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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목청 큰 괴인 1 (8/90)

                                      第 三 章. 목청 큰 괴인 1

[흥. 빌어먹을 금녀 같으니..] 

청성산을 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올 때 보니 도사들이 많기야 했지만,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경공을 펼쳐 빠져

나가다 보니 안전하게 청성산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청성산에서 조금  벗어나 작은 야산을 지나고 있

었다. 이게 무슨 산인지 여기가 어딘지 알 필요는 없다. 그냥 갈 곳이 없으니 아무 곳이나 지나가는 것이다. 

[땅딸보에 힘만 무식하게 세고 말야. 아마 머리통엔 똥만 가득 찼을  거야. 그러니 얼굴도 그 모양 그 꼴이지. 차라

리 개똥을 짓밟아도 그 얼굴보단 낫겠다.] 

그는 금녀에게서 도망쳐 청성산을 무사히 내려오자 그때부터 갑자기 분노가 솟구쳤다. 수녀와  좀 더 같이 있고 싶

은데 그녀의 방해로 이런 꼴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왜 수녀와 함께 있고 싶은지는 몰랐다. 그냥 그녀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포근했을 뿐이다. 

[제기랄. 빌어먹을. 나중에 내 개똥을 짓밟아서 그 빌어먹을 금녀 얼굴과 비교해 봐야지. 똑같은가, 안 똑같은가.] 

그는 아직도 중얼중얼 금녀를 저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그 웃음소리는 마치 내공이라도 듬뿍 담긴 듯 정말 시끄러웠다. 그러나 만일 내공이 담긴 것이라면 머리와 귀가 아

파 오고 기가 흔들려 속까지도 울렁거려야 하는데 다만 시끄럽게 귀만 따가우니 그저 웃음소리일 뿐이란 얘기가 아

닌가. 그렇다면 실로 굉장한 것이리라. 그걸 잘 아는 진양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계속 웃음만 

들려올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그가 그렇게 어리둥절해 하자 웃음은 곧  멈추었고 정체불명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정말 재미있는 꼬마다. 어떻게 그런 웃기는 말을 할 수 있지?] 

마치 사방의 주변 나무들 사이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매우 중후하게 울리고 같은 사람 여러 명이 사방

에서 동시에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양은 미소했다. 말투에 장난기가  섞여있고, 금녀를 아는 듯 해도 그녀

에게 호의가 있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곧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친다. 

[누구세요?] 

[호오. 제법 건방진걸?] 

진양이 다시 빙그레 웃는다. 확실히 예의가 없다고 말했지만 말투에 담긴 뜻은 싫다는 것도 아닌 듯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말했다. 

[그럼 모습이라도 보여 줘요. 숨어 계시지만 말고.] 

[뭐야? 이놈이..] 

그러다가 어이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냉소소리가 들려온다. 

[흥. 요놈이 제법 말장난을 할 줄 아는구먼. 날 화나게 해서 나오게 하려는 거지? 예전부터 이런 건 많이 당해서 이

제 안 속아. 아무튼 네놈이 제법 마음에 든다만 나는 만사(萬事)를 다 귀찮아하는 몸이라 움직이기 싫구나. 정녕 보

고 싶다면 네가 찾아봐라.] 

정체불명인은 진양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나오려 하지 않았다. 허나 진양은 그가 일순간 흥분해 말을 내뱉었다가 고

치는 걸 보고 그의 성정이 불같고 조금 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양이 다시 몇 번 불러보나 대답이  없다. 그러

자 그는 무시하려다가 문득 갈 곳도 없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했다. 그런 걸  머리 아프게 따지고 싶진 않았지만 어

쨌든 갈 곳도 없으니 한번 찾아보며 노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슬쩍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

방에는 그저 나무들만 빽빽이 있을 뿐이었는데 그 나무들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 쭉쭉 솟아있었다. 괴인은 분명 나

무 위에나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굳이 오를 필요까진 없었다. 그는 그저 능청스럽게 중얼거린다. 

[흥. 왜 감히 나서지 못하지?] 

또다시 진양의 구두 공격은 시작되었다. 그는 건방지게 중얼거리며 나직이 웃었다. 그러나 그 괴인은 그 정도엔 꿈

쩍도 하지 않는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아니지. 혹시 금녀처럼 추악한 건 아닐까? 정말 개똥 소똥을 짓밟은 거하고 비슷할지도 모르지. 아냐, 어쩌면 그보

다 더 심할지도 몰라.] 

그는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깊이 생각에 빠진 듯 중얼거리더니 손뼉을 치며 최후의 일침을 가해버렸다. 

[아하, 그래! 알고보니 온갖 가축들의 똥무더기랑 비슷한가 보구나.] 

그래도 반응이 없다. 그러자 진양은 노래를 부른다. 

[개똥, 돼지똥, 소똥, 말똥, 염소….] 

[너.. 너.. 이놈아, 닥쳐라!] 

드디어 참지 못한 듯한 대갈소리와 함께 웬 괴인이 나타나고야 말았다. 진양은 고개를 돌려 그 괴인을 자세히 뜯어

보기 시작했다. 꽤나 늙어 보였다. 한 예순은 됐을까. 눈빛이 활활 타오르고 옷은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있었는

데, 늙은 몸답지 않게 상당히 거구였고 그래서 그런지 왠지  모를 위풍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곧 그 괴인은 진양의 

앞을 다가와 외쳤다. 

[자, 내 얼굴을 봐! 내 얼굴이 정말 개똥, 돼지똥, 소똥, 말똥 짓밟은 거랑 똑같아 보여? 어서 말해봐.] 

그는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크게 흥분했는지 늙은이의 체면 따윈 이미 없어보인다. 진양은 그

게 우스워 킥킥 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아뇨, 똥은 아녜요. 이렇게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괴인은 크게 흠칫한다. 척 보아하니 아무래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안색을 되돌리며 다시 버럭 

소리질렀다. 

[흥 흥. 이 영악한 놈. 사실은 나도 다 알고 있었어.] 

예리한 진양이 어찌 이 괴인의 속내를 모르겠는가. 그는 정말 괴인은 괴인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킥, 하고 웃음을 터

트렸다. 그러자 괴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자꾸 킥! 킥! 하는 거야?] 

[웃음이 터지는 걸 어떡해요?] 

[왜 웃음이 터져?]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죠? 저는 우스워 죽겠는데.] 

괴인은 다시 말문이 막힌 듯 입만 씰룩일 뿐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도 그가 왜 웃

는 건지 몰라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버럭 호통만 친다. 

[이놈! 내가 누군줄 알고 나한테 이런 말장난을..] 

[할아버지가 누군데요?] 

진양이 묻자 괴인은 매우 호탕하게 앙천 대소(仰天大笑)하며  갑자기 거만해졌다. 어깨를 쩍 벌리고 아래턱을 높이 

쳐들고 있었다. 

[하하! 내 별호는 바로 자존자대(自尊自大)다. 놀랐지?] 

괴인은 한 자 한 자 끊어서 자랑스레 소리쳤다. 그러나 진양이 어찌 자존자대라는 이름을 들어봤겠는가. 그는 다만 

별호가 우스워 가가대소(呵呵大笑)할 뿐 존경의 빛 따위는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괴인이 버럭 화를 낸다. 

[이 나쁜 놈. 왜 웃어?] 

[어떻게 안 웃을 수가 있어요? 하고많은 별호 중에 하필 자존자대가 뭐예요, 자존자대가.] 

진양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만 터지는지 말을  마치며 다시 대소했다. 그리고 이 괴인의  성격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호 별호가 자존자대라면 분명 굉장히 거만하고 기괴한 사람이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진양이 다

시 한번 괴인을 뜯어봤다. 분명 말투에 거만하고 기괴함이 보여도 역시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괴인은 혼

자 씩씩거리더니 그에게 소리쳤다. 

[나를 우습게 봐? 좋아. 넌 나하고 싸움을 벌여야겠다.] 

진양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지금 이 괴인은 척 보기에도 무공의 고수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허나 악인은 아닌 

듯 보여 히죽거리며 물었다. 

[아까 일어서는 것도 귀찮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싸움이라니.] 

[아냐, 다 필요없어. 내가 싸우자면 싸우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야. 자 간다!] 

진양은 그가 보통 웃기는 괴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라고 혼자 마구 떠들어대더니 급작스럽게 달려드는 게 아닌

가. 진양은 놀라 황급히 물러서며 말했다. 

[잠깐! 설마 어린 애를 상대로..] 

거기까지만 듣고도 괴인은 흠칫하며 멈춰섰다. 

[너..] 

[전 분명 어린 애인데 이런 소문이 강호에 퍼지면 어떻게 되죠? 자존자대는 어린 애를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 

괴인의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부라렸다. 진양이 미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어떻게 혼내

주고 싶긴 한데 도무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자니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골

탕먹일 방도를 생각하느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화났어요?] 

진양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가 얼굴이 새빨개져 숨을 거칠게  몰아쉬니 두렵기도 하고 왠지 미안했다. 악인 같지도 

않은데 자신이 너무했는가 싶었던 것이다. 괴인이 버럭 호통친다. 

[당연히 화나지, 이놈아! 감히 자존자대를 놀려?] 

[에이, 화내지 말아요. 어린놈이 놀렸다고 뭘 그렇게 흥분해요?] 

다시 괴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그러지 말고 저희 그 똥 같은 금녀 상판에 대해서나 얘기해요.] 

진양이 벌써부터 즐겁다는 듯 히히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괴인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저 가만히 코웃음치더

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진양은 그의 화를 풀어주려 잠시 고민하다가 뭔가를 생각해내곤 중얼거렸다. 

[자존자대, 자존자대. 그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기도 한데..  아! 사부님께서 그러셨던가? 천하제일은 오로지 

자존자대라고..] 

하지만 괴인은 아직 반응이 없었다. 

[괴인이긴 하지만 워낙 무공이 초절(超絶)하여 천하에 당할 자가 없다던데.. 매우 흠모하고 있다고 하셨지. 맞아, 그

랬어.] 

진양은 중얼거리며 슬쩍 괴인의 눈치를 보았는데 과연 그의 귀가 자꾸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난 강호에 나서본 적이 없어 견문이 없으니 원..] 

[뭐라고? 아이고, 사실은 그랬구나!] 

갑자기 괴인이 고개를 홱 돌려 소리치더니 손뼉을 쳐대며 크게 좋아했다. 진양은 그의 생각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

다. 아마 자신의 별호를 듣고도 놀라지 않아서 매우 기분이 나빴는데 본래는 강호 견문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그제

야 깨닫고 좋아하는 게 아니겠는가. 괴인은 흡족하게 웃으며 진양에게 말했다. 

[그래, 네가 견문이 없어서 그랬다니 내가 이해해야지, 뭐.] 

[그래요. 아! 그나저나 저희 금녀 상판에 대해서나 얘기해요.] 

[좋지!] 

괴인이 통쾌하게 대답하자 진양은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그는  자존자대가 누군지 분명 모른다. 조덕도 그런 얘긴 

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의 화를 풀어주려고 만들어낸 말인데 그걸 듣고 저렇게 태도가 뒤바뀌니 어이가 없기도 하

고 웃음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금녀 상판을 본 적 있나요? 그 얼마나 추악한데.] 

[물론 본 적이 있지. 내 심심해서 그 할망구 잡으려고 갔다가 얼굴보고 도망쳤단다.] 

그 말에 진양의 눈빛이 일순 반짝이자 괴인은 안색이 대변하여 급히 말을 바꾼다. 

[아니, 그러니까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그, 그냥 너무 추악해서 싸울 맛이 안 났거든.] 

[저도 알아요. 너무 추악해서 싸울 맛이 안 날 수도 있죠. 전 구토도 할 뻔했는데.] 

[그래. 그 할망구의 얼굴은 너무 추해. 차라리 개똥을 짓밟아도 그보단 낫겠어.] 

그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며 밤이 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금녀의 추함에 대해 논했다. 

대화가 길어지자 자연 화제도 변해만 갔다. 처음에는 금녀의 추함에 대해 논하더니 그 다음에는 그녀의 무공, 그 후

에는 금수쌍녀의 악행, 진양의 무공, 괴인의 무공까지. 그러나 말이 논했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괴인 혼자 주저린 거

나 다름없다. 진양은 견문이 거의 없는데 어찌 여러 무공에 대해 깊이 논하겠는가. 다만 진양이 중간중간 아는 척을 

해두니 괴인은 기분좋은 듯 열심히 떠들어댔을 뿐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진양은 이 괴인의 무공이 실로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무공에 대해 설명할 때는 언

뜻 듣기에도 과장이 많았지만 금수쌍녀의 무공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지식이 대단했던 것이다. 특히 무학의 

이치에 대해선 굉장히 자세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정말 아무리 봐도 둔한 듯 한데 무학 지식은 대단하니 역시 괴인

은 괴인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는 중 진양은 자신이 함종문 무공들 말고도 소림사의 탄지신통을 

시전할 줄 안다고 말했다. 괴인과 대화하다 보니 그의 마음이 자신과 꼭 들어맞는  걸 알 수 있어 그에게 거짓말을 

하긴 싫었기 때문이다. 헌데 괴인은 소림사라는 말을 듣자 화들짝 놀랐다. 

[뭐? 소림사?] 

[네. 소림사의 탄지신통이요.] 

[어떻게 배웠지?] 

[그냥 그런 복잡한 일이 있었어요.] 

진양은 갑자기 돌변한 그의 반응이 이상했다. 소림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변해서 이것저것 캐묻는 그가 이상

해보였다. 그가 다시 묻는다. 

[빨리 말해봐. 아니, 그럼 누구한테만 배웠는지 말해봐.] 

진양은 일순 망설였다. 까짓 탄지신통을 배웠다는 말도 했으니 누가 가르쳐 줬는가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

만 아무래도 그와 약속한 게 있는데 그것까지 말하기는 조금 꺼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꾸 재촉하자 결국 휴

정이라는 법명을 말해주었다. 

[휴! 아니구나.] 

괴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에 진양이 이상하게 바라보자 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휙휙 저

어댔다. 곧 괴인이 말했다. 

[좋아. 그럼 그 소림사의 탄지신통을 보여줘 봐.] 

[안돼요. 저는 이걸 배운지 고작 몇 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여줘요? 나중에 잘 완성되면 그때 보여드릴게

요.] 

분명 진양의 탄지신통은 아직 형편없었다. 그는 괴인의 무공이 대단해 보이는데, 괜히 보여줬다가 비웃음을 살까 절

대로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에 괴인은 자꾸 보챘지만 진양이 끝까지 거절하여  결국 그 다음의 화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다음 화제는 죽음의 위기에 몰린 인간들에 대한 것이었다. 

[툭하면 저들이 무슨 대단한 강호인인양 하는 놈들도 많지만, 그놈들도  모두 죽기 전에는 태도가 변해서 살려달라

고 애원하지.] 

[흥. 그렇게 살아서 대체 어쩌겠다는 거죠? 저는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비참하게 죽겠어요.] 

본래부터 자존심이 강했던 진양은 문득 혐오감이 치솟아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자 괴인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갑자

기 앙천 대소를 터트렸다. 진양은 그게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하고 발끈하여 소리친다. 

[정말이에요. 절 무시하나요?] 

[하하하. 아니다, 아니야. 넌 정말 맘에 든다!] 

괴인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기쁜 듯 했다. 아무리 자세히 뜯어봐도 절대 조롱 같지는 않았다. 그가 다시 말문을 열

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창피하지 않나요? 전 절대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무릎 꿇고 애원하죠?] 

[하는 놈들은 하고도 남지. 가랑이로 기라면 정말 기는 놈들도 있거든.] 

괴인의 대답하자 진양은 자신의 비참했던 과거를 말없이 회상했다. 따돌림을 당하고 흠씬 구타도 당했던 과거를 생

각하고 있었다. 자신을 멸시하며 침을 뱉던 자들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

보아도 겁을 먹고 가랑이로 기는 건커녕 머리 한번 조아린 적도 없었다. 

[전 어릴 적에 제법 비참하게 살아왔지만 머리 한번 조아린 적도  없었죠. 그런데 도대체 어떤 못난 것들이 가랑이 

사이를 긴다는 거죠?] 

이건 분명 의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냐를 묻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괴인은 그들의 정체를 말하라는 걸로 알아

들었다. 

[나도 기억 안 나. 아무튼 정말 못난 것들이었지. 무슨 죄를 지었더라.. 아! 그래, 고놈들이  부녀자를 농락하고 있었

지. 그게 어디였는지는 몰라도 어쨌건 작은 촌이었어. 내가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건데 이 자존자대 대협께서 어

찌 가만히 보겠나? 내 당장에 달려가서 신나게 두들겨줬더니 금방 무릎꿇고 봐줄 때까지 절을 하겠다고 하더군.] 

진양이 실소했다. 이 괴인은 역시 바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그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괴인은 혼자 신이

나서 열심히 지껄인다. 

[그러길래 내가 즉각 일어서라고 했지. 그러니까 그놈이 뭐라했는 줄 알아? <안 봐주면 계속 절하렵니다!> 라고 하

면서 계속 대가리를 땅에 박아대는 거야. 내  참, 우스워서.. 하지만 그렇다고 굴복할 내가 아니지.  고놈 머리통 한 

대 후려주고는 곧장 도망쳐버렸지. 그놈은 아마 아직도 절을 하고 있을 거야.] 

괴인은 입을 쩍 벌리며 웃어댔다. 진양도 씨익 미소를 머금었다. 본래 물었던 게 이것은 아니지만 손짓 발짓 하면서 

열심히 얘기하는 그가 재미있기도 했다. 마치 마보강과 같은 동년배와 얘기하는 것만 같다. 

[어때?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어?] 

[저 같으면 사지를 땅속에 처박아 두겠어요. 등에다가는 천근 짜리 돌을 올려놓고요. 그래서  평생 머리통 부서져라 

절하도록.] 

진양도 손짓 발짓 하며 말했다. 그러자 괴인은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나뒹굴었다. 그의 웃음

소리는 마치 대지를 진동시키겠다는 듯 우렁차기 짝이 없었다. 새들이 놀라 푸드득  날아가고 초목이 몸을 벌벌 떨

었다. 다만 그 웃어대는 모습이 무슨 지랄병이라도 걸린 사람 같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한참동안 한없이 웃어댄 

그는 곧 일어서며 진양의 손을 와락 움켜쥐었다. 

[우리 의형제 맺자!] 

[뭐라고요?] 

진양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이 차가 수십 년은 더  될텐데 의형제를 맺자니, 난데없이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좀 전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이나 지금 그의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고 금방 생각을 바꿨다. 

본래 법도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 진양은 이 괴인만 원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왜? 싫어?] 

[아뇨. 좋아요. 저희 의형제 맺어요.] 

[하하! 암, 그래야지. 내가 사람하나는 참 잘 본다니까!] 

괴인은 크게 기뻐 한동안 대소를 멈추지 못했다. 그는 이제껏 이만한 꼬마를 본 적이 없다. 아니, 꼬마가 아니라 강

호인 중에도 이처럼 대담하고 맘에 맞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자존자대라는 것만 알면 모두 슬금슬금 기

어다녔고 함부로 말도 붙이지 않으며 다들 자신을 멀리했다. 설사 자존자대라는 걸 모른다 하더라도 자신의 목청만 

들으면 왠지 모두 아연실색하며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년은 전혀 달랐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구차하게 

사느니, 비참하게 죽겠다.>라는 말이 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 우리 어디서 의형제를 맺을까?] 

[저는 큰 산 정상에서 맺으면 좋겠어요. 까마득히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고.] 

그가 의견을 내놓자 괴인이 갑자기 앗,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또  멍해진다. 진양은 왠지 그가 대소를 터트

릴 것 같다 생각했다. 좀 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은가. 과연 괴인은 금방 대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뭐가 그리 기뻐요?] 

[너 산을 좋아하냐?] 

그는 진양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진양은 순간 번뜩여지는 게 있어  짐작 반 확신 반으로 입을 열었

다. 

[우리는 과연 마음이 맞았군요! 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하하! 그렇다, 바로 그거야. 세상에 무슨 강이 어쩌고저쩌고 풍취가 어떻다 하지만 역시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일품이지!] 

괴인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소리쳤다. 진양도 크게  기뻐 웃음을 터트렸다. 그 누가 그  경관을 알아주던가. 그의 

사부와 사형제들도, 그리고 절친한 벗 마보강도 알아주지 않았던 경관이다. 다들 진양의 독촉에 한번씩 보긴 했지만 

그저 <좋다> 라고만 할 뿐 더 보려 하지도 않지 않았는가. 

[어느 산으로 갈까요?] 

한바탕 웃어대던 진양이 물었다. 그 말에 괴인은 이리저리 한참동안 걸어다니며 고민하더니 겨우 흘러나온 말은 똑

같은 되물음이다. 그에 진양은 실소하고 말았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둔한지를 잘  말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진양은 슬쩍 미소를 머금으며 잠시 생각해보다가 문득 조덕이 했던 말을 기억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선 <촉국에는 선산이 많으나  아미에 필적할만한 것이 없다.>라고  했다면서, 아미산(蛾眉山)은 명산이라 

하셨지.) 

곧 말한다. 

[아미산!] 

그러자 괴인은 기뻐했다. 

[오! 아미산. 나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 거기 좋겠다.] 

[그럼 어서 가요.] 

진양은 가볍게 미소하며 어느새 먼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미산은 아미현에 있었다. 진양은 길을 잘 몰랐지만 괴인은 잘 알고 있어 찾아가는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과연 이백의 말대로 아미산은 천하의 명산 중 명산이었다. 도무지 가는 곳마다 탄성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입구를 지나 막 오르다보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에도 사방엔 아름다운 꽃들이 그 미색을 잃지 않고 있었

다. 산길 옆 졸졸 소리내어 흐르는 물은 밑에 깔린 작은 돌의 모양까지도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했고,  그 옆으

로는 한없이 푸르기만 한 버드나무가 산들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한여름이라 매우 무덥고 이곳도 낮은 지대였지

만 그 푸르디푸른 산천초목(山川草木)을 보고있자니 몸과 마음 모두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산을 좀 오르자  아까

보다 더 울창한 수목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 본 투명한 시냇물은 여기서도 볼 수 있었는데,  그 뒤로

는 제법 괜찮은 규모의 사원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다지 흥미가 없기 때문에 그곳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또 좀 

더 오르니 어느새 낀 짙은 안개가 그들을 맞이했다. 고지대로 갈수록 안개는 짙어져만 가 으스스해지는 것이다. 다

시 한참을 오르다 문득 진양이 고개를 돌려보고 또 탄성을 내질렀다. 

[아! 산세가 곱고 경치가 수려하니 대천산에 비할 바가 아니구나.] 

그의 멍한 눈이 닿아있는 곳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산을 유유히 맴도는 안개와 푸른 산이 만나자 실로 말로는 형

용하기 어려운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말없이 자리잡은  울긋불긋한 색채도 그 경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오르는 속도를 조금 빨리했다. 이런  절경들을 보니 정상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과연 어떤 

장관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이 솟구쳤던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경관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더 좋

아하는 마음도 없지않아 있기에 더욱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아침나절에 산 입구를 들어서고 중간에도 거의 쉬는 일 없이 올랐더니 정상에  이르렀을 땐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드디어 아미산 최고봉에 도달한 것이다. 정상의 바로 앞에는 꽤나 큰 불사가 하나 보였는데 <금정(金頂)>이라는 편

액이 당당히 붙여져 있었다. 사방은 벌써부터 어둑어둑했지만 그 정도의 글도 보이지 않을 만큼은 아니었다. 

[와! 이것봐라!] 

괴인이 필요이상의 함성을 내지르며 진양을 불렀다.  주변에 있던 몇몇 비구니들이 기이한  시선으로 쳐다보았으나 

괴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하다. 진양도 조금 창피한 마음도 들었으나 이제 곧 형님이 될 분이라 생각하니 갑

자기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가볍게 실소하고는 마찬가지로 함성을 내지르며  후닥닥 뛰어가 괴인이 가리키는 광

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진양은 그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대자연이 이룩한 천하절경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운해(雲

海). 분명 사방이 금방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떠도는 구름바다는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아까 올라오며 봤던 

것과는 사뭇 기분이 다른 운해였다. 수백 리 밖이 다 내다보이는 높은 정상에서의 장관이란 본래 이런 것이 아니겠

는가. 둘러보니 과연 크고 작은 산들은 고작 제 손바닥만하게나 보이고 있었고, 산천초목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는 

것만 같았다. 다만 어느새 날이 저물어버려 그 속에서 보였던 울긋불긋한 색채가 보이지 않다는 게 조금 아쉬울 뿐

이었다. 

[날이 저물어 잘 보이지 않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절경은 절경이로다!] 

이 말은 본래 진양이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괴인이 먼저 선수쳐 외치며 진양을 향해 씨익 미소했다. 진양은 이 괴

인의 마음이 자신과 정말 잘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굳이 생각해볼 것도 없다. 마음만 통한다면 지식이고 지혜

고 필요 없이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자! 그럼 어서 의형제를 맺어요. 그 전에 이름이 어떻게 되요?] 

[그래. 이러저러한 쓸모 없는 절차 따윈 밟을 필요가 없지.] 

괴인은 곧장 말을 이었다. 

[나는 천하제일 자존자대, 무굉(武轟)!] 

그 말에 진양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의 이름은 정말 그와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터

져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두 손을 불끈 맞잡으며 저 멀리까지 보이는 절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도 필요 없었다. 

그저 함께 이 웅장한 광경을 바라보며 의형제가 됐다  생각하면 끝인 것이다. 으스스하게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도, 

미친놈들 쳐다보는 듯한 비구니들의 시선도, 훈훈하게 뜨거워져만 가는 그들의 가슴을 식힐 수 없었다. 한풍이 몰아

치고 어둠이 더욱 짙게 깔릴 무렵, 그들은 천하라도 얻은 듯 광소(狂笑)를 터트리며 기뻐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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