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03화 (103/134)

< 103화<심화방주 여설련> >

당연명이 신분을 밝히자, 삽시간에 소요가 일었다.

"방금, 당가라고 했지? 참가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정말로 나타날 줄이야."

"듣던 대로 엄청난 미남이군. 성도의 여염집 규수들이 일제히 상사병에 빠졌다는 게 마냥 헛소문은 아니겠어. 오히려 소문이 모자란 감이 있는 듯해."

"여색을 밝히는 것일까요? 대동한 두 사람이 모두 여인인데. 무공보다는 미색을 보고 뽑은 것 같아요. 사천지회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닌지."

"아직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당가의 인물들은 겉보기로 무력을 측정하기 어렵다. 용독술과 암기 무학의 살상력을 만만히 봐선 안 돼. 태을묵검파의 일을 떠올려 봐라."

"검을 차고 있어서 당가의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군. 위장용이겠지? 당가에 특출난 검공이 있다고 들은 적은 없는데. 장로 중 하나가 검을 쓴다고 얼핏 들은 것 같긴 하다만."

"간도 크군. 별다른 호위 병력도 없이 이곳에 온 모양이야. 엄밀히 말하면 정도 무가인 당가의 입장에선 이곳은 그야말로 용담호혈이나 다름없지 않나. 게다가 이미 원한을 진 곳들이 있을 텐데. 태을묵검파나 천진방, 목영궁과 같은."

"그러고 보니 아까 일행이 있었죠. 한가닥 하게 생긴 사내였는데, 어쩐지 천진방이 곧장 움직인다 했더니 그자를 쫒아갔나봐요."

"성도의 동태를 면밀하게 살펴야겠군. 만약 사천지회에서 소가주가 시해당한다면 당가가 어찌 나올지...."

"성명이 당연명이라고 했죠.... 소문에 의하면 저자는 단신으로 수백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암기 무학 성취가 깊다던데, 오히려 사천지회의 다른 참가자들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아마 당가의 무학이 대량살상에 적합해서 그런 것일 거요. 급습의 묘를 제대로 살린 부분도 있을 거고. 어느 정도는 실제 무위보다 과장이 있다고 봐야겠지."

"동의하오. 극독과 암기에 대한 경계를 충실히 한다면 다른 참가자들이 허무하게 당할 일은 없을 거라 보는데. 특히나 몇몇 방파의 후계는 련주로부터 하사받은 절세 무학을 꽤 깊게 익혔다고 들었소. 더군다나 사천지회에서의 갈등은 비무... 즉, 대인전의 양상을 띄니 당가 무학의 강점을 살리기 어렵겠지."

"통찰이 대단하시구려. 본인이 보기에도 당가 소가주의 내공 성취가 나이에 비해서는 분명 뛰어나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아주 당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소. 분명 비무 요청이 쇄도할 텐데, 의도치 않은 차륜전의 형태가 될 것 같구려."

"련주의 비호 아래, 당가가 누려 왔던 성도의 이권들을 탐내는 방파가 많을 테니까요."

당연명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들을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었다. 당미려와 제갈영영을 두고 음담패설 따위를 입에 담는 이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은 출수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사천지회에 참가한 사도 방파의 후계들부터 손을 쓰는 게 순서 다.

하지만 우리 안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당연명이 서늘한 말투로 물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지?"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신분이 신분이시다보니, 묶으실 곳을 배정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이제 안으로 드시면 됩니다.

곧장 안내를 받으실 수 있을 겁 니다."

당연명 일행은 그렇게 심화방 안으로 들어섰다.

****

붉은 색 장식물이 가득한 방 안.

"그래. 드디어 왔단 말이지?"

호화롭게 치장을 하고, 풍만한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옷을 입은 여인이 중얼거렸다.

"예. 방주."

보고를 올린 사내가 공손히 대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면서 그는 여인의 몸매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여인, 심화방주 여설련에게는 괴이한 취미가 있었다. 일부러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그녀를 보는 사내의 눈에서 욕정의 빛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태워 죽이는 것이다.

여설련이 익힌 무학은 적련연화술(的諫燃火術)이었다. 적련연화술을 대성하게 되면 반경 삼장(약 9m) 이내 존재하는 상대를 과녁으로 삼아 의념만으로 태워버리는 게 가능해진다. 물론 일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아 직접 접촉해야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상승의 양강 무학임에는 틀림없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양강 무학이라 함은, 말 그대로 양기가 강성해야 대성할 수 있는 무학이란 의미였다. 여인인 여설련이 어찌 양강 무학인 적련연화술을 대성할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강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적련연화술을 어떻게 익힐 수 있었던 것일까.

"놈을 어떻게 죽여야 이 원한이 풀릴까...."

스산한 어조에 엎드린 사내가 몸을 흠짓 떨었다.

****

여설련은 원래 황실 고관대작의 애첩이었다.

그녀 스스로 택한 삶은 아니었다. 고아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루에서 자란 여설련은, 자연스럽게 기녀가 되었고 여러 손님을 받다 고관대작의 눈에 들게 된 것이었다.

다른 기녀들은 한 순간에 팔자를 고친 여설련을 부러워했지만, 여설련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겼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면 무엇 하나. 사람이 아니라 노리개의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따끔씩 기루에 들르곤 했던 무림인들을 동경했다. 자신도 저들처럼 드넓은 천하를 누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모시던 고관대작이 급사했다. 복상사라고 했다. 여설련 말고 새로 들인 첩에게 빠져 있을 때의 일이었다.

여설련은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고관대작은 희귀한 무공서를 수집하는 추I미가 있었다. 여설련은 잠자리에서 고관대작이 적련연화술이라는 무학에 대해 얘기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굳이 도검을 부딪질 필요없이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상대를 불태워 죽일 수 있다니, 무공을 잘 모르는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보통 무학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여설련은 적련연화술이 적힌 무공서를 홈쳐 달아났다. 관도를 벗어나 도주하던 여설련은 산을 넘다 도적떼를 만나기에 이르렀는데, 그때 그녀를 구해준 것이 바로 막인후였다. 당연명에게 죽은 태을묵검파의 장문.

그게 인연이 되어 둘은 사랑에 빠졌다.

여설련은 무공의 기초를 막인후에게 배웠다. 막인후는 원래 구파의 일익인 무당의 제자였기에, 더없이 좋은 스승이었다.

어느 정도 무공의 성취가 깊어졌을 때. 여설련은 적련연화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양강 무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시도한 일이었다.

여설련은 막인후를 사랑했지만, 적련연화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왠지 그녀가 무공을 익히기 위해 막인후에게 접근한 것처럼 느껴질까 우려해서이기도 했고, 적련연화술을 얻은 경위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고관대작의 애첩이었던 것이나 기녀였던 과거가드러날 것 같았던 까닭이다.

무공을 익히는 것이 늦었지만, 그래도 여설련은 오성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혼자서도 순조롭게 적련연화술에 입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설련이 적련연화술의 삼 성 경지에 이르렀을 때 발생했다. 양강의 무학인 적련연화술은 여인의 몸에 맞지 않았다. 단순히 맞지 않는 게 아니라, 조금씩 몸을 갉아먹었다. 여설련은 뒤늦게 양강무학을 여성이 억지로 익히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 이상 적련연화술을 수련하지 않았음에도 여설련의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막인후는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여설련이 결코 내색하지 않았던 까닭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설련은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눈물을 머금고 막인후를 떼어내기로.

一가가, 미안해요. 저는 더 이상 당신과 함께할 수 없어요.

여설련은 막인후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다. 안 그래도 사문의 일로 상처를 크게 받은 사람이다. 어차피 시간 문제일 뿐. 자신은 결국 주화입마에 빠져 죽는다. 그리되면 막인후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평생 자책하며 괴로움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一련 매. 그게 무슨 말이오? 나를 두고 대체 어 디로 간단 말이오...!

막인후는 헤어짐을 납득하지 못했지만, 끝내 여설련의 완강함을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별했고,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막인후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혼인하고, 자식까지 낳았다. 여설련은 멀리서 막인후의 소식을 접하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더 이상 세상에 별 미련이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일까一

여설련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인물을 만나게 된다.

_여인의 몸으로 사내의 무학을 익혔군. 새로운 자살 방법인가?

흑사련주 유길준.

대종사의 자질을 타고나, 일견하는 것만으로 무학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존재.

—살고싶다면, 구결을 읊어보라.

여설련은 홀린 듯이 적련연화술의 구결을 읊었고, 유길준은 반 각이 채 되기 전에 구결을 고쳐 말해주었다. 개변이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내만이 익힐 수 있던 양강 무학은, 여인이 지닌 음기로 구현되도록 탈바꿈했다.

一대성에 이르면, 누적된 내상도 자연히 치유될 것인즉. 정진하라.

그 한 마디를 남기고서 유길준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여설련은 곧장 깊은 산중에 들어가 고련했고, 마침내 적련연화술을 대성할 수 있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서야 여설련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가 흑사련주 유길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인들을 모아 방파를 세우고, 심화방이라 명명했다. 흑사련에 투신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막인후의 태을묵검파 역시 흑사련에 속해 있었고.

여설련은 심경이 복잡했다. 몸이 정상이 아닐 때는 막인후가 다른 여인과 행복하게 살길 바랐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다시 그를 차지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흑사련 휘하 사도 방파끼리의 회합 때 다시 만난 막인후의 눈에서는 일말의 그리움도, 애정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애초에 그를 버린 것이 바로 여설련 본인이었으니 섭섭해 할 일도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

여설련은 홀로 속앓이를 하면서 가끔 막인후를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일부러 젊을 적 막인후와의 일을 은밀히 소문내기도 했다. 가정의 불화를 노리고서. 별다른 효과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설련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욕정을 품는 사내를 태워 죽이는 것으로 심화를 다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_태을묵검파의 막 장문이 죽었다고 합니다. 공동산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직 여전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는데, 막인후가 죽어버린 것이다.

여설련은 크게 분노했다. 대체 어떤 찢어 죽일 놈이 막 가가를...!

얼마 지나지 않아 흉수가 밝혀졌다.

믿기지 않게도, 새로이 당가의 소가주가 된 소년의 소행이라고 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태을묵검파의 정예 병력과 장문 막인후, 천진방주 정연송 등을 몰살시켰다고.

당연명.

여설련은 몇 번이고 원수의 이름을 곱씹으면서, 막인후의 복수를 다짐했다.

또 한 번 하늘이 도운 것일까.

마침 사천지회라는 판이 깔렸고, 당가 소가주 당연명이 그 판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여설련은 방심하지 않았다.

설령 만일의 경우라도, 당연명이 절대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계략을 하나 준비해 두었다.

실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 103화<심화방주 여설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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