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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흔적 3 (13/90)

                                         第 四 章. 흔적 3

무굉은 눈을 부릅뜨고 청성 도사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초리가 여간 매서운 게 아니다. 진양이 보았다면 재밌다고 

깔깔 웃어댔겠지만 도사들에게 있어서는 오금이 저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금녀를 데리고 갈 거야. 방해하진 않겠지?] 

그의 입에서 느릿느릿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름대로 살기를 충만케 한다 해본 듯  했지만 역시 익숙하지 않아 어

색하다. 그의 말에 도사들이 답하기도 전 금녀가 먼저 소리쳤다. 

[내가 널 따라갈 것 같으냐?] 

[넌 따라 와야해. 아우랑 약속했으니까.] 

[안 가!] 

금녀가 악을 쓰며 철장을 앞으로 들어세웠다. 그러자 무굉이 히히 웃는다. 

[안 따라오면 강제로 데리고 갈 거야.] 

[안 간다면 안 가는 줄 알아라!] 

[그럼 강제로 할 거라니깐.] 

그들은 서로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도사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그러니 도사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존자대. 금녀를 데려갈 수 없을 것이오.] 

급기야 참지 못한 화연철이 이를 지그시 물며 말했다. 그러자 무굉이 놀라 묻는다. 

[어째서 데려가지 못한 다는 거야?] 

[우리가 데려가야 하오. 그녀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서 이제 청성 문도의 손에 처단될 것이오.] 

화연철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  역시 무굉이 두렵긴 했지만 여기서 금녀를 

뺏긴다면 그야말로 모욕이라 생각했다. 그는 청성파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모욕을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도 이 할멈이 악행을 저지르는 건 알아. 하지만 아우랑 약속했으니 내가 데려갈 것이야.] 

무굉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생각이 맞서니 격전장엔  점점 살기의 기운이 감돌기 시

작했다. 그 순간 금녀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웃기는 소리들 말아라! 이 금녀를 우습게 보지 마라!] 

[금녀! 너는 반드시 청성 문도의 손에 의해 처단될 것이다.] 

[흥. 너희들이 정녕 도사가 맞느냐? 도를 닦는다는 도사들이 죽인다는 말을 함부로 하다니.] 

그녀의 빈정거림에 화연철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얼굴만 씰룩일 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번엔 또다시 무굉이 나선

다. 

[그러니까 넌 나를 따라가야해.] 

[이 무가 괴물아! 누가 미쳤다고 너를 따라가겠느냐?] 

금녀는 열을 내며 악을 질러댔다.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노리개도 아닌데 이들이 서로 데려간다 

어쩐다 하니 분노가 치솟을 만도 했다. 그러자 무굉은 대소를 터트리며 단숨에 손을 내질렀다. 

[이놈..] 

금녀는 그의 어거지에 치를 떨며 일단 그 한 수를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는 급히 발을 놀려 뒤로 물러서려 했다. 

이 괴물과는 떨어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허나 맘대로 되지 않았다. 경공을 펼치려 하기도 전에 먼저 무

굉의 좌수가 날아들고 말았다. 너무 빠르다. 기세는 사납고 격렬했다. 

[놓아라!] 

단숨에 어깨를 잡힌 금녀는 일갈하며 애통유루 수법으로 그의 팔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역시 그보다 먼저 무굉

의 우수가 날아들어 철장까지 움켜쥐고 만다. 금녀가 빠져나가려 몸을 꿈틀대 보았지만  그저 꿈틀댈 수만 있을 뿐 

도저히 빠지지가 않았다. 너무 일방적인 싸움이다. 금녀는 어이 없기도 하고 화도 나서 다만 악을 써댔다. 

[괴물아! 어서 놓으란 말이다.] 

[이렇게 보니까 네 얼굴은 정말 개똥을 짓밟은 거랑 비슷하구나.] 

난데없는 얘기가 무굉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웃음을 흘리며 재밌다는 듯 그녀를 놀려댔다. 일순간 그녀는 발

끈했다. 

[너.. 너..] 

화가 머리통 끝까지 치민다. 뭐라 말은 해야겠는데 분함이 너무 극해서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옛날엔 천하의 절

색이라고 불린 시절도 있는데 이 괴물이 자신보고 개똥 같다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즉각 있는 내공을 전부 끌어올

려 두 손을 단번에 휘저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내공을 끌어올려 젖먹던  힘까지 써도 도대체가 팔이 움직이지가 

않았다. 자신의 무력도 무력이요 내공도 제법인데 이 무굉이라는 괴물 앞에선 상대가 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청성 도사들은 등을 타고 흐르는 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 금녀의 말대로 괴물이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금녀를 저렇게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자는 천하에 자존자대 뿐일 것이다.] 

화연철은 진정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무공이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몸으로 느끼진 못했었기에 그만큼 

감탄은 더욱 컸는지도 몰랐다. 자신도 분명 금녀를 제압할 순 있지만 저렇게 장난치듯 하지는 못할 것이다. 갑자기 

그의 무공에 대한 경외감이 솟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감탄이든 경외든  어쨌거나 금녀를 데려가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자파의 명예가 걸린 일이 아닌가. 

[자존자대! 멈추시오.] 

그는 즉시 무굉에게 소리쳤다. 

[금녀는 우리가 데려가야 하오.] 

[안 돼. 내가 데려갈 거라니깐.] 

[정 그렇다면 맞설 수 밖엔 없겠군.] 

화연철이 뒤를 돌아보며 다시 외친다. 

[천하삼유진을 펼쳐라!] 

그에 도사들은 잠시 움찔했으나 곧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좌충우돌 하더니 금새 세 개의 천하삼유진

이 형성하는 것이다. 화연철이 다시 어떻게 손짓을 했다. 무슨  신호로 보이는데 그들 사이에 통하는 방법인 듯 하

다. 그 손짓에 도사들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무굉과 금녀를 포위하고 말았다.  하지만 무굉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함도 없었다. 

[하하. 천하삼유진으로는 나와 맞설 수 없을 걸.] 

[이번엔 좀 다를 거요.] 

화연철은 냉소하며 천하삼유진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것을 진두지휘(陣頭指揮)라 하던가. 천하삼유진은 삼각 모양의 

형태로 무굉과 금녀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화연철은 그 중 정면의 진 앞에 선 것이다. 

[각오나 하시오.] 

그는 얼음처럼 시리게 한마디 내뱉고는 먼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자 천하삼유진이 조금씩 움직였다. 정면

의 진은 앞으로 양옆의 진은 각기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모양은 무굉도 아직 경험하거나 본 

적이 없었다. 

[천하삼유진을 펼치는데 네가 왜 거기에 끼어든 거지?] 

[흥.] 

무굉이 떠들자 그는 냉소하며 일순간에 맹렬히 달려들었다. 나는 듯 아주 굉장한 속력으로 순식간에 무굉의 정면까

지 날아든 것이다. 그는 곧장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무굉에겐 어림없는 일. 무굉은  날아오는 검을 피해 도리어 그

의 어깨를 일 타(打)했다. 팍,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화연철이 제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 어느새 천하삼유진과의 거리가 매우 좁혀져 있었다.  아무래도 화연철이 덤벼드는 때에 조금씩 

움직인 듯 했다. 무굉이 눈으로 거리를 가늠해보니 두 발짝이면  코 앞이 될 정도로 가까웠다. 그때 화연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존자대를 쳐라!] 

그의 외침에 도사들은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 발짝 앞에서 둘러싸서는 정해진  수법으로 검을 내미는 그 공

격이란 실제로 무시무시했다. 전후좌우 측면에서까지 날아오는 검을 피하기는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역시  무

굉에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단숨이 금녀의 혈도를 찍어 그들 밖으로 휙 내다던지고는 왼손을 쳐들었다. 

[별 거 아니겠네!] 

그는 급격히 내공을 끌어올려 좌수를 확 저어버린다. 이는 광표장법 중 적해불퇴(敵邂不退)라는 초식의 수법이었다. 

광표장법이 강호에 위명을 떨치고 있는 만큼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사방에서 제각기 쳐들어오던 검들을 단숨에 

날려버렸던 것이다. 도사들은 내공에 떠밀려 검과 함께 몇 장 밖으로 꼴사납게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무굉은 대소를 터트렸다. 그야말로 여유만만이다. 그걸 지켜보는 화연철은 열기가 정수리까지 맞닿는  듯 

했다. 빠득 이를 갈며 소적포령(少滴包靈)을 펼쳐버렸다. 일순간에 그의 검이  껄껄 웃는 무굉의 목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굉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그는 역시나 여유만만한 것이다. 그러

다 일 촌에나 다다랐을 무렵, 아직도 웃음은 멈추지 않으면서 몸을 슬쩍 기울였다. 검이 그의 옆 목을  스치고 지나

간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듯 빠르게 오른손을 움직여 화연철의 팔과 허리에 연달아 3타를 가했다. 

<팍 팍 팍> 

지금 무슨 손뼉을 치고 앉았는지 살갗 후려치는 소리가 났다. 실제로 적에게 더욱 강한 타격을 주려면 이런 소리가 

나서는 별로 좋지 않다. 이 소리는 따귀나 때리고 종아리나 후려칠 때 나야지  이런 싸움에서 나서는 안 되는 것이

다. 무공을 겨루는 때엔 좀 더 웅장하고 둔탁한 음이 들리는 게 보통이 아닌가. 

그러나 화연철은 매우 아픈 듯 인상을 심하게 찌푸렸다. 맞은 부위가 고통스러운 게 분명했다. 그는 허둥지둥 물러

서 무굉을 노려보았다. 

[아니!] 

헌데 갑자기 무굉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크게 놀라  가지고는 사방을 열심히 둘러본다. 그러다 뭘 발견했는지 

재빠르게 몸을 날린다. 화연철이 그가 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제  사제 채문이 나타나 금녀를 데

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화연철은 무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무굉을 막아라!] 

그렇지만 그들이 움직이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무굉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  찰나의 순간에 벌써 채문의 뒤를 

바싹 따라잡은 것이었다. 화연철은 일단 그를 따라 내달렸다. 그런데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지금이다!] 

놀랍게도 채문이 도망치는 곳 옆으로 늘어서 있는 곳엔 도사들이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채문의 입에서 외침이 터지

기가 무섭게 그들은 돈표를 날려댔다. 무굉은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움직이며 그 암기를 모두 피해내버렸다. 역시 

대단한 자는 대단한 자다. 그가 돈표를 모두 피해내자 이번엔 도사들이 직접 뛰쳐나왔다. 그들은 먼저 무굉의 앞을 

가로 막으며 채문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했다. 

[비켜라, 이놈들아.] 

[자존자대! 더 들어온다면 이는 청성파에 맞..] 

[그놈들 참!] 

도사 하나가 뭐라고 떠드는데 무굉은 듣지도 않았다. 단숨에 돌파하려고 맹렬히 달려들었다. 이에 도사들이  소스라

치게 놀라 이를 악 물며 사력을 다해 천하삼유검진을 펼쳤다. 다시 한 바탕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무굉의 무공은 대단하여 이들 따위는 쉽게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천하삼유진은 쉽게 돌파할 수 있지가 않

았다. 워낙에 도사들의 숫자가 많아 금방 여섯 개나 되는 진을 펼친 것이다. 그것도 이 비좁은 길에서 줄줄이 진을 

펼치니 무굉의 전진속도는 자연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뒤에선 화연철 등이 도착하여 그의 등뒤를 포

위한다. 

[이런 제기랄칠 일이 있나. 비키지 못해?] 

그는 화가 나기도 하고 다급하기도 하여 악을 써댔다. 급기야  그토록 무시무시하다는 광표장법을 마구잡이로 시전

했다. 이리저리 좌수와 우수가 번쩍이고 격렬한 폭음이 청성산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제압 당한 금녀를 들고 

달려가는 채문은 그런 소리에 살이 떨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무굉을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아까 화연철과 도사들

과 격투를 벌이는 건 조금 보았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무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금녀가 옆에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 일단 그녀를 데리고 제 대사형에게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 아무리 자존자대가 잘났다 하더

라도 용정학과 청성파에 있는 모든 도사를 다 상대할 순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데려온 자신의 제자들도 꽤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금녀를 데리고 도망친다면 반드시 추격해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사형 화연철도 당한 듯 한데 자신이 어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 텐가. 그는 예전에 읽었던 고서에 나온 전

술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단 제 제자들을 옆에 매복시키고 몇몇 사항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혼란한 틈을 타 금녀에

게 다가가니 눈만 부릅떴을 뿐 아무래도 혈도를 짚인 듯  했다. 좋은 기회다. 일단 그녀를 쳐들어 재빠르게 내달렸

다. 그녀의 부릅뜬 눈엔 독기가 보인다. 그 모습에 채문은 등골이 서늘했지만 어차피  혈도를 제압 당한 자다.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달리다 보니 과연 뒤 무굉이 뭐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저 비좁은 길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 뒤를 한번 

슬쩍 보니 무굉이 무섭게 쫓아오고 있다.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보였다. 그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어 

사력을 다해 달렸다. 그래서인지 다행히도 그 비좁은 길 안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는 청성 도사들

이 맡을 것이다. 모두 위험하겠지만 어떻게든 용정학을 데려와야만 했다. 저 무굉을 막을 사람은 용정학 뿐이라 생

각했다. 

본당까지 달리면서 뒤에서 터지는 굉음이 다시 한번 그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강호를 종횡하며 무공이 강한 자들

을 여럿 보았지만 이렇게 두려움이 치솟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더욱 빠르게 달렸다. 잠시 달리니 본당 정문이 보였다. 앞에는  이미 용정학과 도사들 여럿이 나와있었다. 

무시무시한 굉음에 다들 놀란 듯 보였다. 

그리고 또 채문의 모습에 놀란 듯 했다. 용정학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고 사정을 물었다. 

[자존자대 무굉이 나타났습니다!] 

채문은 그 한마디로 시작하여 지금 자존자대와의 일을 설명했다. 용정학과  도사들은 이미 새파래진 안색으로 묵묵

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말이 다 끝나자 용정학이 중얼거렸다. 

[자존자대가 왜 금녀를 데려가겠다는 것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사형은 알지도 모르....] 

그 때였다. 

[거기 있구나 이 쳐죽일 놈아! 금녀를 내놔!] 

머리통을 울리게 하는 외침이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나  채문은 사색이 되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정면을 보니 그곳엔 천하의 괴인 무굉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금녀를 내놔. 안 내놓으면 청성파를 모조리 불태워버리겠다.] 

[안녕하셨소. 자존자대.] 

용정학은 일단 나서서 가볍게 포권하며 예를 표했다. 이 자는 함부로 대했다간 평생 괴로운 자다. 무엇보다 그의 기

분을 좋게 만들어 상황을 좋게 이끄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무굉은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의 인사를 다만 힐끗 보았을 뿐이고 다시 채문만 닦달했다. 

[자존자대! 감히 청성파 앞에서 무례하겠다는 것이냐?] 

뒤에서 지켜보던 한 도사가 소리쳤다. 용정학에 대해 존경심이 대단한 도사였는데 그의 예가 무시당하자 화가 치솟

은 것이었다. 그러나 무굉은 그런 그의 말마저 무시했다. 이젠 아예 그들은 눈앞에도 없다는 듯 터벅터벅 걸어가 채

문에게 다가섰다. 채문이 크게 놀라 부르짖는다. 

[청성파와 맞선다면 좋지 못할 것이다.] 

[청성파 따윈 두렵지 않다. 아무튼 금녀나 내놔!] 

지켜보던 용정학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자존자대. 청성파에선 함부로 소란을 피워선 안되오.] 

[시끄러워. 너희들은 빠져있어!] 

[금녀를 왜 데려가려는지 알려준다면 고려해보겠소.] 

용정학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과연 일파의 장문인다웠다. 이  괴물에게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모욕은 받을 

수 없는 게 아니겠는가. 그의 말에 무굉은 솔깃한 듯 금방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이지? 거짓말은 아니겠지.] 

[청성 문도는 약속을 지키오.] 

그가 엄숙하게 말하자 무굉은 주둥이를 벌려 웃으며 곧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저 금녀는 내가 데려가야해. 왜냐하면 그게 사실  내 아우랑 약속을 했거든. 내 아우에게 약속했는데 

이 자존자대 무대협이 어떻게 그 약속을 안 지키겠어? 어떤 일이 있어도 금녀는 내가 데려가야해.] 

그 말에 용정학을 비롯한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굉에게 아우가 있다는 얘긴 금시초문이다. 

[아우가 있었소?] 

[그럼! 얼마 전에 의제를 만들었어. 우린 서로 마음이 통하지. 하하.] 

무굉은 제 아우를 생각하자 다시 기뻐 죽겠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젠 금녀를 데려가

야 했다. 

[자. 약속을 지켜. 어서 금녀를 내놔!] 

[그럼 약속대로 고려를 해보겠소. 그러나 준다고 장담하진 못하오.] 

[뭐야? 그, 그건..] 

그는 그제야 깨달아지는 게 있어 얼굴이 시뻘게졌다. 용정학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그러는 사이 용정학은 도사들과 쑥덕대고 있었다. 금녀는 오래 전부터 자신들과 원한을 가진 여인이다. 그동안 접전

이 벌어진 것도 수백 차례는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잡아서 교화(敎化)를 시키려고 했었다. 물론 잡지 못

해서 쓸데없는 시간과 인재만 낭비하는 처지기도 했다. 

화연철이나 채문 등 다른 도사들은 그녀를 처단하자고 했다. 허나 용정학은 허락하지 않았다. 반드시 잡아서 교화를 

시키라고 명령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금녀를 잡았는데 무굉이 데려간다니 실상 승낙할 수 없는 이야기

였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반드시 난동을 부릴 것이다. 용정학은 청성파의 무공에 자부

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론 이길 수 없겠지만 모두가 힘을 합한다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한 도사를 시켜 경종을 울리게 했다. 

무굉은 그 종을 들으며 입을 헤 벌렸다. 갑자기 종을 울리니까 뭔가 이상했지만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그때 용정학

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금녀를 넘겨주는 건 어려울 것 같소. 그녀는 우리와 원한이  깊고 강호에도 많은 해를 끼치기 때문에 우

리가 교화시킬 것이오.]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게 어디 있냐니. 그녀는 내 사부님을 죽였소. 반드시 우리가 처리할 것이오.] 

용정학은 사부를 생각하니 갑자기 격정이 치솟는지 말에 결의(決意)가 흘러 넘쳤다. 그 말에 무굉은 방방 날뛴다. 

[옳아. 이 꼬맹이들이 날 무시한다 그거지. 자존자대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무굉은 드디어 폭발했다. 자존자대라는 별호 하나만 가지고도 수많은 강호인들을 굴복시켰는데 이 청성파 도사들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 아니, 굴복은커녕 자신을 데리고 놀고 있지 않는가.  자신에게 이렇게 무례하는 자들은 거

의 본 적이 없었기에 치솟는 분노는 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갈하며 곧바로 청성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했다. 실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누구도 그를 막을 

순 없을 것 같았다. 그의 큼지막한 장심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표장법의 위력이란 청성 도사들이 막기엔 역부족이었

던 것이다. 도사들은 제각기 절학을 펼쳐 한 마음으로 무굉에게 맞섰다. 채문도 용정학도 나중에야 돌아온 화연철도 

합심하여 무굉에게 맞섰다. 

그러나 너무 격차가 났다. 무굉은 단번에 붙는다면 불리할 것을 직감하고 각개격파의 수법으로 싸웠던 것이다. 이쪽

에선 화연철을 한 대 쥐어박고 저쪽에선 채문의 다리를 걷어찼다. 왔다갔다 어지럽게 발을 놀리니 도사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말았다. 그러자 드디어 용정학이 칠십이파검을 시전하기에 이르렀다. 

청성파 최고의 검법이라는 칠십이파검은 청성 무공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유유함과 정확함을 가지고 빠르게 전

진하여 일격에 적을 치는 수법. 거기에 이름처럼 일흔 두 가지의 초식을 가지고 적의 공격을 파훼하는 무서운 검법

인 것이었다. 일단 이 검법을 상대하게 되면 대개의 초식이 무너지게 되어있어서  상대는 두려움에 감히 공격을 하

지 못했다. 

용정학이 칠십이파검의 기수식을 취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소리친다. 

[천하삼유검진을 펼쳐라. 그 진으로 사방을 포위하고 더 본당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어라!] 

[그러니까 금녀만 내놔!] 

채문은 이미 본당으로 도망쳤다. 제압 당한 금녀를 데리고 본당 안으로 들어간지 오래다. 그것 때문에 무굉은 계속 

본당으로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본당. 외인은 허락없이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자존자대. 칠십이파검에 대해 들어봤소?] 

[아하! 칠십이파검. 들어봤지.] 

무굉이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칠십이파검의 명성은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모를 리가 없다. 

[이는 우리 청성파 최고의 절기라오. 만일 그대가 이 검법을 무너트린다면 금녀를 내놓겠소.] 

[뭐라고! 정말이지?] 

[그렇소. 단, 당신은 공격만 하고 나는 방어만 하는 거요. 그래서 당신이 이 칠십이파검의 검진을 10초식 안에 깨트

린다면 금녀를 넘기겠소.] 

용정학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도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멀뚱멀뚱 서로만 쳐다보

았다. 소문으로 듣고 지금도 봤듯이 무굉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디서 배운 무공인지는 몰라도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그걸 몸으로 분명 느꼈을 용정학이 갑자기 이런 이상한 조건으로 대결을 하자니, 도사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사부님!] 

사방에서 그를 말리는 음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용정학은 결심했는지 요지부동이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

을 들어 흔들며 무굉을 향해 다시 말했다. 

[해보겠소?] 

[당연하지! 반드시 약속은 지켜야해!] 

[만일 깨트리지 못한다면 포기하는 거요.] 

[그럴 리는 없을 거야!] 

무굉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편다. 그 모습에 용정학도 미소 지으며 수식을 취하고 있었다. 

용정학은 고요히 무굉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고  있다는 게 맞았다. 명광(明光)을 발하는 눈이 무굉의 

반짝이는 눈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건 무굉의 공격을  느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무굉의 움직임은 아까 봐서 

알고 있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를.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보고는 절대로 반응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대처법으로 생각해낸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눈빛을 읽고 몸으로 기도를 느끼는 일, 그것이면 반응할 수 있

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응만 한다면 공격을 막아낼 자신도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뭔가를 느꼈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느껴지던 기도가 갑자기 흉폭하고 거센 기도로 바뀐다. 무굉의 눈

빛도 번쩍이며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용정학은 그때 무굉이 공격해 온

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즉각 칠십이파검의 정수를 뽑아냈다. 이 수만이 10초

를 버티는 유일한 길이다. 

[앗!] 

도사들이 제대로 보지도 못한 사이 어느새 무굉의 우장은 용정학의 안면으로 날아들어  있었다. 그러나 좀 전의 경

호성은 도사들이 발한 게 아니었다. 그건 도리어 무굉이 발한 것이었다. 그는 놀랐다. 자신의 팔꿈치 아래에서 뭔가

가 다가오는 걸 느끼고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일단은 우장을 도로 회수했다. 이대로 내밀다간 무슨 피해를 입을지 모

르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니. 이 용가 놈. 많이 성장했구나.] 

무굉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방금 밑에서 다가오고 있던 뭔가는 바로 검이었던 것이다. 바로 용정학이 펼친 칠십이

파검 중 상종파(上終破)라는 초식이었다. 

[회수 했으니 1초는 끝이 났소. 계속 이어서 해도 되오.] 

[흥. 건방 떨지 말아라. 자존자대의 힘을 보여주겠다.] 

그는 다시 무섭게 달려들었다. 이제부턴 봐주지 않을 심산이었다. 재빠르게 달려든 그는 두 손을 양옆으로 원을 그

리듯 한 바퀴 돌렸다. 용정학이 느껴지는 게 있어 급히 중난파(中亂破)를 펼치는데 무굉의 우장이 그의 왼쪽 어깨로 

달려들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래도 일 장을 얻어맞을 것 같다. 그걸 알고 있는 용정학은 별 수 없이 변초했다. 가슴 

앞으로 내리찍던 검의 방향을 바꿔 무굉의 모가지를 찌른다. 무굉은 놀라 황망히 몸을 젖혔다. 

[빌어먹을!] 

그는 분통이 터졌다. 저놈의 검이 자꾸 자신의 길을 막아선다. 약이 올라 미칠 것만  같다. 생각 같아선 그냥 확 휘

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손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용정학의 검은 척 보기에도 제법 명검으로 보이지 않는

가. 더구나 그의 내공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니 손이 철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은 검상을 피할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수차례 공격을 퍼부었다. 그의 천령개를 칠 듯 하면서  다리를 걸어보기도 했고 광표장법을 쓰다

가 난데없이 백타권(百打拳)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칠십이파검은 과연 대단했다. 도대체가 공격할 길이 없다. 공

로(攻路)가 없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초식이 모두 정확히 공로를 막고 있었다. 

그래도 금녀는 데려가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 때였다. 

[10초식 모두를 허비했소. 이제 끝이오!] 

무굉은 아차 싶었다. 어느새 약속한 10초를 다 쓰고 만 것이다. 벌써 이렇게 끝이 나다니 어이 없기도 하고 화도 났

다. 용정학이 미워 죽겠다. 

[이 말코야! 어서 금녀를 내놔.] 

[약속을 지키시오.] 

용정학이 엄숙하게 말하자 무굉은 할말을 잃었다. 분명 그와도 약속했다. 깨트리지 못하면 그만 포기하기로. 그러나 

진양과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 

[하, 하지만.. 그..] 

[천하의 자존자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단 말이오?] 

[너는.. 너..] 

그는 답답해서 발만 동동 굴렀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요, 진퇴유곡(進退維谷)이다. 자존심 하나만으로 살아온 일생

인데 이미 한 약속을 어길 수도 없었다. 양쪽 중 하나의 약속을 택하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진양과의 약속을 택할 

테지만, 용정학과의 약속도 분명 약속이다. 이를 어긴다면 자존자대라는 칭호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갑자

기 초조감이 엄습했다. 둘 다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머리를 쥐어 싸맸다. 

[그럼 우리는 자존자대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고 돌아가겠소. 이만.] 

용정학이 포권하곤 몸을 돌렸다. 그걸 보는 무굉은 속이 터졌다. 결국엔 화를 참지 못하고 죽어라 욕설만 퍼부었다. 

안 그래도 큰 목청으로 악을 쓰니 욕설이 청성산을 감돌다가 다시 그를 희롱하듯 메아리로 들려오고 있었다. 

[어떤 방법이 없을까. 금녀를 안 데리고 가면 난 자존자대가 아니야!] 

이제는 또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두 약속을 전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둘 다 지킬 수 있는 방법. 둘 다 지킬 수 있는 방법!] 

그의 눈에 점점 핏발이 서고 있었다. 얼굴도 붉게 달아오르고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수십 년간 제 잘난 맛에 살

아오며 얻었던 명성이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필사적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옳을 것이다. 무굉은 보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뒹굴며 대책을 강구했다. 먹지도 

자지도 싸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런 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로지 두 가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비책. 그것

이 중요했다. 실상 시장기도 느끼지 못했고 졸음도 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름을 밤낮으로 고민하며 여러가지 방법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다. 가령 청성산에  불을 지르고 그 틈에 금녀를 

빼내간다던가. 또는 복면을 쓰고 잠입해서 청성파를 모조리 몰살 시킨 후에 데리고 간다던가. 하지만 그런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좋아하다가도 금녀를 데려가는 걸 포기하겠다는 약속과는 맞지 않는 방법임을 깨닫고 다시 침울해

지기 일쑤였다. 그 후엔 또다른 방법들을 강구하고 또 실망하고, 그런 절차를 연달아 밟았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점점 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중엔 아예 금녀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냥 청성산을 통째로 불질러 버리는 일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진양의 약속과는 맞지 않는다. 진양에

겐 반드시 금녀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다. 

헌데 보름 째가 되던 날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기막힌 작전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는 그 방법을 생각해내곤 덩

실덩실 춤추며 좋아했다. 애당초 체면을 생각하며 살아오지도 않았지만 이번엔 그보다 더 심했다. 한참동안 미친 듯 

웃기도 하다가 피식피식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천하를 제패한 영웅도 이렇게 기뻐하진 않을 것처럼 날뛰었다. 남

이 본다면 미친 놈이라고 내뱉을 것이었다. 

그는 일단 방법을 강구해냈으니 더 기다릴 것이 없었다. 이젠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흐흐. 이놈들아. 설마 이런 방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하겠지.] 

잠시 음흉하게 웃던 그는 날이 저물었음을 확인하고 은밀하게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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