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그와 그녀 (1)
무슨 정신으로 그 밤을 보낸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녀의 베개가 눈물로 잔뜩 젖었다는 것과 당황하던 세드릭의 표정이 잠들기 직전까지 선명히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로젤리아로서는 억울하기도 했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녀가 한 것이라고는 평소처럼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뿐인데. 느닷없이 작업실을 찾아오고,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다가온 것은 전부 그가 저지른 짓이 아닌가.
하지만 로젤리아는 제가 먼저 입을 맞췄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이 모두 면죄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는, 쉽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있었으니까.
지난번 어쩌다가 속마음을 티 냈을 때는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번엔 도무지 그를 뻔뻔하게 대면할 수가 없었다.
세드릭과 하게 된 키스는 얼떨결에 일어난 사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로젤리아는 솔직히, 그와의 키스가 너무 좋았다. 그건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당연히 좋았을 일이었다. 로젤리아는 그를 완벽히 ‘남자’로 보고 있었으니까.
제 허리를 거칠게 끌어안던 두툼한 팔뚝, 부딪히는 게 사람인지 돌덩이인지 모를 만큼 탄탄한 가슴팍, 평소에는 금욕적이기 그지없으나 입을 맞출 때는 그 누구의 것보다 질척하고 야릇한 선을 그리며 벌어지는 입술.
세드릭의 모든 것이 로젤리아의 감각을 음탕한 쪽으로 자극했다.
그를 보면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왜 저를 보고 그리 놀란 표정을 지었느냐고 따져 묻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로젤리아는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드릭은 그날부로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정신을 차린 그가 먼저 사과를 해오지 않을까 내심 각오하고 있던 로젤리아는, 영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에 김이 팍 식어버렸다.
어쩌면 그날의 키스는 세드릭에게 있어 아무런 일도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일 수도.
그런 생각이 들자 로젤리아는 걷잡을 수 없이 울적해졌다. 그에게 자신이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이 확 와닿는 탓이었다.
로젤리아는 세드릭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꽤나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관련하여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평소 군더더기 없던 작업에 무척이나 많은 지장이 생기는 것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코앞에 그녀의 세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하얀 종이가 놓여있었으나 손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세드릭과 했던 격렬한 키스를 되새기고, 또 그가 과연 누구를 상상하며 제 입술을 탐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캔버스에 손 하나 대지 못했는데 시간은 훌쩍 흘러있었다.
마샤가 매일매일 식사를 챙겨주고 갔으나 로젤리아는 입맛이 별로 없어 그것들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정해놓은 하루 작업량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식사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식충이처럼 느껴지게끔 했다. 그에게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날 이후로 로젤리아는 창문으로 밖을 나서는 그의 모습을 종종 훔쳐보고는 했다.
시간이 갈수록 초췌해지는 로젤리아와 달리 세드릭은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멀끔하고 수려했다. 그래서 로젤리아는 문득 들었던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에게 그날 있었던 일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로젤리아는 햇빛을 쬐지 못한 풀처럼, 물을 흡수하지 못한 나무처럼 시들시들하게 말라갔다. 어쭙잖은 기대와 상처가 큰 낙인이 되어 그녀는 마음을 접지도, 간직하지도 못한 상태로 괴로워했다.
세드릭이 그녀를 찾은 것은 사건이 일어났던 날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로젤리아는 그가 저를 찾는다는 말에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쿵쿵, 기묘한 박동이 기대감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쉬이 분간하지 못했다. 그래서 로젤리아는 그의 집무실 앞에 도착해서도 한참이나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있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용인이 세 명쯤 지나고서야, 그녀는 노크를 했다.
“들어와.”
그의 허락이 들리고 로젤리아는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느껴지는 집무실 문을 열었다.
간혹 창밖으로 훔쳐보던,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차림새로 책상에 걸터앉아 있는 세드릭이 보였다. 창문을 등지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굳이 역광이 아니더라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수가 없는 기분에 로젤리아는 시선을 피하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다고 들어서…….”
“맞아. 혹시 바빴나?”
로젤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색으로 인해 작업을 손에서 놓은 지도 오래였다. 그리고 굳이 작업이 아니더라도 그가 부르면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든 달려와야 할 처지였다.
세드릭은 그녀를 소파로 이끌었다. 소파 앞 테이블에는 맛깔스러운 다과가 놓여있었다.
로젤리아는 불현듯 몇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이곳, 공작저에 초대했던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세드릭를 향해 이런 감정을 품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달랐을까?
아니, 그랬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게 되든 아니든, 그녀에게는 절대적으로 그가 필요했다. 그러니 어쩌면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지 모른다.
“너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세드릭은 티 포트를 들어 차를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그 손길은 그가 귀족임을 보여주듯 고상하고 기품 있었다.
그와 자신 사이에 이야기를 해야 할 만한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며칠 전에 했던 키스.
애써 억누르던 두근거림이 다시 증폭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그를 쳐다볼 자신이 없어서 로젤리아는 쪼르륵, 티 포트의 입구를 따라 흘러내리는 노란 빛깔의 차만 응시했다.
“네 의견을 들어봐야 할 일이기도 하고.”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쿵쿵, 심장 박동 수가 한계치를 모르고 빨라졌다.
로젤리아는 목이 꽉 조이는 긴장감에 손가락을 그러쥐었다.
“로젤리아.”
혹시 그가 키스의 경위에 대해 물어보면 어떡하지.
지금 이 순간에도 로젤리아의 머릿속에는 제가 먼저 입을 맞춘 실수만 둥둥 떠다녔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결혼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야.”
키스의 키 자가 아닌, 생뚱맞게 흘러나온 말에 로젤리아의 고개가 대번에 위를 향했다. 순간 제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그녀는 어벙하게 되물었다.
“…네?”
로젤리아의 다홍빛 눈동자가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세드릭은 주저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가 한참 만에 질문을 건넸다.
“내가 결혼을 하게 돼도, 괜찮겠나?”
그녀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찻잔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랬다가는 이미 그것을 놓쳐 그녀의 발치에서 산산이 조각냈을 테니까. 그 정도로 세드릭의 말은 로젤리아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분명히 일주일 전 일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로젤리아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결혼.
그 단어에 포함되는 상대는 명백히 로젤리아가 아니었다. 후보를 뽑아보자면 그가 직접 에스코트했으며, 시녀들마저도 꺅꺅거리며 입에 올리던 칸트 공작 영애가 가장 유력했다.
그러니까, 칸트 공작 영애와 세드릭이 결혼을, 하겠다는 건가…….
로젤리아의 사고 회로가 뻑뻑하게 굳어서 잘 돌아가지 않았다. 누군가 뒤통수를 내리친 것처럼 머릿속이 얼얼했다.
각오를 하고 온 것은 맞지만 이리도 충격적인 소식에 대한 대비는 아니었다. 로젤리아는 그저, 일주일 전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것을 각오하고 왔다.
그녀는 방벽처럼 견고히 세워둔 마음속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많은 깨달음이 밀물처럼 한 번에 부닥쳐 왔다.
그에게 정말로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는 것, 세드릭은 그 여인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는… 로젤리아와 한 키스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우스웠다. 잊겠다고 다짐하고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던 자신의 모습이.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제게 이리도 잔혹한 희망 고문을 선사하는 그가.
결혼이라는 대사는 그 누구보다도 임하는 대상들의 의견이 중요한 일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대상이 아닌 타인은 그 일에 절대로 간섭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대체 왜 그는 남이 낄 수 없는 애틋하고도 순결한 일에 그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일까.
조금 전만 해도 미친 듯이 펄떡거리던 심장이 삽시간에 서늘하게 굳어버렸다. 차가운 얼음이 가슴을 관통한 것만 같았다.
로젤리아는 점점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니, 그 감정은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분노보다는 원망, 원망보다는 서운함, 서운함보다는 안타까움. 갖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녀의 가슴 안쪽에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그걸.”
아까부터 가슴 안쪽이 빠듯하게 조여서 제대로 호흡을 하기가 어려웠다. 무언가 차오를 듯 말 듯 목구멍을 콕콕 건드렸다.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로젤리아는 그가 몹시도 미웠다.
“공작님이 결혼하는 문제에 있어서, 제 의견이 대체 뭐가 중요해서요?”
여태껏 실뭉치처럼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울컥하고 사무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를 향해 날카롭게 되묻는 로젤리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머리에 열이 차오르며 동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힘들어했던 일주일간, 그도 조금은 힘들어하기를 바랐다. 아니, 힘들어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조금이라도 신경이 쓰였으면 좋겠단 마음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티끌만큼은 제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 정도라도 된다면 로젤리아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니었다. 일주일 전 일은 물론이거니와 결혼 문제에 대해 그녀와 의논을 할 만큼, 세드릭은 로젤리아를 이성적으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대체 어떤 존재지? 그냥 재주가 좋아 후원하는 학생, 그 정도일 뿐이겠지.
이제껏 넘실거리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소강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괴감이 몰아쳤다. 그의 앞에서 이만큼이나 작게 느껴지던 순간이 없었다.
로젤리아는 어느새 맺혀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을 거친 손길로 닦았다. 울고 싶지 않은데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샘이 멋대로 눈물을 분출했다.
“제가 싫다고 하면 안 하실 건가요? 공작님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게 보기 싫다고 하면, 안 하실 건가요? 아니잖아요. 제가 무어라 답하든 결혼하실 거잖아요. 그러면서 왜 저한테 그런 걸 물으시는 거예요, 왜…….”
그가 다른 여자의 곁에 서있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저를 향한 다정한 눈빛과 따스한 말투가 다른 여자에게 향하는 것만 상상해도 목이 졸리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데.
로젤리아는 저를 자꾸만 희망 고문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그의 앞에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왜 자꾸 바보처럼 기대하게 만드시는 거냐고요…….”
사랑이 외면당하는 것보다, 그 사랑이 혹여나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는 게 더욱 참기 힘든 일이었다. 적어도 로젤리아에게는 그러했다. 그녀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선상에 서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붉어진 눈가로 그를 보며 씨근덕거렸다. 눈물로 인해 시야가 뿌예져서 로젤리아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저 번거롭게 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짙어지던 순간이었다.
한참이나 반응이 없던 세드릭이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게 느껴졌고, 곧 로젤리아는 제 입술에 부딪치는 말캉한 무언가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것이 일주일 전 경험했던 세드릭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술에 취했던 그날처럼 그의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로젤리아는 제 아랫입술을 깨무는 촉감에 그대로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사이로 세드릭이 느릿하게 혀를 집어넣었다. 그녀가 눈을 끔벅거리자 고여있던 눈물이 하얀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흣, 잠…….”
그녀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에게 분노해 한껏 따지고 나서 보니, 그와 키스를 하고 있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말문까지 잘라먹으며 파고든 세드릭의 혀가 고른 치열을 훑고 입천장을 간지럽혔다. 정수리가 간지러운 느낌에 로젤리아는 손끝을 움츠리며 물기에 젖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오늘의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것이 일전의 밤과 달리 지금 그는 멀쩡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세드릭이 고개를 비틀 때마다 입술이 틈 없이 맞물렸다가 떨어지며 쪽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낯선 소리가 로젤리아의 오감을 진득하게 자극했다.
로젤리아가 키스를 피하려고 하자 세드릭이 그녀의 갸름한 턱을 단단하게 그러쥐었다. 이윽고 만족할 만큼 그녀의 입 속을 휘저은 그가 살며시 입술을 뗐다.
“말해.”
저도 모르게 감고 있던 눈을 뜬 로젤리아는 그제야 발견했다. 그의 눈꼬리가 여느 때보다도 만족스레 휘어져 있는 것을.
“내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라고.”
한 번 더 머릿속이 굳어버렸다.
그는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세드릭이 제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눈물로 젖은 로젤리아의 뺨을 자상하게 닦아주며 다시금 속삭였다.
“지레짐작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해.”
다그치는 것에 가까운 내용이었으나 그 어조가 너무나 부드러워서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제게 또다시 이상한 기대심을 심어주는 그에게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아니, 이번에는 전과 다른 기대감이 차오른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저번에는 응답받을 리 없는 헛된 것에 품은 기대였다면 이번엔…….
“…결혼.”
네가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후견인의 말을 잘 듣는 피후견인처럼, 로젤리아는 그가 지시한 바를 철저히 이행했다.
“하지 마세요.”
세드릭의 옷깃을 붙잡은 로젤리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간 숨겨오기만 하던 마음을 처음으로 표현한 순간이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후련함이 컸다. 사랑을 표현하면 안 되는 사내에게 빠진 대가로 그녀는 내내 지독히 마음고생하지 않았는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말아주세요.”
희망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고 해도 두려움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진심을 어렵게 토해내는 로젤리아의 목소리는, 다른 이가 들었다면 마치 쥐어짜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숨어버리려는 본심을 어떻게든 끄집어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별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던 로젤리아는 턱을 그러쥐는 손길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마주 본 세드릭의 입가에 녹녹한 웃음기가 만연했다.
그는 기대하는 답이 있는 것처럼 자꾸만 그녀를 재촉했다. 그녀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떨림을 느끼며, 어렵사리 입술을 벌렸다.
“제가 공작님을… 좋아하니까요.”
고백을 내뱉는 입술이 생전 처음 말을 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고백을 한 건 그녀 자신인데, 꼭 세드릭에게 고백을 받은 것처럼 심장이 몹시 두근거렸다.
로젤리아의 고백을 듣는 순간, 세드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고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강렬한 파도가 되어 로젤리아를 덮쳤다. 설레는 마음에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쑥 다가온 세드릭의 손이 로젤리아의 뒤통수를 감쌌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로젤리아의 붉은 입술을 부드럽게 물었다. 그녀가 목을 움츠리자 세드릭은 머뭇거리지 않고 입술을 더욱 진득하게 겹쳤다.
“흣…….”
로젤리아는 이번엔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그의 손가락이 턱 부근을 꾹 누르는 바람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 사이로 구렁이 담 넘듯 파고든 그의 혀가 순식간에 숨결을 앗아갔다.
일단 그가 하라는 대로 솔직하게 마음은 털어놓았는데, 로젤리아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마냥 어리둥절해하던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세드릭에게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그만 소파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러자 세드릭은 그녀의 허리를 껴안아 힘들이지 않고 제 무릎에 앉혔다. 졸지에 그를 사이에 두고 다리를 벌린 채 앉은 로젤리아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녀는 그에게 고백하는 상상을 여러 번 해봤다. 상상 속에서 고백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다양했으며 고백에 대한 그의 반응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결코, 이런 상황은 상상 속에 없었다. 그의 대답도 듣지도 못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와 키스를 하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말이다.
그래서 로젤리아는 저를 무릎에 앉히고 다시 키스를 하려는 그의 입술을 턱 막았다.
“왜,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로젤리아가 눈물과 당황으로 얼룩진 낯으로 물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이 막힌 세드릭은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키스가 답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나 보다.
그리 생각하며 세드릭은 그녀의 손바닥을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말캉한 혓바닥이 손바닥을 문지르는 촉감에 로젤리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결혼 안 해.”
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움찔거리는 로젤리아의 손바닥에 세드릭의 날렵한 콧대가 뭉근하게 비벼졌다. 그가 굳은살이 박인 손끝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그 행동이 굉장히 관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부터 그런 것 할 생각 없었어. 그보다 내가 너에게 묻고 싶군.”
세드릭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로젤리아는 배 안쪽이 찌릿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정말 몰랐나? 나 또한 너에게 마음이 있었단 걸.”
그의 담백한 한마디에, 로젤리아는 가슴에 벼락이 꽂히는 줄 알았다. 겨우겨우 털어놓은 그녀와 달리 그는 너무도 간단하게 제 마음을 털어놓았다.
“널 볼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덧붙이려던 세드릭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곧 그는 조급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혀를 내어 입술을 축였다. 느릿한 혀의 움직임이 로젤리아의 시선을 옭아매듯 사로잡았다.
“어쨌든, 나도 같아.”
로젤리아가 꺼낸 문장과는 다르지만 의미는 완전히 똑같은, 고백이었다.
마음이 같고 감정이 같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믿기지가 않아서 로젤리아는 넋을 놓았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와 키스를 하고, 그의 무릎 위에 앉아있고, 또 그에게서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그녀에게 꿈과도 같은 일이었다.
“다시 한 번만… 말해주세요.”
이것이 정녕 꿈이 아닌 현실임을 느끼기 위해서 그녀가 세드릭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다급히 부탁했다. 픽 웃은 세드릭이 로젤리아의 목덜미를 휘어 감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로젤리아는 귀를 간지럽히는 숨결에 움찔했다.
“좋아한다고.”
“…….”
“나도 너를.”
감미로운 저음이 청각을 넘어 심장을 이리저리 뒤흔들었다. 확답과도 같은 한마디에 그간 그녀가 겪었던 마음고생들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간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하지 않던 문이 처음으로 활짝 열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로젤리아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세드릭은 제 품 안에서 어린애처럼 우는 그녀를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른 애처로운 눈물은 모조리 그가 닦아주었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세드릭은 그녀가 감격하여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퉁퉁 부은 눈가를 어루만지다가 그 끝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물기로 젖어 번들거리는 다홍빛 눈동자가 어째 야하게 보였다. 세드릭은 본능적으로 피가 몰리기 시작하는 아랫도리를 느끼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바탕 울고서야 조금 정신을 차린 로젤리아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 여운에 얼떨떨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제 허벅지를 찌르는 단단한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몸을 들썩거렸다.
“공작님, 자꾸 뭐가 아래에… 닿아요.”
서서히 고개를 쳐들던 세드릭의 성기가 결국은, 그녀조차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여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세드릭은 환장할 것만 같은 상황에 마른세수를 했다. 찌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의 다리 위에서 몸을 앞뒤로 움직이던 로젤리아는 제 허벅지에 닿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얼굴을 확 붉혔다.
그녀가 아무리 이성 쪽으로 경험이 없다지만, 제 아래에 닿는 것이 남자의 성기이며 지금 상태가 성적인 충동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발기 현상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왜, 왜 이게…….”
그녀가 당황해하는 사이, 세드릭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몇 번이나 지껄이다가 뜨거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제기랄……. 하고 싶어.”
그가 꺼낸 노골적인 말에 로젤리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목적어가 쏙 빠진 문장이지만 알아듣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로젤리아는 지난번, 그림이 있는 1층 방에서 보았던 은밀한 장면이 떠올랐다. 뒷모습뿐이었으나 야릇한 움직임이, 쩌걱거리는 소리가, 고조되던 호흡이 그의 열띤 쾌락을 엿보여 주고 있었다.
로젤리아는 그 쾌락을 맛보는 세드릭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하면 되잖아요.”
그녀의 은근한 속살거림에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가 멈칫했다. 곧 그는 굳은 표정으로 로젤리아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나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지만, 시선 하나는 원초적인 성적 본능을 갈구하듯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순진한 유혹에 아주 잠깐 이성을 잃었던 세드릭은 오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피식 웃었다.
“내가 뭘 하고 싶단 건 줄 알고.”
저를 마냥 애로 보는 듯한 그의 태도에 로젤리아는 발끈했다.
“저도 다 알아요.”
그에게서 좋아한다는 답을 들은 이상, 더는 어리게 보이는 건 사절이었다. 로젤리아는 평소 제 앞에서 여유를 잃지 않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라고 그런 모습, 못 할 줄 알아?
순간 오기가 생긴 로젤리아는 아까부터 허벅지를 쿡쿡 찌르던 그의 것을 향해 손을 내렸다.
아까부터 이미 빠듯하게 부풀어 오른 선단은 바지춤 밖으로 흉흉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진한 염료의 흔적이 완연히 가시지 않은 로젤리아의 손끝이 툭 불거진 위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세드릭의 커다란 전신이 통째로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솟아오른 바지춤 끝이 살짝 젖어있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손가락 끝에 검질기게 달라붙을수록 걷잡을 수 없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세드릭이 턱에 힘을 준 채 씹어뱉듯 탄식을 내뱉었다. 로젤리아는 조금 더 용기를 내 손바닥으로 선단을 문질렀다. 바지춤에 감싸인 그것이 꿈틀거리는 것이 선연히 전해져 왔다.
로젤리아는 다리 사이가 빳빳하게 솟을 정도로 곧추선 그의 성기가 갑갑해 보였다. 그녀가 자연스레 버클을 향해 손을 뻗자 세드릭이 그녀의 손목을 황급히 붙잡았다.
“로젤리아.”
말리는 것 같기도 하고, 경고 같기도 한 부름이었다.
세드릭의 또렷한 눈동자에 뜨거운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명백한 흥분의 전조였다.
그를 묵묵히 내려다보며, 로젤리아의 손은 몇 번 어긋난 끝에 간신히 그의 바지 버클을 풀어 헤쳤다
이윽고 바지춤보다 젖은 속옷을 끌어 내리니 용맹한 그것이 툭 튀어 올라 그의 복부 근처까지 올라붙었다. 꺼덕거리는 페니스는 핏줄이 형형히 비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낯선 생김새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로젤리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기둥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순간 그녀도, 그도 크게 움찔했다. 그녀는 페니스가 생각보다 뜨겁고 단단해서 놀랐고, 그는 배 속이 빠듯하게 조일 정도로 몰려오는 흥분에 놀랐다.
“정말 다 알고 있나?”
느른한 어조가 야했다. 목소리는 그래도 조금 여유롭게 들렸으나, 그의 낯은 여유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급했다. 그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평정을 잃은 얼굴이었다.
오기를 부리던 로젤리아는 그의 질문에 끝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한 토로에 작게 웃은 세드릭이 스스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손이 잡힌 상태라서, 꼭 로젤리아가 그의 성기를 붙잡고 흔드는 모양새가 되었다. 말로 표현 못 할 음탕한 행위에 로젤리아는 뺨이 후끈거렸다.
자극을 받은 페니스의 선단에서 끈적끈적한 액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연스레 흘러내려 세드릭과 로젤리아의 손을 질척하게 적셨다.
세드릭은 수음에 흠뻑 빠진 것처럼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그의 입새로 더운 호흡이 연이어 터졌다.
로젤리아는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준수하고 수려한 이목구비가 오늘은 그저, 색정적으로만 보였다.
얼마 안 가 그는 꽤 이르게 사정에 다다랐다. 평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는 분명, 이 낯 뜨거운 행위를 그녀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갈래로 쩍 갈라진 귀두에서 질퍽한 정액이 쏘아지듯이 터져 나왔다. 그의 단단한 목울대가 가파르게 꿀렁거렸다.
밭은 숨을 내뱉던 세드릭은 그녀의 볼까지 튄 정액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분명 이제 막 사정을 했는데도, 사정액이 튄 그녀의 얼굴을 보자 페니스는 다시 뻣뻣하게 기립했다. 순수한 무언가가 제 음욕에 잔뜩 더러워진 것만 같은 배덕감이 그의 국부를 뜨겁게 달군 것이었다.
한편, 로젤리아는 알게 모르게 허리까지 들썩이며 수음을 즐기던 그가 마침내 사정에 다다른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예전에 리베 백작이 그녀를 불러다 이와 비슷한 행위를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내의 욕망을 푸는 행위가 비위 상할 정도로 역겹게만 느껴졌는데 세드릭을 볼 때는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벌리고 앉은 다리 사이가 살살 간지러워지는 듯한, 이상야릇한 감각이 전신을 감돌았다.
“…놀란 표정인데.”
세드릭은 애끓는 목소리로 소곤대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정액을 닦아주는 손길이 꿀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다정했다.
“놀라지 않았어요.”
정액을 닦고 멀어지려는 사내의 손을 붙잡은 그녀가 그것을 제 가랑이 사이로 끌어당겼다.
“저도… 똑같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교태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다른 사내의 앞에서는 억만금을 주더라도 하지 않을 행동을 세드릭의 앞에서는 자의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부끄러웠고 민망했지만, 그럼에도 로젤리아는 제 뜻을 분명히 전하고 싶었다.
그녀는 지금, 그와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게 마음이든, 몸이든.
그녀의 저돌적인 행동에 놀란 양 세드릭의 눈이 커졌다. 오래지 않아 그는 자신도 똑같다는 그녀의 말에 큼지막한 손으로 음부 전체를 어루만졌다. 속바지 가운데 부근이 축축했다. 손가락으로 그 위를 비비듯이 문지르자 로젤리아가 허리를 비틀었다.
저조차도 씻을 때가 아니고서야 잘 만져본 적이 없는 부위에 타인의 손길이 닿았다. 그 손길의 주인이 세드릭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등줄기를 타고 번지는 오싹한 희열을 느꼈다. 그의 어깨를 바투 잡은 그녀의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갈수록 상기되어 가는 로젤리아의 낯을 바라보는 세드릭의 표정은 황홀 그 자체였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때와 같은 아찔한 감각이 물밀듯이 몰아쳤다. 눈가가 점차 뜨거워지며, 이미 한 번 파정한 아랫도리는 언제 그러했느냐는 듯 뻑뻑이 곧추섰다.
그의 손끝에 닿는 면적이 점점 더 축축해졌다. 세드릭은 물을 일주일은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조급한 갈증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마침내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속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밑으로 내렸다.
아래가 휑해지자 깜짝 놀란 로젤리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곧, 훤히 드러난 질구에 닿는 손가락에 움찔 어깨를 말았다.
“아, 공, 공작님……!”
젖은 살점 사이로 그의 검지가 쑥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앞뒤로 문지르니 질구에서 흘러나오는 애액이 그의 손가락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서로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로젤리아는 자신이 스스로 음부를 만질 때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에 헐떡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순진한 모습에 세드릭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이성은 놓친 지 오래였고, 지금 그를 종용하는 것은 음험한 본능이었다.
앞뒤로 움직이며 클리토리스를 슬쩍슬쩍 자극하던 그의 손가락은, 로젤리아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사이 자그마한 질구 속으로 쑥 파고들었다.
“아흣.”
갈고리 모양으로 굽어진 손가락이 신비롭다는 듯 내벽을 쿡쿡 찔렀다. 허리를 부들부들 떨던 로젤리아는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질주를 한 것처럼 호흡이 가빠지며 제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와중에도 발끝이 절로 움츠러들 만큼 선득한 쾌락이 쏟아졌다. 아래에서 나는 쿨쩍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세드릭은 상상만으로 그려온 곳을 만진다는 자각에 미칠 듯한 흥분감이 몰려왔다. 이대로 당장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흉흉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박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거센 욕망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런 무자비한 행동은 그녀를 상처 입힐 게 분명하니 인내하고, 또 인내할 뿐이었다.
“…좁고, 뜨거워.”
나른한 저음에 로젤리아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지금 어디를 만지며 말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미치도록 수치스러웠으나, 그녀는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깊게 파고들어 내벽을 자극하는 바람에 신음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흐…응.”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신음도 배 속이 배배 꼬일 정도로 어색했다. 로젤리아는 참지 못하고 손으로 제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행동을 알아챈 세드릭이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고작 손가락 두 개를 집어넣었을 뿐인데 그녀의 안은 이미 가득 찬 것처럼 빠듯해졌다.
검지와 중지를 깊숙이 삽입한 채 좌우로 벌리자 벌어진 사이로 흥분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너무도 난잡하여 시야를 속수무책으로 자극하는, 음탕한 장면이었다.
세드릭이 불시에 그녀의 허리를 껴안아 소파 위로 눕혔다. 갑자기 등이 소파에 닿은 로젤리아는 속옷까지 전부 벗은 가랑이가 활짝 벌어지고, 그 사이로 고개를 묻는 세드릭의 행동에 경악했다.
“공작님! 흑……!”
그가 뱀의 것처럼 사특한 혀를 내어 엉덩이 골부터 클리토리스까지 길게 핥아 올렸다. 흘러내린 물이 엉덩이를 푹 적시는 느낌에 로젤리아가 벌벌 떨며 소파 팔걸이를 움켜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정제되지 못한 난잡한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반들거리는 음순을 벌리고 입구 표피를 문지르던 혀가 자연스럽게 구멍 안으로 진입했다. 조금 전까지 손가락을 야금야금 삼키던 질구는 벌름거리며 잘도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뭉근한 혀가 빠듯한 안을 이리저리 휘저을 때마다 로젤리아는 눈앞이 번쩍거렸다. 어딘가가 가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간지러운 게 배 안쪽인지, 다리 사이인지, 아니면 심장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이 행동을 멈추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것. 그것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그녀의 진심이었다.
세드릭이 혀를 밀어 넣을 때마다 구멍 안에 담뿍 고여있던 애액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감로수라도 된다는 양 벌컥벌컥 삼키며 세드릭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제 페니스를 감싸 쥐었다.
그녀의 아래에 개처럼 고개를 처박고 게걸스레 핥아대며, 짜릿한 자극을 원하는 성기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한 손으로 감싸기도 벅찬 기둥을 위아래로 문지르자 반으로 쩍 갈라진 귀두가 움찔거리며 사정의 욕구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아까와 같이 사정은 빨랐다. 소파는 이미 그녀의 애액과 그의 사정액으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흐윽!”
그가 사정에 다다르는 것과 동시에 로젤리아 또한 아뜩한 절정을 느꼈다. 정신이 어질어질하여 볼썽사납게 벌어진 다리를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들썩거렸다. 아래가 아니라 영혼이 그에게 빨린 것만 같았다.
숨을 다 고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일 소파에서 문란한 행위를 벌이고 있던 둘이었으니, 그녀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세드릭은 당장 일어나려는 그녀를 제지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로젤리아는 그의 입가에 번지는 장난스러운 미소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세드릭이 저렇게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의 색다른 모습에 이 상황에서도 참 주책맞게 심장이 널뛰었다.
“왜.”
세드릭이 문밖까지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바깥에서 ‘공작님, 다과를 챙겨 왔습니다.’ 하고 답했다.
시종의 대답을 듣고 한 귀로 흘린 듯 그가 천천히 상체를 기울였다. 제 위로 드리우는 음영에 침을 꼴깍 삼키며 로젤리아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드레스가 허리까지 말려 올라가며 훤히 드러난 음부에 그의 굵직한 성기가 금방이라도 삽입될 듯 닿았다. 찐득찐득한 촉감에 로젤리아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달아올랐다.
“필요 없다.”
거칠거칠한 음성으로 짧게 답한 그가 로젤리아의 볼을 깨물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를 세우는 감촉에 놀라 로젤리아가 손끝을 굳혔다.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이 여기 있는데…….”
바깥의 시종에겐 절대로 들릴 리 없는, 오로지 로젤리아만 들을 수 있는 은근한 속삭임.
입으로 호선을 그린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관능적이었다. 그가 일컫는 ‘맛있는 것’이 저라는 걸 어렵지 않게 깨달은 로젤리아는 부끄러워 시선을 피했다.
작게 웃은 세드릭이 그녀의 갸름한 턱을 붙잡아 제게 향하도록 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묻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
“네가 선택해. 여기서 관둘지, 아니면 이대로 나와 침실로 갈지.”
오늘 그에게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으나 그는 마치 술에 취한 그날처럼 거침이 없었다.
불현듯 로젤리아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또한 이 모습이 내내 숨겨왔던 본모습은 아닐까 하고. 그녀에게 선택하라 해놓고서, 분명 후자를 고를 것이라는 저 확신에 찬 자신만만한 표정만 봐도 그랬다.
세드릭의 거침없는 모습은 낯설었으나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 정도면 나도 참 나다, 하고 생각하며 로젤리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제 얼굴이 새빨개져 있을 게 분명했다.
“…가요, 침실로.”
개미만큼 작은 목소리로 꺼낸 대답에 세드릭은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렸다. 깜짝 놀란 로젤리아가 그의 목을 휘어 감았다.
세드릭은 위층에 있는 본 침실이 아닌 집무실과 연결된 간이 침실로 향했다. 그가 혹 이대로 집무실을 나가려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던 로젤리아는 그제야 안도했다.
하지만 그가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 안도는 뿌옇게 사라져버리고 다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까 전 가열하게 타오르던 성적 긴장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의 위로 올라탄 그가 자연스럽게 입을 맞춰왔다. 뜨겁게 섞이기 시작한 호흡에 로젤리아는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향해 다리를 가린 치맛자락을 끌어 올렸다.
혀를 밀어 넣어 그녀의 축축한 점막을 이리저리 찌르던 그가 불현듯 입술을 뗐다.
“그러고 보니, 테누이스 후작의 제안은 거절했겠지?”
그가 팽팽히 당겨진, 조금의 여유도 없는 눈빛을 한 채 물었다. 로젤리아는 그제야 완전히 잊고 살던 테누이스 후작을 떠올렸다. 술에 취한 세드릭과의 키스 사건으로, 그녀의 머릿속에서 후작은 이미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아직이요.”
“아직?”
세드릭이 불만스럽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고백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들은 직후라 그런지 저 반응이 순진한 질투로만 보였다. 아니, 정말로 질투가 맞을 터. 로젤리아는 행복감에 폐부 안쪽이 빠듯하게 저려왔다.
“다음에 대답을 들으러 오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거절하려고…….”
“내가 대신 해줄까?”
“네? 공작님께서 왜요?”
“왜긴 왜야.”
어느새 종아리를 간지럽히던 그의 손가락이 흰 살결을 타고 올라와 허벅지 안쪽을 콱 움켜쥐었다.
“네가 그 자식이랑 만나는 게 싫으니까.”
그는 이제 자신이 질투한다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가슴 안쪽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한테 관심 보일 때부터 거슬렸어.”
그 말에 로젤리아는 테누이스 후작이 찾아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세드릭은 필요 이상으로 오래 작업실에 있었으며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돌이켜 보니 그의 마음을 가리키는 증거가 이리도 확연했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치미는 감정에 로젤리아는 그에게 입을 맞췄다. 세드릭은 거부하는 일 없이 제가 더 깊게 입술을 맞물리며 로젤리아의 다리를 벌렸다.
그의 입술이 턱에서 목덜미로, 목덜미에서 가슴으로 차분히 내려갔다. 그의 머리통을 붙잡은 채 로젤리아는 여린 미성으로 신음을 터뜨렸다. 꼭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오감이 몽롱했다.
드레스가 벗겨지며 젖가슴이 그의 시야에 가감 없이 드러났다.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뽀얀 살결을 넋 놓고 응시하던 세드릭이 그 위로 단숨에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호흡이 가슴께를 낱낱이 자극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랑이 사이를 자극할 때부터 간질거리기 시작한 유두는 그의 손길을 환영하는 것처럼 뾰족하게 섰다.
그가 뭉근한 혀 놀림으로 젖꼭지를 문지르고 핥았다. 간간이 입술을 오므려 쪽,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렬하게 빨아들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로젤리아의 입에서 달뜬 교성이 터졌다. 그는 그녀의 유두가 부풀어 오를 지경까지 빨고, 괴롭히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로젤리아의 다리 사이는 들쑤셔진 그대로 푹 젖어있었다. 애무를 더 이어갈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손을 쑥 집어넣자마자 그것을 알아챈 세드릭이 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그의 앞에서 훤히 드러난 밀부에 로젤리아는 얼굴을 붉혔다.
세드릭은 이제 아플 정도로 뻐근하게 당겨오는 페니스를 붙잡고, 귀두를 질구에 문질렀다. 그녀의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두방망이질했다.
떨리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로젤리아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두터운 선단이 조금씩 안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흑!”
고작 귀두가 들어온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상당했다. 이내 아래가 쩍 갈라지는 고통에 로젤리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아, 아파요……!”
눈시울이 벌게진 그녀가 다리를 바동거리며 고통을 토로했다.
세드릭은 그녀의 머리맡을 짚고서 긴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 딴에는 아파서 그런 것이겠지만, 페니스를 꽉 조이는 구멍의 탄력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그 스스로 하던 손장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율이 몰아쳤다.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깊게 내쉬며 그가 로젤리아의 입술을 물었다.
로젤리아는 키스하며 유두를 문지르는 손길에 골반을 비틀었다. 위는 아찔할 만큼 좋고 아래는 아득할 만큼 아프다. 쾌감과 고통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그녀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
로젤리아가 엉엉 울자 난처해하던 세드릭이 가슴을 움켜쥐고 애무하던 손을 밑으로 내려 그녀의 툭 불거진 클리토리스를 긁었다. 그러자 우는 와중에도 로젤리아는 무심코 야릇한 교성을 터뜨리며 허리를 휘었다.
아래가 속수무책으로 젖어 드는 순간을 노리고, 세드릭은 반쯤 삽입한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하으!”
자궁 밑을 쿵, 하고 박는 세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로젤리아는 턱을 치켜든 채 바들바들 떨었다. 배 속이 얼얼하고 뜨거웠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간지러웠고… 그냥 이상했다.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세드릭이 흘러내린 그녀의 눈물을 혀로 핥으며 속삭였다.
“아직도 아파?”
“모르겠어요. 흑. 아, 아직, 잠깐만요…….”
여자 경험이 없는 그는 착실하게 그녀의 말을 따랐다.
당장 아랫도리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더운 열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뜨거운 본능도 그녀의 고통 앞에서는 모두 흐지부지해졌다. 특히나 몸을 움직이다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묻어난 핏자국을 발견하고, 더욱이 인내심을 끌어 올렸다.
로젤리아는 이상한 느낌에 제 배를 어루만졌다. 범상치 않은 크기의 페니스였으니 혹 배 위로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실제로 그가 뿌리 끝까지 삽입한 지금 그녀는 속이 조금 더부룩했다. 다행히 튀어나온 흔적은 없었지만 배를 어루만지니 그가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아, 여기까지… 들어왔나 봐요.”
그녀가 배꼽의 윗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자 세드릭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죽기 살기로 참고 있는 그에겐 저 별것 아닌 말도 귀 뒤가 저릿해질 만큼 음탕한 자극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살살 움직여 볼 테니, 아프면 말해.”
세드릭은 주의 깊게 그녀를 관찰하며 살짝살짝 허리를 움직였다. 아까처럼 깊숙이 밀어 넣지 않고 반쯤 넣고 뺐다가 또다시 반쯤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자신의 것을 끊어먹을 것처럼 조이던 내벽의 세기가 점차 약해졌다.
“으응… 흣.”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에 얼마나 힘을 쓴 건지 세드릭은 본격적인 추삽질을 시작하기도 전에 땀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속도에 차츰 익숙해지던 로젤리아는 어느덧 고통은 사라지고 전신이 무언가에 야금야금 삼켜지는 듯 간지러운 것을 느꼈다.
로젤리아가 머뭇거리다가 내뱉은 한마디에 세드릭은 분부대로 반절보다 더욱 깊숙이 페니스를 삽입했다.
질 벽의 깊은 곳을 아슬하게 스치는 귀두에 로젤리아가 ‘히익’ 하며 기겁하는 소리를 냈다. 세드릭은 간드러지는 그녀의 미성이 이제는 아파서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짝바짝 타는 심지처럼 짧아지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그는 후, 하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깊게 박아놓은 페니스를 뒤로 물렸다.
찌꺽거리며 안에 박혀있던 것이 딸려 나오자 로젤리아는 반사적으로 아래를 조였다. 검푸른 핏줄이 비칠 정도로 발기한 사내의 성기는 애액으로 푹 젖어있었다.
“아, 좋아…….”
그녀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진솔한 신음에 세드릭은 전신이 오싹했다. 순간 힘을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사정에 이를 뻔했다. 정말이지, 정사에 있어서는 못 배운 티가 나는 애송이가 따로 없었다.
그는 제대로 자세를 고쳐 잡고 참아온 본능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으읏! 흐, 아!”
로젤리아는 질 벽을 찌르는 속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느끼며 교성을 내질렀다. 그의 것이 뿌리 끝까지 파고들어 안을 꽉 채울 때마다 눈앞이 번쩍이며 허리가 휘었다. 아까부터 배 속에서 느껴지던 간지러움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기분 좋은 감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로젤리아는 오늘 그와의 관계를 통해 처음으로 깨달았다.
“잠, 깐, 아아, 공작님, 흑!”
맞닿은 결합부로부터 나는 철벅거리는 물소리가 커진다. 더불어 침대도, 그들이 무슨 행위를 하고 있는지 만천하에 알리려는 듯 끽끽 난잡한 소음을 냈다.
세드릭이 아무렇게나 벌어진 로젤리아의 다리 한쪽을 제 어깨에 걸치며 그녀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 로젤리아는 전과는 다른 각도로, 하지만 그보다 더욱 깊이 들이차는 페니스에 눈꺼풀을 바르르 떨었다.
“흑, 깊, 으응, 너무, 깊어요, 아……!”
세드릭은 말은 그리하면서 너무 좋아 제 것을 물고 놔주질 않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뒤섞인 액들이 질척하게 이리저리 엉겨 붙은 장면이 외설적이었다.
그 음탕한 장면은 그의 성기에 더욱 피가 몰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분명 두 번이나 사정을 했음에도 페니스는 죽지 않고 자꾸만 더 단단해져서 문제였다.
그가 빠르게 골반을 튕기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내벽 안을 때려 박는 속도가 차분하게 높아지며 로젤리아는 솟구치는 절정의 기운을 참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앗, 흣, 하으응!”
이윽고 그의 것이 내벽을 가득 채우는 순간 로젤리아는 찌르르한 절정을 느꼈다. 안쪽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등줄기를 타고 번지는 쾌락이 너무도 강렬하여 그녀는 얼굴을 묻은 채 바들바들 떨었다. 호흡이 딸려 제대로 숨을 내쉬기도 힘들었다.
“…큿!”
그녀가 오르가슴을 느끼며 동시에 눅진한 질 벽을 꽉 조이는 바람에 허릿짓하던 세드릭 또한 급격히 파정에 달했다. 대체 얼마나 느낀 것인지 희뿌연 정액이 끝없이 흘러나와 그녀의 질 안을 가득 채웠다.
몰려온 여운에 늘어져 있던 로젤리아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는 손길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제 허리를 껴안은 그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땀에 젖은 이목구비가 여심을 통째로 앗아갈 듯 수려했다. 로젤리아는 심히 두근거리는 마음을 끌어안고 그에게 입술을 맞추었다.
침실의 온도가 후끈했다. 정사의 열기가 만연한 탓이었다. 언제건 냉철함을 잃지 않는 주인을 따라 서늘하던 저택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 간극에서 오는 차이로 말미암아 로젤리아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분간할 수 있었다.
현실이었다. 그와 이어졌다. 마음과 몸, 둘 다.
“왜 또 울까.”
세드릭이 못 말리겠다는 듯 속삭였다.
그제야 로젤리아는 눈가가 후끈거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나버린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날 리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는 이유가 결코 슬퍼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좋아해요, 공작님.”
그녀 인생에 있어서 행복한 기억의 시작과 끝은 전부 그였다. 갈 곳 잃은 자신을 받아주고, 졸업식 때 홀로였던 그녀를 찾아와 주었으며, 이렇게 마음까지 받아준 그를…….
“정말 좋아해요…….”
확신에 확신을 더하는 그녀의 속삭임은 명백하게 새빨간 사랑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