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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52화 (52/134)

< 52화<제가(8)> >

당정일의 말에 대장로 당석중이 고개를 홱 돌려 부총관 당부윤을 노려봤다. 그가 당정일의 부친임을 아는 까닭이다. 감히 이런 식으로 배반을 해...?

그러나 당부윤이라고 해서 아들의 심중을 알 리가 없다. 경합 때문에 몇 년이나 떨어져 있다가 오늘에서야 만났으니까.

당석중이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네놈, 당정일. 무슨 억하심정으로 죽은 극린을 모함하느냐! 당연명 저놈에게 어떤 협박이라도 당한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협박은커녕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목숨을 구함받았습니다. 당극린은 태을쌍검식으로 보이는 무공을 펼치기까지 했는데, 당연명이 나서지 않았다면 저 또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겠지요."

당정일은 고개를 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태을쌍검식까지...!"

"이건 좀 믿기 힘들군. 그건 막가 놈의 독문무공일 텐데...? 후계자들에게나 가르치는 것 아닌가. 그걸 한낱 간자에게?"

"그...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인후에게 사생아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그건 막가의 정실이 손을 쓴 것 아니었나?"

"그렇게 소문이 나긴 했습니다만,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딱 당극린 정도의 나이...."

"억측.... 아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군."

당정일의 말을 들은 자들이 수군거리며 추리에 추리를 더했다. 원래라면 증인이 한 마디를 했다고 해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을 터다. 하지만 당정일과 당연명의 악연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경합 직전에 벌어진 일인 데다가, 삼장로의 외손녀인 당영령이 엮여 있어 가문 전체가 들썩였던 까닭이다.

당연명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도 모자랄 당정일이 도리어 그에게 유리하도록 증언을 한다一 그 괴리감이 신빙성을 높였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어. 사파 놈들. 명고라는 벌레를 키운다지. 멀리 떨어진 사람의 생사를 짐작하는 용도로."

"그럼, 태을묵검파가 쳐들어온 것도 간자의 죽음을 알고서...?"

"당극린의 자질을 생각해보면 막인후가 내심 아꼈을 가능성도 있어. 사생아라 해도."

여릿이 모인 자리다. 오고 가는 말 속에서 자연스럽게 추리가 이루어져 순식간에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 과정의 말소리들을 들은 대장로 당석중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저 헛소리로 지부할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당극린이 간자였다면...?

'나 역시 무사치 못한다.'

위기감을 느낀 당석중이 뒷편을 보며 외쳤다.

"준령대, 준령대는 나서파룡대주는 무얼 하는가! 삼장로의 원한을 갚지 않을 텐가!"

당석중은 그 자신과 삼장로의 무력대를 재촉했다. 차마 당연명과 직접 손을 섞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삼장로 당석형이 믿을 수 없으리만치 허망하게 당하는 모습을 목도하지 않았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파롱대주 당계중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까지 당연명이 펼친 살기의 권역이 건재한 까닭이다. 실로 믿기지 않는 무위였다. 대체 내공 화후가 얼마나 깊길래 이토록 넓은 영역에 영향을 끼질 수 있는 것이지...? 내공을 한껏 끌어올려야 움직일 수 있을 듯했다.

"파롱대주라 했나? 경거망동하지 마라."

스스로를 소가주라 칭한 청년이 말한다.

"지금 나는 사천당가의 적법한 소가주로서, 간자와 내통한 대장로에게 죄를 물으려 한다. 만약 여기에 끼어든다면, 누가 되었건 항명죄로 다스릴 것이다."

"...!!!"

당계중을 비롯한 장로원 직속의 무력대 무사들은 항명죄라는 말에 걸음을 멈짓했다. 삼장로 당석형을 살해할 정도의 무력을 지닌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무게감이 엄청났다.

당연명이 말했다.

"대장로 당석중. 당극린이 태을묵검파의 간자라는 것을 증언한 증인과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다. 어찌할 텐가."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애초부터 부정을 획책한 삼장로와는 경우가 다르다는 말이다."

당석중은 이제 당연명이 하대하건 말건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당극린이 간자였다는 얘기가 나온 이후 어느새 다른 장로들의 시선도 싸늘해져 있었다.

"그대의 지위가 가볍지 않음을 모르나? 몰랐다는 말로 빠져나갈 순 없다. 만약 당극린이 경합에서 우승했다면? 장로원의 전폭적인 지지로 아주 쉽게 소가주의 위에 올랐겠지. 지금 내 처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당석중은 침묵했다. 동시에 후회했다. 당극린의 자질에 반해 그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을. 양친을 여의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한이었다. 그간 부자지간이나 다름없도록 정을 주었건만, 태을묵검파의 간자였다니....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었지만 당석중도 바보가 아니다. 가솔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당극린이 간자임을 반쯤 인정하고 있었다.

또한 당정일의 증언에 따르면 당극린은 다른 참가자들을 일부러 도륙했다. 경합보다는 당가의 싹을 자른다는 의도였다고. 그래선지 그를 삐뚜름하게 쳐다보는 이들이 몇 있었다. 당극린에게 희생 당한 이들의 유족일까.

당연명이 말을 이었다.

"자짓 본가가 송두리째 태을묵검파의 손에 넘어가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한심하게도 간자의 정체를 끝끝내 밝히지 못하고 당극린을 가주로 주대할 수도 있었겠지. 대장로 그대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회피하려 하지 마라."

"...!!!"

"봉위대주."

"예. 주군."

"본가 율법에 따라 대장로를 처벌하고자 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떤 형벌이 적당한가."

'..본래 가주에 대한 모반, 혹은 가문을 전복시키려는 모략을 획책 및 가담한 경우에는 참형, 간자와 내통한 경우에는 그 오른팔을 자르고 무공을 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장로의 경우에는 간자와 내통했다고까지는 보기 어 렵습니다만."

당원진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혀로 입술을 할았다. 어린 주군의 거친 행보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당연명이 어떤 인물인지 대강 알 것 같았다. 명분을 준비하는 모습은 분명 정파인으로서의 기질이 엿보였지만, 그 처리 방식은 패도 그 자체였다. 타협 따위는 조금도 없이, 스스로 올다 믿는 바를 행하는 기질이었다.

'이것이 주군의 협(快)...!'

우려되는 바가 없진 않았지만 따르는 이로서는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이 있어야만 걸어갈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

잠깐의 침묵 후에 당연명이 입을 열었다.

"대장로 당석중은 들어라. 그대는 간자를 제자로 들여 가문을 위험에 빠드드릴 뻔했다. 뿐만 아니라 본가의 동량이 될 인재들을 허망히 죽게 만들었으니 그 책임이 실로 지대하다. 하나 간자와 내통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니 스스로 왼팔을 자르는 것으로 벌을 대신하겠다.

무공까지는 폐하지 않을 테니 다행으로 여기도록."

"뭐라...!"

대장로 당석중은 기가 막혔다. 청산유수 같이 말을 읊어대기에 무슨 말을 하나 끝까지 듣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가관 아닌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당연명은 선심쓰듯 왼팔을 자르라고 했지만....

__필시 본좌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알고 그러는 것이다...!'

당석중은 이를 갈아붙였다. 명분과 기세가 완전히 당연명 쪽의 우위인 상황이다. 이제는 직속 무력대들조차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힐끗 장로들을 보니 그들도 도와줄 의향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당연명과 맞붙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의 무력은 범상치 않았다. 삼장로 당석형이 허망하게 당했지 않나. 가공할 열양지 력이었다. 마치 화룡호독에 당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래. 그걸 쓴다면....'

화룡호독을 떠올리자 문득 한 가지 방도가 생각났다. 그에겐 당가십독에 준하는 독이 하나 있었다.

한때 열 가지였던 당가십독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네 가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네가지 당가십독 중에 유일하게 조제가 가능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무형독(無形毒)이었다.

무형독은 무색, 무취, 무미의 극독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주 은밀하게 상대를 중독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당가십독 중에서는 위력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랄 수 있었지만 화경에 이른 고수라 해도 그 독기를 쉬이 몰아내지는 못한다.

물론 이러한 무형독의 조제가 쉽지는 않았다. 오만 가지의 약재와 독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독과 독을 섞는다고 해서 독기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약과 약을 섞었는데 독기가 강해질 수도 있었다.

또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냐에 따라 성질이 바뀌는 약재나 독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계산해서 독기만을 끝없이 북돋아야 하는 것이다.

재료를 구하는 비용이나 그 어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렇듯 배합의 순서와 숙성의 시간이 중요한 탓에 온전한 무형지독을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었다.

당가십독은 가문의 보물이었고, 삼장로 당석형의 관리 하에 있었기에 당석중은 반평생에 걸쳐 그만의 무형독을 조제하고 있었다. 아직 완성된 무형독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거의 구 할 정도는 된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색, 무취, 무미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부터.

온전한 무형독에 비하면 독성이야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당연명이 버텨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책임을 통감한다. 마땅히 벌을 받도록 하지."

당석중은 침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얼핏 봤을 때는 제자가 간자라는 것에 충격을 받아 자포자기한 듯하다. 혹은 완전히 궁지에 몰려 단념을 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왼팔을 스스로 자르기엔 무리가 있다. 나는 왼손을 주로 사용하니. 오른쪽을 쓰는 게 서투르다."

거짓이었다. 양손으로 펼지는 암기 무학을 웬만큼 익힌 그는 왼손잡이지만 오른손 역시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다룰 수 있었다.

"하여, 소가주가 형을 집행해주었으면 한다. 소가주의 말이 올다. 가문의 율법은 지엄하고, 본 장로는 씻기 힘든 죄를 지었음이니."

당석중의 말에 좌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가 마침내 당연명을 소가주로 인정하는 것처럼 발언한 까닭이다.

당연명 역시 눈에서 이채를 발하며 말했다.

"스스로 일벌백계의 본보기가 되고자 한다一 대장로의 결심이 가상하군. 좋다. 대장로 당석중은 앞으로 나서라."

"그럼 부탁하지."

당석중은 그리 말하며 당연명의 앞에 섰다.

"원래 왼손을 쓰는 줄은 생각지 못했군. 나름대로 아량을 베풀고자 한 것이었는데. 그렇담 원래대로 오른팔을 베겠다."

"...고맙군."

정말로 왼손잡이인 것을 몰랐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당석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된 일이었다. 오른손보단 왼손으로 독을 뿌리는 것이 더 익숙하니. 게다가 당연명이 그의 오른팔을 자르려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감각의 사각이 발생하게 된다. 기감이 극도로 뛰어나다 해도 이 정도로 근접해 있다면 바로 대응하기는 힘들 터.

무색, 무취, 무미의 무형독은 더욱 더 감지하기 어려울 터다.

당연명은 오른손으로 수도를 세웠다. 녹색빛이 감도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그의 손날에 어린다. 저항 없는 늙은 육신을 자르는 데는 충분한 위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놈이 수도를 내리질 때, 그때 무형독을 쓴다...!'

동시에 오른팔을 내공으로 둘러지면, 멀쩡히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일단 무형독에 중독시키면 그 후에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다른 가솔들의 비난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그런 것 따위를 염려할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당연명이 소가주가 된다면, 그가 이뤄놓은 것은 완전히 끝장날 것이기에.

당연명만 없다면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一 그렇게 생각하는 당석중의 귀에 소가주의 음성이 들렸다.

"그럼, 형을 집행하겠다."

< 52화<제가(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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