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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09화 (109/134)

< 109화<생사결(3)> >

당연명은 좌우로 다가오는 이들에게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정면의 막천휘를 바라봤다.

쌍검을 부(父)자로 교차하고 있는 독특한 기수식과 불길하게 일렁이는 흑색의 기운.

'그 녀석보다 못하군.'

당연명은 소가주 경합의 마지막 관문一 고독전에서 마주했던 청년을 떠올렸다. 스스로 태을묵검파의 간자라고 밝혔던 당극린.

그때 보았던 묵검기는 훨씬 더 짙은 살의를 머금고 있었다.

'내공 성취는 더 나은 것 같은데.... 태생적인 차이인가.'

묵검기는 살의를 검기에 담아 구현하는 기예다. 죽인다一는 원초적이면서도 강렬한 의념을 이용해 검기를 강화하는 것이다. 구현 방식이 검강과 흡사하다. 그러나 검강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진정한 검강은 심상을 검으로 구현해낼 정도의 경지一 조화경에 이른 고수가 그야말로 집념이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의지를 검 하나에 담아냈을 때 비로소 발현되는 극강의 기예다.

결국 묵검기는 그저 열화(梁化)한 검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당연명의 관점일 뿐이었다.

검강에 미치지 못한다지만 살의라는 의념이 결합된 묵검기는 보통의 검기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괜히 막인후가 성을 넘어서까지 명성을 떨친 게 아닌 것이다. 웬만한 검기로는 그의 묵검기를 감당할 수가 없었으니.

어쨌거나 묵검기를 구현하고, 또 위력을 결정짓는 요체는 바로 살기였다. 내공이 아니라.

살기는 원초적인 의념이기에,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컸다. 아무리 막천휘가 당극린보다 내공이 깊다 해도, 강한 살기를 타고나지 못했다면 묵검기의 구현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볼 것도 없겠군.'

당연명은 빠르게 흥미를 잃었다. 아니, 애초에 흥미가 없었다. 사실 태을쌍검식을 대성한 막인후조차도 당연명에게는 일초지적이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어떻게 셋을 죽여야 할지 고민할 뿐이었다. 지나지게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것은 자제해야 했다. 어떤 인물인지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흑사련 소속의 사도육존一 구환교검 상명일이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당연명의 목적은 사천지회에 참가한 사도 방파의 후계들을 모조리 죽여 사천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마교와 방파 대전을 벌이는 곤륜과 공동을 넘보지 못할 테니까. 그게 공동파 현소와의 약조였다.

상명일이 이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생사결에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으려면 적당히 실력을 감춰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양쪽에 자리 잡았던, 막천휘의 호위와 시종들이 별다른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동시에 네 자루의 검이 스슷一 쾌속하게 휘둘러진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쌍검을 다루는 이들의 경우 현란한 검초를 펼쳐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두 자루의 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두가지의 검로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합공에 유리하기도 했다.

당연명을 가두듯이 압박하는 검로 네 개가 그려진다. 여전히 당연명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쩔 셈인 걸까.

그리고 그런 당연명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노려보고 있는 막천휘.

'조금만 틈을 보여 봐라. 그대로 분쇄해주마...!'

막천휘는 호흡마저 멈추고 최적의 순간을 기다렸다. 죽을 셈이 아니라면 놈은 분명 움직일 터였다. 호위와 시종을 향해 손을 쓰려는 순간….

'아니.'

막천휘는 순간적으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원래는 놈이 손을 쓰려는 그때 움직일 참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당연명의 무위에 대한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저런 검격으로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놈도 이쪽을 경계하고 있을 테고.

그렇다면 차라리, 호위와 시종이 확실하게 당할 때를 노리자...!

막천휘의 눈에 잔인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한편.

짓쳐들어오는 네 개의 검을 보면서, 당연명은 대강 마음을 정한 뒤였다. 어떤 식으로 참가자들을 죽여 없앨지.

'단순하군.'

남들이 보기에는 급박한 상황처럼 느껴지겠지만, 검신의 영역에 이를 때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검로를 그려본 당연명으로서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다가오는 검이 둘이건 넷이건 열이건 상관없다. 이미 어떻게 그려질지 뻔히 보이는 검로를 회피하지 못할 리가 있나.

당연명은 가장 먼저 도달한 검격을 가볍게 고개를 기울여 피했다. 오른쪽 경동맥을 노린 검이었다. 거의 동시에,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어깨, 왼쪽 허벅지를 노리는 검격이 당도한다. 신법 암영을 펼질 필요도 없이, 당연명은 간단하게 왼쪽 발을 앞으로 뻗는 것만으로 모두 피해냈다. 이리도 간단하게 검격을 회피할 줄은 몰랐는지, 검을 휘두른 이들의 눈에 당혹이 어린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간 순간, 그 찰나에 당연명은 품속 독낭에서 우모침을 세 개 뽑아들었다. 거기엔 당이전이 만들어 준 단장열지독이 일정하게 발려 있었다.

'청각.'

[알았다.]

식신 청각의 독기가 우모침에 발린 단장열지독에 스민다. 원래도 내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독인 단장열지독이, 우모침에 발린 양만으로도 즉사에 이를 정도로 더없이 강력한 극독으로 화했다. 이매망량으로서 진고독이 된 청각의 독기는 당가십독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십독(十毒)이었으니...!

'우선 하나.'

당연명은 속으로 되뇌며 우측 사내의 턱밑에 우모침을 하나 꽂아 넣었다. 여기까지 일련의 동작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순간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여전히 두 사람은 당연명이 공격을 회피한 것에 대한 당혹을 내비치고 있을뿐이었다.

큭!

우모침에 찔린 우측 사내가 짧은 신음을 토했을 땐 이미 좌측 사내 역시 턱밑에 우모침이 꽂힌 상태였다. 그야말로 눈으로 쫒기 힘들만큼 빠르게 손을 쓴 것이다. 완전히 다른 시간축을 잣대로 살아가는 존재 같았다. 장내에 있는 수많은 이들 중에 오직 한 명一 구환교검 상명일만이 살짝 감탄하며 당연명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명이 좌측 사내에게 우모침을 꽂아 넣는 바로 그 순간.

과앙一!

바닥을 박살낼 셈일까. 지면을 박차고 엄청난 기세로 쇄도하는 인영이 있었다. 용천혈을 통해 내공을 있는 대로 쏟아낸 것인지 가속이 예사롭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당연명과의 거리를 좁힌다.

그는 바로 기회를 포착한 막천휘였다.

'기필코 죽인다!'

당연명이 우모침을 꽂아 넣는 동작이 워낙 쾌속했던지라, 막천휘는 호위와 시종이 모두 당하는 순간에야 움직일 수 있었는데, 오히려 잘 된 일인 것 같았다. 지금 당연명은 살짝 등을 내보이고 있었으니까. 검격을 회피하기가 쉽지 않은 자세였다.

막천휘는 필살의 각오로 태을쌍검식을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쇄도로 인해 뒤늦게 바람이 훅 끼치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휘둘러지는 흑색 쌍검에는 불길하게 일렁이는 검은 기운이 둘러져 있었다. 호위와 시종 사내가 검에 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당연명이 무언가 손을 썼으니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을 테지.

당연명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사실 천천히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극한의 집중 상태인 막천휘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진녹색 빛이 일렁이는 듯한, 무심해 보이는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막천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순간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아.'

기묘한 일이었다. 막천휘는 그동안 살아왔던 생애가 뇌리를 스치는 것을 인지했다. 희로애락一 기뻤던 일, 화났던 일,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이 줄줄이 떠오르면서 감정을 자극했다. 분명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도 시시각각 검이 휘둘러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상한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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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느려진 세상 속에서, 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눈앞의 당가 소가주, 당연명이었다.

막천휘는 경악했다. 대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시간을 살기라도 하는 건가...?

돌아선 당연명은 막천휘에게 성큼 다가섰다. 마지막 남은 우모침을 들고서.

여전히 막천휘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고, 그 느린 세상 속에서 당연명만이 제약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같은 곳을 노리는 것일까. 당연명의 손이 막천휘의 턱밑으로 향한다.

'움직여, 제발 좀 움직여라...!'

가까워지는 우모침을 보면서, 막천휘는 절규했다. 끔찍할 정도의 무력감을 느낀다. 무슨 사술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다 불현듯.

막천휘는 깨달았다. 조금 전의 이 기묘한 현상들이, 바로 주마등이었구나一 죽음을 앞두고서, 최후로 삶을 반추할 기회가 주어졌던 거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곧장 턱밑에 우모침이 핏 하고 박힌다.

그 순간 막천휘는 죽음을 직감했다. 우모침 자체는 위력적인 암기가 아니다. 그러니 분명 무언가 독 따위를 발라두었겠지. 당가 소가주가 대량의 우모침을 이용한 암기 무학을 펼친다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한 방울로도 사람을 절명시킬 수준의 극독이 필요할 터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전신으로 독기가 퍼지는 느낌이 든다. 단번에 육신의 통제권을 박탈당하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시야가 캄캄해지고, 의식 역시 끊어질 것 같다. 이제 죽는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뇌리에 박혔다.

'...원통하다!'

막천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검이라도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자一 그렇게 생각하며 손아귀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제대로 힘이 들어간 건지 느껴지지 않는다.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놈一 당연명은 검격의 범위 안에 있었다. 막천휘는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살의를 불태웠다.

그때였다.

필살(必殺)이 아니라 필사(必死)의 각오로 검을 드는 순간一

막천휘의 흑색 쌍검을 두르고 있는 묵검기가 완연한 묵빛으로 화했다. 그야말로 암흑...!

동귀어진의 각오로 일으킨 살기가 제대로 검에 스민 것이다.

막천휘의 묵검기에 대한 성취가 한순간에 아득히 깊어졌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깨달음을 얻는 무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예로부터 종종 있어왔다. 그러나 막천휘로서도 그게 설마 자신의 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어쨌거나.

제대로 구현된 묵검기를 두른 채, 극쾌 극강의 검식인 태을쌍검식이 펼쳐졌다. 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피하기에는 여의치 않을 정도로 근접한 상태였다. 당연명으로서도 이러한 경우는 상정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모두가 숨죽인 채, 막천휘의 마지막 몸부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양패구상(兩敗愼傷 ) 아니 양패구사(兩敗愼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一 따위의 생각을 하는 이들의 눈에 곧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믿기 힘들게도, 당연명이 묵검기가 어린 검을 맨손으로 잡아챘던 것이다.

검기, 그것도 묵검기를 상대로 회피는커녕 공수입백인(空手人S刀)을 펼지는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정신인가? 손이 완전히 걸레짝이 될 텐데...?

그러나 다음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을묵검파의 상징인 흑색 쌍검이 허망하게 부러졌다.

그리고 완전히 빛을 잃은 눈을 한 막천휘의 신형이 서서히 무너졌다. 그에게선 더 이상 실낱같은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 것도 없이 절명(絶命)이었다.

< 109화<생사결(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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