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약왕당주(5)> >
노인은 전 약왕당주 당호열이었다.
"물러서."
당연명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리검을 꺼냈다. 금세 진녹색 검기가 일렁인다.
'예' (銳)
날카로움을 극대화하는 무학의 이치를 싣고는 그대로 창살을 향해 휘두른다. 스윽 숙 하는 절삭음과 함께 창살의 대가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당이전이 놀란 눈으로 다가온다. 관리가 되지 않아 녹이 잔득 슬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쇠로 된 것들이었는데. 단면은 아주 미끈했다. 절세보검으로 절단한 것마냥.
"할아버지! 눈을 떠 보세요. 제가 왔어요...!"
당이전이 뇌옥 안으로 들어가 노인을 붙들고 흔들어 보았지만, 그의 조부는 쉽사리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눈동자를 반절 넘게 덮고 있는 눈꺼풀이 간헐적으로 움찔하는 게 전부였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흐으으 하는 신음소리만 연신 새어나왔고.
"...놈들이 산공독까지 썼나 봐"
간단하게 진맥을 해 보더니 당이전이 말했다. 어전지 기력이 없는 게 영 이상하다 싶었다. 몸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댔고.
그의 조부 당호열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을지언정 오랜 세월 영약 등으로 다져진 심후한 내공 덕에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다. 애초에 뇌성단독이 아닌 다른 평범한 뇌독이었다면 당하는 일도 없었겠지. 뇌성단독으로 인해 이지가 흐려져 일신에 지녔던 무공을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족쇄 따위에 움직임을 구애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리 되었다는 것은 아마 늙은 육신을 버텨주던 내력이 무너진 탓일 터였다. 십중팔구는 산공독에 중독된 것이리라.
"잠시."
당연명은 다가앉아 당호열의 맥을 짚고 진기를 흘려 넣어 그 내부를 관찰했다. 생각보다 상세가 심각했다. 먼저 머리 전체를 까맣게 물들인 것처럼 느껴지는 독기가 있었다. 뇌성단독으로 인한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전신 세맥과 골수에 구석구석 치민 독기가 있었다. 그것들은 당호열의 내력을 달는 족족 흩어버리고 있었다. 산공(散功)의 과정이 무척이나 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내가 진기는 심법을 통해 강화된 의념으로 모이는 것이었으니까. 뇌성단독에 당해 이지가 흐려져 있는 당호열의 내공은 산공독에 몹시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어때? 치료할수 있겠어?"
당이전이 불안한 듯 물어온다. 그 역시 약학과 의술에 조예가 있는 만큼 조부의 상태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뇌성단독 하나만 해도 어려울 판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산공독까지 겹쳐 있었다. 대개 두 가지 이상의 독이 혼용된 경우에는, 해독법을 찾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독과 독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또한 하나를 해독하기 위해 쓴 약이 다른 독의 성질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까닭이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一
당연명은 작지만 힘있게 대답했다.
"아마도. 내 생각이 올다면 간단할 거다."
"뭐?.."
당이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간단하다고 한 건가? 누구는 십 년이 넘게 조부를 지료할 방도를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그러나 당이전은 믿기지 않는 한편으로 왠지 모를 기대가 이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다. 당연명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보여 왔으니까. 어찌면 이번에도 그럴 지도 모른다.
만약, 조부가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면....
'...그땐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 될게. 설령 목숨을 달라 해도 기꺼이 주겠어.'
당이전의 눈에 결단의 빛이 어렸다.
한편.
당연명은 서서히 당호열의 몸속으로 진기를 흘려넣었다. 대성에 이른 독요청광기一 모든 종류의 독과는 그야말로 천적이랄 수 있는 기운을 이용할 참이었다. 당가십독의 하나인 화룡호독마저 먹어치웠지 않나. 뇌독이나 산공독 따위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터였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당연명의 독요청광기는 온갖 극독을 잡아먹고 덩치를 키운, 그야말로 농축된 독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당연명의 체내에서야 별다른 이상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타인의 체내에 들어갔을 때 자짓 독기를 발산해버릴 수 있었다. 독요청광기는 먹어치운 독의 성질을 구현할 수 있었으므로. 실제로 독요청광기에 화룡호독의 심상이 더해져 만들어진 게 바로 열독강 아니던가.
'그러니 의념을 놓쳐선 안 돼.'
독기를 먹어치우되, 해방해서는 안 된다一 당연명은 그렇게 집중을 기울이며 당호열의 전신에 독요청광기를 퍼뜨렸다. 확(德)의 묘리를 이용하니 금방이었다. 퍼져 나가던 독요청광기가 당호열의 전신에 자리하고 있던 산공독을 만난다.
'먹어 치워라...!'
당연명이 의념을 싣자, 독요청광기는 단숨에 산공독의 기운을 먹어 없애기 시작했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걸 과연 해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제독, 혹은 식독이라 불러야 마땅했다.
노인의 혈색이 점차 돌아오기 시작한다. 몸의 떨림이 멈추고, 가느다란 신음이 멎는다. 산공독의 독기가 사라지자 점차 내력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아주 위험한 상황은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당연명은 방심하지 않았다.
__완전히 없애야 후유증이 남지 않겠지.'
산공독이 세맥과 골수 깊숙이 박혀 있었음을 안다. 당호열은 친우의 조부였다. 또한 앞으로 조력을 기대할 만한 인물이었으므로 당연명은 세심하게 전신 세맥을 할아가며 독기를 모조리 제거해 갔다. 와중에 오랜 세월 쌓인 탁기 같은 것까지 독요청광기를 이용해 먹어 치웠다. 그냥 미약한 독기라도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앤 것이다.
당호열의 전신 세맥은 마지 갓 태어난 아기의 그것처럼 깨끗해져만 갔다. 일종의 벌모세수와도 같은 효과였다. 그걸 느끼며 당연명은 생각했다. 차후에 모친에게도 해드려야겠다고.
그렇게 목 아래 모든 독기가 제거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당이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조부의 상세가 호전되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혹여나 치료에 방해될까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경악이 새겨지고 있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독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 봐서는 그저 진기를 흘려보낸 게 다인 것 같은데. 설마하니 진기 자체에 해독의 공능이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당연명이 익힌 내공심법이 가전무공 중에서도 기본이랄 수 있는 독요청광심법이라는 것은 경합이 진행되는 동안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어쩌면....'
당이전은 이제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조부가 완치될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제 남은 것은 머리, 뇌성단독이 침습한 구역이다.
당연명은 노인의 몸 전체로 퍼뜨렸던 독요청광기를 모두 회수해 머리 쪽으로 모았다.
원래라면 뇌독에 이 정도로 침식된 이를 다시 정상으로 만들기란 극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 비유하자면 색이 바랜 옷감을 다시금 새 것처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독요청광기를 부리는 당연명의 입장에서는 중독된 지 얼마나 오래되었고, 또 얼마나 침식이 깊은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독기만을 걷어 내 먹어 치울 뿐.
뇌독류 독인 뇌성단독의 독기 자체는 원래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살상보다는 상대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백치로 만드는 게 목적인 독이었으니까.
그 말인즉슨, 독요청광기에게는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뜻이다. 당연명이 독요청광기에 의념을 실었다. 머리에 깃든 독기를 남김없이 먹어 치워라...!
고작 한두 호흡이 나 지 났을까.
당연명은 당호열에게서 손을 떼고 일어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는 듯이.
직후.
한때 약왕당주라 불렸던 노인이 형형한 안광을 터뜨리며 벌떡 신형을 일으켰다.
****
일각 후.
"참으로 인연이 묘하구나...."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격하고 제대로 정신을 차린 당호열은 깊은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그동안 드문드문 정신이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결코 맑다고는 할 수 없었고,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마지막 남은 혈육이자 손주인 당이전에게 얘기를 전해주기도 빠듯한 시간들이었다.
솔직히 약왕당의 당주인 그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당일 놈의 뇌성단독에 당한 후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손을 쓰기 힘들 정도로 중독이 진행된 뒤였으니까.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 여겼거늘....
당호열은 잠시 눈을 감고 격의 없이 지냈던 학사풍의 잘생긴 청년을 추억했다.
당위룡一 무공은 익히지 못했지만 기개가 있는 사내였다. 처를 욕하는 무뢰배들을 두고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성미를 아는 당호열은 확신했다. 그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당위룡의 아들이 어느덧 자라 그를 구했다. 하나뿐인 손주와는 친구라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복마전이나
다름없었을 경합에서 승리하여 소가주의 지위를 쟁취해냈다는 것이다. 과연 독봉과 당위룡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뜬 당호열이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네. 소가주. 이 늙은이의 생을 되찾아주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제 부친을 생각해서라도."
"게다가 단순히 해독만 해준 것이 아님을 아네. 오히려 십 년 전보다 몸이 월씬 가벼워진 듯하이. 분명 소가주가 손을 써준 것이겠지."
당호열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소림의 고승들에게서 벌모세수라도 받은 것마냥 온몸이 가벼워지고 깨끗해졌다.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진기의 유동이 이토록 기꺼웠던 것이 언제였던가.
"이 늙은이가 필요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맹세함세. 나 당호열은, 소가주가 요구하는 일이라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라해도 그러겠네. 어차피 덕분에 얻은 목숨이니 결코 아깝지 않네. 이전이 너도 소가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할 것이다."
당호열은 신의를 중시하는 듯했다. 당연명은 그를 보며 얼굴도 모르는 부친의 성품을 짐작했다. 죽이 잘 맞은 데는 이유가 있을 터.
"일단은 밖으로 나가시지요. 그새 사람들이 꽤나 몰려온 듯합니다. 어쪄면 어르신께 반가운 얼굴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당연명의 말에 당호열과 당이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지하 뇌옥의 불쾌한 습기와 퀴퀴한 냄새가 다시 거슬렸던 것이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뇌옥의 통로를 다시 거슬러 오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에서의 소란이 들렸다. 꽤 많은 이들의 목소리다. 대충 약왕당이 진입하려는 것을 봉위대가 막아서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당연명 일행이 지하 뇌옥 입구를 넘어 지상에 내려서자.
맞은편 약왕당 인물들 사이로 경악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들의 옛 당주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까닭이었다. 겉모습이야 여전히 추레한 늙은이의 그것이었지만, 흐르는 기질이 완전히 달랐다. 강건한 기파가 전신에서 움트고 있다.
대체 어떻게...?
당호열의 상세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은 누구보다 직접 손을 쓴 약왕당 인물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뇌성단독의 독기에 침범당해 이제 명료한 의식을 기대하기 힘들었고, 육신 또한 구석구석 깊게 뿌리내린 산공독에 의해 내공 한 줌 없는 필부의 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완지되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소가주 당연명이 뇌옥에 들어가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걸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약왕당 인물들 틈에서 굳은 표정으로 나서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소가주를 뵙습니다. 저는 약왕당주를 맡고 있는 당일입니다."
"당연명 이다."
"기별을 주셨다면 마땅히 환대할 준비를 해두었을 텐데요. 물론 당주인 제가 찾아 뵙는 것이 도리에 맞긴 합니다만, 본당의 일이 바빠 그러지 못했음을 해량하여 주시기를...."
당일은 말을 쏟아내며 머리를 굴렸다. 당호열이 어떻게 완치되었는가는 지금에 있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뇌옥으로 향하기 전 봉위대 무사들이 약왕당 사람을 가차없이 죽인 것에서 이미 당연명의 의중이 짐작됐다.
'분명 제 아비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무력으로 충돌할 여지를 완전히 없애야 했다. 이미 장로 중 둘이 소가주의 손에 죽었다지. 명분과 무력에 모두 밀려 장로원이 해체당하다시피 한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다. 직속 무력대가 무용했다고. 그러니 약왕당이라고 해봐야 별 수 있을 리가 없다.
대항해선 안 된다.
당일은 빠르게 판단했다. 이쪽이 그나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명분 쪽이라고. 당위룡의 일은 어차피 심증만이 있을 뿐이었다. 당호열이 뭐라 하건 잡아 뗄 생각이었다. 뇌독에 당해 환각을 본 모양이라고. 그를 뇌옥에 가둬두고 산공독을 먹인 것 역시 증세가 심해져 어쩔 수 없이 내린 조치라고 할 참이었다.
또한 당일은 믿는 바가 있었다. 가문 내에서 약왕당이 공헌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 그들이 벌어들이는 재물이 없다면 당장 가문이 휘청이기 시작할 터였다. 전 약왕당주 당호열이 정신을 차렸다 하나 어차피 지금 약왕당을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인물들은 당일과 한 배를 탄 이들이었다. 당호열이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약왕당을 다 죽여 없앨 것이 아니라면 소가주인 당연명으로서도 명분 없이 약왕당을 핍박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一
여기까지가 당일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번만 잘 넘기면 된다.'
어떻게든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 어차피 조만간에 가문을 떠나 흑사련 휘하로 들어가려 마음 먹었었지 않나. 시기를 조금 앞당기면 될 일이다.
그러나.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당연명이 말했다.
"나눌 말씀이 있습니까? 그래도 마지막인데."
당일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당호열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더 이상 당일을 비롯한 약왕당 인물들에게 일말의 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괜히 말을 섞어 핏대를 올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뒤로 물러나며 조용히 말한다. 소가주의 뜻대로 처분하시길.
"원진. 바깥의 봉위대를 불러들여라."
"예. 소가주."
당원진은 곧장 어떤 피리 같은 것을 꺼내 힘차게 불었다. 삐이이이 하는 높은 소리가 길게 퍼졌다. 봉위대의 집합령이다.
"잠깐...! 소가주, 무슨 연유로 본당을 방문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필시 무언가 오해가...."
무언가 흘러가는 낌새가 심상잖았기에, 당일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어째 당연명에게는 그와 대화를 나눌 의향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오해라."
당연명이 같잖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무언가 변명이라도 준비한 모양인데. 단념해라."
"예…? 그게 무슨."
"사람이 아닌 것들을 벌하는데 굳이 명분이나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미친!"
당일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방금의 말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소가주 당연명은, 그들을 살려 줄 생각이 없다...!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약왕당의 가문 내 입지를 모르는 건가? 그들이 없으면 당장 어디서 재물을 충당하려는 것이지...?
그 사이에 집합령을 들은 봉위대가 모여 들었다. 하나같이 움직임이 은밀하기 짝이 없다. 약왕당의 인물들로는 상대하기 힘든 고수들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당일은 수하들 틈에서 등을 돌리고 도주하려 했다. 만년화리의 내단이 아른거리긴 했지만 그보다는 목숨이 우선이지 않나.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수하들에게도 흩어져 도망치라 외치려 했다.
그러나.
핏.
작은 소리와 함께 당일은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그의 뒷목에는 가느다란 우모침이 하나 박혀있었다.
"단장열지독이라는 거다. 여기 당이전이 만든 것이지."
한 방울만으로도 오장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의식을 잃게 된다一 당연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일은 컥 하는 신음을 토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다 이내 눈을 까뒤집고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숨결이 미약한 것이 곧 끊어질 듯하다.
약왕당 인물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단 한 수에 그들의 수장이 쓰러져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다. 대항 따윈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저 선처를 바랄 뿐.
하지만 당연명은 냉혹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약왕당을 지운다. 모두 죽여라."
"존명."
팔십 봉위대 무사들이 한 목소리로 간결히 답한 후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약왕당 내에 비명과 혈향이 난무했다.
< 59화<약왕당주(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