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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56화 (56/134)

< 56화<약왕당주(2)> >

가라앉은 분위기와 다르게, 당연명의 표정은 태연했다.

"약왕당이라."

중얼거리는 목소리마저 고저없이 일정하다. 동요하지 않은 까닭이다. 어차피 부친의 죽음에 석연찮은 점이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의외였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실마리를 잡게 되다니.

얼굴도 모르는 부친이다. 이미 일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검신의 입장에서는 타인이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터. 하지만 받아들인 소년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까. 복수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저 검신의 부동심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을 뿐.

도리어 놀란 티를 내는 것은 당유리와 당미려였다.

"독봉의 남편께서 요절한 일에 약왕당이 연루되어 있다고?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미친 것들 아냐? 감히 소가주의 가족을 해코지하다니.... 그런데 이건 왜 알려지지 않은 거지?"

"이전. 계속 말해 봐."

당연명의 손짓에 당이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왕당은 본가 내에서도 폐쇄적인 곳이야. 장로원의 입김도 크게 달지 못할 정도지."

"당연한 일이야. 사천이 사도천하가 된 지금, 본가는 활동 반경이 거의 이곳 성도만으로 국한되어 있으니까.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재물이 필요한데, 그중 구 할을 약왕당에서 벌어들이고 있거든."

당유리가 거들었다. 총관부에서 일하는 부친을 둔 그녀의 말이니 틀림이 없을 것이다.

구할.

쇠락했다 하나 한때 세가로 불렸던 가문이다. 당가의 규모는 여전히 일개 가문이라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하나의 세력이라 봐야겠지. 그러한 곳에 쓰이는 금전의 대부분을 약왕당에서 감당한다는 소리였다.

당이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 말대로야. 약왕당은 독과 의술을 연구하는 것 외에도 민초들을 진료하거나 약을 처방해주고 대가를 받는데, 여기서 벌어들이는 은자가 적지 않아. 처방하는 약도 약왕당에서 취급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필요한 약재의 가공 역시 도맡아서 하니까. 사천의 모든 약재 거래가 본가 약왕당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돼."

"모르긴 몰라도 흑사련이 우릴 그냥 놔두는 것도 약왕당 덕이란 얘기가 있어. 민초들이 의지하니까. 상시로 구흘을 베푸는 것이나 마찬가지 잖아."

"일리가 있네.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놈들이니."

"아무튼 이런 상황이니 장로원에서도 약왕당에는 간섭할 수 없었지. 거의 독자적인 조직으로 인정받았다는 거야. 약왕당주의 위세가 대단할 수밖에 없지."

당이전과 당유리의 설명에 당연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왕당이라는 곳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무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무력이었지만, 그 무력을 유지하는 것은 금력이었다. 약왕당은 가문의 가장 커다란 재원인 셈이었으니 그 입지가 상당할 수 밖에 없으리라.

당연명이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떻게 독살당하신 거지? 당이전,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거고."

"네 부친... 그러니까 춘부장께서는 학사 출신이셨지? 조부의 말씀에 따르면 입담이 대단했다고 해."

"...아버지와 안면이 있으신 건가? 네 조부一 전 약왕당주셨던 분 말야."

"응. 마광천과의 혈전 이후 독봉에 대한 가문의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알지?"

"그래."

검신이었던 전생을 각성하기 전, 소년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당시에 너무나 많은 피가 흘렀기에, 혈육을 비롯한 소중한 이를 잃은 이들이 모친을 원망하기도 했다고.

"춘부장께서는 처인 독봉에 대한 비난이 들릴 때마다 달려가서 상대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곤 했다고 해. 무공 하나 익히지 않은 몸으로 그러셨다니 보통 배포가 아니었겠지."

"그러다 몇 번 손찌검을 당하시기도 했나 봐. 그럴 때마다 약왕당을 방문했었지. 조부와는 그때 교분을 나누셨다고 해."

당이전의 말에 당연명의 눈썹이 꿈틀했다. 당이전은 그저 '손찌검'이라고 표현했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양민이 약간이라도 내력이 실린 공격에 당하게 되면 몸이 크게 상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경력을 해소할 방법이 없기에 그대로 골병이 드는 것이다.

아마 부친 당위룡이 약왕당을 찾은 것은 그만큼 상세가 심각해서였겠지. 모친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거나.

'...기분이 영 좋지 않군.'

당연명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살심이 치솟는달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소년의 기억으로 인한 것은 아닐진대.

당이전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일이 터졌어. 약왕당에는 당주 외에도 두 명의 부당주가 있는데, 그중 하나와 춘부장께서 시비가 붙은 거야. 잘못은 명백히 부당주 쪽에 있었지. 네 모친이신 독봉을 두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일삼다 들켰으니까. 말다툼은 금세 커졌고, 원래 언변이 좋으신 데다 명분까지 있으니 춘부장께서는 부당주를 크게 망신줬다고 해."

가문을 말아먹은 년一 모친인 독봉 당지혜가 종종 듣곤 했다던 말이다. 아마 부당주라는 인물도 비슷한 욕을 해댔겠지. 당연명이 눈을 스산하게 빛냈다.

"혹시 그 부당주라는 이가 지금 약왕당주 아닌가?"

"...눈치가 빠르네. 맞아. 다른 부당주는 내 부친이셨고, 춘부장과 마찰이 발생한 부당주는 약왕당주셨던 조부의 제자였지. 당일이라는 이름이야. 어쨌건 크게 망신을 당한 부당주 당일은 화를 참지 못하고 무공까지 쓰려 했어. 자짓 불상사가 날 뻔했지만, 때마침 소란을 감지한 조부께서 나서서 막으셨지."

"그때 앙심을 품은 거군."

"그럴 거야. 조부께서 그 일이 있은 직후 다음 대 약왕당주로 내 부친을 지목하셨거든."

"네 부친, 춘부장께선 어찌 되셨지?"

당연명이 문득 물었다.

전대 약왕당주가 다음 당주로 당이전의 부친을 지목했는데 현 약왕당주는 당일이라고 했다. 멀쩡히 지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당이전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귀천하셨어. 당일 놈이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데리고 약왕당을 뒤집어엎고 당주가 된 직후에.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나도 잘 몰라.

아마 독을 썼겠지. 지금 이 얘기들도 전부 조부께 조금씩 들은 것들을 합친 거거든. 참, 그리고 춘부장께서 독살당했음을 말씀해주신 것도 조부셔. 시신을 부검할 당시에 잠깐 정신이 돌아오셔서 한눈에 알아봤다고. 약과 약을 섞어 극독과 다름없는 효과를 내는 것은 당일의 장기였거든."

그러고 보니 당이전도 그랬다. 공동산에서 해롭지 않은 약재를 섞어 독을 만들어 낸 일이 잦았다.

아무튼 당일은 조롱할 심산이었던 건지 제 스승에게는 딱히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고 했다. 어차피 약왕당은 그의 손에 떨어진 뒤였고, 정신을 차린 당이전의 조부가 뭐라고 하건 노망난 늙은이의 헛소리로 치부될 것이기에 그랬던 걸까.

당위룡을 독살한 것이 약왕당주 당일이었으니, 약왕당에서 주관하는 검시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다. 남편의 부고를 접한 독봉 당지혜가 혼절한 틈을 타 빠르게 장례 절차를 마무리짓고 화장시켜 아예 증거까지 인멸했다고.

잠깐 침묵하던 당연명이 물었다.

"...조부께서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셔. 당일 놈이 쓴 독 때문인데, 달포에 한 번 정도 겨우 정신을 차리시곤 해. 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이런 얘기들을 해주시더라. 난 그것도 모르고 당일의 제자가 됐고."

시종일관 담담하게 얘기하던 당이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름대로 자질을 인정받아 약왕당주의 제자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조부를 반폐인으로 만들고, 친부를 죽인 인물이었다. 모친은 그를 낳고 난 직후 세상을 떠났기에 당이전이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약왕당 사람들은 모두 당일의 편이었고.

당이전이 계속 말했다.

"놈이 조부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하나야. 영약이 품고 있는 공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독기만을 제거하는 방도를 알고자 해서지."

"영약?"

당연명은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어찌 보면 약왕당주 당일의 입장에서는 전 약왕당주나 그 손주인 당이전은 언젠가 뿌리뽑아야 할 후환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살려둔 이유가 고작 영약 가공법을 알기 위해서라니...?

"본가 약왕당에는 그야말로 온갖 약재가 즐비해. 약초꾼들이 캐온 것을 사들이기도 하고, 진료나 처방의 대가로 영초 따위를 받기도 하니까. 역사가 깊어."

"그래서?"

"사실, 장로원에서도 모르는 일인데...."

잠시 뜸을 들인 당이전이 말했다.

"약왕당 약재 창고에는, 만년화리(萬年火M)의 내단이 있어."

"뭐…?"

"그게 정말이야?"

만년화리의 내단이라는 말에 당유리와 당미려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년화리는 용암 속에서 산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의 영물이었다. 특히나 그 내단을 제대로 복용하면, 단번에 임독양맥이 타통되고 화경에 오르게 된다고.

대부분은 허무맹랑한 얘기로 치부하긴 했지만, 무림의 최상층부 인물들은 만년화리가 실존하며, 그 내단을 제대로 복용했을 시의 효과 역시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려 백 년도 전의 일이었지만, 열화태양궁(熱火大陽宮)의 소궁주가 만년화리의 내단을 복용하고 엄청난 열양지력을 얻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단번에 화경에 오른다는 것은 분명 과장이 섞인 소문이었지만, 어쨌거나 태양궁 소궁주는 엄청난 열양지력을 바탕으로 끝내 화경에 올랐고 그때가 바로 열화태양궁의 전성기였다. 지나치게 세력을 확장하다 천마신교에 의해 토벌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만년화리의 내단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당장 사천에 피바람이 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귀물이었으니까. 금자 따위로 산정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당이전이 말했다.

"영초는 좀 덜하긴 한데, 영물의 내단 같은 경우는 필연적으로 독기를 머금어. 그걸 제대로 해소하지 않고 복용하게 되면 십중팔구, 아니 백중구십구는 급사하기 마련이지. 백치가 되거나."

사실 그런 걸 멋대로 복용하고 살아남는 거 자체가 기연이야一 라고 덧붙이면서 당이전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영물의 내단과 같은 영약의 독기를 제거하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아.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대체로 독기와 함께 영약의 공능이나 약효마저 손상시키거든. 안전해지는 만큼 효과가 미약해지는 거지."

"그럼 약왕당주가 노리는 것은...?"

"놈은 만년화리의 내단을 손상 없이 온전히 복용하길 원해. 화경에 올라서려는 거지. 그리고 아마 화경에 오르면, 약왕당을 이끌고 가문을 벗어나려 할 거야. 스스로 일문의 종주가 되기 위해서."

당유리와 당미려가 경악했다. 약왕당주 당일이 설마 그런 계획을 꾸미고 있을 줄이야. 모반이나 다름없지 않나...?

당연명은 여전히 태연했다.

"경합에 참가한 건?"

"계속 약왕당에 있다간 나도 언제 당할지 모르니까. 일단 경합에 참가하면 신변 보호를 요청할 수 있기도 했고. 내가 살아있을 수 있던 건 순전히 조부가 영약의 독기를 제거하는 방도를 아무에게도 발설치 않아서잖아. 아마 조부마저 돌아가셨다면 나도 제거당했겠지."

< 56화<약왕당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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