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63화 (63/134)

< 63화<무영객(2)> >

무영객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사천의 어느 집성촌에서 태어났는데, 그곳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흔지 않은 당씨 성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막 열 살이 되던 해에, 마을에 알 수 없는 역병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죽어나갔다.

흉년도 아닌데, 피골이 상접한 채 말라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끔찍한 참상이었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은 약을 써볼 틈도 없이 죽어버렸다. 몸이 덜 여문 까닭이었을까.

와중에 홀로 멀쩡한 소년이 있었다.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왜 그만 멀쩡한 것일까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민초들은 미신에 약하다. 특히나 천재지변과도 같은 요인으로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릴 땐 더더욱 그렇다. 흉년이나 기근이 닥쳤을 때 혹세무민하는 사교의 무리가 득세하는 이유가 그래서이지 않나.

사람들은 소년을 불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절정에 달한 것은 소년의 부모가 죽고 나서다. 역병에 걸린 부모의 숨결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접했는데도 그만은 멀쩡했으니까.

'역귀(疫鬼)의 아이임에 틀림없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곧 진실처럼 여겨졌다. 소년이 역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역귀의 사랑을 받는 때문이고, 마을에 역귀가 찾아온 것 역시 소년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역귀의 아이를 마을에서 쫒아내야 한다一 죽이면 되레 역귀의 분노를 살 수 있으니까. 무지몽매한 촌민들은 애꿎은 소년을 욕하고 저주했고, 그가 살던 집을 아예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정화를 위한 작업이라면서.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출생부터 지금껏 자라는 모습을 모두 지켜봐오지 않았던가. 소년의 부모는 역귀가 아니라 그들처럼 역병에 휩쓸려 죽은, 평범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역병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잃은 그들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했다.

소년은 역귀의 아이여야만 했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서는 비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집을 잃은 소년은 마을 어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관제묘에 숨어 살았다.

역귀를 쫒기 위해 도교 원신천존을 비롯한 온갖 잡신들에게 바치는 제사가 잦았다. 관우의 사당에도 이런저런 음식들이 바쳐졌다.

소년은 그것들을 흠쳐 먹으며 겨우 연명했다.

소년이 그렇게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마을에 도는 역병은 멈추지 않았다. 효험이 없는 제사는 결국 중단됐고, 소년은 배를 주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하지만 굶주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사흘 째 되던 날. 얼마 남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마저 모두 피를 토하며 죽은 것이다. 소년은 그를 역병의 아이라 매도하던 사람들의 집을 뒤져 음식을 해먹었다.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오니 생전 처음 보는 사내들이 잔득 있었다. 그들은 죽은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확인하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는데, 소년은 왠지 마을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소행인지 알 것 같았다.

그들 중 혼자 유독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사내가 소년에게 다가왔다.

'하나 건졌군. 이런 시골 촌구석에서 독인의 자질을 지닌 녀석을 찾을 줄이야.'

알 수 없는 얘기와 함께 사내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듯 손을 가져다 댔고, 소년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소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살독월영문(殺毒月影門)이라 했다. 무림 최악의 살수 집단이라고.

소년은 그곳에서 강제로 사람 죽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기척 없이 걷는 법, 비도나 수리검 따위의 암기 투척술, 사람의 어디를 어떻게 그어야 단번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와 다양한 종류의 용독술까지....

배워 익히지 않으면 죽는다一

살독월영문은 그런 곳이었다. 천하 각지의 재능 있는 아이들을 강제로 데려와 무공을 가르치고 살수로 키운다. 아이들은 약관이 될 때까지 살수로서의 훈련을 받고, 비로소 청부를 시작하는데 이때 독단을 하나 먹는다.

독단의 용도는 뻔했다. 청부를 받고 살독월영문을 떠난 살수들이 행여나 도망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일정 시간마다 해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독단을 먹은 이들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울부짖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었다.

제 스스로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살수들.

살독월영문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었다. 청부를 실패하거나, 독단 때문에 죽거나.

그런데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살독월영문은 문주 아래 오대 살수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문주야 대대로 이어져왔기에 독단 따위를 복용하는 일은 없었고, 살수중에서 가장 뛰어난 다섯이 바로 오대 살수였는데 이 오대 살수들은 문주로부터 독단에 대한 완전한 해약을 지급받고, 문파의 장로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살행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엄청난 부귀와 권세가 뒤따랐다.

돈, 여자, 무공... 원한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오대 살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고 어려운 청부들을 해결해 공적을 인정받거나, 기존 오대 살수 중 하나를 살해하여 그 자리를 빼앗는 방법밖에 없었다.

소년은 그 사실을 안 뒤부터 목표를 세웠다. 언젠가 기필코 오대 살수가 되고 말겠다고.

재물이나 권세 따위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독단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다음, 이 빌어먹을 살문을 완전히 없애버릴 참이었다.

소박하지만 행복했던 고향 마을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살독월영문이 뿌린 독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역병 때문이 아니라一

소년은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피나는 수련을 거쳤고, 장성해서는 살행을 나서 경험을 쌓았다. 온갖 무맥의 사람들을 만났다. 소년, 아니 이제 청년이 된 그는 몇번이고 죽을 위기를 넘겨야만 했다. 구파나 유명한 무가의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죄가 있건 없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이 따른다...!

그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상대를 노렸다. 암기와 독에 대한 이해가 나날이 깊어졌다. 급기야는 살독월영문에서 배운 무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무학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와중에 또 깨달음을 얻어 화경에 이르렀다. 생사를 걸고 싸운 경험이 수도 없이 누적되어 달을 수 있었던 경지였다.

그때 만든 것이 바로 만천화우다. 암기의 폭풍우.

절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회자되는 고수들도 만천화우 앞에서는 전신이 난자당해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무영객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살수로 통하면서.

발전이 있었던 것은 암기술뿐만이 아니었다. 무영객은 독공에 있어서도 엄청난 성취를 이룩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때 살독월영문의 비전으로 만든 독단을 스스로 해독해버리고 만다. 완전히 제약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 뒤의 행보는 뻔했다.

무영객은 살독월영문의 오대 살수를 차례로 죽여 없앴다. 만천화우를 버텨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중에 화경에 이른 자가 셋이나 있었음에도.

살독월영문의 문주도 화경에 이른 강자였지만 무영객을 당해내지 못했다. 문주는 죽는 순간까지 그의 패배를 믿지 못했다. 작은 마을에서 주워온 무지렁이 꼬맹이가 대호가 되어 그의 목줄을 끊은 셈이었으니.

'살려다오. 내가 이룬 모든 것을 네게 주마.'

문주는 마지막 순간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제안했지만, 무영객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랜 살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후환 따위를 절대 남겨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문주의 명줄을 끊은 무영객은, 굳이 다른 살수들에게는 손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독단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 안쓰럽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그간 다른 이들을 죽여서 생을 이어오지 않았나.

그렇게 살독월영문은 멸문했다.

그리고 그 소식이 퍼지자, 무림은 발칵 뒤집혔다.

살독월영문은 오랜 세월 존속해온 살문으로서, 사도 방파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어찌나 세력이 강력한지, 사람의목숨을 돈으로 사고 파는 만행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도 구파나 오대세가 중 어느 곳에서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런 곳이 별다른 세력의 개입도 없이 지리멸렬, 아니 완전히 멸문해버렸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서야 정말 운좋게, 혹은 독단을 먹지 않아 살아남은 몇몇 살독월영문 출신 인물들에 의해 무영객의 소행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뿐이다.

천하는 경악했고, 무영객의 행적을 쫒으려는 이들이 많았지만 기이하게도 그 뒤로 무영객의 행적은 묘연했다.

그리고 얼마나 세월이 홀렸을까.

사람들의 뇌리에서 무영객이라는 이름이 희미해질 쯤, 웬 부유한 차림의 부부가 사천 성도에 장원을 세웠다. 하인이나 시비로 보이는 이들 수십을 이끌고서.

사천당가(四川唐家)

담백한 이름이었다. 다만 요상한 것은 그 가문에 속한 이들이 모두 집성촌마냥 당씨 성을 쓴다는 것이었다. 혈육 관계는 아닌 것 같았는데,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또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혼인을 했을 때, 남편이건 부인이건 모두 당가 내에서 살아야 했고, 당씨 성을 써야 했다.

처음엔 이상하게 여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천의 사람들은 당가의 사람들은 원래 그랬다며 납득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가는 성도를 비롯한 사천 이곳저곳에서 여러 사업을 하며 세를 키웠는데, 무력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일반적인 무가와 달리 암기와 독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정도 무가들이 비난하며 당가를 사파로 규정지 었지만, 오히려 당가는 그런 그들을 무력으로 찍어 누르며 스스로 정파를 표방했다.

산속 도문과 불문들一 구파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 닌 가문이 정도를 걷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비록 독과 암기를 사용한다지만 중요한 것은 무(武)가 아니라

협 (快)이었으므로.

여러 세력들의 인정 속에,

사천당가는 오대세가一 그 중에서도 사천제일가로 불리게 되었다.

****

"그렇게 된 거군요."

당연명은 모친으로부터 당가의 시조랄 수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경합에서 가전 무학을 익힐 때도 그런 생각이 들긴 했더랬다. 어찌면 가문의 조상 중에 살수 무학을 익힌 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신법 암영이나 경공 추월광행 같은 것들을 보면 대체로 몸놀림 자체가 은밀하기 짝이 없었다. 암기 무학도 급습에 특화된 것이 많았고.

당지혜가 말했다.

"만천화우를 포함해 가주 전용으로 전해지는 무학들은, 모두가 무영객 그분의 독문무공이란다. 단지 심법 하나만큼은 가주가 아닌 이들에게도 허락됐는데, 그게 바로 네가 익힌 독요청광심법이고."

"...그랬군요."

당연명은 이제야 원가 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요청광심법을 대성하고, 그 공능을 체감하자마자 의문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만한 무학이 왜 가전 심법 중에서도 기본에 불과할까. 아마도 무영객은 다른 무학들보다 독요청광심 법을 중시한 것 같았다. 기본 심법이라는 것은 그만큼 익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니 적어도 실전될 위험은 크게 줄어들 테니까.

폐맥은취가 가주 전용 무학인 것도 이해가 갔다. 무영객은 살수 출신이었으니, 기척이나 성취를 숨겨 방심을 유도하는 것 또한 경지에 이르렀을 터였다. 그의 독문 무공들이 가주 전용 무학이 되었다고 했으니 폐맥은취 같은 수법이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어미가 폐맥은취를 익히라 하는 것은 단순히 성취를 감추기 위함만은 아니란다."

당지혜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그럼 무언가 또 다른 공능이 있다는 것일까...?

< 63화<무영객(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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