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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61화 (61/134)

< 61하<진인사대천명> >

당지혜가 어떻게 당연명의 기감을 속이고 성취를 숨길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가주 전용 무학인 폐맥은추1(閉版隱就) 덕분이었다.

보통의 무림인들이 성취를 숨기는 방법은 대동소이하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들은 대개 기세를 자연스럽게 갈무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 반박귀진이라 부를 만큼 완벽하게 갈무리 하진 못하더라도 이미 그 자체만으로 성취를 어느 정도 감주는 효과가 있었다.

화경에 이른 당연명의 경우에는 당연히 반박귀진- 무공을 아예 익히지 않은 범인으로 보일 만큼 기세를 완전히 갈무리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여기서 일부러 적정 수준의 기세를 드러내는 식으로 겉으로 보이는 성취를 조절할 수 있었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세차게 흐르는 급류를 인위적으로 통제하여 개울 정도로 바꿔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필요할 땐 다시 급류로 전환하고 말이다.

하지만 화경에 이른 무인의 기감은 극도로 예민해서, 갈무리된 기운까지도 느낄 수 있었으니. 그래서 보통의 무인들은 화경의 고수앞에서 성취를 숨길 수 없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찬가지로 화경에 이른 고수끼리도 서로를 알아볼 수밖에 없다. 전신 가득 층층이 쌓아 올린 기운이 느껴질 테니까.

하지만 폐맥은취는 달랐다.

폐맥(閉版)- 맥을 닫아서,

은취(隱就)- 성취를 숨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건 사실 금제에 가까운 수법이었다. 단순히 스스로의 성취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봉인하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특정 경맥에다 기운을 가두고, 닫아 잠근다. 물론 운기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 경로 중간의 경맥을 쓸 순 없었다. 그렇게 하면 기운이 갈무리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기밀이 되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감을 지니고 있다 해도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명이 모친의 성취를 제대로 짐작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한편.

폐맥은취를 풀고 만년화리의 내단을 삼킨 당지혜는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몸속에 떨어진 내단이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터져 나온 까닭이다. 내단이 품고 있던 영성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당지혜는 본디 소가주였다. 그건 곧 차기 가주로서 약왕당의 천심환을 비롯한 여러 영약을 두루 복용해본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몸 속 가득 퍼진 정순한 기운이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심법을 운용하여 기운을 그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용암 속에서 헤엄치며 만년도 너끈히 살아간다는 영물의 내단은 몹시 정순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불문이나 도문의 호흡법으로 아주 오랜 세월 정제한 기운에 버금갈 정도다. 그냥 심법 경로대로 끌어다 단전에 넣으면 그대로 내공이 됐다...!

실로 엄청난 공능. 매 순간순간이 기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단의 기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지혜의 전신 주요 경맥과 세맥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건 일종의 진기 비축이라 봐야 했다. 내공의 소모가 극에 달했을 때 축적된 진기가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흔히 선천진기(先天眞氣)라 부르는 기운이 있다. 진원지기라고도 부르는 이 기운은, 생명을 지닌 만물이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순정한 기운을 이르는 것이다. 이 선천지기는 생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운이었기에, 줄어들거나 손상되면 육신에 엄청난 타격이 간다. 회복은 거의 불가능했다.

때때로 무림인들은 내공이 바닥난 후에 최후의 수단으로 선천지기를 동원하기도 한다. 한 줌의 내력이 절실해서일 수도 있고, 상대가 정말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정도의 원수여서일 수도 있다.

어쨌건 당지혜는 그 선천지기의 사용에 앞서 한 번의 기히가 더 생긴 셈이었다. 몸 전체가 새로운 단전으로 화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당지혜의 얼굴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는데, 얼굴뿐만이 아니라 목이나 손등 같은 부위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원래도 하얄던 피부가 거의 투명해지다시피 했고, 나이를 먹으면서 깊어졌던 주름은 서서히 옅어져가고, 살결에는 생기와 탄력이 더해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 순간 당지혜는 분명 세월을 역행하고 젊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명약관화했다.

반로환동...!

만년화리의 내단을 복용하고서 전신에 넘쳐나는 기운이 경맥과 세맥에 차곡차곡 쌓이다 못해 살갗까지 영향을 끼친 덕분이었다. 이 역시 기연이랄 수 있었다. 반로환동 역시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반로환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의 당지혜처럼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단번에 엄청난 기운을 몸속에 퍼뜨려야 했고, 그게 또 몸 전체에 아주 농밀하게 쌓여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닌 무위가 '적당한' 수준이어야 했다. 지나치게 높은 경지에 이른 자들은 희귀한 영약이나 영물의 내단을 복용하더라도 거기서 나온 막대한 기운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기에 도리어 반로환동을 이루지 못했다. 그저 노화를 더디게 할 뿐.

하지만 당지혜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오히려 점차 초조함으로 얼룩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없구나.'

잠깐 사이에 꽤 많은 내공을 얻을 수 있었지만, 당지혜는 알 수 있었다. 만년화리의 내단에서 비롯된 기운 전체에 비하면 그녀가 얻은 것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내단의 기운은 계속해서 확장하려 했다. 뻗어나갈 수 있는 곳으로 뻗고, 스며들 수 있는 곳으로 녹아들려 한다. 이건 내단이 품고 있던 영성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에 의한 것이었다. 마땅한 이치였다.

당지혜는 생각했다. 만년화리 내단의 기운이 지금이야 그녀의 몸 안에서 시작되어 확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마침내 전신 경맥과 세맥 까지 가득 채워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 없다면? 스며들 수 없다면?

당연히 그녀의 몸을 벗어나려 할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내단의 기운이, 영성이 대기 중으로 흩어진다면 그걸로 끝이다.

기껏 아들이 건넨 무가지보(無價之W)를, 헛되이 날려버리는 꼴이 되겠지. 당지혜가 초조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등 뒤 명문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집중을 위해 눈을 감고 있던 당지혜가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손을 댄 것이 그녀의 아들임을 짐작한 까닭이다.

'조급해하시는군.'

당연명은 한눈에 모친의 상태를 꿰뚫어봤다. 내단의 기운을 착실하게 내공화하던 처음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흔들린다. 평정심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짐작은 갔다- 이 정도로 커다란 기운이 허망하게 흩어질까 두려우신 거겠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 무림사에서, 절세 영약이나 아주 희귀한 영물의 내단을 얻어 복용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귀물로 천하에 손꼽히는 고수가 되었다는 얘기는 극히 적지 않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영약 따위를 복용한 후 몸속에 자리한 어마어마한 기운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까닭일 터다. 지금의 당지혜처럼.

당연명은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랐던 대로 모친이 반로환등을 이루자 비로소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연명은 장심을 통해 독요청광기를 흘려보냈다. 당지혜의 명문혈을 거쳐 몸속으로 들어간 독요청광기는 금세 사지백해로 뻗어나가려는 강력한 영성과 마주했다. 아니, 영성은 사지백해로 뻗어나가다 못해 이제 체외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영성은 무위자연으로 귀속되고 말 것이다.

'아직은 안 돼.'

사실 당연명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운이 따른다면 그의 모친은 여기서 한 차례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당연명은 시도해볼 참이었고.

만년화리의 내단이 품고 있던 영성은 그 자체로 순정한 기운이다. 심법의 운기 경로에 따라 이끌면 별다른 정제를 거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가진기로 화한다. 당지혜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막대한 기운을 조금씩 떼어 운기를 통해 내공화한다-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분명 안정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주어진 시간 내에 내단의 기운을 모두 내공화하는 것은 아주 요원한 일이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결국, 변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성은, 그 자체로 순정한 기운이다. 그렇다면, 굳이 운기 경로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 깨달음은 작은 단초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이미 몰아, 삼매에 빠진 당지혜는 음성을 들을 겨를이 없기에, 당연명은 몸소 시범을 보이고자 했다. 어떻게 이 거대한 기운을 다룰 수 있는지. 그녀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은 똑똑히 관조할 테니까.

당연명은 영성을 조금 떼어냈다. 많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모친이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이렇게 하면 됩니다. 어머니.'

달길 바라면서, 당연명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내 떼어낸 내단의 기운, 소량의 영성과 한 줄기 독요청광기가 얽힌다. 섞이지는 않았다. 둘은 분명 서로 다른 기운이니까. 순정한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당연명은 독요청광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운기 경로는 물론이고 공능과 특징, 성질, 핵심을 이루는 심상....

그리고 영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순정한 기운이다. 간단한 운기 경로를 거치는 것만으로 내공화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연명은 그 운기 경로를 생략하고자 했다.

그런 과정이 없어도, 영성은 독요청광기가 될 수 있다.

'화(化)해라.'

의념을 실었다. 얽힌 독요청광기와 같은 기운이 되어라-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성과 얽혀 있던 독요청광기가, 더 큰 독요청광기가 된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여기에 당연명이 운기를 통해 영성을 변화시킬 여지는 없었다. 일이 벌어진 곳은 당연명이 아닌 당지혜의 체내였으니까.

단순히 의념만으로 기운의 성질을 뒤바꾼 것이다.

• • • •

갑자기 놀란 표정과 함께 당지혜의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당연명은 두 번 더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영성을 떼어내고, 의념만으로 독요청광기로 변화시키고.

영성을 떼어내고, 의념만으로 독요청광기로 변화시키고.

어차피 여기서 당지혜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만년화리 내단의 기운, 영성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당연명은 그녀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반복할 셈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를 시도하려 할 때.

당지혜의 단전이 움직였다.

아니, 그렇게 느꼈을 뿐 실제로 움직인 것은 그녀가 여태 쌓아온 내공의 총집합이었다.

'됐네.'

당연명은 작은 안도와 함께 독요청광기를 회수했다.

모친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모친인 독봉에게 달렸다.

물론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시도가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기를 의념으로 다룬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내단의 기운을 모두 흡수할 수도, 혹은 모두 날려먹을 수도 있다.

당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조용히 모친을 기다렸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남은 것은 모친이 스스로 해내야 할 몫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두두두둑ㅡ!

뼈 부러지는 소리가 독봉의 몸에서 들려왔다.

당연명은 조용히 웃으며 방을 빠져 나왔다.

< 61하<진인사대천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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