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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13화 (113/134)

< 113화<비극의 시작(1)> >

스우우우우우ㅡ

초붕문 소문주 엽청강의 장심으로부터 상대의 진기를 강탈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흡인력이 발생했다.

'됐다!'

엽청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당연명의 진기가 그에게로 넘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흡정이 시작되면, 상대는 미동도 하지 못한다. 운기법에 따라 전신 경맥을 노닐던 진기의 흐름이 일순간 뒤틀리는 까닭이다. 강제로 주화입마를 유도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날뛰는 진기를 안정시키는 것에 급급해지다보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 흡성삼흉이 명문대파의 절세고수들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래서였다. 일단 접촉하여 흡성대법을 시전하기만 하면 상대의 경지가 얼마나 고매하건 죽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진기의 안정을 위해 용쓰는 틈을 노리면 되니까. 그나마 커다란 내공을 지닌 이들은 조금이라도 저항을 할 수 있었지만, 흡성삼흉 중 둘이 화경에 오르고 나서는 그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많은 고수들이 흡성대법에 당해 처참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고, 흡성삼흉을 토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더랬다.

검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옛날 생각나는군.'

당연명은 전생一 검귀의 제자이던 시절을 문득 떠올렸다. 검초 섬(繼)을 배울 때였다.

一일전에 섬강(繼至)의 위력을 시험해 보고자, 웬 잡배 셋을 상대한 일이 있었다. 목에 걸린 금전이 꽤 컸기에, 겸사겸사 나선 일이었지. 놈들은 상대의 진기를 갈취해 자신의 것으로 삼는 무학을 익혔더구나. 일초에 화경에 이른 둘을 죽이고, 살아남은 쥐새끼 하나가 접근해 내 진기를 갈취해 갔었지.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一 라고 물으면서, 스승은 실소했었다.

그럴 수밖에.

스승인 검귀가 익힌 호흡법은 패력심법(敗方心法)이다. 그것으로 쌓아올린 패력진기(敗乃眞氣)는 용력지체가 아니면 결코 감당할 수 없다. 패력은 본질적으로 쇠하게 하는 힘인 까닭이다. 범인은 패력심법에 입문하는 것만으로 단명하고 만다.

그러한 패력진기를, 그것도 아주 농밀하게 쌓아올린 검귀의 것을 흡정하였으니 단숨에 기경팔맥이 괴사하고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자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사내一 초붕문 소문주 엽청강도 대동소이한 짓을 하고 있다.

[어이가 없군. 분명 무지의 소치겠지만.]

식신 청각이 실소를 흘린다. 당연명의 독요청광기는 독기를 먹어치우는 공능이 있다. 청각 자신의 독기마저 무력화할 정도이니 실로 만독불침의 기운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청각은 당연명이 폐맥은취를 위해 열두 개 경맥에 차곡차곡 채워둔 내공이 엄청나다는 것을 안다. 더군다나 그렇게 재워둔 내공 대부분은 바로 자신의 독기一 십독을 먹어치움으로써 덩치를 불린 독요청광기였으니, 내재된 독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바로 그걸, 흡정하고 있는 것이다. 초붕문 소문주라는 놈은.

아니나 다를까.

곧장 엽청강의 눈에 경악이 어린다. 그가 놀란 이유가 쉽사리 짐작된다. 아마 첫째는 당장 당연명의 손목 내관혈로부터 쏟아지는 내공량이 상정한 적 없을 정도로, 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지막지해서 일 테고, 둘째로는....

흐으어...!

청각이 마저 추측을 이어가기도 전에, 난데없이 엽청강의 입에서 알아듣기 힘든 괴이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듯했는데, 실제로 그는 전신이 허물어지는 감각을 맛보고 있었다.

아니, 지금 이 순간 엽청강의 신형은 주르륵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어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당연명의 내관혈을 잡고 있던 손부터 시작해서, 얼굴 여기저기가 거칠게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여러 번 반복하더니 눈 밑 피부가 푹 꺼지면서 안구가 흘러나온다. 벌린 입으로는 침인지 썩은 고름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줄줄 흐르고, 온몸이 검게 변색되더니, 말그대로,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육신을 지탱해왔던 골육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엽청강은 한 줌 독수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걸치고 있던 옷가지는 미처 녹지 않은 살점 조각들과 엉겨 붙어 엉망이 되었는데,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악취까지 느껴졌다.

'......'

허무하고도 끔찍한 최후에 장내의 모두가 말을 잃었다. 사천지회 참가자들은 무림방파의 후계로서 길러진 이들이다. 귀한 신분이지만 마냥 곱게 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잔혹무도한 광경을 접할 기회가 어린 나이부터 여러 차례 있었겠지. 그럼에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비위가 좋지 않은 몇몇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선 웨엑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실로 목불인견의 참상이로군."

구환교검 상명일이 어렵게 입을 뗐다.

"흡정의 공능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했어. 그보다, 설마 그 연배에 독인지경(毒人之境)에 오른 것인가?"

놀랍게도 상명일은 당가에서도 아는 이가 극히 드문 '독인(毒人)'에 대해 언급했다. 독공을 익힌 무인이 다다를 수 있는 최후의 경지라고 알려진一 물론 당연명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지만.

당연명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독인지경에 대해 어찌 아시는지. 긍정인지 부정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애매한 화법이었다.

"본련이 청성파를 멸문시킨 뒤. 놈들의 장서각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대의 가문인 사천당가에 대한 기록이었지. 오랜 역사를 지닌 무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고수를 종종 배출해왔더군. 그리고 그 고수들은 암기술이나 독공을 바탕으로 무위를 극한까지 쌓아올린 이들이었다."

만천화우一 군중 속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말에 호응하듯 상명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대저 암왕(暗王)의 칭호를 받은 이들의 활동 기록에는 암기술 만천화우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독왕(毒조)이라 불리던 이들은 독공의 극의(極意)를 깨달아 독인지경에 이른 이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더군. 특히, 독인이 되고 나면 그 어떤 독도 그에게 해를 끼질 수 없으며, 그의 숨결이나 피 한 방울도 강력한 독성을 머금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아미 측에도 대동소이한 기록들이 있었고.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지."

[우습군. 당연명 이놈을 고작 독인 따위와 비교하다니....]

식신 청각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설령 독인이라 할지라도 청각 자신의 독기는 버텨내지 못한다. 독인지경에 오른 자가 스스로 독의 정수를 뽑아낸 것이 바로 당가십독 중 질독 살조화 아닌가. 화경의 존재조차 살상할 수 있는 극독 중의 극독이었지만 칠독에 불과하다. 십독과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구환교검 상명일이 말했다.

"그런 얘기도 있더군. 독인지경에 이른 자의 독은, 설사 화경의 무인이라도 죽일 수 있다고. 그 정도의 독을 품은 존재이니 진기 또한 독기의 정수라 봐야겠지. 그런 걸 작정하고 흡정했으니 전신이 녹아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다음 상대를 지목해도 되겠습니까."

당연명은 아직 독인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려다 말았다. 이미 상명일의 눈에 어느 정도 경계심이 어린 것을 느낀 까닭이다. 이미 경계를 샀다면 차라리 섣불리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상대가 알아서 독인으로 생각해주겠다는데 굳이 그 생각을 정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하라."

상명일은 생사결의 속행을 허락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명일의 말에 따르면 당가 소가주 당연명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독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독인이라는 경지가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지만, 그러한 존재가 품고 있는 독이 화경의 존재도 살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믿기 힘든 얘기였지만 언급한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구환교검 상명일이다. 사실일 가능성에무게를 둬야 했다. 한 줌 독수로 녹아내린 엽청강의 흔적도 거기에 무게를 더했고. 그런 당연명과 생사결을 이어나가라는 것은 이 자리에서 죽으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기권, 기권하겠습니다...!"

완전히 사색이 된 채로 중얼거리는 사내. 당연명의 손가락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생사결의 상대로 사내를 지목한 것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당연명이 연배가 무색할 정도의 강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지자, 사내의 정신은 완전히 망가졌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상 대협.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라면 당가 소가주 당연명은 이미 후기지수의 범위를 아득히 벗어난 자일 터. 어찌하여 생사결을 계속 진행하도록 하시는 겁니까? 설마 저희가 모두 죽길 바라시는...."

"기개를 지켜라."

상명일은 사내의 말을 끊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 사천지회 참가자들이 한눈에 담긴다.

"너희는 이 자리에 각자 이권을 챙기러 온 것이 아니더냐. 이득을 얻고자 한다면 응당 잃을 것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설마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사천지회에 참가했단 말이냐? 가볍게 땅따먹기나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면 죽어도 싸다. 분명 당가가 자리한 성도의 이권을 노릴 셈이었던 자들도 적지 않을 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이제 와서 물러나겠다고...?"

어림도 없다一 상명일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너희들의 강호는 이토록 물렁한 것이었느냐. 련주를 비롯한 우리 흑사련과 너희의 선대가 이룩한 사도 천하를,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넘겨받을 수는 없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도인으로서의 기개를 지켜라. 더군다나 이미 생사결의 규칙을 견지하기로 한 마당이 다. 이 번 생사결을 주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상명 일이 니, 앞으로 당가 소가주와의 생사결을 회피하려는 자는 내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으로 간주하겠노라."

그렇게 말하면서, 상명일은 검집을 잡은 왼손 엄지를 슬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스릉 소리와 함께 서늘한 예기를 뿜는 검날이 조금 모습을 드러낸다.

명백한 위협이다. 생사결을 거부할 시 자신의 검을 먼저 받아야 할 것이라는.

더 이상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그저 사색이 된 채로, 생사결을 지켜볼 뿐. 처음 기권을 입에 담았던 사내는 제대로 병장기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쓰러지고, 당연명은 말없이 한 명을 또 지목했다. 그렇게 다음 생사결이 시작되고, 또 끝이 났다.

사천지회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이제 떠들지도 않는다. 그저 도축될 운명을 기다리는 가축의 심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이니, 상명일의 말대로 기개나 지키자는 생각인 것일까.

서 있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간다.

상명일은 덤덤한 시선으로 생사결을 지켜보고 있었고, 흑사화 유연희는 약간 질린 표정이었다. 유연희 옆의 심화방주 여설련은 당혹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결심을 굳히는 것 같은 낌새가 있었다.

당미려와 제갈영영은 당연명의 수신호에 따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움직였다. 수신호는 당가 소가주 경합 당시 같은 조였기에, 당미려가 알아볼 수 있었다.

시신이 늘어날수록, 침묵 속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져 가고 있었다.

꼭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처럼.

털썩

마침내 마지막 사천지회 참가자가 쓰러진다. 이로써 모든 참가자가 생사결의 형식을 빌려 당연명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애초에 보름으로 산정되었던 사천지회.

그 개회 반나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113화<비극의 시작(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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