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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문의 검신급 소가주가 되었다-124화 (124/134)

< 124화<인중룡> >

[노파심에 말한다만 ... ]

당연명이 한참 산을 오르는 와중에, 식신 청각이 말을 건네 왔다.

[인중롱(人中龍)이라는 말을 알 거다.]

모를 리가 없다. 예로부터 극히 뛰어난 인재를 용봉(龍鳳)에 빗대어 표현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으니까. 당장 모친인 당지혜 역시 젊은 날에 독봉(毒鳳)이라는 별호로 불렸더랬다. 가주의 위에 오른 지금도 종종 그리 불리고.

당연명은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자신도 암독검룡(暗毒劍龍)이라 칭해지며 사천 전역에 그 이름을 알려가고 있었다. 아마 곧 성(省)을 넘어서까지 명성이 퍼지지 않을까. 지금 정도의 나이에 화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곧 그가 흑사련주나 마광천주와 같은 불세출의 기재라는 의미였으므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일인 것이다.

아무튼 난데없이 청각이 던진 화두에 당연명이 관심을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용은 실재한다.]

'그렇군.'

당연명은 그다지 놀란 기색 없이 받아들였다. 도리어 진중하게 말을 꺼낸 청각이 당황스러울 정도. 보통은 상상 속의 존재라 여기는 용이 실재한다고 하면 되묻기라도 하지 않나?

그러나 당연명은 이미 청각을 식신으로 거두기 전, 독중독고에서 당가십독에 관한 기록을 읽은 일이 있었다.

一만년화리가 사는 곳에는 십중팔구 화룡 또한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화룡은 '용(龍)'이라는 족속들이 으레 그렇듯 무척이나 잠이 많아 평상시에는 조용히 수면을 취하지만, 일단 깨어난 동안에는 폭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키고는 한다. 명백히 인세에 해를 끼치는 재앙으로서 정의될 만하다. 놈들은 용암보다도 뜨거운 숨결을 내뱉어 사람을 해하는데, 이 숨결을 술법으로 가두어 액화시킨 것이 바로 화룡호독이 다. 화룡호독은 열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으로....

一용이라는 족속들은 영물과 이매망량의 사이에 있는 어떠한 존재로, 그들에게는 보통의 무학이 통하지 않는다. 강력한 의념이 서린 강기쯤은 되어야 약간의 타격을 입힐 수 있고, 그마저도 금세 회복해버리고 만다. 그러한 용을 쉬이 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용살갈(龍殺繼)의 독을 놈들의 역린을 헤집고 집어넣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데....

당연명이 떠올린 것은 당가십독 중 삼독(드毒)인 화룡호독(火龍呼毒)과 팔독(毒)인 용살독(龍殺毒)에 관한 내용이었다. 공통적으로 용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여겼지만 그 직후에 이매망량인 청각을 만나 식신으로 삼게 되지 않았나. 자연스레 용이 있어도 이상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용에 대한 얘기는 왜 꺼낸 거지? 그것도 굳이 지금.'

[말했다시피 노파심으로 인한 것이다만... ]

청각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원래는 용에 대해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애초에 용이란 존재가 그리 쉽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인간의 형체를 갖추고 유희를 하는 어린 용이라면, 만나게 되더라도 용보다는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 옳았다.

당연명이 이렇듯 직접적으로 엮이는 사건만 아니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놈이 죽으면 나 역시 소멸한다.'

식신이 된 청각은 존재 자체가 주인인 당연명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당연명이 죽게 되면 식신인 청각 또한 그 존재가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당연명이 기대 이상으로 강하긴 했지만 용이라는 것들은 말 그대로 인외의 존재였다. 혹시나 당연명이 허무하게 죽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이 니, 충분한 주의를 줄 필요성을 느꼈다.

청각이 이어서 말했다.

[흑사련주 유길준이라는 그놈. 어쩌면 용일지도 모른다.]

"뭐?"

이번엔 당연명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아예 걸음을 멈추고서는 육성으로 되물었다. 용이라는 것은 영물과 이매망량 사이의 어떤 존재라고 기록에 남아있지 않았나. 온몸이 비늘로 덮이고, 머리에는 뿔이 달리고, 입에서는 불을 토하는, 뭐 그런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흑사련주가 용일지도 모른다니,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리라.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자질을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 보는 것만으로 무학의 이치를 꿰뚫고, 무학에 대한 개변과 창안이 숨 쉬듯 자유롭다? 아무리 봐도 자질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지 않느냐. 게다가 약관을 좀 넘어서 화경에.... 흠흠.]

청각은 말을 잇다가 헛기침하듯 중단했다. 식신인 그가 말을 하는 방식은 의념을 전하는 것이라 기침 따위가 나올 일이 없다. 그저 당황한 것이다. 원래는 약관을 좀 넘어서 화경에 도달한 흑사련주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얘기하려 했는데, 말을 하다 보니 그보다 더한 놈一 약관이 되기도 전에 이미 화경에 오른 자가 지극히 가까이에 있음을 자각했음에.

[...무엇보다 당연명 너와는 달리 놈은 출생부터가 불분명하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지. 그리고 그걸 흑사파 두목이라는 놈이 주워 길렀고. 길러준 이를 친부처럼 여겼기에 그 복수를 갚고자 이곳 청성산에 수백 년간 자리 잡고 있던 청성파를 멸문시켰다. 불과 몇 년 만에.]

[용이라는 것들은, 천지간의 기운이 한데 모여 탄생하는 존재다. 영물도, 이매망량도 아니지. 방사들의 말에 따르면 자주 나타나진 않는다고 했다. 수백 년에 한 번이나 될까? 오랜 세월을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잠에 빠져 지내는 까닭이다. 그러나 놈들이 한 번 잠에서 깨어나게 되면, 주변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된다. 인근에 소국이라도 자리하고 있다면 단숨에 멸망하게 되겠지. 예로부터 강성했던 여러 나라가 허망하게 사라진 것은 이렇듯 용들이 깨어난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놀라운 얘기였다. 이전 고대에 번성했던 나라들의 흔적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이유,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강성했던 나라들이 무너져 내린 이유가 용의 등장 때문이었다니. 실로 재앙 그 자체 아닌가.

[아마 무영객 그놈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도 성하지는 못했을 거다. 국운이 다했다一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거든. 보통 예지력을 지닌 존재들이 용의 출현을 예견하고 그런 말을 퍼뜨린다는군. 하지만 무영객 그놈이 방사들을 동원해 천하에 해악을 끼치는 이매망량들을 없애고, 잠든 용들까지 끄집어내어 모조리 죽여 놓았지. 덕분에 수백 년간 지금의 황조(皇朝)가 유지될 수 있었을 터.]

'천지간의 기운이 모여 탄생했다면, 상서로운 존재가 아닌가?'

[상서로운 용도 존재하긴 하지. 뇌운(雷雲)을 다루는 청룡(靑龍). 선룡(善龍)이라고도 불리는 청룡은 파괴와 살육을 일삼는 악룡(惡龍)들을 제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군. 계속 내버려뒀다가는 인세가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으니까.]

'청룡이라.'

당연명이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과연 용의 생태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수백 년간 살아온 이매망량인 청각이기에 알고 있는 사실이리라.

[그러나 단 하나 존재하던 청룡은, 당시 용에 대해 무지하던 무영객 놈의 손에 죽고 말았지. 괴물 같은 놈이야. 그때는 이 몸도 없던 때인데. 어디서 구해온 용살갈의 독을 청룡의 역린을 헤집고 집어넣었다는군. 그로 인해 방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지. 어쨌거나 결국 무영객 놈이 스스로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청룡 대신 악룡을 처단하는 것으로 일을 수습하게 됐다.]

당연명은 궁금증이 치솟았다. 대체 선조인 무영객의 무위가 어느 정도였기에 나라마저 멸망시킨다는 용을 죽일 수 있을 정도였을까.

그리고 자신의 검이라면, 그러한 용을 상대할 수 있을까.

청각이 말을 이었다.

[방사들에 의하면, 선룡과 악룡을 결정짓는 것은 아룡(兒龍)일 때의 경험이라고 한다. 유희라고도 하더군.]

'아룡? 어릴때를 말하는 건가?'

[그래. 천지간의 기운이 모여 탄생한 용은 처음엔 스스로 용이라는 자각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태어난 직후엔 모습마저 인간의 형상이니까. 그렇게 성장기를 거치면서 여러 인간들과 얽히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보통은 타고난 재능이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 있으니 주목받는 삶을 살겠지. 그러다 아롱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이 닿은 소수의 인간들에게 정을 붙이게 된다.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우가 될 수도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지.]

[아룡은 정을 붙인 소수의 인간들이 한평생 행복할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그들이 자연스럽게 늙어 죽을 때까지 별일이 없다면 그 아룡은 추후 선룡이 될 가능성이 높다. 뇌운을 다스리는 청룡이 되어 인세를 수호하는 존재가 되는 거지.]

'문제는 그 소수의 인간들에게 별일이 있는 경우인가.'

[그렇지. 아룡의 집착은 무서운 수준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중하게 여기게 된 존재가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귀천하는 순간, 큰 충격을 받는다. 용의 존재를 각성하게 되기도 하지. 복수심, 원망, 원한, 상실감, 허탈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아룡이 인간의 탈을 벗고 악룡으로 화하도록 촉발한다. 악룡이라 해도 천지간의 기운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이니, 뇌기(雷氣)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오행(五行)의 기운一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의 성질들 중 하나를 전능하게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당연명은 왜 악룡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용이라 한들 세상사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웬만큼 권세와 무력을 지닌 이들도 예기치 못한 일로 몰락을 맞이하곤 하는데, 어디 심산유곡에 숨어 사는 것이 아니고서는 정을 붙인 인간들이 온전히 천수를 누리게끔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리고 청각이 왜 흑사련주 유길준을 두고서 용일지 모른다고 얘기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가 뇌리를 스친다.

흑사파 시절 그를 길러준 두목과의 인연.

두목을 죽인 청성파에 대한 복수.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대종사의 자질.

구환교검 상명일을 비롯한 사도육존의 성취.

흑사련주의 금지옥엽이라는 흑사화 유연희.

그리고 상명일과 유연희의 죽음.

•• • •

무언가 운명적인 직감이 들었다.

흑사련주 유길준이 청각의 말대로 용일지도 모른다!

[만약 놈이 용으로서의 자신을 각성했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거다. 그 여자 하나 넘겨주는 것으로 타협은 어림도 없을 테고. 놈들이 아룡일 때 점찍은 인간들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마 그 울분을 풀고자 한다면 사천 땅 전체가 초토화되겠지. 아마 놈은 이곳 사천을 제 손으로 일군 왕국으로 여기고 있을 테니까.]

'용으로 변한단 말인가? 사람의 탈을 벗어던지고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친부처럼 여기던 흑사파 두목이 죽었을 때도 인간의 형상을 유지한 채 복수를 실현했다면서. 수년간의 고련을 통해 무위를 쌓아올렸다고 들었는데. 아마 정을 붙인 다른 인간들이 꽤 살아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긴 한데. 이번은 어찌될지 모르겠군.]

'흑사련주가 용인지 알아볼 수 있나? 인간의 형체일 때도 말야.'

당연명은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이매망량인 청각이라면 상대가 용인지 그 여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 애초에 무영객 그놈이 날 데리고 다닌 이유가 극독을 수급받기 위함도 있었지만, 용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지. 굳이 대면하지 않더라도 근방에 가면 놈의 격(格)이 느껴질 거다.]

"쓸모가 늘었군.'

[뭐?]

당연명의 말에 기가 찬다는 듯 청각이 되물었지만, 이미 당연명은 상념에 빠진 채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한 뒤였다.

어차피 흑사련주 유길준이 용이건 아니건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면 만남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놈이 용이라면一

'무리를 해서라도 죽여야겠지.'

어차피 악룡이 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다.

검신, 아니 암독검룡은 후환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산을 오르는 당연명의 눈이 살의로 번득였다.

< 124화<인중룡>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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