

"애초에 경합을 개최한 이유가 뭐였습니까. 직계와 방계를 구분하지 않고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모아 장로원을 비롯한 가문 내부의 요직에 계신 분들의 간섭 없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가장 뛰어난 이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경합을 주관하는 것도 암독전이 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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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야 맞는 말이었기에 장로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려고 굳이 가문 외부에서, 제갈가의 도움을 받아 경합을 진행하지않았던가.

"경합에 대한 해당 사안은 장로원에서도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지금 장로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마치 장로원의 입맛에 맞는 소가주를 원하시는 듯하군요."

"말이 지나치다"

대장로 당석중이 나직이 말했다. 동시에 그에게서는 범접하기 힘든 무거운 기세가 흘렀는데, 일순 그 기세를 온전히 당연명에게 쏟는 게 아닌가. 기세로 입을 틀어막을 셈인 것 같았다. 범인이라면 기운의 압박에 저항하는 것만으로 버거울 터였으니.

그러나 당연명은 태연하게 당석중의 기세를 받아냈다. 그 모습에 다른 장로들이 눈에 이채를 발했다. 방금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공방이 오간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대장로의 내공 성취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흘려냈다고 해도 믿기 힘든 일이거늘...!

당연명이 빙글거리며 말했다.

"치졸한 짓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제 입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뭐라? 치졸? 이놈 말버릇이...?"

"아니 그렇습니까. 명분에서 밀리니 압력을 행사하시는 것 아닙니까. 직속 무력대까지 끌고 오신 것을 보면 무력시위라도 할 셈이셨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만약 여러 장로님들의 혈육이나, 관련이 있는 자들의 영식이 경합에서 우승했다면 이러시지 않았겠지요."

"허. 그놈 말재간 하나는 기가 막히는구나."

사장로 당지룡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째 당연명의 말을 듣다 보니 점차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기세로 찍어 누를 참이었는데, 놈은 배포가 큰 것인지 겁이 없는 것인지 가문의 실세인 장로들 앞에서 할 말 못할 말 구분지 않고 쏟아냈다. 게다가 그 말에는 정당한 명분이 실려 있어 반박하기도 쉽지 않았다. 암왕대나 독왕대, 그리고 봉위대 뿐만 아니라 설전을 지켜보는 가솔들도 꽤 있었고.

"소가주 경합의 최종 승리자가 소가주가 된다一 그게 방칙이었습니다. 제가 우승자라는 것은 이미 봉위대와 다른 경합 참가자들이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정당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만 암독전에서 인정한다면, 제가 스스로 소가주의 자리에 올라도 뭐라 할 수 있는 이가 없는 것이 맞겠지요. 설사 그동안 실권을 누려왔던 장로원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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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명의 말에 좌중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간 누가 있어 장로들에게 이렇듯 정면으로 대들 수 있었던가. 심지어 장로 한둘도 아니라 장로원 전체에 대해 반기를 드는 셈이었으니...!

'어쩌자고 저러는 걸까.'

당적휘는 속이 시원한 한편으로, 우려를 멈추지 못했다. 분명 명분은 이쪽에 있었지만, 이미 대립각을 세운 이상 저쪽에서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경합의 과정을 검증 중이었다지."

삼장로 당석형이 말했다.

"암왕대주. 당연명의 경합 과정에서 특별히 문제되는 점은 없었나?"

"...예. 봉위대는 물론이고 참가자들 역시 당연명의 우승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제갈가 분들의 말씀을 듣는 와중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당적휘가 힐끗 제갈창신을 쳐다봤다. 그가 고독전에 대해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 까닭이었다.

당적휘의 시선을 따라 당석형 역시 제갈창신을 바라보자, 그가 먼저 인사를 했다.

"삼장로 어르신을 뵙습니다."

"그래. 무량전주 아닌가. 고생이 많았군."

"아닙니다. 그간 당가가 지원해준 덕분에 저희 제갈가가 명맥을 이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마땅히 도와야지요."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인사치레는 이쯤하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소가주 경합의 과정은 공정했나?"

"공정했다 하심은...."

제갈창신이 말끝을 흐리며 당석형의 눈치를 살폈다. 장로원의 입장은 이해가 갔다. 설마하니 당연명이 전 소가주인 독봉의 아들이었을 줄이야. 기존 당가의 기득권 세력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소가주로 급부상한 셈이었다. 어떻게든 저지하려 하겠지.

"말 그대로일세. 질쇄환궁진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경합이 치러졌을진대, 그 중간에 어떤 불미스런 일이나 외부의 개입 같은 일이 있진 않았나 하는 거지."

"그건...."

제갈창신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삼장로 당석형이 마치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캐묻는 느낌이 들었던 까닭이다.

사실 당석형은 외손녀인 당영령이 당가십독의 하나인 화룡호독을 지니고서도 당연명을 어찌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느끼고 물은 것이었지만, 제갈창신이 알 도리는 없었다.

'무언가 있다.'

당석형은 눈을 번득였다. 제갈창신이 머뭇거린 것은 잠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경합 과정에서 약간만이라도 물어뜯을 구석이 있다면 그걸 빌미로 아예 소가주 경합 자체를 없던 일로 해버릴 참이었다.

"말하게. 만약 진실을 얘기하는 것에 어떤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 없네. 이 일로 당가와 제갈가가 소원해지는 결코 없을거라고 내 약속하지."

그렇게 말하고는 당연명에게 말했다. 경합의 승자인 네놈도 여기에 동의해야 할 것이라고.

"동의합니다."

당연명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비로소 제갈가에 대한 처분을 결정지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

형체를 겨우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밀실.

커다란 원탁이 놓여있고, 그 주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심각한 안색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사천의 흑사련 휘하 사파 세력들의 수장들이었다. 이 정도 어둡기로는 그들의 시야를 가리지 못한다.

목내이처럼 극도로 마른 몸을 지닌,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초붕문주 엽인제였다.

"다들 알다시피.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소."

"...어이가 없군요. 막 장문과 정 방주가 이리도 허망하게 가실 줄이야."

불꽃 모양 무늬가 수놓아진 남색 장포를 입은 여인, 심화방주 여설련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젊을 적에 태을묵검파 장문 막인후와 몰래 정을 통한다는 염문이 돌았었는데, 진위 여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왠지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옛 정인을 추억하는 것처럼.

"설마 당가 놈들에게 당한 걸까요? 경합을 미끼삼아 역으로 함정을 팠다던가."

"그럴 리가 있겠소? 놈들이 거기 박혀 있던 것만 삼 년이 넘잖소. 당가의 다른 전력이 이동한 낌새는 전혀 없었으니 함정은 아니겠지."

"태을묵검파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막 장문이 데리고 출타한 인원만 거의 이백이라더군. 가용 가능한 전력 대부분을 이끌고 나선거요. 흡사 생사대적이라도 상대하는 것마냥 과한 준비로 보이긴 한데....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고. 또한 정 방주도 천진방의 정예를 끌고 갔다더군. 둘의 사이가 워낙 각별했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요. 또한 현중도문에서도 몇몇 제자를 지원했다 했고. 못해도 삼백에 달하는 인원이 움직인 거라 봐야겠지."

"이동하는 이들을 목격한 민초들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얼추 삼백이 넘어 보였다고 하더이다."

"그만한 인원이 시체만 남겼다...."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무겁게 자리했다. 제법 세력이 강성했던 방파 둘이 연합하고, 그것도 수장까지 직접 참전했는데도 몰살당했다...!

쉽사리 믿기 힘든 일이었다. 고작 당가의 소가주가 될 싹들을 미리 끊어 놓으려던 차였을 뿐인데. 다른 이들 역시 가벼운 일로 생각하고 딱히 지원을 보내지는 않았던 것 아니었나.

심화방주 여설련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역시. 공동파에서 개입했다고 봐야겠군요. 시신들을 화장한 것도 그들이니."

"심화방주. 그리 생각하기엔 아직 섣부른 판단일세. 솔직히 그들이 나선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군. 구파는 육파가 된 이후 극도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 않나. 공동파가 당가와 그리도 친분이 깊었던가...?"

"영역을 침범한 게 크지 않았을지."

"그들은 바보가 아니네. 태을묵검파 막 장문을 알아보았다면 당가 놈들을 노린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개입하기보단 관망을 택했을공산이 커."

"그럼 그곳에 있던 당가 놈들에게 당했을 가능성은...?"

"막 장문의 태을쌍검식을 본 적이 없나? 솔직히 그를 당해내려면 적어도 당가의 장로 한둘은 와야 할 걸세. 또한 정 방주의 천진장도 가히 일절이라 불릴 만하네. 몰살당한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 심지어 성도에 들어선 인원을 생각해보면 당가 놈들은 피해가 거의 전무한 수준이네."

"결국 다시 원점이군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당가 놈들에게 따져 묻기도 애매합니다. 본련이 먼저 공격한 꼴이라...."

"됐소. 답답한 건 알겠지만 일단 크게 쇠한 태을묵검파를 대신해 영역을 다스리고, 당가를 주시합시다. 경합이 끝났으니 무언가 변화가 있지 않겠소? 소가주가 새로 세워질 거고 진상은 그때 다시 파악토록 합시다."

초붕문주 엽인제가 적당히 대화를 끊었다.

어둠 속에 자리한 이들은 각자 나름의 생각에 빠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벌어진 일, 또 앞으로 벌어질 일을 통찰하는 모양새다.

사천 무림을 주도하는 수장들다운 면모였다.

하나,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그들의 세상일 것만 같았던 사천에 어떤 변화의 조짐이 일렁이는 중임을.

태풍의 핵은 늘 고요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 49화<제가(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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