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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79화 (79/134)

< 79화<공동파(6)> >

'이상하군.'

당연명이 공동파 도사 둘과 함께 가문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식신 청각은 홀로 생각했다.

'분명 그 철편표라는 암기 무학이 상당한 수준이긴 했다만....'

당연명이 사파 무인들을 처리하며 선보인 두 가지 암기 무학들은 분명히 위력적이었다. 특히 세침류 암기인 우모침을 하늘 높이 흩뿌려 소나기처럼 내리꽂히게 만드는 기예- 우모침우는 독의 위력에 따라 살상력이 결정될 텐데, 진고독인 그를 식신으로 두고 있는 당연명에게 아주 유용하겠지.

마찬가지로 철편표라는 암기 무학 또한 일정 경지 이하의 무인들에게는 방어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당연명이 손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신법을 지니고 있어야 회피라도 가능할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편표를 보고 만천화우라니...?

양민들과 사파 무인들 몇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청각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만천화우는, 옛날 그를 진고독으로 만든 무영객의 필살 비기였다. 살수 출신으로서 온갖 암기술을 몸에 지닌 채 경지에 오른 존재가, 그 암기술의 정화(精華)를 추려 창안한 기예.

당연히 강기 무학이었고, 설령 화경에 이른 고수들이라 해도 만천화우를 맞이하고서는 그저 전신을 난자당해 죽어갈 뿐이었다. 청각이 알기로 무영객보다 강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죽이고자 해서 죽이지 못한 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무영객의 진실한 무위를 몰랐다. 그가 그저 사천당가의 초대 가주로서, 상당한 강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기에.

무영객은 본신 실력을 숨기고서 대외활동을 했다. 아무도 그를 경계하지 못하도록. 호신강기 용린을 완성하기 위한 폐맥은취의 수법이 그걸 가능케 했다.

그러고는 인세에 해를 끼치는 존재들을 '암암리에' 없애고 다녔다. 때로는 비무의 형식을 빌려 화경에 이른 강자를, 때로는 방사들과 함께 강력한 이매망량들을 만천화우로 죽여 없앴다. 상대가 사람에 국한되지 않았다.

청각은 그 살해의 현장을 함께했었기에 알고 있었다. 당연히 만천화우의 존재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기여야 했다. 그런데 한낱 양민이나 사파 잡배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게다가 고작 철편표 따위와 혼동하다니.

확실히 원가 이상했다.

'...설마 무영객 그놈의 후손들이 만천화우를 제대로 연성하지 못한 건가? 제대로 된 위력의 만천화우를 구사해왔다면 그런 말이 나왔을 리 없는데.'

청각은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다 풀려난 탓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당연명이 제대로 무영객의 진전을 이었다고 판단했었다. 독을 포식하는 기운_ 독요청광기도 제대로 익히고 있을 뿐더러, 호신강기 용린을 완성하기 위한 전초과정인 폐맥은취까지 절반쯤 이룬 상태였으니 그리 여기는 게 당연했다.

또한 당연명의 어미이자 현 당가주인 당지혜. 그녀도 화경에 이르렀음을 확인했기에, 여전히 당가의 가세가 공고하겠거니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어째 살필수록 상황이 묘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작 사파 잡배들이 겁도 없이 당가의 앞마당까지 몰려왔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한 중 독수로 녹아내리고 싶은 것이 아니고서야.

'현 당가의 성세가 무영객의 생전만 못하다는 것인데... 말이 되나?'

청각은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화경의 무인이 흔할 리는 없었다. 특히나 당연명의 경우에는 나이를 생각하면 눈부신 성취를 이뤘다 해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고. 이렇듯 한 가문에 화경 고수가 둘이나 존재하는데, 위세가 드높지 않다?

'그러고 보니.'

청각은 며질 전 당연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번 생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 했던가.

어쩌면 당가의 저력을 세상이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이번 대에 이르러 유난히 당가의 세가 강성해진 것일 지도.'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만큼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旧紅)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간 수백 년의 세월이 홀렸다면 아무리 당가라 해도 여러 부침을 겪었을 것인즉, 무영객의 진전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독요청광심법이나 호신강기 용린과 달리, 만천화우는 실전됐을 수도 있겠지.

'만약 그렇다면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청각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진고독으로서 무영객과 함께한 세월이 길었던 까닭에, 그는 만천화우의 온전한 요결을 접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이매망량인 그의 기억력은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요결 전부를 선명히 기억한다.

사천당가의 최강 암기 무학_ 만천화우의 온전한 요결을 담보로 한다면, 자유를 약속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식신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잠깐. 혹시 무영객 그놈 이걸 노리고?'

청각은 문득 불쾌한 상상을 했다. 무영객이, 언젠가 후대에 그의 진전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신을 봉인해둔 것이 아닌가 하는.

독요청광기만 제대로 이어진다면 청각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예견하고서 말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

찜찜함을 한편에 밀어 놓고서, 청각은 생각을 이어갔다.

만천화우의 요결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밝힐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일단은 당연명이 강대한 무력을 절실히 원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볼 참이었다.

사파 무인들 백수십을 일거에 몰살시킨 것을 보면, 무언가 변화를 일으킬 셈으로 보였다. 평범하게 살겠다는 놈이 왜 나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청각으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당가가 분란에 휩쓸리다 보면 당연명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분명 닥칠 터였다.

자고로 세상에는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은 법이었으니까.

화경에 이른 도사 놈이 당한 것만 봐도 그랬다. 흑사련주라는 이에게 당했다지.

무영객이 여러 화경 고수를 직접 상대하는 것을 본 청각은 알고 있었다. 화경에 이르렀다 해도 그들 사이의 격차가 작지 않게 존재한다. 밑바닥에서 올려다 보는 이들은 화경이라는 하늘이 모두 똑같게 보이겠지만, 막상 그 하늘에 이르면 더 높은 하늘_ 천외천(天外天)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연명이 절망할 때, 만천화우의 온전한 요결을 내밀면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_

'앞으로 재밌어지겠군.'

언젠가 자유로워질 날을 그리며, 청각은 홀로 흡족해했다.

****

"소가주를 뵙습니다. 이분들은...?"

당가에 들어서 외원에 이르자,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 오는 이가 있었다.

호원대주 당계중_ 원래 삼장로 당석형의 직속 무력대인 파롱대의 대주였던 인물이다. 당연명은 파롱대와 대장로 직속의 준령대를 합쳐 호원대라 명명하고 외원을 지키게 했었다. 그들이 지닌 무력에 비해서는 하찮은 일이라 할 수 있었기에 괜히 전력을 낭비하는 게 아니냐는 가문 내부의 의견이 있었지만, 당연명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가 보기엔 문지기나 하는 게 적당할 정도로 알량한 무위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마침 그가 번을 서는 차례인 모양이었다.

"공동에서 오신 본가 손님들이다."

당연명이 당계중을 힐끗 보며 말했다.

"조금 전 성도를 넘보는 사파 잡배들과 마찰이 있었다. 방비를 조금 더 강화하도록. 가문 주변에도 경계 인력을 배치하고. 수상한 놈들이 보이면 곧바로 알려라."

"명을 받듭니다."

전후사정이 궁금할 법도 한데 당계중은 더 묻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소가주 당연명의 신뢰를 사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내려진 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현소는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위계가 제대로 서 있지 않나. 상명하복(上命下心)의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 명문 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외원에 일행이 들어선 후.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소가주. 두 분 도사님들도 몸을 잘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당적신은 짧은 인사와 함께 상단 관련 업무를 처리하러 떠났고, 현소와 태허는 곧장 접객당으로 안내되었다. 원래는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간소하게나마 거쳐야 했지만, 동행하는 이가 소가주 당연명이었기에 그런 절차마저 생략된 것이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소가주."

"고맙소."

현소와 태허는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태허는 이제 당연명에게 반공대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께름칙해서 반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태허가 당연명의 소가주라는 신분을 생각해서 어느 정도 대우해주는 것으로 보인 까닭이다. 그나마 태허의 성미를 잘 아는 현소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

곧 시비가 들어와 태허와 현소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은은한 다향이 방 안 전체로 퍼지는 것을 느끼며 당연명이 말했다.

"그럼 저는 가주께 두 분의 방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이것도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소가주. 본파 장문인께서 보내신 서찰입니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시길."

현소가 건네는 서찰을 받아들고는, 당연명은 응접실을 나섰다. 당원진 역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그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고서 조금 뒤 현소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러모로 의외입니다. 사백."

"그렇더구나."

"아까 보셨습니까? 고작 외원을 지키는 무사가 그만한 무위를 지니고 있다니요. 웬만한 방파의 정예라고 봐도 무방할 실력자였습니다."

"비단 대주라는 그자뿐만 아니라 경계를 서는 이 대부분이 그랬지."

둘은 호원대의 사정을 몰랐기에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만한 전력을 외원 호위로 돌릴 정도로 당가에 여유가 있다고.

"또한 봉위대주 당원진이라는 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와 엇비슷한 경지로 보였는데. 조금 말을 나눠보니 봉위대란, 소가주의 호위 무력대라더군요. 그리고 봉위대 소속 무사들만 팔십에 달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들이 모두 당원진이라는 사내 정도의 무위를 갖췄다면...."

"그 자체로 상당한 무력이겠지."

"그렇습니다. 아무리 소가주라 한들 그만한 힘이 약관도 되지 않아 보이는 청년에게 주어지다니. 생각보다 당가의 저력이 막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소가주 본인이겠지요_ 덧붙이면서, 현소가 말을 이었다.

"돌이켜봐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단신으로 이백에 가까운 인원을 몰살하다니요.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제대로 익힌 암기 무학과 극독의 조합이 이렇게나 위력적일 줄은.... 일당백(一當百)이 따로없더군요."

"그래.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심지어 그만한 인원을 상대하고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더구나. 대규모 방파 대전에서 유용한 전력이 되겠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었다. 적을 살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군의 애꿎은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겠지."

"...그런데 사백. 소가주가 무슨 생각으로 사파 무인들을 몰살했을까요? 적당히 쫒아버릴 수도 있어보였는데 굳이 다 죽여버렸다는 것은... 설마 흑사련과 척을 지겠다는 걸까요?"

"그건 가주를 만나봐야 알 것 같구나. 그간 웅크린 채 축적한 힘을 드러내려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만...."

태허는 잠시 흑사련주 유길준과의 일전을 회상했다. 대종사의 자질을 타고났다더니 유길준은 상상 이상의 괴물이었다. 몇 합 만에 수백 년 공동파 무학의 정수를 흠쳐가지 않았던가. 감히 복정공이라는 오만한 이름까지 지었더랬다. 태허의 입장에서는 내상보다 그게 더 뼈아픈 일이었다.

흑사련과 척을 지겠다는 것은 그런 존재를 적대하겠다는 것이다.

태허는 회의적이었다.

분명 당가의 소가주 당연명은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당가의 전력 또한 예상 외로 강대해 보였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사련주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결국 멸문으로 이어지지 않을까_

'혹시 모르지. 당가에 화경의 고수라도 있다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한 태허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당장 정도 대방파 중 한 곳인 공동파에서도 태허 자신 말고는 전무한 것이 화경에 이른 존재다. 만약 당가에 그만한 고수가 있었다면 다시 세가로 불리게 됐겠지.

태허의 상념은 다가오는 인기척과 함께 끊어졌다.

곧 응접실 앞에 다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당가의 총관 당규현이라 합니다. 두 분을 가주전으로 모시라는 가주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 79화<공동파(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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