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 三 章. 무인(武人)의 자존심 2
순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 싸움이 시작된 듯 싶었다. 진양이 몰래 내다보니 복면인 4명 모두가 감총방
2명을 공격하고 있었다. 진양과 악만풍은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복면인들의 검법은 아무리 봐도 분명 전진교 검법이었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전진단검이다. 알려진 바로 전진단
검은 전진 도사라면 모두 할 줄 아는 검법에 속했다. 상승무공을 익히기 위한 기본적 단련에 속한다는 게 옳았다.
그래서 도사들은 전진단검을 자주 썼고 또 잘 알려진 것이다.
대세는 시작부터 복면인들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두 명이 네 명을 상대하기도 벅차겠지만 무공에서도 큰 차이를 보
였다. 복면인들의 무공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제법 수련을 잘한 건지 어쩐 건지 몸이 날쌔고 맹렬해 보였다.
하지만 감총방의 두 제자는 그렇지가 않았다. 둘 다 맨손으로 괴상한 권법을 펼치긴 했으나 전진단검을 이겨내진
못하고 있었다.
그 권법은 보면 볼수록 요상한 권법이었다. 몸과 손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오른 주먹이 정면을 찌르면 마치 죽
으려고 뛰어드는 미친놈인양 몸도 같이 뛰어들었고, 적의 검이 덤벼들면 손을 빠르게 움츠리며 몸을 뺐다. 어깨가
딱딱하게 굳은 듯 팔과 몸이 하나였다. 그러니 동작도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뻣뻣해 보였다.
[저런 권법이 다 있다니. 정말 해괴하군.]
[동감이야.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겠어.]
진양의 말에 악만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조금도 까다롭지 않은 것만 같았다. 오히려 동작이 느슨
한 게 여유로 가득 차 보였다. 복면인들의 실력이 대단하다기보다 전진단검의 위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었다.
[빌어먹을! 우리가 죽어도 하늘은 보았으니 언젠가 너희들의 목이 달아날 것이다!]
한 감총방 제자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죽을 거란 걸. 악만풍
이 가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당당함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진양도 못마땅한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가서 도와줘야 하나?]
[마음대로 해. 하지만 복면인들은 놓아주지 마라.]
[하하. 걱정은 그만 접으시지.]
악만풍이 웃더니 곧 정색했다. 단숨에 고함치며 뛰어오른다.
[이놈들!]
진양은 이제 굳이 몸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법 어깨도 펴며 자리에 앉아 관전을 하기 시작했다. 악만풍
이 뛰어들자 복면인들은 매우 놀란 듯 했다. 급하게 검을 회수하며 대오를 잡았다.
[너희들은 나를 모른다 할 테냐?]
악만풍의 말에 복면인들은 대답이 없다. 조용히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자 악만풍이 눈을 부릅뜨며 질타한다.
[종남산에서 천하에 둘도 없는 영웅을 암살하려 한 걸 벌써 잊었단 말이냐!]
그가 한번 고함치자 땅이 다 울렸다. 꽈르릉 하며 화산엔 때아닌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의 호통에 복면인들의 눈빛
이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엔 놀라는 눈빛, 두려운 눈빛이더니 나중엔 표독스러운 눈빛이었다. 진양이 멀리서도 그걸
알 수 있을 만큼 그들의 눈빛은 허실이 분명했다.
[내가 그 날 말했다. 다시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너희는 또 하는구나.]
[그래서 뭘 어쩐다는 거요?]
[뭐라고? 또 혼나고 싶으냐?]
복면인들의 반응은 굉장히 의외였다. 진양도 제법 놀랐으니 당사자인 악만풍은 매우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대체 뭘
믿는지 태도가 매우 건방져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악만풍의 질책에 코웃음쳤다.
[흥. 당신이 그럴 능력이 있소?]
[아무래도 너희들은 종남산에서의 일을 잊었나 보군.]
복면인이 또 코웃음친다.
[웃기는 소리 마라. 그 일을 우리가 어찌 잊겠느냐? 다만 그땐 따라온 놈들이 형편없었던 것뿐이다.]
[그럼 지금은 다르다는 거냐?]
[당연하지. 그 날 이후로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이들은 다를 걸.]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그가 복면들의 우두머리인 듯 싶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뒤편에 있던 세 명이 걸어나왔
다. 그들은 가볍게 읍하며 말한다.
[저번 일로 마침 찾던 터였는데 참으로 잘됐소.]
악만풍이 갑자기 대소했다.
[하하하! 그래 나도 찾던 터였다. 아무래도 그냥 보내준 게 마음에 걸려서 끝장을 보려 했지.]
[얘길 들으니 악가창법을 쓴다고 들었소. 과연 손에 창이 있구려.]
[그래. 너희들 같은 못된 놈들을 응징하는 창이다.]
악만풍은 자신의 창을 땅에 두드리며 대답했다. 우두머리가 웃는다.
[어디 그러면 상대해 보시오.]
[이들만으론 날 못이길 테니 너도 끼거라.]
우두머리의 눈빛이 일순 흉포해졌다. 그가 공격을 명령하듯 버럭 고함치자 금방 3명의 복면인들이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숨에 삼면으로 악만풍을 둘러싸고는 모두 같은 수식을 취했다. 악만풍이 창을 땅에 찍는다.
[오너라!]
그의 일갈이 신호였다. 복면인들은 날쌔게도 거리를 좁혀왔다. 셋 다 같은 검법으로 다른 방향을 찔러 들어왔다. 그
에 악만풍도 몸을 가만두지 않았다. 다시 명가의 창법, 악가창법을 펼치는 것이다.
선공은 복면인들이었다. 그들의 검은 신묘하게 사람의 요혈을 노렸다. 요혈도 그냥 요혈이 아니라 한쪽을 피하면 한
쪽이 맞고 또 한쪽을 피하면 결국 남은 한쪽을 맞게되는, 아주 교묘하고 정확한 협공을 펼쳤다. 한 검이 악만풍의
목덜미로 날아들자 그는 창을 성급히 쳐들었다. 어찌나 세게 후려쳤는지 복면인의 몸이 붕 떠서 일 장은 물러설 정
도였다. 허나 다른 복면인은 신경 쓰는 눈치도 아니었다. 오히려 악만풍의 창이 들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복면인
둘은 각자 그의 옆구리, 오른 다리를 노렸다. 검이 쾌속하고 동작도 명확한 게 정말 전진단검이었다.
악만풍은 그들이 정말 전진 도사임을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화가 났다. 적어도 아까 얘기를 들으며 그들
이 혹시 도사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몇 합 상대하며 복면인들은 분명 전진교도라는 걸 깨달
았다. 검법이 너무 확실하고 분명해 훔쳐 배우거나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봐주지 않기로 결
정하고 창을 맹렬히 돌렸다.
두 검이 옆구리와 오른 다리를 노리자 그는 오른 다리를 들어 옆구리 노리는 검을 쳐내버렸다. 빠른 한번의 동작으
로 두 검을 막고 피해낸 것이다. 복면인들은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갔다. 다시 머리와 배를 노렸고 그가 창을
돌려 막아내자 이번엔 팔과 등을 노렸다. 이때쯤 되니 정면에선 남은 한 복면인이 덤벼들었다. 아까 퉁겨졌던 일은
까맣게 모르는 듯 했고 도리어 혼쭐 내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악만풍은 한번 더 멋지게 창을 휘둘렀으나 밀린
다는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10여 동작이 지나가며 악만풍의 자세가 서서히 흐트러지고 있었다. 정면으로 다시 검이 돌진해왔다. 왼 다
리로 찔러오는 검을 의식했지만 여기서 발을 떼면 앞의 검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다리를 더 벌리며
창을 내질렀다. 앞의 복면인이 놀라 물러섰으나 다리에 상처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종아리가 베어지며 피가 뿜
어져 나왔다. 다리는 무인에게 있어선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제법 깊게 베어진 듯 피가 용솟음쳤다. 악만풍은 나름
대로 몸을 놀려 잠시 여유를 가졌으나 삽시간에 서너 군데나 더 상처를 입고 말았다.
진양은 이제 더 지켜볼 수 없었다. 악가창법이 제법이긴 해도 저들 세 명의 협공을 감당키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더
두고본다면 그가 죽고 말 것이다. 현재 봉이 없으니 함종권법으로 상대해야만 했다. 하지만 권법엔 일가견이 있는
터라 자신이 있었다.
[멈춰라!]
그는 하늘로 튀어 오르듯 경공을 펼쳤다. 금방 복면인들 상공(上空)에 도달하여 복면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들이 갑자기 진양이 나타날 줄 몰라 깜짝 놀란 사이 악만풍이 창을 휘저어 복면인 두 명의 어깨를 돌려 쳤다. 남은
한 복면인이 황당한 반전에 놀라는데 어느새 진양은 그의 머리 바로 위에서 유리장강의 일 수를 벌일 준비가 되어
있다. 복면인은 주먹이 머리에 근접하고야 깨닫고는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감이 있었다.
[죽이면 안 된다!]
악만풍의 창이 갑자기 움직였다. 마침 막 두 복면인을 때린 터라 출수하기엔 딱 좋은 자세였다. 그러나 그는 복면인
을 찌르는 게 아닌 진양의 주먹을 때렸다. 옆으로 돌려 치듯 그의 주먹을 쳐냈다. 진양은 자세를 못 잡고 볼썽사납
게 나뒹굴고 말았다.
[뭐 하는 거야?]
벌떡 일어서며 따지는 그에게 악만풍이 말했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겠어? 더구나 좀 전 상황은 너와 나 모두 기습을 한 것이니 죽여선 안 된다.]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 언젠가 네가 죽음을 당할 것이다.]
진양은 답답한지 가슴을 쳤다. 아깝기도 해 한숨을 내쉬었다. 저승길 문턱에 이르다 돌아온 복면인은 크게 고마움을
느끼고 악만풍에게 읍했다.
[정말 대협이시오. 하지만 우린 적이니 은혜는 나중에 갚겠소.]
[좋으실 대로.]
악만풍도 읍하자 그는 몸을 돌려 그들 무리에게로 돌아갔다. 우두머리가 한 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너는 또 누구라고 비열한 암수를 쓰느냐?]
[세 명이 한 명을 치는 건 안 비열하고, 한 명을 구하려 기습한 건 비열하다는 거냐?]
[뭐라고!]
진양의 말솜씨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악만풍은 이미 오래 전부터 느꼈기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우두머리는 화
가 난 듯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빛이 일변했다.
[아니 그리고 보니 넌..]
[오냐. 이제 알아보겠지? 네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 너는 분명 그 때 그놈이었어.]
그는 이제야 진양을 알아보았다. 진양은 종남산 이후로 행색이 크게 변해있었다. 예전엔 조금 낡은 적삼만 걸치고
다녔는데, 저번 서안에서 관병과의 일 후로 서생처럼 하고 다닌 것이다. 우두머리는 조롱하는 말투로 진양에게 말했
다.
[제법 활개를 치는 모양이군. 옷에서 고기 냄새까지 나는구나.]
[하하. 네 코는 개 코다. 하긴 오래 전부터 네가 개라는 건 알았다만.]
[뭐라고!]
진양의 몇 말에 우두머리는 다시 악을 질렀다. 진양이 말한다.
[그럼 넌 개가 아니란 말이냐?]
[세상에 말하는 개 봤느냐?]
[그럼 어디 복면을 벗어보아라. 확인하기 전까지 난 너를 개로 취급할 거다.]
일순 우두머리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금방 비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꺼냈다.
[넌 여간 무서운 놈이 아니구나. 하지만 난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는다.]
[결국 개란 얘기네.]
진양이 냉소하며 몸을 돌렸다. 우두머리가 펄쩍펄쩍 날뛰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만큼은 죽여야겠다.]
그러나 진양은 듣는 체도 안 했다. 악만풍을 이끌며 아예 감총방 제자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우두머리가 호통쳤
다.
[저놈을 죽여라! 절대로 가만두지 말아라!]
복면인들이 즉각 발을 떼다 주춤거렸다. 진양의 곁에 있는 악만풍과 뒤에서 나오는 감총방 두 제자를 봤기 때문이
다. 그들 세 명은 협공에 자신이 있어서 사실 큰 걱정은 없을 텐데 아무래도 진양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우두머
리도 이 상태로는 그를 죽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제기랄. 오늘 네놈은 못 죽이겠군.]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꼭 죽이겠다더니..]
[닥쳐! 오늘밤도 있고 내일도 있다. 언제고 네놈을 비참하게 죽여주마.]
그의 폭언에도 진양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손짓하자 복면인들이 그의 뒤로 시립했다. 이쯤 되면
저 우두머리의 신분이 높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진양은 그의 정체가 상당히 궁금했으나 저 복면을 벗길 수 있
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하 복면인 셋이 두려운 것도 아니요 우두머리가 두려운 것도 아니긴 하나, 그들을 단숨
에 제압하고 복면까지 벗길 실력은 아직 없다고 생각했다.
우두머리는 정말 안타까운지 자꾸 주먹을 부르르 떨어댔다. 뒤에 서있던 한 복면인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시죠. 더 있다해도 흉이 많을 겁니다.]
우두머리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진양을 노려보고는 몸을 홱 돌려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그
들의 뒷모습을 보며 진양은 언젠가 꼭 그의 복면을 벗기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두 분 대협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갑자기 두 명의 감총 제자가 절을 하려했다. 진양은 들은 체도 안 하며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악만풍은 황급히 달려
나가 그들의 어깨를 붙잡았다.
[에이.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뭐 그런 일 가지고 이러시오.]
[허나 두 분께선..]
[됐소. 그나저나 두 분의 이름이 궁금하구려.]
악만풍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저는 감총방 제자인 전효(全孝)라 하고, 이쪽은 제 사제인 한마일(漢馬壹)입니다.]
[아.. 전형과 한형이었군요.]
악만풍은 이런 일에 능숙한 것 같았다. 제법 상대방의 생각도 해주는 것이 그랬다. 진양은 그의 마음씨가 선해서 분
명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을 해왔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저희가 매우 못났지만 두 분의 존성대명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하. 존성대명이라니. 난 악만풍이고 저쪽은 친구인 진양이오.]
그가 소개하자 전효와 한마일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무 일반적인 강호의 법도였다. 허나 진양은 법도에 관해
아는 바도 적고 관심도 없어서 그들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슬쩍 봤을 뿐인데 보니 그 중 전효라는 남자가 낯익은
듯 얼굴이었다. 물론 그것도 단지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잊어버렸다. 악만풍이 이상하게 그를 쳐다보았으나 진
양은 먼 산만 바라본다.
악만풍은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쩌다가 복면인 무리를 만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그가 궁
금한 게 아니라 진양이 궁금할 것이라 생각하여 물어본 것에 가까웠다. 그들은 그의 물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
었다.
그들은 감총방의 3대 제자라고 했다. 감총방은 난주에서 주로 활동하는 문파로 이름은 꽤나 알려진 편이다. 감총방
은 사실 개방( 幇)과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개방의 제자들이 워낙 많고 천하 곳곳에 널려있다 보니 자연 감숙 지방
에도 세력이 미쳤는데, 감총방 방주가 새롭게 바뀌면서 그들과 여러 번의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전에는 그들끼리 어느 정도의 묵계로 서로 싸우지 않았다. 난주에 개방 거지가 활보해도 감총방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새롭게 용상(龍狀)이라는 자가 방주에 오르면서 상황이 변했다. 용상은 개방 거지가 난주에서 제멋
대로 활보하고 구걸을 하는 게 감총방을 무시하는 처사와 같다며 개방 거지를 보이는 데로 족족 쫓아버렸던 것이
다. 그래서 이 일로 많은 파문이 생겼다. 덕분에 감총방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개방은 너무 방대해 감
총방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도 개방은 성급히 손을 쓰지 않았다. 제자를 보내 사과를 청하고 나라가 안정치 못하니 매듭은 나중에 풀자
는 말을 전했다. 용상도 그걸 받아들여 그들 사이는 다시 원만하게 풀렸다. 헌데 얼마 전 또 일이 터진 것이다. 감
총방의 수제자 복차경(復侘輕)이 개방 거지와 싸우다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터졌다. 바로 열흘 전의 일이라고 한
다.
복차경이란 이름을 듣자 악만풍은 실소를 터트렸다. 진양도 번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때 종남산에서 용상을 만났
을 당시, 그가 청년 제자를 보며 차경이라고 부르는 걸 생각했다. 악만풍은 전효에게 말했다.
[복차경은 나도 잘 알고 있소.]
[아니.. 어떻게 그를 아십니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오.]
악만풍이 한숨쉬며 말하자 전효가 미소했다.
[그는 본래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기억이 아닌 게 당연합니다.]
[동문이고 또 수제자라면서 이런 걸 보니 복차경도 별로 호평은 못 얻나보군.]
전효와 한마일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진양은 조용히 용상을 떠올렸다. 그는 사람을 제법 볼 줄 아는
것 같았는데 복차경 따위를 수제자로 삼다니 조금 이상했다. 그런 생각은 악만풍도 같은 모양이었다.
[내가 본 용방주는 생각이 깊고 행동거지에 뜻이 있어 사람을 잘 볼 거라 생각했소. 헌데 복차경 같은 인물을 수제
자로 삼다니 이상하오.]
[방주님께선 어쩔 수가 없으셨죠.]
[어쩔 수가 없다니?]
[지금 용방주님은 감총방의 4대째 방주님입니다. 장로들과는 달리 무공이 매우 뛰어나고 성품이 강직하셔서 감총방
을 크게 빛냈습니다. 그래서 방주님께선 방을 빛낼 수 있는 이유가 오로지 무공이라고 하셨습니다.]
악만풍이 침음했다.
[그럼 복차경이 제법 자질이 있는 모양이구려.]
[그렇습니다. 그의 성품이 못난 건 방주님도 아시지만, 그의 자질이 좋으니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전효는 다시 말을 이었다. 복차경은 오래 전 용상을 따라 강호로 나섰다. 진양, 악만풍과 만난 건 그렇게 강호를 돌
아다니다 우연히 종남산에서 만난 셈이었다. 진양 등과 헤어진 후 용상은 이제 난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
데 그때 일이 터졌다. 복차경이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고 하고서는 한참 뒤에야 온몸에 부상을 입고 온 것이었다.
용상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복차경은 개방 거지들이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허나 사실은 개방 거지들이 시비를 건 게 아니라 복차경의 먼저 건 것이었다. 어쩌다가 개방 거지들을 만나서는 사
소한 일에서 크게 싸움으로 번졌다. 당시 이런 사실을 모르던 용상은 개방 거지들을 찾아갔으나 그들은 이미 시체
로 변해있었다. 그제야 깨달은 용상은 되돌아와 복차경을 찾았다. 하지만 복차경은 이미 도망친 후였고 <화가 풀렸
을 때쯤 돌아오겠습니다>라는 간단한 글만 남겨놓았다.
이런 사실은 모두 용상이 난주로 돌아와 알려준 사실이었다. 전효가 말했다.
[방주님께서 너무 그의 기를 살려줬기 때문입니다. 복차경 그는 올해로 벌써 열 아홉인데도 생각하는 건 어린애와
같을 정돕니다.]
[감총방도 큰일이구려.]
[저희는 방주님의 명령으로 개방에 사과문을 전달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한사제가 여기 도림이 볼만하
다고 해서 왔는데..]
뒷말은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악만풍이 탄식했다.
[나는 감총방과 인연이 있는 것 같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도와주겠소.]
그의 말에 놀란 건 비단 전효, 한마일 뿐이 아니라 진양도 포함되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또 말을 이었다.
[언제 한번 찾아가겠소. 위치를 알려주면 고맙겠소이다.]
[아! 오늘 감총방이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됐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효 등이 또다시 절을 하려고 해 악만풍이 막았다. 그 날 밤, 전효와 한마일은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악
만풍에게 난주에 있는 감총방의 본당을 가르쳐주고 상세한 지도도 넘겨준 후 갔음은 당연했다. 악만풍은 사실 난주
지리에 대해서도 잘 아는 터라 지도까지 필요 없었지만 그들의 성의가 엿보여 말없이 받았다. 진양과 악만풍 역시
그 날 밤 하산했다. 다 하산할 때쯤엔 날이 밝아져오는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