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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六 章. 흉수 2 (36/90)

                                        第 十 六 章. 흉수 2

놀랍게도 사람들은 아직 일어서 있지 않았다.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진양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가 형란의 팔을 끌고 가는 걸 보며 얼굴색이 시퍼래졌다. 한 사람이 외친다. 

"석대협! 지금 뭐 하는 짓이오?" 

"원수를 갚아주러 간다. 막는 자는 나에게 죽는다." 

사람들은 원수를 갚아준다는 말의 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지만 <막는 자는 나에게 죽는다>라는 말도 못 알아들을 

바보들이 아니었다. 앞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주춤주춤 갈라지고 길이 트인다. 진양은 성큼성큼 걸어 그 사이를 빠

져나갔다. 그런데 그가 막 객잔 문을 나설 때였다. 

"멈춰!" 

진양이 돌아보니 문인능이었다.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나큰 슬픔과 나흘 간 역경을 겪

어서 그런지 예전에 보았던 소녀 티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불렀으면 말을 할 것이지 뭐가 불만이라고 눈을 부라리느냐?" 

진양의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말투가 오만하고 예의라곤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있

어선 진양보다 문인능이 더 중요하고 존중해야할 존재이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반감이 생겼다. 

"란이의 완맥을 놓아라!" 

"그녀는 내 말을 믿었으니 그녀의 복수만 해줄 거다. 복수를 해준다는데 왜 방해하느냐?" 

"흥. 북망채 졸개 네 명을 잡으면서 그리 고생한 주제에 혼자 융왕을 죽이겠다고?" 

문인능이 그를 살살 비꼰다. 

"그래 너는 그 졸개 한 명을 고생하면서도 잡지 못했지." 

"너와 내가 같으냐?" 

"왜 틀리냐? 나도 사람이고 너도 사람인데 우리가 뭐가 다르냐? 설마 난 사람이고 넌 개라는 뜻은 아니겠지." 

"뭐야?" 

지켜보던 사람들이 고함쳤다. 진양의 말에 모두들 대노한 셈이다. 그러나 진양은 마치 그들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

는 듯 기어코 제 할말을 다한다. 

"문인능 이 암캐 년아. 문인강목의 협명을 본받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지, 너는 문인강목의 명성만을  얻어서 

인심을 얻는 꼴이다. 도와준다는데 그 멍청한 닭대가리로 억지만 부리고 앞뒤가 안  맞는 헛소리만 지껄이니 더 이

상 너와는 있지 못하겠다." 

"너.. 가, 감히 날 암캐라고 했어!" 

진양은 그런 더러운 욕이라면 천하에 따를 자가 없다. 

"그래 이 냄새나는 암캐 년아. 북망채에 대해 나도 잘 모르지만 네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암캐가 짖는 소리다. 북망

채주 융왕의 무공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는 하나 내가 맞섰던  북망귀곡편법은 대단했다. 북망채 인원이 수백에는 

이른다는데 그들 중 오 분지 일, 십 분지 일만이라도 북망귀곡편법을 펼친다면 형웅강이든 문인강목이든 상대도 못

할 것이다." 

그의 말은 사실 맞는 얘기였다. 지난 날 북망제자 4명과 붙었을 때 그리도 고생하지 않았는가. 시작하자마자 네  명

이 거리를 두고 채찍을 휘두르니 접근은커녕 피하기조차도 매우 힘들었다.  그의 발이 빨랐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

면 아마 그들에게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탄지신통이 있어 위기를 벗어났지만 그들이 4명이 아니라 10명만이라

도 된다면 형웅강이나 문인강목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진양의 생각이 이랬다. 

문인능도 그의 말을 듣자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문인강목이 실상  천하제일도 아니요 그렇다고 형웅강보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수십 명이 펼치는 편법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있긴 있지만 겨우 스무 명

에서 서른 명이고 실력도 별 볼일 없던 것을 상기했다. 그러나 인정하긴  싫었다. 아니, 진양의 말을 인정해주고 싶

지가 않았다. 

"당신 말이 제법 이치에 맞아도 이대가장엔 제자들만 오십 명이 넘어. 그들이 멍청하게 있을 사람들도 아니고 더구

나 낙양 한복판에 도적 떼 수십 명이 어떻게 들어와?" 

"왜 못 들어와? 아니 수십 명도 필요 없지. 한 스무 명만  끌고 와서 이대가장 담장에 걸터앉아 채찍을 휘둘러본다

면 어떻게 될까? 이런 건 생각해 봤느냐?" 

"그, 그건.." 

문인능은 할 말이 없었다. 본래 그녀의 무공 수준도 낮고 관심도 별로인 터라 진양이 적당히 말해도 그녀는 속아넘

어갈 수 있었다. 

"이보시오! 아가씨들에게 무례하지 마시오." 

그녀가 말이 막히자 한 사람이 나섰다. 차림새로 봐선 농부다. 그의 시선은 진양의 왼손으로 향했고 진양의 왼손엔 

형란의 팔이 붙들려있었다. 진양이 웃는다. 

"난 그녀의 복수를 해주려고 하는 것뿐이다. 만일 누군가 막는다면 그 자가 흉수라고 짐작하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라 제법 품위가 보이는 협박이었지만 어쨌든 막으면  죽인다는 말과 같았다.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듣고 안색이 시퍼래졌다. 달려가 형란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서슬 푸른  진양 때문에 마음대로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진양은 사람들이 더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문인능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듯 북망귀곡편법은 뛰어나다. 백이면 백 북망채의 소행일 테니 난 이 녀석과 함께 북망산으로 가겠

다." 

"란아! 가지마. 분명 저 자는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걸 거야!" 

놀랍게도 형란은 그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석대협은 반드시 우리 복수를 갚아줄 거야. 난 이 분을 믿으니 너도 가자." 

"란아!" 

문인능은 답답하여 가슴을 두드렸다. 진양이 조소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생각 같아선 저 살살

거리는 눈을 찢어주고 싶었다. 진양이 말한다. 

"우린 가자. 저 암캐는 죽었다 깨나도 복수는 하지 않을 기세다. 저 암캐는 사공환이라는 놈과 어울리겠어." 

말투는 분명 중얼거림이지만 음성이 커 명백히 문인능 보고 들으라는  말이었다. 사공환과 어울린다는 말은 사공환

처럼 복수심도 잊었다며 비꼬는 것과 같았다. 문인능이 그 사실을 어찌 모르랴. 그녀는 진양이 사공환에 대해 잘 알

자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분노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사이 진양과 형란은 금새 자

취를 감춰버렸다. 

북망채는 북망산에 있고 북망산은 낙양 북쪽에 있다. 북망산은 산이 그다지 높은 편도 아니고 산세가 우람하다거나 

고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근방 사람들에게 <북망산>이란 말을 꺼내면 누구나 다 아는 척을 한다. 그에는 두 가

지 이유가 있고 그만큼 유명한 것이다. 

첫째 이유는 중원 역대 왕가의 무덤이 수없이 많다는 점이었다. 예부터 왕족들의  시골이 많이 묻힌 까닭에 죽음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산이다. 게다가 장례는 항상 후해서 많은 사람들이 북망산이란 이름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이유는 다름 아닌 북망채 때문이었다. 북망채는 엄연히 분류하면 도적 떼다. 북망채 부근으론 사람들이 지나다

니지 않아서 멀리까지 가 돈을 빼앗고 여자를 겁탈하는 도적 떼였다. 북망채가 생긴 건 금국이 낙양까지 세력을 넓

힌 후인데도 명성이 자자하다는 건 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진양과 형란은 북망산 근처에 도착했다. 거리가 멀지 않아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진양이 말을 타고 서둘

러 달려온 이유도 있긴 했다. 그는 더 이상 형란의 완맥을 붙잡지 않았다. 사실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진양이 

굳이 이끌지 않아도 북망채에 갈 듯이 잘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슬슬 북망산을 오르기로 했다. 듣기로 북

망채는 도적질할 때조차 조용하고 북망산에서도 그리 활발하게 나다니지 않는다 하니 북망채 근처까지는 편하게 올

라도 상관없을 듯 했다. 

"형가장과 북망채는 무슨 원한이 있느냐?" 

진양이 발을 옮기며 건넨 말이었다. 이 말은 낙양 객잔을 나선 후로 처음 꺼낸 말이라 형란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허나 곧 진정하고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아버지께선 북망채가 사람을 괴롭히고 돈을 뺏는다 하시며 그들을 많이 혼내줬어요." 

"그들을 혼내주러 여기까지 왔었나?" 

그는 앞에 황량한 북망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형란이 도리질 친다. 

"아뇨. 북망채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함부로 쳐들어가진  못했어요. 그들은 자주 도적질을 하러 하산하니  그때마다 

혼내줬지요." 

"그렇군. 그럼 혹시 북망채 채주 융왕의 실력이 어떤지 알고 있느냐?" 

"몰라요. 아버지도 모르셔서 함부로 소탕하지 못했던 거예요. 사람들은 그의 실력이 평범하다지만 아버진 소문은 믿

을 게 못된다면서 듣지 않으셨어요." 

진양은 융왕이란 자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도적이 채찍을 무기로 하는 편법을 쓴다는 게 조금 이상했고 융왕의 실

력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진양은 잠시 머리를 굴려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지만 다 부질없는 것

이다. 그는 가보면 알겠지 하며 다시 발을 떼었다. 

<달가닥달가닥> 

진양과 형란이 오르려고 할 때 들린 소리였다.  말발굽 소리인데 그들이 타고 온 말은 옆에서  조용히 잡풀을 뜯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누군가 말을 타고 급하게 달려온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진양과 형란은 그 사

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문인능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몸과 황마가 조금씩 커지더니 금방 진양 앞으로 접근

했다. 얼마나 달린 것인지 말이 녹초가 다되었고 그녀가 갑자기 멈춰 흙먼지가 날아다녔다. 

"정말 요란하군. 넌 왜 왔냐?" 

"내가 오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란이와 함께 복수를 하려고 왔어요." 

그녀는 안색을 약간 붉히며 대꾸했다. 진양은 웃음이 터져 나왔으나 북망채까지 와서 웃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속

으로 문인능을 비웃으며 먼저 몸을 돌렸다. 형란과 문인능이 그 뒤를 황급히 따랐다. 

북망산은 과연 죽음의 대명사라 할만했다. 이게 산인지 황얀지 북망산이 아니라 북망야(北邙野)라고 하는 게 더  어

울릴 듯 하다. 마른 잎이 바람에 휘날리고 기슭은 황량의 극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 노을도 지지 않았는데 왠지 

모를 처절한 귀기가 느껴졌다. 아예 산 자체가 죽은 것 같다. 낮에라도 혼자 이  길을 걷는다면 몸이 서릴 만큼, 마

치 뒤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느낄 만큼 정말 소름끼치는 곳이었다. 

진양은 이 산을 보며 정말 북망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모자란다고 생각할 정도로  으스스한 기

운이 풍겼다. 평소 무굉을 존경해 안하무인으로 떠돌았지만 이런 산에 오니 안하무인이고 뭐고 소름부터  돋아났다. 

진양도 그럴 정돈데 형란과 문인능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녀들은 무슨 한밤중에  묘지 걷는 여자들처럼 온몸을 덜

덜 떨고 있었다. 

저 위를 바라보니 북망채로 보이는 듯한 울타리가 보였다. 그쯤이면 거의 정상에  가까웠는데 지금 진양 등이 있는 

곳에서 보면 한참은 돌아가야 할 듯 했다. 정면으로는 길이 없고 거의 절벽에 가까워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

양 등은 크게 우회하여 북망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옆길로 가니 은은히 졸졸졸 하는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그들

은 놀라움 반 안도감 반으로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우회하는 길이라 

별로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가보니 시냇물은 시냇물이나 뭔가 이상했다. 이상한 악취도 풍기고 은근히 피 냄새도 풍겼다. 속이 거북해지

고 부글거리기도 하는 것 같아 무슨 독에 중독된 것 같기도 했다. 진양은 더 있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급

히 몸을 빼냈다. 형란과 문인능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괜히 물가로 갔다면서 서서히 변하는 안색으로 산을 다시 올

랐다. 

이 산은 참 으스스한 게 오르면 오를수록 더 귀기가 풍긴다는 것이었다. 진양은 본래 산을 좋아해서 산이라면 제법 

안목도 있었다. 아미산은 산세가 곱고 수려하며 안개가 짙지만 그것이 도리어 한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화산은 높고 

험준하지만 그 가운데 도림 같은 도원이 있어 실로 거침 속에 부드러움이요, 강(强) 속에 약(弱)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이 산을 한마디로 평가하라면 <평가고 지랄이고 가지 말아라>라고 하고 싶었다. 실제로 진양은 이 산엔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내려가고 싶다. 

좀 더 오르니 황량한 길 끝으로 울타리가 보였다. 어떻게  된 게 북망채가 분명하거늘 그 조차도 고요했다. 진양은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하여 눈을 부릅떴으나 울타리 옆 돌 벽에 쓰여진 <북망채>라는 세  글자는 똑똑히 

보였다. 형란과 문인능을 돌아보니 그녀들 역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진양은 생각했다. 

(저것은 분명 외인을 막으려는 수작이다. 여기까지 오며 무덤하나 안 보고도 소름이 돋았으니 이 산에선 마치 귀신

이 나온다는 듯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도적으로써 맥을 유지할 수 있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만일 북망채가 시끌벅적했다면 차라리 더 들어서기 꺼려

졌을지 모른다. 그는 형란과 문인능을 끌어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본래 산, 하면 숲과 나무 천지라 몸 숨

기기엔 참으로 좋은데 이곳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아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나무나 풀이라면 저 밑에나 있지 이

곳으로 오니 푸른 빛깔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양은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못함을 알고 일단 물러섰다. 조금 

돌아 내려오자 나무 몇 그루가 보여 진양이 겨우 입을 열었다. 

"큰일이군. 일단 한 놈을 잡고 족쳐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데 도대체 사람 사는 곳인지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인

다." 

"정말 그래요. 여기가 정말 북망채가 맞는지.." 

형란이 두려운 눈빛으로 우물거렸다. 하지만 분명 북망채는 맞다. 아까 돌 벽에 쓰여진 글을 보지 않았던가. 그럼으

로 인해 더욱 으스스하다. 쿵쿵 뛰는 가슴을 가다듬던 문인능이 말했다. 

"사람은 전부 안에 있는 거 같은데 어떻게 들어가죠?" 

"지금 주변에 풀 한 포기도 안 보여서 잠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만일 울타리 주변을 감시하는 놈들이라도 있으

면 북망산에서 살아나가기조차 힘들어질 걸." 

"그럼 어떡하죠?" 

형란이 걱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기다려봐라. 아무나 한 놈만 잡으면 매우 편해질 텐데 대관절 보이지가 않으니.." 

진양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녀들은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기고 진양 홀로 다시 올라갔다. 다시 

가본 북망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고개를 쳐들어 멀리까지 보기도 하고 주변을  싹 훑어봤으나 몰래 감시할 장

소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감시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는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고는 북망채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울타리로 가까이 가지 않고 주변만 돌

아다니며 다른 방책을 강구하려는 것이다. 허나 뭐라도 몸을 숨길 수 있어야 계책이  생기지 풀 한 포기 없으니 떠

오르는 건 단 하나, 정공책이었다. 하지만 정공책을 쓰면 수가 부족하여 가망이 없다. 

한두 바퀴를 쭉 돌아보고 오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간간이 끼악끼악, 하는 해괴한 소리가 들려 등골이 다 서늘

해져왔다. 문득 형란은 잘 있는지 몰라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조금 달려 내려가 나무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형

란과 문인능은 바싹 몸을 웅크리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양을 보자  매우 반가운 듯 형란은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석대협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잖아요." 

"미안하다 꽃송아. 지금 몇 바퀴 돌며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잠입할 방도가 없다." 

문인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이상한 곳이군요. 산도 그렇고 채도 그렇고.." 

"이대로는 두 가지 방도가 있다. 하나는 정공법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공법과 비슷하게 접근만 해

보는 것이다." 

"정공법과 비슷하게 접근만?" 

진양의 계획에 문인능이 되뇌었다. 

"그렇지. 잠입을 하려면 접근을 해야하는데 보초도 없어서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고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  이것은 

어쩌면 허실을 노린 것일지도 몰라서 보초가 정말 없을 수도 있지." 

그의 말에 형란은 이해가 가는 듯 마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문인능은 단번에 알아듣고 손뼉을 쳤다. 

"아! 그렇군요. 그럼 그 방법으로 하죠. 어차피 복수를 갚으러 온 것이니 잠입하다 걸리면 싸우는 수밖에 없겠죠." 

"능아.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니?" 

"너 또 이해 못했지." 

형란이 멍청한 동태눈깔을 굴리며 헛소리하자 문인능은  가볍게 한숨쉬며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의 설명이 

다 끝나자 그제야 알았다는 듯 박수를 친다. 

"그렇구나. 하지만 매우 위험한 것 같은데." 

"우린 복수를 하러 온 건데 도망만 다닐 순 없지." 

문인능은 복수심에 불타는 듯 제법 각오를 한 것 같았다. 형란도 그녀의 말을  듣고 느껴지는 바가 있는지 혼자 주

먹을 움켜쥐었다. 진양만 낮게 웃으며 앞서 산 위로 달려갔다. 

진양 등은 그대로 발을 멈추지 않고 울타리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물론 요란하게  접근한 건 아니고 꽤나 숨을 죽

이긴 했다. 혹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바로 걸려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아주 위험천만한 작전이요, 어찌 보면 무

모한 작전이었다. 그들은 울타리 앞에 서서 숨소리하나 작게 하고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봤다면 분

명 무슨 소리가 날 테니 미리 대기하는 것이다. 허나 다행히도 정말 보초는 없는 듯 했다. 

"과연 산의 지세와 허실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었군." 

진양이 조소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혹시나 모를까 해서 주변을 한번 더 훑어보고는  그제야 울타리 넘어 들어갈 준

비를 했다. 일단 형란과 문인능에게 몸을 낮추게 하고 자신도  몸을 낮추며 울타리에 살짝 매달렸다. 그 꼴이 무슨 

매미 같아 문인능은 웃음이 터졌지만 웃을 상황이 아님을 알고 억지로 참았다. 진양은 매달린 채로 고개만 쏙 내밀

어 안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안 역시 고요했다. 사람 한 명 지나다니지 않고 단지 큰 집채만 수두룩하게 널려있었다. 생각보다 안이 굉

장히 넓어서 큰 집채가 많이 있는데도 공터가  참 많았다. 울타리 바로 옆이 가장 넓었고  어쩌다가 나무 막대기가 

꽂혀있는 게 보여 이쪽은 수련을 하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불 켜진 집채는 없었고 그저 저 한가운데에 작은 

모닥불이 피워져있을 뿐이다. 진양은 이미 허실이란 걸 깨달은 터라 겁먹지 않고 오히려 비웃는 마음이 솟았다. 참 

해도 어지간히 한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손은 계속 울타리 나무를  잡고 있던 터라 기척을 최

대한 줄일 수 있었다. 형란과 문인능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넘어올 것을 말해준  후에 도둑놈처럼 슬금슬금 한 집채 

뒤로 숨었다. 형란과 문인능이 잠시 후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이제 어떻게 하죠?" 

형란이 낮게 속삭이자 진양이 대답한다. 

"먼저 아무나 한 놈 잡아야겠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 

그는 곧바로 소리내지 않고 움직였다. 한 발 한 발 매우 은밀한 게 보통 조심하는 건 아닌 듯 했다.  문인능은 그가 

겁먹은 거라며 혼자 비웃음을 흘렸다. 진양은 집채를 등에 살짝 기댄 채로 귀를 바싹 붙였다. 내공을 있는 대로 끌

어올리자 작은 숨소리가 많이도 들렸다. 어림잡아 한 집채당 십 오륙 명씩은 자고 있는 듯 했다. 집채의 수 역시 십 

오륙은 되니 적어도 200명은 이 울타리 안에 있는 셈이다. 진양은 금방 계산을 하고 다른 집채 곁으로 몸을 날렸다. 

다시 귀를 대보니 이 집채 안 사람은 아직 안 자는가보다. 고른 숨소리가 많이 들렸지만 주고받는 목소리도 들렸다. 

뭐라고 하긴 하는데 잘 안 들려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사제.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자라는 거야? 이제 이경(二更)을 넘겼는데." 

"모르죠. 양사형은 알던 거 같은데 깨워서 물어볼까요?" 

"저 인간 성격에 깨우고도 우리가 무사할 거 같으냐." 

진양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억지로 배에 힘을 넣고 허벅지를  살짝 꼬집어 겨우 참긴 했지만 숨이 턱턱 막혔다. 

제아무리 북망채가 명성이 있다지만 어쨌건 한낮 도적 떼에 불과한데 사형 사제 하는 게 너무 우스웠다. 진양은 다

시 귀를 기울여 대화를 엿들었다. 

"내일 뭘 한다는 얘긴 들은 거 같은데요." 

"하긴 뭘 해?" 

"저도 잘은 모르죠. 하지만 뭐 종남산에 가지 않겠어요?" 

"아.. 또 그 빌어먹을 종남산에 가려나. 도대체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엿듣던 진양이 눈을 부릅떴다. 종남산. 이젠 아주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나지만 왕령이 머무르는 산이 아닌가.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양사형은 알겠죠?" 

"임마. 너는 여기 들어온 지 벌써 보름인데 그것도 몰라? 당연히 저 인간은 알고있지." 

"정사형. 정사형은 혹시 아시나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 제기랄칠 놈아. 언뜻 듣기로 뭐 돈이 들었다고  하던 거 같은데 그걸 알려준 놈도 별로 

쓸만한 놈은 못 되지." 

"아니.. 돈이 들었다면 왜 돈을 들고 종남산까지 가요?" 

"이 자식이 미쳤나. 주둥아리 안 닫아? 우리가 이런 얘기하는 것도 걸리면  죽음이고 그 도.. 아무튼 그게 들었다는 

말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정사형이란 자가 황급히 호통치자 들어온 지 보름 됐다는 어린놈은 입이 꽉 틀어 막히고 말았다. 진양은 매우 괴상

하게 생각했다. 그 안에 들었다는 게 돈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정말 돈이라면  왜 종남산까지 들고 간단 말인가. 그

는 아직 상상만으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귀를 붙였다. 헌데 그 어린놈이 겁을 단단히 먹었는지 다시 

말을 걸지 않았다. 진양은 그대로 한참동안 기다렸으나 기껏 나오는 얘긴 음담패설 정도라 곧 몸을 돌릴 수밖에 없

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참. 정사형. 감옥에 갇힌 그 자는 누구죠?" 

진양의 귀가 번쩍 트였다. 그는 다시 돌아와 내공을 끌어올리고 그들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아.. 그 미친 자식." 

"그 자가 미쳤나요?" 

"미쳤지. 아주 단단히. 감히 채주님께 개새끼라고 욕하던데." 

"허! 정말 미쳤나보네." 

진양은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상황만 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하고 싶었다. 

"그놈은 뭐 하던 놈인데요?" 

"몰라. 오래 전에 잡은 놈이야. 너 오기 훨씬 이전부터 갇힌 놈이지. 나도 잘 모르긴 한데 아무튼 상당히 오래됐어." 

"그렇군요. 그놈이 누군지 아시나요?" 

"그놈? 낄낄." 

갑자기 정사형이란 자가 낄낄거렸다. 

"그놈은 사실 얼마 전에 말아먹은 형가장, 형웅강의 사위야." 

진양은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형웅강의 사위라면 백 번을 고쳐들어도 가량이 아니겠는가. 그 날 종남 객잔에

서 봤던 도사의 제자요, 형웅강의 사위며, 형란의 형부가 되는 사람이지 않는가. 진양은 그가 딸과 함께 형가장으로 

도망친 줄 알았는데 가서 아님을 알고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에게 잡혀있는 것이다. 

"북망채 제 1의 적이 이대가장이라더니 과연 그리 됐네요." 

"그렇지. 그 날 봤느냐 형웅강과 문인강목. 채주님의 한 손을 못 이겨서 쩔쩔매는 꼴이 참 볼만했다." 

"당연히 저도 봤죠. 얼마나 통쾌했는데요 하하." 

그들은 한참 웃고 나더니 이제 자려는 듯 했다. 시간도 매우 늦은 듯 해 졸려질 만도 했다. 진양은 더  집채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알 건 다 알았으니 더 있어봐야 얻을 게 없음을 알고 몸을 돌려 달렸다. 

처음 갔던 집채 뒤로 가보니 형란과 문인능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진양이 형란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녀가 까

무러칠 듯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진양임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묻는다. 

"어떻게 됐어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있어." 

"뭐죠?" 

"네 형부가 이곳에 잡혀있다." 

형란이 놀라 입을 벌렸다. 문인능이 재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아 소리내는 걸  막으며 진양에게 상세한 얘기를 물었

다. 진양은 하나 하나씩 다 설명해주고 나선 말없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믿기 지가 않았다. 가량의 일은 

둘째치고 형웅강과 문인강목이 융왕의 한 손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 믿기 지 않는 것이다. 문인능은 진양이 혹 거

짓말하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투가 진지하여 생각을 지워버렸다. 진양이 말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가량을 구하든 복수를 하든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한다. 형웅강과 문인강목이 융왕의 한 손을 

이기지 못했다니까 실력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그의 말에 문인능이 형란을 바라보았다. 형란은 가량을 먼저  구하고 싶은 눈치다. 문인능도 그를 구하고 싶었지만 

복수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가량을 구해서 도망친다면 나중엔 기회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짤막하게 복수라는 말을 되뇌었다. 

"느, 능아. 형부를 구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 이번에 아저씨를 구하고 나면 다신 기회가 없을 거야." 

"하지만.." 

진양은 문인능이 매우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냉정한 걸 수도 있으나 진양의 눈엔 그렇지가 못했다. 자

신의 아버지 복수부터 생각하는 걸로 보일 뿐이었다. 지금껏 그녀가 보인 행동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

는 부분이었다. 한편 형란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도 복수는 하고 싶었다. 형웅강의 복수를 하여 편안

히 눈감게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선 가량도 중요했다. 단지 형부라지만 가량이 아직 

혼인하지 않았을 때는 자주 와 함께 놀아주었다. 어릴 적 기억을 아직 지우지도 잊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있어선 가

량은 매우 소중한 존재인 셈이다. 

"저는..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진양은 그녀가 안쓰러워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았다. 가량을 구하자." 

"아니 이봐요." 

문인능이 날카롭게 그를 불렀다. 상황이 상황이라 목소리만 작을 뿐 따지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진양은 본래 그녀

의 복수를 해주려 온 것도 아니었고 그녀가 맘에 든 것도 아니어서 아예 무시를 해버렸다. 형란을 일으키며 한쪽으

로 달려간다. 문인능은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진양 등은 일단 아까 그 집채 뒤로 이동했다. 이제 하나 하나씩 귀를 붙여서 숨소리로써 어디가 감옥인가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진양은 먼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채가 너무 많지만 한 식경(食頃)이면 감옥을 알아낼 수 있을 듯 했

다. 그는 그녀들을 다시 기다리게 하고 살금살금 내달렸다. 

순간 그는 다시 되돌아오며 입에 검지를  갖다댔다. 형란과 문인능은 깜짝 놀랐으나 고개를  살짝 내밀고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웬 남자가 옷을 자꾸 주섬주섬 하며 구석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그가 일을 보려한

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녀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후, 몰래 그 자의 뒤를  밟았다. 그 남자는 과연 뒷간으로 향

하는 듯 했다. 자다 일어나서 정신이 없는지 자꾸 비틀거린다. 진양은 주변에서 시야가 가려질 때를 노렸다가 한순

간 달려들며 그의 옥침(玉枕)혈을 점혈했다. 

"누.." 

진양은 빠르게 그의 입을 막고는 한 손을 정수리 위로 들었다. 그의 얼굴색이 잿빛으로 변한다. 눈빛은 금방 두려움

으로 가득 찼다. 그도 진양이 손을 내려 정수리를 친다면  바로 즉사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옥침혈은 

족태양 방광경(足太陽 膀胱經)에 속하는 혈로 한번 점혈 당하면 허리를 몽땅 쓰지 못하게 돼서 반항도 할 수  없다. 

진양은 오른손을 여전히 든 채로 왼손만 떼었다. 그는 입에서 손이 떨어져 소리를 지를 수 있으면서도 역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진양은 일단 그의 뒷목을 움켜쥐며 매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 위엔 백회, 목 뒤엔 천주(天柱)다. 알고 있지?" 

"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라. 거짓이 있거나 헛소리면 이 두 혈을 눌러주겠다." 

그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리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그제야 낮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감옥이 어디냐?" 

"저.. 저쪽입니다." 

그는 순순히 한 집채를 알려주었다. 진양은 그의 뒤로 돌아가서 그가 가리킨 집채를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중앙 쪽

에 있는 집채 중에 감옥이 있었다. 진양은 그의 뒷목을 여전히 움켜쥔 채로 밀었다. 형란 등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그녀들을 부르고 다시 감옥이라는 집채로 향했다. 그 남자가 자꾸 발소리를 내서  진양이 그의 백회혈을 살짝 눌렀

다. 

"개수작 부리면 죽는다." 

"죄, 죄송합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진양은 겁을 잔뜩 먹은 그를 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이런 자는 다루기가 제일 쉬운 법이다. 그는 사로잡힌 북망 제

자를 밀어 감옥 근처까지 갔다. 아까는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다른 집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

다. 진양은 북망 제자의 목을 한층 세게 움켜쥐며 말했다. 

"확실한 거지?" 

"네, 네.. 당연히 맞습니다." 

진양은 그에게 문을 열도록 시켰다. 옥침혈만 눌려서 허리만 못 쓸 뿐 다리나 팔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진양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직접 감옥 문을 열었다. 확실히 문조차 별다른 열쇠가 필요 없었다. 다른 집채와 완전 판박이

다. 진양은 사뭇 융왕이라는 자가 보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진양 등은 여전히 북망 제자를 잡은 채로 감옥 안에 들어섰다. 혹시 모를 일을 위해 문을 닫고 북망 제자를 앞세워 

걸어나갔다. 특별한 함정은 없는 듯 했다. 다만 저 구석에서부터 점점 고약한 냄새만 풍겨왔다. 

"아우 냄새." 

문인능이 한 말이었다. 진양은 그녀가 또 깨끗한 척 한다고 생각하곤 조소를 머금었다. 형란도 가만히 있는데 그녀

는 계속 투덜대며 코를 막고 오만법석을 다 떨어댔다. 확실히 냄새가 심하긴 했다. 아무래도 갇힌 자가 똥오줌을 못 

가리거나 아니면 똥오줌을 뒷간에서 못 보게 가두어둔 듯 했다. 그 때였다. 

"또 왔군 빌어먹을.. 오늘은 또 어떻게 괴롭히려고 그러는지." 

일순 형란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지금껏  두려움에 덜덜 떨며 잿빛 안색으로 따라다니던  그녀의 얼굴에 처음 

도는 생기였다. 그녀는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목소리는 분명히 가량의 목소리다. 조금 힘없고 가래가 끓는지 그

르렁거렸지만 본래의 목소리는 남아있었다. 

"형부죠? 형부 맞죠? 대답해요!" 

형란이 앞서나가 소리치자 그 자는 갑자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채 숨 한번 내쉬기도  전에 놀람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넌.. 넌.." 

"형부!" 

그녀는 앞도 보이지 않으면서 무작정 달려갔다. 곧 와락  안기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울렸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기절하고 슬프게 지냈지만 이처럼 통곡해본 적은 없었던 그녀였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아껴줬던 

사람, 연락이 끊겨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을 만나니 소리내어 울게 되는 것이다. 진양은 그녀가  불쌍하여 일단 

얼굴이나 보게 하려고 북망 제자를 닦달해 촛불을 밝혔다. 금새 집안이 훤해지면서 서로의 얼굴이 모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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