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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금녀의 죽음 3 (16/90)

                                      第 五 章. 금녀의 죽음 3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양은 느껴지는 바가 있어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필시 청성 도사들이리라. 입구

로 다가서서 수풀 사이로 슬며시 바라보니 과연 백색 도복의 사람들이 십여 명 몰려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화

연철도 보였다. 

그는 다급해졌다. 이대로 있으면 수녀가 공격을 당할 것이 아닌가. 지금 자신이 그녀의 곁에 있기야 하지만 저들을 

막아낼 자신은 없었다. 도사 한둘에서 기껏 셋쯤이라면 사력을 다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저들은 열 명도 넘는

다. 또 화연철도 있으니 가망이 없었다. 

고개를 한번 돌려보았다. 금수쌍녀의 얼굴이 가끔가다 꿈틀거린다. 그녀들 역시 도사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듯 

했다. 그럼에도 못 움직이는 건 정말 큰일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순간 화연철의 음성이 들렸다. 

[안에 숨어만 있지 말고 어서 나오너라.] 

음성이 여유로우면서도 무언가 모를 살기가 깔려 있었다. 진양은 그걸 느끼고 그가  지금 분노하고 있다는 걸 깨달

았다. 필시 골통이 박살나 죽은 도사 셋을 본  것일 것이다. 진양은 일단 숨을 죽였다. 한시라도  빨리 수녀가 깨길 

원했다. 

[없는 척 해서 우리가 들어서길 바라느냐. 흥. 그리고 기습을 해보려고 하겠지.] 

화연철이 코웃음친다. 그 말을 듣자 진양은 좋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는 화연철에게 감사하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지금은 일단 시간을 끄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어떤 수단이든 그들이 당장에 들어오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그걸 생각하며 검을 소리나게 뽑아들었다. 힘차게 뽑은 건 아니지만 스르릉 하는 시퍼런 소리가 동굴 안을 울

렸다. 이 정도 소리면 동굴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번엔 금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조금 두려웠지만 입술

을 깨물며 그녀의 철장을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그러자 일순 금녀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진양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허나 그녀는 여전히 수녀와 장심을 붙인 채로 얼굴만 씰룩거릴 뿐 별다른 일을 벌

이진 않았다. 진양은 천천히 철장을 들어올리려 했다. 그런데 철장이 엄청  무거웠다. 도대체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이를 악 물고 한참을 버둥거렸다. 잠시 후에야 땀을 흠뻑 쏟아내며 그 철장을 들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들어야 한다. 그는 그 철장을 껴앉은 안아 있는 힘을 다했다. 내공도 끌어올려  거의 발악하듯 발광을 부렸다. 그러

자 철장의 끝이 바닥과 손바닥 크기만큼 벌어지게 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상태로 힘을 쪽 빼버렸다. 자연 그 무거운 

철장은 땅으로 꽂혔고 쿵, 소리가 매우 우렁차게 들렸다. 위잉 하는 소리가 유독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몸을 숙여 철장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떨어트린 진양은 이번엔 수녀의 봉을 집어들었다. 저번에 

봤던 것처럼 나뭇가지라고 하기엔 너무 굵지만 또 봉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늘다. 그는 그 봉을 양손으로 잡고 돌려

보았다. 휭휭 소리가 난다. 처음엔 잘 안됐지만 계속 해보다보니 제법 능숙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바람 소리를 또 

잠시 내었다. 

이런 것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화연철 등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안에서 차례로 검, 철장, 봉  소리를 나게 해서 이 

안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준 셈이다. 설령 어떤 이상한 점을 알았다해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뛰어들진 않을 

것이라 진양은 생각했다. 과연 밖의 도사들은 어느새부턴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편 화연철은 묵묵히 있었다. 이 안에서 들린  소리를 잘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어색하다.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엉성했다.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기도라고나 할까. 화연철은 그것을 느꼈다. 더

구나 그런 쇳소리는 들리면서 정작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도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어가보자니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너무 위험하기도 했고 자신의 생각이 확인된 바도 아니다. 갑자기 그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어설프구나 어설퍼! 수작이 너무 어설프다.] 

그는 말을 이으면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로 들어오려는 듯 했다. 수풀 사이로 눈을 대고 이를 확인한 진

양은 가슴이 얼어붙는 듯 놀랐다. 뭐가 어설프다는 건가. 진양은 일단 급한대로 능청을 떨었다. 

[하하. 난 진양 대협이시다. 그래 뭐가 어설프다는 거냐?] 

화연철이 잠시 멈칫했으나 역시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한다. 

[스스로 대협이라니 낯짝이 두껍구나.] 

[내 낯짝이 두껍건 말건 개도사가 무슨 상관인지 원.] 

[대협치곤 너무 어리석구나.] 

진양이 대소했다. 

[뭐가 어리석지?] 

[그렇지 않느냐. 부리는 수작도 어설프고 말이다.] 

화연철의 말에 그가 히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억지로 웃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 못하겠다. 뭐가 어설프다는 건지.] 

[쇳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왜 말소리는 들리지 않느냐?] 

[네 귓속엔 뭐가 처박혔느냐. 지금 내 말은 말소리가 아닌가.] 

그는 뜨끔하여 재빨리 빈정거렸다. 하지만 화연철은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냉소를 흘렸다. 

[네 목소리 말고 금녀와 수녀 말이다. 너만 자꾸 떠드는데 그녀들은 왜 말이 없지? 잠이라도 자고 있느냐.] 

실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화연철로선 금녀와 수녀가 정말 안에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일 테

지만 진양에게 있어선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말인 것이다. 진양은 그의 물음이 떨어지고  난 후 곧장 대답하지 못했

다. 황급히 금녀와 수녀를 돌아보았으나 여전히 장심을 맞대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을 즉각 못하는 걸 보니 뭔가 수상하구나.] 

이렇게 되니 궁지에 몰린 경우가 따로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하는가. 진양은 안색이 창백해져 그의 말이 다시 들렸음

에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짧은 시간 그의 머리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하지만 모두 화연철이 속을 만한 방법이 

아니었다. 괜히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다 도리어 깨끗이 들통날 우려도 있었다. 

[금수쌍녀! 있으면 말을 해보거라. 없다면 말을 못하겠지.] 

화연철이 소리질렀으나 당연히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화연철은 미소했다. 분명 저 안에 금수쌍녀가 있는지 없는

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들이 지금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감이 생겼다. 진양 따위야 겁나지 않았다. 

[흥. 없나보다. 일단 들어서보자.] 

그는 따르라는 듯 손을 들어 까딱거렸다. 그리곤 단숨에 두세 걸음을 옮겨 순식간에 수풀 앞에 다다르고 말았다. 진

양은 궁여지책으로 검을 주워들었다. 이젠 사력을 다해 맞서는 수 밖에 없었다. 금녀는 어찌되든 알 바가 아니지만 

수녀만은 구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녀를 구해야만 하는가. 그건 기실 진양도 모른다. 

화연철이 천천히 수풀을 헤치려 손을 내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오너라!] 

난데없이 터져나온 호통. 그 호통은 분명 호통이나 약간  귀기스러운 기운도 담고 있었다. 그에 화연철과 도사들은 

물론이요 진양도 등줄기를 따라 한기가 세차게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는 것이다. 

화연철은 급히 손을 빼며 뒤로 물러섰다. 도사들에게 다시 손짓하여 뒤로 멀리 물러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방금 전

의 호통은 바로 금녀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확실하다. 수 년간 원수로 지내며 치고박고 했으니 절대로 틀릴 리가 없

었다. 귀기가 담긴 목소리,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목소린 금녀가 낸  목소리가 확실했다. 갑자기 등줄기를 따라 이번

엔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 

그는 지금 금수쌍녀에게 속을 뻔한 생각했던  것이었다. 끝까지 없는 척 하여 자신을  끌어들이고 기습으로 단숨에 

죽여버리려 했다고 생각했다. 진양 따위가 덤비면 뭘 어쩌랴,  하며 들어섰다가 그녀에게 당할 뻔한 일을 상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름이 돋는 건 진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지금 수녀와 장심을 맞대고 있지 않는가.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돌아

보니 그녀는 자세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 눈도 그대로 감고 있었다. 아무래도 입만  벌려 소리친 것 같았다. 진양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일갈 한번으로 큰 위기를 넘긴 셈이다. 지금껏 아무말 안 하다가 위기의 순간 

소리를 지른 걸 보면 조금 무리를 한 것 같기도 했다. 

진양은 확실히 시간을 벌고자 한스럽게 떠들었다. 

[제기랄.. 아깝구나. 유일한 기회였는데.] 

밖에서 이를 듣는 화연철과 도사들은 안색이 창백해진다. 이미 한두 번씩 놀랐지만  들을 때마다 계속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연철이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 좌중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 안에 식량이 쌓이지 않는 한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어차피 나오게 되어 있으니 천하삼유진을 펼쳐두고 대기

해라.] 

다시 고개를 돌려 한 도사를 향해 말했다. 

[너는 용사형께 이곳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사 십여 명만 보내달라고 말씀드리거라.] 

그 말들은 마치 진양과 금수쌍녀 보고 들으라는 듯 음성이 조금 컸다. 진양은 그것을 일종의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협이면서도 사실이다. 이 동굴 안에는 고작 하루정도  버틸 식량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콩과 나물 

뿐이라서 식량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랬다. 그는 더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깊은 밤이 되자 밖이 매우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용정학이 보낸 도사들 몇몇이 온 듯 했다. 수풀 사이로 눈을 들이

밀어보니 과연 그러하다. 도사들이 서로 쉴 수 있도록 교대를 서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금녀와 수녀는 여

전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녀의 얼굴이 더 펴진 것 같아서 그는 기뻐할 수 있었다. 

허기가 졌다. 금녀와 수녀가 저 괴상한 짓거리를 그만두길 기다렸지만  끝내지 않는다. 그는 할 수 없이 혼자 배를 

채우기로 했다. 동굴 구석에 있는 큰 저장 상자를 열어보니 역시 콩과 나물 뿐이다. 허나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그

는 꾸역꾸역 입에다 콩 한 무더기와 나물 한 무더기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보니 물도 얼마 없었다. 구석에 놓인 호

리병 마개를 열어 안을 보니 물이 반 병쯤 채워져있었다. 곧 한 모금만 빨아 마시고 물을 아꼈다. 

배를 채우니 이번엔 졸음이 밀려와 잠시 쓰러져 잠을 퍼잤다. 그가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금녀와 수녀를 찾

아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아직도 장심을 맞대고 있었다. 

다시 밖이 시끄러워졌다. 웅성거리는 게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았다. 내다보니 정면에 화연철이 우뚝 서있

고 뒤에는 도사 이십여 명이 정렬해 있었다. 진양은 화연철이 또 뭐라고 할까 문득 겁이 났다. 그리고 곧 그 두려운 

주둥이가 열렸다. 

[금수쌍녀.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동정이 없구나. 언제까지 거기서 살 셈인지 좀 알고나 있자.] 

물론 금녀나 수녀가 대답할 리는 없었다. 진양은 그녀들을 흘낏 보고는 자신이 직접 말한다. 

[한 10년은 살 수 있을 것 같다. 십 년 후에 다시 보자.] 

명백한 조롱이다. 화연철은 그것을 알고 얼굴이 일순 벌게졌다. 그러나 곧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10년이라고? 흥. 너희는 굶어죽지도 않을 것 같으냐.] 

[바보 같으니. 당연히 굶어죽지 안 죽으면 그게 사람인가. 내 말은 먹을 게 이 안에 쌓이고 쌓였다는 얘기야.] 

화연철은 그게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10년 간 먹을 식량을 보관하려면 그 동굴이 몇 배는 커야 할 것이다.] 

[하하. 누가 식량을 동굴 바닥에 던져두겠나. 사실 식량을 동굴 밑바닥에 속에 넣어뒀지.] 

[거짓말 말아라!] 

그는 버럭 소리를 쳤다. 저번에 이 동굴로 들어왔을 때 밑바닥은 수색해보지 않아서 갑자기 뜨끔했던 것이다. 하지

만 그 말을 곧이 믿지는 않았다. 저 진씨 꼬마가 얼마나 영악한지 잘 아는 그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곧 진양

의 여유있는 음성이 들렸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10년을 기다리면 알겠지. 아니 한 한 달만이라도 되겠네. 그동안 너희는  거기서 계속 보초를 

서주렴.] 

[흥. 너는.. 너는..] 

화연철이 분노하여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한 달이면 알 수 있을 거라니 분명 거짓일 것 같은데 자꾸 초조해졌다. 

정말이면 어쩔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금방 그 생각을 지우고는 어젯밤에 곰곰히 생각했던 것을 물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게 한 가지 있다. 네가 감히 말해줄 수 있느냐?] 

[뭐 길래 그리도 호들갑인지.] 

그는 진양의 말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어제 내가 들어서기 전엔 금녀가 말을 하지 않았었지. 그렇지 않느냐?] 

[그런데.] 

[그러다 내가 들어서기 직전에 금녀가 소리를 질렀지. 그렇지?] 

[그랬었지.] 

[그리고 금녀는 그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맞지?] 

[뻔한 걸 왜 자꾸 물어.] 

진양이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화연철의 표정은 엄중했다. 그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어젯 밤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내가 들어서기 일보직전에 소리를 질렀을까. 금녀는 나를 원수로 아

는데 말이다. 기왕 속이려 했던 거 끝까지 속였다면 난 누구에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텐데.] 

진양이 놀라자빠졌다. 파도가 후려치듯 찬 기운이 가슴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왜 그것을 생각 못했던 것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화연철이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갑자기 살기를 띠며 음산하게 말했다. 

[내가 들어오는 걸 막으려 했던 것이야.] 

진양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알고보니 화연철은 오늘 끝을 보려고 도사들을 정렬시킨 것이다. 지금은 어제  생각해봤

던 일을 추궁하고 확인을 한 후에 서서히 끝을 보려는 게 확실했다. 

[거기서 나는 또 생각했다. 그럼 도대체 왜 내가 들어오는 걸 두려워 했을까.] 

화연철은 여전히 말을 잇고 있었다. 

[이 정도가 됐으니 답이 나오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지. 내가 들어오는  게 두려웠던 건 지금 금녀가 싸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분명 안에 있으면서도 날 막으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의 추리는 완벽했다. 더 흠 잡을 데 없이 정곡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사실이지 않는가. 지금 금녀는 물론이요 수

녀도 싸울 수 없는 처지다. 그에 진양은 감탄 반, 놀람 반으로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가 이토록 금방 사실을 알아

낼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하기야 진양이 알 리가 없다. 강호란 세계를 살아본 자들은 두려울 정도로 예리하고 지독

하다는 것을. 

화연철은 조용히 진양이나 금수쌍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

질 수 있었다. 이젠 들어가서 그들을 일거에 사로잡으면 된다. 용정학이 죽이진 말라고 했으니 반드시 사로잡아야겠

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교화가 불가능한 듯 보여서 처단하는 쪽을 바랬지만 용정학이 승낙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가볍게 손짓하며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에는 화연철 등 도사들이  동굴 안으로 난입하여 일이 벌어질 

상태였다. 진양은 수녀가 걱정되어 낮게 그녀를 불렀다. 령아, 령아 하고 연달아  세 번을 불렀지만 그녀는 전혀 움

직이지 않는다. 다만 안색이 조금 변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위기를 벗어나야만 하지 않겠

는가. 공터에서 수풀을 헤치고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건 열 발짝이면  충분하니 진양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져만 

갔다. 

실로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자신은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명망 높은 청성 도사들이 설마 수녀를 도왔다는 이유

만으로 어줍은 소년을 죽이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수녀가 걱정됐다. 자신도 살아야겠다 생각했

지만 그녀도 반드시 살려주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수단이다. 이젠 마지막 방법으로 사력을 다해 싸우며 시간을 끄는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은 동굴에서 뭐 몸

을 숨길 곳도 없고 별다른 계책도 세울 수 없었다. 유일한 계책이래봐야  작은 동굴을 이용하여 요리조리 피해다니

는 정도일 것이다. 진양은 검을 주워들었다. 반드시 화연철이 먼저 들어올 거다. 그는 그걸 머리에 담고 함종절검을 

준비했다. 화연철이 들어온다면 단숨에 검을 써서 기습을 해보려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사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풀 밟는 소리가 아니었다. 동굴 앞을  가린 덩굴들이 몸을 꿈틀거리는 걸로 보아 

지금 저것들을 헤치고 있는 게 명확했다. 진양은 검병을 쥔 채 몸을 웅크렸다. 단숨에 달려들어 배를 찔러야지 하며 

눈을 무섭게 빛냈다. 일순 푸른 수풀들 사이로 누런 살점이 보였다. 화연철의 손이라  진양은 더 의심치 않았다. 그

는 흉폭한 눈빛을 발하며 맹렬히 달려들었다. 수풀에 그대로 검을 쑤셔 넣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화연철의 일 수로 무산되고 말았다. 화연철은 진작에 그가 습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 설령 아니

라고 해도 방비는 해두는 것이 좋았다.  그랬기 때문에 귀를 쫑긋대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과연 진양의 

검이 날아들었다. 그는 조금도 서둘지 않고 수양대구수(修養大九手)의 대금(大擒) 수법으로 검날을 잡아버렸다. 다시 

좌수로 대배(大背)를 펼쳐 검날을 후려치니 검이 기이한 금속성을 내며 부러진다. 

진양은 화급히 몸을 내뺐다. 아직도 손이 저려오고 있었다. 방금 화연철이 손등으로 검날을 부러트릴 때 거센 진동

이 손을 타고 몸으로 퍼졌던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위력이길래 이렇게 진동이 오는가. 그는 새삼 화연철의 무공에 

경외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화연철은 냉소하며 안으로 막 머리 숙여 들어오고 있었다. 진양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끝인가 하는 

암담한 생각이 든다. 

[합!] 

헌데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기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괴성이 들리기가 무섭게  진양의 얼굴 바로 옆으로 무언

가가 부우웅,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는 일순 사시나무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또 금녀의 목소리가 아니던

가.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방금 귀를 스치고 지나간 그 무언가는  화연철의 정수리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

었다. 

화연철은 진양과는 다르게 뭔가 천령개를 향해 날아든다는 걸  대번에 눈치챘다. 붕붕, 하는 중압감 서린 파공음이 

꽤 무게를 가진 것인 것 같았다. 순간 뇌리로 혹 금녀의 철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서운 허실이다 금녀여!] 

난데없이 화연철의 입이 열리며 곡성 비슷한 대갈이 터져나왔다. 억울한  기운도 서려있었고 진정 감탄하는 기운도 

서려있었다. 그는 즉각 몸을 뒤로 날렸다. 고개를 숙인 채로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물론 말이 뒷걸음질이

지 실제론 뒤로 날아가듯 물러선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그의 신법이 뛰어난 것이었다. 

그가 한 서너 발짝 가량 물러섰을 때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렸다. 동굴은 말할 것도 없고  사방을 들썩이는 폭음에 

가까운 진동이 울렸다. 아까 진양이 검이 부러지면서 느낀 진동과는 애당초 차원이 다른 수준의 진동이요 음량이었

다. 진양이 그 지진 같은 우레를 동반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바라보았다. 과연  금녀의 철장이었다. 족히 수백 근

은 될 법한 길이와 크기를 가진 쇳덩이로 만든 금녀의 지팡이다. 수풀을 단숨에 짓이기고 동굴의 돌바닥을 금이 가

게 만들어놓았다. 

자연 밖이 훤히 보였다. 도사들은 벌써 혼이 나갔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화연철의 말을 굳게 믿었거늘 멀쩡히 

금녀의 철장이 날아왔으니 정신을 못 차릴 만도 했다. 화연철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치켜들어 진양을 바라보았

다. 진양이 흠칫한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려 금녀와 수녀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금녀와 수녀는 밖에서 잘 보이

지 않는 위치에 앉아 있었다. 

[금녀! 정말 지독하구나.] 

화연철이 말을 하다가 창피함을 느껴 안색을 한번 더  붉혔다. 그녀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창피했다. 

더구나 그녀가 일부로 봐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연철은 금녀와 오랜 시간 싸움을 벌여왔기에 그녀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좀 전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날

린 철장은 자신이 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는 그 철장을 

여유롭게 피할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이 금녀가 일부로 살짝 던져서 위협만 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고마움은 

느끼지 않는다. 다만 창피할 뿐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허실 계략에 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무안해졌다. 물론 그

의 이런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금녀는 그리 넉넉하게 철장을 던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잠시 얼굴을 붉히며 말이 없던 화연철이 힘들게 입을 연다. 

[네가 여유를 부리는 건 무슨..] 

<우당탕> 

갑자기 동굴 안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가 몸을 날려 데구르는 소리 같았다. 

[아악!] 

이번엔 여인의 비명이 들렸다. 날카롭고 청아한 비명인 게 아무래도 수녀인 듯 했다. 화연철은 괴이쩍게 여기고 멀

리서 동굴 안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금녀가 쓰러져있고 수녀는 옆에서 크게 놀라하고 있었으며 진양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광경은 화연철이나 도사들이 얼른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멍청한 아이 같으니. 그대로 뒀으면 우린 둘 다 사로잡혔을 거야.] 

금녀가 쓰러진 채로 대답은 했는데 왠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텅빈 게 매우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것을 느낀 수녀

는 뭔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몸이 안 좋으세요? 어머니. 어머니.]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잠겨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금녀는 잠시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온몸이 힘이 쪽 빠져 그대로 눈을 붙이고 싶었다.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천하의 나 금녀. 일세를 떠들석하게 하다 떠나니 어떤 아쉬움도 없다. 허나.. 네가 걱정되는구나.] 

금녀의 눈빛이 매우 측은해졌다. 그 말에 수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믿기지가 않는다. 그녀의 몸 상태가 상당히 

심각한 것 같기는 했지만 정말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요. 일세를 풍미하셨어요. 헌데 벌써 떠나시다니요. 그런 말씀은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어머니는 반드시 일어

날 수 있을 거에요.]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좀 전 힘을 쓸 때 큰 문제가 생겼어.] 

금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에 수녀는 불이 번지듯 걱정이 마구 번져 다급히 그것이 뭔지를 물었다. 그건 옆에서 지

켜보는 진양도 상당히 궁금한 것이었다. 그녀들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금녀의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짐작할 수 있었다.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철장을 던지는데 너무 힘을  쓴 거야. 산공독이 벌써 내장으로 침투해버렸다. 내공

으로 막으려 하다가 다른 독도 발작을 일으켰어.] 

[그.. 그런 일이..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어요.] 

잠시 소리지르던 수녀가 몸을 떨며 물었다. 

[..허, 헌데 다른 독이라니요?] 

[산조인 독이 발작했단다. 그 제기랄 무굉이..] 

말을 잇던 금녀가 기침을 토해낸다. 기침을 참고 있기라도 했었는지 한동안 기침만 해댔다. 몸만 움찔거리면서 힘없

이 기침을 하는 모습이 정말로 측은했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주름도 한층 더 패인  듯 했고 눈도 쏙 들어간 듯 했

다. 수녀는 그 모습에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금녀가 정말로 죽음의 문전에 다다랐다는 

것을. 

[어머니..] 

수녀가 흐느꼈다.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이제 금녀가 죽는다면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지금 자신 때문에 죽음에 직면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녀들이 장심을 맞대고 정신일통한 이유는 사실 수녀의 몸에 퍼진 산공독 때문이었다. 청성 도사들은 화연

철의 명령으로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가 산보할  때 화연철과 도사들이 발견하여 일시에 공격한  덕에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곧 웬 동굴로 끌려가게 되었다. 온몸 대혈을 찍혀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 이

르고야 말았다. 그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어이없게 이들에게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한편 화연철은 용정학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다. 그러나 기뻐할 줄  알았던 기대와는 달리 용정학은 크

게 화를 냈다. 수녀도 금녀처럼 교화를 시켜야한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들어본 얘기로 화연철의 행위는 정당하지 않

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본 수녀는 그렇게 악하지도 않았다. 금녀처럼 잔인하지도 않고 악행을 저지

를 땐 가면도 써서 강호에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자신의 사부를 죽이고 청성 도사를 죽

인 건 모두 금녀였지 수녀가 아니었다. 그는 즉시 화연철에게 그녀를 풀어주라 명령했다. 

허나 화연철은 도저히 그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는 돌아가 직접 수녀를 교화시켜보려 애썼다. 그러나 수녀가 그

리 쉽게 따를 리 없다. 그녀는 도리어 그의 얼굴에 침을 내뱉으며 악담을  퍼부었다. 결국 화연철은 대노했다. 그는 

홧김에 그녀에게 산공독을 처먹였다. 아니, 홧김이라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중을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녀의 

내공을 무산시키면 후일 금녀를 제압하는 일에도 더욱 편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그 일을 저지르고는 이 일을 입밖에 내지 않도록 도사들에게 주의를 시켰다.  먼저 동굴을 떠나며 세 시진 뒤

에 그녀를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아직 세 시진이 지나지  않아서 진양과 금녀가 도착했던 것

이었다. 

금녀는 수녀를 구출해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제 딸이 산공독에 의해 내공이 무산되는 걸 절대

로 원치 않았다. 급기야 그녀는 큰 결심을 했다. 자신의 몸에 이상한 독이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하나 뿐인 자식이 

무너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곧 그녀는 수녀의 몸에서 산공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직접 내공을 끌어올려 그녀

의 몸에 퍼진 산공독을 자신의 몸으로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빨아댄  산공독은 자신의 양강지기

(陽强之氣)로 불태워버리 듯 없애버렸다. 

헌데 조금 전 위기의 순간 그녀는 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대로 있으면 화연철이 난입하여 자신은 

물론이요 수녀까지 잡혀갈 상황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결국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행했다. 수녀의 몸에서 산공

독을 끌어오고 그 산공독을 양강지기로 불태우며 한 손을 빼서 철장을 집어던지는 일을 동시에 했다. 헌데 그 때문

에 일이 번지고 말았다. 내공을 모조리 뽑아 세 가지 일에 나누어 쓰자  마침내 잠재되어 있던 독이 발작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 독이란 무굉이 먹였던 산조인 독이었다. 본래 산조인  볶은 것은 독이 없었지만 너무 많이 먹여서 몸 

안에 독이 쌓이고 말았다. 

산조인 독은 발작하자 정신없이 내공의 흐름을 막아버렸다. 그녀는 크게 놀라 급히  내공으로 그 독을 억누르려 했

다. 그러자 그 순간 노도처럼 산공독이 단전으로 밀려들었다. 그 산공독은 순식간에 그녀의 내공을 와해시켜버렸다. 

산조인 독과 산공독이 양쪽에서 협공하듯 밀어붙여 그녀의 내장은 완전히 박살나고 만 것이다. 

금녀의 눈빛은 점점 명광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토록 추악하고 악랄한 금녀였지만 죽을  때가 되니 여느 노파와 다

를 바가 없어 보였다. 

[어머니! 제발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이상한 소리라니.. 나는. 나는..] 

그녀의 숨이 갑자기 거칠어진다. 

[나는 정말로 죽음에 이르렀어.] 

말이 조금 급해진 것 같다. 수녀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녀를 안아 세웠다. 등에 장심을 붙이고 내공을 불어넣어

서 잠시 목숨을 연장시켜주려 했다. 그러나 금녀가 말했다. 

[소용없다. 온몸에 산공독과 산조인 독이 퍼져있는데 내공이 들어온들 무엇하겠느냐.] 

수녀의 볼에 눈물이 다시 주르륵 내리 흐른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다. 

[해봐요! 혹시 모르잖아요.] 

[소용없다니까. 게다가 오랫동안 산공독을 몰아내는 싸움을 했는데 무슨 내공으로 내 몸에..] 

다시 그녀가 기침을 토했다. 안고 있던 수녀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금녀가 각혈까지  하는 것이다. 동굴 안에 비릿

한 피 냄새가 조금씩 번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소.. 소용없어..] 

금녀가 중얼거리며 수녀를 향해 눈짓했다. 그게 눕혀달라는 뜻임을 수녀는 깨닫고 그녀를 바닥에 고이 눕혔다. 그녀

가 다시 힘없게 대(大)자로 늘어졌다. 

[령아야..] 

[말씀하세요.] 

수녀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 없이도.. 혼자 잘.. 살 수 있지?] 

[못 살아요! 어머니가 있어야 해요!] 

[그.. 그럼 이 어미는.. 하늘에서도 눈을 못 감는다..] 

수녀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눈물샘이 다 마르게 되려나, 그녀의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가.. 악행을 저지르는 일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죽거든  수녀라는 이름을 버리고 네 이름으로  살거

라..] 

[아녜요. 어머니가 원한다면 전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어요!] 

[그래.. 난 네가 악하게 살지 않길 원하니.. 나처럼 일생을 마감하는 일이..] 

그녀가 한바탕 기침을 쏟아냈다. 다시 힘겹게 말을 잇는다. 

[그러는.. 일이 없도록.. 너는.. 착.. 이..] 

[어머니!] 

금녀의 눈이 서서히 감겨지고 있었다. 뭐라고 계속 말은 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금녀의 눈에서 뭔가 반짝인

다. 눈물일까. 지켜보던 진양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머니!] 

수녀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부르짖었다. 허나 그녀는 이제 입도 벌리지 못했다. 다만 몸만 꿈틀거리는 게 비참한 

모습을 더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몸을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숨이 한층 더 거칠어졌고 금방 몸도 덜컥거렸

다. 

[어, 어머니! 왜 그러세요.] 

수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연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외침은 한낮 악쓰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금녀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더니 휙, 하고 고개를 꺾은 것이었다. 

그 힘없이 처진 고개를 바라보며 수녀는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정지

된 것처럼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동굴을 감쌌다. 진양은 수녀가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고개

를 돌렸다. 그렇게 천하를 진동했던 희세의 마녀, 바로 금녀가 죽고 말았다. 

수녀의 애도(哀悼)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시작됐다. 흐릿한 날, 소나기는 필요치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에서  소나기

를 쏟아주고 있었다. 피눈물인지도 몰랐다. 진한  적색이 가끔가다 보이는 건 무엇이었을까.  실상 피눈물이 아니라 

그녀가 입술을 깨물어 터진 핏물이었지만 언뜻 보기에는 정말 피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능히 그녀의 곡성이 그

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니 진양의 가슴에도 점점 격정이 치솟았다. 금녀가 

죽은 게 슬플 리는 없었지만 수녀의 통곡하는 모습은 정말로 안타까워 보였다. 천하를 잃은 패왕도 아내를 잃은 애

처가도 이보다 슬퍼하진 않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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