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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21화 (121/134)

< 121화 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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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을 끼얹은 듯.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일천이 넘는 인원이 모여 있음에도 몹시 고요하다. 호흡조차 멈춘 이들이 많았는데, 시선은 하나같이 여설련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을 목도한 표정.

사파 무인들 사이로 경악이 들불처럼 번진다.

"꿈인가?"

"여설련. 이 미친년이...?"

"흑사화 아가씨께서 귀천하셨다...!"

"그저 한 줌 재가 되셨어."

"당장 벗어나야 한다!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중죄나 다름없어."

"이렇게 된 이상 방주께 아뢰어 방파의 근거지를 아예 사천 바깥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지. 피란이 절실할 듯한데."

"기어이 일을 저지르다니.... 련주의 진노를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충격으로 망연하게 중얼거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황 판단을 마지고 잽싸게 도주하는 이도 있었다. 하기야 남은 이들로서는 흑사화 유연희가 죽어버린 이상 화경에 이른 당연명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동료 무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나갔지만 원한을 갚고자 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복수심도 어느 정도 넘볼 수 있을 만한 상대에게나 생기는 법인 까닭이다. 당연명이 휘두르는 붉은 회오리는 사파무인들에게 있어 그저 재해(災害)에 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가씨의 부고를 본련에 전달해야 한다. 가장 빠른 전령이 되면 자비와 함께 도리어 상이 내려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말하며 내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듯 혼란한 와중에, 당연명은 양손에 두르고 있던 선혈의 회오리一 철편표를 해제하고는 신법 암영을 극성으로 펼쳤다. 스르르 그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그리고 직후.

당연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심화방주 여설련의 전면이었다. 적련연화술로 유연희를 태워버린 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천령개(天靈蓋)를 내리쳐 죽을 셈으로 보였다. 머리로 향하는 양 주먹에 내력이 가득 실려 있었다.

'어딜.'

당연명은 도달하는 것과 동시에 품에서 꺼낸 수리검을 휘둘렀다.

서걱一

수리검에는 단(斷)의 묘리가 담긴 진기가 실려 있었기에 권기(奉氣)에 휩싸인 여설련의 주먹을 단박에 잘라낼 수 있었다. 그녀의 손목 어림에 붉은 실선이 생기더니 이내 주먹은 허공에 머물러 있고, 여설련은 손목까지만 남은 팔을 휘젓는 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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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자살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당황과, 상당한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온 당연명의 신법 성취에 대한 놀람, 그리고 손목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으로 인해 여설련의 표정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섬득한 어조로 말을 건네는 당연명.

"상황을 이리 만들어놓고 혼자 편히 죽을 셈이었나?"

****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괜한 일에 휘말리고 말았군.'

당연명은 무언가 예상보다 일이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공동과의 약조를 이행하기 위해, 흑사련 휘하 사도 세력에 혼란을 일으키고자 사천지회에 참가한 것이었는데 이렇듯 심화방주 여설련이 작정을 하고 파놓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줄이야.

흑사련주 유길준이 흑사파 시절부터 함께해 온 인연을 아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자신을 길러준 흑사파 두목이 청성파 도사에 의해 죽은 것에 앙심을 품고 기어이 청성을 멸문시켰지 않나.

흑사련의 발족을 막으려다 아미 또한 멸문하고 말았고, 사천에 터를 두지 않은 점창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청성과 아미는 물론이고, 점창 역시 더 이상 정도 대방파라 불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몰락해버렸기에, 작금의 무림에서는 '구파'보다는 '육파'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쨌건 그런 흑사련주가 아끼는 이가 둘이나 죽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유길준의 의형제인 사도육존 중 일좌, 구환교검 상명일.

유길준과 사도육존, 아니 흑사련 전체의 금지옥엽이 나 다름없는 흑사화 유연희.

당연명으로서는 의도치 않은 상황이었다. 애초에 사천지회에서 화경에 이른 무위를 드러낼 생각도 없었고. 상명일과 유연희의 죽음은 모두 여설련의 간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 사실을 흑사련주 유길준이 조용히 납득할까.

유연희야 여설련이 실성해서 죽였다 쳐도, 상명일을 죽인 것은 분명 당연명 자신이었다. 목격한 이도 셀 수 없이 많다. 아마 도주한 이들의 입을 통해서 사천 전역에 풍문으로 퍼지겼I지. 약관도 되지 않은 당가 소가주가 화경에 이르러 검강을 구사한다고.

"..."

당연명은 어깨 바로 아래까지 양팔이 잘린 채, 무릎을 꿇고서 숨을 몰아쉬는 여인을 바라봤다. 심화방주 여설련이다.

설마하니 그녀가 협박에 그치지 않고 유연희를 정말로 죽일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유연희를 태워 죽이는 순간 다음으로 행할 일은 너무도 뻔했다.

자결 (自 別 )

쏟을 곳이 없어진 흑사련주의 울분이 당가로, 그리고 당연명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할 셈이었을 것이다. 실로 지독한 집념이었다.

폐맥은취를 해제하고 있던 덕분에, 신법 암영 역시 더없이 빠르게 펼칠 수 있었고, 여설련의 자결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손목이 잘린 뒤, 여설련은 적련연화술을 이용해 분신(英身: 자기 몸을 스스로 불사름)을 시도했다. 적련연화술은 심상의 양강 무학으로, 의념만 있으면 대상을 태울 수 있었기에. 그녀 주변으로 순식간에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도는 곧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당연명一 당가 소가주의 탈을 쓰고 있는 검신이었기에. 화경이라는 지고한 무위와 별개로, 당연명의 정신력은 아득한 수준에 다다라 있었다. 심상을 현실에 구현하는 힘이, 여설련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기감이 닿는 영역 내에서, 적련연화술이 발동하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그 심상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주먹이 없다한들, 여전히 휘두를 수 있는 팔이 있었기에 위험 요소라고 판단一 남은 양팔을 수리검으로 어깻죽지부터 잘라버렸다. 그러자 독하게도 여설련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척하면서, 혀를 짓씹으려 했다. 또 한 번의 자결 시도. 그러나 그것 또한 당연명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곧장 발로 입을 차버리니 그녀의 치아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고도 포기하지 않고 재차 적련연화술을 펼치려 하기에, 당연명은 아예 그녀의 단전을 부숴버렸다. 무인으로서의 생명을 완전히 끝장낸 것이다. 정신적인 허탈감에 더해, 시시각각 허망하게 흩어지는 내력으로 인한 극심한 탈력까지 느낄 터였다.

진기가 본격적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여설련의 피부는 생기를 빠르게 잃었고 나이답지 않게 육감적인 느낌을 주던 몸매 또한 중년의 그것에 맞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설련의 제압을 끝냈을 때는 이미 사파 무인들이 제각기 팔방으로 도주한 뒤였다.

****

"연명.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당미려가 꺼내놨던 독병들을 챙기면서 묻는다. 하나같이 생명에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중독된 이로 하여금 지독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독들이었다. 당미려 역시 당가의 일원으로서, 이런 일을 당하고 그냥 넘어갈 정도로 성격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갚아야 한다는 관념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독을 번갈아 사용하며, 여설련이 고통에 까무러칠 때까지 괴롭혔다. 와중에 어깨의 잘린 상처 등은 꼼꼼하게 지혈을 해주고, 덧나지 않게 약까지 발라주었다. 당연명이 살려둔 이유가 있겠거니 짐작한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갈영영은 오한을 느꼈다. 당가 사람과는 절대 척을 지지 말라는 얘기가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당연명이 말했다.

"이 사태를 수습해야겠지."

"...수습이 되는 사태야?"

"그래도 흉수는 자진하기 전에 제압했으니까. 심화방주를 흑사련에 넘기면 어느 정도 정상이 참작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잖아."

"너, 흑사련주가 왜 청성을 멸문시키게 됐는지는 알지...? 유연희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상명일을 죽인 책임은 어떻게 면피하려고...? 알다시피 구환교검은 흑사련주와 의형제지간이야. 다른 사도육존도 마찬가지고."

"그거야 흑사련주가 판단할 일이지. 내가 죽어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자가 검강까지 뽑아들고 덤비는데 죽이지 않고는 제압할 방법도 없었고."

"어렵네."

"일단 미려 너는 영영을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 가주께 상황을 소상히 말씀드리고, 침입에 대비하시라고 전해. 자짓 흑사련과 방파대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영영. 너는 네 숙부... 제갈창신에게 말해서 본가를 방비하는 절진을 운용하는 데 조금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고."

"알겠어."

"네. 소가주. 분부를 명심할게요."

당미려와 제갈영영은 당연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황이 심각해서일까. 함께 위기를 헤쳐 나온 덕일까. 두 여인의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왠지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참, 돌아갈 때는 웬만해선 현양촌을 거치지 말고."

당연명은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 길이 빠르다 해도 마교가 등장한 전력이 있는 곳은 피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자신이 동행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알았어. 그런데 연명이 너는 어쩌려고? 설마 직접 흑사련에 가려는 건 아니지? 아무리 네가 화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건 너무 위험해. 심화방주의 신병을 넘기는 건 그냥 사람을 써도 되는 일이잖아."

"상명일을 살해한 당사자이자 본가 소가주인 내가 사절로 가는 성의 정도는 보여야 타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정말 위험해. 어찌면 너, 흑사련주한테 죽을지도 몰라...!"

"걱정 마. 내 한 몸 빼낼 자신은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본가에 틀어박힌다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야. 이미 목격자도 많고. 흑사련주와 정면으로 부딪쳐서 담판을 짓는 게 옳아."

당연명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미 생각을 굳힌 듯하다.

잠시 당연명의 눈을 바라보던 당미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 네 고집을 누가 이겨. 다만 무사히 돌아와야 해. 연명이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언니가 크게 상심할 테니까."

"...저도 기다릴 테니, 꼭 무사귀환하시길."

당미려가 당미소를 언급하자, 제갈영영도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두 사람 모두 다시 볼 때까지 건승하고."

먼저 가볼게一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인사와 함께 당연명의 신형이 스르르 흩어졌다. 어느새 심화방주 여설련의 존재도 함께 사라진 뒤였다.

남겨진 두 여인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짙은 혈향 속에서.

붉게 물든 발자국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

허름한 객점 안.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싸구려 청주에 식어빠진 교자 한 접시.

놀랍게도 사내의 이름은 유길준이었다.

흑사련주이자, 사도천하가 된 사천의 지존...!

그는 종종 흑사파 시절을 추억하며 이렇듯 뒷골목 허름한 객점에서 요기를 하곤 했다. 무림에서의 드높은 지위와는 별개로 소박한 품성을 지 니고 있다더 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자작하던 유길준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입술로 가져가던 술잔을 도로 내려놓고는 말했다.

"무슨 일이지? 흥취를 깨지 말라 일렀을 터인데."

"송구합니다. 련주. 화급한 일인지라."

그 말과 함께.

천장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척 내려서는 인물이 있었다. 은신술이 제법 뛰어나다. 그가 익힌 무학 역시 유길준의 손길이 닿은 것일까.

"화급이라. 어디 말해보도록."

"..."

"왜 말이 없지? 입술만 깨물고. 본좌를 능멸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 말하라."

"아뢰기가 너무나 황공하여...."

"말하라 했다."

"...구환교검께서 귀천하셨습니다."

"뭐?"

과아아앙一!

유길준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터져 나왔다. 당장 그의 앞에 자리해 있던 주안상이 통째로 날아가 처박힐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마음에 반응해 곧바로 기가 이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교검 형님께서 귀천하셨다고...? 지금 네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 분명 연희와 함께 사천지회에 참석한다 들었는데."

보고하던 사내는 엄청난 기세의 압박에 연신 마른침을 삼켜댔다. 련주의 노기가 피부에 닿을 듯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거짓이라고 고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일 것만 같다.

그러나 아직 고해야 할 비보가 하나 더 있었으니一

한 번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사내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당시를 목격한 자가 물경 일천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연희, 흑사화 아가씨께서도 잇따라 운명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보고하던 사내를 포함, 객점의 모든 집기가 벽에 처박혔다.

< 121화<비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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