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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五 章. 낙양 이대가장 2 (34/90)

                                    第 十 五 章. 낙양 이대가장 2

"이거 큰 실례를 범했구려. 설마 당신이 화주대도(花酒大盜) 석대협인 줄은 몰랐소." 

형란은 그가 누군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문인능은 아는지 눈을  부릅떴다. 안색이 금방 파리해지면서 다리

를 부들부들 떨었다. 형란은 그녀가 이상해지자 어디  아픈 줄로 알고 열심히 부축만 해댔다.  화주대도란 꽃과 술, 

고로 여자와 술만 훔치는 유명한 도둑이다. 

"나는 북망채(北邙砦)의 융정(隆霆)이라고 하오." 

"오호. 북망채라면 도적 떼로 유명한 그 집단 말이군." 

진양은 북망채에 대해서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섬서를 지나올 때 악만풍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형가장과는 별로 사

이가 좋지 않다고 하며 소채주인 융정이란 자가 매우 호색한이란 얘기도 들었었다.  진양은 지금 그를 보면서 악만

풍이 했던 말과 비교를 해보니 정말 맞아떨어지자 그가 정말 융정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 그의 말에 융정은 분노했는지 얼굴색이 약간 변했으나 금방 초심을 되찾았다. 화주대도라는 명성에 짓눌린 게 

분명했다. 

"아무튼 석대협께서 그녀들을 데려간다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려. 허나 문제가 하나 있소." 

"무슨 문제?" 

"사실 그녀들을 데려가려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내 아버지 뜻이오.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아시오?" 

진양은 노골적으로 비웃음소리를 흘렸다. 

"도적 중에 도적인 융왕(隆王)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그가 질책하거든 화주대도 석앙(席仰)이 뺏어갔다고 하거라." 

융정을 알고 있으니 융왕도 모를 리가 없었다. 악만풍이 말하길, 융왕은 제법 편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긴 하지만 

실력이 대단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양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은 석앙이 

아니라 진양이니 이 일만 끝내고 다시 변장을 풀면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된다. 

"허나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탓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오.  혹 알고 있을지 몰라도 우리 북망

채와 낙양 이가장은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니오." 

"그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집안의 여식들을 납치하는 건 좋은 방도가 아니지. 아무리 도적이라지만 창피

하지도 않는가?" 

진양의 결심이 굳은 듯 하자 융정의 안색에 초조함이 엿보였다. 그의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뭔가 있긴 있

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진양은 그녀들을 넘겨줄 마음은 없었다.  별로 좋은 기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안면이 

있고 또 악만풍과 친한 사람들인데 미쳤다고 넘겨주겠는가. 그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융정에게서 시선을 돌

려버렸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갑자기 융정이 돌변했다. 그와 함께 있던 네 명의 부하들은 융정이 손짓하자 금방 진양의 전후좌우를 에워쌌다. 진

양이 융정을 보며 말했다. 

"대단히 급한 일이긴 한가보군." 

"닥쳐라! 웬만하면 그냥 말로써 풀려 했는데 네가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 없지. 네놈이 아무리 화주대도라 해도 4

명이 펼치는 북망귀곡편법(北邙鬼哭鞭法)을 당해낼 순 없을 것이다." 

진양은 이제야 좀 전 편법이 북망귀곡편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느릿느릿 

일으켰다. 전후좌우를 지키는 자들은 모두 길다란 채찍을 들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 보니 그 북망이 뭐 어쨌다는 편법 하여간 그거 별로 대단치도 않던데." 

"흥. 그럼 석앙 네놈의 천로퇴법(天路腿法)은 뭐 엄청 대단하다는 거냐?" 

"적어도 그 북망.. 뭐라고 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진양이 자꾸 약을 올리자 융정은  불길이 머리끝까지 닿는 듯 했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하는 안색으로 단숨에 <쳐

라!>라는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채찍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까 볼 땐 그저 무작정 후려치는 편법인 줄 알았는데 맞서보니 아니었다. 공

격이 시작되자마자 채찍의 끝은 각각 진양의 대혈을 노리고 날아드는  것이었다. 더구나 채찍이 부드러우면서도 언

제 어떻게 변초할지 몰라 상대하기가 더욱 난감했다. 마치 진양이 무슨 조랑말이나  되는 듯 번갈아 가며 쉴새없이 

채찍을 내리찍어댔다. 

진양은 생각보다 그들이 대단함을 깨닫고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다. 본래는 얕보고 적당히 싸워주다가  발로 몇 대 

때려주면 될 듯 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퇴법을 흉내낼 수도 없었다. 또한  형란과 문인능이 지켜보니 함종권법도 쓸 

수 없어서 이야말로 진퇴양난이라 할 수 있었다. 진양은 검법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선 함종절검법이  가장 

펼치기 수월했다. 그는 다리요 허리요 하며 날아드는 채찍을 피하며 점점 형란 쪽으로 접근했다. 형란이 놀라는 찰

나 진양이 크게 고함쳤다. 

"검을 던져라!" 

그러나 형란은 뭐가 뭔지 모르고 우물쭈물해댔다. 검을 던지라는 게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진양은 답답

해하며 다시 소리치려 했지만 자꾸 변초되어 덤벼드는 채찍을 피하기도 바빴다. 이 채찍의 범위에서 벗어나면 좋을 

텐데 방도가 없고 또 그들은 저 멀찌감치 떨어져 손만 흔들거리고 있으니 약이  오르기도 했다. 다시 또 머리로 날

아드는 채찍을 피해 몸을 날리던 그는 문인능을 발견하고 소리친다. 

"검을 빨리 넘겨라!" 

문인능은 단번에 알아들은 듯 검을 잽싸게 꺼냈다. 헌데  갑자기 던지려다 말고는 갈등하는 듯이 자꾸 주춤거렸다. 

진양은 그녀의 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여기서 진양을 도와주어야  융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또 그를 도와 융정을 물러서게 하면 이번엔 그의 손아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진양은 생각 같아선 화주대

도가 아님을 밝히고 싶었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봤지만 문인능은 검을 던질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속이 터졌으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국 제 힘으로 싸우기로 했다. 막대기 하나라도 잡으면 유루봉법을 펼칠 수도 있을 텐데 당장 부러져나간 의자 발

이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피해가며 할 수 없이 탄지신통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채찍이 한순간 날아들 무렵, 그는 

재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한 사람을 향해 달리자 그들은 놀란 듯 채찍을 급히 당겨댔다. 거리가 좁혀지면 

상대적으로 긴 채찍으로 싸우는 그들에겐 매우 불리해지는 셈이다. 

진양의 발이 매우 빠른 덕인지 순식간에 한 사람의 정면으로 다가들었다. 그가 놀라 채찍을 끌어올렸다. 허나 그보

다 먼저 진양이 몸을 숙이며 그의 다리를 걸더니 빠르게 유리장쾌의 수로 안면을 후려갈겼다. 그가 피를 뿌리며 데

굴데굴 굴러간다. 등뒤로 또 채찍이 날아드는 걸 느꼈다. 진양은 단숨에 뛰어올라 채찍을 피하고는 몸을 홱 돌리며 

탄지신통을 쓰고 말았다. 탄지신통은 그가 정말 쓰지 않고 잘 숨겨두는 무공인데 이번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매우 낮은 음향을 내며 중지를 퉁기자 무언가 쌩, 하고 날아가는 듯 싶더니 한 명이 또 채찍을 놓치며 쓰러지고 말

았다. 아예 혈도에 찍힌 듯 눈을 뜨고도 꼼짝하지 못했다. 

이런 광경은 모두가 놀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지금 그가 보인 수법이 탄지신통임을  모르는 자도 없었고 그 위력

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자도 없었다. 더구나 탄지신통은 소림사의 72절예 중 하나라 더욱 기괴함을 더했다. 남

은 두 명은 방금 탄지신통을 봐서 그런지 진양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는 듯  했다. 물론 진양이 두고 볼 리가 

없다. 그는 다시 발을 디디며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들 두 명이 나름대로 북망귀곡편법의 묘수를 살려보았지만 한쪽

은 기세가 오르는 중이요 한쪽은 이미 기가 꺾인 꼴이니 상황에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확실히 아까 만큼 편

법이 정교하지 못한 게 이만하면 진양도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또 단숨에 접근하여 혈도를 짚어버렸다. 

남은 한 명은 거의 사색이 다되어있었다. 화주대도가  이런 움직임을 낼 줄도 몰랐고 탄지신통을 쓸  줄 안다 거나 

점혈 수법이 정통하단 얘긴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주대도는 본래 도둑이라 물론 경공 실력이 뛰어나지만 이만큼 

빠를 리가 없었다. 융정과 문인능도 이는 참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양은 이번엔 

접근도 하지 않고 멀리서 또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그 북망채 사람은 급한 대로 채찍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규칙

이 느껴지고 언뜻 보면 흡사 거미줄 같아 어떤 초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진양이 퉁긴 굵은 일지는 거미

줄 같은 채찍을 무시하고 단숨에 그의 목젖에 들이박았다. 그는 처참한 소리를 내지르며 즉사했다. 

진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융정을 노려보았다. 융정의 얼굴 역시 사색이 되어있었다. 

"네 죽는 날이 오늘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협!" 

융정이 외치며 바로 무릎을 꿇어버렸다. 진양이 알았어도 말릴 수 없었을 것이지만 물론 말릴 리도 없다. 그는 도리

어 무릎꿇은 융정의 어깨를 발로 밀어버렸다. 세게 민 것은 아니어도 별로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융정은 다시 쓰러

졌지만 또 무릎을 꿇는다. 

"정말 못났군. 이러면 융왕이 욕을 먹을 텐데." 

융정도 창피함을 알긴 아는지 얼굴만 붉어지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목숨이 더  중요한 듯 자세에는 변함이 없

었다. 진양은 조금 어이가 없어짐을 느끼며 또 불만스러웠다. 갑자기 예전  무굉이 말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래 

전에 웬 놈이 나쁜 짓을 하기에 좀 혼내줬는데 한번만 살려달라며 머리를 땅에  찍어댔다는 그 이야기. 혹시 그 주

인공이 이 융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숨에 연연하는 융정이었다.  진양은 혐오감이 치솟아 그의 안면

을 세게 걷어 차버렸다. <빡> 하는 소리가 객잔 내에 울리며 그가 나자빠졌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 목숨이 그리도 중요하냐?  그 더럽고 개 같은 목숨하나 건지려  무릎을 꿇으며 애걸하다니 

너 같은 건 남자가 아니다. 내 오늘 너를 여자로 만들어주마." 

"대, 대협! 하..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한번만.." 

융정이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을 덜덜 떨어댔다. 진양은 정말 거세를 시킬 듯  문인능에게서 검을 뺏어와 그의 앞으

로 다가갔다. 객잔 안에 웬 사시나무가 있어 떠는 것 같다.  진양은 왼손을 번쩍하여 그의 혈 두 곳을 짚고 천천히 

검을 들었다. 혈이 짚였기 때문에 융정은 더 움직이지 못하고 두 다리만 벌리고 있었다. 진양은 일순간 눈을 부릅뜨

며 검을 내리찍었고 융정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좌우에서 터진 비명소리가 왠지 여운을 남겼다. 

정말로 진양이 그를 거세시켰을 리는 없었다. 융정이 더러운 자라 생각했지만 그를  거세시키는 건 더 더럽다고 생

각했다. 그냥 시늉만 했는데 그가 기절하자 참으로 못난 인간이라 생각하고 실소했다. 그는 검을 내던지며 다시 2층

으로 번쩍 뛰어올랐다.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더욱 신비감이 들었다. 잠깐 웅성웅성하

던 객잔 대청도 채 일 각이 안 지나 고요해진다. 

그 후로 한번 금국 병사들이 찾은 듯 했다. 한인들이 자주 반발하여 치안에 힘을 썼던 탓이다. 다행히 귀찮은 일은 

없게도 객잔 주인이 이미 떠났다고 해서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진양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너무 심심했다. 이제 

고작 몇 일이 지났으니 악만풍이 오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문득 악만풍의 뒤를 쫓아 종남산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으나 한번 안 간다고 했다가 또 가면 자신 스스로 우스울 것 같아 포기했다. 그는 다시 침상에 드

러누웠다. 

요즘 들어 부쩍 왕령의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왜 그런지 한참 고민한 결과 악만풍이 떠나 외로움을 느껴서 그런 

것이라고 답을 내릴 수 있었다. 툭하면 아미산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또 전진교에 있을 당주

고와 왕령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혼인했을까? 나는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어째서 그녀가 당주고에게 가도록 내버려둔 걸까? 그녀가 

당주고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 말대로 내 질투심 때문에 그런 걸까?) 

진양은 눈앞으로 마치 종남산을 걷는 웬 부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한 명은 미남이지만  미운 당주고요 한 

명은 아름답고 선한 왕령이다. 생각 같아선 단숨에 달려가 당주고라도 죽여버리고 싶으나 그는 이제 왕령의 남편이

니 그럴 수도 없다. 침울한 생각이 복받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한숨만 내보내도 여전히 답답하다. 

날은 어느새 어두워져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고요히 땅으로 가라앉아 불빛이 없다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이 밤중에도 기루며 객잔이며 주루 등은 불을 훤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때문에 오히려 이 근방

은 대낮과 다를 바가 없다. 문득 저 한편 끝으로 여자 두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들은 점점 이  객잔으로 접

근하더니 등불 아래를 지나자 얼굴이 보여 진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둘 다  15~16세쯤으로 보이는 소녀요 그 중 

한 명은 절색의 미녀라 하더니, 바로 형란과 문인능인 것이다. 진양은 그녀들이 백이면 백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이라 

여기고 다시 방립을 눌러썼다. 생각해보니 방립만  벗었을 뿐 헝클어진 머리는 건드리지도 않아  별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과연 탁자 위에 놓인 촛불이 흔들거릴 무렵,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진양은 목소리를 좀 더 굵게 바꾸고 들어오라

는 말을 했다. 그러자 밖에서는 조금 주춤거리는 듯 싶더니 방문이 덜컥 열리며 형란과 문인능이 걸어 들어왔다. 진

양은 짐짓 기쁜 듯 탄성을 내질렀다. 

"두 꽃송이가 내게 몸을 바치려고 왔구나." 

"닥쳐라! 누가 네게 몸을 바친다는 거냐? 이 더러운 놈.." 

그가 말하기가 무섭게 문인능이 바로 반박했다. 진양은 역시 문인능이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냥 가볍게 웃

고 말았다. 조용히 있던 형란이 그들의 눈치를 잠시 보더니만 깊게 읍하며 공손이 입을 열었다. 

"석대협의 구함으로 오늘 무사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 드려요." 

진양은 그제야 그녀들이 이리로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누구를 구해? 나는 내 꽃송이들을 구한 것이다." 

"너.. 입 닥치지 못해?" 

문인능이 또 악을 질러댔다. 진양의 말이 매우 더럽고 소름끼치는지 몸을 파르르  떨며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을 찌

릿찌릿 울렸다. 형란이 흥분하는 그녀를 말리자 그녀가 소리친다. 

"저 봐, 저 더러운 말 하는 놈을! 그러기에 그냥 오지 말라했잖아. 인사도 했으니 빨리 떠나자." 

"능아. 어쨌든 우리를 구해주신 분인데 그런 말 하면 못 써." 

"이.. 바보!" 

문인능은 답답하여 한숨만 내쉬었다. 진양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터지는 웃음을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그는 낄낄거리

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너희를 구해줬는데 너희는 아무런 보답도 안 할 것이냐?" 

"무, 무슨 보답?" 

문인능이 뭔가를 직감하고 몸을 떤다. 형란은 아직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내가 왜 화주대도라 불리는지 알 텐데.." 

순간 문인능이 검을 뽑아 진양에게 던지고는  형란의 손을 이끌며 방문으로 도망쳤다. 바로  질주해 집까지 도망갈 

기세였다. 진양은 그녀를 좀 더 골려주고 싶어서 날아오는 검을 발로 걷어차고는 한순간에 경공을 펼쳤다. 번쩍 튀

어 올라 눈 깜짝하는 사이 방문을 막아버린다. 

"무슨 짓이야? 얼른 비켜!" 

"감히 나에게 무례했겠다. 너 같은 건 혼 좀 나봐야 해." 

진양은 음습한 목소리로 문인능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문인능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런데 갑자기 형란이 애걸하는 말투로 진양에게 말한다. 

"석대협! 능아를 혼내지 말아요. 그녀의 성격이 원래 그런 거니 석대협이 이해해줘요." 

문득 방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는 진양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대소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녀의 말이 너

무 순진했던 탓이다. 혼내준다는 말을 때린다는 말로 오인한 게 분명했다. 진양은 더 문인능을 괴롭힐 마음이 가셔

져 가볍게 웃으며 옆 의자에 주저앉았다. 

"너희들이 왜 이 객잔에 오게 됐는지 말하면 그냥 돌려 보내주마." 

"저희는 지금 석대협께 감사를 드리려고 온 거예요." 

"아니 그거말고. 아까 전에 왜 이 객잔까지 와서 융정이라는 놈과 맞섰냐는 거지." 

진양은 조금 궁금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그녀들의 집은  이 낙양에 있는 터라 여기서 반 각만  걸으면 나오는 곳이 

낙양 이대가장인데 뭐 하러 이런 객잔에  왔느냐는 것이다. 그러자 형란은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얼른 대답해. 안 그러면 저 아이를 혼내줄 테다." 

진양이 문인능을 가리키며 협박조로 말했다. 형란은 안절부절못하며  문인능을 자꾸 흘낏거렸다. 대답을 하고 싶긴 

한 모양인데 뭐가 문제인지 입을 떼다가 말고 떼다가 말고 반복했다. 진양이 웃으며 벌떡 일어선다. 

"좋아! 그렇다면 혼 좀 내줘야겠군." 

"저, 저리가!" 

진양이 빠른 걸음으로 문인능에게 다가서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진양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뻗었다. 순간 형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말할게요. 능이를 괴롭히지 말아요." 

그녀의 말에 진양은 손을 조용히 회수했다. 문인능은 죽다 살아난 듯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진

양은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으면서 형란에게 말하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희는.. 저희는.." 

"어서 대답해. 말한다며." 

"저희는.. 지.. 진대협을 만나려고 왔어요." 

진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대협이라면 분명 자신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신을 왜 찾는단 말인가. 그는 기괴하게 

여기며 이유를 물으려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린 소녀의 마음이라 생각하고는 피식  웃으며 그래도 모른 

척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것도 모자라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지.. 진대협이.. 아니 아무튼.. 그 분이 우리 집에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떠난 것 같아서.." 

"휴! 답답하군. 이봐 네가 말해봐." 

진양은 모든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게 너무 느리고 더듬거려  답답함이 솟았다. 그는 문인능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인능이 깜짝 놀라며 대답을 안 하다가 진양이 다시 일어설 기세가 보이자 황급이 입을 떼었다. 

"마, 말할게요! 란이가 진대협께 사과하고 싶다면서 이 근방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악대협이 떠날 때 낙양에서 지낼 

것이라 하셔서 주변에 있는 객잔을 뒤지던 것인데 마침 처음으로 뒤지던 곳이 이곳이었던 거예요." 

진양은 진작부터 형란이 자신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악만풍이 미리 그런 말까지 했을 줄은  몰랐

다. 그는 악만풍 생각에 피식 실소하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문인능은 제발 살려 보내달라는 눈빛이요 형란은 그저 

부끄러움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진양은 둘 다 생각이 달라도 역시 안쓰럽기는 해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융정 같은 놈들을 만나지 않도록 사람들 하나씩 데리고 다녀라. 벌써  시간이 늦은 듯 하니 어서 집에 

가도록 하고." 

그녀들은 역시 다른 이유로 기뻐했다. 문인능은 이제야 저 호색한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어 기뻐하는 것이고 형란은 

부끄러웠는데 겨우 빠져나갈 수 있어 기뻐하는 것이다. 진양에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보니 날이 매우 깊

은게 삼경은 된 듯 했다. 집에서 걱정할 거라 여기며  그녀들에게 얼른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들은 예의상 읍을 

하고 막 문 밖으로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불이야! 불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이었다. 진양은 깜짝 놀라 고개를 내밀어보니 소리친 사람은 저쪽 주루의 손님인 듯 했다. 얼

굴이 술기운 덕인지 뛰어다닌 덕인지 심하게 벌개져있었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동쪽이었다. 진양은 고개를 더 내

밀어 그쪽을 보다가 안색이 싹 변하고 말았다. 

"너희들 멈춰!" 

진양은 급히 고개를 빼며 형란과 문인능에게 소리쳤다. 그녀들은 또 그가 무슨  일을 시킬까 두려운지 안색이 변했

다. 그러나 진양은 좀 전처럼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빨리 집으로 가봐라! 너희 집……." 

"불이 났다! 불이요 불! 낙양 이대가장에 불이야!" 

진양이 말하려던 것을 밖에 소리치던 자가 대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형란과 문인능의 얼굴은 더 얼어붙

을 수 없을 만큼 딱딱하고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런 놀라운 상황을 직면해본 적이 없어 바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입

만 벌리고 있었다. 진양은 급함에 할 수 없이 그녀들을 깨우고 따라오라며 먼저 달려나갔다. 형란과 문인능은 멋모

르고 그를 따라나선다. 

진양은 동쪽을 향해 잽싸게 내달리고 있었다. 뒤로는 형란과 문인능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녀들의 안색으로 보아 

이제야 사태를 느끼고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진양은 본래 남의 집에 불이  났다고 해서 이처럼 날뛰는 사람이 아니

다. 그리고 낙양 이대가장에 무슨 은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실제로 그가 이리  급하게 달리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대가장에 불이 난 걸보고 곧장 떠오른 사람은 바로 악만풍이었다. 형가장에 가보고서

야 악만풍이 그들 가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형웅강과 대화를 나눌  때도 남아서 듣겠다는 

그를 형웅강은 내쫓지 않았다. 형란과 문인능은 그를 스스럼없이 대했고 형웅강도 마찬가지였다. 악만풍 또한  그들

에게 그리 대했으니 이 일을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좌시한다면 악만풍은 크게 실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보는 것은 아니되 그와 절친한 친구요 마음이 맞는 사람이니 이대가장을 지켜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경공을 펼치자 걸으면 반 각이 걸리던 이대가장에 실로 삽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란과 문인능은 그를 따라잡

지 못하고 한참 뒤쳐져서 달려오고 있었다. 도착하여  본 낙양 이대가장이 타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대화(大火)였

다. 언제 이렇게 불길이 번진 건지 그 크고 호화스럽던 문인가장과 소박하고  전진교의 냄새가 풍기던 형가장 모두 

화염의 입이요 손아귀에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엔 자다 일어난 사람들이 제각각  물을 쏟아 붓고 몇몇 사람들

은 제 옷을 벗어 불길을 잡아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불길은 마치 마귀처럼 이대가장을  잿더미로 만들어가고 있고 

아무리 진화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형란과 문인능은 그제야 쫓아와 겨우 이대가장의  불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문인능은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힘없이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듯 세상을 잃은 듯 정신이 나가있었다. 하지만 형란은 놀랍게도 옷으로 

머리를 감싸고 안으로 뛰어들으려 했다. 진양은 갑자기 옛날 왕령이 말해준 금녀의 비화가 떠올라 그녀를 막았다. 

"석대협! 비켜주세요. 아버지도 안에 계실 거고 모두 다 안에 있단 말이에요!" 

"멍청한 소리는 작작해라! 네가 안에 뛰어든다고 그들을 모두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너만 죽을 것이다." 

"하지만.. 구해내야 해요. 반드시.. 꼭!" 

그녀는 기어코 안에 들어가려는 듯 진양을 밀치며 달려갔다. 이런 전개는 진양으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경우라 잠

시 움찔했지만 특유의 경공으로 다시 그녀를 막았다. 그녀가 또 뛰어들으려 하자 진양은 할 수 없이 그녀의 허리에 

있는 미룡(尾龍)혈을 짚었다. 미룡혈은 수혈(睡穴)과 비슷하여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이 들고 말았다. 

진양은 다시 고개를 돌려 이대가장을 바라보았다. 불이 심상치 않았지만 담장이 무너져 저 위로 뛰어넘는다면 들어

갈 수도 있을 듯 했다. 문인능은 넋이 나가있고 형란은  자고 있으니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되, 악만풍을 생각하니 

가만히 볼 수도 없었다. 그는 즉각 형란을 문인능에게 넘겨주고 얼이 빠진 문인능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그녀는 

정신을 차린 듯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은 이제 마음이 놓여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서 꼼짝도 하지말고 있어. 누군가 나타나 납치하려 하거나 공격하면 사력을 다해 시간을 끌어라." 

문인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곧바로 무너진 담장을 넘어 불타는 형가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 놀란 사람

들의 말리는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진양의 몸은 불구덩이 안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과연 형가장 안은 불 천지였다. 무성했던 나무가 말라비틀어져 한줌의 재가 되고  마침 그가 들어오자 대청의 기둥

도 쓰러졌다. 이제 막 불길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인 듯 했다. 진양은 먼저 형웅강을 찾아다녔다. 집안에 있을 것 같

은데 들어가자니 너무 위험했다. 그는 일단 탄지신통을 펼쳐 창문을 부수고 가볍게 뛰어올라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

에도 불길이 이미 번져있다. 한마디로 이 집안 어느 곳 하나 불길이 안 번진 곳 없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던 진양

은 문인가장과 연결된 담장이 무너지는 게 보였다. 혹시 문인가장에 그들이 모여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진양은 

그 담장을 뛰어넘었다. 본래 형가장과 문인가장은 찰싹 붙어있어 그럴 수 있던 것이다. 

문인가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들어와 보는 곳이지만, 밖에서 봤을 때처럼 호화스러운 궁전 같은  집은 

이미 저 촌락이요 빈민가의 움집보다 못나 보였다. 진양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이 스쳐지

나갔다. 문인가장의 집은 그나마 좀 나아 보였다. 왼쪽의 작은  건물이 숙소 같았는데 그곳은 이미 다 타고 있었지

만, 집채가 큰 정중앙에 있는 대청은 아직 불길이 이층까지 번지지 않은 듯 했다. 진양은 좀 전 수법으로 중지를 퉁

겨 창문을 부수고 보니 확실히 연기만 자욱할  뿐 불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꾸물댈 시간이  없음을 알아 단숨에 

뛰어올라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안에 들어서 보니 타는 냄새요 연기로 눈이 따가워졌다. 그러나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방문을 여니 막 계단이 타오

르는 게 보였다. 앞으로 반 각 가량만 지나면 이곳도 불길 천지가 될 듯 했다. 사방으로 문인가장의 제자들인 듯한 

시체가 수도 없이 보여 확인해보니, 장법에 맞아 죽은 자도 있었고 검에 찔려 죽은 자도 있었다. 진양은  그 사람들

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으나 형웅강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저쪽  구석에 부서진 문짝이 보였다. 진양은 느껴지는 게 

있어 달려가 보니 웬 남자 두 명의 시체가 늘어져있었다. 하나는 분명 형웅강이었고 하나는 잘 모르겠지만 옷이 깔

끔하고 나이도 많이 먹은 듯해 문인강목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진양은 일단 두 구의 시체를 양어깨에 둘러매

고 서둘러 창 밖으로 뛰쳐나갔다. 

"빌어먹을.." 

담장을 넘으려던 진양이 막막함을 느끼고 내뱉은 말이었다. 아까는 쉽게 넘긴 했지만  이번엔 커다란 두 구의 시체

를 들고 있어 쉽기는커녕 넘지도 못할 것 같았다. 진양은 궁여지책으로 문인강목의 시채를 먼저 내려놓고는 형웅강

의 시신만 들고 뛰어넘었다. 다시 돌아온 후에 또 문인강목의  시체를 들고 뛰어넘었다. 두 번 왕복한 진양은 다시 

두 구를 들고 아까 그 무너진 담장을 통해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가 나오기가 무섭게 형웅강 집채가 통째로 

주저앉았다. 

"살아 나왔어!"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놀라움에 부르짖었다. 금새 사람들이 몰렸고 어느새 깨어난 형란과 문인능도 달려왔

다. 진양은 한동안 숨을 헐떡이더니 형란과 문인능을 보며 말했다. 

"이 두 구의 시체는 운이 좋아 불에 타지 않았다. 하나는 형웅강이고 하나는 문인강목일 테니 확인해봐라.." 

진양은 애써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녀들이 슬퍼할 것을 생각해 음성이 점점 작아졌다. 형란과 문인능은 급하게 시신

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각자 형웅강과  문인강목이 정말 죽었음을 확인한 그녀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뒤로 넘어갔다. 사람들이 놀라 그녀들을 잡았다. 진양은 그들에게 낙양 객잔으로 안내해달라고 했고  사람들

은 그의 의협심을 본 터라 곧장 그들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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