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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76화 (76/134)

< 76화<공동파(3)> >

사천에서 더 이상 도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당연명이 의문을 표한 것이다.

"황색 도복.... 아마 공동파의 인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가주."

당연명의 중얼거림에 대답한 것은 봉위대의 정식 대주가 된 당원진이었다. 그가 다른 봉위대 무사들보다 압도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무위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경합 7조를 담당했던 인연과, 그간 당연명을 지척에서 수행하면서 쌓인 친밀감 같은 것들이 주요하게 작용한 덕분에 대주의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어차피 당연명의 입장에서는 봉위대 무사들의 수준이 고만고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지금 당연명은 당원진과 당적신을 데리고 성도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봉위대가 모두 호위하겠다며 나섰지만, 당연명은 그들에게 실력을 더 쌓을 것을 명하고 둘이서 나온 참이었다. 주렁주렁 봉위대를 달고 다녀봐야 이목만 끌고 번잡해질 것이라 여겼기에.

물론 봉위대가 없더라도 이목을 끄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저기, 저 공자. 처음 보는 얼굴인데.'

'사람의 용모가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후광이 이는 듯해.'

'그러고 보니, 아까 당가 쪽에서 걸어오지 않았어? 풍문으로는 당가의 새로운 소가주가 그토록 잘생겼다던데. 그분이 아닐까.'

'그런 것치고는 호위가 적은데. 동행하는 무사의 수준은 꽤 높아 보이긴 해.'

'얘. 저분께 말씀을 좀 전하고 오렴.'

수군대는 말소리가 적지 않았다. 몇몇 지체 높은 집안 출신으로 보이는 처자들은 아랫것들을 시켜 당연명에게 다과나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은근한 호의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당미소를 마음에 두고 있는 당연명에게는 귀찮기만 한 일이었다. 당원진을 시켜 모두 정중하게 거절하게 했다.

사실 이렇게 성도를 둘러보러 나온 것도 반쯤은 당미소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비인 당적신을 대동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당연명은 상단 창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성도의 물동량을 확인하고, 상단으로서 유리한 품목과 입지를 선정하고자 했다. 물론 다른 이를 시켜도 되는 일이었지만, 부득불 당적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다른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어봐야겠다고 하기에, 당연명도 따라나선 것이었다. 예비 장인과 친목을 다져서 나쁠 것은 없을 테니까.

모친인 독봉 당지혜가 가주의 위에 오른 후, 가문은 빠르게 체계가 잡혔고 안정되고 있었다.

당연명은 이제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여겼다. 언제까지고 가문이 성도에 고립되어만 있어서는 곤란했다.

능력 있는 이를 총관으로 기용한 덕에, 당분간은 걱정이 없다지만 이대로 가면 다시 자금줄이 마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당호열과 당이전을 필두로 새롭게 정비된 의각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하더라도 약왕당 시절처럼 그들에게 재정 대부분을 의존하는 것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았고.

결국 가문의 활동 반경을 넓혀야 했다. 상단을 창설하고 운용하는 것으로 그 첫 단추를 꿸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분명 이런저런 마찰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한 마찰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가문의 영역이 넓어지지 않을까.

아무튼 당연명이 성도 외곽으로 나와 있던 것은 그래서였다.

"공동이라... 본가의 손님인 모양이군."

당원진의 말대로 그들이 공동파 도사들이라면, 분명 당가를 찾아왔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벌어졌던 소가주 경합- 그때 공동산에서 혈사가 있었지 않나. 태을묵검파를 비롯한 사천 사파 무인들의 시신을 그대로 버려두고 왔다.

공동파에서 따로 조사를 나왔다면 의구심을 품을 만했다.

일단은 시신들 거의 전부가 사파 무인들의 것인 데다가, 당연명을 비롯한 당가 인물들이 급하게 자리를 떠난 낌새도 느꼈을 것이고.

또한 조사를 나온 자가 조금만 더 눈썰미가 있다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게 모두 한 사람의 소행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이렇게 사천 본가까지 찾아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당연명은 조금 떨떠름하게 여겼다.

아닌 게 아니라, 당가가 자리 잡은 성도는 사천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사천은 흑사련 휘하의 사도 방파들이 난립해 있는 땅이다.

도문인 공동파가 사람을 보내기엔 분명 부담스러운 곳이란 얘기다. 그런 곳에, 도복을 벗고 변장한 것도 아니고 고작 두 사람만 보낸다...?

'그럴 만하군.'

둘을 살피고서, 당연명은 곧장 납득했다. 둘 다 상당히 지쳐 보였는데, 유독 한 사람만 격렬한 전투를 치른 듯 도복이 너절했다. 옷자락 끝에는 흙먼지가 진하게 묻어 있었고.

그리고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중년 도사.

[화경이 로군.]

'그래.'

청각의 말에 당연명이 속으로 긍정했다. 호신강기 용린 때문에 폐맥은취로 드러나는 성취를 제한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감까지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기감 범위에 한계가 있을 뿐.

확실히 화경의 고수라면 단독으로라도 사천땅에 보낼 만했다. 흑사련주 유길준을 만나는 경우만 아니라면 딱히 위험할 일이 없을 테니까.

'...흑사련주라도 만났나.'

당연명은 내심 고개를 가웃거렸다. 화경으로 보이는 멀쩡한 신색의 도사는 겉보기와 달리 엄중한 내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기운이 몹시 불안정했다. 아마 본래 동원할 수 있는 내력의 극히 일부분만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기껏해야 간단한 경공 정도를 펼치는게 한계일 것으로 짐작됐다. 제대로 된 무공이나 격한 움직임을 펼치면 내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겠지.

성취가 떨어지는 다른 한 명이 전투를 전담한 것은 그래서인 것으로 보였다.

두 중년 도사들이 다가오자, 더욱더 확연하게 그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화경에 올라선 존재였고, 하나는 당원진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당원진과 비슷한 무위의, 행색이 너저분한 도사가 손을 맞잡으며 말을 건네 왔다.

"무량수불. 처음 뵙겠습니다. 공자. 저희는 공동파에서 왔사온데, 저는 현소라 하고 이분은 태허라는 도명을 쓰고 계시는 분입니다."

"공동파 도사님들이셨군요. 저는 당연명이라 합니다."

당연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인사했다. 뒤에서는 당원진이 살짝 놀라며 낮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소가주, 태 자 배라면 공동파 당대 장문인과 같은 배분입니다...!

태허라는 중년 도사가 내상을 입긴 했지만 화경의 고수라는 것을 알아차린 당연명은 그가 반로환동했거나 강대한 내공으로 노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때문에 덤덤하게 있을 수 있었다.

한편, 당연명이라는 이름을 듣고 반색하며 현소가 말했다.

"저분이 호칭하시는 것을 우연찮게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소가주시라고.... 게다가 당씨 성까지 쓰신다면, 혹 사천당가의 분들이 아니신지...?"

"예. 맞습니다. 본가에 목적이 있으신지요."

"사백!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당가 분들이시랍니다...!"

당연명의 긍정에 현소가 환한 낯으로 태허에게 말을 건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소가주. 저희는 귀가에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원래라면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방문해야겠지만, 보시다시피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대로 귀가에 몸을 의탁해도 되겠습니까? 당분간만이라도 좋습니다. 사백의 내상이 안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그러시지요.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한데, 오는 길에 흑사련주라도 만났습니까?"

"그걸 소가주가 어찌...?"

현소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사백인 태허가 흑사련주와 일전을 치르고 사파 무인들의 추적을 피해 쭉 경공을 펼쳐 달려온 마당이다.

어떻게 이곳 성도의 당가 소가주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물론 당연명은 태허의 경지를 꿰뚫고 있었기에 대충 던져본 것이었다. 화경에 이른 고수가 이 정도로 내상을 입는 일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살아 돌아온게 용하군. 아니, 살려준 건가...?'

그때였다.

"멈一추一어一라!"

멀리서부터 어마어마한 크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목청도 좋은 자가, 엄청난 내공으로 육성을 강화한 것으로 짐작됐다.

현소가 낭패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런. 놈들이 온 모양입니다."

"놈들이라니요?"

"흑사련주와의 일전에서 사백께서 내상을 입으신 것을 알고, 집요하게 달려드는 사파 무리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어찌 상대해보려 했으나, 갈수록 점점 수가 불어 나는 통에...."

"수가 얼마나 됩 니까?"

"물경 백은 넘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백에 달할 지도.... 그보다, 어서 귀가로 피신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거의 지척까지 온것 같은데, 저희의 존재를 저들이 확인하기 전에 숨는 것이...."

현소는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주저 없이 피신을 입에 담는다. 그라고 해서 어찌 의기양양하게 소리까지 질러가며 쫒아오는 놈들을 단칼에 썰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 하지만 사백의 요양을 위해 몸을 의탁하는 입장에서 당가에 피해를 끼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있는 싸움은 피하자- 당가가 사천에서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결코 그 위세가 드높지 않음을 아는 까닭이다. 사도 방파가 득실거리는 사천에 자리한 당가이니만큼, 다른 사파들과 갈등을 빚어서 좋을 리는 없지 않을까.

게다가 지금 소가주 당연명의 주위에는 별다른 호위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장정 둘이 곁에 있을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하나는 서생에 가까웠다. 혹여 은신하고 있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현소가 기감을 끌어올려보았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그렇담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현소 자신과 당연명, 그리고 호위로 보이는 무사까지 셋뿐이었다. 지금 달려오는 사파 무인들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그러나 당연명은 여전히 태연했다.

"진정하시지요."

"예? 그게 무슨 말씀...."

"안그래도 이제 슬슬 사천을 좀 정리하려고 했었는데, 두 분께서 이렇듯 귀찮음을 덜어주시니 고마운 일이군요."

"!?"

• • • •

현소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 이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일백이 홀쩍 넘는 사파 무인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고마운 일이라고? 지금 제정신인가...?

"이쪽으로 오시지요. 소가주께서 처리하실 겁니다."

당연명의 무위를 익히 아는 당원진이 현소와 태허를 안전한 뒤편으로 안내했다.

"아니, 이게...."

현소는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고, 태허는 눈을 빛내며 당가의 소가주라는 청년을 살폈다. 무슨 일이 벌어지길 기대라도 하는것처럼.

한편.

그 사이에 사파 무인들이 제각각의 병장기를 꼬나 쥐고 우르르 몰려왔다. 어느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파의 무인들이 조금씩 더해져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 중 선두에 있던 사내가 말했다.

"네놈은 또 뭐냐? 얼굴은 계집마냥 반반해가지고는."

"목소리를 들으니 알겠다. 고성을 질러대던 놈이군."

"누구냐고 물었... 컥!"

말을 하다 말고 그가 짧은 비명을 토해내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손으로 땅을 짚을 생각도 못한 채 그대로 머리부터 처박힌다. 안법 성취가 제법 깊은 자들만이 그의 왼쪽 뺨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는 작은 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그르륵, 그륵, 하며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던 사내는 이내 조용해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몹시도 허망하게 스러 졌다.

"......"

장내엔 거짓말처럼 적막이 내려앉았다. 왁자지껄 떠들며 기세 좋게 몰려 왔던 사파 무인들 중 쉽사리 입을 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명이 손가락을 까닥여 우모침을 회수할 때까지도.

< 76화<공동파(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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