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아버지와 아들
사위는 어둡고도 적막했다.
그것은 이미 연희가 파하고 모두가 불을 끄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자정도 훨씬 지났으니.. 끄윽..)
그는 그 어둠속을 몽롱한 취기속에서 다소 비틀거리며
걷고 잇엇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응시했다.
은가루를 뿌려 놓은듯 무수히 빛나는 군성들 사이에서
돌연 하나의 백광이 눈부시게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유성... 단 한 순간의 격렬한 삶, 진정한 자유,,)
그는 내심 독백하듯 부르짖다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렷
다.
(나는 지금 정말로 자유로운가, 나는 오직 그것을 위
해 모든 것을 버렸거늘..
나의 생활은 정말로 저 유성처럼 화려한가?)
단아하고 준수한 요모의 중년문사,껏이 현재의 그의 모
습이었다.
술을 많이 마신탓에 다소 비틀거리지만, 그것은 어지
럽고 추해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에게는 여유와 은은한
품위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연중 대게가 그를 존경한다.
---금적수사 어장룡,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빛은 점차 암울하게 잦아들고 있엇다
(단지 겉보기일 뿐이다. 속은 썩어 들어가고, 유성처럼
자유롭게 살겠다고 외치던 너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문득 다시 한번 유성이 보고 싶어 고개를 들었다.
허나,
무수한 별빛만 총총할 뿐, 유성은 쉽사리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한창을 그렇게 서 있다가, 이윽고 그는 포기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그의 뇌리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후형의 설명대로라면 표물주인은 용모가 아버지와
비슷한데, 정말로 아버님이 나타나셨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골몰하는데, 문득 그의 시야에 거대한 암벽
이 확 다가들었다.
[......]
우측으로 급격히 꺾어지는 길이엇던 것이다.
그가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감이 있어
그의 면상은 바위를 향해 부딪쳐 가고 있었다.
허나, 그의 안색은 여전히 태연했다.
스스스.
그의 육신이 한 순간 불가사의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일순 뿌연 잔영만 남기고 그의 신형은 이미 우측으로
돌아가 잇었던 것이다.
이런 느닷없는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완벽하게 신법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무예가 이미 상승의 경지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정말 아버님이라면 무엇 때문에 그런 표물을 맡겼단
말인가, 나를 본가로 데려가기 위해서..? 아니야 반드
시 아버님이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는 가산을 돌아 표국의 후원 깊숙한 곳으로 가고 있었
다.
그곳에 그의 거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산을 돌자, 인적이 없는 듯한 외진 곳이 나타났다.
이제 몇 구비만 돌면 그의 집이다.
문득 그의 시선이 암울한 가운데 다소 밝아지는 듯 했
다.
(녀석, 벌써 안본지도 보름이나 됐군 표행에서 돌아와
곧장 들리지 않은 것을 다소 섭섭하게 생각하겠지)
그가 말한 가석이란 아들인 이소운을 가리키는 것이다.
온갖 절망 가운데에서도 오직 그만이 그에겐 낙인 듯 보
엿다.
(녀석, 아마 지금쯤 잠도 안자고 나를 기다리느라 목
검이나 휘두르고 있겠군)
그의 시선에 떠오른 미소가 조금 짙어졌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그의 눈앞에 하나의 인영이 소리없이 나타났다.
[....?]
일순 그는 크게 놀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은 그 인영의 신법이 그야말로 불가사의 하여 흡
사 땅에서 솟아나듯 나타났다는 점때문이 아니였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인영이 며칠 전 표물을 맡기고 갔
던, 자칭 황보노야라는 마의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인이야말로 그와는 특수한 관계에 잇는사
람인 것이다.
(아, 아버지.)
그는 흡사 학질걸린 사람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더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
노인의 안색은 다소 차갑고 엄해 보였다.
그는 이장룡을 내려다보며 꾸짖듯 입을 열엇다.
[네가 나를 아직도 아비라고 부르는 걸 보니 근본을 잊
지는 않았구나]
이장료응나 몸을 다시 한번 부르르 떨었다.
[제가 어찌 아버님을 ,, 저는 다만..]
이장룡이 말을 이으려하자, 노인은 손을 저엇다.
[더 이상 변명은 필요없다. 너와 나사이에 그러한 얘기
가 이미 한두번 오간것도 아니고... 더구나 나는 지금
너의 변명을 들으러 온것이 아니다.]
[.....]
마의 노인은 말을 이었다.
[단지, 나는 네게 한가지 부탁을 하러 온것이다. 네 자
식은 잘 자랐더구나, 그를 내게 줄수가 없겠느냐?]
이장룡은 한숨을 쉬며 말햇다.
[제가 아버님께 예속되지 않았듯이 그 아이 역시 제게
예속된 것이 아닙니다. 가고 안가고는 오직 그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마의 노인은 눈빛을 번쩍 빛냈다.
[그 아이 역시너의 생각을 주입받앗을 테니, 결국 너처
럼 본가엔 들어가지 않으려 하겠지?]
이장룡은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 또한 얽매임을 싫어할 것입니다.]
마의 노인은 가볍게 탄식했다.
[좋다. 아내를 잃고 자식하나 남았으니 빼앗기기 싫다
는 말이렸다. 그러나 본가의 천년숙원을 내대에서 끝낼
수는 없으니 너는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것으로
보느냐?]
이장룡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아무리 해도 제 뜻을 꺽지는 못하실 겁니다.]
마의 노인은 눈빛을 깊게 빛내며 말했다.
[네가 천하에서 매장이 되는데도?]
이장룡은 번뜻 스치는 생각이 있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아버님게서 표물을 ...]
[그렇다. 내가 시킨 것이다. 너는 그들이 표물이 무사히
운송하리라고 보느냐?]
[......]
마의 노인은 말을 이엇다.
[그들은 죽게 될것이고. 표물은 강탈당할 것이며, 그 누
명은 모두 네가 뒤집어 쓰게 된다. 그리하면 천하에 네
가 발 붙이고 살 땅이 있을 것 같으냐?]
이장룡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이빨을 악다물엇다.
[그들은 모두가 협의지사들 입니다. 그들이 악인이 아
닌 이상, 아버님께선 절대 그러실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의 노인은 고요히 눈빛을 빛냇다.
[그래 허나 결과는 무고보면 알게 도리 것이다. 내가 권
하는 것은, 네 스스로가 본가로 들어오는 것이지만,
만일, 이 사실을 네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허나, 넌 지금 신분을 감추고 있고, 표물은 이미
계약이 되었으니 그들이 너의 설득을 들어줄까?
[아버님]
이장룡은 일시에 전신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
분을 느꼈다.
마의 노인은 입을 열엇다.
[어때 너는 생각을 돌리겠느냐?]
이장룡은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님을 말씀을 믿지도
못하겠습니다.]
[어리석은 것]
마의 노인은 다소 언성을 높엿다.
[네 뜻이 정녕 그렇다면 나도 말릴 생각은 없으나, 너
역시 행동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말과 동시에 마의노인은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 사라
졌다.
정녕 유령같은 신법이었다.
[.....]
이장룡은 마의노인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그대
로 꿇어 앉아 잇었다.
(아버님의 뜻은 가문의 천년동안 내려온 숙원이고 전통
이지만, 그 전통에 의해 개인의 삶이 희생된다면 그건
악습입니다. 악습은 철폐되야 해, 내 후대를 위해서라도
나는 물러서선 안된다.. 인간의 삶이 한낱 신이되기위한
도구로 쓰여진다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이윽고, 이장룡은 일어서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그의 시선은 아까보다 더욱 암울한 절망으로 가득 차오
르고 있었다.
문득 그의 입술이 열리며 한줄기 싯귀가 흘러나와 주위
의 어둠속을 안개처럼 음울하게 적셔갔다.
누군가, 쓸쓸히 홀 몸으로 장안의 가을을 아 지그시 느
껴워함은?
젊은 나이로 떠도는 나그네 되어 백발된 꿈을 꾸고 꿈에
도 울었나니
여윈 말 끌어내어 시들은 풀 뜯기우면
찬빗방울 도랑가에 뿌리고
어둠 저 쪽 남궁에서리
촉촉히 젖어 들려오는 때 알리는 종소리
고향은 칠리거니 구름 드리운
동녘 하늘 끝간데를 헛되이 더듬다가
시름에 지쳐 칼상자 베고 누워
아 제후되는 꿈을 꾸고 웃었도다.
>< >< ><
휙휙휙...휙...익..파파팟.
소년 이소운,
그가 지금 잇는 곳은 모옥의 앞에 잇는 마당의 중앙이였
다.
웃통을 벗어놓고 연신 목검을 휘두르는 그의 온몸에선
계속해서 땀이 흘러내렷다.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온통 시뻘겋게 변한 그의 상채.
[장홍관일]
동시에
그의 목검이 날카롭게 허공을 누비기 시작했다.
파파팟
장홍관일이란 검초는 육합검법 중 두번째에 해당되는 것
이다
즉. 그는 지금 육합검법을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육합검법이란 제일초 개창망월부터 제육초식 팔방풍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여섯초식으로 강호에선 삼재검법
다음으로 흔하고 쉬운 것이다.
그러한 극히 기본적인 검법을 총표두의 아들인 그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연마한다는 사실은 정말 기이한일
이다.
더구나 그 검법을 연마하고 있는 그의 몸놀림을 보면
정말 어이가 없어지게 된다.
(장홍관일은 마치 무지개가 해를 꿰뚫듯 느린 듯 빠르
게, 변화할 때는 폭발적으로...)
내심 중얼거리며 목검을 휘두르는 동작은 몹시 뒤뚱거
리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검을 처음 든 사람이 처음으로 검법을 펼치
는 것 같아보였다.
허나 그는 처음이기는 커녕, 이미 오늘만 해도 이 검법
을 수십번은 반복해서 연마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실로 보기드문 둔재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이미 이 부근에 모르는 사람이 없
을 정도인 것이다.
휙..휙...휙
이소운은 제일초 개창망월에 이어 장홍관일에 이어 직
도화산을 연거푸 펼쳐나갔다.
비록 천하에 다시없을 둔재이기는 하나, 그의 노력과
열성은 그와 반대로 천하제일이라고 할만했다.
그것 또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터엿다.
(벌써 초식이 많이 부드러워 졌어, 나는 비록 둔재이지
만 기필코 이 육합검법만큼은 익혀내고 말거야..)
내심 중얼거리면서 그는 마침내 최후초식인 팔방풍우를
펼치게 되었다.
팟쓰쓰쓰
팔방풍우는 한마딜 가장 복잡하고 힘이 많이 드는 초식
이다.
설상가상 그 검초를 펼치게 되자 이소운은 문득 자신의
몸이 균형을 잃고 별안간 뒤로 벌렁 넘어가려함을
느꼈다.
(앗차-
내심 소리친 그는 즉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는힘을 다
해 버텼다.
허나 그의 몸은 영 위태위태해 보엿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그의 내부에선 망아지같은 기운이
빨랐다가 느려지고, 갑자기 끊이다간 이어지는 둥 마구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넘어지진 않앗지만 그대신 자신의 목검에 머
리를 몇대 맞고 말았다.
픽퍽퍽..
(어이쿠)
이소운은 이맛살을 찌푸린 채 내심 신음을 발했지만
그것을 소리로 내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엇다.
(피곤하니까 잘 안되는구나 오늘은 이재 그만해야지)
이어 그는 목검을 갈무리하고 상의를 걸친 뒤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해서 아버지는 아직도 오시지 않아는걸까? 연회는
밑러써 파해을 텐데)
그때 문득 그의 두눈이 반짝 빛을 발한듯 싶었다.
어둠저편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며 서 있는 사람 하나
를 보앗던 것이다.
(아버지.)
그 사람은 바로 그의 부친인 이장룡이었다.
이소운은 반색하고 그에게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아버지 돌아오셨군요.
소리침과 동시에 와락 달려들어 부친의 품에 안겨 버렸
다.
[허허, 그녀석 다 크고서도 아직 어린애 같구나]
이장룡은 마주 껴안으며 아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
었다.
그러는 그의 시선엔 어느덧 밝고 자애로운 미소로 가득
했다.
[그래, 저녁 식사는 들었느냐?]
이장룡의 물음에 이소운은 고개를 쳐들고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예 아버지가 안오셔서 제가 두그릇이나 먹었죠.
전 아무래도 뚱보가 될것 같아요.]
이장룡은 미소했다.
[허허, 뚱보가 될까봐 고민이냐 이 아비가 살찌지 않게
하는 비결을 가르쳐 줄까?]
이소운은 그의 품속에서 눈을 휘둥그레 떳다.
[그런 비결도 있나요? 아니면 아버지가 어번 표행에서
신단을..]
이장룡은 아들의 뒤통수에 알밤을 한대 주며 말했다.
[녀석 그 비결이란 밤중에 나와서 쓸데없는 운동을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을 하게 되면 배 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밥을 많이 먹게되지]
이소운은 안색이 붉어졌다.
[아버지께선 다 보고 계셨군요.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
으면 정말로 살이 빠질까요]
이장룡은 알밤을 또한번 때렸다.
[이녀석, 감히 이 아비의 말을 못믿겠다는 것이냐?]
[...]
이소운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그의 내심 생각은 살빼는 것 더 위에 있는 것이 아
니었다.
(아버지는 왜 무공을 배우는 걸 반대하시는 걸까? 남보
기엔 찬성하고 지도해주시는 것같지만 사실은 아냐, 난
알수 잇어... 무공을 배우면 몸과 마음이 강건해 지거늘
어찌해서 그러실까?)
이장룡은 생각에 잠긴 그의 볼을 길게 잡아당기더니 말
했다.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느냐? 어서 들어가자]
[예]
이소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친의 품에서 빠져나와
빠르게 방쪽으로 달려갔다.
[어서 오십시오. 아버님]
아들이 짐짓 예의를 갖추며 장난하자 이장룡은 너털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 부자 두 사람이 기거하는 이 모옥은 표국내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물고 후미진 가산 뒷편에 위치했다.
게다가 몹시 검박한 생활을 즐겨하는 이장룡은 국주인
하후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초라한 생활을 고집
한 것이다.
모옥은 부엌하나 방한칸으로 되어있고, 침실겸 응접실
인 하나의 방엔 침대가 두개 나란히 놓여 잇었다.
주위의 가구로는 탁자와 의자 몇개, 한쪽의 서적 진열대
등이 고작이었다.
[내일은 또 표행을 떠나신다면서요?]
이소운이 뒤다라 문을 닫고 들어오며 물었다.
이장룡은 침상위에 걸터 앉으며 시선을 이소운에게 주었
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이소운은 피식 웃어 보였다.
[제가 무슨 귀머거리에 바본가요? 표국내의 사람이면
그일은 다 알고 있는걸요. 특히 이번 표행은 위험한거라
고...]
그 말에 이장룡은 안색이 다소 굳어지는 듯 햇으나, 곧
태연한 신색으로 말했다.
[표행에 위험하지 않은일이 어디 있으며, 또 쉬운일이
어디 잇겠느냐, 오히려 이번같이 미리 경계를 강화하고
간다면 오히려 더욱 안전한 법이다.]
[....]
이장룡은 물끄러미 이소운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
다.
[소운아, 솔직히 말해 보아라, 너는 정말 무예가 좋으
냐?]
이소운은 부친이 정색하고 묻자 갑자기 쑥쓰러운 느낌
이 들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뭐,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무엇보다도 흥미
가 있긴 하지만..저 같은 둔재가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다만 좋아서 한번 해보는 것일 뿐이죠. 뭐 심심풀이랄까
...]
[심심풀이?]
이장룡은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의 시야에 문득 이소운의 두 백미가 강하게 다
들어왓다.
(심심풀이라, 둔재라서 희망이 전혀 없다고..? 허나
정말 둔재가 아닌것을 알게되면... 그래서 본격적으로
무예를 연마하게 되면 한차례 강호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겠군 최고의 자질에 최고의 노력이라.. 나는 혹
지금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장룡이 잠시 말이 없자 이소운은 말똥말동한 시선으
로 부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응?)
이장룡은 미소하며 물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엇느냐? 그렇게 앉아 있지만 말고
어서 자자, 밤이 깊었으니..]
[저...]
무득 이소운이 뒷통수를 긁적이며 입을 어렵게 열었다.
[어젯밤에 제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꿈을 꿨는데요...]
[....?]
이장룡은 그가 갑자기 자기 어머니 얘길 꺼내자 일순
안색이 가볍게 흠칫했다.
이소운의 어머니, 즉 그의 아내는 이소운을 낳던 날, 낙
산으로 먼저 돌아갓던 것이다.
살아있을 때 워낙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던 까닭에 지금
까지 그는 재혼도 않고 혼자 지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기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는 이소운이 어떻게 어
머니를 보았다고 하는지 그건 알수 없는 것이다.
이소운은 말을 이엇다.
[저 사실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이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곧 무서운 일이 닥치니 조심하라고]
(.........)
이장룡은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꿈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그래도 사람의 예감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하, 저도 개꿈인건 알지만, 아무튼 이번 표행엔 조심
하세요. 제가 깨어나기 전에 떠나실거죠?]
그것은 늘상 그래왓다.
이장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허나 설령 죽음이 닥치더라도 사내대장부는 의연
해야 하는 것이다. 너무 걱정 말고 자거라]
[예 아버지도 편히 주무세요.]
이소운은 그렇게 말한 뒤 침상위에 올라 이불을 덮고 눈
을 감았다.
이장룡은 그런 그에게 지풍을 날려 수혈을 짚어 금방 잠
들게 햇다.
쌔근쌔근 잠자는 이소운의 얼굴은 순수하고 깨끗하여
마치 어린아이의 티없는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얼굴을 잠시 넋놓고 바라보며 이장룡은 내심 상념에
잠겼다.
(이 아이의 나이도 벌써 열일곱돌이 다 되어 가는 구나
어쩌면 나는 이 아이 말대로 이번 표행에서 어찌될지도
모른다. 아니, 아버님이 관여하신 이상 그럴 확률이 높
다고 봐야겠지.. 십팔년 전, 나는 아내와 함께 본가를
탈출해 나왔지
그런 우리를 맞아 준 사람들은 바로 중원칠의 였어 지금
은 내가 끼어 중원팔의
가 됐지만.. 무엇보다도 하후형님의 은혜가 크다고 볼수
있지 그래서 나는 그간 거의 무보수로 그에게 일을 해준
것이고. 이제 그 은혜도 거의 갚은 듯 하니, 이번 일이
끝나면 이놈과 같이 심산으로 은거나 할까.
어쨌든 이번일을 무사히 넘겨야)
그런데 그는 기이하게도 마음이 뒤숭숭한 것이 잠이 오
질 않았다.
그때,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맞아, 나는 여태 너무 내 방식대로 였구나 비록 그가
자질이 뛰어나서 무림에 휘말린다 해도 그건 그의 일 내
가 비록 무공을 싫어하고 고적한 삶을 원한다고 해도 이
것을 그에게 까지 강요하면 나는 아버님과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장룡은 일순간의 깨우침에 전신을 부를르 떨기까지 했
다.
(그가 비록 자식일지라도 일정한 삶을 가용할 수 없다
고 부르짖던 나의 마음은 한낱 독선에 불과했단 말인가.
.. 아니면 허식인가, 어쨌든 금제를 풀어줘야
겠군 이번에 무슨 사고라도 나서 내가 다시 이놈을 못보
게 된어 버린다면 이놈은 평생을 금제속에서 살뻔 했군
이 금제를 풀수 있는 사람은 강호엔 거의 없으니까 이
금제를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이장룡은 내심 사소 흥분한 기색으로 부르짖으며 급히
우수로 이소운의 맥문을 잡았다.
헌데 그 순간 그는 눈빛을 번쩍 뱉냈다.
(아니 이럴수가 대주천금쇄가 열개중에서 이미 다섯이
나 풀려있다니 특이한 방법이 아니고는 절대 해혈이 불
가능한 이 천고의 금제가 저절로 풀려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된단 말인가! 이대로 가면 녀석은 스스로
금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결론인데. 이럴 수가)
이장룡은 잠시 곤혹한 표정으로 이소운의 얼굴을 주시했
다.
마치 불가사의한 괴물을 목격한 듯한 기분인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천고의 자질과 날마다 육합검법을 연마하면서 끊
임없이 금제에 부딪치다가 이렇게 됐다는 결론이겠지
정말 이녀석의 신체는 놀랍구나)
사실상 이소운이 그간 그토록 무수하게 육합검법을 연
마해도 잘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부친인 이장룡이
펼친 금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대주천금쇄
이렇게 불리우는 이 천고에 드믄 점혈금제는 그간 무수
히 진기를 흐트리거나 혼란스럽게 만들어왓떤 것이다.
가벼운 한숨으로 일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킹나 이장룡
은 이윽고 나머지 금제를 풀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일순 허공에 이장룡의 금빛 지영이 환산처럼 무수히 피
어올랐다.
그 금 빛 지풍들은 일순간 이소운의 전신대혈로 흡수되
듯 사라졌는데 그순간 이소운의 전신은 은은한 백강으로
휩싸이는듯 했다.
금제가 완전히 풀린 것이다.
허나 이장룡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수를 이소운의
정수리로 가져갔다.
[녀석아 이것은 검잉다. 아니 그간 아비가 잘못한 것을
보충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 개정대법은...]
그는 문득 중얼거림을 멈추었다.
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그의 전신에서 은은한 금빛 광채가 피어오르더
니 우수를 통해 이소운의 천령개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개정대법은 너의 온몸을 가장 깨꿋한 체질로 벌모
세수해 줄것이다. 그럼 그간의 내 잘못도 보충이 되겠지
내아들아...)
점차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광은 짙어지더니 마침
내는 두 사람의 전신을 온통 금빛 안개덩이로 감싸이게
했다.
사위에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희미한 별빛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