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95화 (95/134)

< 95화<현양문(2)> >

'화창하군.'

현양문주 남진순의 둘째 사위 연우중은 장원을 거 닐면서 생각했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그야말로 창천(蒼天)

- 무엇 하나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는 풍경이 몹시도 기껍게 느껴진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군. 너무나도 순조로워.'

연우중은 조용히 입매를 말아 올렸다. 흡족한 웃음. 이대로라면 현양문을 장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나뿐인 그의 아들 연소청은 문주 남진순의 손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으니까.

남진순은 누가 봐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연소청을 편애했다. 다른 손주들과 달리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았고, 연소청에 관한 일이라면 큰돈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영약을 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흑사련의 이름 높은 고수를 초빙하여 벌모세수를 받게 하기도 했다. 사실 연소청이 태어나자마자 연우중이 손을 써둬서 벌모세수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또 연소청이 열 살이 되는 해에는 커다란 연무장이 딸린 장원을 지어주기도 했다. 무공 수련에 번잡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지금 연우중이 거닐고 있는 장원이 바로 그때 지어진 것이다. 또한 아직 어린 연소청이 개인적으로 부릴 수 있는 호위 병력까지 붙여주었다.

다른 손주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혜택이다.

그리고 연우중과 둘만 있을 때 남진순은 몇 번이고 속내를 드러낸 바 있었다. 앞으로 현양문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연소청이 될 거라면서.

아마 곧 정식으로 소문주로 임명이 되겠지.

남진순의 다른 사위들은 두셋씩 자식을 보았지만 그들의 자질은 연소청의 자리를 넘보기에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당연한 일이지.'

호부 밑에 견자는 없는 법이니까一 연우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진실한 신분이 드러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무림에 연가는 그리 많지 않다. 연우중은 굳이 이름을 숨기지 않았다. 그 누가 상상이나 할까. 고작 이런 중소문파 현양문의 데릴사위로 천마신교의 인물一 그것도 교주의 핏줄이 들어앉았을 거라고.

그랬다.

현양문주 남진순에게는 그저 한미한 무가 출신이라고 둘러댔지만, 연우중은 사사로이 현 천마신교 교주의 조카가 되는 자였다.

한때 소교주였던, 지금의 마광천주 연중혁과는 사촌지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다지 왕래는 없었지만 말이다. 연중혁은 아비인 교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한테도 살갑게 대하는 일이 없었다.

어쨌거나 천마신교에서도 가장 존귀한 혈통이 바로 그 연가이니, 현양문 남가의 피가 반쯤 섞였다 하더라도 연소청의 무학에 대한 자질이 보통을 아득히 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곧 사천지회가 열린다지.'

연우중은 상념에 빠졌다. 심화방이 주관한다는 이번 사천지회는 여러모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상태였다. 흑사방 휘하의 굵직한 사도방파였던 태을묵검파와 천진방, 그리고 목영궁이 모종의 일로 몰락해버 렸으니,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이권을 놓고 참가자들끼리 치열하게 다투게 될 터였다. 그리고 당가의 소가주一 당연명도 참가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고.

성도에서 가까운 까닭인지, 이곳 현양촌에서는 당연명에 대한 소문을 꽤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태을묵검파와 천진방의 삼백 인원을 몰살시킨 것이 당가 소가주라던가.

한 번 본 사람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미모의 소유자라던가.

십 년이 넘게 당가를 쥐락펴락 해온 장로들을 무릎 꿇렸다던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성도 인근에서 벌어진 학살극 역시 당가 소가주의 소행이라고 했다. 우모침을 이용한 암기 세례로 이백에 가까운 인원을 몇 호흡 만에 전멸시켰다고.

심지어 죽은 이들 중에 목영궁주 장태천이 있다는 것은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가 소가주 당연명의 나이가 열여섯 정도인 것이 알려진 다음이라 더욱 그랬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무위인가 말이다. 하지만 과장이라 지부하기엔 목도한 양민들이 꽤 많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사건만큼은 신빙성이 있었다.

그리고 연우중은 더한 괴물을 본 일이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납득했다.

마광천주 연중혁.

'...경악 그자체였지.'

연우중은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는 성년이 되는 해에, 교도들 앞에서 신위를 드러내는 행사를 가진다. 천마신교는 강자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 당연히 그 정점인 교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무력을 지녀야 했고.

후계인 소교주 역시 장차 교의 정점이 되리라는 확신을 교도들에게 심어주어야 했다.

보통은 대주급 인물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행사를 마치는데, 오만하게도 연중혁이 호명한 것은 교주 다음으로 가장 고강한 무위를 지녔다는 좌사와 우사였다. 당시에 연우중은 사촌 형인 연중혁이 미쳐버린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좌사와 우사는 교주와 함께 화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무인이었던 까닭이다. 상대하는 것도 상대하는 것이었지만, 좌사와 우사의 입장에서는 큰 치욕으로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좌사와 우사는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긴장한 낯빛으로 나섰다. 마지 하수가 고수를 대하듯 조심스런 움직임一 그리고 곧 드러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합공을 했음에도 좌사와 우사가 연중혁에게 크게 밀린 것이다. 그들은 탄복과 함께 패배를 인정했다.

실로 압도적인 무위!

그리고 그때 생겨난 연중혁의 추종자들이 바로 지금 마광천을 구성하는 인물들이었다.

아무튼 연우중의 입장에서는 당가 소가주 당연명이 마냥 불가해한 존재는 아니었다. 수백의 인원을 격살한 것도 대량살상에 적합한 당가 무학의 특징을 고려하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목영궁주 장태천이 방심을 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어차피 소청이도 그 나이쯤 되면 그만한 무위를 지니게 될 터.'

연우중은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연소청은 상당한 자질을 타고났다. 비록 임무 중에 얻게 된 자식이지만 혈육의 정도 느끼고 있었고. 언젠가는 아비의 비밀을 얘기해 줄 생각이었다. 위대한 신교의 절학을 익히게 하면 당가 소가주쯤은 가볍게 압도할 수 있는 무위를 갖추게 되리라.

현양문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대력심법과 흑사검법은 연우중도 익힌 바 있었다. 과연 흑사련주의 손길이 닿은 무학이라 단순하면서도 현묘한 구석이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하찮은 남가의 핏줄에나 어울리는 무공이다. 연소청의 자질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마 연소청도 곧 두 무공을 대성하고 새로운 무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겠지.

그때 신교의 상승 무학을 전수해 줄 요량이었다.

아직은 후계가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은데다가, 연소청의 나이가 어리기에 현양문이 사천지회에 참가할 일은 없었다. 아마 다음번 사천지회에나 참가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 때 사천지회에 참가한 방파들은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가공할 무위를 지닌 신진 고수의 출현에.

사천지회는 방파의 이름을 드높이고 영역을 확장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참가하는 후계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흑사련에서도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연우중이 신교로부터 받은 임무는 바로 사천의 사도 방파 중 한 곳에 침투하여 흑사련의 고위급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의 천마신교는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세를 자랑했다. 물론 마광천의 세를 포함했을 때의 얘기다.

호북을 비롯한 중원 무림 동쪽 전역에 세를 떨치고 있는 마광천 덕분에, 천마신교는 감숙과 섬서, 그리고 사천 정도만 어찌할 수 있다면 마도 천하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 예견했다.

이제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고 곤륜을 시작으로 정도 무림을 짓밟는 행보를 시작할 참이었다.

다만, 아무리 천마신교라도 사천의 흑사련만큼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흑사련주 유길준이라는 개인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었다.

흑사련이 아니라 흑사파이던 시절에 이미 구파 중 셋을 멸문시켰지 않나. 아미와 점창의 장문인이 합공을 했음에도 도리어 무참히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꽤나 유명했다. 겨우 구파 중 일익에 불과한 곤륜과 그 오랜 세월 드잡이를 하고 있는 천마신교의 입장에서 유길준의 무력은 그야말로 측정불가였다. 물론 곤륜파 장문인 마선의 무위가 다른 구파의 장문들보다 훨씬 뛰어나긴 했지만....

게다가 흑사련주는 대종사의 자질을 타고나서, 휘하 세력들에게 시시때때로 무공 포상을 내려 전력을 강화해 왔다. 원래부터 머릿수 하나만큼은 압도적이었던 사도 세력이 무력까지 갖추게 된 셈이다. 당연히 천마신교로서는 흑사련과 부딪치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마도와 사도가 부딪쳐봤자 좋을 것은 정도 세력뿐이 니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천마신교에서 주목한 것은 바로 흑사련주 유길준에게 이렇다 할 만 한 후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수양딸인 유연희가 있었지만 그녀에게 딱히 무학을 전수한다던가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유길준의 사후에는 어떻게 될까.

구심점이 없어졌다고 해서 쉽게 와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천에 한정되긴 했지만 어렵사리 이룩한 사도 천하를 스스로 포기하진 않겠지. 그러나 정말 걸출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한, 흑사련이 지금의 체제처럼 굴러갈 순 없었다. 아마 수뇌부에서 의견을 모아 공동으로 흑사련을 운영하게 되겠지.

천마신교에서 노리는 것은 그 수뇌부의 자리였다. 포섭보다는 아예 신교의 사람을 박아 넣을 셈이었다. 흑사련주 유길준이 아직 젊으니까, 그의 사후를 기약하기엔 많은 세월이 남은 까닭이었다.

임무에 투입된 것이 교주의 직계는 아니지만 무려 연가의 사람이라는 점이 임무의 경중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현양문의 사정이 가장 침투하기 용이하다 판단되어 연우중이 남진순의 둘째 사위가 된 것이다.

또한 현양문의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현양촌은 알게 모르게 천마신교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성도 주변의 다른 마을들 보다 유난히 번성한 것도, 그리고 위협적일 수 있었던 주변 문파가 소리 없이 사라진 것도. 현양촌에 살고 있는 양민들 중에도 신분을 숨기고 있는 교도들이 꽤 있었다. 은신에 능한 무력대 하나가 통째로 연우중의 명을 기다리며, 또 연소청을 비밀리에 호위하고 있었다.

'슬슬 소청이 녀석이 올 때가 됐는데.'

연우중은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어릴 적을 쏙 빼다 박은 듯한 녀석. 어려서부터 받들어지며 자란 탓인지 오만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연우중은 큰 흠결로 생각지는 않았다.

무위가 뛰어난 이들은 독선적인 경향이 짙다. 쌓아 올린 무학이 남들보다 월등하니까. 어린 연소청도 배다른 형제들보다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자만심이나 오만함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주면 될 터, 굳이 이런 작은 마을에서 아들에게 겸양 떠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대인. 연 대인...!"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가 있었다. 몹시 다급한 어조.

연우중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더니 달려오는 사내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무슨 일이냐."

연우중의 낯빛은 조금 딱딱해져있었다.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사내는 연우중이 아들 연소청의 몸종으로 붙여둔 자였다. 홀로 돌아왔다는 것은 연소청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그럴 리가. 소청이 근처에는 천월대가 지키고 있을 텐데.'

천월대는 천마신교의 정예 무력대 중 하나였다. 전원이 마공을 익혔을 때 드러나는 특징, 마기(魔氣)마저 감출 수 있는 경지의 무인들이었다. 그들 열 명이면 웬만한 중소 문파쯤은 하루아침에 멸문시킬 수 있으리라. 그런 천월대 삼십 명이 연소청을 호위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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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종 사내는 겨우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소청 도련님이, 웬 죽립인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장간에서一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연우중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엄청난 바람이 후욱 일고 장원의 정문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장원 곳곳에서 스스숙 일어난 그림자들이 연우중의 뒤를 쫒았다. 거의 칠십에 달하는 천마신교 천월대 인원들이었다.

망연한 표정의 몸종 사내만이 우두커 니 서 있을 뿐이었다.

< 95화<현양문(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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