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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65화 (65/134)

< 65화<당미려의 사정> >

경악 속에서 사천당가의 가주 취임식이 끝났다.

당가만의 행사였기에 금방 끝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사도천하가 된 사천에서, 홀로 정도 무문을 표방하고 있는 당가 아닌가. 굳이 사천의 다른 가문이나 방파와 교분을 나누지도 않았기에 독봉의 가주 취임을 알리지도, 그들을 취임식에 초대하지도 않았다.

성도의 몇몇 유력인사들이 소식을 듣고 형식적인 축하사절을 보내온 게 다였다.

어쨌거나 독봉 당지혜는 가주의 자리에 올랐고,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가문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一당가십독의 운용과 관리를 소가주에게 맡긴다. 그리고 가주 전용 무학을 익힐 자격을 부여할 것인즉. 장로들은 마땅히 전대로부터 이어진 요결들을 소가주에게 전수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소가주 당연명의 계승권을 공고히 다져놓는 작업이었다. 물론 정통성이야 입증할 필요도 없었다. 전대 가주로부터 이어지는 직계 혈통이었으니.

가보인 당가십독에 대한 권한과 가주 전용 무학을 익힐 자격을 한꺼번에 주었다. 장로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외손녀를 위해 당가십독을 사적으로 유용한 삼장로 당석형의 일이 있었는데, 어찌 당가십독에 대한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

가주 전용 무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연명이 죽여버린 탓이긴 했지만, 두 장로의 죽음으로 그들이 알고 있던 만천화우에 대한 핵심 요결이 일부나마 불완전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대에 온전한 요결을 전하는 것이 장로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그걸 핑계로 마광천과의 혈전에서도 몸을 뺄 수 있었던 그들 아닌가.

만약 여기서 가주인 당지혜가 책임을 물고 늘어진다면 장로들로서는 처벌을 면할 도리가 없다. 명분과 무력에서 모두 밀리게 되는 까닭이다. 소가주 당연명의 무위도 놀라웠는데, 독봉 역시 어느새 그들의 기감으로 가늠할 수 없는 고수가 되어 있었다. 직속 무력대를 동원해도 세가 밀릴 것이 뻔하니 장로들로서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두고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라 하는 가솔들의 수군거림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그들의 시대는 저물었음을.

一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약왕당을 완전히 없애고, 새롭게 의각을 신설한다. 의각주로는 당호열, 부각주로는 당이전을 임명하며, 의각에 대한 인선은 온전히 의각주에게 일임한다.

당지혜가 두 번째로 한 일은 약왕당의 잔재를 완전히 지우고 낭군이었던 당위룡과 깊은 교분을 나눴다는 당호열을 복권시키는 것이었다. 당일에게 당해 오래도록 모진 고초를 겪었다는 것을 알고는 천심환을 내리기도 했다. 당연명이 임시 조장이 되었을 때 천심환을 받지 않았기에 마침 재고가 있었다.

또한 부각주로 당연명과 친분이 있는 당이전을 임명함으로써 언젠가 당연명이 가주가 되었을 때 의각이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도록 해두었다. 물론 검증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가주의 자리에서 쫒겨나 본 경험이 있던 까닭인지, 당지혜는 당연명의 편을 만들고 혹시라도 있을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는 데 몹시 공을 들였다.

특히 총관부一 새롭게 총관이 된 당규현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할 정도였다. 당연명이 단행한 인사라는 것도 이유였지만, 당규현이 장로들의 뒷주머니로 새어나가던 자금줄을 모조리 색출하여 회수한 것을 공적으로 인정한 때문이기도 했다. 가문 재원의 구 할을 차지하던 약왕당이 무너진 상황에서 단비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동시에 장로원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 셈이기도 했으니 없던 신임도 절로 생겨날 판이었다.

다음으로 당지혜는 독왕대주 당지혁을 경질하는 등 당연명과 직간접적으로 원한이 있을 만한 인물들을 정리했다. 대장로 당석중, 삼장로 당석형의 혈육이나 가까운 관계에 있던 이들을 요직에서 배제하고 가문 외부의 일을 담당케 만들었다. 사도천하가 된 사천에서 가문 외부의 일이라봐야 성도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쉽게 말해 한직을 전전케 한 것이다. 약왕당과 관련된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엄한 일처리라 할 만하다.

'여장부셨다더니'

당연명은 당지혜가 빠르게 가문을 장악하고, 또 안정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모친인 독봉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봉위대 무사들에 의하면 수많은 사내들을 누르고 가문의 제일가는 후기지수로 인정받을 정도였다고. 여장부, 기개, 패기 따위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그 시절 독봉을 형언하기 위해 따라붙었다.

사실 당연명으로서는 그리 와달지 않는 말이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온화하기만 한 어머니였으니까. 그러나 이번에 가문의 일을 진두 지휘하는 것을 지켜보니 과연 봉위대의 말이 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주의 위엄이 순식간에 세워졌지 않나.

'내부 정리는 이걸로 됐고.'

앞으로도 가문의 대소사는 모친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본래 전생을 각성한 후 당연명의 목표는 그저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모친과 함께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관심사였지만 그러기 위해 소가주의 위에 오르고 보니 새로운 몇몇이 그의 삶에 들어왔다. 당이전, 당유리, 당미려.... 그리고 그들에게서 파생된 새로운 인연 당호열, 당규현 등이 있었다.

당연명은 직감했다. 아, 이렇듯 지킬 것이, 소중한 것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게 진정 평범한 삶이구나一

앞으로도 나는, 더욱 더 강해져야겠구나. 이 삶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스스로 소가주의 위에 올랐을 때 가솔들에게 천명하지 않았던가. 안심하고 사천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그걸 소명으로 여기겠노라고.

허언이 아니다一 그러기 위해선 사도천하가 된 이 사천 땅을 조금씩 바꿔나가야겠지.

물론 쉬운 길이 있음을 안다.

검을 들면 되니까.

게다가 환골탈태를 거쳐 더없이 강성해진 육신이 있다. 당가의 독요청광기를 버리고 다시금 패력심법으로 호흡하며 검귀의 무학을 익히면, 금세 검신의 무위를 회복할 수 있을 터다. 그리 되면 설령 흑사련주나 마광천주가 상대라 해도, 일대일로는 절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이번 생은 어디까지나 당연명으로 살아가는 삶인 까닭이다. 검신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명은 그리 생각했다. 당가의 사내답게, 독과 암기로 강해지자.

물론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검을 꺼내들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마냥 편한 길을 좇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일단은 당가십독부터.'

더욱 강해지기 위한 첫걸음은 역시 독이었다. 폐맥은취를 통해 호신강기 용린을 이루려면 어마어마한 극독이 필요했고, 마침 천하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독一 당가십독이 그의 관리 하에 놓였다. 이보다 더 쉽고 확실하게 힘을 쌓을 수 있는 수단도 드물었다.

그렇다고 삼장로 당석형처럼 사적으로 유용할 셈은 아니었다. 몇 가지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겠지만 가주인 모친이 그의 편이다.

정당한 과정을 거쳐 당가십독을 얻는 게 마땅했다.

가보라 한들 아들의 성취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내어주시겠지. 만년화리의 내단까지 드셨는데一 라고 당연명이 생각할 때였다.

봉위대 무사 하나가 문 건너편에서 말했다.

"소가주. 손님이 왔습니다."

"미려? 들여보내."

당연명은 기감으로 익숙한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곧장 들라했다. 다름아닌 당미려인 듯했기에.

아니나 다를까.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명아...!"

"무슨 일인데. 진정하고 얘기해."

다가서는 당미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급한 기색이 있었는데 울먹거리느라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려의 얘기를 듣지 못했었지/

당연명은 며질 전을 떠올렸다. 당이전으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지체되어 당미려의 사정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에 듣기로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짐작가는 게 없었다.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평소에도 창백하던 당미려의 안색이 더더욱 핏기없게 느껴진 다는 것.

"...어디부터 애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급한 것부터."

”언니가 죽어 가고 있어! 도와줘. 제발...!”

당미려에게 언니가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당연명이 차분하게 물었다.

"나보단 의각을 찾았어야 하는 거 아냐...? 거기 각주가 이전이의 조부잖아."

"아니. 소용없어. 이건 의술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당미려는 단정적으로 얘기했다. 의각이 약왕당이던 시절에도 몇 번이고 언니를 데려가봤지만 헛수고였다면서.

"증세가 어떻길래? 상처나 병으로 인한 게 아니야?"

"연명이 너. 내 생각보다 훨씬 고수지...?"

"아마. 그러니까 말해. 아니, 일단 움직이자. 네 말대로 정말 급한 상황이라면 이동하면서 얘기하는 게 옳아."

대답하면서 당연명은 추측했다. 당미려의 언니가 어쩌면 심각한 내상을 입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정도를 넘어선 내상은 회복은커녕 사람을 시름시름 알다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의원보다는 높은 무위를 지닌 내가기공의 고수를 찾는 게 바른 대처이긴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당미려의 말은 당연명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갔다.

"언니는... 그리고 나는 절맥을 알고 있어."

****

옛날, 새외세력 중 북해빙궁(北海氷宮)이라는 곳이 있었다.

열화태양궁과 더불어 그 특색이 무척이나 뚜렷한 방파였는데, 주로 음한 계열의 무공을 익히고 휘둘렀다. 특히 유명한 것은 빙백신장이란 절기였는데, 일단 적중당하면 뼈마디와 전신 혈맥에 음한지기가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빙공의 고수와는 싸움의 합을 길게 가져가지 말라는 격언이 생기기도 했다고.

물론 지금은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 무림에 북해빙궁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열화태양궁처럼 천마신교에 멸문당하기라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건 그 후예 중 일부가 사천에 자리를 잡았고, 오랜 세월 사천제일가로 군림하던 당가와도 몇 차례 혼사를 치렀다.

당가의 방계 일족 중에 유난히 짙은 음한지기를 타고나는 이들이 있는 것은 그래서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북해빙궁이었다면 음한지기를 타고나는 것은 그 자체로 무재였고, 더없는 축복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건 음한지기를 바탕으로 무위를 쌓아올릴 무학이 준비되어 있을 때의 얘기였다. 그렇지 않다면 지독한 저주나 다름없다.

양(陽)의 기운이 생명을 상징한다면, 음(陰)의 기운은 죽음을 상징했다. 균형을 깨뜨릴 정도의 음한지기는 필연적으로 혈맥을 포함한 육신 전체를 쇠하게 했다.

절맥(絶■)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한지기의 정도에 따라 삼음, 오음, 질음, 구음이라 구분하긴 했지만 결국 빙공으로 음한지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요절한다는 것은 같았다. 혹은 경지에 오른 고수가 인위적으로 음한지기를 배출시켜주거나.

당미려는 하나뿐인 언니를 구하기 위해 소가주 경합에 출전한 것이었다. 소가주의 위에 올라, 언니와 그녀 자신의 체질을 치료할 방도를 찾고자.

가문의 힘을 총동원한다면 제대로 된 빙공을 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소가주가 된 것은 당연명이었다.

당미려는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실력의 부족을 절감하기도 했을 뿐더러, 그간 당연명과 쌓은 친분도 있었으니 기회를 봐서 언니의 치료를 부탁할 셈이었다.

그런데 경합에서 돌아와보니, 언니의 상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있는 게 아닌가.

어릴 때부터 당미려의 언니는 당미려보다 몸이 약했다. 질음, 어찌면 구음절맥을 타고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약관까지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다급해진 당미려의 뇌리에 당연명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나 믿기 힘든 광경을 보여주었으니까.

그가 언니를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달려온 것이다.

이것이 당미려의 사정이었다.

< 65화<당미려의 사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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