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十 二 章. 종남객잔(終南客潺) 2 (28/90)

                                  第 十 二 章. 종남객잔(終南客潺) 2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지는 것 같았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진양과 악만풍은 금새 깨달아지는 게 있어 서로 눈짓하

고는 재빨리 객잔 방으로 몸을 숨겼다. 과연 잠시 후에 관병들이 들이닥친다. 

단숨에 객잔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점원을  닦달하는 소리가 들렸고 제멋대로 방문들 열어  일일이 수색하는 듯 

했다. 악만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척을 들어보니 한 열 명 정도 되나보다.] 

진양이 놀라 물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내공이라도 끌어올렸나?] 

[내가 무슨 내공이 있겠냐? 너도 떠돌이 신세로 살면서 이 짓 저 짓 하다보면 자연히 익히게 될 거다.] 

악만풍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허나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감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기척을 알아

낸 방법은 대강 짐작이 갔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순간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옆방에서 들려왔는데 관병이 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듯 했다. 객잔 손님의 놀란 비명소리도 들린다. 

[이제 곧 들이닥치겠군. 저들 열 명쯤이야 무섭진 않지만..] 

악만풍이 중얼거리자 진양이 웃었다. 

[열 받으면 황제 모가지를 쳐버리는 수가 있어.] 

[하하. 이런 상황에 농담이라니 너도 참 무서운 놈이다.] 

[그런 말 하는 너도 마찬가지지 뭐.] 

그 때였다. 쾅쾅 소리가 들리며 문이 움찔거렸다. 진양과 악만풍은 서로 한번 쳐다보고는 각자 떨어져 몸을 숨겼다. 

곧 문이 부서지며 병사 세 명이 뛰어들었다. 

[여기도 없는 모양인데?] 

[이거 오가 그놈이 거짓말한 거 아냐?] 

[헛소리말고 수색해!] 

가장 연륜이 있어 보이는 병사가 고함쳤다. 병사들이 시퍼런 칼을 든 채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진양은 창가 부근

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악만풍은 바로 문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자 악만풍은 완벽히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진양은 그가 혼자 도망치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걸 증명하듯 악만풍이 재

빠르게 한 병사의 뒷목을 후려쳤다. 

[여기 있..] 

한 병사가 쓰러지자 남은 두 병사가 막  소리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에 의해 그들은  둘 다 고함을 

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무언가를 맞고 즉사해버렸기 때문이다. 진양이 모습을 드러내자 악만풍이 인상을  찌푸렸

다. 

[꼭 죽일 필요까지 있었나?] 

[그걸 말이라고 해? 이놈도 죽여야 한다.] 

진양은 악만풍에게 뒷목을 맞아 기절한 병사마저 죽이려했다. 악만풍이 놀라 막았다. 

[왜 죽이려고 하는 거야? 그만 둬.] 

[이놈도 죽여야 안전해져. 만일 살려두면 좋을 게 없을 거다.] 

[아니. 함부로 죽일 필요는 없어. 이 자는 너도 나도 보지 못했으니 걱정 없어.] 

이만하면 뒤바뀌어도 단단히 뒤바뀌었다고 할 수 있었다. 금인 한 명 죽여봤자  이득이 없다던 진양이며 금인을 보

면 핏발이 선다는 악만풍이며 서로 뒤바뀌었다. 그러나 어찌 뒤바뀌었다고 말할 수만 있을까. 이건 금인에 대한 생

각이 뒤바뀌었다기보다 진양, 악만풍 각자의 성격 차이에 가까웠다. 

쿵쿵 소리가 들렸다. 관병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이 방으로 오는 게 분명했다. 악만풍이 진양의 어깨를 잡아끌며 창

문으로 향했다. 진양은 그 병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찰나지간에 뇌리로 사

부 조덕의 말이 떠올랐다. 

<작은 것에 따져들면 대협은 될 수 없지만, 영웅은 될 수 있다.> 

이 말은 오래 전 함종문에 있을 때 들은 말이었다. 진양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느껴지는 바가 있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작은 것에 얽매이면 분명 대협은 될 수 없는 법. 그러나 대신  영웅이 될 수 있다. 여기서의 영웅이란 

호방한 기개를 가졌다거나 악비 장군 같은 명장을 뜻하는 바가 아니다. 그것과는 관계없이 사람의 치밀함을 강조하

는 말인 것이다. 고로 작은 것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꼼꼼히 따져들면 어떤 해도  입지 않아 보통 이상은 간다는 조

금은 애매한 말이다. 

진양은 그 말을 기억하자 일순 가슴이 뜨끔했다. 곧 결심한 그는 악만풍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가는 척 하면서 

몰래 오른손을 뒤로 내뺐다. 그리고 중지를 세차게 퉁겼다. 병사의 백회혈이 짓눌린다. 팍 하는 음향이 들렸으나 주

변이 소란스러워 악만풍은 못 들은 듯 했다. 진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악만풍과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도망친 후, 금국 관병들은 소란스레 찾으며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 나흘 간 서안 성내를 뒤지는 것 같긴  했으나 못 

찾아내자 포기했다. 물론 방(榜)은 여전히 붙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어떤 소득이 있을 리 없다. 

첫째 이유는 대담하게도 서안 객잔 안에서 금국에 대항하는 방법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서안은 알다

시피 오래 전에 금국 영토가 되었다. 송은 국토의 절반을 금국에게 빼앗긴 상태다. 때문에 이 서안 같은 곳에선 끼

리끼리 몰래 수군거리기는 해도, 대담하게 서안 중심에 있는 객잔 안에서 떠들지는 못한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

은 그들을 칭찬하며 아무도 관병의 말을 듣지 않았다. 

둘째 이유는 사실 진양과 악만풍이 변장을 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칭찬하며  입을 다문다 해도 반드시 그 

중엔 입을 여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아니면 어떻게 진양과 악만풍의 얼굴이 버젓이 방문에 붙여졌겠는가. 이 점

을 알고 있던 그들은 각자 변장을 했다.  까짓 거 서안에서 떠나면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동서남북 성문으로 모두 

방이 하나씩 붙어있기 때문에 그냥 서안에 남기로 했다. 쓸데없이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진양과 악만풍은 서안 향락가(享樂街)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 사실마저 소문이 퍼진다면 사람들은 그들의 대담성

에 거품을 물 것이다. 그 누가 짐작하겠는가. 관병에 쫓긴다는 자들이 서안 중심에 있는 곳이며 그것도 관병 등 금

인이 많이 찾은 향락가에 머문다는 것을. 더구나 창녀들은 재물에 매달리기 때문에 어찌 보면 미친 짓에 가까웠다. 

진양은 이 날까지 향락가에 온 적이 없었다. 얘기야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온 건 처음이었다. 악만풍도 오기는 처음

인 것 같았다. 그들은 각각 떠돌이 서생과 짐꾼으로 변장했다. 남들이 볼 땐 절대로 함께 있지 않았고 밤에만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향락가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청루(靑樓)에서 지내는 것이다. 

[공자님. 소월이라고 쓸 만한 아이가 있는데 어때요?] 

[내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는데 끝까지 그러는군!] 

[벌써 사흘째예요. 저 지저분한 짐꾼까지 데리고 들어왔으면 대가가 있어야 할 게 아녜요?] 

그 청루의 한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말투로 보아 거의 말싸움에 가까웠다. 그 공자라는 사람의 목청이 드세

졌다. 

[그 친구도 곧 올 거요! 그러니까 그만 하고 썩 나가시오!] 

[그 친구 분은 대체 어떤 사람이라고 그러세요?] 

[그거 참 잔말이 많구나!] 

호통과 함께 탁상을 후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 방문이 열리며 온몸에 치장이란  치장은 다 한 중년 여인이 튀

어 나왔다. 보아하니 이 청루의 주인 같았다. 그녀는 연신 투덜거리며 사라졌다. 

[정말 지긋지긋하군!] 

청루 주인과 말싸움을 벌이던 서생은 바로 진양이었다. 생김새가 험악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아 대충 변장을 하니 아

주 감쪽같이 서생이 되어버렸다. 저 구석에 오므리고 있던 짐꾼이 낮게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나는 더 지긋지긋해. 이젠 지저분하다고 아예 박대하잖아. 처음 눈빛부터가 밉살스럽더니..] 

[그래도 지저분한 건 사실이지 뭐.] 

진양이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그 짐꾼은 물론 악만풍이다. 

그들은 지금 이 청루에서 방 하나 잡고 지내고 있었다.  이제 때가 돼서 오늘밤에 길을 떠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여전히 그 주인이 문제였다. 매일같이 와서는 누가 괜찮니 누가 처음 온 거라니 하며 달달 볶는 것이었다. 몇 일은 

친구를 기다린다며 넘겼지만 벌써 닷새니 무리기도 했다. 게다가 가끔 그 주인의  눈빛이 반짝이는 게 오래 있어봐

야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어제 밖에 나가서 알아보니까 많이 잠잠해졌더군. 오늘밤에 떠나도 무리는 없겠어.] 

[성문은 어떻게 할까? 부수고 나갈까 성벽을 넘을까.] 

[하하! 그거 참 재밌겠군. 그때 생각하지.] 

진양이 웃으며 맞받았다. 오늘밤에 서안을 나서서 바로 화산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화산을 지나면 낙양 형가

장에 들릴 것이고 그곳을 지나 태산에 도달할 계획인 것이다. 진양은 마음속으로 이미 이런 계획을 세워두었다. 악

만풍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굳이 미리 말해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할 일도 없는데 나가서 상황이나 알아보고 오마.] 

[왜 항상 너만 놀다 오냐?] 

악만풍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허나 진양은 그가 정말 불만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너도 이런 고집을 부릴 때가 다 있군. 너는 생김새가 무슨 산도적 같아서 남들 눈에  잘 띄잖아. 네가 나가면 분명 

관병과 대판 싸우고 말 거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럴 거 같다.] 

진양은 미소하며 잠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만큼 곤혹스러운 일도 없었다. 말투도 서생인양 느릿느릿 누가  어쨌느

니 하며 평소처럼 방종(放縱)하게 굴 수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재밌기도 했다. 백우선(白羽扇)을 흔들고 곱게 펄

럭이는 백삼(白衫)이 옛날 그 촌티는 벗은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만 봐도 알만한 것이다. 

그는 오늘도 백우선을 흔들며 느릿느릿 걸어나갔다. 그가 바로 들른 곳은 역시 객잔이었다. 저번에 소란 피웠던 객

잔은 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서안에 객잔이 그곳 하나는 아니었다. 객잔에 들어서자 점원이 웃으며 급히 반겼다. 몇 

일간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찾자 어느새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점원의 안내에 의해 자리를 잡으며 주변을 쓸어보

았다. 

(오늘은 수다쟁이들이 없군. 얘기도 별로 못 듣겠는 걸.) 

이곳은 그에게 있어서 소식통이나 다름없었다. 본래 객잔이란 곳이 여행객이나 입만 산  자들이 잘 찾는 곳이라 진

양의 경우라면 더 없이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헌데 오늘은 그 입만 산 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없어도 한두 사람은 

있더니 오늘은 우연히 한 명도 안 온 모양이었다. 여행객 차림의 사람들은 몇 일행 보였다. 

[오늘은 벗할 사람이 없나 보군요.] 

점원이 건넨 첫마디였다. 과연 이 일을 많이 해서인지 눈치가 빠른 듯 했다. 

[그러게. 오늘은 별로 인물이 안 보이는군.] 

[그래도 여행객들은 많습니다. 세상이야기 들을 수도 있으니 그들도 좋죠.]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피식 웃었다. 본래 그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지만 지금 상황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는 여느 때처럼 죽엽청 한 병과 만두를 시키고는 주변 사람들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더니 그가 말하더군. "나는 개자식이다. 나는 개자식이야. 헤헤." 이러면서 말야. 언제 봐도  웃기는 미친놈이라

니까.] 

[하하. 그놈 놀리는 맛도 있는데 너무 그러지 마라.] 

별로 들을 만한 이야긴 아니었다. 진양은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에 소야청루에 소월이라는 애가 들어왔대. 어찌나 요염한지 한번  일을 벌였다 싶으면 그냥 끝이라고 하더

라.] 

[에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난 못 믿겠다.] 

[그럼 오늘 한번 가볼까?] 

진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이고 저쪽이고 들을 만한 대화라곤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잡담(雜談)에 불과했다. 그

런데 그가 막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에 번쩍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창가에 앉은 네 명의 미녀. 하나같이 미모가 절

륜하여 이미 몇몇 사람들의 시선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진양의 눈에 띄었던 건 미모 때문이 아니라 그녀들의 복

색이었다. 산뜻한 선홍(鮮紅)색의 옷을 모두 똑같이 입은 것이었다. 비단 색뿐이 아니라 옷 자체가 같은 옷인 듯 했

다. 똑같이 짜 맞춰 입은 모양이다. 

진양은 이런 사람들을 몇 번 본 적이 없어서  금방 호기심이 솟았다. 꼭 네 자매 같기도 해서  잘 보았으나 자매는 

아닌지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허리춤에 매달린 장검이 그들이 강호인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사부님 말씀대로 강호엔 정말 해괴한 인물들이 있구나. 내참.. 똑같은  홍의를 입은 네 명의 미녀라니 재밌기도 해

라.) 

진양은 어지간히 신기한 듯 연신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뒤에서 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점원이 웃고 있

었다. 그는 술과 만두를 내려놓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한 미녀들이죠? 저도 처음 봤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허리에 검이 있으니 그 강호에 사는 사람들일  지도 

몰라요.] 

[걱정해주니 고맙군.] 

진양은 속으로 웃음이 터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죽엽청을 한 모금 들이키며 다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정말 예쁘긴 했으나 역시 왕령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왕령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 따

로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고 마음이 울적해졌다. 

진양은 왕령의 생각을 지우기로 했다. 항상 그녀만 생각하면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럴 때면 언제나 술이 자신을 달

래주었고 악만풍이 자신을 달래주어다. 비록 악만풍이  자신의 이런 심정을 알리는 없지만 그와  함께 지내면 이런 

아픔이 조금 잊혀지는 것 같았다. 친구로써 함께 호호탕탕 웃음을 터트림에 한 가닥의 기쁨을 느꼈다. 

그는 곧 미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왕령의 생각을 접고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다. 뭐 대단한 얘기라도 

엿들을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고 단지 그녀들이 괴상하여 호기심이 돈 것뿐이었다. 

[서매(西妹). 이제 어쩌지? 소주(小主)님은..] 

[휴.. 어쩔 수 없죠. 저희는 소주님만 지켜드리면 되요.] 

과연 대화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진양은 내공까지 끌어올려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엿듣기 시작했다. 

[언니. 그들의 무공은 아직 우리가 감당키 어려워요. 저희 몸 하나 지키기도 어려울 거예요.] 

보아하니 다들 언니 동생 하는 사이인 듯 했다. 방금 말은 가장 어려 보이는 소녀가 한 말이었다. 

[하지만 소주님 뜻이잖아. 만일 소주님이 해라도 입으신다면 우린..] 

[서매. 걱정 마.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치면 모두 무사할 거야.] 

진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들의 표정이 대단히 심각한 게 무슨 큰 일이 닥친 듯 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소주

님>이란 사람도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 가장 어린 소녀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소주님은 마보진검(馬步眞劍)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어요.] 

[북매(北妹)! 말을 삼가라.] 

[하지만 언니..] 

[마보진검은 본래 평범한 자들이 접할 수도 없는 무공이야. 가주님도  완벽히 깨우치지 못하고 돌아가신 만큼 아무

리 소주님이라 해도 금방 깨우칠 순 없지.] 

묵묵히 있던 한 소녀가 침울한 음성으로 말한다. 

[소주님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그들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모두 그 말에 동감하면서도 슬픈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말문을 연 건 큰언니

인 듯한 여자였다. 

[모두들 잘 들어. 소주님이 결정하신 거니 우린  그에 따르기만 하면 돼. 언제나 그랬듯 소주님만  지켜드리면 되는 

거야. 지금 소주님은 아직 그들의 실력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러지 이번 일을 겪고 나면 변하실 거야.] 

[허나 정면으로 쳐들어가겠다는 건 너무 무모해요. 아무리 한밤중이라지만 그들은  인원이 많으니 방비도 잘 할 거

예요.] 

[됐어. 이제 그만 하자. 우린 소주님만 따르고 지키면 되는 거야.] 

그녀들의 말투는 불평인 것 같지만 표정을 보면 그게 걱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양은 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라

고 저런 대접을 받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소주님은 왜 안 오시죠? 오실 때가 됐는데.] 

[호..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북매. 걱정될 말은 하지마. 소주님은 좋은 분이라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하는 그녀도 눈에선 조급해진 빛이  보였다. 진양은 더 궁금증이 치솟았다. 그녀들은 그대로 

채 반 각을 있지 못했다. 다들 불길한 생각을 해서인지 안절부절못하더니 결국엔 한 소녀가 자리를 박차며 말했다. 

[언니! 도저히 안 되겠어요. 북아 말을 듣고 나니까 더 걱정 되요.] 

[나도 그렇다. 빨리 찾으러 가자.] 

그녀들은 금새 객잔을 나섰다.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다. 진양은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자신의 호기심을 억누를 자신

이 없었다. 그는 즉시 품에서 은덩이를 내려놓고는 자리를 떴다. 그녀들을 미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들은 흩어져 찾지 않고 한곳에 뭉쳐서 움직였다. 사람을 찾는다면 흩어지는 게  좋을 텐데 멍청하게 뭉쳐 다니

다니 조금 실망감도 들었다. 그녀들은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성내를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른 객잔을  뒤지더

니 술집도 찾아가고 무기점도 들렸다. 그러나 그 소주님이란 사람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진양은 그녀들의 

곁에 붙어 다니면서도 존재감 없게 행동했다.  유유하게 걷는 평범한 서생처럼 다녀서 그녀들도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문득 한 소녀가 입을 열었다. 

[언니. 혹시 그.. 그.. 그곳에 계시는 게 아닐까요?] 

[그곳? 아..] 

갑자기 그녀들 얼굴이 모두 새빨개졌다. 잠시 주춤주춤 하더니 결국엔 걸음을 옮긴다. 진양의 궁금증은 이미 치솟을 

데로 치솟아 더 오를 곳도 없었다. 그녀들을 다시 미행한다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녀들 따라가는 길은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꼬불꼬불 이리 박고 저리 박고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보아하니 서

안 지리를 거의 모르는 것 같았다. 진양도 온지 겨우 몇 일밖에 안 됐지만 소식을 얻으러 다니느라 지리는 이미 익

혀둔 상태다. 그러니 그녀들이 매우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가던 그녀들은 겨우 서안 중심을 벗어나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아직도 원하는 곳을 발견 못했는지 자꾸 두리

번거린다. 진양은 너무 답답해서 그 원하는 곳을 아예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

까. 은근히 누런빛이 서안을 휩쌀 때쯤 드디어 그 장소를  찾은 것 같았다. 그녀들은 다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더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진양은 이상해서 눈을 돌리다 하마터면 대소를 터트릴 뻔했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찾아온 곳은 바로 향락가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 소주님이란 사람이 이런 곳을 좋아했나 보

다. 진양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돌아올 것인데 이렇게 됐으니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그는 잠시 그녀들

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 참 재밌기도 하다. 

[언니. 어떡해요?] 

[나도 모르겠어. 저기는.. 저기는..] 

[에이. 제가 갈게요. 언니들은 여기서 기다려요.] 

그 어린 소녀다. 진양은 그녀의 대담함에 미소를 머금었다. 

[북매 네가? 안 돼 그건.] 

[그럼 어떡해요? 저밖에 없어요. 제가 가장 어리니까 남들도 이상하게 보진 않을 거예요.] 

[그, 그건..] 

언니들이 대답을 못하니 그녀는 활짝 웃음꽃을 핀다. 

[제 철면피(鐵面皮) 무공을 보여주겠어요! 호호.] 

진양은 풋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그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녀는 참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라고 생각했다. 

진양은 그녀가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그녀의 그 철면피 무공도 볼 겸 어쩔 겸 하면서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그녀는 어깨를 펴고 당당히 청루로 들어섰다. 알고 보니 그 하고많은 기루 중에 또 진양이 묵는 그 청루였다. 진양

은 이들과 인연이 있는 게 아닌가 하며 다시 실소했다. 그나저나 그 소녀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철면피 무공을 

보여준다는 게 정말 장난은 아닌 거 같았다.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재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의 안색은 

어떤 변화도 없었다. 

[아니 넌 뭐니? 어서 나가라!] 

그 주인집 여편네다. 진양은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청루 주인이 또 알아보고 닦달하면 귀찮아질 듯 해 몰

래 걸음을 돌렸다. 한쪽 구석에 서서 소녀의 행동을 엿보기로 했다. 

[전 여기에 소주님을 찾으러 왔어요.] 

[네 소주님이 어디 있어? 얼른 나가지 못해?] 

[흥. 곱게 나가라고 하면 되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예요?] 

소녀가 코웃음치자 주인은 어이없고 화도 나는지 버럭 호통쳤다. 

[썩 나가!] 

[소주님 만날 때까진 안 나갈 거예요. 빨리 우리 소주님 어디 있는지 말해요.] 

[이 년이..] 

주인은 소녀를 얕보고 손을 번쩍 쳐들었다. 진양이 보니 정말 때릴 기세는 아니라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데 소녀는 그게 정말 때리려는 걸로 착각했는지 반격을 해버렸다. 그녀의 손이  움찔하는 찰나 소녀의 주먹이 콧잔

등을 후려쳤다. 

[아얏! 이 년이 사람 친다.] 

소녀가 마지막에 힘을 뺀 듯 싶었다. 무공을 아는 거 같은데 위력이 없는 걸 보면 그랬다. 허나 주인은 아무것도 모

르고 악을 질러댔다. 그러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시선을  돌린다. 그 중엔 벌써부터 험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자들도 있었다. 

[빨리 우리 소주님을 불러줘요. 안 그러면 이 청루에 불질러버릴 테야.] 

[뭐라고? 이 조그만 게..] 

갑자기 호통 소리가 들린다. 

[대체 무슨 일이야! 장사 말아먹고 싶어?] 

뒤에서 웬 덩치 큰 남자가 달려왔다. 청루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 듯 싶었다. 주인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 내 말을 들어봐요. 이 망할 꼬마 년이 나타나서는 제 소주님 내놓으라고 난리잖아요.] 

[이 년아! 넌 이런 꼬맹이도 하나 처리 못해?] 

[얘가 보통 애가 아니에요. 여길 봐요 여길!] 

그녀는 온갖 엄살을 다 부리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보아하니 그 거한의 힘을 빌리려는 듯 했다. 거한이 흉측한 눈을 

치켜 떴다. 

[꼬마야. 얼른 가지 않으면 혼내줄 테다.] 

[무서워서 갈 거예요. 하지만 소주님은 찾아줘요.] 

이만하면 거의 애교에 가까웠다. 진양은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그들의 상황을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갑자

기 거한이 피식 웃으며 말투가 변했다. 

[네 소주님이 누구냐? 그렇게 원하니 찾아줘야지.] 

[우리 소주님은.. 매우 훤칠하시고 뛰어나신 분이에요. 한번 보면 잊지 못해서 바로..]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거한은 휙휙 손을 흔들며 주인보고 말했다. 

[들었지? 빨리 찾아.] 

[아니 왜요? 이 꼬마 년이..] 

[그거 참 찾으라면 찾을 것이지 말이 많구나!] 

거한이 호통치자 그녀는 찍 소리도 못하고 주춤주춤 움직였다. 그 모습이 통쾌한지 소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편 지켜보는 진양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저 거한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

다. 오래 전에 얘기를 들을 적 청루에서 위세를 떠는 자들은 실속이 없고 돈에 미친 자들이라고 했다. 돈만 된다 싶

으면 어린애 건 노파 건 모두 팔아 넘긴다는 얘기다. 즉, 별 볼일도 없는  시정잡배다. 헌데 이 거한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소녀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다. 

하긴 진양이 알 턱이 없다. 이 청루 주인은 사실 장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강호인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 듣기

야 많이 들었어도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거한은 오랜 경험으로  소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만 보고도 그녀가 강호인이란 것을 깨달았다. 검만 매단다고 다 강호인은 아니겠지만 이런 어린 소녀가 청루까지 

들어왔으면 보통 소녀는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때였다. 

[아이고 이 빌어먹을 종놈아. 그게 무슨 짓이냐?] 

그 주인의 목소리였다. 사람들 시선이 단숨에 돌려졌다. 계단으로 옷이 더러운 남자가 한 명 걸어내려 오고 있었다. 

헌데 그의 손엔 웬 남자가 한 명 들려져 있었다. 그 자의 안색은 파리한 게 대단히 겁먹은 듯 했고 지금 이 황당한 

모습에 주인이 지른 소리였다. 보는 사람들도 황당한지 다들 실소를 하고 있었다. 진양도 마찬가지지만 이유는 다르

다. 

[이 종놈아! 어서 그 분을 내려 놔!] 

[자꾸 종놈 종놈 하지 마라. 이놈이 누군 줄 아느냐? 정도 의리도 없고  제 아비의 복수조차 안 한 채로 이런 청루

나 오는 놈이다.] 

그 사람은 악만풍이었다. 진양은 그의 손에 들려진 남자가 누군지 몰랐지만 악만풍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만풍은 그 자를 들고 대청까지 와서야 놓아주었다. 물론 그냥 놓아준 게 아니라 집어 던진 편에 가까웠다. 진양이 

그의 얼굴을 보니 매우 훤칠한 남자였다. 얼굴이 백옥처럼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미남도 보통 미남이 아니었다. 

그 순간이었다. 

[앗! 소주님!] 

진양이 깜짝 놀라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그 자에게 달려가 소란을 피웠다. 그도 의외인지 눈을 동그

랗게 뜨며 말한다. 

[아니 북아가 아니냐. 왜 이런 곳에 왔느냐?] 

[소주님이 걱정 돼서요. 오신다고 한 지가 한참 돼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진양은 상황이 참 재밌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악만풍은 그 미녀들의 소주라는 자와 아는 사이란 얘기지 

않는가. 진양은 나무 기둥 뒤로 숨어서 계속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소녀는 제 소주님을 일으켜 세웠다. 보니 그는 딱히 다친 곳도 없었다. 다만 악만풍을 의식하는지 자꾸 그를 힐끔거

렸다. 그가 무서운가보다. 소녀도 그를 아는 듯 했다. 

[악대협. 안녕하세요.] 

[내가 무슨 대협이니? 이곳은 좋은 곳이 아니니 썩 나가거라.] 

[악대협도 여기 계시면서 저는 왜 나가야 하죠?] 

그녀의 말엔 약간의 조롱기가 담겨 있었다. 악만풍이 대소했다. 

[하하! 역시 너만은 못 당하겠다.] 

[악대협이 봐주신 거예요.] 

소녀는 활짝 웃으며 답하더니 곧 소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소주님 때문에 이곳에 오신 건가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다른 일 때문에 온 거다.] 

[헌데 왜 저희 소주님을 괴롭히세요? 대장부답지 않아요.] 

소녀가 입을 삐쭉 내밀었으나 악만풍은 정색했다. 

[괴롭힌 게 아니라 혼내주려는 거다. 넌 여기가 뭐 하는 곳인 줄 아느냐?] 

그의 말에 소녀의 얼굴이 잠깐 달아올랐으나 이내 사라졌다. 

[청루라 한다고 들었어요. 자세히는 몰라요.] 

[그러면 됐다. 네 소주인을 혼내게 내버려둬라.] 

[어떻게 그래요? 저는 자세히 모르니 가만있지 않겠어요.] 

악만풍이 실소했다. 그녀가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넌 이놈만 감쌀 필요가 없다. 네 소주인이지만 이놈은 도대체가 인간답지 못해. 정도 의리도  없는 건 알았어도 복

수까지 잊고 있는 놈인 줄은 몰랐다.] 

[그건..] 

그녀는 악만풍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며 자꾸 그 소주인만 힐끔거린다. 

악만풍은 곧 그의 앞에 다가서며 소리쳤다. 

[사공환(司空煥)! 부모님의 원수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이라 했다. 이 말을 모른다 하진 않겠지?] 

[다, 당연히 알고 있소.] 

[알고 있는 놈이 청루에서 창녀와 놀아나고 있단 말이냐!] 

악만풍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공환은 대단히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츠리며 떨었다. 소녀가 참지 못하고 나

선다. 

[악대협! 그만하세요.] 

[흥. 오늘은 이 아이를 봐서 그만두겠다만 나중에 또 이런 곳에서 만난다면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 

진양은 악만풍이 이만큼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조금은 신기하고 놀라워 한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화를 내니 정말 무섭긴 하다. 소녀가 사공환을  부축했다. 사공환은 다리까지 후들거리며 걷지 못하자 소녀가 

할 수 없이 부축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을 비켜지나 밖으로 사라졌다. 

진양은 저 사공환과 신기한 미녀들, 그리고 악만풍과의 관계가 매우 궁금했다. 그들이 떠나자 쫓아갈까 했으나 차라

리 악만풍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고는 포기했다. 다시 유유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청루 대청을 

지나 방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악만풍이 웃는 얼굴로 맞는다. 

[이제야 오는군. 왜 이리 늦었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잘 알아봐야지.] 

진양은 대충 둘러대고는 이상하다는 듯 악만풍을 쳐다보았다. 악만풍도 이상하다는 듯 묻는다. 

[아니 왜 그렇게 쳐다보나?] 

[안색이 이상하잖아. 무슨 일이 있었나?] 

악만풍이 잠시 놀란 듯 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진양은 연신 왜 그러냐며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걱정으

로 위장한 재촉이나 다름없었다. 악만풍은 그런 진양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진양이 또 재촉하자 

그제야 입을 뗀다. 

[좀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거야?] 

[너 혹시 사공씨 가문에 대해 알아?] 

악만풍이 갑자기 되물었다. 진양은 사공씨 가문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한 때를 풍미했던 무가(武家)

라는 것만 알았다. 

[잘은 모르지. 헌데 왜?] 

[방금 그 가문의 후손을 만났어.] 

[후손? 사공 가문은 10년 전인가 전부 몰살당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17년이지.] 

진양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사공 가문의  후손이 사공환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허나  내색하지 않으며 무슨 

일인지 들려줄 것을 재촉했다. 악만풍이 미소했다. 

[유난히 재촉하는군. 매우 궁금한가보네.] 

[그럼 당연하지. 네 안색이 그 꼴인데.] 

진양은 뜨끔했지만 재빨리 대답했다. 그러자 악만풍은 조용히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사공 가문은 17년 전에 몰살당했어. 누가 저지른 일인지 아나?] 

[모르겠다.] 

[몰살시킨 자들은 바로 낙양 2대가장 중 하나인 형가장이야.] 

그의 말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형가장이라면 옛날 만났던 그 전진교 도사 가량의 장인집이 아닌가. 그는 자신

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올렸다. 품속엔 그 날 가량이 준 백색 진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엔 이 사실까지 퍼지지 않았어. 다만 사공 가문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했다는 것만 퍼졌지.  이유는 형가장이 쉬

쉬했기 때문이고.] 

[형가장이 왜 그들을 몰살했지? 언뜻 듣기로 형가장 장주(莊主)인 형웅강(衡雄强)은 대협으로 불린다고 하던데.] 

[그래. 쾌묘대협(快卯大俠)으로 불리지. 남 돕기를 좋아하고 무공도 대단하다.] 

[헌데 어떻게 된 거야?] 

악만풍은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입에선 어느덧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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