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五 章. 금녀의 죽음 2 (15/90)

                                      第 五 章. 금녀의 죽음 2

헌데 일순 오른쪽 팔꿈치를 뭔가가 툭 하고 건드렸다. 무심코 보니 술을 담아놓은 호리병이었다. 갑자기 술이 먹고 

싶어진다. 빨리 금녀를 숨겨놓고 얼마 남지않은 그 술을 마시고 싶었다. 그때 뭐가 보였다. 호리병 몸뚱아리를 감싸

고 있는 망. 새끼를 비비 꼬아 그물처럼 얽어 만든 망태기였다. 그것을 본 무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는 

즉시 손으로 새끼줄을 힘차게 문질렀다. 내공이 주입되자 마치 재가 바람에 휘날리듯 으스러진다. 곧 호리병은 허리

춤에 꽂아두고 그 줄을 머리에 눌러썼다. 처음엔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몇 군데 더 으스러트리자 펑퍼짐한 게 아주 

잘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무굉의 모습은 아주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았다. 등으로는 추악하며 몸집이 작은  금녀를 업고 머리엔 

잎과 망태기를 쓴 것이다. 영락없는 미친 놈 꼴이다. 마침 주변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몇 장 밖인 듯 

했다. 줄비차게 늘어선 나무만 없다면 서로의 모습이 충분히 보일 수 있을 거리였다. 

무굉은 그 때부터 하산하는 길을 따라 사력을 다해 달렸다. 제가 무슨 빛광이라도 되는 양 아주 쾌속했다. 이쪽에서 

번쩍하는 순간 어느새 저편까지 가있을 정도로 빨랐다. 당연 도사들은 웬 미친 자를 봄과 동시에 그가 지나쳐 간다

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 잡아!] 

한 도사가 휙 고개를 돌리며 부르짖었다. 뒤에서 보니 누군가 등에 업혀있는 것도 보였다. 도사들은 방금 지나간 자

가 필시 좀 전에 울린 경종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얼굴을 기억해내려 했지만 떠오르는 건 푸르죽죽한 잎 

뿐이다. 그들은 손을 모아 도사들을 모으며 그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벌어진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

을 듯 했다. 경공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삽시간에 무굉은 하산했다. 청성산 입구에 다다랐지만 도사들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아마 울린 경종 때문에 모두

가 본당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이 난 건 아니었다. 들키지 않는 것도 그거지만 두 약속도 지켜야 했다. 

자신은 그녀를 구한 게 아니다. 그녀가 이렇게 빠져나온 셈이  됐지만 누가 구한 건지 모른다. 자신은 다만 그녀의 

쇠사슬을 끊어줬고 약만 먹였으며 업고 내달리기만 했다. 이제  그녀를 버리기만 하면 만사가 끝인 것이다. 본래는 

그녀를 빼내서 자신이 구해주지 않았다는 것만  각인시키려했다. 그 후에 약속 장소로 가라는  부탁을 하면 스스로 

알아서 갈 것이다. 그럼 그녀가 빠져나간 것이지 자신은 아무런 짓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랬는데 

조금 일이 꼬여 이렇게 됐다. 하지만 별로 상관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은 그녀를 구하지 않았으니까. 

실상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본래 계획대로 했었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으론 분명히 구한 게 확실했다. 그의 

생각은 억지일 뿐이며 자위(自慰)일 뿐이었다. 남들이  그의 이런 생각을 안다면 미친 놈이라며  비웃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는 확신을 가지며 걱정하지 않았다. 이로써 두 가지 약속을 다 지킨 셈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그 후로 조금 느긋하게 걸었다. 나른함이 느껴진다. 졸립지는 않은데 일을 성사시켰다 생각하니 힘이 쪽 빠지

는 것 같았다. 더구나 서두르지 않아도 됐다. 보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니 천천히 가서 그 야산 근처에 버려두면 될 

것이다. 또 산조인을 그만큼 먹였으니 한참동안은 잘 것이기에 금녀가 깰 걱정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 도사들

에게서 비롯됐다. 

한 열흘이나 걸었을까.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한적한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돈이 없어 객잔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냥 들어가서 쉬자니 자존자대의 이름이 울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마침  길가에 큰 바위가 보였는데 사방도 

한적하니 쉬기엔 매우 적합했다. 그는 금녀를 바위에 눕히고 자신은 옆에서 술병을 꺼내들었다. 여전히  찰랑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한두 모금이면 없어질 양이다. 아까워 죽겠다. 

그래도 목이 탔다. 시장기도 느꼈지만 일단 금녀부터 데려다 놓고 먹거리를 구하려고 했다. 지금은 그냥 목이나 축

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막 마개를 딸 때였다. 갑자기 웬 기척이 들렸다. 하나, 둘, 셋, 

넷 ……. 사람임도 확실하고 그 수가 열 명이 넘는 것도 확실했다. 

[거참. 한적하나 했더니 그새 누가 떼로 몰려드는군.] 

그가 투덜거렸다. 정신을 집중해보니 들리는 기척의 간격이 빠르다. 다급함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뛰고 있네. 어디 초상이라도 났나.] 

그 때였다. 

[저기 있다!] 

무굉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화연철이 아닌가. 뒤로는 백삼의 청성도사 십여 명이 보였다. 일순 그는 깜빡한 게 있었

다는 듯 앞이마를 손바닥으로 쳤다. 도사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워낙 잡생각이 많다보니 이

런 결과가 생기고 만 것이다. 도사들이 날렵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앞장서 달려오는 화연철의 눈이 푸르스름한 게 

분기충천한 듯 싶었다. 그런데 방금 제 이마를 친 무굉은 뭔가 까칠까칠한 느낌을 받았다. 부지중에 얼굴을 만져보

니 망태기와 잎이 만져진다. 생각해보니 아직도 잎을 떼지  않았다. 답답함도 못 느꼈는지 여전히 얼굴엔 망태기가 

씌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단 금녀를 업었다. 아까운 술은 나중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호리병을 다시 허

리춤에 꽂았다. 

[어딜 도망치려고!] 

화연철이 악을 썼다. 저 별 해괴한 행색을 한 자가 경공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도망치면 잡을 수 없을 것만 같

았다. 하지만 무굉은 그의 말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잎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는 겨우 드러난 눈만 번뜩이며 빨리 발을 놀린다. 

과연 그의 움직임은 대단히 빨랐다. 하산할 때만큼 빠르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여차하면 정체가 까발려진다는 생각

을 하니 다급한 마음이 들어 더 서둘렀다. 그러니 그의 신법은 신기하리만큼 빠를 수 밖에 없었다. 화연철 등이 그

런 움직임을 따라잡을 리가 만무했다. 단숨에 거리가 벌어진다. 화연철이 화를 못 참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지만 

잠시 후엔 그 외침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헌데 알고보니 바로 앞이 그 야산이었다. 언제 이렇게 다다랐나. 무굉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얼마나 빨리 달렸

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어찌 되었건 약속의 장소에 도달해버렸다. 날짜는 아직 많이 남았

을 것이다. 갑자기 여유로운 생각이 든다. 

[어디 있느냐!] 

그러나 그 여유로움은 단숨에 파괴되었다.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화연철의 외침이 그를 일깨운 것이었다.  그는 

다시 급해졌다. 빨리 금녀를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 주변의 지리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를 버릴 만한 곳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가  마구 몸

을 날려 도착한 곳은 웬 짐승이 사는 곳 같은 굴이었다. 이곳이면 금녀의 몸뚱아리가 들어가리라. 무굉은 그렇게 생

각하며 빨리 금녀를 그곳에 쑤셔넣었다. 잘 안 들어간다. 할 수 없이 그녀의 머리통을 먼저 넣었다. 그 다음에 몸을 

밀어넣고 마지막엔 궁둥이를 걷어찼다. 그녀가 굴 안쪽에 머리를 박았는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됐다. 됐어. 이제 겨우 끝이로구나.]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시 뒤에서 도사들의 외침소리가 들린다. 

[하여튼 지긋지긋한 놈들이야. 금녀를 찾지는 못하겠지. 저들이 뭐 기어다니지도 않을 테니까.] 

그는 안도감이 들어 히히 웃었다. 이젠 잠시 이곳에서 떨어져 쉬는 일만 남았다. 즉시 몸을 날려 그 장소에서 사라

졌다. 그 후에야 도사들이 도착했지만 과연 그 굴을 뒤져보지 않았다. 언뜻 보기야 했지만 설마 저런 작은 굴에 뭐

가 있으랴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은  한참동안 주변을 뒤져보았으나 그의 행방을 찾지  못해 결국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일 뒤, 진양과 수녀가 이곳에 도착했던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우연의 연속

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무굉이 보내온 사실을 진양과 수녀, 또한 금녀가 알 리 없었다. 금녀가 아는 것은 그저 무굉에게  의해 잠재

워지기 전과 깬 후 뿐만 알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 진양은 큰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금녀가 분명 제 입으로 영관전에서 시끄럽게 굴었다고 했다. 배고픔에서  오는 광기야 나도 잘 알지만.. 어쨌건 형

님이 볶은 산조인을 그녀에게 처먹인 건 시끄럽게 굴지 못하게 하려했던 것이  분명해. 그럼 형님이 금녀를 굴속에 

박아뒀나. 허나 그렇다면 형님은 어디 있지? 왜 금녀만 두고 사라진 거야.) 

진양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더 생각하길 포기했다. 정말 복잡하고 어지럽다. 

고요한 곳, 매우 기이한 정적만이 감도는 이곳. 거무튀튀한 돌벽이 주위를 둥글게 감싸고 지극한 조용함이  귀를 멍

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청성산의 구석진 곳, 은밀한 곳에 숨겨진 동굴. 바로 금수쌍녀의 휴식처인 동굴이

었다. 헌데 이미 한번 들통이 나서 크게 효용을 잃은 이 동굴에 세 명이 보였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는  금녀요 하

나는 수녀, 남은 하나는 진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문득 조용히 있던 진양이 정적을 참지 못하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분명 위험해요.] 

[개수작 부리지 말아라. 도리어 안전하다니깐.] 

금녀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이 동굴에 온 건 그녀의 뜻이었던 것이다. 진양과 수녀가 크게 반대했지만 그녀는 고집

을 부렸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그녀였다. 

[아 글쎄. 한번 걸렸으니 가장 위험한 곳이 명확히 가장 위험한 곳으로 되어버렸다니까요.] 

[흥. 닥치지 못해? 령아가 애걸해서 건드리지 않고 데려왔더니 이놈이 기어오르는구나.] 

[내 참.. 더러워서.] 

진양이 한숨을 쉬며 쭝얼거린다. 그에 금녀가 매섭게 그를 쏘아보지만 탓하지는 않았다. 

일은 우습게 터지기 마련이다. 예측했든 안 했든 난데없이 터지는 게 큰일이고  어처구니가 없이 당하는 게 큰일이

다. 그런 것처럼 이 동굴에도 어찌보면 우스울 뿐인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실상 그건 금녀의 억지가 낳은 일이나 다

름없었다. 바로 수녀의 행방불명이었다. 어느 날 잠시 바깥 공기나 쐬겠다 나간 그녀가 이틀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

고 있었다. 

더 기다리지 못한 금녀와 진양은 단숨에 한  마음이 되어 그녀를 찾아나섰다. 진양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며 

나서는 내내 쫑알거렸다. 하지만 그 또한 금녀처럼 초조한 마음만이 온 머리통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지금 수녀가 

청성 도사들에게 잡힌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대단하군! 나도 경공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이리도 빠르다니.) 

한편 그러는 와중에도 진양은 금녀의 경공에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봐서  알고 있었지만 대체 힘이 얼마

나 되는지 손에 든 철장은 무슨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또 자신보다도 훨씬 빠르지 않는가. 

그녀가 진양의 속도에 맞춰주지 않았다면 이미 한참은 벌어졌을 것이다. 

그들은 입을 꿰매기라도 한 듯 입 한번 열지 않고 조용히 청성산을 뒤지고 있었다. 부엉이가 음산하게 울어대는 가

운데 한참을 뒤져도 왕령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진양과 금녀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

져만 갔다. 헌데 진양이 문득 고개를 돌리다 일순 흠칫하고 말았다. 금녀의 안색이 참으로 흉측했다. 초조함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안색은 벌겋게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행색 자체가 기괴하고 얼굴은  추악하기 짝이 없는 

그녀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게 하는데 그마저 그러니 그 얼마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인가. 진양은 그 

모습에 정말 괴물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불만 있는 자를 잡아다 그녀의 얼굴을 들이밀면 혀를 깨물고 자결할 것

이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멈춰 서며 낮게 말했다. 

[멈춰라. 조금 쉬는 게 좋겠구나.] 

진양은 그녀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옆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금녀의 안색이 돌변하면서 진양에게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무섭게 번쩍이는  눈이 진양을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눈짓의 뜻은 잘 알고있다. 누군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그는 천천히 숨을 죽였다. 금녀가 

눈짓을 하면서도 굳이 일어서서 피하지 않는 걸 보면 그  누군가가 이리로 오고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그들 옆의 좁은 길에서 가볍게 땅 밟는  소리와 함께 두러대는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장문 사백께는 알리면 안돼. 만일 이런 사실을 아시면 파문은 고사하고 우리 목을 베고 말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쨌건 금수쌍녀는 장문 사백의 원수잖아. 별 일이야 있겠어.] 

그들 대화내용의 극히 일부만 듣고도 진양과 금녀는 모든 사실을 유추(類推)해낼 수 있었다. 그 대화를 하는 이들은 

두 명의 젊은 도사였는데 아무래도 청성 장문 몰래 행한 일인 듯 했다. 진양은 좀 더 숨어있는 채로 그들의 대화를 

더 엿듣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금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헌데 그 자리에 금녀가 없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녀

가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는가. 그리고 보니 언뜻 바람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일순 무언가를 감지한 진양이 황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치 그에 대답하듯 한 도사의 비명소리가 그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으아..] 

그 비명소리는 실로 듣는 사람마다 오금이  저리게 하기엔 너무도 충분했다.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다 중간에 숨이 

막히듯 끊긴다. 늘어지는 비명소리였다. 안색이 다 변한 진양이 자세히 보니 한 도사는 이미 목젖이 파헤쳐지듯 찢

어져 있었고, 다른 한 도사는 두려움에 온몸만 떨고 있었다. 반면 금녀는 오히려 싸늘한 미소까지 지은 게  참 금녀

라는 칭호가 정말 잘 어울린다 할 수 있었다. 

[자, 잠깐!] 

진양이 허둥지둥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그에 금녀는 여전히 냉소를 머금은 채로 싸늘하게 물었다. 

[뭐냐?] 

[뭐긴 뭐란 말이에요. 이들을 다 죽이면 대체 령아는 어디서 찾아내려 그러는 거죠?] 

[흥. 내가 그리 멍청한 줄 알았냐? 이놈마저 죽일 생각은 없다. 내 말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녀는 온몸에서 냉기인지 살기인지 모를 기운을 한기를 풍겨대며 대답했다. 그에 진양은 깨달아지는 게 눈을 휘둥

그래 떴다. 부지중에 손뼉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그들의 대화를 좀 더 엿듣고 그 후 일단  제압하여 왕령

이 있는 곳을 말하게 하고 풀어주려 했었다. 헌데 금녀는 차라리 뛰어들어 한  명을 죽여버리고 다른 한 명만 살려

줘서 공포감에 입을 열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악독함에 새삼 치를 떨었다. 

살아남은 도사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사, 살려주시오. 나는.. 수녀가 잡혀 있는 곳을 알고 있소!] 

[거짓일 때는 살점을 하나하나 뜯어다 개에게 던져주겠다.] 

그녀는 눈을 시퍼렇게 뜨며 악독하기 짝이 없게 말했다. 그러자 그 도사는 아예 이에서까지 딱딱 소리를 냈다. 허둥

지둥 고개를 끄덕이는 꼴이 정말 가관일 뿐이었다. 

도사의 안내 아닌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청성산 뒷자락에 위치한 작은 동굴이었다. 이런 동굴이 있었나, 하며 금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처음 보는 동굴이다. 하기야 모를 수도 있다. 이곳은 청성파 본당에 가까

워 함부로 가까이 하지 않는 곳이니까. 

동굴에 다다르자 금녀는 철장을 힘줄 튀어나오게 쥐었다. 왠지  모를 도사의 냄새를 느꼈다. 도사는 동굴 앞에까지 

슬금슬금 다가서더니 곧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이제 다 왔소. 그럼 난 이마..] 

하지만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눈 깜짝할 새에 금녀의 철장이 그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 그는 코고 눈이고 입

이고 다 박살이 나버린 채 수장 밖으로 퉁겨졌다. 그나마  머리통이 통째로 안 날아간 게 천만다행이다. 그 모습에 

진양은 다시 몸을 떨었다. 꼭 저렇게 죽여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제압은 하겠지만 저

렇게 죽이는 건 도리어 제 자신이 무서워서 못죽일 것이다. 정말 악랄함만으로 따진다면 천하제일의 칭호도 아깝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금녀가 입을 연다. 

[저 안에는 필시 네댓 명의 도사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너 따윈 뒤로 물러서는 게 안전할 거다.] 

[따위라고.] 

진양은 일순 화가 치밀었다. 방금 그녀의 말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지만, 말투는 전혀 위하는  게 아니

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고로 비꼬는 말투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그를 위해주겠는가. 사람 놀려먹는 수단도 참 

가지가지라고 진양은 생각했다. 열이 뻗힌다. 생각해보니 자신을  비꼬아서 먼저 들어가게 하려는 수작임이 분명했

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따지고 말자니 그녀가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는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려 안의 동정을 살폈다. 딱히 들리는 소리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있을 것이다. 숨소리

가 들리는 건 아니어도 왕령이 잡혀있다니 반드시  지키는 자가 있을 것이 뻔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겨 제 

키만한 동굴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 안은 환했다. 동굴 벽에 뭐가 처박혀 있는지 온 벽면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가끔 볼록 튀어나온 돌맹이

가 보였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빛 같다. 야광주(夜光珠)라도 되나보다. 크기도 꽤 큰 듯 했다. 금수쌍녀가 머무는 동

굴보다 배는 더 커 보였다. 허나 그는 그런 것까지 세세히 보는 건 그만두고 앞을 자세히 보았다. 벽면에서 쏟아지

는 훤한 빛 사이로 웬 여인이 한 명  보이고 있었다. 맨 구석이었다. 진양은 그녀가 수녀라는  걸 한번에 눈치챘다. 

두어 걸음 다가서보니 과연 두 눈만 부릅뜨고 있는 수녀였다. 

그녀는 지금 벽에 기대고 있었다. 헌데 분명 진양을 봤음에도 눈만 글썽거릴 뿐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양은 그녀

와 여러 번 눈이 마주쳐도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혈도를 짚인 것이다. 하기야 청성 도사

들이 수녀를 저렇게 무방비로 잡아둘 리는 없다. 다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았다. 좌우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는데 아

무도 보이지 않는다. 

[령아. 구해줄게!] 

그제야 진양은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눈망울이 더욱 애처롭게 글썽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걸 바라보며 단

숨에 막 세 걸음쯤 달려들었을 때였다. 

[감히 어디를 들어오느냐!] 

갑자기 사방에서 이얍, 하는 기합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곧 진양의 몸통으로 세 개의 검이 날아들었다.  진양은 아

차 싶어 일단 사력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어린 아이라 몸이 작아서 그런지 큰 상처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가벼운 검상까지 피할 수는 없다. 허벅지, 허리와 등에 옷이 찢겨지며 가늘한 검상이 나고 말았다. 

진양은 황급히 물러섰다. 잘 보니 도사 셋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외의 도사는 더 없는 듯 했다. 

[네놈들이 령아를 잡았구나!] 

생각해보니 열 받는다. 저런 개도사들 따위가 령아를 잡고 있다니 분통이 터졌다. 잠시 눈을 돌려 여전히 측은한 모

습으로 늘어져 있는 그녀를 보니 더욱 화가 치솟았다. 

[이 개도사들. 역시 개도사답게 어린 소녀도 납치하는군.] 

[수녀를 어린 소녀라 하는 멍청한 놈은 세상천지에 너 뿐일 것이다.] 

한 도사가 냉소하며 맞받았다. 그 말을 들으니 진양은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당장에 쳐죽이고 싶지만 무공이 

부족하다. 금녀의 도움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금방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녀의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개에게 도움을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개도사들아. 개 똥구멍에 너희 대가리를 쑤셔넣어 주겠다.] 

진양이 음산하게 말했다. 차가운 말투가 제법 냉정해보였다. 하지만 도사들은 이 어줍은 소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이 더러워 조금 화가 났다. 

[건방진 놈! 네놈은 대체 누구냐.] 

아까 냉소한 도사가 나서서 호통쳤다. 그러자 진양은 갑자기  그를 골려주고 싶었다. 어디 당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능글맞게 입을 열었다. 

[아이고. 너란 놈은 대체 주인님도 못 알아보느냐.] 

[뭐야!] 

[귀엽다, 귀여워. 어디 다시 한번 짖어보렴. 내 오래 전부터 개밥을 주며 널  키웠는데 청구파(靑狗派)에 들어가더니 

이젠 나도 못 알아보는구나. 그래 뭐라고?] 

도사가 검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입 다물어라 애송이!] 

[아차. 난 사람이지.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야 없겠지.] 

진양이 짐짓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쳤다. 실로 계획적인 조롱이다. 그에 도사는 미쳐  날뛰었다. 이 꼬마가 미워 죽

을 것만 같다는 듯 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하지만 명색의 명문정파요 사천  최고의 문파라는 청성파 도사가 함부

로 어린 아이를 건드릴 수야 없었다. 더구나 지금 수녀를 잡은 것도 화연철의  명령일 뿐 용정학의 허락을 받은 일

도 아니지 않는가. 

[한번만 더 입을 놀리면 네 몸을 꿈쩍도 못하게 만들어주겠다.] 

[오호. 그럼 내 다리를 물겠다는 거니?] 

그가 다시 도사를 농락하자 드디어 도사는 폭발했다.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단숨에 일 지를 내뻗었다. 그 검지가 

진양의 천종(天宗)혈을 향해 매섭게 내리꽂히고 있는 것이었다. 동작은 분명 빠른 편이었다. 허나 진양은 이미 대비

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을 리 없었다. 

[너는 손가락으로 사람을 무느냐!] 

그의 어깨는 벌써 옆으로 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  주먹이 맹렬히 뻗어나가고 있었다. 단숨에 도사의 가슴을 

후려친다. 이런 동작은 맞은 도사는 물론이요 지켜보는 두 도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움직임이었다. 그러니 정통으

로 직격되는 거야 당연했다. 

[무공을 알았구나!] 

두 도사가 황급히 그 도사를 부축하며 동시에 부르짖었다. 어이없기도 했고 분노도 치솟았다. 완벽하게 이 꼬마에게 

농락을 당한 것이다. 일 권을 맞은 도사는 이미 기절해있었다. 진양은 통쾌하여 하하, 대소를 터트렸다. 양허리에 두 

손을 놓고 가슴을 활짝 열어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안색이 대변하고 말았다. 

<콰콰직> 

입은 웃고 눈은 놀람에 가득 찬 진양의 얼굴로 무엇인가가 우수수 튀었다. 피비린내가 난다. 진양은 그것이 무엇인

지 잘 알고 있었다. 날아온 물체는 눈알이요 우수수 튀는 건 피임을 말이다. 방금 그가 표정이 대변했던 건 억울해

하는 도사들 뒤로 낯익은 철장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철장은 순식간에  올려졌다 떨어져 단박에 두 도사

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으아악!] 

진양의 입에서 한참 후에야 비명이 터졌다. 낯빛은 어느새 백납처럼 허옇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금녀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방금 두 도사를 죽이며 튄 핏물과 뇌수가 그녀의 얼굴에 묻어있었지만 손을 들어 닦아낼 뿐 묵묵

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악귀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걸어가 혼절한 도사의 머리통마저 철장으로 부수뜨렸다. 잔악해도  보

통 잔악한 모습이 아니었다. 진양은 눈을 질끔 감아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 다시 조용히 눈을 떠보니 그녀의 모습

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저도 모르게 수녀가 있던 곳을 보니  그녀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아무도 없다. 마치 좀 전의 일들이 꿈처럼 괴상했다. 하지만 꿈은 아니다. 온 벽에 튀긴 핏물과 바닥에 널

린 머리 없는 세 도사의 시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순간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방금 일이 꿈도 아니고 금녀와 수녀가 귀신도 아니다. 그렇다면 금녀가 신법을 펼

쳐 이곳을 빠져나갔다는 것이 된다. 자신이 눈을  감았던 그 찰나에 벌써 이 동굴 밖으로  소리없이 나가버린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언제 수녀를 구했는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진양은 다시 뭔가를  깨닫고 펄쩍펄쩍 날뛰었다. 

바로 자신이 도사들과 싸울 때 수녀를 구했을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비열해. 비열해!] 

금녀가 수녀를 구해갔다면 그는 분명 기뻐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농간에 당했다는  것이 먼저 머리를 뒤덮자 수

녀를 구해간 것은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다. 도리어 분노가 치솟았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지우고 일단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밖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그는 나오자마자 사방을 뒤척이며  금녀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물론 그녀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진양이 씁쓸하게 인상을 구겼다. 금녀가 필시 그들이 머물던 그 동굴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하

고 빠르게 경공술을 펼쳤다. 

청성산의 밤 공기는 매우 찼다. 나무들 사이사이로 싸늘한 밤바람이 다가와 진양의  볼을 어루어 만지듯 사르르 스

쳐지나가고 있었다. 과연 그의 신법은 마치 수풀 사이로 나다니는 한 마리의 다람쥐처럼 매우 잽싸 보였다. 그만큼 

빠르기도 했기 때문인지 그는 금방 그 동굴에 다다를 수 있었다. 

둥그런 공터에 조용히 섰다. 그 동굴 입구는 여전히 수풀로 가려져 있었지만 누군가 들어간 것 같았다. 산천초목에 

대해선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진양이다. 수풀의 형태만 보아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그

는 잠시 두어 번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리쳤다. 

[여기서 대체 뭐 하겠다는 거죠? 어서 나와요.]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없는 척 하지 말아요. 안에 들어간 거 다 안다고요.] 

다시 소리쳤지만 여전히 안은 고요했다. 그러자 진양은 크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안에 금녀가 들어간 거 같

기는 한데 왜 대답이 없을까. 혹시 금녀가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에 있다면 들어요. 아까 그 동굴에서 수녀를 구해왔으니 반드시 도사들이 이곳으로 찾아들  거에요. 빨리 떠나지 

않으면 다 죽어요.] 

그는 짐짓 그녀를 위하는 체 말했다. 물론 그건 수녀를 위해서  한 소리지 금녀를 위한 건 백 번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음에도 안에선 아무 말이 없었다. 더욱 이상하게 생각한 진양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섰다. 

우습게도 안에는 금녀와 수녀가 앉아있었다. 진양은 그 모습에 제  말을 무시했다 생각하여 뭐라고 소리지르려는데 

그들의 자태가 영 심상치 않았다. 둘이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장심을 붙이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둘 다 안색

이 온전하지 못하고 창백한 게 큰일이라도 난 듯 싶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그 때문에 내 말에 대답을 안 했나.) 

그는 조금 짐작가는 바가 있어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쪽은 얼굴이 울

퉁불퉁하고 눈 코 입이 다 제자리를 벗어난 괴물이요 한쪽은 천하절색이라 불려도 아깝지 않을 미녀. 그 모습은 참

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진양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그렇게 약 반 각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 진양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가 미소를 짓는 이유는 바로 수녀의 안

색이 점점 평정을 되찾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금녀의 안색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망가져갔다. 그 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