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67화 (67/134)

< 67화<연심> >

절세의 미청년이 절세미녀의 나신, 그것도 민감할 수 있는 부위에 연신 손을 댄다一 언뜻 야릇한 장면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당미려는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한껏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엄청난 한기...!'

그녀는 여전히 언니인 당미소의 등 뒤 명문혈에 손을 대고 있는 채였다. 당연명의 손이 당미소의 가슴을 짚을 때부터 당미소의 체내 에서는 얼어붙을 것만 한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당연명이 한기를 흡수하고 있는데도 당미소의 한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반항하는 것처럼.

'...이러다 큰일나겠어.'

당미려는 점차 창백해지고 있는 당연명의 낯빛을 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말해놓고서, 당연명은 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당미려는 그의 마음씀씀이에 복잡한 심사를 느꼈다.

어느새 당미소의 양 허벅지까지 당연명의 손길이 스친다.

엄청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당연명의 손이 처음으로 멈칫한다.

'이런.'

이제 남은 한기의 근원은 단 하나였다. 당미소의 하복부에 자리하고 있는 것. 구음(九陰).

도합 아홉 개의 근원 중 여덟 개를 제거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변수가 생겼다.

여덟 번째의 근원을 제거하는 순간, 마지막 근원인 구음에서 미친 듯이 한기가 쏟아진 것이다. 당연명은 직감했다. 이건 그가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그래서 망설였다.

여기서 멈춘다면, 당미소는 무조건 죽는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미약한 선천지기 뿐이었으니까. 필시 증폭된 한기를 육신이 감당하지 못하겠지. 전신 경맥과 세맥이 얼어붙은 채 숨이 끊어질 거다.

그렇다고 배꼽 아래 구음의 한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였다. 당연명이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지만 경맥과 세맥에 영향을 끼치는 극한(極寒)의 기운을 무한정 수용할 순 없었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유발할 수 있는 까닭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一 그렇게 당연명이 고민에 빠진 찰나였다.

'...잠깐..'

불현듯 당연명은 어떤 화두가 뇌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독(毒)이란 무엇일까.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독요청광심법을 대성하면서, 만독(萬毒)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된 당연명이었기에 독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은 그리 깊게 행한 적이 없었다.

왜 이 순간에 이러한 화두가 떠오른 것일까. 언뜻 잡념으로 치부하고 홀려버릴 수 있는 생각이었지만, 당연명은 이 화두를 잡고 늘어졌다.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느낀 것이다.

'육신에 해로운 그 모든 것이 독이다.'

막상 고찰을 시작하자, 당연명은 금세 정의를 내렸다. 겪어본 독이 적지 않았다. 산공부터 시작해서 지독한 고통을 주거나 피를 토하게 하는 것, 감각을 앗아가는 것, 장기를 녹이거나 머리칼 등을 부식시키는 것....

그리고 단숨에 목숨을 빼앗는 당가십독과 같은 극독도 있다.

' 화룡호독.'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대화 한 토막이 뇌리에 스친다.

"화룡호독이라는 거야."

"화룡호독? 특이한 이름이군."

"독 중에는 '열독'이나 '한독'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고 해. 화룡호독은 열독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독이야. 당가십독에 들어갈 만큼."

지금은 죽고 없는 당영령이 했던 말이다.

열독(熱毒)과 한독(寒毒).

열기와 한기 역시 해를 끼질 만큼 강성해지면 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일 터다.

실제로 화룡호독은 사람을 태워 재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을 만큼 강력한 열기를 품고 있는 독 아니던가. 화룡의 숨결을 담았다는 얘기가 허언이 아닌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두 팔을 얼릴 것처럼 침습해오는 한기 역시 독이 아닐까. 그래, 한독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강성하건 그것이 '독'에 불과하다면一

'독요청광기로 감당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당연명이 손을 뻗었다. 당미소의 하복부에 자리한 한기의 근원, 구음을 향해서였다. 망설이다 조금 지체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한기를 확실히 뿌리뽑고자 했기에 아예 장심을 가져다 댔다.

'흡 (吸)'

스으으으으으一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한기가 장심을 타고 꾸역꾸역 당연명의 체내로 홀러들어온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당미려는 경악과, 어떠한감격이 어우러져 알아보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연명의 눈에서는 그저 진녹색 광채가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독요청광기를 동원할 때 보이는 징조.

'먹어치워라.'

의념을 싣자, 독요청광기가 해일 같이 짓쳐들어오는 한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분명 구음으로부터 비롯된 한기는 단숨에 뼛속까지 얼려버릴 정도로 지독했지만, 당연명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먹잇감을 두려워하는 맹수가 어디 있던가.

한기 역시 한독이라 불리는 독의 일종인 이상, 독요청광기의 몸집만 불려줄 뿐이리라.

그렇게 독요청광기와 구음절맥의 한독이 부딪쳤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

시간이 제법 흘렀다.

독요청광기는 구음절맥의 한독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당연명의 팔을 침습하던 한기는 거짓말같이 사라진 상태였고, 독요청광기는 이전보다 월씬 덩치를 불린 채였다.

'...영약이나 다름없군.'

당연명은 눈을 감고 조용히 내부를 관조하며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랬다. 깨달음을 얻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긴 했지만,

생각대로 됐고 결국 지독했던 한독은 막대한 내공의 증진을 가져왔다. 이건 웬만한 영약으로도 얻기 힘든 성과였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원래 사람이 일신에 지닐 수 있는 내공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한독을 먹어치워 얻은 내공의 상승분은 곧 사라질 모래성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잠시 고민하던 당연명은 독요청광기의 상당 부분을 한곳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강제로 경맥 사이사이에 진기를 꾹꾹 눌러담고 닫는다. 모친으로부터 전수받은 폐맥은취의 수법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마당이다. 막대한 내공을 헛되이 허공에 흩어보내느니 폐맥은취를 이용해 호신강기 용린을 익힐 발판으로 쓰고자 했다.

압축된 까닭인지 경맥 하나를 채우는 데 들어가는 내공량이 무지막지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지막지한 것이 당연명의 내공이었다.

경맥 하나로는 독요청광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결국 십이경맥 중 네 개를 단번에 채우고서야 당연명이 폐맥은취를 멈췄다.

'기분이 묘해.'

금제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성취를 감춘 까닭일까. 당연명은 무언가 족쇄 같은 것을 주렁주렁 달게 된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

당연명이 구음의 한기를 완전히 뽑아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당미소는 의식을 차리자마자 기겁했다. 우선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눈 앞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형의 청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청년의 손바닥이 그녀의 은밀한 부위에 닿을듯 말듯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으면서도, 당미소는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한기가 느껴지지 않아. 어찌된 일이지?'

분명 의식을 잃기 전, 몸 전체를 잠식한 한기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하나뿐인 동생, 당미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마지막이 었는데.

그때였다. 뒤편에서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언니...?"

”설마, 미려니?”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렇게 되뇌면서 당미려는 알몸의 당미소를 끌어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더없이 멀쩡한 모습의 당미소를 보니 안도감이 왈칵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이분은 누구고."

"아, 그게...."

당미려는 빠르게 설명했다.

당미소의 눈앞에 있는 청년은 경합의 우승자인 소가주 당연명이라는 것.

당연명과는 경합의 같은 조 출신으로 친분이 꽤나 깊었다는 것.

어쨌거나 경합을 마치고 가문으로 돌아와보니 당미소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는 것.

의술로 어찌할 수 없다는 판단에 당미려가 알기로 가장 고강한 무위를 지닌 당연명을 찾았다는 것.

당연명은 흔쾌히 이곳으로 걸음했으며, 몇 번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당미소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

아마 이제 당미소는 구음절맥의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리라는 것.

"...그러니까 이분一소가주께서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구나."

"그렇지."

당미소는 묘한 눈길로 청년의 얼굴을 바라봤다. 참으로 잘생긴 사내였다. 옛날 송옥이나 반안이 이처럼 수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을까.

일면식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호감이 치솟아 오른다.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명의 은혜를 입었다. 동생에게 들어보니 그저 적선하듯 베푼 은혜가 아니었다. 엄청난 한기를 거두는 위험을 무릅썼다고 했다.

상황이 묘했지만 당미소는 굳이 당연명의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행여나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 무언가 악영향을 줄까 싶어서다.

당미려에게 무언가 걸칠 것을 가져와달라 말하고.

그렇게 그저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당연명이 눈을 떴다.

대번에 어색한 침묵이 자리잡는다. 당연명은 천천히 당미소의 하복부에서 손을 뗐다.

'뭐라고 해야 하지.'

당연명은 살짝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치료를 위함이었다고는 하지만 분명 여인으로서는 수치를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심스레 당미소의 눈치를 살피던 당연명은 이내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여전히 적나라한 나신이었던 까닭이다.

'이런.'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당미소의 전신을 샅샅이 훑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당연명은 눈을 감은 채 일종의 몰아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자매끼리의 대화를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미소가 상황을 대강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나저나 아름답긴 하군. 정말.'

아닌 게 아니라, 한기가 제거되어 활력을 찾고 눈을 뜬 당미소는 그야말로 미(美)의 화신이라고 할 만했다. 당연명은 전생과 이번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여인에게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삶이라 하면, 역시 아리따운 부인을 얻고 또 자식을 낳아 오손도손 사는 것이겠지一 라고 막연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 당연명은 회의적이었다. 모친의 영향인지 웬만한 미모를 지닌 여인을 봐도 감흥이 없었을 뿐더러, 연심이라는 게 어떠한 감정인지 알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앞으로도 적당히 모친이 맺어주는 상대와 혼인을 하고, 또 아이를 낳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건만....

당연명은 괜히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아름답다. 예쁘다. 지켜주고 싶다. 구해주길 잘했다.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 날 어떻게 생각할까. 미려를 처제로 불러야 하나...?

순간적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녀와 혼례를 올리고, 자식들을 낳는 상상까지 할 무렵一

당미소가 읍하며 붉은 입술을 열었다.

"소가주께서 베푸신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소녀는 앞으로 소가주를 마땅히 평생의 은공으로 모시고자 하니, 언제든 소녀가 필요 하시다면 지체없이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 67화<연심>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