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현양문(1)> >
당가가 위치한 성도는 드넓은 사천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도시다.
비단 인구뿐만 아니라 오고가는 물동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의미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 방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당가를 제하면 무관 몇 개가 고작이었다. 이는 일찍이 사천의 지존으로 불리는 흑사련주 유길준의 엄명이 있었던 까닭이다.
一당가 약왕당이 민생에 크게 도음이 되니 그들의 영역인 성도는 침범하지 마라.
마광천과의 혈전으로 당가가 쇠락한 틈을 타 성도 진출을 노리던 사도 방파들은 그 말 한마디에 모두 물러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흑사련주는 언제든 신공절학을 내릴 수 있는 인물 아닌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만약 거스른다면 또 흑사련주의 눈에 들고자 하는 다른 이들의 공격을 받게 될 공산이 컸고.
당가로서는 다행한 일이었지만, 대신 성도를 제외한 사천 전역에 분포되어 있던 사업체 등 기존에 누리던 이권과 영향력을 모조리 포기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꼬리를 자른다는 석척(嫌編: 도마뱀)마냥. 결국 성도에 고립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고립된 당가는 물자를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쇠락했다고는 하나 한때 세가라 불릴 정도로 거대했던 가문 아닌가. 언제고 재기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세를 유지하고자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마어마한 물자가 필요했다.
상인들은 금방 돈 냄새를 맡았다. 성도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당가의 처지를 헤아린 것이다. 그들은 당가를 상대로 물품을 공급하고 웃돈을 받았다. 타지의 시세보다 삼 할에서 오 할은 비싼 값을 요구했다. 특정 물품은 곱절의 가격을 부르기도 했다.
당가로서는 장사치들의 수작을 알면서도 당해줄 수밖에 없었다. 괜히 그들과 마찰을 일으키면 당장 물자를 수급하는 데 차질이 생길 테니까. 약왕당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워낙 막대했기에 대충 감당할 만하기도 했고.
한편 성도에서의 거래가 이문이 크게 남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천 전역에서 물건을 떼 오는 상인들이 많아졌다. 너도나도 당가와 거래를 하려 했다.
자연히 성도로 가는 길목에는 작은 마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오고가는 상인들을 노리고 생겨난 상권이다. 성도 내부는 당가때문에 물건이나 숙박 등의 시세가 높게 형성되어 있었기에 상인들도 성도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주로 이용했다. 당가와의 거래에서 확정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편이었기에 상인들의 주머니도 다른 때보다 가볍게 열렸고.
어찌 보면 당가로부터 새어나오는 부(富)에 기생하듯 생겨난 마을들이었지만, 어쨌거나 번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을에는으레 그렇듯이 사도 방파들이 하나씩 들어앉아 있었다.
당연명 일행이 덕양으로 가기 전 들른 마을, 현양촌(賢良村)과 거기 자리 잡은 현양문(賢良門)도 그런 곳이었다.
현양문의 전신은 현양상단으로, 원래부터 무림 방파였던 것은 아니었다. 성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작은 상단이었던 그들은 당가와의 거래를 통해 빠르게 부를 축적했다. 현양상단주는 남진순이라는 자였는데, 그는 우연찮게 흑사련주 유길준의 신위를 목도한 적이 있었다. 유길준이 청성을 무너뜨릴 때 마침 근방에 있었던 것이다.
청성파의 멸문一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달아 아미와 점창도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온 정파의 아홉 기둥이 순식간에 여섯으로 줄어드는 대사건이었으니까.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신진 방파가 벌인 일이었지 않나.
남진순은 확신했다. 향후 일백 년간은 흑사련이 사천을 지배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어느 정도 재물을 모으자마자 전 재산을 흑사련에 쾌척하고 그 휘하에 들기로 한 것이다. 이미 사도 천하가 되어버린 사천에서 무탈하게 살아가려면 무력이나 뒷배경이 필수였다. 성도에 계속 자리 잡고 있으면 당분간이야 안전이 보장될 뿐더러 재물을 쌓기 쉽겠지만 과연 그게 얼마나 가겠나. 결국 당가는 무너지고 성도 역시 흑사련 휘하 방파들에게 먹히고 말 거라는 것이 남진순의 판단이었다.
一네 자질이 지극히 평범하구나. 보아하니 익힌 것도 간단한 토납법 정도인 듯하고. 그저 대대손손 익히면 좋을 간단한 무학 몇 개를내려주마.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그가 갖다 바친 금액이 제법 크긴 했지만, 설마하니 흑사련주로부터 무공을 하사받을 줄이야...!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흑사련주가 직접 창안하고 개변한 무학을 내린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자신에게는 해당되는 일이 없으리라고 여겼던 남진순이었다. 그저 든든한 배경을 얻으면 그걸로 족할 셈이었는데.
흑사련이 세를 불리는 초기였던지라 가능한 일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흑사련의 저력을 알아보고 투신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특혜였다.
게다가 흑사련주는 '간단한' 무학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도 무학의 대종사로서 군림하는 그의 입장에서였고, 남진순에게는 그야말로 신공절학이 따로 없었다. 남진순은 분수를 아는 자였다. 그나 그의 자식들이 타고난 오성으로는 상승 무학을 익힌다 하더라도 어차피 제대로 된 성취를 이룰 수 없으리라 여겼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었으니.
남진순이 받은 것은 호흡법과 검법 하나씩이었다. 원래 흑사련의 평무사들이 익힐 무학으로 창안해두었다 폐기한 것이라 했다. 익히기는 쉽지만 한계가 너무 명확한 까닭에.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았으니 마음대로 부르라는 말도 있었다.
남진순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이들이 익히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만의 독문 무학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성도로 돌아온 남진순은 조금 남은 가산을 모두 정리한 다음, 일가친척들을 모두 이끌고 떠났다. 흑사련 소속이 된 이상 성도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련주의 명은 지엄하니까.
남진순 일가, 현양상단이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은 성도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다. 남진순은 돈을 풀어 이름 없는 마을을 그럴 듯하게 정비하고, 현양촌이라 이름 붙였다. 원래 현양촌에 살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격이었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금력과, 부리는 무사들에 압도되어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진순과 그의 직계 혈족들은 곧장 흑사련주로부터 하사받은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대력심법(大方心法)과 흑사검법(黑弼劍法)一 무학에 조예가 없던 남진순이 대충 지은 이름이었다. 삼류무공 같은 이름들이었지만, 익힌 자들은 아주 빠르게 강해졌다. 대력심법을 운용하면 정순하지는 않지만 많은 양의 내가진기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쌓였고, 그걸 바탕으로 펼치는 흑사검법은 온갖 변초가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어 제법 경지에 오른 검객이라 해도 쉽게 대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딱히 오묘한 이치 따위를 궁구하지 않아도, 그저 부지런하게 수련을 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무학一 과연 사파의 그것다웠다.
자신감이 조금 생긴 남진순은 현양상단을 아예 현양문으로 개파하고, 본격적으로 무림 방파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 번은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는 주변 문파와 시비가 붙었지만, 흑사련주로부터 하사받은 무학을 익힌 현양문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현양문의 대력심법과 흑사검법은 금세 유명해졌다. 그게 흑사련주로부터 하사받은 무학이라는 사실도.
현양문에 들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양문주 남진순은 찾아온 무인들 중에 상당한 경지에 이른 자들을 금력으로 포섭했다. 상인이나 상단의 생리를 잘 아는 남진순이 그들에게 적절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현양촌은 점차 번성했다. 그리고 현양문이 사실상 현양촌의 주인이었기에 오히려 성도에서 상단을 운영할 때보다 더욱 부유해졌기에 금력으로 고수들을 포섭하는 일이 가능했다.
또한 정말 마음에 드는 몇몇 젊은 고수들은 아예 딸을 주면서까지 현양문으로 끌어들였는데, 혼사를 제의 받은 이들 중에 거절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사위가 되면 대력심 법과 흑사검 법을 전해주겠다는 말에 혹한 것이다.
무림에서 고수로 인정받을 정도의 인물이면 무공광일 가능성이 컸다. 상승무학이라면 환장을 하는 것이다. 그 흑사련주가 친히 내렸다는 무학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혼사쯤은 아무래도 좋은 이들이 많았다. 남진순의 여식들이 제법 나쁘지 않은 미모를 지닌 것도 있었고.
즉, 남진순의 사위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검도 고수라는 얘기였다. 이제는 대력심법과 흑사검법까지 익혔고.
흑사련 휘하 사도 방파들 사이에서는 현양문이 규모는 작지만 실력 있는 문파로 인식되고 있었다. 아직 소문주라 부를 만한 이가 없어서 금번 사천지회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현양문주 남진순의 자식들은 이미 장성했는데 소문주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니, 설마 외인의 손에 문파를 맡기려는 것일까一 한창 남진순이 사위들을 받아들이자 문파 내부에서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곧 남진순의 의중이 드러났다.
一내 자식들이지만 너희들의 자질은 미천하다. 무공을 익히는 게 늦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한 대를 건너뛰고 손주 중 하나에게 문파를 물려줄 셈이다. 물론 친손주와 외손주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자질만 입증된다면 기꺼이 소문주의 자리를 내어줄 것인즉.
고수들을 사위로 들인 것에는 현양문의 저력을 강화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남진순 자신의 혈통을 개량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대력심법과 흑사검법을 익힌 남진순의 사위들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자식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나만 잘 낳아 기르면 현양문이 통째로 굴러들어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양문에 오기 전 익히고 있던 독문 비기까지 아낌없이 자식들에게 전수해가며 경쟁했다.
그래서인지 남진순의 손주들 중에는 또래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아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러한 현양문의 사정을 암왕대원 장길이 일일이 파악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저 심화방은 십방(什防)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당가가 있는 성도에서는 정북쪽이었으며, 조금 동쪽에 있는 덕양을 거쳐 이동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 덕양에 가는 길목에 현양촌이 있었던 것이고.
"갑자기 검은 왜?"
마을에 들르자마자 대장간을 찾는 당연명에게 당미려가 물었다. 무복 안에 이미 수백의 인원을 살상할 수 있는 암기를 한가득 숨기고 있으면서 또 웬 검이란 말인가?
"검을 차고 있는 게 의심을 덜 받을 것 같아서."
생각해 보면 그랬다. 무복 차림에 병장기 하나 패용하고 있지 않으면 권각술을 익혔거나 암기 무학을 익힌 자로 보일 것이다. 사천에서는, 특히 성도 근방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고.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명으로서는 다른 내심도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장검 한 자루쯤은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미 검신의 경지에 올라 장검이건 단검이건 수리검이건 딱히 검의 길이에 구애받지 않는 당연명이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검공을 발휘하려면 역시 장검이 제격이었다.
왠지 이번 사천지회에 대한 감이 좋지 않았다. 불길하진 않지만, 영 찝찝하달까. 장검이라도 하나 허리춤에 걸어두면 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었다.
"듣고 보니 소가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면 대장간으로 가시지요. 제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장길은 행인에게 다가가 금세 대장간의 위치를 알아왔고, 일행은 걸음을 옮겼다.
정오一 태양이 중천에 떠 있을 때였다.
< 94화<현양문(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