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三 章. 목청 큰 괴인 3
무굉의 나이가 마흔을 조금 넘기던 선선한 가을날. 그는 당시 명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절세의 무공을 익혔지만
강호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호란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는 산에서만 살아서 외인과는 거의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왜 산에서만 사는가. 그것은 사부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20년 간 산에서만 살기로 한 약속.
<너는 너무 거만하고 모자라서 강호에 나선다면 필시 네 멋대로만 행동할 것이다. 그러니 20년 간 이곳에서만 산다
고 약속해라. 만일 이를 어긴다면 내가 네 뇌수를 빨아먹겠다.>
실상 약속이라기 보단 일종의 협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무굉은 사부를 크게 경외했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
었다. 그렇게 젊은 청춘을 산에서만 다 보내니 어느새 18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이제 2년만 더 참으면 된다
고 생각하며 말없이 입술만 깨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웬 수십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천둔검결을 내놓으라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러자 자신이 도둑으로 몰렸다고 생각한 무굉은 펄펄 날뛰며 그들과 대판 싸움을 벌이고 말았다. 결과는
무굉의 완승. 이미 그의 무공은 대단한 경지에 이른 상태였던 것이다.
강호에는 삽시간에 무굉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천둔검결을 가져서 무공이 대단하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그는
권법과 장법 등 맨손으로 싸움에 임했지만 그것도 천둔검결 안에 수록된 수법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와 큰 오해가
생기고 만 것이다. 그 후론 시도 때도 없이 강호인들이 찾아들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천둔검결을 원했고 무굉이 모
른다고 하면 역시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는 항시 같게 무굉의 승리였다.
그 때 무굉은 싸움을 벌이며 한순간도 잘난 척 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싸울 때마다 가볍게 적을 제압하니 자신감
이 자만심으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급기야 <천하에는 나를 따를 자가 없겠다.> 라는 말까지 하고 말았다고 한다.
거기에 그 우둔함이 감초처럼 섞이자 실로 오만방자한 인간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남은 2년이 흐르고 무굉
이 겨우 강호로 나섰을 때는 이미 자존자대라는 별호가 붙여져 있었다. 어떤 강호인이든 모두가 두려워하는 자존자
대 무굉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진양이 이런 무굉의 과거를 알 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무굉이 보여준 행동만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경
우였다.
[아우야. 왜 조용히 해야해?]
문득 들려온 무굉의 말에 그는 꿈에서 깨듯 정신을 차렸다.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뇨. 여긴 우리 땅이 아닌데 너무 시끄럽게 굴면 안 좋잖아요. 게다가 이 숲도 멀리서 보면 좋은 광경일 텐데 이
렇게 다 부수어 버리면 역시 안 좋겠죠.]
[아하! 그랬구나. 좌우지간 내 아우는 똑똑해.]
무굉은 매우 기쁜 듯 허허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나무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건 언제봐도 참 우스꽝
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진양은 웃음을 악으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니 걸음은 자연 느려져서 숲을 다 통과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
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양은 능숙하게 앞장서서 그 동굴을 찾아갔다.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가득 지배했지
만 모두가 수녀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수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 뿐이다.
헌데 갑자기 무굉이 귀를 쫑긋 세우더니 하마 주둥이를 쩍 벌리며 좋아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진양이 묻자 그
는 들뜬 표정으로 대답한다.
[저 위에서 누군가가 싸우고 있어. 전부 여덟 명인가? 아홉 명인가. 그 중에 두 명은 여자 같은데.]
무굉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바로 언덕 위였다. 순간 진양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바로 느껴지는
게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금수쌍녀가 기거하는 동굴이 있는 곳이 아닌가. 지금 막 그곳으로 가려했는데 그곳에서
누군가 싸운다는 것은 분명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싸움 구경하려고? 같이 가!]
그가 황급하게 몸을 날리자 무굉이 소리치며 뒤를 따랐다. 한 걸음에 달려간 그곳은 무굉의 말대로 대판 싸움이 벌
어지고 있었다. 갈 지(之) 자 형으로 세 명이 뭉쳐서 하나의 진세를 이루고 있었고 그 진이 또 세 개나 되었다. 그
세 개의 진이 삼면으로 금수쌍녀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의 표정을 보니 여간 힘들어하는 게 아닌 듯 싶었다.
아마 청성파의 진세 같았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걸까. 진양은 갑자기 격정이 끌어 올랐다. 지금 그의 시선은 수녀에게 고정되어 있었
다. 그녀가 매우 위험해 보였다. 비록 유루봉법의 끊임없는 회전으로 힘겹게 버텨나가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래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고작 그것 때문일까.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 그리도 그녀의 모습이 처량해 보이는
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건 가슴이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어떻게든 구해내 주고 싶었다. 금녀만 없다면
벌써 뛰어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호. 저 악녀들이 그렇게 대단했나? 웬일로 천하삼유(天下三幽)를 다 펼치네.]
문득 뒤에서 무굉의 음성이 들렸다. 어느새 따라온 그는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진양이 시선은
여전히 격전장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
[저 진법이 천하삼유라는 건가요?]
[그렇지. 꼴에 또 천하라는 이름을 붙여서 천하삼유라고 했었어. 그런데 뭐 별 볼일 없더라.]
무굉은 여유만만하게 대답했으나 금수쌍녀의 안색으로 봐서는 절대 별 볼일 없어 보이지가 않았다. 진양은 진법을
한번 자세히 보기로 했다. 확실히 보통 진법으론 보이지 않는다. 세 명으로 이루어진 갈 지 자 형태의 진법. 양옆으
로 움푹 꺼져 들어간 위치의 두 도사는 가운데 불룩 튀어나온 위치의 도사를 돕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어는 튀어
나온 가운데 도사가 맡고 공격은 양옆의 두 도사가 맡는데 가끔 가운데 도사가 돕는 듯 검을 내밀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세 개의 진이 포위를 하니 그 위력이란 놀라울 것만 같았다.
[형님. 그래도 뭔가 대단한 이치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대단한 이치는 무슨 놈의 대단한 이치야. 천하삼유는 오로지 방어만을 위한 진법이야. 저기 보이지? 옆에
두 도사가 깝죽대며 공격하는 모습.]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굉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래, 저거야. 공격하고 뒤로 빠지면 앞의 도사가 공격을 막고.]
무굉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싶은 안색이 뻔히 보였지만 아무래도 말솜씨가 모자란
다는 듯 입만 오물거렸다. 허나 진양은 그 말에 담긴 요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옳아! 정말 그러하구나.)
무굉이 말한 요지는 바로 반격의 기회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공격이 있으면 반드시 반격의 위험도 있는 법이
다. 검을 세차게 찔렀는데 상대가 피해서 일 장이라도 내민다면 그게 반격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검을 찌르기가 무
섭게 뒤로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위력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피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반드시 피하게 될 것이다. 그
리하면 자연 동작이 빨라지기 때문에 고수가 아닌 이상은 절대 반격을 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수쌍녀는 분명 고수다. 그러면서도 반격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가운데에 불룩 튀어나온 도사 때문인
것이다. 빠르게 반응해서 반격을 들어가는데 바로 앞에 도사가 우뚝 서서 검을 내미니 반격에 대한 반격이 따로 없
다.
[매우 대단한 듯 싶군요.]
진양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건 분명 감탄이었다. 그러나 지금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이던가. 지금은 수녀를
구하는 게 급선무지 느긋이 감탄성이나 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진양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수가 없을까.]
그는 점점 초조해져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무굉이 나서며 물었다.
[무슨 수?]
진양은 복잡하고 또 복잡해서 고개를 가볍게 뒤흔들었다. 그러다 그의 눈이 갑자기 부릅떠졌다. 순간 머리를 강타하
는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의 입가에는 잠시 미소가 번졌다가 금방 사라졌다. 곧 입술에 살짝 침을 묻히며 입을
연다.
[아. 뭘 생각했느냐면요. 저 천하삼유진이 정말 대단해 보여서 깨부수기 힘들 것 같더군요. 형님이라면 어떻게 깨부
술까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의 말에 무굉이 씨익 미소지었다. 좋아죽겠는지, 자꾸만 번져 가는 미소를 억지로 지워보려 했지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우야. 천하삼유진법은 별로 대단치가 못해. 음.. 그러니까 어떻게 부술 수 있냐면.]
그런데 그의 입가에 걸터앉았던 미소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 있냐면, 있냐면 그것만을 반복하고 있었
다. 진양이 자세히 보니 아무래도 설명을 못하는 듯 했다. 그가 본래 둔한 것을 잘 아는 진양이었기에 그런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던 것이다. 진양은 가볍게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이 아우가 그렇게도 싫나요. 왜 아우에게 거짓말을 해요?]
[아니야! 난 정말 저 진을 깨부술 수 있어.]
하지만 진양은 여전히 미덥지 않다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굉은 그 설명을 못하는 자신이 한탄스러
운 듯 제 가슴을 흠씬 두들겼다. 그 쿵쿵 소리가 제법 커서 격전장까지 들릴 것만 같아 진양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부분 듣지 못한 듯 했다. 아무래도 병기 부딪치는 쇳소리와 간간이 터져 나오는 기합성 때문인
것 같았다. 진양은 다시 무굉을 돌아보며 말한다.
[저는 역시 믿지 못하겠어요.]
[아우야. 저 따위는 정말로 별 거 아니야. 내 한 손이면 저놈들 따윈 다 쫓아내 버릴 수 있지.]
무굉은 어깨를 활짝 펴며 자신만만했다. 그에 진양이 실소를 터트리며 대답했다.
[에이. 농담하지 말아요. 어떻게 한 손으로 저 진법을 깨부숴요?]
[정말이야! 내가 못할 거 같아?]
[당연하죠. 혹시 두 손이라면 모를까.]
그가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무굉은 가슴을 치며 억울해했다.
[정말이란 말이다. 내가 설마 아우를 속이겠니?]
[물론 속이지는 않겠죠. 하지만 역시 못 믿겠어요.]
[좋아!]
갑자기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버럭 소리쳤다. 그 소리는 매우 커서 격전장에 있던 사람들도 다 들은 듯 했다.
이상하게 여긴 그들이 흘낏흘낏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일순 번쩍, 하고 무굉이 그들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자, 자존자대!)
순식간에 격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말았다. 잠깐 사이에 금수쌍녀와 청성 도사들이 서로 떨어지면서 입을
꼭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안색을 보니 모두가 크게 놀랐음이 분명하다.
[너희들! 어서 나에게 그 천하삼유를 펼쳐.]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조용하건 시끄럽건 곧장 청성 도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도사들은 화들짝 놀라
주춤주춤 서로의 눈치만 보아댔다. 그나마 그 중 우두머리 격인 화연철만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쪽에 숨어서 지켜보는 진양도 그것을 느낄 수 있어 크게 놀랐다. 대체 자신의 형
님이 어떤 존재이길래 화연철마저 저리 겁을 먹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참. 어서 덤벼!]
무굉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도사들이 화연철의 눈치를 보자 그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려댔
다. 그 모습에 무굉은 더 참지 못하고 선공을 가해버렸다. 단숨에 앞의 한 도사를 붙잡아 수장 밖으로 내던져버린
것이었다. 화연철은 그제야 상황이 안 좋다는 걸 깨달았다.
[천하삼유진으로 맞서라!]
이렇게 되자 상황은 단번에 우습게 되고 말았다. 금수쌍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쪽에 비켜섰고 도사들은
철저하게 천하삼유의 진을 펼쳤다. 화연철은 역시 뒤편에서 관전만 하려는 듯 했다. 갑자기 무굉이 소리친다.
[아우야! 잘 보거라. 천하삼유는 별 게 아니야.]
그는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정면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그 앞에는 하나의 청성삼유진이 펼쳐져 있다. 그가 달려오자
과연 양옆의 도사가 좌우로 튀어나오며 검을 빠르게 내지르다 곧장 빼버렸다. 이는 실상 허초에 가까운 수법이다.
그것을 마치 잘 안다는 듯 그는 그 공격에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달려들어 정면의 도사에게 일 장을 내질렀다. 두
검이 양 허리를 살짝 베고 지나간다.
[핫!]
무굉의 입에서 크고 짧은 기합이 터졌다. 그래서인지 가운데 도사가 일 장을 얻어맞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운
데 도사는 급한대로 검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어서 가슴에 일 장을 맞았던 것이다. 당사자도 눈치채지 못해 강타 당
했는데 하물며 두 도사나 다른 두 개의 진세 도사들이 어떻게 그를 돕겠는가. 다른 도사들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
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진양도 무굉의 신묘한 몸놀림에 넋을 빼앗겨 있었다.
(알겠군. 천하삼유진은 분명 방어를 위한 훌륭한 진법이지만 속공에는 속수무책이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쉬워 속공, 두 글자지 실제로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천하삼유진을 펼치는 도사들은 모두 신법과 보법이 훌륭하기 때문에 이 진법을 속공으로 무너트리려면 대
단한 무공과 신법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무굉은 그 조건을 다 갖췄기 때문에 쉽게 진을 무너트리는 것이고, 신법은
대단하지만 월등한 무공은 없는 금수쌍녀는 자연 수세에 몰리는 것 뿐이다.
그러는 얼마 되지도 않는 사이, 무굉은 더욱 신묘한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한 손만으로 천하삼유진에 맞
서고 있던 것이었다. 마치 미친 범이 난동을 부리듯 날뛰어서 도사들은 제 몸만 방어하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그 기
세가 어찌나 격렬하고 사나운지 도사들은 전혀 진세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보다 못한 화연철이 버럭 호통
을 쳤다.
[청성파가 그리도 우습게 보이느냐!]
화연철은 일단 몸을 날려 무굉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분노한 듯 했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하지만 무굉은 마
치 그의 등장을 모른다는 듯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면에 아무 것도 없다는 듯 그대로 돌진한 것이었다. 그에 화
연철은 소스라치게 놀라 급한대로 검을 가로 그엇다. 그러나 비록 급한대로 했다지만 자세가 잡히고 검이 빛처럼
빠른 게 과연 화연철다웠다. 헌데 무굉도 무굉대로 제법 놀란 듯 했다. 금방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급히 몸을 세워
버렸던 것이다.
[히야. 너도 대단해졌구나.]
무굉이 박수를 치며 칭찬하자 화연철은 조금 두려움이 가시는 듯 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뭐를?]
무굉이 눈을 깜박거리며 되물었다.
[뭐긴 뭐겠소. 지금 왜 우리를 공격하느냔 말이오. 우리 청성파는 당신과 교류도 없고 원한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
러시오?]
그의 말투는 꽤나 불만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상대는 자존자대 무굉이 아닌가. 여차하면 여기 도
사들은 물론이고 금수쌍녀까지 다 한꺼번에 없애버릴 실력을 갖춘 괴물이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 무굉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아우가 내 무공을 믿지 않아서 말야. 자꾸 천하삼유진이 대단하다고 감탄하잖아. 그래서 내가 한 손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니깐 못 믿겠대.]
그 말에 화연철은 짚이는 게 있어 눈썹을 꿈틀거렸다. 곧 확인 삼아 한번 물어본다.
[그럼 그 때문에 지금 우리와 싸움을 벌였다는 얘기요?]
[그렇지. 이제 아우도 내 말이 옳다는 걸 깨달았을 거야.]
무굉은 조금의 꺼리낌도 없이 단숨에 대답했다. 그리고는 고개 돌려 소리를 질러댔다.
[아우야! 아우야! 내 말이 맞지? 어서 나와봐라.]
그는 재차 소리를 질러 제 아우란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화연철은 어이도 없고 화도 났다. 천하삼유진이
무슨 놀이감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망령된 짓인가. 수 년 전에 만났을 때도 황당할 정도로 거만하고 제멋대로였지
만 지금은 더 심해진 듯 싶었다. 더구나 천하삼유진은 청성파의 대진(大陣)이었다. 문파의 역사는 길지 못하지만 이
래뵈도 청성파 개파 때부터 있었던 독문 진법인 것이다. 그 진법이 지금 그의 손에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화
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별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오만방자하구나! 그 자만심도 예전보다 더 심해졌고.]
그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쳤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모욕은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무굉이 깜짝 놀라 돌아보며 어리둥절해한다.
[오만하다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내가 오만하다면 사람들이 날 자존자대라고 높이 칭송하겠어?]
화연철은 너무 황당하여 순간 할말을 잃었다. 그의 머릿속엔 그저 이자가 지금 미쳤나 하는 생각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존자대란 별호는 거만함을 비웃는 별호가 아닌가. 그걸 무슨 대단한 칭송으로 착각하니 무굉이 정상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한편 진양은 여전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의형인 무굉의 거
만이 얼마나 심한지를. 그와 함께 웃음이 터질 듯 목구멍을 뭔가가 맹렬하게 두들겼다.
(자존자대라고 높이 칭송한다니. 형님도 참 재밌구나.)
그는 당장이라도 배꼽을 잡고 뒹굴고 싶었으나 무굉이 부르는 외침이 들려 웃음을 악으로 참아낼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호흡을 고르게 하여 웃음을 참아낸 그는 벌떡 일어서서 격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격전장 인물들의 시선은 금방 진양에게로 집중되었다. 별 생각없이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곧 그들
은 제각기 놀람에 찬 경호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양아!]
일순 기쁨으로 충만한 외침소리가 진양의 시선을 끌었다. 진양 역시 그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곤 크게 기
쁜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외침소리의 주인공은 단연 수녀였다. 지금까지 우울함으로 가득 차있던 그녀의 얼굴엔
다시 화색이 돌고 있다.
[령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기쁜 건 진양이 백 배는 더할 것이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하며 말한 후 즉각 무굉의 곁으로 달려갔다.
[형님. 형님의 무공은 과연 대단해요.]
[하하하. 그래, 이제야 내 말을 믿겠니?]
[그래요. 이젠 정말로 믿어요. 그런데..]
말을 잇던 진양이 문득 말꼬리를 흐렸다. 얼굴엔 그늘도 지고 있어 무굉은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에 진양은 대답하지 않고 그의 귀에다가 뭐라고 속삭였다. 꽤나 오랫동안 뭔가를 계속 속삭였다. 그리고 그가 귀
에서 입을 떼자 무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갑자기 그..]
[형님! 나중에 말해줄게요. 일단은 그렇게 해주세요.]
일순 진양이 호통치듯 소리쳐 그의 말을 끊었다. 눈빛이 반짝거리는 게 도무지 거절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 눈빛
을 읽고 그런 것인지 무굉은 입을 꼭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