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22화 (122/134)

< 122화<암독검룡> >

一사천에 곧 혈풍(血風)이 분다!

사천 무림에서 활동하는 자들, 그리고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상인들, 별다른 관계가 없더라도 무림의 소문에 관심이 많은 양민들, 입담으로 먹고 사는 호사가들이 근래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암독검룡(暗毒劍龍) 당연명에 관한 풍문이 퍼지면서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진고수의 등장은 뜨거운 화제가 되기 쉬웠다. 기존의 무림 질서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 이었다. 이제는 오래된 일이지만, 흑사련주 유길준과 마광천주 연중혁이 처음 그 이름을 알렸을 때도 그러했다. 확고하다 못해 경직된 것으로까지 느껴지던 정파 세력 구도一 구파와 오대세가로 일컬어지던 곳을 각자 일부씩 무너뜨렸지 않나. 그들이 벌인 참상과는 별개로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원래 몇몇 호사가들은 그동안 당가 소가주 당연명을 암독룡(暗毒龍)이라는 별호로 부르고 있었다. 단신으로 수백의 인원을 살상했다는 소문이 둘이나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니, 그 무위에 대한 존중과 아직 어린 연배에서 비롯한 창창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 또 지금은 몰락했다고 하나 한때 세가의 지위를 누렸던 사천당가의 후계라는 신분을 고려해서 '용(龍)'자를 붙여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천지회의 일이 퍼지면서, 당연명의 검술 실력이 크게 부각됐고, 기존의 별호에 '검(劍)'자 마저 더해져 '암독검룡(暗毒劍龍)'이 된 것이다. 암기술이나 독공, 용독술은 몰라도 검술까지 용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이니 분명 후기지수의 별호로는 과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암독검룡이라는 별호가 당연명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말하는 이는 없었다.

一사도육존, 구환교검 상명일이 당가 소가주 당연명에게 검으로 패해 귀천했다!

이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고, 또 몇 가지 소문이 추가된 까닭이었다.

보통이라면 듣자마자 헛소리로 치부할 만큼 충격적인 얘기였다. 구환교검 상명일이 누구인가. 사도육존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실력자로서, 제자조차 두지 않고 검술 연마에 매진一 근래에는 그가 화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마저 돌 정도였다. 그런 그가, 고작 약관도 되지 않은 후기지수에게 패하다니?

一극독에 중독된 상태로 싸우신 게 아닌가? 순전히 검술만을 겨룬 것은 아닐 텐데.

一아니, 신분을 밝힐 순 없지만 살아남은 심화방도가 증언하길, 도리어 당연명이 불리한 상태였다고 하네. 사천지회에 참가한 각 방파 후계들과 연이어 오십 회가 넘는 생사결을 치렀다고 하던데. 독을 사용한 낌새는 조금도 없었고.

一그보다 구환교검이 화경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다고 하더군. 불꽃처럼 타오르는 검강을 목도했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야.

一한둘이 아닐 수밖에. 사천지회 때 각지에서 모인 각 방파 호위 병력만 물경 이천이 넘었다고 하네. 그, 왜. 한몫 챙겨보겠다고 장씨가 물건을 싸들고 십방에 다녀왔지 않나. 생전 처음 보는 인파였다더군. 가져간 물건들이 순식간에 동났다고.

一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구환교검이 화경에 올라섰고, 또 검강까지 발현했다면 대체 당연명이 어떻게 살아있는 건가? 설마 그 연배에 화경에 올랐다는 거짓을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一아직 소문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이들이 많군. 내 듣기로 당연명 역시 진녹색 검강을 길게 뽑아 상명일과 맞섰다고 하네. 뿐인가? 상명일의 검강을 완전히 박살내고 그 목숨을 취하기까지 했으니 완연한 화경의 경지라고 봐야지. 연배를 따지는 것은 그만두게. 아무래도 당가 소가주는 범인의 잣대로 측정할 수 없는 인물인 모양이니. 구환교검과의 결전 직후에 일천에 달하는 무림인을 죽인 일은 아나?

一그건 또 무슨 소린가? 일천이라니?

一허, 달아나는 이들이 소문을 파편처럼 흘리고 다니는 바람에 이번 일의 진상을 온전히 아는 이가 드물군, 그래. 자네들은 오늘 날 만난 걸 다행으로 여기게. 술도 사고.

一알았으니, 어서 얘기해보게.

一아는 이들만 아는 사실이네만, 이번 일은 심화방주 여설련이 획책한 것이라네....

당연명이 심화방주 여설련을 제압하는 틈을 타 사방팔방으로 도주했던 생존자들. 그들은 경공을 펼쳐 다급하게 복귀하면서 소문을 흩뿌렸기에 사천지회의 일이 제대로 알려지는 것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가장 먼저 퍼진 것은 당연명과 상명일의 결전, 그 승패 그리고 둘의 무위에 대해서였다. 물론 사천지회에 참가한 각 방파 후계들의 죽음도 알려지긴 했지만 전자에 비하면 무게감이 없었다.

다음으로는 당연명이 병장기를 깨뜨리고, 그 철편을 이용해 구사한 암기 무학에 대해서였다. 믿기지 않게도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일천이 넘는 인원을 학살했다고. 이 역시 상당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당가의 무학이 대량살상에 특화되어있다고 알려져 있긴 했지만 단신으로 일천이 넘는 무인을 살해할 수 있다니. 일당백(一當百)을 넘어 일기당천(一歸當千)의 무위를 지녔다고 평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세인들에게 가장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은 마지막으로 알려진 사건이었다.

一흑사화 유연희가 죽었다...!

심화방주 여설련이 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흑사련주 유길준이 친히 개변해준 양강무학一 적련연화술로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고.

구환교검 상명일이 당연명과 난데없이 결전을 치르게 된 것도, 그 직후에 이천이 넘는 사파 무인들이 당연명을 공격하다 일천이 넘게 죽어나간 것도, 심화방주 여설련에게 유연희가 인질로 잡힌 탓이라고 했다.

과연 흑사련주가 느끼는 심경이 어떠할까.

예전 흑사파 두목의 죽음에 절치부심한 유길준이 기어코 사천 정도 세력의 씨를 말려버린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 많았다. 이번에는 다른 곳도 아닌 흑사련 휘하 사도 방파에서 벌인 일이다. 과연 그 처분이 어떻게 될까.

아니, 일단 심화방주 여설련이 어찌 되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당연명이 그녀의 양손을 잘라버리는 것까지만 목도한 이들이 꽤 있었을 뿐. 만약 여설련이 이미 죽어버렸다면, 흑사련주 유길준은 어떻게 울분을 쏟아낼까.

결국 이 모든 일에는 당가 소가주인 암독검룡 당연명이 엮여 있었다. 약간이라도 통찰력이 있는 자라면, 사천 땅에, 그것도 당가를 중심으로 한바탕 혈풍이 휘몰아치리라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그렇게 사천 전체가 긴장하고 있었다.

****

발 없는 말이 웬만한 명마보다 빠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긴 했지만, 이번 사천지회에 대한 소문은 그야말로 전파 속도가 유례가 드물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심화방에서 생존한 사파 무인들이 긴급히 자파로 돌아가 소식을 전하고자, 끊임없이 경공을 펼쳐 이동했으니까. 전시 파발(攝攝)이 따로없었다.

외인이 아예 들르지 않는 곳이 아니라면, 사천지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규모는 작지만 제법 지나가는 이들이 많은 현양촌에도 당연명에 관한 소문이 퍼졌다. 특히나 현양촌은 사천지회가 진행된 십방에서 가까웠기에, 소문을 아주 빠르게 접했다.

사실상 현양촌을 지배하는 현양문에서는 때아닌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현양문주 남진순의 둘째 사위인 연우중과, 그 아들인 연소청一 부자가 나란히 귀천한 까닭이다. 어처구니없게도 현양문의 영역인 현양촌 한복판에서 살해당했다. 흉수를 알 수 없는 데다가 여러가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기에 한동안 현양촌 전체가 떠들썩했지만, 현양문에서 입단속을 시키기 시작하자 더 이상 그 일을 두고 떠드는 이는 없었다. 사천지회에 대한 소문이 연우중 부자에 대한 일을 덮어버 린 감도 있었고.

처음 사위와 외손주의 부고를 접하고, 한동안 남진순은 길길이 날뛰었다. 어떻게든 흉수를 찾고, 그 복수를 갚고자 했다. 상심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특히나 외손주인 연소청은 다음 대 현양문주로 내심 정해두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경쟁에서 밀려난 것을 눈치 챈 다른 자식들이 꾸민 짓인가하는 의심도 했더랬다.

그러나 사위와 외손주의 죽음을 조사하다 보니, 심상잖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두 사람과 함께 죽어있던 수십에 달하는 복면인들一 그들은 별다른 소지품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복면 속 얼굴도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단서라고는 그들의 검집에 은색으로 새겨진 '월(月 )' 자 뿐이었다. 이런 특징을 가진 무력대는 그가 알기로 사천에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놀랍게도 복면인들 중 상당수는 단 한 번의 검초에,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신체가 단련된 정도를 봤을 때 그들도 상당한 실력자인 것으로 보였음에도 그랬다. 필시 가늠하기 힘든 실력을 지닌 검객이 손을 쓴 것이리라. 여기서 남진순은 자식들이 간여했으리라는 의심을 접었다. 그들이 부릴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애매한 금전 따위로는 이만한 고수를 움직일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외손주 연소청의 검을 만들어주었던 야장 하나가 사라졌음을 알았지만 크게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무언가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할까 싶어 도주했겠지.

일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현양촌 양민들에 의해서였다. 그들 중 몇몇이 대량의 시신을 보고서 눈에 띄게 동요했던 것이다. 원래 상단을 운영했던 남진순은 눈치가 빨랐다. 동요하는 이들을 잡아와서는 다그치거나 문초하여 정보를 캐냈다.

그렇게 들은 놀라운 사실一 죽은 복면인들이 바로 천마신교의 정예 무력대인 천월대이며 그들 또한 모종의 임무를 위해 이곳 현양촌에 정착했다는 것이었다.

천마신교라니!

남진순은 둘째 사위였던 연우중의 성이 연씨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연가라면, 당대 천마신교 교주와 마광천주. 그 둘과 혈연관계라는 얘기 아닌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격동이 그의 전신을 강타했다. 무학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평범한 이로 태어나, 상인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던 그가 이렇게 일문의 주인이 된 것만도 상당한 출세였다. 그러나 하찮다 해도 모자랄 자신의 핏줄一 남가에 연가의 피가 섞였던 것이다.

둘째 사위였던 연우중이 무슨 속셈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연소청이 타고난 자질은 뛰어났고 연우중 역시 그런 연소청을 제법 아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 어쪄면 자신의 손주가 천마신교의 적통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금 교주의 아들인 연중혁은 천마신교를 벗어나 새롭게 마광천을 세웠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름모를 흉수에 대한 원한이 더욱 사무쳤다.

그런 와중에, 충격적인 소문이 들려왔으니.

당가 소가주 당연명이 구환교검 상명일을 살해했으며, 알고 보니 당연명이 엄청난 검술 고수였다는 것一

'그놈이다.'

남진순은 운명적인 직감을 느꼈다. 천마신교의 적통을 이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외손주를 죽인 놈이 바로 당연명이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럴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당연명이 저지른 일 때문에 성도 주변은 전장이 될 터였다. 이곳 현양촌이라 해서 무사할지 알 수가 없다.

설사 난리를 피해간다 하더라도, 현양문의 인물이 천마신교 천월대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놈이 알았다면, 현양문이라 해서 계속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언가 조치가 취해지겠지.

상인 출신답게 빠르게 계산을 마친 남진순은 결심을 내리고 모든 가산을 급히 처분했다.

그리고 일가족을 데리고 곧장 떠났다.

천마신교를 향해서...!

< 122화<암독검룡>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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