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十 二 章. 종남객잔(終南客潺) 1 (27/90)

                                  第 十 二 章. 종남객잔(終南客潺) 1

진양은 아직 이름도 모르는 거한과 함께 먼저 객잔을 찾았다. 바로 무굉이 찾아갔던 객잔인 것이다. 전진 도사를 만

나기 싫은 진양은 보광사 밑으로 크게 우회하여 객잔으로 향했다. 거한이 조금  이상하게 여기는 듯 싶었지만 묻지

는 않는다. 

그 객잔은 생각대로 그다지 크거나 호화스러운 객잔이 아니었다. 역시 산중에 있어 여행객의 발걸음이나 잡는 지극

히 평범하고 조용한 객잔이었다. <종남객잔>이라는 편액을 보니 왠지 속이 저려왔다. 

휘장을 걷고 들어서니 객잔 안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진양이 기대했던 무굉은 보이지도 않고 웬 여행객들만 서너 

명이 있을 뿐이었다. 한쪽 구석엔 그토록 보기 싫은 전진교 도사 두 명도 보였다. 다행이 처음 보는 얼굴이다. 

거한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점원을 불렀다. 점원이 급히 뛰어오자 그는  진양에게 묻지도 않고 제멋대로 주

문한다. 들어보니 닭 서너 마리에 죽엽청을 댓 병이나 시키는 것 같았다. 진양의 눈이 동그래진 걸 본 거한이 웃었

다. 

[뭘 그리 놀래? 너무 많이 시켰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아침이라 조금 배가 고프긴 해도 그렇게 많이 시키다니.. 거기에 죽엽청 댓 병은 또 뭐고.] 

[하하! 자고로 남자라면 많이 먹어야지. 술독하고 싸워서 이길 줄도 알아야 하고 말야.] 

진양이 실소했다. 시장기가 느껴졌지만 그만한 양을 다 먹어치울 능력은 안 되니 그에게 모두 떠맡기리라 생각했다. 

진양은 문득 이 거한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아직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도 자신의 이름을 묻지 않았

으니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묻지는 않았다.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 거한

도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냥 만나서 의기투합했으니 함께 술 한 잔이나 하며 서로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있던 거한이 자꾸 누군가를 힐끔거렸다. 진양이 보니  한 구석에서 만두를 집어삼키는 여행객 두 명이었다. 

복장이 평범하고 무기도 없는 게 정말 평범한 여행객으로 보였다. 

[그들이 뭐가 신기하다고 그렇게 열심히 쳐다봐?] 

거한이 미소했다. 

[아니 어디서 본 자들 같아서..] 

[세상엔 닮은 자들도 많은데 하물며 저들은 너무 평범해.] 

[그러니까 착각이라고 하고 싶은 거로군. 하하.] 

거한이 웃자 진양도 웃었다. 정말 왕령처럼 자신의 뜻을 잘  알아주는 자였다. 만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처럼 마음이 맞다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또 말투나 행동거지 생김새를 보면  무굉 같기도 해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막 점원이 달려오며 식사를 내려놓았다. 워낙에 양이 많아 죽엽청 다섯 병은 따로 들고 왔다. 진양이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이걸 다 먹으면 정말 돼지새끼가 되겠군.] 

[돼지가 되면 뭐 어때? 술이 있고 벗이 있는데 무엇이 아쉬우리!] 

[그거 참 명언이군. 하지만 거기에 닭다리도 집어넣어야지.] 

[닭다리를 넣으면 명언이 아니라 헛소리가 되는 거야.] 

거한은 제법 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다. 진양은 갑자기 제 사형 연경후가 생각났다. 

[시를 제법 아나보군.] 

[제법이라고 하긴 좀 그렇군. 그냥 나 혼자 주저리고 나 혼자 알면 됐지 뭐.] 

[그럼 실력이 형편없다는 뜻인가?] 

[바로 맞췄어!] 

거한이 닭다리를 뜯으며 대답했다. 진양도 닭 한 마리를 집어들었다. 

[그거 참 반들반들한 게 맛있기도 하겠다.] 

[그래도 먹으려는 걸 보니 무공엔 그리 연연하지 않는 모양이야.] 

원래 무공을 배우는 이들은 기름을 멀리한다. 조금씩 먹어두기도 하지만 많이 먹지는 않는 게 보통이다. 무공에 깊

이 심취한 자들 중엔 고기라곤 입도 안 대는 자들도 있다. 

[넌 그렇게 많이 먹는 걸 보니 무공은 아예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군.] 

[하하. 시와 술, 고기는 내 몇 안 되는 즐거움이야.] 

[어디 그 시 좀 들어보자.] 

진양이 웃으며 눈을 빛냈다. 아까부터 그의 시가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엔 관심도 없는 시였는데 지금은 조

금 달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왕령이 시를 좋아했다. 6년  동안 무공도 가르쳐주며 나름대로 혼자 이 책 저 책 

읽더니 언제부턴가 시를 읊조리기도 했다. 처음 진양은 시에 무슨 뜻이 담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냥 감정만 느

낄 수 있었다. 그저 이 시는 유쾌한 것 같고 저 시는 우울한 것 같고 하는 전체적인 느낌만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매일같이 읊조리다 보니 그도 시에 대해선 제법 알게 됐다. 귀동냥도 쌓이면 제법인데 하물며 6년이랴. 

[내 시는 혼자 알고 주저리는 데만 쓰인다니까.] 

[난 머리가 비상하니 알아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하하하! 정말 그렇다니 더 뺄 수도 없겠군.] 

그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손가락을 탁자에 톡톡거리며 뭔가 생각하더니 미소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저 앞산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대체 웬 호기(豪氣)더냐. 

비호 시켜 알아봐야겠다 하니 

비호가 되려 도망치더라. 

구석에 두 마리 말이 자꾸 눈알 굴리고, 

바람 끝에 흘러온 먼지부터가 심상치 않구나.> 

그의 목청은 매우 커서 객잔을 쩌렁쩌렁 울렸다. 다 들은 진양이 잠시 어리벙벙하다 갑자기 대소를 터트린다. 뭐가 

그리 우습다는 건지 도리어 힘들게 보일 정도였다. 

[내 시가 그렇게 형편없었나?] 

거한이 반쯤 미소하며 묻자 진양은 배를 부여잡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니 너무 훌륭하다. 정말 훌륭해!] 

[이거 의외인 걸. 내 시도 알아듣고..] 

한참 후에야 웃음을 멈춘 진양이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이 시의 제목이 뭐지?] 

[제목이 어디 있어. 그냥 시지 뭐.] 

[안 돼. 너무 훌륭해서 내가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거한이 한번 지어보라는 듯 웃자 진양은 한 자씩 끊어서 소리쳤다. 

[종남객잔!] 

[하하! 그거 정말 좋은 제목이다.] 

그들은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시끄럽게도 웃어댔다. 진양과 거한의 눈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도사

들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곤 여행객들에게로 가더니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대소를 터트렸다. 도사들과 여행객들도 이

들을 막 보고 있던 터라 기분이 상한 듯 했다. 도사 중 한 명이 일어서며 묻는다. 

[왜 우리를 보며 웃소?] 

[웃기니까 웃지 그럼 슬플 때 웃나?] 

진양이 여전히 웃어대며 약올렸다. 도사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다. 

[방금.. 그 시 무슨 뜻이오?] 

그 도사의 말에 여행객들의 안색도 확 변했다. 그제야 방금 거한의 시가 자신들을 놀렸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들

은 각자 방금 시를 읊조렸다. 저희들끼리 중얼중얼 하던 그들은 일순간 눈을  부릅뜨며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

다. 

[네 이놈들!] 

[너희는 또 뭐야?] 

[네놈들이 뭐라고 감히 모욕을 하느냐?] 

진양이 깔깔 웃는다. 

[지금 깨달으니 욕먹을 만도 했다.] 

여행객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진양과 거한에게 다가왔다. 도사들도 뭔가를 눈치챘는지 분노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진양이 물었다. 

[왜들 걸어오고 난리야? 우린 말먹이도 빗자루도 없다.] 

[보아하니 강호인 같은데 전진교의 대명을 모른다 하진 않겠지!] 

두 도사 중 어린 도사가 외쳤다. 거의 협박에 가까웠다. 허나 그런 말이 진양에게 통할 리가 없다. 

[모르지. 전진교에 무슨 대명이 있었나?] 

[너..] 

[대명은 모르고 악명(惡名)은 알만하다.] 

어린 도사가 뭐라고 소리치려하자 곁에 있던 중년 도사가 막았다. 

[말이 좀 심하구려. 무슨 원한이 있다고 우리와 이 분들을 모욕하는 거요?] 

중년 도사는 꽤나 수련을 했을 것 같았다. 말투가 정중한 게 심상치 않다. 진양이 웃으며 대답하려는데 거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는 내가 지었는데 왜 저 친구에게 따지시오?] 

[그럼 그대에게 묻겠소. 왜 우리들을 모욕했소?] 

[흥. 다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지.] 

중년 도사의 도관(道冠)이 갸웃거렸다. 

[이유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거한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창 밖을 내다보았다. 중년 도사는 더 궁금해져 재촉한다. 

[어서 말해보시오.] 

[나는 복면 쓴 괴한들을 본 적이 있소.]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한밤중이었는데 그들은 그때 막 사람을 죽이려 하고 있었지. 정정당당히 승부를 가린 것도 아니고 더럽게 자는 사

람의 혈도를 짚었소. 그리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기세였소.] 

객잔 안이 금방 고요해졌다. 도사들과 여행객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만 진양만이 미소를 머금었

다. 

[나는 일단 잠시 지켜봤소. 들어보니 그 위기에 처한 사람은 전진교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소. 그 복면인

들을 전진교가 위장한 거라며 소리쳤지. 복면인들은 한사코 부정했고 나만 매우 궁금해졌소. 어차피 그를  도우려고 

했으니 도울 겸 그 복면인들의 정체도 파헤쳐 보리라 생각했소.] 

[그래서 파헤쳤소?] 

중년 도사의 물음에 거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복면을 벗기 필요는 없었소. 그들의 무공만 보면 어느 문파인지 알 수 있으니까.  나는 천하를 주유한지 오래

되어 많은 무공을 접했소. 때문에 한번 맞서보면 어느 쪽 문파인지 알 수가 있는 거요.] 

[그럼 그들은 어느 문파였소?] 

중년 도사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뭔가 직감한 모양이었다. 

[바로 전진교였소.] 

[말도 안 돼!] 

어린 도사의 외침이었다. 

[분명 전진교였소. 그 검법은 분명 전진단검(全眞端劍)이오.] 

[정말 확실하오?] 

[그렇소. 일전에 그 검법을 본 적이 있는데 매우 뛰어나고 경쾌하여 잘 새겨뒀었소.] 

[그럼 그 때문에 우리를 모욕했구려.] 

중년 도사의 말은 조금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거한이 냉소한다. 

[그들은 단체로 움직였고 모두가 전진단검을 썼소. 전진교는 계층 구별이  확실하고 함부로 나서는 일이 없는데 그

렇게 행했다는 건 위의 지시가 있다는 게 아니겠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오. 지금 전진교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소.]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이번엔 거한이 물었다. 

[전진 칠자는 각자 할 일이 있어 전진교에 없고 일단 당광이  장문대행을 하고 있소. 당사질은 성품이 곧고 구사형

의 말을 잘 듣는 터라 그런 일을 저지를 리가 없소.] 

그의 말에 거한과 진양은 크게 놀랐다. 당광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구처기를 사형이라 한 것 때문에 크게 놀란 것

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중년 도사는 전진 칠자 중 한 명이 된다는 얘기다. 

거한은 오래 전부터 전진 칠자를 심히 존경해왔다. 일순 자신이 무례했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절을 하려 했다. 

[후배가 눈이 멀어 선배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하.] 

중년 도사는 웃으며 거한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도무지 절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단한 잠력이 도리어 그를 밀어냈

다. 중년 도사가 말했다. 

[여하튼 들어보니 전진교에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군.] 

[후배가 무례를 범했지만 분명 사실입니다. 바로 어제였습니다.] 

[정말 이상하군. 무슨 일이 생겼나?] 

중년 도사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말을 듣고는 그의 안색이 대변해버렸다. 

[정말 이상하지. 나는 중양궁에 들어가고도 당광의 성품이 곧다고 느낄 수 없었으니..] 

바로 진양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혼잣말이지만 중년 도사보고 들으란 말이 분명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젠가 어젠가. 당주고 그놈의 부탁으로 전진교에 갔었는데 당광이 매우 건방지더군.] 

거한의 낯빛이 다 변했다. 그의 말투가 너무 무례했던 것이다. 그의 성격에 대해선 조금 눈치챈 바도 있었지만 이런 

수준일 줄은 몰라 크게 당황했다. 급히 눈짓을 보내봤으나 진양은  본 체도 안 한다. 다행히도 중년 도사는 그다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소. 중양궁 안에는 외부인이 들어가기도 힘들고 당광은 선해서 남과 잘 싸우지 않소. 오만하다면 구사

형이 그리 칭찬하지도 않았을 거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 생각하나? 내가 중양궁 안에  들어가면서 만난 사람은 당주고 그놈과 당광, 그리고 

도사 두어 놈뿐이었다. 그리고 당광은 제 아들놈과 내 친구를 혼인시켰다!] 

[아니.. 당사손(師孫)을?] 

진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중년 도사의 안색이 변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전진교 제자는 함부로 혼인할 수가 없는데.. 이런 걸 사질이 모를 리도 없고.] 

[흥.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어떤 것이오?] 

[난주에서 가량이란 전진교 도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도사는 같은 전진교 도사들에게 쫓기고  있었지. 그 사람의 말

을 들어보니 당광이 어지간히 횡포를 부리는 것 같았다.] 

[뭐, 뭐라고! 량이가?] 

중년 도사는 대단히 놀란 것 같았다. 진양이 아느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그가 말했다. 

[량이는 내 제자요. 덩치가 크고 호방하지만 일을 저지를 놈은 절대 아니오.] 

[그렇지. 나도 그렇게 느꼈다. 다만 당광이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 당사질이 그럴 리가..] 

[믿기 싫으면 관둬라!] 

진양이 일갈하며 제자리에 앉았다. 중년 도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린 도사가 옆에서 거들자 그는 빨리 전진

교로 가야겠다며 급히 자리를 떴다. 이렇게 되자 객잔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거한은 재빨리 달려나가는 그에게 인

사도 못하여 아쉬운지 그가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전진 칠자를 존경하나보군.] 

거한을 향해 진양이 한 말이었다. 그러자 거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전진 칠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야. 요즘 평민에게도 호평이 잦잖아.] 

[그렇다고 하더군.] 

진양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다시 술잔을 들었다. 거한에게도 한 잔 따라주고 막 들이키려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호통 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우리는 사람으로도 안 보이느냐?] 

진양과 거한이 돌아보니 아까 그 여행객들이었다. 지금까지 조용히 듣기만 하던 그들이 이제야 따지기 시작했다. 진

양이 웃으며 맞받았다. 

[그래 넌 누구냐? 전진 칠자라도 되느냐?] 

[흥. 이 분으로 말하자면 전진 칠자보다도 더 대단하지.] 

지금 떠드는 자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들 일행은 모두 셋이었는데 청년이 가리킨  사람은 조금 나이가 먹어 보이

는 자였다. 

[그 늙은이가 대체 누구 길래 그러지?] 

[네 이놈! 말조심해라. 이 분은 바로 난주 최고의 방파, 감총방의 방주님이시다.] 

[감총방이라고?] 

진양은 왕령과 함께 난주에 있었던 때를 기억했다. 그때 말다툼이 일어났던 자들이 감총방 무리였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그 자리에서 대소를 터트렸다. 

[뭐가 우습냐?] 

청년이 소리치자 진양이 대답한다. 

[저번 난주에서 너희 감총방 일원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다. 그들도 감히 감총방에  맞서면 어쩌니 했는데 너희도 

비슷하군. 아주 대단한가보네.] 

진양의 말은 명백한 빈정거림이었다. 청년이 발끈하여 당장이라도 후려칠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그 감총방주란  중

년인이 나서며 그를 막는다. 감총방주는 진양을 잠시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쓸데없는 골칫거리를 만들기 싫다. 왜 우리를 모욕했는지나 대답하거라.] 

[일백 번만 절하면 대답해주마.] 

[흥. 어지간히 오만하구나.] 

감총방주는 마치 경멸한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진양도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때 갑자기 거한이 나섰다. 좀 

전 중년 도사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시는 내가 지었는데 왜 저 친구에게 따지시오?] 

감총방주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자네에게 묻겠네. 왜 우리를 모욕했나?] 

진양이 실소했다. 그들 대화가 좀 전 대화와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거한도 이를 잘 알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주에서 왔다니 내 생각이 더 맞겠군. 난 당신들을 어디서 본 것 같소.] 

[우리를 본 적이 있는 거와 모욕하는 거와 무슨 상관인가?] 

[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 그대들을 본 순간 누군지 바로 깨닫진 못했지만 느껴지는 건  있었소.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라는 걸.] 

감총방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은 비웃음기가 담겨있었다. 

[그럼 느낌만으로 우릴 모욕했다는 건가?] 

[아니오. 막 시를 지을 때였소. 바로 저 자를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소.] 

그가 가리킨 자는 방금 떠들던 청년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다른 청년이었다. 눈이 가늘게 찢어진 게 척 보기에도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이 아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재작년쯤 기련산(祁連山)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소. 이만하면 그도 알 테니 나머지는 직접 물어보시구려.] 

[재작년에 기련산이라. 차경(侘輕)아.] 

감총방주는 낮게 되뇌며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 청년의 이름이 차경인 모양이다. 그러자 그의 안색이 변하며 고

개를 흔든다. 

[사부님.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재작년엔 기련산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저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란 얘기냐?] 

[그렇습니다. 전 재작년 내내 장액(張掖)에서 지냈잖습니까?] 

감총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거한을 돌아보며 묻는다. 

[방금 한 말이 사실인가? 명확하게 대답해주게.] 

[알면서 묻는 건 또 무슨 심보인지 알 수가 없소.] 

거한의 말뜻은 분명했다. 감총방주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군. 장액은 사실 기련산과 가깝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겠네. 내 제자니 돌아가서 벌을 주

겠네만 체면은 지킬 수 있도록 해주게.] 

[감총방주가 직접 한 말이니 나도 그의 체면은 지켜주겠소.] 

체면을 지켜주란 얘기는 기련산에서의 일을 아무데서나 발설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저 이름이 차경인 제자를 

제법 아끼는 모양이었다. 거한은 그 말을 끝으로 가볍게 읍하곤 돌아섰다. 홀로 묵묵히 식사를 하는 진양을 보고 미

소하며 자신도 닭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감총방주는 그를 보며 빙그레 웃고는 말했다. 

[이름이나 알고 싶네.] 

간단명료한 물음이었다. 진양의 귀가 쫑긋한다. 

[내 성은 악(岳)씨요 이름은 만풍(萬豊)이올시다.] 

[아.. 악소협이었군. 그럼 나중에 또 보게. 좋은 인연이 있으면 좋겠네.] 

진양은 그제야 이 거한의 이름이 만풍이라는 걸 알았다. 감총방주의 말에 그는  일어서서 읍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

았다. 감총방주가 나가고 그 뒤를 따르는 차경이라는 청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이 다 나간 후에야 진양의 입이 열렸다. 

[이름이 본래 만풍이었군.] 

[내 이름만 알고 끝인가?] 

[알려달라고 말해야 알려주지. 내 성은 진이고 이름은 양이야.] 

[아하. 진양.. 진양..] 

그는 입에 닭고기를 문 채로 여러 번 되새겼다. 그 모습이 웃겨 진양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기련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자넨 말해줄 것 같지 않으니 그만 둬야겠군.] 

[대단히 알고 싶은가보네.] 

[내가 좀 호기심이 많거든.] 

진양이 농담에 악만풍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한번 약속했으니 지켜야지.] 

[물론이지. 만약 말해줬다면 난 곧장 떠나버렸을 걸.] 

그들은 함께 대소했다. 둘만 달랑 남은 객잔 안으로 웃음소리가 가득 메워졌다. 슬프고 분노하고 기쁜 일이 있는 괴

상한 산이 바로 종남산이었다. 

그들은 사흘 후에야 종남산에서 나올 수 있었다. 본래는 그 날 바로 떠나려 했으나 진양이 무굉을 기다려보자며 며

칠 더 묵은 것이다. 그러나 무굉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느낀 진양은 악만풍과 함께 종남산을 뒤져

봤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객잔 부근에서 싸움의  흔적만 찾았을 뿐이었다. 그곳은 나무 몇 그루가 부러져 

있었고 복면인들이 썼던 검은 헝겊이 여러 개 떨어져있었다. 

진양도 그렇고 악만풍도 그렇고 둘 다 딱히 갈 곳이란 없는 자들이었다.  악만풍은 원래가 천하를 떠도는 강호인이

었다. 그의 말로는 아직 못 가본 곳도 많다고 했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절강(浙江)에서부터 사천까지 동으로 서로 마치 여행객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진양은 강호 출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사천 지방은 제법 돌아다녀서  많이 알았어도 나머진 발도 대보

지 않았다. 그래서 악만풍의 여행담은 더욱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동정호(洞定湖)가 어떠며 서호(西湖)는 어떻

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진양이 너무 재밌어 해 그도 신이 났다. 가끔은 진양이 묻지도 않았는데 말해주

는 부분도 있었다. 

진양은 그의 얘기를 듣자 가장 먼저 가고 싶다고 느낀 곳이 바로  태산이었다. 이름처럼 대단하다고 하니 한번보고 

싶었다. 일전에 무굉과 오악을 둘러보기로 했지만 지금 그가 없으니 별 수 없었다. 거리는 대단히 멀지만 문제가 되

지 않는다. 

그들은 결정이 내려진 즉시 출발했다.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데 그런 명산 구

경이라면 더 없이 좋을 뿐이었다. 가는 길이 그러니 화산도 통해 가기로 했고 먼저 서안(西安)에 들렸다 가기로  결

정했다. 

서안은 예부터 이름난 고도(古都)였다. 진(秦), 한(漢), 당의 왕조가 도읍 했던 곳으로 장안(長安)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은 함곡(函谷)이요 서는 산(散)이고 남은 요(嶢) 또는 무(武)이며 북은 소(蕭)라는 4개 관문에 둘러싸여 있어 관중

(關中) 혹은 관내(關內), 진천(秦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장 번영했을 때는 당대로 동서남북으로 광활하게 자리잡은  대성곽과 150만에 이르는 인구가 그야말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허나 당나라 말기 나라가 쇠퇴하자 자연 그 번영했던 장안도 서서히 무너졌고 병변(兵變)이 겹쳐 매우 피

폐해지고 말았다. 

송이 건국된 후, 많은 보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그 훌륭했던 모습은 잃은 상태였다. 때문에 지금 서안의 모습

은 그다지 대단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진양도 들은 얘기가 있어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저들을 보자니 내 속이 끓는다.] 

막 서안 성내로 들어서려 할 때 악만풍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성문을 지키는 네댓 

명의 금국 병사에게로 꽂혀있었다. 진양은 그의 마음을 이해하곤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키는 자신보다 한 뼘

이나 더 커서 꼴이 조금 우습기는 했다. 

진양과 악만풍은 먼저 객잔을 찾았다. 방을 하나 잡고는 허기를 달래며 진양이 서안 성내를 둘러보자고 했다. 허나 

악만풍은 원하지 않는 눈치다. 아니,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도처에 금군이 널려 볼 때마다 내 주먹에 핏발이 선다. 헌데 어떻게 성내나 구경하고 놀자는 거냐?] 

[오해하지 마라. 나도 금군은 싫다. 그러나 저들 한두 놈을 때려죽인다고 천하 대세가 바뀌지는 않는다.] 

객잔 안에서 버젓이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처음엔 놀라운 듯  하다가 점점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지금 그들의 대화는 금국 관병에게 끌려가기에 아주  좋은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가까운 척 하거나 

보는 척 해서 함께 죄를 뒤집어쓰기 싫은지 객잔 손님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져버렸다. 

그럼에도 진양과 악만풍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그렇다고 금인과 웃으며 얼굴을 맞댈 수는 없다.] 

[좋은 방법이 몇 개 있긴 하지.] 

[어떤 방법들?] 

악만풍의 눈빛이 금방 빛을 발했다. 진양은 정색하며 대답했다. 

[첫째, 네가 창칼을 꼬나 쥐고 직접 전쟁터에 뛰어드는 방법이 있지. 그러나 네가 그러길 바라지는 않는다.] 

[나도 그 생각은 가져본 적 있어. 그런데 왜 바라지 않지?] 

[그렇게 되면 위의 지시를 따르기만 해야 하니까. 아무리 네 창법이  뛰어나도 너는 결국 그들 지시에 따라야만 할

거야. 더구나 지금 조정은 개판이다. 군대고 뭐고 개판이야. 그들 밑에서 창칼을 쥐는 건 보기 좋지 않다.] 

악만풍은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실소했다. 

[네 생각은 알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지.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는가?] 

[적어도 나와 친분이 있는 자는 그러지 않길 바랄 뿐이야.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좋아. 어떤 다른 방법이 있나?] 

진양은 잠시 여운을 남기며 시간을 끌다가 입을 열었다. 

[바로 어둠 속의 대협(大俠)이 되는 거지.] 

[어둠 속의 대협?] 

악만풍은 어리둥절해하며 되뇌더니 금방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요즘 그런 사람들은 많은 것만 봐도 그래. 하지만 몰래 

암습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어둠 속의 대협이란 자객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지금 강호인 중에는 스스로  자객이 되어 금국 장군을 암습

하는 자들도 많았다. 모두가 살 곳을 빼앗기고 조국을 멋대로 휘두르는 금국에 분노한 자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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