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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73화 (73/134)

< 73화<식신> >

"내 식신이 되겠다고?"

당연명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식신(式神)이 무엇인지쯤은 스승이었던 검귀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방사들과도 교분이 깊은 사람이었으니까.

고명한 술법을 지닌 방사들은 이매망량을 강제로 자신에게 복속시켜 종처럼 부릴 수 있다고 했다. 이때 복속된 이매망량을 식신이라 부른다고.

식신은 주인인 방사의 명에 절대복종해야 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인을 위협하거나 공격할 수 없었다. 이는 존재 자체가 주인 된 이에게 종속되기 때문이었는데, 주인인 방사가 죽게 되면 식신인 이매망량 역시 소멸하고 만다고 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 식신이 소멸할 때에는 방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고.

다만, 그렇게 식신으로 부릴 수 있는 이매망량은 격이 현저히 낮은 존재들뿐이었다. 정도 이상의 격을 지닌 이매망량들은 술법으로 얽어매는 것에 한계가 있는 까닭이다.

'이만한 기운을 품고 있는 놈의 격이 낮을 리는 없는데.'

이매망량을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놈이 품고 있는 독기를 고려했을 때 결코 격이 낮은 존재는 아닐 거라 여겼다. 괴이한 방식으로 대화까지 가능한 지성을 갖추고 있기도 했고.

그런 존재가 식신을 자처한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명은 놈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심을 키웠다. 방사 들이 쓰는 술법들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으니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자 했다.

[...왜 독요청광기를 물리지 않는 것이지? 네 식신이 되겠다지 않았느냐. 설마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이냐...?]

"안다. 내게 복속되겠다는 거겠지."

[한데 왜…?]

"식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매망량 중에서도 격이 낮은 존재뿐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네 격이 낮아 보이지는 않는데. 수작을 부리려면 그만둬라. 게다가 어차피 나는 방사도 아니니, 네놈을 확실하게 구속할 술법도 알지 못해. 식신이니 뭐니 말해도 탐탁지 않을 뿐이다."

[뭐...?]

청각백사는 어이가 없었다. 방금 그가 한 제안- 식신이 되겠다는 것은 무릇 방사들이라면 결코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달콤한 이야기였다. 하등한 이매망량들이야 술법으로 식신화할 수 있었지만, 청각백사처럼 강력한 기운을 지닌 고위의 존재는 술법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스스로의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식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고위의 존재가 고개를 숙이고 식신이 되기를 원하는 경우가 드물다. 청각백사도 지금 당연명의 체내에 갇혀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에 이런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멸하는 것보다야 식신이 되어서라도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나을 테니까.

인간들도 그런 말을 하지 않던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그런데 이 무지한 놈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알아보지 못하고 발로 뻗 차버리려 하고 있었다...!

답답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놈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였다.

청각백사는 차분해지려 노력하며 설명했다.

[ 네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보통의 경우 술법으로 굴복시켜 식신으로 삼을 수 있는 이매망량은 격이 낮은 것들뿐이니까.하지만 격이 높다고 해서 식신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술법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식신이 되는 것이기에 방사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워낙에 희귀한 경우니까.]

"스스로의 의지? 술법이 아니라?"

비로소 당연명이 관심을 보였다. 독요청광기로 오른팔에 스며든 청각백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압박하는 것을 멈췄다.

가능성을 느낀 청각백사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래. 네가 방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술법의 냄새는커녕 괴황지로 만든 부적 한 장 지니고 있지 않은 듯하니까. 그렇지만 술법을 모르더라도, 내가 네 식신이 되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 이매망량인 내 의지 자체가 술법이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네가 승낙만 한다면 식신이 되어주마]

"흠."

[...너도 무영객 그놈처럼 독요청광기를 다루니, 내 독기를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만한 이점인지 잘 알 것이다. 뭘 망설이는 거지? 의문이 있다면 말해라. 기꺼이 설명해줄 터이니.]

"아니. 내 쪽에 너무 유리한 조건이라서. 생각을 좀 해보지."

[….…]

청각백사는 잠시 침묵했다. 말이 식신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스스로 노예가 되길 청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도 쉽사리 의심을 풀지 않는다. 기껏해야 이십 년도 살지 못한 애송이로 보이는데, 신중하기가 백 살 먹은 노인 못지않았다. 설마 반로환동한 것일까?

[...헛되이 소멸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먼저 공격한 입장도 있으니 네 신뢰를 사기 위해서 이 정도는 해야겠다 싶었고.]

"그러게 왜 다짜고짜 공격해서는."

[.......]

당연명의 핀잔 같은 말에 청각백사는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닌 까닭이다. 봉인 술법진에서 빠져나왔을때, 그냥 이곳을 벗어나면 되는 일이었다. 방사가 없기에 방심한 것이 죄라면 죄였다. 설마하니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는가.

"어쨌건 좋다. 믿어보지. 식신으로 받아주마. 만약 같잖은 수작을 부린다면...."

[그럴 일은 없다. 바로 진행하지.]

당연명의 허락이 떨어지자 청각백사는 곧장 말을 꺼냈다. 어차피 식신이 되기로 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신세가 좀 처량해지기는 했으나, 이 자리에서 소멸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식신이 되면 존재를 구속당하긴 하겠지만, 봉인 술법진에 갇혀 있는 것보다야 나을 터였다.

당연명은 흥미로운 눈길로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독요청광기로 청각백사를 틈 없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하얀 안개 같은 것이 오른팔 주변에 서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체를 가진 기운은 아니었다.

하얀 안개는 점차 농밀해지더니 자기들끼리 뭉쳐 어떤 형상을 이루려고 했다.

"뭐지. 이건?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거라면 주저 않고 소멸시키겄I다."

[...내 화신(化身)이다. 식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니 경계치 마라.]

청각백사는 다급히 덧붙이며 생각했다. 정말 의심이 많은 놈이라고. 겨우 화신을 내보이는 것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할 줄이야. 방사나 식신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아는 것 같더니, 또 이런 것을 보면 술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것으로 보였다.

"백사(白始)...?"

어느새 하얀 안개가 형체를 갖춘 것을 보고 당연명이 말했다.

백사, 말 그대로 하얀 뱀이었다. 공간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한 뱀은 똬리를 틀고 붉은 혀를 날름거렸는데,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머리에 푸른 뿔이 돋아났다.

이매망량이자 진고독인 청각백사의 본모습이 었다.

[백사말고 청각이라 불러라 무영객 그놈 역시 그리 불렀으니.]

청각은 눈을 빛내며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뿔에서 무언가 실 같은 게 풀려나오더니 당연명의 가슴께까지 너풀너풀 다가왔다.

[심령사(心靈絲)라는 거다. 그걸 쥐면, 내 영(雲)은 네 혼백에 귀속된다. 식신이 된단 얘기다.]

신기하게도, 당연명은 청각이 지금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청각이 제 존재의 진실한 형체인 화신을 드러낸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명이 의심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청각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고.

당연명은 천천히 손을 뻗어 청각의 심령사를 감아쥐었다.

화아악!

눈부신 섬광이 터졌다. 청각의 화신은 수천 수만 갈래로 찌저적 갈라지더니 빛과 함께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그 빛의 조각들은 하강 하다 말고 이내 당연명에게로 짓쳐들더니 그대로 흡수되었다.

'...이런 기분이군.'

당연명은 곧장 알아차렸다.

뭐라 해야 할까一

무언가 다른 존재의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틀어쥔 감각이 있었다.

마침내 이매망량 청각을 식신으로 거두어들인 것이다.

****

사천당가의 독중독고.

당가십독을 보관하는 비고에서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 인영이 있었다.

"소가주. 무사하십 니까...!"

독중독고 앞에서 초조하게 당연명을 기다리던 암왕대 무사는 반색하며 말을 건넸다. 피독주 없이 들어간 소가주 때문에 꽤나 마음을 졸였던 것이다. 독고의 내부는 짙은 독기로 가득했으니까. 자짓 사달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당가십독을 확인하는 것치고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고.

여러모로 불안해할 만한 징조가 있었기에,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직접 소가주를 찾으러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던 암왕대 무사였다.

피독주를 입에 물고서.

"저, 그런데...."

"음?"

"소가주의 몸에서 후광이 납니다만...."

"아."

암왕대 무사의 말에 당연명은 짧은 탄성과 함께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러자 은은하게 새어나오던 진녹색 광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조절이 쉽지 않군.'

당연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녹색 광채의 정체는 바로 호신강기 용린이었다. 폐맥은취의 수법으로 열두 개의 경맥을 모두 내공으로 가득 채워야만 이룰 수 있는 무학.

독고 안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당연명은 다섯 개의 경맥을 폐맥한 정도에 불과했다. 폐맥은취의 특성상 폐맥하는 경맥이 늘어날수록 난도가 극히 높아진다. 그런데 남은 일곱 개의 경맥을 그 잠깐 사이에 폐맥한 것이다...!

물론 이건 모두 청각을 식신으로 얻은 덕분이었다. 이제까지 당연명에게 기연이라 부를 법한 일이 적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했다.

독요청광기를 다루는 입장에서, 청각은 그 어떤 영약과도 비할 수 없는 존재였다.

조금 전, 당연명은 청각을 식신으로 거두게 되자마자 그가 지닌 독기 대부분을 뱉게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독요청광기로 하여금 먹어치우게 했고.

청각이 지닌 독기는 당가십독 중에서도 최상위, 십독(十毒)으로 분류될 만큼 지독했다. 다시 말해 당연명에게는 엄청난 내공량의 상승을 가져다준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당연명은 전신 십이경맥의 폐맥은취를 단숨에 이루고도 남을 만큼의 내공을 얻었다.

모든 경맥에 강성한 진기가 들어차자, 모친의 말대로 호신강기가 상시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그 옛날 무영객의 무학이었던 호신강기 용린이 수백 년의 세월을 격하고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원래 강기 무학들은 어마어마한 내공 소모를 동반하는데, 폐맥으로 구현된 호신강기 용린은 상시로 발동되면서도 진기의 낭비가 극히 적었다. 당연명으로서도 흡족할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라면 단점이랄 것이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진녹색 후광이 전신에 넘실댄다는 것이다. 경맥은 물론이고 세맥까지 꽉 들어찬 내공이 피부 바깥으로 분출되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이목을 끌기 딱 좋았다.

[굳이 숨길 필요 있나? 무영객 그놈은 대놓고 드러내고 다녔는데.]

청각이 의아한 듯 말을 건넸다. 호신강기는 그 자체로 강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더없이 화려한 갑주였다. 왜 구태여 드러나지 않게 갈무리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 생은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당연명은 속으로 말했다. 식신으로 받아들이면서, 청각과는 심령으로 연결되었기에 생각만으로 뜻을 전할 수 있었다.

[이번 생이라고...? 꼭 몇 번 살아본 것처럼 말하는군. 그나저나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청각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그만한 힘이 주어진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네 선조인 무영객이 그랬듯.]

< 73화<식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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