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화<당가십독(2)> >
당가십독과 함께 남겨져 있는 서적들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당연명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것들도 상당수 있었다.
만독불침지체니 독인지경이니 하는 것들이 그랬다.
一만독이 불침하는 신체라는 것은 분명 실재한다. 본가의 시조이신 무영객께서 도달하셨으니까. 그렇지만 세인들이 말하는 만독불침지체와는 차이가 있다. 흔히 정의되는 만독불침지체, 그것은 정말로 독이 통하지 않는 신체를 뜻하는 게 아니다. 모름지기 경지에 이른 고수들은 기를 다루는 능력 또한 크게 발달해 있기 마련인데, 그러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독기를 잡아두거나 배출할 수 있다. 범인의 눈에는 그들에게 독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독기를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진정한 만독불침지체란, 단순히 독기가 침범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침범하더라도 무용하도록, 혹은 도리어 이롭도록 만드는 것일 터다....
一무영객께서는 진정한 의미의 만독불침지신을 이루셨다. 당가십독이라 해도 그분을 해하지는 못한다고 했으니 실로 놀라운 경지다.
같은 곳에 달고자 하는 후예들이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화경에 오른 이는 있어도 감히 만독불침지체를 자신하는 이는 없었다. 이에 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예 바닥부터 다져서 하늘까지 달는 높다란 탑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은 신비하다. 처음엔 연약하기 그지없는 살결도 때리고 두들기면 굳은살이 박이고 돌처럼 단단한 근육이 자리잡지 않나. 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긴 굳은살과 근육을 또 찢으면 더더욱 두텁고 질긴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독에 대한 내성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점차로 강력한 독을 이겨내다 보면 언젠가 당가십독에 대해서도 내성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고, 나는 몇몇 당가십독을 삼키고도 멀쩡한 지경에 이를 수 있었으니. 이를 독인지경이라 부르기로 했다....
당연명은 무영객이 이루었다는 만독불침지체가 어떠한 경지인지 짐작했다. 필시 독요청광심법을 제대로 대성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애초에 모친의 말씀에 따르면 독요청광심법이 무영객의 독문 무학이라지 않았던가.
설마하니 기본공이나 다름없는 독요청광심법에 답이 있는 줄은 모르고, 다들 상승 심법이니 뭐니 하면서 애꿎은 호흡법에 매달렸던것일까一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독요청광심법은 진기를 빠르게 쌓을 수 있는 호흡법은 아니니까. 최종적으로 대성을 하게 되면 독기를 먹어치워 빠르게 내공량을 늘릴 수 있게 되지만, 호흡법 그 자체만으로는 그저 범상하기만 할 뿐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선조 중에 독인지경에 이르렀던 이는 몇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살조화를 남긴다고 적은 이 말고도 스스로 독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각기 다른 필적으로 몇 가지 내용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一독인이 되고 나니, 나의 존재 자체가 독이 되었음을 느낀다. 마음만 먹으면 숨결을 내뱉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고, 피 한 방울로 수십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
一천하의 그 어떤 독도 독인지경에 이른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단, 본가의 당가십독만큼은 예외였으니, 무영객 그분의 경지에 이르려면 아직도 멀었음을 통감한다....
一당가십독에 매겨진 일(一)부터 십(十)까지의 번호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독기가 약한 것부터 정렬되어 있는 것이다. 일독(一毒)인 무형명산부터 삼독(드毒)인 화룡호독까지 버틸 수 있다면 독인이 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고 길러, 마침내 당가십독도 견뎌낼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독인지경이라 하는 모양이었다.
당연명은 굳이 독인이 될 생각은 없었기에 대충 넘겨 읽었다. 뼈를 깎는 수련을 거친 선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가 보기에 독인지경에 오르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을 뿐더러 한계가 명백했다.
무형명산이 일독(一毒).
화룡호독이 삼독(드毒).
살조화가 오독(五毒).
용살독이 팔독(A毒).
독인지경에 오른 선조들 중 가장 성취가 뛰어났던 이가 독의 정수를 뽑아 만든 게 오독 살조화였다. 다른 이들은 삼독 혹은 사독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만독을 포식하는 독요청광기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나저나.'
당연명은 십독(十毒)이 있던 곳에 서서 생각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있던' 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었다. 일독에서 구독까지는 분명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흔적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독을 가져다 썼기에 그 양이 줄어들었거나 없어졌을 뿐.
하지만 십(十)이라 적힌 천을 젖히고 들어선 곳에는 독이 있었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저 가지런하게 놓인 얇은 서책 한 권 뿐.
서책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놀라웠다.
먼저, 글을 남긴 이가 바로 무영객이었다.
이곳에 남겨진 모든 서적은 누가 쓴 것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었는데, 단 하나 이 서책만이 필자 스스로 사천당가의 시조인 무영객임을 명시하고 있었다.
무영객의 글은 담담하게 이어졌는데, 고독(墨毒)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독물을 한데 모아 가두어 놓고 살아남는 한 놈을 칭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고독 일백 마리를 모아 같은 절차를 반복해 살아남은 최후의 한 놈을 진고독(眞墨毒)이라 부른다고.
당가십독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다는 십독(十毒)은 바로 이 진고독의 독이었다.
당연명이 흥미를 느낀 것은 다음 구절이었다.
一나는 독물 대신 독을 지닌 이매망량들로 진고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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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통로를 빠져 나온 당연명은 허공을 향해 수리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검강이 타오르며 공간을 좌아악 찢었고, 진법 속에 숨겨졌던 광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통로. 그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괴황지들. 노르스름한 종이 위에는 피처럼 붉은 글씨들이 써 있다. '금(禁)'과 '봉(封)다시 보니 음산하기 짝이 없다.
'...필시 여기에 봉인되어 있는 거겠지?
당연명은 어둠만이 가득한 통로 입구에서 괜히 괴황지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십독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읽은 무영객의 글로 유추한 것이다. 이곳에 진고독이 있다고.
무영객은 이매망량들로 고독을 만들고, 또 그 고독들로 진고독을 만들었다 했다. 수십 수백의 이매망량들을 잡아먹고 완전히 새로운 이매망량이 탄생했다고.
놈이 뱉어내는 독기는 실로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무영객이 아니고선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영객은 천수가 다하기 전, 친분이 있던 방사들의 도음을 받아 놈一 진고독을 봉인했다고 했다. 여기까지 읽은 당연명이 진법 속에 숨겨진 봉인 술법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一독요(毒要)의 진의를 깨달은 자만이 진고독을 부릴 수 있을진저.
무영객의 글은 그렇게 끝났다. 당연명은 그가 독요청광심 법의 대성을 말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어쪄면 십독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곧장 움직였다.
'여기 서니 확실히 알겠군.'
당연명은 통로 앞에서 한 층 짙어진 독기를 느꼈다. 독중독고 안의 독기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이제서야 명백해졌다. 당가십독이 아니라 이곳 봉인술법진의 내부에서 새어나오는 것이 원인이었다.
'조금만 더.'
스읍 하고 독기를 머금은 공기를 빨아들인다. 독기는 체내에 들어오자마자 독요청광기에 의해 진기화되어 단전에 쌓인다. 강기로 인해 소모된 내공을 채우는 것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만전을 기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나고서야, 당연명은 괴황지로 만들어진 부적들을 천천히 떼어내기 시작했다.
부적들은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견고히 붙어 있었는데, 단순 완력만으로는 그것들을 떼어내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당연명은 요령을 알고 있었다.
'해 (解).'
부적을 떼어내는 손짓 하나하나에 의념을 싣는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부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사들이 구현하는 술법은 고도로 구체화된 어떤 염원 같은 것이었기에, 그걸 무력화하려면 역술(逆術)에 해당하는 술법을 펼치거나 그보다 더한 의념을 동원해야 했다. 방사가 아닌 당연명으로서는 후자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그렇게 부적들을 얼마나 떼어냈을까.
꽈르르 르 르 르 르 릉一!!
난데없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터졌다.
동시에.
고오오오오오오一
불길함이 집약되는 듯한 느낌이 통로 속 어둠에서 치솟고 있었다. 무언가 암흑 속에서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것 같기도 하고, 청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매망량이라더니...!'
당연명은 심상잖은 존재감에 살짝 긴장하며 언제든 폐맥은취를 풀어버릴 수 있게 준비했다. 십이경맥 중 다섯을 채운 게 아깝긴 했지만 어차피 열두 개 경맥을 모두 채워 호신강기 용린을 이루지 않는 이상 폐맥은취는 그저 금제에 불과했다.
이매망량이라는 생소한 존재를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방심하지 않고자 했다.
그렇게 당연명이 주의를 기울이던 때였다.
퍼어 엉一!
순간적으로 기파라고 할 만한 것이 통로 안쪽에서 터져 나오더니 아직 떼어내지 않은 부적들을 일시에 날려버리는 게 아닌가...?
무언가를 봉인하던 술법이 단숨에 깨졌다.
[드디어!!]
순간적으로 어떤 기꺼워하는 말소리같은 것이 당연명의 뇌리에 꽂혔다. 음성은 아니었다. 이건 저절로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념같은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러나 당연명에게 의문을 표할 틈 따위는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끄무레한 것이 곧장 그에게로 짓쳐들어온 것이다.
" ! "
당연명은 신법 암영을 펼쳐서 일단 물러나려 했다. 짐작대로 놈이 이매망량으로 만들어진 진고독이라면,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에 가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맞상대하는 것보다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란 판단이었다.
[어림없다.]
놀랍게도 놈은 당연명이 펼치는 신법 암영을 가볍게 따라잡았다. 움직임이 무척이나 자유로운 까닭으로 보였다. 쾌속하게 움직이면서도 조금의 저항도 받지 않는 모습.
당연명은 이내 인정해야 했다. 놈이 따라붙는 것을 떨쳐낼 수가 없다. 대응을 바꿔야 했다. 회피가 아니라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과 동시에 오른손을 휘두른다. 잡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놈을 만질 수 있다면 곧장 강기를 일으킬 셈이었다. 제아무리 영체라해도 강력한 의념이 실린 공격을 흘려넘길 순 없겠지.
그러나.
[되었군!]
놈은 쾌재를 부르듯 신난 기색으로 당연명의 손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움켜쥐는 손가락을 피해 손바닥 장심으로 쏘옥 스며들었다.
'무슨.'
당연명이 어이없어 하며 손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상완까지 이르는 그의 오른팔이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독기가 터져 나온 까닭이었다.
[이걸 버티다니. 좋은 육신을 가졌군. 아주 맘에 드는구나. 게다가 그 찰나에 견정혈을 폐쇄해 독기의 확장을 막았다? 가공할 순발력이다. 하지만... 음?]
당연명의 팔에 스며든 놈은 가소롭다는 듯이 중얼거리다 어느 순간 당황한 느낌을 풍겼다.
[너... 어떻게? 아니, 그보다 이 기운은 설마.…】
믿기 힘들어한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당연명의 팔은 본래의 색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공할 독기가 너무도 허망하게 흩어진다.
아니, 흩어지는 게 아니다. 독기는, 무언가에 의해 잡아먹히고 있었다...!
< 기화<당가십독(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