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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85화 (85/134)

< 85화<사천지회(2)> >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태허는 당가가 내어준 거처에서 두문불출하며 온종일 내상을 치유하는 데 집중했다.

현소는 그런 태허의 곁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지켰다.

'만에 하나라도 사백께서 잘못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당가의 도움에는 감사하고 있다. 의견 조율에 꽤나 애를 먹긴 했지만 결국 공조를 하기로 했고, 이렇게 사도 방파들로부터 안전히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이제 공동과 당가는 동맹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느냐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쪽은 상대를 어찌할 수 없는데 상대는 이쪽을 죽일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一 그러한 불쾌한 사실에서 기인하는, 근원적인 불안감 때문이었다.

사백인 태허가 왠지 모르게 소가주 당연명을 꺼림칙해하는 것도 있었고.

'그러고 보니, 연명(延命)이라....'

현소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당연명의 모친, 독봉 당지혜가 처했던 상황을 대강이나마 짐작한다. 분명 힘든 시기에 아이를 가졌을 테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목숨을 이어가라一 그런 뜻으로 이름을 지었겠지. 가문의 후계자로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패기 따위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고 지어준 이의 소박한 바람만이 담겨 있으니.

하나 현소가 겪어 본 당연명은, 그가 아는 어떤 후기지수들보다 오연했다. 처세에 망설임이 없고, 결단력이 있었다. 명분이나 기치 따위에 휘둘리지도 않았고 실리를 챙길 줄 알았다. 패도를 걷는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신만의 협(快)을 세운 느낌이었다.

'당대와 후대의 가주가 모두 인물이다. 흑사련만 아니라면 당가는 다시 사천제일가로 발돋움하겠구나.'

그렇게 현소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누군가 그의 기감에 들어왔다. 현소의 눈초리가 매서워지려다 이내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도사님들. 석반(夕飯: 저녁밥)과 오늘 치 요상약을 대령했습니다."

"당이전 소협. 매번 고맙소. 상은 이리 주시오."

현소는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당이전을 맞았다. 그가 이렇듯 살갑게 당이전을 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연명은 내상을 입은 태허를 배려하여 그들의 거처를 의각 주변에 배정했다. 원래 화경에 이른 고수가 입은 내상은 보통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력을 다루는 데 천하에서 손꼽히는 경지에 이른 이가 경맥에 손상을 입었다는 얘기였으니까. 보통은 그저 회복력을 믿고 요양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의각주 당호열쯤 되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약왕당주 시절부터 천하의 온갖 독과 약을 탐구하던 사람이다. 단순 의술이 아니라 약을 써서 몸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가히 경지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명은 당호열에게 태허의 내상을 빠르게 치유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명했다. 태허는 천하에 몇 없는 화경의 고수다. 빚을 지워놓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천금이 드는 것도 아닌 마당에야.

영약과 요상약은 엄연히 다르다.

천심환一 한때 소가주 경합의 중간 보상으로 주어졌던 약왕당의 비전 영약은 백년설삼을 몇 뿌리나 집어넣어 만드는 만큼 조제비용이 상당히 비쌌다. 이러한 영약은 내공 증진에 탁월한 효능이 있었지만, 내상에는 그다지 효험이 없었다.

반면 요상약은 복용한다 해도 내공 증진 따위의 효력은 없었다. 대신, 인체의 회복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준다. 경지에 이른 고수의 내상은 결국 경맥 손상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영약보다는 요상약을 복용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상약을 만드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은 원기를 북돋는 약재 몇 가지를 섞어 요상약이라 칭하는데 그건 그저 몸을 보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상을 입은 고수들이 별 효험이 없는 요상약보다는 귀한 영약을 찾는 편이었다. 그래도 영약이 내상에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았으니까.

아무튼 요상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초나 독초 따위가 인체에 미지는 영향을 두루 꿰고, 또 적당히 배합해 회복력만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했다. 설사 같은 종류의 약초나 독초라도 크기나, 몇 해를 살거나 묵었는지에 따라 효력이 다르다. 재료를 배합하는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래, 어찌 보면 독을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이래서 독과 약은 한 끝 차이라고 하는 거겠지.

당호열은 구엽강질초(九葉틀腹草)와 만다라자(夏K羅子\ 장류(章柳) 등 약초와 독초를 가리지 않고 배합해 새로이 요상약을 만들었다. 구엽강질초를 제하면 그리 귀하거나 비싼 재료들은 아니었다.

독기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복용할 이가 화경의 고수였기에 그저 회복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데 주안을 두었다.

처음에는 미심쩍은 눈으로 당호열이 만들어준 요상약을 내키지 않아 하던 태허였지만, 조금 복용해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모조리 먹어치우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 뒤로 태허의 내상은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

사백의 호전을 현소도 금세 알아차렸다. 당가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당호열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빠르게 내상을 가라앉힐 순 없었으리라. 명백한 은혜다. 그 당호열의 하나뿐인 손주가 당이전이었으니, 어찌 살갑게 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당이전은 소가주 당연명의 친우라 했다. 장차 조부의 뒤를 이어 의각을 맡을 인재라고. 차기 당가의 핵심 인물이라는 소리였으니 나이가 어리다 하여 마냥 함부로 대하기 힘들었다.

상을 건넨 뒤, 당이전이 가볍게 물었다.

"태허 진인께서는 좀 어떠신지요?"

"염려해주신 덕에 빠르게 좋아지고 있소. 사백께서 말씀하시길, 요상약을 복용할 때마다 차도가 확연하다 하셨소. 지금 같은 추세라면 보름 내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것이라고도. 부디 의각주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시오. 공동이 큰 빚을 졌소."

현소는 손을 맞잡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당이전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인사를 받으려고 여쭌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차도가 있으시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잠시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현소가 말했다.

"참, 외인인 빈도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만, 혹 가내에 무슨 일이 있소? 평소보다 조금 더 소란스럽다고 해야 할 지. 많은 이들이 부산스럽게 오가는 게 느껴져서 말이오."

"아. 그건 아마 제갈가 사람들일 겁니다. 얼마 전에 본가에 당도했는데, 여독을 풀고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모양이더군요."

"제갈가...? 그러고 보니 귀가의 소가주 경합을 제갈가에서 진법으로 돕지 않았소? 들은 기억이 나는 듯한데."

"그렇습니다. 본가와는 예전부터 우호를 다지던 사이인데, 특히 무량전주가 연명이... 아니, 소가주와 제법 연이 깊습니다. 경합이 진행되는 내내 소가주와 제가 속해 있던 조를 맡으셨으니. 이번에는 본가 내원에 제갈가 비전 진법을 설치해주기로 한 모양입니다."

"...양가의 교분이 퍽 두터운 모양이오. 본인이 알기로 제갈가의 진법은 천하 절기라 불릴 정도로 신묘한 데다, 일단 설지하고 나면 항시 관리할 인력이 필요해서 제갈가 외부에서는 그들의 진법을 보기가 쉽지 않다 들었는데."

무량전주 제갈창신이 당연명에게 약점을 잡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현소는 그저 의아하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제갈가만큼은 아니었지만 도문인 공동에도 몇 가지 진법이 전해지고 있었다.

상서로운 재료로 만들어진 깃발 따위를 방위에 맞춰 땅에 꽂아 발동하는 간단한 진법도 있었지만, 이렇듯 당가 내원처럼 작은 마을 규모에 준하는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진법이라면 필시 정교한 계산을 바탕으로 여러 구조물을 지어야 했다. 인력과 재물이 상당히 소요된다는 얘기다. 설마, 제반 비용 정도는 당가에서 부담하겠지...?

어쨌거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곳, 사천당가가 점차 용담호혈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것...!

****

제갈가 인물들이 당가에 도착한 것은 이틀 전이었다.

"항상 영민하게 처신해야 한다. 특히 당가나 소가주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은 무조건 삼가라. 그는 보기와 다르게 냉혹한 면이 있으니까."

제갈창신은 걸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제갈영영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들은 지금 일행을 대표해 당가의 가주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암독전一 제갈창신은 그곳에서 당연명이 장로들을 단숨에 쳐 죽이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몇 번이고 주의를 거듭해도 모자라다는 생각이었다.

"걱정 마세요. 숙부. 절대 실수하지 않을 테니."

제갈영영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이게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원래라면 이렇게 제갈창신을 숙부로 칭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히 첩실의 소생이라서가 아니다. 제갈영영의 모친은 제갈가 시비였다. 제갈 가주의 하룻밤 실수로 인해 태어난 존재가 그녀인 것이다. 처음엔 제갈가 핏줄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떳떳치 못한 생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자라면서 타고난 미모가 점차 드러나자, 부친인 제갈 가주의 애정을 한 몸에 받게 되어 비로소 제갈 성씨를 쓸 수 있었다. 모친 역시 그때 첩실로 들어서게 되었고.

본처 소생인 이복 오라비 역시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며 제갈영영을 환영했다. 이미 소가주의 자리를 확립했다는 여유에서 그러는 것일 것도 있겠지만, 그녀는 오라비의 눈에서 어떤 음습한 욕망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게 제갈영영이 지닌 미모로 인해 주어진 것들이었다. 만약 그녀의 미모가 범상한 수준이었다면 얻지 못했을 기회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인생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최대의 기회가 도래했다. 제갈창신의 말에 따르면 장차 제갈가는 당가에 복속될 것이라 했다. 그럼 당가 소가주의 마음을 휘어잡으면, 단숨에 제갈가의 그 누구보다 귀한 신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긴 것도 그렇게나 영준하다고 했지.'

제갈영영은 지닌 미모만큼이나 눈이 높았다. 이제껏 헌앙하다 불리는 후기지수들을 몇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당가 소가주 당연명은 무위도 드높을 뿐 아니라 용모마저 짝을 찾기 힘들 만큼 준수하다 했다. 기대가 됐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소."

암독전을 호위하고 있는 봉위대 무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갈창신과 제갈영영은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암독전 안에서는 시비가 안내를 맡았다. 그녀를 따라 또 걸음을 옮긴다. 몇 개의 문턱을 지나고 나자 시비 또한 한쪽으로 물러났다.

안쪽에 가주와 소가주께서 기다리신다는 말과 함께.

"...들어가자꾸나."

제갈창신은 조금 긴장한 낯빛이었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설마 소가주 당연명이 그 사이에 또 무위의 진전을 이룬 것일까. 괴물이 따로 없다一 제갈창신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놀라운 기운의 정체가 당연명일 것이라고. 당가에 도착하자마자 독봉 당지혜가 새로이 가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까닭이다. 젊은 시절에는 꽤나 이름을 날렸다지만 이만한 기운을 지닌 자가 독봉일 리는 없었다.

제갈영영은 그녀대로 표정을 최대한 가꾸고 숙부의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들어서자마자 당연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중앙에는 그와 남매처럼 닮은 여인이 남색 장포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아 "

제갈창신과 제갈영영은 각자 다른 이유로 경악했다.

< 85화<사천지회(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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