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장
돌아온 황보소운
펑! 퍼퍼펑~
꽈꽈꽝.........
[흐아악--]
백의인들....
하나같이 왼쪽 심장부위에 붉은 태양을 섬뜩하게 그린 그들의 숫자는 대
략 백여 명,
지금 그들과 맞서고 있는 사람들은 거지 차림에 허리춤엔 기형의 매듭을
달고, 타구봉을 휘두르는 역시 비슷한 숫자의 개방문인들이었다.
파파팡---
[으악]
굉음이 일고 단말마가 울릴 때마다 피를 토하며 나동그라지는 자들은 모
두 개방문인들 뿐이었다.
그 만큼 백의인들의 무예는 하나같이 고강했다.
[제기랄, 저놈들이 다 혈왕부의 무리들이란 말인가?]
지하석전 가득 메우며 어우러지는 격전장을 쏘아보며 만뢰는 중얼거렸
다.
이어 그는 무수히 넘어가는 개방문인들을 더 두고 볼수 없다는 듯 일진
고함과 함께 장내로 뛰어들었다.
[어헝....내가 왓다. 이놈들아....]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전광과 허무, 그리고 성검육심 중 몇몇이 격전
에 가담했다.
그러자, 장내의 상황은 조금 일변했다.
[흑,[
[허억]
백의인들의 시신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당황한 백의인다르의 기세가 잠시 주춤해 보엿다.
허나, 그 광경을 한쪽에서 바라보던 제갈기는 고개를 저었다.
[안되겠지?]
곡풍이 옆으로 다가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중과부적이네. 전광이나 만뢰등도 겨우 세명을 상대하고 있을 뿐이
네...개방문인들은 기껏해야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야...]
그 말에 곡풍은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쩌지? 퇴로는 없나을까?]
[...]
제갈기는 다만 말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때, 문득 그의 시선에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자가 우두머리인가?)
그 백의인의 복장은 다른 자들과 같았으나 그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
랐다.
실로 웅후한 기도가 전신에 서려 있었다.
지금 그의 앞에는 백리하가 마주 서 있었다.
왠일인지 그녀의 안색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너, 너는...]
밑개의인은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 이곳의 위치를 알려줘서 고맙소, 잠룡회의 총군사나리.]
백리하는 일순 크게 비틀거렸다.
[그렇다면 그때 주루에서 너는..]
백의인은 바로 백리하가 변장한 채로 만났던, 그 음침한 인상의 중년인
이었던 것이다.
백의인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믿을 수가 없단 말이군, 물론, 너는 완벽했다. 이중의 술수를 써
서 나마저 일시적으로 속아 넘어갔으니까.. 허나, 추녀가 그렇게 곱고, 눈
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뒤늦게 나는 그 사실을 깨
닫고 너를 추적한 것이다. 네가 일부러 뿌린 그 독특한 악취는 추적에 매
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
백리하는 새파랗게 질린 채, 어안이 벙벙하여 입술만 깨물었다.
백의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좋아, 내 인심 한번 쓰지.. 난 혈왕부의
총사, 귀견수 지천명 이란 사람일세. 나한테 걸린 걸 영광으로 알라구.]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백리하에게 서서히 다가들기 시작했다.
[.....]
백리하는 일순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으나, 곧 입술을 꽉 깨물
고 응전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그녀에게 다가들던 백의인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렸
다.
실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 그의 시야에 비쳐졌기 때문이다.
전광이 사용하는 무예는 그의 별호 그대로 눈부신 쾌검이었다.
번-----쩍-----
무지개 같은 섬광이 작렬할 때마다, 그는 세명의 백의인들을 오히려 피
투성이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만뢰의 무예는 중검이다.
콰르르릉....
검은 묵빛 장막같은 벽력강기가 검끝에서 일 때마다, 그의 상대 세 백의
인들은 어찌 할바를 몰라 허둥대며 물러나고 있엇다.
그들의 병기는 하나같이 부서져 버린 상태였다.
이에 반해 무허는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귀신같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
다.
파츠츠츠츳....
그의 뿌옇게 흐려져 보이는 몽영을 향해 세 백의인들이 무수히 검을 휘
둘렀으나 옷깃하나 베지 못하고 진력만 탈진되어 가고 있엇다.
휘류류류류....
그러한 삼인의 무예는 가히 신기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장내엔 그들 삼인을 오히려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었었다.
불과 이십대의 젊은이들인 그들의 무예는 정말 가공했다.
푹.
너무 빨라서 빛조차 일지 않은 쾌검 아래 막아서는 백의인들은 하나씩
목이 꿰뚫려 쓰러졌다.
꽈르르릉....
일순 주위가 어두워졌다 밝아지면, 백의인들은 한 덩이 혈육으로 짓이겨
진 채 넘어갔다.
그리고 막아서는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걸리는 족족 쓰러뜨리는 무시무
시한 변검...... 거기에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환상의 검 환검을 동반한 금
빛 지풍까지......
[으악.]
[아악.]
[으아아아악]
쓰러져 나뒹구는 백의인들을 바라보며 그 총사는 일시 안절부절하는 눈
치였다.
(능소, 단비, 구홍, 노광.... 저들은 지난 석달 간 그야말로 피나는 수
련을 했지. 지금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허나, 저들 네 명으로
백여 명을 모두 죽이기는 어렵지.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을 공격하는 놈들
의 수효는 불어날테니....아마, 저 총사라는 자는 그녀를 먼저 제압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제갈기의 중얼거림이엇다.
과연, 다음 순간 그 백의인은 백리하에게 살벌한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
다.
[흐흐흐흐...]
콰우우우우......
그의 쌍장이 펼쳐지자 사방이 온통 붉은 광채로 뒤덮엿다.
(전설의 혈영마공이다.)
제갈기는 내심 부르짖었다.
온통 시뻘건 광채로 뒤덮인 강기막을 향해 백리하의 가냘픈 몸이 부딪쳐
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위험하군.]
곁에 있던 곡풍이 급히 신형을 날리려고 했다.
허나 제갈기는 그의 손을 잡아 만류하며 입을 열었다.
[잠깐 기다리게. 누군가 뛰어들었네.]
[...?]
곡풍은 눈을 부릅떳다.
과연 그 순간 백의인과 백리하의 사이로 어슴푸레 움직이는 한 인영의
모습이 보였다.
꽈꽈꽝.
번천비복할 굉음을 동반하고 사방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앗]
[억]
곡풍도 놀라 소리쳤다.
[저 사람은 바로 아까 그 신풍개란 개방의 후기지수가 아닌가?]
[...]
제갈기는 말이 없었다.
곡풍은 다시 시선을 장내로 돌렸다.
백리하는아무런 상처도 없이, 다소 경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 백의
인은 저 만큼 날려가서 연신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서 어정거리는 사람은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피투성이가 된 채 석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을 신풍개,
[미, 믿을 수가 없군. 어째서 저 사람의 무공이 저정도란 말인가? 그는
무예를 감추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곡풍의 경악어린 푸념을 제갈기가 문득 받았다.
[그는 무공을 감추고 사람을 속였던게 아니네. 다만 지금은 그가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는 제갈기의 시선엔 기이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
(이상하군. 대형이 무슨 일로 저렇게 흥분하지...?)
곡풍의 의구심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제갈기는 다시 짤막하게 입을 열었
다.
[주군께서 오셨네. 그는... 바로 주군이네.]
(헉-----)
곡풍은 일순 헛바람을 들이키며 눈을 부릅떴다.
이어, 그는 몸을 사정없이 떨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오오, 하늘이여, 주군께서 오셨다니...)
장내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총사인 그 백의인이 나동그라진 뒤로, 백의인들은 사기가 크게 꺾였다.
게다가 그 괴이한 거지소년은 느닷없이 나타나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합창하듯 줄을 이엇다.
그 비명들은 거의 대개가 백의인들의 것이엇고, 그들을 휩쓸어 가는 거
지 소년은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앗다.
단지 십여 명씩 무더기로 쓰러져 가는 백의인들을 보며 그의 위치를 추
정할 수 밖에......
[미.. 믿을 수가 없군...]
곡풍의 경악한 어조에, 제갈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주군께선 더욱 강해지신 듯 하네....]
그의 움직임은 표홀하는 바람과 같았고, 그 손속은 거대한 죽음의 손길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단말마와 함께 장내의 모든 소란이 멎었다.
[흐아아아악..]
쿵.쿵.쿠쿠쿠쿵....
무려 열 다섯 명이나 피를 뿌리고 나동그라지는 최후의 백의인들을 바라
보며,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
그들의 시선속엔 이미 그 거지 소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앗다.
다만, 제갈기의 귓전에 다음과 같은 전음만 남았다.
[성검육심의 나머지를 대동하고 성내 열래객점으로 오게. 나는 후원 별
채의 객실에 투숙하고 있네...]
>< >< ><
[이상한 일이군....]
만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격전이 끝나고, 그들은 급급히 신풍개가 있던 석실 안으로 달려들어왔
다.
그런데, 그 신풍개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한쪽에 혼절한 채 누워 있었다.
전신의 피투성이 상처는 물론, 달라진 것이라곤, 그가 겨우 속옷만 걸친
채 홀랑 벗고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달라진 것이 또하나 있다면, 그의 안색이 불그레하고 호흡이 고른
것이, 중상을 입은 환자같지는 않고, 마치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주군께선 이 사람의 옷을 빌리시곤 내상을 치료해 주신데다가, 내공까
지 증강시켜 주셨군,,, 이로써 개방에 인재가 하나 나겠는걸,,,)
제갈기는 내심 중얼거리며, 은근히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세분 주모님의 눈을 피해 주군께 가야하니, 이거 난감하군.)
그때, 만뢰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이거, 정말 내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 어떻소? 이 살마
이 아까의 그 괴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보시오?]
전광이 말을 받았다.
[아닐거네... 용모와 옷차림은 같아도 그 분위기나 무예수준이 달라....
이 아이는 결코 그가 아닐세.]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사람으로 위장을 했다는 얘긴가요?]
그렇게 물은 사람은 남궁사란이엇다.
그녀의 시선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엇다.
(어익쿠....)
제갈기는 내심 비명을 질렸다.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단심교와 적대시 하면서, 그렇게 무예가 고강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이크.)
제갈기는 내심 비며을 지르며 어물어물 말했다.
[그, 그것은 아마도 놈들 중 배반을 한 자이거나... 혹은, 신진의 기인
이...]
남궁사람이 쨍 하고 말을 가로챘다.
[그이가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 말에 제갈기는 흠칫 했다.
[그, 그럴 수도 있지요./]
(어이쿠, 주군께선 공연히 그녀들을 겁내서 나까지 곤란하게 만드셨구
나...)
이때, 남궁사란의 말에 실내의 모든 사람들은 안색이 변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경악과 흥분의 빛... 특히 이 사실을 모르는
성검사심과 당청, 사마옥, 백리하 등은 흥분에 몸을 떨며 제갈기를 뚫어지
듯 쳐다보는게 아닌가?
제갈기는 그만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고, 속이 화끈거려 진땀을 뺐다.
이때, 그런 그의 입장을 모면해주기라도 하듯 남궁사란이 입을 열었다.
[허나, 석달간이나 무소식이던 급누이 유독 이 상황에 나타났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예요. 안그래요?]
그녀의 말에 전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맞는 말이오. 헛된 추측만 한다는 것은 옳지 않지요... 자, 그럼
아까 논의하다 말은....]
그가 말을 계속 이으려 할때, 문득 백리하가 나서며 말을 잘랐다.
[그 문제에 고나한 것은 차후로 미루기로 해요... 우선, 아까 놈들의 시
신을 조사해 보니 총사라는 자의 시신이 없었어요. 그 자는 일단 도망쳤으
니 이곳으로 다시 올거예요... 마가링 그 사람의 정체도 밝혀야 하는 만
큼, 우리는 우선 이 자리를 피하고 , 차후에 다른 장소에서 모이기로 해
요.]
그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제갈기는 내심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내로 들어와서 남궁사란이 열래객점에 묵자고 한 말에 제갈기는 또다
시 곤혹한 심정이 되었다.
(혹시 그녀는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허나 그럴리는 없는 것이다.
마음이 꺼림칙해진 제갈기는 달래듯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열래객점보다는 그 맞은편에 있는 열승객점이 더 나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열래객점은 주루와 반점이 없는데 반해, 열승객점엔 따로 열승루
가 달려 있기 때문이죠.. 열래객점에 갔다가 다시 반점을 찾는다면 번거로
울 것입니다.]
남궁사란은 힐끗 그를 보더니, 곧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열래객점이 가장 시설이 좋다던데... 그렇다면 열승객점으로 가도록 해
요.]
이리하여, 일행은 열승객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윽고, 때가 되자, 제갈기는 성검육심을 불러 모았다.
황보소운의 얘길 듣자, 가장 흥분하는 사람은 능소였고, 가장 먼저 뒤쳐
나간 사람은 역시 성질 급한 단비였다.
[어딜가나?]
제갈기가 그의 앞을 가로막자, 단비는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말했다.
[이 사실을 빨리 주모님들께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이쿠....)
제갈기는 내심 뒤통수를 치며, 그들에게 전후의 사정을 설명햇다.
[그래서 주군께선 주모님들을 피한단 말입니까? 그건...남자답지 못하군
요.]
단비의 말에, 능소가 갑자기 화를 벌컥냇다.
[네째형의 그 말은 취소해요. 주군께서 남자답지 못하다니요?]
[뭐, 뭐라구?]
단비의 안색이 붉어지자, 옆에서 구홍이 거들었다.
[그건 막내의 말이 맞아, 주군께선 단지 그녀들을 대하기가 쑥스러울
뿐, 결코 그녀들을 버리려는 생각은 아닐거야.]
그 말을 재빨리 능소가 받았다.
[나는 또다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어때요!
네째형은 생각이 있나요?]
능소가 손을 검자루에 갖다대자, 단비의 안색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뭣이--]
이때, 제갈기가 나서서 그들을 만류했다.
[자네들은 늘 만나기만 하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 대는군. 지금은
주군을 뵈어야 하니, 어서 가기나 하세.]
[예, 대형!]
그들은 즉시 소리없이 객점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몸을 날리면서 제갈기는 세 주모들이 쉬고 있는 객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객실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엇다.
(하긴, 지금은 밤중이니... 그리고, 아까의 격전은 힘들었을 거야..)
제갈기는 내심 안심하고 신형을 날렸다.
열래객점의 후원 별채의 객실은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엇다.
본래 그런 곳은 값비싼 최고급의 특실이므로, 묵어가는 손님이 많지 않
은 까닭이다.
과연 불은 하나의 객실에서만 켜져 있엇다.
(저곳이군...)
제갈기는 내심 단정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객실의 문은 조금 열려 있었는데 , 방안에는 은은한 유등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
그 앞에 다가선 제갈기는 일순 의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객실 안은 고요할 뿐 아니라, 정말로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주군께선 어디로 가신 걸까?)
제갈기는 내심 곤혹해 하며,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잔기침을 몇번 했다.
[흠! 흠...!]
그래도 방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정말 어딜 나가신 걸까?)
제갈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곡풍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자.]
말과 함께 그들은 조용히 실내로 들어섰다.
실내는 과연 아무도 없었고, 지극히 아늑하고 호화로운 가구들로 가득했
다.
곡풍이 그 실내의 화려한 정경을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이런 좁은 성시에 이렇듯 호화로운 객실이라니... 과연 열래객점이 최
고라는 말은 맞군. 헌데 주군께서는...]
그는 말을 하다말고, 돌연 굳어버린 듯 눈을 부릅뜬 채 멍청히 섰다.
그것은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섯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인즉, 그들의 귓전에 한줄기 낯익은 전음이 들려왓기 때문이다.
[그간 잘들 있었나? 헌데, 내 말을 다르었다고 해서 쓸데없는 기척이나
수상한 행동은 하지 말게..]
(주, 주군...)
그들 육인은 일시에 몸을부르르 떨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능소와 단비 등은 하마터면 소리쳐 주군을 부를 뻔 했
다.
허나, 황보소운의 지시가 있는지라, 그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저 눈
물만 추르르 흘렸다.
그때, 그들이 계속 서서 눈물만 흘리자, 황보소운의 전음이 다시 날라왔
다.
[어어, 감격은 나중에 하고, 우선 움직이게.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니
까... 그녀들이 이곳에 온 것 같네...]
(그녀들이..?)
제갈기는 일순 흠칫 했다.
그는 황보소운에게 묻고 싶었으나, 그이 전음이 특수한 것이어서 그 위
치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에 왔지? 무공에 차이가 있으니 우리의 뒤를
미행해 왔을 리는 없고,... 결국 먼저 와서 기다렸다는 말인데... 이건 도
대체 .. 혹 여인의 육감이란 말인가?)
제갈기가 내심 곤혹하여 중얼거릴 때, 황보소운의 전음이 다시 들려왓
다.
[자, 우선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그리고 한 사람은 문을 닫고... 그래야
만 내가 자네들 앞에 나타날게 아닌가?]
(과연 그렇구나?!)
제갈기는 내심무릎을 쳤다.
황보소운이 일부러 문을 열어놓고 그들을 들어오게 한 이유를 알것 같았
다.
제갈기는 손짓으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다음, 문을 닫았다.
[하하하, 돼네, 그럼 ..]
일진 전음이 웃음소리와 함께, 그들의 중앙에 얼핏 백영이 번뜩했다.
그제야 그들 육인은 한사람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안면을 백색의 천으로 가린 상태였다.
(맙소사, 복면을 하셨다니...)
내심 실소한 것은 제갈기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의 내심을 짐작한 황보소운은 다소 어색한 음성으로 변명하듯 입을
열엇다.
[내가 이렇게 복면을 한 것은 자네들이 봐도 우습겠지만 혹시, 우리들이
얘기하고 있는 도중 그녀들이 들어오면 어쩌겠나,,...? 이런 만일의 불상
사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니, 과히 쾌념치들 말게, .. 아참! 자네들도 말은
전음으로 하는 걸 잊지 말게. 물론 내가 음파를 모조리 차단하겠지만...[
그 말에 모두들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세 마누라에게 이토록 벌벌 떨 줄이야.
(물론, 아무리 이유가 있다지만 이건 사나이로서 너무한 것 같얘...)
능소도 마침내 투덜거렸다.
이윽고 노광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는 비록 주군의 음성을 알지만, 워낙 오
랫동안 뵙지 못한지라, 주근의 용안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 마침, 오
랜만의 첫 대면이기도 하니, 그 복면을 잠시만 벗어주십시오.]
[복면을?]
황보소운은 일시 흠칫하는 듯 했다.
허나, 그는 곧 그들의 시선에 공통된 뜻이 담겨 있음을 알고, 거절할 수
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소. 허나 오직 잠깐 뿐이오. 그대들은 그 사이에 빨리 보도록 하시
오.]
말이 끝남과함께, 그는 우수로서 복면을 벗어 들었다.
(아아...)
(아아...)
성검육심은 순간 두 눈에 하나같이 희열의 빛을 뿌렸다.
과연 황보소운이었다.
더구나 그의 용모는 투명한 한 겹의 서광을 입힌 듯, 신비로운 광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엇다.
황보소운은 자신의 얼굴을 사방으로 돌려 그들이 보게 한 다음, 미소하
며 입을 열엇다.
[자, 그럼 이제 복면을 다시 쓰겠소.]
헌데 그때 엿다.
쾅---
일진 굉음과 함께 한쪽의 문이 벌컥 열린 것은.
(아뿔싸...)
제갈기는 내심 그렇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