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十 一 章. 전진 도사 당주고 1 (25/90)

                                  第 十 一 章. 전진 도사 당주고 1

당주고를 따라 들어간 전진교 본당은 웅대했다. 정면이 그 유명한  중양궁(重陽宮)이요 뒤쪽이고 동서(東西)고 간에 

모두 큰 건물이 한 채 한 채 들어서  있었다. 근래 전진교는 꼭 무림인이 아닌 평민에게도 많은  호평을 얻는 터라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걸 증명하듯 건물들에선 고아(古雅)한 풍취까지 느껴졌다. 

왕령은 그 웅장하면서도 고아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진양은 애써 무심한  척 했고 무굉은 그냥 히죽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앞서 가던 당주고는 왕령의 표정을 보고는 슬쩍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매우 기뻐했다. 그녀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곳저곳 풍취를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했다. 

[다른 곳도 좋지만 역시 저 뒤로 올라가면 있는 봉이 제일이오. 보광사도 보이고 번천(樊川)도  보이니 종남산이 다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 그렇군요. 오늘 안목을 넓혀서 기분이 좋아요.] 

왕령도 그가 관심을 가져주는 걸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다만  진양의 낌새를 눈여겨보느라 간단명료하게 대답

할 뿐이었다. 

그들은 먼저 중양궁으로 안내됐다. 현 전진교 임시 교주인 당광을 만나야한다는 것이다. 당주고는 그가 자신의 아버

지며 아직은 임시 교주에 머무르고 있지만 조만간 교주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중양궁 대청에 들어

서니 전진 도사들 몇 명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당주고가 그 도사들과 조금 대화를 나누더니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어디론가 잽싸게 달려나갔다. 

문득 진양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중양궁이 전진교의 본당 맞나?] 

[맞지. 중양궁의 명성을 누가 모르겠니.] 

왕령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진양이 웃는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다만 본당치곤 너무 볼품 없어서.] 

[양아!] 

주변에서 청소하던 도사들이 진양의 말에 힐끔거렸다. 왕령이 말렸으나 진양은 여전했다. 

[왜? 여긴 하고싶은 말도 못하나? 하여튼 중양궁도 볼품 없지만 전진교 전체가 대단치 않더군. 종남산도 그리 절경

이 아니고..] 

[양아! 정말 계속 그럴 거야?] 

[흥. 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 적어도 이곳에 오고 싶던 건 아니고 전진교  도사들이야 비열하기로 유명한데 내가 

무엇 때문에 말을 못해?] 

진양의 말은 마치 청소하는 도사들보고 들으라는 듯 했다. 과연 도사들은 조금은 분노한 듯 얼굴색이 변했다. 허나 

따지지는 않아서 진양이 기대했던 싸움판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억지로  분노를 참는 것이 아무래도 당주고가 

미리 몇 마디 해둔 것 같았다. 

[임시 교준지 뭔지를 데려오겠다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와?] 

진양이 짐짓 화난 척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말없이 히죽거리기만 하던 무굉이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그래 맞아. 마옥한테 무슨 일이 있나? 그는 어디 가고 웬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놈이 임시 교주에 올라선 거야?]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참 당광이란 이름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죠.] 

진양이 맞장구쳤다. 무굉은 별다른 사심 없이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진양에겐 매우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엔 왕

령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도사들의 눈치만 살며시 보고 있었다. 

[혹시 마옥이.. 죽은 거 아닐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그렇다면 구처기를 교주로 삼아야지 왜 당광이란 자가 교주가 되죠?] 

[아니지. 구처기는 징기스칸이 불러서 갔는데 어떻게 교주행세를 하겠어.] 

[그래도 아직 전진오자가 남았잖아요.] 

[모르지 그야. 원래 그들 무공은 별 거 아니었어.] 

진양이 손뼉을 친다. 

[아! 형님은 본래 그들과 결투를 벌인 적이 있었군요.] 

[그렇지. 한 10년은 됐을 걸.] 

[아하. 그래서 전진오자 중 한 명이 다음 교주직을 얻지 못한 거군요. 그들은 허수아비가 확실해요.] 

그때 갑자기 뒤에서 악에 받친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더는 못 참겠다!] 

[사형! 참으세요.] 

[어떻게 참아? 내 전진교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저들 목에 검을 들이밀어야겠다.] 

진양을 비롯한 세 명이 놀라 돌아보니 청소하던 전진 도사 둘이었다. 보아하니 그 중 한 명이 매우 분노한 듯 했다. 

왕령은 드디어 일이 터졌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놈들! 감히 중양궁에 들어왔으면 예를 지켜야지 안하무인이로구나!] 

[하하. 그래 난 안하무인이다. 그러는 넌 누구라고 예를 운운하느냐?] 

진양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원하던 바였기 때문이다. 

[내 사부님은 강호인이 장생자(長生子)라고 부른다!] 

[오호. 알고 보니 유처현의 제자였군.] 

[흥. 이제 너희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겠느냐?] 

[나는 모르겠다. 안하무인의 인간이 무엇을 알겠느냐?] 

진양이 빈정거리자 그가 안면을 일그러트렸다. 

[잘 들어라! 너희는 중양궁 안에서 전진교를 모욕했고, 전진칠자(全眞七子)로  칭송되는 분들의 성함을 함부로 입에 

담았으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도 지껄였다.  또한 그 분들의 무공이 형편없다고  비하하고 허수아비라고 모욕했다. 

이래도 모른다고 발뺌할 테냐?] 

[하하! 너는 참으로 멍청하구나.] 

[뭐라고?] 

그는 황당하기도 하고 분통이 터져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허나 진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 않느냐? 나는 발뺌한 적이 없다. 내 스스로를 안하무인이라 했으니 내가 잘못한 건  없다는 말이다. 안하무

인의 사람이 남들을 깔보는 게 뭐 그리 분통 터지는 일이라고 날뛰는지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너..] 

진양의 말은 엄연히 말해 억지나 다름없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는  눈을 치켜세우며 무굉을 가리키며 소리쳤

다. 

[그럼 저 자는 어떻게 되는 거냐? 설마 저 자도 안하무인의 인간이라 말할 테냐?] 

[하하. 네 녀석의 안목은 본래 형편없었군.] 

[뭐야? 그럼 저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이지?] 

[형님. 그가 형님이 누구냐고 비꼬는군요.] 

무굉이 버럭 호통친다. 

[뭐라고! 내가 누군지도 몰라? 이런 못된 놈이 있나.] 

순간 뭔가가 번쩍였다. 그리고 <짝>하는 소리가 울려 진양이 돌아보니 그 도사는 벌겋게 부은 뺨을 만지고 있었다. 

[너.. 너..] 

[너.. 너.. 뭐 이놈아! 감히 자존자대를 못 알아보고 비꼬았으니 한 대 맞아야지.] 

진양은 그제야 무굉이 그 도사의 뺨을 때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강풍이 세차게 지나간다고 느낄 뿐이었는데 

그 사이엔 뺨을 때리고 물러서는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새삼 무굉의 무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과연 형님의 무공은 초절하군요! 정말로 탄복했어요.] 

[하하. 그래그래. 나중에 더 대단한 걸 보여주마.] 

무굉이 기쁜 듯 대소를 터트렸다. 한쪽에선 도사가 이를 간다. 

[흥! 자존자대라고 내가 겁먹을 줄 아느냐? 제아무리 자존자대라도 전진교 모두를 모독한 이상 무사히 빠져나갈 순 

없을 것이다!] 

[왜 내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거냐? 전진교 따위가 감히 나를 막을 수 있을까?] 

[역시 명성대로 오만하군! 어디 전진교를 빠져나가나 봐야겠다.] 

그의 말에 다시 무굉의 몸이 움찔거렸다. 진양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사를 보니 이미 그의 뒤엔 무굉이 서있었다. 

도사는 그제야 알아차린 듯 재빨리 빠져나오려 했다. 

[느려. 이런 녀석들이 백 명 모인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무굉은 빠져나가는 그의 어깨를 세게 후려쳤다.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옆에 있던 다

른 도사가 달려들었다. 쓰러진 도사의 사제로 보여 아무래도 제 사형을 돕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허나 어찌 무굉

의 적수가 되겠는가. 달려드는 그의 가슴에 무굉의 왼발이 닿는 순간 그는 대청 창문을 뚫고 날아가버렸다. 

[너무 힘을 줬네.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어.] 

[하하. 형님 잘못이 아니죠. 지금쯤 밖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테니 이놈보고 상태나 보라고 해요.] 

진양이 나서서 말하자 무굉은 그의 허리를 건드렸다. 그가 일어나 무굉을 노려보더니 곧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래

도 어깨를 치면서 어떤 혈도를 건드린 모양이다. 

(과연 형님의 무공은 대단하다. 남들은 자존자대라 하며 형님을 비웃지만  그러면서도 겁먹는 이유가 다 있었던 거

군.) 

그가 생각하는데 무굉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저들을 혼내줬으니 그 당가 녀석이 대접을 안 해줄 텐데.] 

[형님. 아직도 그걸 바라고 계세요? 그놈은 이미 딴 곳에 갔을 겁니다.] 

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무굉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 그럴 리가? 그 녀석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 무슨 당광인지 하는 놈을 데려온다고.] 

[흥. 그 비열한 놈이 무슨 약속을 지키겠어요? 아직도 안 오는 걸 보면 우릴 골탕먹이려는 수작이 분명해요.] 

[그럴 수가! 그럼 그놈이 나를 속였다 그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감히 형님을 속이고 저도 령아도 속였으니 혼내줍시다.] 

진양의 눈으로 일순 악독한 빛이 지나갔다. 왕령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당주고를 죽이려는 것임을 깨

달았다. 

[잠깐!] 

[왜 령아?] 

그녀는 이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진양 혼자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지금은 무굉이 있다. 무굉이라면 당주고는 

물론이고 전진교를 다 쓸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전진칠자가 있다면 막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들은 얘기론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니 전진교로선 매우 위험한 사태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진양의 팔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양아. 그는 반드시 올 거야. 그가 조금 비열하다는 건 나도 알지만..  이번엔 반드시 올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

자.] 

[어째서 그가 반드시 올 거라고 확신하지?] 

[그, 그건..] 

그녀는 얼른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제 입으로 자신  때문에 반드시 올 거라 하겠는가. 그녀는 당주고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거지? 왜 말을 못해?] 

[양아.. 아무튼 조금만 기다려. 분명히 올 거야.] 

[그가 반드시 온다는 건 너 때문이라 하고 싶은 거냐?] 

진양은 또 화가 났다. 그녀의 속내는 안 봐도 훤한데 말을 슬금슬금 돌리니 약이 올랐다. 그의 말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는..] 

[그는 널 좋아하고 있지. 널 처음 본 순간 넋이 나갔고 너도 그를 처음 본 순간 넋이 나갔지. 안 그래?] 

[양아! 너.. 어떻게 그런 말을..] 

[좋아! 아주 천생연분(天生緣分)이군.] 

진양은 더 그녀와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몸을 돌려 무굉에게 말한다. 

[형님. 령아.. 아니 왕령은 당주고가 너무나 좋답니다. 여기서 남아 그와 살겠다니 저희는 이만 떠나죠.] 

[너.. 너..] 

뒤에서 왕령의 떨린 음성이 들려왔다. 무굉이 어리둥절해하자 진양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왕령이 외친다. 

[진양! 너 정말 그럴 수 있니?] 

[내가 뭘 어쨌다고?] 

진양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너는.. 너는 질투심에 가득 차 있어. 내가 그.. 그를 좋아하는 걸 보고 여러 번이나 죽이려 했잖아. 지금도 무대협의 

힘을 빌어 그를 죽이려는 거지?] 

[뭐라고? 왜 내가 질투심을 느낀다는 거야? 내가 설마 너를  좋아한다는 건 아닐 테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거 아냐?] 

[너..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이젠 지겹다 그 눈빛! 나에게는 슬픈 눈빛으로 호소하고 그에게는 맑은 눈빛으로 정을 보내지. 나에게는 항상 애절

한 음성으로 말을 하고 그에게는 항상 친절한 음성으로 말을 해! 너는 그걸 알고 있나?] 

진양의 말은 거의 부르짖음에 가까웠다. 그 말에 왕령은 조금  느껴지는 바도 있었다. 허나 지금 그의 행동은 매우 

틀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6년 동안 자신과 함께 지내며 우정을 쌓은 벗의 행동이 아니었다. 

[넌.. 넌 나에게 있어서 친구였어. 6년이나 함께 지내서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또 서로를 위하고. 헌데 지금 넌..] 

[하하.. 친구? 친구라고?] 

진양이 눈을 부릅떴다. 

[그래.. 그동안 넌 나를 친구로 생각했던 것이군. 함께 6년을 보내도 넌 나를 단지 친구로만 여겼던 거야.] 

[…….] 

[아니! 네가 날 친구로 여겼을 리가 없어. 난 아직도 기억해. 네가 삼년상을 끝내고 나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보냈던 

눈빛. 난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지금처럼 단지 슬픈 눈빛이 아니었어. 삼년상을 막 끝마쳐서 분명 슬퍼야 했지만 

넌 그때 슬픈 눈빛을 하고 있지 않았어! 그 눈빛은.. 그 눈빛은..] 

그는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장내가 매우 고요해졌다. 왕령도 무굉도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의 입이 다시 열

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먼저 분위기를 깨트리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진양 등이 돌아보니 당주고였다. 진양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오냐 네놈이구나. 잘 걸렸다!] 

[아, 안 돼!] 

진양의 귀로 왕령의 외침이 들릴 법도 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재빠르게 봉을 휘둘러 당주고의 허리를 향해 후

려갈겼다. 너무 기습적이라 당주고는 도무지 피할 자신이 없었다. 아차 하는 사이 봉은 허리를 몇 촌 남겨두고 접근

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와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봉이 부러져나갔다. 이 봉은 왕령이 직접 만들어준 봉으로 유루봉법을 

펼치는데 가장 알맞은 봉이다. 진양에게 있어선 아주 소중한 봉이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소중한 만큼 제법 단단했

다. 더욱이 이번 일격은 진양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공격이었다. 

진양은 얼얼한 손을 잡으며 당주고의 허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시무시한 갑옷이라도 입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

의 허리춤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광택 나는 전진 도복은 좀 전처럼 여전했다.  그럼 누가 봉을 부러트렸는가. 진

양은 문득 그의 뒤로 누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검은 수염을 기르는 중년인이었다. 

공교롭게도 위치가 아주 알맞았다. 진양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검은 수염의 중년인이 자신의 봉을 부러트렸다

는 것을. 그는 분노가 치밀어 소리쳤다. 

[네놈은 또 누구라고 남의 봉을 부러트리느냐?] 

[그러는 넌 누구라고 남의 자식을 죽이려하느냐?] 

진양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보통 도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당주고가 옆으로 물러서며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저쪽이 자존자대 무대협이시고, 저쪽은 왕소저입니다.] 

진양이 눈을 번쩍 떴다. 지금 나타난 중년인은 바로 전진교의 임시교주 당광이었던 것이다. 당주고가 무굉과 왕령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는 일단 그들에게 읍 했다. 

[이 맹랑한 놈은 누구냐?] 

[그는.. 왕소저의 친구고 무대협의 의제라 합니다.] 

당광이 진양을 쓰윽 훑어보았다. 진양은 그 눈빛이 매우 맘에 안 들었다. 자신이 후배임은 확실했지만 선배라고 저

리 깔보는 눈빛으로 보니 화가 났다. 그가 자신의 봉을 부러트렸다고 생각하니 아예 분통이 터졌다. 

[네가 당광이라는 놈이냐?] 

진양이 내뱉은 한마디에 당광을 따라온 도사들이 각자 호통을 쳤다. 당광이 그들을 제지하며 말한다. 

[그래 내가 바로 그 당광이라는 자다. 너는 누구냐?] 

[네까짓 게 내 이름을 알아서 뭐하겠느냐? 제사라도 지내줄 테냐?] 

[후후. 여기서 죽는다면 제사를 지내주지.] 

진양이 대소했다. 

[하하하!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죽는 건 널 텐데.] 

[좀 전 네가 봉을 휘두르는 걸 보니 제법 실력은 되더군. 허나 내공이 부족해서 날 이길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이긴다면 어떻게 할거냐?] 

당광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진양 스스로도 자신의 내공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조금도 물

러서지 않았다. 

[내 자식을 죽이려 했던 것과 전진교를 모독했던 걸 모두 눈감아 주마.] 

알고 보니 당광을 따라온 도사들 중엔 방금 청소하던 그 두 도사도 있었다. 진양은 피식 실소했다. 

[고작 그 두 개를 가지고 내가 싸울 것 같나? 내가 이긴다면 당주고의 목도 내놔라.] 

[이 녀석의 목이 왜 필요하지?] 

[네가 알아서 뭘 어쩌겠다고 물어봐? 잔말말고 어떻게 할 건지나 대답해라.] 

[좋아!] 

당광은 결심한 듯 대답했다. 

[내가 진다면 이 녀석 목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마!] 

[흥. 선심 쓰는 척 하지 마라.] 

진양은 부러진 봉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허나 네가 봉을 부러트렸으니 난 봉법을 쓸 수 없다.] 

[그까짓 봉 새로 만들어 주면 되지.] 

[그까짓 봉?] 

당광의 말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그까짓 봉에 담긴 진양의  생각을 어찌 당광이 알고 이해하

겠는가. 하지만 그의 눈치로 보아 봉에 어떤 큰 의미가 담겼다는 걸 깨달은 당광은 가볍게 미소했다. 

[보아하니 내가 말실수를 한 거 같군. 그럼 봉을 만들어준다 해도 소용이 없을 테니 이를 어쩐다..] 

당광의 눈이 왕령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봉으로  옮겨진다. 말하지 않아도 뜻은 명확히 전달된 셈이

다. 왕령도 느껴지는 바가 있어 봉을 진양에게 넘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가 받을 것 같

지 않았다. 그걸 증명하는 듯 그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흘러나왔다. 

[왕소저가 내게 봉을 넘겨주진 않을 것이니 눈치 볼 필요는 없다.] 

[너희 둘은 벗인데 어째서냐?] 

[누가 그녀와 벗이라고 했나? 난 정(情)의 저울질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친구로 삼지 않는다.] 

진양의 말은 왕령에게 있어선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 말은 곧 절교(絶交)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짓자 당광은 조금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이거 또 내가 실수했군. 그럼 봉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나는 봉이 필요 없다. 차라리 검을 넘겨라.] 

당광이 눈짓하자 한 도사가 그에게 검을 넘겨줬다. 진양은 검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럼 결정된 거 빨리 시작하지. 시간 끌 필요 없으니까.] 

[나도 그러길 원한다.] 

[그럼 간다!] 

그는 곧장 검을 들며 막 수식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당광이 갑자기 손을 들며 막는다. 

[잠깐 기다려라.] 

[또 뭐냐?] 

[내가 질 경우는 약속했지만 네가 질 경우는 말하지도 않았다.] 

[뭘 원하는지 말해라.] 

그의 말에 당광이 웃었다. 당주고를 힐끔거리더니 곧 입을 연다. 

[이 녀석은 내 둘째 아들이지. 벌써 스물 넷이나 됐는데 아직도 장가를 못 들었다. 헌데 몇 일전 이런 말을 하더군. 

드디어 훌륭한 여인을 발견했다고.] 

진양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방금 알게됐지.] 

[알만하군. 그럼 원하는 건?] 

[네가 지면 그녀와 내 아들은 혼인해야만 한다.] 

당광의 단호한 대답에 순간 진양이 몸을 떨었다. 등뒤에 있을 왕령이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

을지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돌아볼 순 없었다. 주먹을 꾹 쥐며 이를 악 물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녀와 나는 친구가 아니고.. 또  그녀가 내 종인 것도 아니다. 난  아무런 권한도 관심도 없으므로 

그 말은 수락할 수 없다.] 

[그래? 그렇다면 그녀에게 직접 물어봐야겠군.] 

[나와의 일을 먼저 해결하자. 조건부터 말해라!] 

진양이 소리쳤으나 당광은 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윽이 왕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 들었으니 또 해줄 필요는 없겠지. 자네도 강호인이니 격식을 갖출 필요도 없을 것이고. 어떤가?] 

헌데 정작 왕령은 대답이 없었다. 좋다 싫다하는 표정도 없고 단지 조용히 눈만 감고 있었다. 언뜻 보면 잔다고 오

해할 정도였다. 

[날 무시하는 건가? 어서 말해보게.] 

[나는..] 

그녀는 입만 열었다. 

[나는 진공자의 결정에 따르겠어요.] 

순간 진양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진공자란 뻔히 진양일 것이다. 갑자기 왜 그의  말을 듣겠다고 한 것인가. 진양

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이젠 입까지 닫아버린 왕령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떨리는 걸 진양은 볼 수 있

었다. 

[이거 곤란하게 됐군. 아무튼 본인이 네 결정을 다르겠다니.. 어쩔 거냐?] 

당광이 진양을 보며 한 말이었다. 허나 진양은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왕령이 무슨 의도로 그

런 말을 했는가 가늠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결정을 따르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분명 당가 놈에게 반한 게 확실한데.. 만일 내가 혼인하지 

말라고 한다면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건 무슨 뜻이지? 그녀는 심성이 착하지만 주관이 확실해서 이럴 

리 없을 텐데. 혹시 날 동정하는 건가? 내 마음을 이제야 깨닫고 동정하는 건가? 아니.. 아니면 내 마음을 깨달아서 

이젠 날 따르겠다는 건가? 정말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진양은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없었다. 6년을 함께 지냈다는 게 마치 헛것 같았다. 이런 그녀의  속뜻

도 모르니 자신 스스로가 답답해졌다. 문득 옆에서 자신을 재차 부르는 당광을 느꼈다. 

[아.. 미안하군. 잠시 생각하는 게 있어서 못 들었다. 뭐라고 했나?] 

[그녀가 네 결정을 따르겠다니 네가 대답해야지. 내 아들과 그녀의 혼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넌 나와 싸우기로 먼저 약조되지 않았냐? 언제 얘기가 이런 곳으로 흘러 들어갔어?] 

[꼭 그것부터 먼저 해야하느냐?]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당광은 먼저 조건을 내걸었다. 

[좋다! 그럼 내 조건은 이것이다. 싸움이 끝난 뒤엔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할 것!] 

그의 말에 진양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조건은 조건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일단 싸우면서 생각을 계속 해보기로 

하곤 검을 들었다. 

[자! 그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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