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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五 章. 낙양 이대가장 1 (33/90)

                                    第 十 五 章. 낙양 이대가장 1

형웅강은 들어오자마자 형란과 문인능을 데리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진양  등은 대청에 기다리라 해두고 갔음은 

당연했다. 형란은 그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듣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안 된다니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방에 감금

하듯 그녀들을 집어넣고 다시 돌아온 형웅강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만풍아 너도 여기 있을 것이냐?" 

처음 한 말은 진양에게가 아닌 악만풍에게였다. 그의 말에 악만풍이 미소짓는다. 

"진양은 제 절친한 벗입니다. 그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도 알고 싶군요." 

"뭐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거라." 

진양은 속으로 형웅강을 비웃었다. 대화를 하다보면  추잡한 과거가 나올 텐데 어차피 악만풍은  알고 있으니 별로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형웅강은 이제 진양을 보며 서문을 열기 시작했다. 

"말하기에 앞서 내가 누군지는 분명 알겠지?" 

"형웅강이지 그럼 당신이 누구겠어." 

"좋아." 

여전히 교만한 말투에 형웅강은 화가 치밀었지만 타협하기로 했으니 번복할 수도 없다. 그는 품속에서 아까 진양이 

준 진주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이 진주 목걸이의 내력을 모르나?" 

"사실은 알고 있지." 

진양의 색 없는 대답에 형웅강은 움찔했다. 형웅강이 내력이 뭐냐고 묻자 진양이 냉소했다. 

"이건 형가장 사람임을 나타내는 보물로 형가장에선 제법 가치가 있지. 물론 내다 팔아도 쓸만하겠지만." 

"흥. 잘도 아는군. 그럼 아까는 왜 모른다고 했나?" 

형웅강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아직도 그의 말투에  질책이 담겼음을 알고 다시 냉소만 

지었다. 

"대답을 못하는 건 어떤 곡절이 있다는 건가?" 

"대답을 하건 안 하건 내 의지지. 네가 협박을 한다고 해도 내가 굴복할 거 같으냐?" 

"옳아. 그럼 내게 불만이 있다는 거군." 

형웅강의 말에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정황을 말해두고 시작해야겠군." 

진양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눈길도 안 주고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나 형웅강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

다. 

이 진주 목걸이는 형웅강의 둘째 딸이 시집을 갈 적 줬던 물건이다. 형웅강에겐  딸만 셋이 있는데 첫째 딸은 지난 

날 병으로 죽었고 셋째 딸은 바로 형란이었다. 둘째 딸의 이름은 형민(衡民)으로 가량이라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형웅강은 솔직한 심정으로 가량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딸이 그토록 사랑한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가량과 딸을 보낼 때 바로 이 진주 목걸이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식을 낳으면 그걸 주라고 하기도 했다. 어

차피 자주 놀러올 테지만 부모가 직접 주는  편이 나을 듯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들은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가량이 산다는 섬서 지방에 가봐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형웅강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곤 그동안 계속 사람을 풀어 그들을 찾아왔다. 물론 어떤 성과도 없었고 돌

아오는 부하들의 입에선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뿐이었다. 점점 슬프고 힘이 빠지던 어느 날, 급기야  한가지 비

통한 소식을 접했다. 섬서 종남산에서 발견됐다는 시체. 온몸에 검상이 나 죽은 시체였다.  그리고 그 시체의 옆 목

에는 굵은 점이 있었다. 바로 형웅강의 딸 형민인 것이다. 

너무나 비통하여 형웅강은 한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첫째 딸을 잃고 둘째 딸마저 이렇게 잃고 나니 너무나 

슬프고 억울했다. 그래서 형란을 더욱 애지중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후론 흉수를 찾기에 바빴다. 평소 존경

해왔던 전진교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문인가장과 함께 섬서 지방을 통째로 들쑤셨다. 그러나 금국이 소란을 피

우지 말라는 통보를 하여 형웅강은 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이 바로 그러던 차였다. 오늘도 형웅강은 방안에 틀어박혀 어떻게 하면 그  흉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진양이 찾아 들어서는 행패를 부리고 진주 목걸이까지 건네주었다. 형웅강이 흥분할 만도 한 

셈이다. 

진양은 얘기를 다 듣고 나니 제법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자신이라도 오해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곡절이 있었군.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오니 나도 좋게 나가야겠지." 

진양은 곧장 가량과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 기회에 악만풍도 알면 좋을 듯 싶어 일부로 자세한 설명과 자신의 생

각까지 덧붙였다. 가량은 본래 전진교 도사며 계율을 어기고 결혼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과 만났을 때는 아내가 

죽은 듯 하고 가화라는 딸과 도망을 치고 있었다는  이야기 등을 얘기했다. 형웅강은 시종일관 침묵이었다. 말없이 

긴장된 얼굴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형민이 죽었을 거라는 말과 전진교에게 쫓기고 있었다는 말에 몸을 심하게 움

찔거렸다. 가화라는 딸과 가량이 도망쳤다는 말을 듣자 조금 안심하는 듯 하기도 했다. 

진양은 길게 모든 사연을 설명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떠나면 되는 것이다. 형웅강에게도 모든 사실을 말해줬으니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헌데 형웅강은 아직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는가 보다. 

"잠깐. 이상한 점이 있네." 

"무슨 이상한 점?" 

"사위와 손녀가 도망을 쳤다면 반드시 이곳으로 왔을 텐데 왜 아직도 안 왔지?" 

진양이 실소했다. 

"그러기에 말했잖아. 나도 이상하다고. 고맙다면서 나중에 형가장을 찾아라 해놓고는 사실 돌아오지도  않았다니 무

슨 일이 생긴 거겠지." 

"그럼 전진교가?"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형웅강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아니야. 전진교는 명문대파로 그들을 어떻게 할 리가 없어." 

"하하. 전진교가 명문대파라고? 하하하!" 

진양이 갑자기 방자한 웃음을 터트렸다. 형웅강이 이상하여 악만풍을 돌아보자 이번엔 그가 입을 열었다. 

"전진교가 분명할 겁니다. 아무래도 전진교에 요즘 무슨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문제라니? 전진교엔 전진 칠자가 있으니.." 

"전진 칠자는 사실 오래 전에 제각각 흩어졌답니다. 저도 안지 오래된 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당광이란 자가 실권을 

잡아서 뭔가 일이 있는 듯 합니다." 

형웅강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진양은 악만풍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어서 그의 안색이 변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형웅강은 전진교를 좋아하고 왕중양과 전진 칠자를 존경한다. 사실 처음 이 형가장에 들어설 때부터 은은히 풍기는 

전진교의 냄새가 있기도 했다. 

"이제 더 할 말은 없겠지. 나는 이만 떠나야겠다." 

진양이 말하며 몸을 돌려버렸다. 말만했을 뿐 읍 같은 인사는  전혀 하지 않는다. 형웅강은 그가 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으나 더 말릴 명분이 없는지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악만풍도 읍하고 진양을 따라나섰다. 

형가장 밖으로 나온 진양과 악만풍은 먼저 근처의 객잔으로 향했다. 객잔에 자리를 잡자마자 매우 기다려왔는지 악

만풍이 급히 물었다. 

"세상에 그런 사연이 있었으면 진작 말해주지 왜 이제야 말해 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물어야 알려주지." 

진양에겐 좀 전 같은 과묵함이요 냉기 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일 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이처럼 

변할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의문스러울만했다. 허나 악만풍은 이미 그를 잘  알아서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

다. 

"하기야 내가 물어야 가르쳐주겠지. 아.. 그나저나." 

진양은 점원에게 죽엽청 세 병과 만두 열 개를 시키며 그의 말을 들었다. 

"전진교 일 말인데. 아무래도 전진교에 한번 가보는 게 좋겠어." 

"전진교엔 뭐 하러." 

진양의 말투가 싸늘해졌다. 악만풍은 그가 전진교를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나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전진교를 싫어하는 건 알지. 그래도 가보자. 뭐 나도 전진 칠자를 존경하고 또 저번 당광의 일도 알아보고 싶

고 하니까." 

"종남 객잔에서 그 전진 칠자 중에 한 명이 전진교에 찾아가 본다는 거?" 

"응. 그동안 너와 산 구경을 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전진교 얘기 나누면서 생각났다." 

진양은 악만풍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무림에서 정도를 지키는 무리요  무공도 뛰어나 대단한 명성을 얻

는 자들이니 걱정 반 호기심 반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역시 내키지가 않았다. 전진교 하면 생각나는 건 

전진 칠자도, 왕중양도, 전진 검법도 아닌 당가 사람들과 왕령뿐이기 때문이다. 

"꼭 가야만 할까?" 

"참 너도 보통 전진교를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악만풍이 농담하며 잔을 채웠다. 통쾌하게 한 잔 들이키는 모습을 보니 진양도 통쾌했다. 하지만 진양은 그가 전진

교로 안 갈 것을 짐작하고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태산 여행은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으니 넌 전진교에 다녀와. 난 이곳에서 지내지 뭐." 

실로 말이 통하는 자들이었다. 진양이 가볍게 실실거렸어도 악만풍은  그의 말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악만풍은 

다시 자신의 잔에 술을 넘치도록 채우고 진양의 잔에도 그리 채우더니 마지막  건배를 청했다. 때아닌 술판이 벌어

진 셈이다. 

"무사히 다녀와라. 난 이 객잔에 계속 묵을 테니 일 마치면 이리로 와." 

낙양성 서문 앞에서 진양이 악만풍에게 말했다. 악만풍은 이미 작은 포대를 둘러매고 말 한 마리를 타 떠나려는 것

이다. 그의 말에 악만풍은 품속에서 보따리를 하나 건네주었다. 열어보니 제법 많은 양의 돈이 있었다. 진양은 그의 

생각을 알고 품속에 넣으며 간사한 목소리로 말했다. 

"히히. 뭐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악만풍은 그 꼴이 마치 관부인이 돈 받아먹는  것과 같아서 웃음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금국 

병사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정말 넌 끝까지 재미있는 놈이다." 

"잔말말고 얼른 다녀와. 이 돈은 내가 유용이 쓰마." 

진양의 농담조에 악만풍은 또 웃음을 흘렸다. 그는 곧 진양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더니 말을 타고 단숨에 성문을 나

섰다. 떠나는 모습이 당당한데 마침 햇살을 받아 출전하는 장군 같았다. 

진양은 곧장 객잔으로 돌아왔다. 어림짐작으로 악만풍이 돌아오려면 한 1개월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반드시  전

진교에 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악만풍이 잠시 알아보고만 온다해도 이리저리 상황을 맞다보면 시간

이 걸릴 게 분명했다. 진양은 한 달간 뭘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객잔 중앙으로 나와 다시 술을 시키고 혼자 술을  들이켰다. 앞자리에 악만풍이 없으니 갑자기 외로움이 느껴졌다. 

왕령과는 슬픈 헤어짐이요 무굉은 실종이고 악만풍은 한 달 정도지만 역시 곁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울

적한 생각이 들어 술만 들이켰다. 

하루는 큰길에도 나서보았다. 과연 낙양은 낙양인지 휘황찬란한 빛이 거리를  온통 뒤덮고 늦은 시간에도 돌아다니

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마다 행색은 깨끗하고 단정해서 모두가 제법 재물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렇다

고 전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성외로 나서서 깊은 골목, 한마디로 빈민가로 들어서기도 했는데  그곳에는 성

내하고는 매우 달랐다. 

굶어죽어 가는 아이가 태반이요 병에 걸려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늙은이도 많았다. 부녀자들은 제각각 몇 푼 

벌지도 못할 힘든 일에 매달려 피땀을 흘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살기 위해서 도둑질마저 일삼았다. 진양은 그 전 변

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서생처럼 하고 다녔기 때문에 한 아이에게 돈도 빼앗길 뻔했다. 물론 진양은 무공을 알

고 있기에 걱정이 없긴 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을 보자니 가슴이 아파 왔다. 자신도 한 때 이런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문득 옛 생각이 마구 떠

오르기 시작했다. 조덕에게 구함을 받기 이전 생활들. 생부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고 생모는 그가 어릴 적에 

잠시 돌봐줬을 뿐 역시 병으로 죽었다. 출생으로 따지자면 아주 천한 사람인 셈이다. 그리고 그 천함은 진양에게 고

통을 주기에까지 이르렀다. 어디 가도 밥 한 끼 주는 사람 없었고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이 앞에 있는 도둑 소년을 보니 그런 옛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소년은  도둑질하다 잡힌 게 무서운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진양은 너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품속에서 돈을 조금 꺼내주었다. 소년이 눈을 휘둥그래 

뜨자 진양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아. 다음부터는 아무 사람 물건이나 훔치면 안 돼.  사람을 척 보고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오면 하지  말아

라. 알았지?" 

소년은 돈을 받은 게 마냥 기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그 소년의 엉덩이를 한 대 쳐주고는 미소하며 다

시 몸을 돌렸다. 

진양은 빈민가를 벗어나며 한번 더 그 거리를 돌아보았다. 정말 모순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장소다. 이쪽 거리는 호

화스러울 정도로 밝고 깨끗한 거리인데 한 골목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면 금새  모든 게 변하지 않는가. 한 걸음 

걸을 때면 오물덩어리요 한 걸음 또 걸으면 도둑 소년들이다. 악취가 심하고  실로 빈민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더러운 거리였다. 

하지만 진양은 조금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도 한때는 그런 곳에서 살았고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은 여기 

호화로운 곳에 사는 자들보다 훨씬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도둑질로 연명하고  구걸로 연명하며 구차하게 사는 이들

이지만, 그 위에서 허세부리고 농간을 부리며 이들을 깔보고 멸시하는 자들이 더 더럽고 구차한 인간들이라 믿었다. 

문득 자신의 행색 생각이 났다. 그는 제 옷을 내려다보면서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이런 데서 살았으며 또 이

런 생각을 하던 자가 옷은 정말 깨끗하게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바로 시전으로 향했다. 시전에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북적거렸는데 진양은 그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한 

상인에게 옷을 팔았다. 워낙 말을 잘하다 보니 값을 더 쳐서 받을 수가 있었고  자신은 그 받은 돈으로 다시 새 옷

을 구입했다. 허나 그 옷은 시전에 나와있는 옷이 아닌 상인의 옷이었다. 그 상인의 옷이 매우 남루했는데도 진양은 

제법 돈을 더 얹혀주며 받아 입었다. 

이렇게 하니 돈이 제법 남았다. 진양은 다시 복잡한 시전을 지나 길거리에서 만두를 팔고있는 자에게 다가갔다. 진

양에게 남은 돈은 제법 됐는데 그 돈으로 모두 만두를 사버렸다. 물론 악만풍이  준 돈은 남겨두고 옷을 팔아 남았

던 돈으로 산 것이다. 말이 옷 팔고 남은 돈이지 실제로 제법 되는 돈이었다. 만두집 주인은 금새 눈이 휘둥그래져 

순식간에 수십 개에 이르는 만두를 팔았다. 아예 2통에 담아 떠넘겨주고 그가 떠날  땐 멀리까지 쫓아와 열심히 인

사를 해댔다. 

진양은 그 2통에 가득 찬 만두를 모두 빈민가에 가져왔다. 빈민가 사람들은 갑자기  남루하게 옷을 갈아입고 웬 통 

두 개를 들고 오는 그가 이상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양은 갑자기  모두 모이라고 소리치며 자꾸 박수를 쳐댔

다. 빈민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며 하나씩 다가들자 진양은 그들에게 만두를 건네주었다. 통 뚜껑을 열자마자  냄

새가 사방으로 퍼져서인지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굶주린 자들이다. 진양은 그들이  얼마나 

배고픈지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빈민가 사람들이 만두를 받으려고 아주 오두방정을 떨었으나 진양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며 친절하게 모든 만두를 건네주었다. 

"공자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오늘 우리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한 노인이 걸어나오며 한 말이었다. 척 보기에도 그는 이  빈민가의 촌장쯤 되는 사람 같았다. 그가 말하며 무릎을 

꿇으려 하자 진양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들며 말했다. 

"제가 왜 공자님입니까? 저도 한때 이런 곳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보니 제 가슴이 아파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겨우 만두만 사온 겁니다. 나중에 돈이  더 생기면 반드시 또 찾아와 더 푸짐한  음식을 가져다 드리겠습니

다." 

촌장의 눈이 금새 뻘개졌다. 너무 기쁘고 코가 찡해진 것이라는 걸 진양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코도 찡해지며 가슴이 훈훈해지는 걸 느꼈다. 슬쩍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빈민가  사람들이 눈을 붉히며 자꾸 허리

를 굽히고 있었다. 진양은 그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지금껏 자신처럼 이렇게 만두라도 가져다 준 사람은 없

었을 것이다. 아니, 만두는커녕 이곳엔 촌락에 사는 평민들도 잘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

욱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빈민가 사람들은 진양이 오래있다 가길 원했다.  황제를 대할 때도 이리 공경하는 눈빛이  아니었건만 지금 그들의 

눈빛은 매우 공손하고도 정중했다. 그러나 진양은 만두 두 통 가져다 준 걸 가지고 생색내기가 싫었다. 마음은 분명 

그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놀며 지내고 싶었지만 빈민가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마

다하고 다시 빈민가를 나섰다. 빈민가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들을 진정 위해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너무 잘 따르고 공경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 사람이 죽어라 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 

진양은 그런 게 싫었기 때문에 빨리 나선 것이었다.  그가 빈민가에서 나오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양은 살짝 조소를 머금었다. 아까 서생처럼 차려입고 빈민가에서 나올 땐 그냥 이상하게만 쳐다보던 사람들이, 이

제 남루한 차림으로 나오자 빈민가 사람인 줄 알고 눈치를 주는 것이다. 허나 진양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객잔으로 돌아와 보니 객잔 안이 매우 시끄러웠다. 무슨 싸움이라도 일어나는  듯 싶게 간간이 고함소리도 들

렸다. 진양은 흥미가 돌아 얼른 안으로 들어가 봤다. 객잔 안에선 생각대로 한창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호인

들의 싸움인 듯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의자며 탁자며 모두  작살이 나있고 그 중에는 또 날

아다니는 의자들도 있었다. 

진양은 누가 싸우는가보다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싸우는 사람 중 한쪽 편은 바로 형란과 문인능이

었던 것이다. 다른 쪽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수는 다섯 명이었고 괴상한 채찍을 써댔다. 진양은 재밌을 것이라 생각

하고 얼른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이 기회에 그녀들 무공도 견식 해둘 겸 채찍 쓰는 자들의 무공도 봐둘 겸 객잔 

이층으로 단번에 뛰어올라 내려다보기로 했다. 

형란과 문인능의 무공은 짐작했던 대로 형편없었다. 확실히 명문의 후예라 그런지 기초는  잘 잡혀 있어도 그건 애

들 싸움에서나 통하는 얘기지 무림인끼리의 싸움에서는 단지 기초일 뿐이었다. 하체와 허리가 제법 단련된 듯 자세

는 곧았지만 검법을 제대로 응용하지 못했고 아는 초식도 몇 개 되지 않는 듯 했다. 그나마 형란이 조금 나아 보였

다. 

반면에 채찍을 쓰는 자들은 달랐다. 진양은 채찍을 무기로 하는 편법(鞭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얘기로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만 들었지 실제로 편법을 보는 건 처음인 셈이다. 하지만  언뜻 보아도 채찍의 움직임이 불가사의

한 게 보통 편법이 아닌 듯 했다. 또한 그들의 실력도 형란, 문인능 보다 몇  수는 위인 것 같았다. 진양은 이 싸움

이 앞으로 채 5동작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가늠했다. 

과연 그런 것인지 형란과 문인능은 안 그래도 허둥거렸는데 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검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

고 날아오는 채찍을 막다가 이쪽에서 한 대 맞고, 저쪽을 막다가 허리를 맞고 하는 식으로  엉망진창이었다. 갑자기 

한 채찍이 넘어진 의자 하나를 감았다. 그러더니 채찍이 휘어지며 그 의자를 그녀들에게로 날렸다. 의자가 빙글빙글 

돌며 위력 있게 날아갔다. 형란과 문인능은 깜짝 놀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림에 겨우 의자를 피할 수 있었

다. 

이만하면 승부는 끝난 셈이다. 방금 그녀들이 넘어질 때 만일 채찍이 날아들었다면  백이면 백 죽임을 당했을 것이

다. 그러나 굳이 죽이려는 건 아닌지 그들은 채찍을 후리지 않았다. 단지 그녀들이 볼썽사납게 넘어지자 한 남자가 

대소할 뿐이었다. 

"하하하! 그동안 무공이 늘었나 했는데 정말 여전하구려." 

문인능이 벌떡 일어서며 이를 갈았다. 

"한번만 더 그 더러운 입을 놀리면 아주 찢어버리겠다!" 

"내 입을 대체 어떻게 찢는다는 거요? 당신 검으론 안될 거 같은데 그럼 입술로 찢어줄 거요?" 

문인능이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그 남자의 말은 확실히 더러웠다. 잘 보니 그의 생김새부터 조금 호색한 같은 면이 

있었다. 안면에서 무슨 광택이 나는 것 같고 눈빛도 유들유들한 게 꽤나 여인 울렸을 듯한 얼굴이다. 

"더러운 놈!" 

"그럼 난 더러우니 오늘 더러운 짓 좀 합시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무슨 짓이긴 무슨 짓이겠는가. 채찍을 든 그 남자는 이미 한 발짝 문인능에게로 접근했다. 문인능은 소스라치게 놀

라하며 검을 내밀었다. 

"다가오면 죽여버리겠다." 

"능력이 되나?" 

확실히 문인능에겐 그를 죽일 능력이 없었다. 그녀는 억울한지 자꾸 몸만 파르르 떨어댔다. 그가 다시 한 발짝 걸음

을 옮기자 이번엔 형란이 가로막았다. 검을 든 채로 마치 수작을 부리면 죽기로 싸워보겠다는 뜻이 담겨진 것 같았

다. 호색한이 웃는다. 

"형매. 형매는 옆에서 쉬고 있어." 

"누, 누가 당신의 형매예요?" 

형란은 그의 짓궂은 농담을 듣고 안색이 시뻘개졌다. 물론 좋아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호색한은 그렇게 생각하는

지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형란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공격을 하려는 듯 했다. 허나 진양이 보기엔 지금 공격하는 

건 거의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호색한이 형란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진양은 처음 형란을 본 날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에게 대한 것을 돌이켜보았다. 문인능과는 달리 조금 멍청하고 

생각이 짧은 듯 했지만 성격은 그녀보다도 훨씬 좋았다. 자신을 잘 대해주었고 그  날 형웅강과 싸우려 할 때 필사

적으로 말리기도 했다. 

(만일 그녀가 위기에 처한다면 도와줄 수밖에 없겠군.)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 기분도 우울한데 호색한과 한바탕 붙어 옛 생각도 잊을 수도 있으니 더욱 그렇

게 하리라 생각했다. 헌데 생각해보니 별로 좋은 기억으로  떠난 형가장이 아니었다. 형란의 잘못은 없지만 그래도 

그냥 나서기엔 뭔가 꺼림칙한 감이 있었다. 옷을 남루하게 갈아입었기 때문에 머리만 풀어헤치면 잠시는 못 알아보

겠지만, 싸움을 벌이면 머리가 흩날리니 계속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방립 따위를 쓰면 되긴 해도 몇 마디 대화를 나

누다 보면 금방 탄로가 날 것이다. 제법 이름이 있는 사람으로 변장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생각도 안 난다. 

그러는 사이 호색한은 벌써 형란과 문인능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뒤로는  부하인 듯한 자들도 따라붙으며 히

죽거리고 있었다. 진양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그냥 나서려고 했다. 막 이층에서 뛰어내리려는데 갑자기  호색한

을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잠시 생각해보니 정말 지금 상황에 알맞은 무언가가 있어서 매우 기뻐했다. 그는 재

빨리 사방을 둘러보며 방립을 쓴 사람을 찾아보았다. 마침 저 1층 끝 구석자리에 한 여인이 방립을 쓰고 있다. 그는 

한순간에 2층에서 뛰어내렸다. 

"누구냐?" 

호색한의 입에서 터진 음성인 것 같았다. 누군가 갑자기 위에서 뛰어내리는 걸 느끼고 소리친 걸 것이다. 그러나 진

양의 몸이 그들 주변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저 구석으로 향하자 이상한지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미 지나가

서 뒤통수밖에 안 보이지만 젊은 사람이란 건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진양은 그대로 그 사람의 방립을 빼앗았다. 

그 자가 놀라서 주춤거리는 사이 진양은 신속하게 방립을 눌러쓰고는 다시 1층 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방립은 아주 잘 맞았다. 크기도 알맞고 얼굴 앞으론 얇은  면사가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눈 부분은 가늘게 찢어져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호색한이 그를 보며 말한다. 

"당신은 누구요?" 

진양은 그의 물음은 듣는 체도 안 하며 당당하게  1층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탁자며 의자며  다 박살이 나 

있으니 그냥 맨 바닥에 주저앉은 것이다. 모두들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한참 뒤에야 호색한이 다

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란 말이오?" 

"내가 누군지 알면 네가 뭘 해줄 것이냐?" 

진양은 바닥에 편히 앉으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나 그건 되물음이라기보다 묻지 말라는 암시에 가까웠다.  호색한

이 호통친다. 

"해주긴 뭘 해준다는 거요! 지금 우리들의 일을 방해하겠다는 거요?" 

"무슨 일? 밤일 말이냐." 

순간 사방에서 제각기 킥, 웃음소리가 들렸다. 채찍 든 이들이 두려워 대놓고 웃음을 터트린 건 아니지만 다들 웃음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호색한의 안색은 어느새 시퍼래져있다. 

"보통 사람은 아니군.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이유는 저들을 도와주려는 것이오?" 

"내 저들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도와준다는 거냐?" 

"그럼 왜 우리에게 시비를 걸으시오?" 

"그녀들은 내가 점찍어놓은 여자들이니 건드리지 말아라." 

진양의 말은 매우 놀라운 말이었다. 점찍어놓았다는 건 호색한과 같은 목적이란 얘기가 아닌가. 자신이 먼저 노리던 

여자들이니 가로채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호색한은 어이가 없는 듯 한동안 입만  벌리고 있다가 겨우 말을 이

었다. 

"당신이 점찍어놓았다니 어쩔 수 없군. 헌데 당신이 누군지 알고는 싶소." 

"하하." 

진양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호색한이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서는데 진양은 그저 유유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녀들은 내가 꺾어놓은 꽃이요, 여기 술 한 잔 준비하여 두 가지 모두를 챙겼는데 웬 놈이 나타나 가로채려는 것

이던가." 

그의 말에 호색한을 비롯한 모두의 안색이 싹 변해버렸다. 형란과 문인능은 누군가  구해주는가 싶더니 더 나쁜 사

람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이고, 호색한은 지금 그가 누군지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 호색한은 대변한 안색으로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곧 공손히 읍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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