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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三 章. 무인(武人)의 자존심 1 (29/90)

                                 第 十 三 章. 무인(武人)의 자존심 1

악만풍은 먼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북송(北宋) 시대였어. 당시 강호엔 불세출(不世出)의 대협이 한 분 계셨지.  강호인들은 모두 그를 천무대협(天武大

俠)이라 부르며 칭송했었다.] 

[천무대협? 오래 전에 내 사부님으로부터 들은 것 같다.] 

[그래. 알고 있다니 설명이 쉽겠군. 천무대협의 무공이 대단한 건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사부님께서 그러시길, 천무대협은 천하제일이라 남들이 감히 발끝도 따를 수 없다 하셨어.] 

[그렇지. 천무대협은 그처럼 뛰어났다. 그는 살아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어. 그러다 보니 자연 싸움도 잦았지. 많

은 무리와 싸움을 벌이고 그러면서도 반드시 이겼기 때문에 천무대협이란 칭호가 주어진 것이기도 해.] 

[그렇군. 헌데 그게 사공 가문 얘기와 무슨 상관이 있지?] 

[천무대협과 결투를 벌인 자들이 많았지. 당시 강호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다는 무인들과 다 겨뤄봤을 거야. 그가 원

한 건 아니고 세상이 원했겠지. 그는 어쨌든 천무대협이고 천하제일이었으니까.] 

진양은 조금 감이 잡혔다. 

[그 중에 누군가 있었군.] 

[그래. 그 중에 형초후(衡初厚)란 사람이 있었어. 이 형초후란 사람은 인간성이 좋지는 않았지만 쾌묘검법(快卯劍法)

으로 대단한 명성을 날렸지.] 

[아하! 바로 형웅강의 조상이로군.] 

악만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형웅강의 아버지였다. 사실  형초후는 천무대협에게 악심은 없었어. 그러나  그를 천하제일로 인정하는 

게 싫었다고 하더라. 자신이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고개를 저으니 결국 그와 결투를 하기로 결심한 거

야.] 

[졌겠군.] 

[바로 맞췄어. 형초후는 천무대협에게 패했어. 쾌묘검법이 굉장히 빠르고 뛰어난 검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천무대

협을 이길 순 없었어. 왜냐하면 천무대협은 말  그대로 천무(天武 = 하늘의 무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게 

정말 신선의 무공인지는 몰라도 대단하긴 했나봐.] 

[그렇겠지. 그나저나 형초후는 어떻게 됐어?] 

[형초후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어. 패자는 죽음뿐이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그때 그의  나이가 마흔이라고 하

더라. 그리고 그에겐 아들이 한 명 있었지. 바로 형웅강.] 

악만풍의 말을 듣고 난 진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형웅강과 사공 가문에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아니지. 아! 사공 가문이 천무대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

군!] 

[정말 잘도 알아 맞추네. 그래 네 말대로 천무대협과 사공 가문은 인연이 있었어. 당시 사공 가문 중엔 사공유(司空

裕)란 사람이 있었지. 내가 만났다는 그 사공 가문의 후손이 사공유의 손자인 셈이야.] 

[그렇군. 그럼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천무대협과 사공유는 절친한 친구였어. 사공유도 본래 형초후처럼 천무대협에게 도전을 한 사람이었지만 천무대협

의 훌륭한 무공에 깊이 감탄하고 그와 벗이 되었지. 형초후는 그런 그를 비웃었지만 사공유는 끄떡도 안 했다고 하

더라.] 

[그럼 천무대협의 친구였다는 이유로 형웅강이 사문 가문을 몰살시킨 거야?] 

[아니지. 그런 단순한 이유라면 말도 안되지.] 

악만풍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바로 천무대협이 자신의 무공 한 가지를 사공유에게 전수한 거야. 마보진검이라고 하지.] 

[마보진검!] 

[왜? 알고 있나?] 

[아니.. 내가 어떻게 알겠어. 여하튼 그게 어떤 무공이지?] 

[나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마보진검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거야. 마보진검은 천무대협의 무공  중 한 

가지로 상승무공이지. 사공유가 그 무공을 전수 받고 일생을 다 바쳐 수련했지만 대성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어.] 

[정말 대단하긴 하겠군.] 

악만풍이 끄덕였다. 

[게다가 사공유는 물론 그의 아들 사공소빈(司空素彬)도 익히지 못했어. 본래 사공씨 가문은  대대로 뛰어난 내공심

법이 전수되지.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무공이라면 금방 익히는데도 유독 마보진검을 익히지  못한 건 그만큼 그 무

공이 대단하다는 거야.] 

[매우 궁금해지는 걸.] 

[그래. 그 이야기를 접한 다른 강호인들도 그랬을  거야. 하여튼 그 후로 천무대협이 실종되고 사공유는  명이 다해 

죽었지. 사공소빈이 뒤를 이었지만 그 역시 마보진검을 익히지 못했어. 그리고 바로 17년 전에..] 

[형웅강이 사공 가문을 몰살시킨 거겠지.] 

[바로 그런 거야. 형웅강은 형초후의 뒤를 이어 쾌묘검법을 완벽히  익혔지. 그는 형초후의 죽음을 알고 있어. 헌데 

죽는 걸 보진 못하고 얘기로써 천무대협의 수에 죽었다고 알고 있던 거야. 어디서 그렇게 들은 건지 몰라도 여하튼 

그 때문에 천무대협을 향해 복수를 준비했지. 그러나 천무대협은 실종되고 그는 좌절하던 차에 사공 가문의 얘기를 

들었지.] 

[그 뒷 얘기는 알만하군.] 

[그래. 그렇게 돼서 17년 전 어느 날 밤, 형웅강은 사공  가문을 기습했고 하룻밤 사이에 모두 죽여버렸어. 사공 가

문의 무공이 못났다거나 마보진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당한 게 아니야. 사공소빈의 자질이 형편없었지.  내공심

법을 잘 연구한 보람으로 내공이 대단하긴 했지만 사공 가문의 무공도 마보진검도 전부 대성하지 못해서 결국 죽임

을 당한 거야. 그런데 그는 필살의 신념으로 5살짜리  아들을 살려보냈지. 그의 아내도 살려보내고 5살짜리 아들을 

시중들던 네 명의 소녀도 도망치게 해줬어.] 

[오호. 많이도 도망갔네. 듣기로 몰살이라던데 전혀 아니었군.] 

[그렇지. 하지만 형웅강은 당시에 그들이 몰살당했다고 여겼어. 왜냐하면 5살짜리 아들이고 사공소빈의 아내고 전부 

죽은 시체를 봤거든. 물론 전부 사공소빈의 계략이었지만 말야.] 

진양은 깨닫고 무릎을 쳤다. 

[뭔지 알겠어. 다른 시체를 위장시킨 거겠지.] 

[만일 네가 형웅강이라면 정말 무서웠을 거다. 아무튼 그 방법으로 그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네 명의 소녀는 살아

서 도망갈 수 있었어. 마지막의 기지를 발휘한 덕이지. 그리고 알다시피 그  아들이란 내가 아까 만났다는 그 후손, 

사공환이다.] 

[사공환이라.. 그 아내와 네 명의 소녀는?] 

[그 아내는 이미 죽었어. 5년쯤 됐을 거야. 성격이 불같고 조금  거칠었지만 그래도 나쁜 여자는 아니었지. 나도 조

문(弔問)하러 갔었어. 사공환이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리고 그 네 명의 소녀는 이미 강호에 이름이 퍼졌

지. 강호에선 그녀들을 방홍미녀(方紅美女)라고 부른다.] 

진양은 그제야 객잔에서 봤던 네 명의 홍의 미녀가 방홍미녀라는 별호를 가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문득 의혹

이 한 가지 생겨났다. 

[한 가지 의문점이 있어. 형웅강은 아직도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나?] 

[아니. 이젠 알았지. 5년 전 사공소빈의 아내가 죽었을 때 사공환은 장례를 아주 은밀히 진행했어. 치욕적으로 남들 

앞에서 함부로 장례도 치를 수 없는 거야. 형웅강이 알아버리면 몰살당할 테니까. 헌데 그렇게 숨겼음에도 불구하고 

형웅강은 어떻게 알아버렸어. 사실 사공환 등은 이 서안 서북쪽에 있는 마외파(馬嵬坡)에 살아. 형가장의 세력은 굉

장히 넓기 때문에 마외파까지도 미치지. 그 전까진 운 좋게 안 들켰지만 결국엔 잡힌 거지.] 

[그들도 참 멍청하군. 왜 거기서 살아서는.. 쯧. 아니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장례를 멀리 가서 하던가.] 

[사공환도 그건 잘 알고 있었어. 헌데 그의 어머니가 거부했어. 마외파에 사는 이유는 언제나 형가장을 등뒤에서 지

켜봐야 한다는 뜻이거든. 장례를 굳이 거기서 치른 이유도 비슷하지.] 

[자존심이 센 여인이었군.] 

진양의 말에 악만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이 말한다. 

[그럼 이미 5년 전에 들통이 난 셈인데 왜 형웅강은 사공환 등을 살려두지? 언젠가 화근이 될 게 분명한데.] 

[손을 쓸 수가 없는 거야. 너는 아직 쾌묘대협이란 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사실 강호출도한 지가 얼마 안 돼서 견문이 부족해.] 

[그래? 쾌묘대협은 정말 대협이야.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를 진정한 대협으로 여길지도 몰라. 그만큼 

그는 대협다운 행동을 하거든.] 

[알만하군. 이미 대협이 돼서 손을 싶어도 못 쓴다 그거지?] 

[그런 거야. 더구나 방홍미녀에 대한 소문은 이미 널리 퍼졌으니까 더욱 그렇지. 방홍미녀가 한 남자를 소주라 부르

며 보호한다는 얘기는 요즘 모르는 사람이 없어.] 

진양은 이제야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형가장과 사공 가문에 얽힌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천무대협과 이들 조상의 관

계까지 모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진양은 문득 궁금한 게 있어 입을 열었다. 

[아참. 그리고 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지? 마치 무슨 관전자라도 되는 듯 싶다.] 

[하하! 사실 내가 형가장과도 친분이 있거든.] 

[형가장과 친분이? 어떻게 하다가?] 

[형웅강의 늦둥이 딸을 사공환이 기습해서 죽이려고 할 때 도움을 줬거든.  그 후로도 사공환이 하는 짓이 너무 미

워서 몇 번 더 방해했더니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어.  형웅강과도 마음이 맞아서 더욱 친분이 생겼지. 이 얘기는 

나도 2년 전에 들은 이야기야. 형웅강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사공환 등의 대화를 엿들어서 내 나름대로 합친 거지. 

나만의 결론이라고 할까?] 

[농담도 잘하는군. 내가 보기엔 네 추리가 딱 맞을 것 같다.] 

악만풍이 웃음을 터트리며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진양은 이로써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그리고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또 악만풍의 성격을 잘 알 수 있었다. 듣자하니 악만풍은 형웅강에게 나쁜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호

감이면 몰라도 악감은 없는 게 거의 확실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공환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럼 사공환은 형웅강에게 복수를 해야하는 거다. 그런데도  사공환은 청루에서 놀고 자빠졌지. 그걸 본  만풍이가 

분노한 거군. 사공환에게 별로 좋은 감정도  없고 도리어 형웅강에게 호감이 있음에도 그랬다는  건 정말 만풍이의 

성격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진양은 악만풍이 진정한 대장부라고 생각하며 이 이야기를 덮어두었다. 문득 창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밤이다. 어느

새 어둠이 휩싸이고 가끔가다 잔등(殘燈)이 하나씩 보였다. 벌써 삼경(三更)이 다된 것이다. 

[이제 떠날 때가 됐지?] 

[그렇지. 슬슬 화산으로 향하자.] 

악만풍이 동의하자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진양과 악만풍은 짐을 챙겨서 창문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나가기 

전 진양이 방바닥과 침상에 침을 뱉어놨다는 걸 악만풍은 알지 못했다. 

화산은 이미 중원오악 중 하나로 벌써 이름을 날린다. 동악은 화산, 서악은 태산, 남악은 형산, 북악은 항산, 중악은 

숭산으로 이중에서 바로 동악인 것이다. 진양과 악만풍은 서안을 벗어나 곧장 화산으로 향했다. 어차피 갈곳도 없고 

느긋한 마음뿐이니 화산까지 걸어서 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화산은 오악 중 가장 험준한 산으로 꼽혔다.  지세가 위험하리 만큼 험하고 오르는 길도 가파른  터라 사고도 많은 

산이었다. 화산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다.  각자 조양봉(朝陽峰), 낙안봉(落雁蜂), 연화봉(蓮花峰), 운대봉(雲臺峰), 

옥녀봉(玉女峰)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고 그 모양은 마치 손가락 같다고 한다. 오르면 위하(渭河)의 광활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며 산 북쪽으로는 수백 리에 달하는 수풀이 있는데 바로 고대의 유명한 도림새(桃林塞)라고 한다.  이

곳은 순 복숭아 천지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악만풍의 입에서 나온 얘기였다. 악만풍은 도대체 무슨 여행가라도 되는지 화산에 대해서 너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예전에 대충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만큼 자세히 알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길로 오르면 돼. 그럼 금방 정상에 닿는다.] 

[그렇군. 좌우지간 넌 부러운 놈이다.] 

[부럽다니?] 

악만풍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양은 장난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오르는 도중 악만풍은 이쪽은 

뭐가 있고 저쪽엔 뭐가 있고 평소 그답지 않게 매우 시끄러웠다. 물론 진양  앞에선 말이 많은 그였지만 오늘은 유

난히 심했다. 진양은 그가 조금 들떠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저쪽으로 가자. 저긴 내가 예전에 가봤는데 경치가 매우 좋다. 지금은 여름이니 한층 더 훌륭할 거야.] 

[됐어. 나는 정상에나 오르련다.] 

[정상에 올라서 뭐 보려고?] 

진양이 피식 웃었다.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무굉하고만 마음이 맞았다. 

한참 오른 진양은 드디어 화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아미산보다 더하다고 할  순 없었고 역시 덜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아무래도 아미산이 한 수 위인 셈이었지만, 사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오른  산의 절

경인 것이다. 진양은 갑자기 무굉이 떠올랐다. 옆에서 멀뚱멀뚱 눈만 굴리는 악만풍도 분명 좋은 벗이다. 그러나 확

실히 이런 절경을 구경함에는 무굉과 함께인 편이 좋았다. 

[이제 보니 정상에서 보는 경관을 좋아하는군.] 

[그렇지. 보라. 이 넓은 대륙을! 진정 영웅의 기상이 느껴지지 않아?] 

[하하! 이것이 영웅의 기상이라. 좋지 좋아.] 

악만풍은 뜻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진양은 그가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역시 무굉뿐이라는 생각

이 또 든다. 

잠시 후 위하 평원을 내려다보던 진양에게 악만풍이 말했다. 

[어때? 아까 말했듯이 저쪽으로 가면 대단한 도림(桃林)이 있어. 아주 볼만해.] 

[도림이라. 한번 가볼까.] 

진양은 별로 내키는 기분은 아니었다. 허나 악만풍이 권하니 거절하기도 좀 그랬다. 조금 주춤거리던 그는 한번 더 

경관을 내려다보고는 그 도림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길은 악만풍이  잘 알아 어떤 문제도 없었다. 이만하면 죽었다 

깨나도 길 잃을 일은 없는 셈이다. 

산 북쪽으로 얼마간 걷다보니 어느새 주변에 나무들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보니 발아래 잡풀도 언제부터

인지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진양은 이 지대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악만풍이 미소짓는다. 

[놀랐지? 나도 처음엔 그랬다. 점점 수풀로 가득해질 거야.] 

진양은 도림이라는 곳에 조금 흥미가 돌았다. 얼마 더  걸으니 과연 악만풍 말 대로였다. 전후좌우로 복숭아나무가 

가득해졌고 잘 익은 복숭아가 매우 많았다. 좀 전까지  가득했던 초록 빛깔은 사라진지 오래다. 여름이라 복숭아는 

익을 대로 익어 정말 도화색(桃花色)이 따로 없었다. 흔히 말하는 세외도원(世外桃園)이라고나 할까. 

악만풍이 문득 그를 한쪽으로 이끌었다. 향한 곳은 언덕진 곳인데 이곳 도림이 한눈에 보였다. 이렇게 보니 이 모습

도 실로 절경은 절경이었다. 

[생각보다 좋군! 네가 이렇게 호들갑 떤 이유도 있긴 있었구나.] 

[그럼 그렇지 내가 괜히 호들갑 떨겠냐.] 

그의 농담조에 진양은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낄낄거리더니 악만풍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재밌어. 산도적 같이 생긴 놈이 이런 아름다운 도림을 좋아하다니. 내가 본 너는  무슨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할 것 같았는데..] 

[뭐라고! 오늘 이 도림에 빠져죽게 해주마.] 

[하하. 네가 나를? 힘들 걸.] 

진양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약을 올렸다. 그러며 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도화색으로 가득한  세외도원에

서 함께 희희낙락하는 그들은 마치 속세를 떠난 아이들 같았다. 

그러나 기쁨과 평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참 도화색에 심취하여 미소를 지우지  못하던 때 갑자기 그 기분을 

깨트리는 쇳덩이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피리 부는데 종 후리는 격이요, 노래  부르는데 악 쓰는 격이다. 진양은 불

만스러운 눈초리로 그 쇳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언덕이 있는 곳 위에 조그만 봉우리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짜증나는군. 뭐야 이건.] 

[어쩔 수 없지. 여기가 우리 땅도 아니고..] 

악만풍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진양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발을 옮겨버렸다. 가서 시끄럽게 구는 자들

을 혼내줄 기세다. 악만풍이 놀라 급하게 그를 쫓았다. 

가까이 가자 근근히 고함치는 소리도 들렸다. 무슨 싸움이 난 듯 싶었다. 진양은 직감적으로 무공을 아는 자들이 부

딪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목소리에 담긴 무게나 좀 전 쇳소리의 무게로 봐도 평범한 사람은 낼 수 없는 소리였던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 무공을 모르는 자들이면 더 상대하기 힘들 텐데 강호인이라면 더 쉽다. 강호에선 무공의 고

하가 우선이니 가서 단단히 혼내주리라 생각했다. 

[진양! 뭘 그렇게 서둘러? 천천히 가서 지켜보자.] 

악만풍이 뒤에서 소리쳤다. 진양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번진다. 

[난 훌륭한 경치를 좋아해. 그래서 경치를 구경할 때면  남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 저들은 때를 못  가리고 금방 

끝낼 것도 같지 않으니 좀 혼을 내줘야겠어.] 

[소리를 들어보니 강호인 같은데.] 

[상대하긴 더 쉽지. 여기서 기다리려면 기다려.] 

[아니. 나도 갈 테다. 어디 네 무공을 좀 구경하자.] 

진양은 미소하며 다시 발을 떼었다. 봉우리는 매우 낮아 몇 번 뛰어오르면 오를 수도 있는 높이였다. 진양은 봉우리 

뒤편이 오르기 편하다는 걸 알고 경공을 펼쳐 단숨에 뛰어올랐다. 두어 번 땅을 박차 폴짝폴짝 오르니 금새 봉우리 

위까지 근접했다. 허나 바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어떤 자들인지 먼저 봐두는 편이 더 유리했다. 악만풍도 금방 

그의 옆에 도착했다. 

[전진교가 우리와 적대하겠다는 거요?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소.] 

봉우리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순간 진양은 전진교라는 말에 눈을 번쩍 치켜 떴다. 전진교는 그에게 있어서 보

통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악만풍도 그 날의 일이 기억나는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누가 전진교란 말이냐? 우리가 누군지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흥! 전진교가 명문대파라더니 사실 뒷길로는 이런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구나.] 

[마음대로 떠들어라. 다시 말하지만 우린 전진교가 아니다.]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악만풍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지난 날 종남산에서의 일이다. 

그때도 진양은 복면인들이 전진교라고 욕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들려오는 저들 상황은 왠지 비슷할 

것 같다. 

[헛소리하지 마시오! 전진교가 아니라면 어떻게 전진교  검법을 쓴단 말이오? 우리가 전진교 검법도  모를 줄 아시

오?] 

[전진교 검법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네가 착각한다는 건 네 눈깔이 동태눈깔인 거다.] 

진양은 너무나 궁금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하게 확인해두고 싶었다. 비탈길에 찰싹 붙듯 엎드리며 고개

를 살며시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곳엔 바로 저번의  복면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악만풍 말로 

그들은 모두 4명이었다던데 지금 그들도 4명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들었던 목소리와도 비슷한 것 같았다. 

[만풍. 어떻게 생각해?] 

진양이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악만풍은 그의 생각을 눈치채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양의 어깨에 손

을 올려놓으며 눈을 찌푸렸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진양도 그럴 생각이 없던 터라 다시 그들의 대화

에 귀를 기울였다. 

[전진교! 전진 칠자의 명성을 듣고 내심 존경했는데 설마 이럴 줄이야.] 

[마음대로 해라. 우린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야겠다.] 

[감총방을 얕보느냐?] 

진양과 악만풍이 조금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감총방 따위 누가 얕보지 않겠느냐?] 

[네 이놈! 오늘부터 전진교는 감총방과 적대한다.] 

[하하. 적대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지만 너희가 과연 적대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뜻이.... 옳아! 우리를 죽여서 살인멸구 하겠다는 거군.] 

상황이 고조되고 있었다. 여차하면 서로 싸울 태세였다. 

[알면 반드시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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