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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목청 큰 괴인 2 (9/90)

                                      第 三 章. 목청 큰 괴인 2

그렇게 술 한 잔, 향 한 대 없이 그저 훌륭한 경치와 한바탕의 웃음으로 의형제가 된 진양과 무굉은 지금 금정봉에

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알고보니 무굉의 허리춤엔 호리병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죽엽청(竹葉靑)이 들어있

었던 것이다. 스스로 술에 미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술을 좋아한다며 이 술은  자신이 아껴먹으려고 남겨뒀던 

귀한 술이라고 했다. 정말 그러한지 과연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진양은 술을 먹어본 적이 없었지만 한번 마셔보니 

괜찮아서 이번엔 한바탕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등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산 아미사원은 보현보살(普賢菩薩)께서 현령(顯靈)하신 법사(法事)입니다. 두 분 시주께선 조용히  하셔야 합니

다.] 

그 말에 그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비구니 네댓 명이 서있었다. 방금 말은 맨 앞의 늙은 비구니가 한 듯 했다. 무굉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뭐야? 내 아우와 의를 맺어서 술 좀 마시겠다는데 웬 참견이야?] 

[그게 불사 앞에서….] 

무굉이 비구니의 대답을 잘랐다. 

[시끄러! 내가 술 마신다면 마시는 거야. 저리가.] 

[이곳은 불사입니다.] 

늙은 비구니는 별 해괴한 놈이 다 있다는 듯 기이한 눈빛을 발하며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무굉이 서슬 푸르게 그

녀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비구니도 여간내기가 아닌 듯  맞서 노려본다. 결국 무굉은 대노하여 성큼성큼 다가섰

다. 

[더 방해한다면 혼내줄 테다!] 

[빈니(貧尼)는 겁먹지 않습니다. 감히 어느 누가 절 앞에서 시끄럽게 술을 마신단 말입니까?] 

[이 재수없는 비구니가!] 

무굉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당장이라도 후려칠 기세다. 그러나 오늘은 진양과  의형제를 맺은 날이다. 또한 이런 

힘도 없는 비구니를 쳐죽일 수야 없지 않는가. 그 상태로 한참동안 끙끙거리더니 그냥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이 절을 확 불질러버릴 거야.] 

순간 비구니들의 안색이 대변하고 말았다. 절을 불지르겠다니, 불도만 하는 비구니들이니  크게 놀랄 만도 했다. 그

들 머리엔 그저 언감생심(言感生心)이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에 이처럼 무례한 자가 또 있을까 하며 분

노하고 어이없어 하고 것이다. 늙은 비구니도 그런 듯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무섭지? 호된 꼴 당하기 싫으면 어서 사라지라니까.] 

[가, 감히..] 

늙은 비구니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크게 분노한 듯 하다. 그 때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진양이 천천히 일어서며 말

했다. 

[형님. 이 비구니들은 졸려서 그런 거 같아요. 우리가 시끄럽게  구니까 잠을 못 자서요. 괜히 보현보살이니 어쩌니 

하면서 핑계잡는 거에요.] 

[뭐야? 그게 정말이냐?] 

무굉이 깜짝 놀라 비구니를 향해 물었다.  그에 비구니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치솟아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며 

대답하지 않았다. 

[응? 정말이냐고. 아! 그리고 보니 네 눈이 퉁퉁 부었다.] 

무굉은 그녀의 눈을 가리키며 히죽거리더니 뒤에 어린 비구니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자꾸 웃음을 터트렸다. 늙은 

비구니는 어이가 없어 허, 하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처럼 세속을 떠난 이도 저 소년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 어느 비구니가 졸립다고 그런 대역무도(大逆無道)한 소리를 지껄이겠는가. 그런데  이 목청만 큰 괴인은 그게 

정말이냐고 재차 물으니 실로 뭐라 할말이 없었다. 

[재밌다, 재밌어!] 

무굉은 아예 박수를 쳐대며 즐거워했다. 완전히 정신나간 늙은이처럼  도대체가 체통도 없어 보였다. 본래 그는 제 

편한 대로만 살 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늙은 비구니는  그것이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분노가 와락 치밀었다. 곧 뭐라고 호통치려는데 갑자기 진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창피해서 대답을 못하는군요. 저 얼굴 벌게진 거 봐요.] 

[정말 그렇다!] 

그들은 함께 손가락질하며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비구니들은  크

게 분노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술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늙은 비구니가 결국 버럭 호통쳤다. 

[이.. 이게 대체 뭡니까? 어찌 이렇게 무례할 수 있습니까?] 

그녀는 크게 흥분하여 말을 조금씩 더듬거렸다. 하지만 진양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듯 무굉에게 말했다. 

[술도 거의 다 마셨는데 남은 술은 형님 드시고 싶을 때 드세요. 저희는 이만 하산하죠.] 

그 말에 무굉은 마음이 동하는 듯 슬쩍 호리병을 흔들어보았다. 아주 작게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해보세요. 나중에 마시고 싶을 때 없으면 어떡해요? 조금씩 남겨두는 것도 좋아요.] 

[하하! 정말 그렇구나. 너는 똑똑해.] 

무굉은 입을 함박만큼 벌리고 웃더니 비구니를 돌아보곤 혀를 끌끌 찼다. 

[다음부터는 솔직하게 말하도록 해. 하여튼 비구니든 중이든 다 거짓말만 일삼는다니까.] 

[너.. 너..] 

늙은 비구니가 만일 무공이라도 알았다면 벌써 백 번은 출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미사원은 불도만 하는 절이었다. 

그저 화가 치솟아 사시나무 떨듯 몸만 떨어댈  뿐이었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사이 진양과 무굉은  몸을 돌려 벌써 

한참은 내려가고 있었다. 

아미산을 다 하산하고 보니 막 새벽 동이 트이고 있었다.  역시 산에 있을 때와는 공기부터가 틀렸다. 아직 새벽의 

선선한 공기가 남아있음에도 그들의 볼에는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무굉이 소매로 땀을 닦아내며 물었다. 

[자! 아우야. 어디로 갈까?] 

[글쎄요.] 

진양은 피로한 듯 옆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나 무굉은 아직 팔팔한지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음! 좋아. 그럼 우리 천하를 주유하자! 천하의 명산이란 명산은 다 둘러보는 거야. 숭산(崇山)만 빼고.] 

무굉은 진양을 연신 보채고 있었다. 그렇게 되니 진양은 피곤해도 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한 귀로 듣

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중이었지만. 

[가자, 가자! 아미산은 내 보기에 제법 수려하고 고왔지만 이번엔 장엄한 산에 가보자고.] 

[형님. 일단 한숨 자도록 하죠.] 

무굉의 눈이 일순간 휘둥그래졌다. 

[피곤해?] 

[당연하죠. 하지만 형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 나는 아직 팔팔해. 헌데 넌 왜 그렇게 약한 거야?] 

진양은 지금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거린다. 그때 무굉이 아, 하는 경호성을 발하더

니 곧 크게 기뻐했다. 

[그래, 네가 왜 피곤한지 알았어.] 

[왜요?] 

그의 말에 진양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무공이 약해서 그런 거야. 이제 이 자존자대 무굉의 아우가 됐으니 너도 무공이 대단해져야지. 그렇지?] 

진양은 또 힘없이 끄덕거리기만 했다. 무굉은 그가 얼마나 피로해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의 몸이 

허약해서 그런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청성산으로 잠입할 때부터 지금까지 잠 한숨은커녕 제대로 된 휴식한

번도 취하지 못한 진양이다. 게다가 내공도 심후하지 못하니 그가 무슨 수로 버티겠는가. 그는 결국 낮은 신음을 흘

리며 그대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앗! 아우야! 왜 그러느냐?] 

무굉은 화들짝 놀라 그를 안아들었다. 얼굴을 보니 안색이 파리한 게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

려앉았다. 곧 검지와 중지를 그의 코끝에 갖다댔다. 숨은 고르게 쉬고 있다. 무굉은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며  이번

엔 세 손가락으로 차분히 맥을 짚어보았다. 눈을 감고 진양의 몸 고동소리가 손끝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에이. 아우는 잠든 거였네.] 

그는 가볍게 실소했다. 마치 어이없다는 듯 자꾸 피식 피식 웃음만 터트렸다. 그는 일단 진양을 바위에 기대어놓아 

편히 쉬도록 만들어놓고 자신은 그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도 잠이나  자볼까 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

지 않는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하지만 진양은 오랫동안 깨지 않았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도 깰 기미가 눈꼽만

큼도 보이지 않았다. 무굉은 몸이 뻐근하여 기지개를 펴댔다. 

[아우는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거야.] 

문득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어쩐지 찜통처럼 덥더라니 이미 한낮이 된 것이다. 고개를 돌려 진

양을 보니 처음 눕혔던 자세 그대로 변함이 없다. 호흡 때문에 어깨가 들썩이는 것과 쉭쉭, 하는 가벼운 콧김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시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을 듯 했다. 

[차라리 무공이나 연마해둘까? 아, 맞아! 좀 있다 아우가 깨면 뭘 전수해주지?] 

그는 벌떡 일어서서 진양과 조금 떨어지더니 금방 마보(馬步)를 취했다. 그리고는 우수, 좌수를 가볍게 한번씩 돌려

주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또 다시 왼손을 단전(丹田)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을 불끈 쥐었는데 일순간 눈을 부릅뜨며 

우수를 짧게 번쩍했다. 언뜻 보면 살짝 내밀다 만 듯 했지만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 앞에 있던 고목의 몸통을 

산산조각 낸 것이었다. 그 고목은 마치 허리를 잘린 사람처럼 윗대가리가 기울어 우당탕 쓰러지고 말았다. 

[와!] 

그의 뒤에서 놀람에 가득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굉이 뒤를 돌아보니 진양이 깨어나 있었다. 그는 방금 우지끈뚝

딱, 하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던 것이다. 무굉은 그가 대단하다는 듯 존경의 눈빛을 보내자 기분이 들떠버렸다. 

[놀라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 광표장법(狂豹掌法)의 일 할(割)도 다 쓰지 않았거든.] 

[정말 대단하군요! 과연 형님의 무공은 초절해요.] 

진양은 그가 일 할도 다 쓰지 않았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허나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이는 건 몇 번 본 적이 없어서 

크게 감탄성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그때 마침 고목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곤 

척 보니 가운데가 텅 비어서 쉽게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일 할의 공력도 쓰지 않았다는 걸 

안다면 얼마나 놀랄까. 그는 지그시 부서진 고목을 보았다. 정말 광표장법이란 이름처럼 맹수에게 물어뜯긴  나뭇조

각 같았다. 

[형님. 그 무공을 구경하고 싶어요.] 

[좋아! 아우가 보고 싶다는데 왜 안 보여주겠어? 잘 봐!] 

무굉의 입은 어느새 찢어져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존자대 무굉의 절학

이자 수많은 강호인의 두려움을 사고 있는 무공, 광표장법이 시전되는 것이다. 그는 좌충우돌하며 이리저리  난잡하

게 나돌아다녔다. 펄쩍펄쩍 뛰어다니기도 하고 몸을 낮춰 땅에 붙어 달리듯 움직이기도 했다. 헌데 그 몸놀림이 빠

르기 짝이 없어 진양은 그 동작 하나하나를 다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우수가 번쩍하면 앞의 고목이 박살나고 또 

어느새 좌수가 이상하게 움직여서 다른 고목을 박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정말 광표장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나웠다. 이런 무공을 상대로 싸운다면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버

릴 만큼 진짜 맹수를 대하는 것 같았다. 진양의 등줄기로는 말없이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였다. 

[우오오!] 

갑자기 무굉의 큼지막한 입에서 무시무시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흡사 미친 맹수가 날뛰며 부르짖는 괴성처럼 듣는 

이가 소름 끼치게 하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진양도 소름 끼치는 건 물론 산천초목이 다 소름 끼친다는 듯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진양은 오금까지도 저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에 겁먹는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화나기

도 하여 허벅지를 꼬집으며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어떠냐? 대단하지 않느냐?] 

무굉은 방금 그 무시무시한 괴성을 끝으로 광표장법 시전을 다 마무리지은 듯 했다. 그러나 진양은 얼어붙은 듯 잠

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우야?] 

[아! 네.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무서운 장법은 난생 처음이에요!] 

진양이 꿈에서 깨듯 퍼뜩 고개를 쳐들며 감탄을 터트렸다. 분명 광표장법을 전부 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도 무공을 배운 이로서 광표장법이 대단한 무공이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니, 꼭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쯤은 쉽게 느낄 수 있을만큼 굉장했다. 주변만 둘러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방에 널려있던 고목 

수십 그루가 다 작살이 나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굉은 그저  그 칭찬이 기분 좋을 뿐이다. 희희낙낙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이 장법만 익히면 천하에 적수가 없어. 내가 앞으로 천하제일로 군림할 것도 별로 어렵지 않지. 뭐 천하제일

이나 다름없지만 말야. 딱 한 사람, 그 녀석만 없다면 내가 최고야.] 

그의 말에 진양은 의문을 느꼈다. 저번부터 이상하게 느껴왔던 점인데 이번이 기회라 생각하고 물었다. 

[딱 한 사람, 그 사람이 누구죠?] 

돌연 무굉이 깜짝 놀랜다. 실언했다는 표정이다.  그의 불그스레하던 안색도 금방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고 말았다. 

진양이 기이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도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뭘 씹고 앉았는지 주둥아리만 자꾸 우물거린다.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되요.] 

그 말에 무굉의 안색은 보기 불쌍할 정도로 망가지고 말았다. 진양은 그가 말을 못하자 무슨 곡절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관심 없다는 듯 말하며 오히려 그의 말을 유도한 건데 그의 안색이 저 모양 저 꼴이 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엔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정말 안 해도 되요. 정말로요.] 

[정말로?] 

[네. 정말로.] 

[조금의 거짓도 없는 거다.] 

[그렇다니깐요.] 

무굉이 재차 물으면 진양은 재차 대답했다. 하지만 무굉의 얼굴은 아직 못미더운 듯 하다. 진양이 가볍게 웃으며 말

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전 그냥 형님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 거에요. 제  유일한 형님이고 유일하게 의

지할 사람인데 괴롭히면 안되죠.] 

[아우야..] 

무굉은 일순 코끝이 찡해졌다. 안색만 봐도 그가 지금 격정이 솟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양은 그가 

참 단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우야. 우리 이제 어디로 갈까?] 

문득 무굉이 정적을 깨며 물었다. 진양이 보니 그의 눈은 조금 빨갰다. 그러자 자신도 갑자기 격정이 솟는 것 같았

다. 

[아무 곳이나 좋아요!] 

그러다 진양은 갑자기 느껴지는 게 있어 말을 바꾼다. 

[아니지. 기왕 간다면 청성산부터 가요.] 

[청성산? 그래. 뭐 가는 길이니 그리로 돌아가자.] 

그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딜 가든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느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는 길은 순탄했다. 항상 어딜 갈 때처럼 반나절 이동하고 반나절 객잔에서 쉬고 하는 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

나 진양이 자꾸 초조한 행동을 보여 조금 걸음이 빨라지고 말았다. 덕분에 청성산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아, 맞다. 이곳엔 청성파가 있었지.] 

청성산 입구를 바라보던 무굉이 손뼉을 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진양은 이제 적응이 되어 별로 우습지도 않았다. 

다만 무굉에게 뒤쪽으로 오르길 권했다. 

[왜? 여기 좋은 길 있는데 왜 험난한 길로 가?] 

[사실은 이곳에서 만나볼 사람이 있어요.] 

진양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데?] 

[수녀요.] 

진양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거짓말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에 무굉은 잠시 놀라

는 듯 했으나 곧 안색을 풀며 또 물었다. 

[대관절 수녀는 왜?]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녀가 보고 싶어요.] 

정말로 그냥 보고 싶었다. 헤어지고 나서부터 계속 보고 싶지 않았는가. 그러나 금녀 때문에 감히 되돌아가지 못했

는데 이젠 무굉이 있으니 겁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무굉과 천하를 주유하게 될 테니 볼 날도 별로 없을 것이

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냥?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정말로 그냥이에요.] 

무굉도 진양도 둘 다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일단 왔으니 가보기는 해아한다. 진양이 산 뒤편으로 앞장서자 

무굉이 곧 따랐다. 

잠시 달려 저번 수녀와 함께 갔던 그 절벽을 올랐다. 그는 먼저 경공을 펼치며 무굉에게 소리쳤다. 

[올라와요.] 

그 말에 무굉이 금방 몸을 날려 진양을 따르기 시작했다.  순간 수녀와 함께 이곳을 올랐던 때가 생각났다. 그녀가 

따라오라고 소리치고 자신이 따라 오르던 그 일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절벽을 타고 오르자 저번처럼 역

시 공터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날, 채문 등과 싸웠던 때가  생각나고 있었다. 그녀가 저 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다. 

[령아. 곧 갈게.] 

[뭐?] 

진양은 감상에 취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등뒤에서 무굉의 대가리가 불쑥 튀어나오며 그의 음성

이 들렸다. 진양은 화들짝 놀라 안색을 붉히며 얼버무린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에 무굉은 역시 모르겠다는 듯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생각해봐도 나오는 답이 없으니 금방 생각을 지우고 말았다. 

진양이 다시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주변에 종종 청성 도사들이 보였는데 진양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들을 가

볍게 피해갔다. 무굉은 그것이 불만인 듯 뭔가 따졌으나 진양이 사정이 있다고만 하며  딱 자르니 그도 뭐라 더 할 

수가 없었다. 

(형님껜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걸 다 설명하자니 귀찮고..) 

저번 수녀를 따라 갔던 길을 생각하며 조금 달리자 과연 울창한 수림이 나타났다.  무굉이 이게 뭐냐는 듯 숲을 가

리키며 진양을 바라본다. 하지만 진양은 평소와는 다르게 장난기하나 없이 정색한 채로 숲에 뛰어들었다. 

[젠장.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무굉이 한숨쉬며 푸념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진양을 따라 숲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

기 무굉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우야! 요놈의 나무들 때문에 빨리 못 가겠어.] 

진양이 기괴하게 여기며 고개를 돌리다 무굉의 모습을 보고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무굉은 지금 몸을  움츠리며 나

무 사이를 빠져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그의 덩치는 대단히 커서 이런 길을 통과하기엔 길이 좁은 감이 있었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무굉은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단번에 손을 휘둘러버렸다. 순간 나무 세 그루가 와지끈, 부러지고 만다. 

[형님! 조용히 해야해요.] 

[왜?] 

진양은 그의 모습이 재밌어 깔깔 웃어대다가 갑자기 나무를 부셔대자 안색이 대변하여 소리쳤다. 그에 무굉이 반사

적으로 물었는데 진양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우린 청성 도사들과 금녀  몰래 청성산을 이동하는 거다. 이런 사실

을 형님이 아신다면 뻔하지. 형님은 행동이나 생각이 아주 둔하고 기괴한 면이 있어서 도리어 시끄럽게 굴 거야. 제 

자존심을 뭉개트린다 생각할 테니까.) 

진양의 추리는 정확했다. 실상 무굉의 자존심은 진양으로서는 감히 이해도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아니, 꼭 진양 뿐

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인 것이었다. 그런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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