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덮쳐 드는 변괴
그것은 이상한 일이엇다.
이소운은 아주 오랜 잠을 잔것 같은 데 깨어보니 새벽이
었다.
(응 아직 이렇게 밖에 안됐나, 아버지는..)
부친의 침상은 이미 비어 잇었다.
그때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가벼운 소음이 들려왔다.
이소운은 내심 미소했다.
(아버지는 일어나서 음식을 만들고 계시는 구나)
이소운은 즉시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탁자로 다가가 의자
에 앉았다.
모처럼 부친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부엌과 통하는 문이 열렸다.
삐이걱 ---
순간 이소운은 가볍게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웬걸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그의 부친이 아니라 표
국내에 있는 한시녀였다.
(평소에 시녀는 얼씬도 못하게 하시던 아버지가 오늘은
어쩐 일로 헌데 아버지는 어딜가셨지.
설마 이 새벽에 벌써 떠나셨단 말인가?)
그녀의 두 순엔 제법 푸짐한 음식상이 들려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음식을 내려놓으면 하는 인삿말에 이소운은 정신을 퍼
뜩 차리고 급히 질문을 던졌다.
[아니 여긴 새벽부터 웬일이요? 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아향은 가볍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놀라시는군요. 허나 무리가 아니지요. 공자님께선 무려
사흘간이나 주무셨어요.]
[뭐라고]
이소운은 크게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정말 내가 사흘간이나 잤단 말이오?]
아향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예 총표두님께선 그저께 아침에 떠나셨어요.]
(아니 이럴수가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지)
이소운은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정신없이 중얼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 줄 알고 계시오. 아버님은 떠나
실 때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소?]
아향은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공자님께선 고질병을 치료받으시고 주무신다고했어요.
총표두님께선 제게 그런 말을 전하게 하고 수발을 들라고
하셨지요]
(고질병을...?)
그러고 보니 몸이 상당히 이상하긴 했다.
마치 십년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뚫린 듯, 광풍폭우가
읽던 호수가 명경처럼 잔잔해진 듯... 그리고 맑고 신비
로운 기운이 솟구쳐 온몸이 그야말로 가뿐하지 않은가?
(정말 이상한 일이로구나 고질병이 치유된 증상이란 말
인가? 내게 고질병이 있었다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문득 한가지 일에 생각이
미쳤다.
(옳지 지금 육합검법을 펼쳐보면 어떨까? 왠지 전과 다
를 것 같은데..)
원래 무공연마를 밥먹기보다 좋아하는 그다.
일단 그것이 생각에 미차자 그는 즉시 목검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옆에서 잇떤 아향이 다소 주저하며 물었다.
[저 식사는..]
[응? 식사?]
일순 이소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식사라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돌연 굉장한 허기가 엄습
했던 것이다.
(이크 정말 사흘동안 자긴 잔것 같군. 이렇게나 배가 고
플 줄이야)
그의 시야에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이 보엿다.
[저 음식을 다시 데울까요?]
아향의 다소 주저하는 듯한 물음에 이소운은 즉시 고개
를 저었다.
[아. 아니오.]
이소운은 말과 동시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급하구나! 급해 아이고 배고파라....)
이어 그는 가아신없이 음식을 퍼먹기 시작했다.
후두둑. 쩝접.
[호호]
시녀 아향은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더니 부엌으로 나
갔다.
[크윽]
식사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앗다.
워낙 바쁘게 먹어치웠기 대문이엇다.
이소운은 숭늉한사발을 벌컥벌컥 들이킨 후 바쁜 걸음으
로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제 마악 태양이 솟아올라 은빛 고아막을 뿌려대
고 있었다.
아침의 공기는 몹시 신선했다.
[후아... 기분 좋군]
한차례 깊은 심호흡을 한 이소운은 마당의 중앙으로
걸어가 목검을 빼들었다.
고질병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함이었다.
(원래 먼저 운기토납을 한 후에 해야하지만 워낙 궁금
해서 그것도 잘 안될거야 우선 이것부터 해본 다음 운기
토납은 나중에..)
운기토납은 이소운이 아주 어려서부터 단 하루도 거르
지 않고 해온 것으로 그가 그것에 그토록 열성인 이유는
심신이 강건해지고 호연지기가 생기는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친이 그에게
전수한 유일무이한 무공구결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헌데 그가 마악 육합검법을 펼쳐내려고 하는 순간 갑자
기 그는 멈칫했다.
전면의 가산어귀에서 돌연 십여 명의 인영들이 바람처
럼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들이 웬일로)
이소운은 순간 곤혹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선두에서 달려오는 자들은 바로 다름아닌 총관
관단양과 하후기였다.
하후기는 국주인 하후승의 독자로 소국주의 신분이다.
헌데 그들의 안색이 다같이 흉흉하고 살기에 가득차 있
었던 것이다.
[....]
이소운은 일순 알수 없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아니 저들이 왜? 혹시..)
그때 총관 관단양이 먼저 그의 앞에 당도햇다.
이소운은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했다.
헌데 관단양은 안면을 시뻘겋게 물들인채 씩씩거리며
버럭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이 개자식...]
소리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순간 무겁게 일장을 휘둘
러왔다.
그의 별호는 금검패장이다.
다라서 그의 장법은 강호에서 가히 알아주는 것이기도
했다.
우르릉....
일순 섬뜩한 벽뢰음과 함께 검붉은 기운이 이소운의
전면으로 무섭게 파고 들었다.
(윽)
이소운은 순간 가슴부위의 살이 불에 데인 듯 다끔거림
을 의식하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놀렸다.
순간 그도 의아해하고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놀랄 변화
가 나타났다.
이소운의 신형이 한 순간 휘청하더니 관단양의 일초를
가볍게 피해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관단양도 놀랐을 분만 아니라 이소운 본인에게
도 전혀 의외의 변화였다.
(엇 이게?...)
이소운이 놀라고 잇는 사이에 관단양은 얼굴이 더욱 시
뻘겋게 변해 더욱 날카롭게 공격하기 시작햇다.
[흐흐. 과연 믿는데가 있었군 무공을 숨기로 있었다니]
(그 그게 아닌데...)
이소운은 급히 변명하려 했으나 전혀 그럴 여가가 없었
다.
사방으로 관단양의 무서운 장렬이 비쾌하게 날아들고 있
었기 때문이다.
파파파팟..
(으악)
이소운은 내심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몸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게 어지된 일이지 나는 전혀 보법을 배운 적이 없는
데)
그것은 정말이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연무를 하면서 제몸을 균형하나 가대
로 갖추지 못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지금은 무수한 장력 숙을 마치 미꾸라지가 물살을 해치
듯이 흐느적거리며 잘도 피해내고 있었다.
더구나 땀도 흐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호흡도 전혀 가
쁘지 않앗다.
여기에 대해 이소운은 곧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아버지가 고질병을 치유해주신 덕분일거야 아
하 그러고 보니 이 변화는 바로 육합검법의 흐름이 아닌
가?)
그렇다.
이소운의 몸놀림은 얼핏 보기에 두서가 없고 매우 혼란
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엄정한 질서속에 현기마저 깃들
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간 너무도 육합검법을 많이 연마하다
보니 금제가 풀린 이 상황에선 보법으로 까지 운용이
가능하게 된것이다.
이것은 실로 전대미문의 괴사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맞아 본래 육합검법은 화산파의 절기로 비록 많이 알
려져 강호에서 삼류검법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실상은
오묘한 변화가 그 속에 있다고 부친께선 말씀하셨지.
지금 그 육합의 변화가 제대로 나타나는 거야 이를테면
육합보법이라고나 할까?)
그때 자신의 장법이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된 고나단양은
돌연 장력을 거두고 소리쳤다.
[미꾸라지 같은 놈 어디 끝까지 피해내나 두고 보자..]
소리침과 동시에 그는 허리에서 금빛 장검을 뽑아들었
다.
우우웅...
장검의 울림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검법을 펼치기 시작
햇다.
그의 검법은 뇌음광풍장이란 장법보다 오히려 고명한
연운금룡세라는 것이다.
쿠쿠쿠
대번에 사위에 금광이 난무하며 이소운의 전신을 에워
싸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위기를 는니 이소운은 마침 수중에 다르고 있던 목검으
로 육합검법을 펼쳐서 맞서나갔다.
차차차창.
날까로운 금속성이 작렬하며 이소운은 손이 저림을 느
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손목이 마치 마비되는 듯 아파왓다.
허나 진검에 부딪 친 그의 목검은 잘려나가지 않고 멀쩡
한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금속성이라니
이것은 내공은 관단양에게 밀리나 검법의 변화와 진기
의 운용은 오히려 그가 앞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럴수가?]
관단양도 그 사실에 놀란 나머지 잠시 멍청히 있다가
다시 이를 갈며 덮쳤들려고 했다.
그때 한쪽에서 하후기가 그의 행동을 제지 했다.
[관숙부, 잠깐만요.]
[...]
하후기는 허리가 곰의 허리같고 코가 사자코처럼 생긴
대체로 준수한 미청년이었다.
그는 일단 관단양을 제지시킨 후 이소운을 직시하며 말
했다.
[운제! 넌 우리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잇느냐?]
그의 음성이 냉막했지만 이소운은 마침 몹시 의문스럽
던 참이라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하후형 소제는 정말로 모릅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
지..]
하후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싸늘하게 말해다.
[너는 이제 앞으로 나를 하후형이라 부르지 마라, 나도
너를 운제라고 부르지 않을 테니..왜냐하면 너는 배신자
의 추악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뭐라고요?]
이소운은 눈을 부릅떴다.
하후기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
[너의 아비 되는 그 이장룡이란 자가 우리 아버지를 비
롯한 모든 숙부님들을 배신하여 죽음으로 몰고갔다. 나는
그간 네게 잘대해 주었다. 이 마당에서 너는 내가 또다시
손을 써야 하겠느냐?]
툭
이소운의 목검이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소운은 너무도 놀랍고 어이없는 상황에 정신없
이 중얼아거렸다.
[아버지가 배신자라구요?]
그때였다.
느닷없이 하후기가 그런 틈을 타고 기습을 해왔다.
번쩍
그의 우수에서 지풍이 일며 그대로 이소운의 마혈을 제
압해 버린 것이다.
이어 그는 뒤따라온 표사들을 향해 지시했다.
[이 자식을 끌고 가시오.]
순간 십여 명의 표사들이 달려들어 굵은 쇠밧줄로 이
소운을 꽁꽁 결박하기 시작햇다.
이에 정신을 번적 차린 이소운은 급히 소리쳤다.
[그럴리가 없소. 하후형 대체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시오.]
허나 하후기는 말없이 냉랭하게 등을 돌렸다.
이소운의 외침은 단지 공허하게 울릴 뿐이고 , 장내의
공기는 흉흉했다.
이윽고 결박이 끝난 표사들은 이소운을 둘러매고 표국
의 지하실로 데려가 한 지하석실에 강금해 버렸다.
쿠쿵
지하석실의 문이 닫히자 이소운은 내심 분노와 의혹감
에 전신을 덜덜 떨었다.
(대체 아버지는 어찌 된 일일까?)
이곳 지하석실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났다.
사람 하나 와보지 않고 더더욱 음식이나 물도 들여주지
않았다.
배고품도 심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미칠 것 같
았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그만 모른다.
단지 부친이 배신자가 되었다는 것 밖에..
배신자라니...
그는 부친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죽어도 믿을 수가 없
다.
허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얼마나 미워하고 증오하는
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걸 알기만 한다면 이 고토응나 이토록 심하지 않을 것
이다
그는 알게 되길 미치도록 갈망했으나 이곳 지하실에 사
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느다.
지하실의 냄새는 음습하고 혼탁하다.
정말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의 전신 신경세포는 문쪽을 향해 곤두서 있었
다.
그때 그는 눌을 번쩍 빛냇다.
저벅저벅...
누군가 지하실로 걸어 들어오는 소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이 너무 기다린 나머지 생긴 환청이 아닐까 생
각했다.
그러나 환청은 아니었다.
별안간 문이 벌컥 열렸다.
[.....]
들어선 사람은 한 명임이 분명했다.
그 자는 일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을 견디다 못해 이소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누, 누구요?]
[나야]
상대방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 음성은 짤랑짤랑한 옥음이었고 이소운은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매.]
이소운은 부르짖으며 몸을 움직여 그녀를 보려고 했다.
어느새 마혈은 풀렸지만 결박이 워낙 단단하게 된지라
그는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한쌍의 손이 다가와 그의 결박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
[고마워..]
[그런 말 하지마]
이소운의 두 손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자 그녀는 부스
럭거리며 뭔가를 꺼내 주었다.
일순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튀긴 닭고기 엿다.
이소운의 뱃속은 그 냄새를 맡자 미친 듯이 아우성을 쳤
다.
[여기 물 있어, 물 마시고 천천히 먹어]
그녀는 물병을 건네 주었다.
그러나 이소운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먹지 않겠어]
[왜?]
그녀가 묻자 이소운은 다시 말햇다.
[말해줘. 대체 어찌된 일이지?]
[뭐라고?]
그녀, 즉 하후려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럼 아직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그래 정말이야]
이소운은 말에 힘을 주었다.
죄상을 알고 싶은 마음은 매우 절실한 것이다.
잠시 있다가 하후려려가 다시 말했다.
[난 믿지 못하겠어]
그녀의 음성엔 어느덧 비애와 고통이 깔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야 부탁해]
이소운은 다급하게 재촉햇다.
마침내 그녀는 고개를 그덕였다.
[좋아 난 네 말을 믿겠어]
[고마워]
그녀는 비로소 말을 시작했다.
그녀의 음성은 극도로 슬픔에 축축히 젖어 있었다.
[너의 아버지는 배신자야..]
[....]
[나흘 전 함께 표행을 떠낫던 조표사의 증언이었어..]
[조표사가?]
[그래 나흘 전 떠났던 표행은 습격을 받았어 거기에는
중원팔의가 전부 있었는데 일단의 복면을 한 무리들에게
모조리 몰살을 당했다는 거야.]
이소운은 눈을 부릅떴다.
[중원팔의가?]
[그래 시신은 전부 운반되어 왔어. 그들의 무공은 그토
록 놀랍더란 거야..
그런데 거기에서 조표사 외에 살아남은 사람이 또 있어.
그게 너의 아버지야]
[아버지가?]
하후려려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조표사의 말에 의하면 그 복면인들과 네 아버
지는 서로 잘 아는 눈치더래. 복면인들은 네 아버지를
매우 공경하며 모셔갔다고 해, 조표사는 이사실을 알리
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려왔지..]
[그랬었군.]
다 듣고 난 이소운은 얼굴을 무릎 위에 처박았다.
한 순간 전신의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허나 낙담한 것은 아니다.
그는 믿고 있엇다.
그의 아버지가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건 음모일 거야...)
앞에서 하후려려가 말했다.
[이미 중원팔의의 유족들에게 사람을 보냇어. 잠시 후
그들이 모두 도착하면 운오빠를 심문한댔어. 그러기전에
배라도 좀 채워둬.]
이소운은 고개를 저었다.
[려매는 내가 밉지도 않아?]
[그, 그건...]
하후려려는 말을 더듬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이소운은 말했다.
[난 먹지 않겠어. 나는 그럴 자격도 없는 놈이야.]
[하, 하지만 심문을 받으려면 기운이 있어야.. 혹시 고
문을 할지도 모르는데...]
하후려려는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녀와 이소운의 관계는 약간 미묘한 것이다.
그 둘은 어릴 때부터 소꼽친구로 같이 자라났으며, 허물
이 없다.
특히 나이가 성숙해지자 그녀는 이소운을 은근히 사랑하
게 된것이다.
비록 그의 무예에의 자질은 형편없으나 그외의 것들은
타인의 사랑 받기에 족할 만큼 성품이 좋았다.
따라서 그녀는 이번 일만 아니엇다면 그와 혼인할 생각
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가능할까?
이소운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젠 나를 잊어. 나는 이미 원수의 자식일 뿐이야. 불
공대천지수란 말이 있지.. 앞으로 나를 찾아오지도 말고
오빠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그저 개자식일 뿐...이야..]
그 말에 하후려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하지만..]
헌데 그녀가 뭐라고 말을 이으려는 순간 느닷 없이 다른
음성이 들렸다.
[그래 맞아. 너는 개자식이다. 이소운.]
목소리는 문밖에서 나고 잇었다.
이소운과 하후려려는 동시에 몸을 떨었다.
[오빠.]
하후려려는 울음 섞인 음성으로 달려가더니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바로 그녀의 오빠인 하후기 였다.
그의 주위엔 서너 명의 표사들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
하후기는 하후려려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이소운. 유족들이 다 왓다. 너는 그들에게 인사라도 해
야지 않겠나?]
[좋소.]
이소운은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하후기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자를 끌고 가시오.]
순간 주위에 서 있던 표사들이 번쩍 날아 들어와 그의
양팔을 거세게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를 마치 개끌듯이 끌고가기 시작했다.
[흐흐흑..]
그 뒤를 하후려려의 애절한 흐느낌만이 휘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