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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九 章. 패퇴 1 (41/90)

                                        第 十 九 章. 패퇴 1

날이 어두워지자 지나다니는 사람하나 없어졌다. 짐승들도 각기 사라지고 가끔 귀뚜라미나 부엉이만 울어댈 뿐이다. 

그런 풀밭 위로 두 남자가 도둑놈인양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하나는 진양이요 하나는 악만풍. 그들 둘은 지금 전

진교로 잠입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전진하는 것이다. 형란 등 세 명은 객잔에 남아서 동태를 살피고 만약을 대비

하기로 했다. 악만풍은 사경(四更)이 다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냥 떠나라는 말을  남겼다. 사경이 다 지나도 돌

아오지 않으면 먼저 떠나라. 이 말은 고로 실패하여 목숨을 잃게 될 테니  괜히 기다리다 위기를 맞을 필요가 없다

는 얘기였다. 

진양은 이 주변 지세에 대해 제법 식견이 있었다. 얼마  전 잠입하느라 조사해둔 덕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진교 

안의 지리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했다. 다행히 이번엔 악만풍이 있어서 한결 수월할 듯 했다. 진양과 악만풍은 함

께 차근차근 올라 밤이 한층 깊어졌을 적, 전진교 근처로 접근할 수 있었다. 

악만풍이 먼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조용히 담장에 등을  붙이고 주변을 쓸어본다. 진양은 원숭이처럼 나무를 밟고 

올라 멀리까지 훑어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전진교 밖엔 도사 한 명 없는  게 확실했다. 진양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악만풍은 담장 위에 손을 얹고 그 안을 바라보았다. 안은 생각보다 도사가 많다. 지난번 그가 잠입했었고 또 

근래에 진양이 침입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경계가 많이 강화된 편이었다. 악만풍은  이쪽에선 함부로 들어갈 수 없

음을 깨달았다. 

그가 고개를 뒤흔들자 진양은 번쩍 뛰어 옆의 나무로 옮겼다. 또 몸을 날리고  또 날리고 하다보니 금새 저번에 침

입했던 그 큰 건물 뒤편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정말 원숭이가 따로 없다. 악만풍은 그의 경공에 새삼 감탄하며 뒤

를 쫓았다. 달려가 보니 그는 급하게도 벌써 큰 건물로  몸을 던진 상황이었다. 저번처럼 찰싹 건물에 몸을 붙이고 

기어올라 건물 꼭대기에까지 다다른다. 그는 몸을 최대한 낮춘 채로 안을 살펴보았다. 

과연 이쪽도 이미 저번 일로 경계가 삼엄해진 듯 했다. 저번처럼 한 명씩 돌아다니는 도사는 보이지 않았고 적어도 

두 명, 많으면 네 명이나 붙어 구석구석 잘도 순찰해댔다. 그리고 올라와서 보니 이 건물 주변에까지 도사가 널려있

었다. 이 건물을 통해서도 침입할 수 없는 셈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기회를 엿보다 몸을 날려 다시 담장을 넘어왔

다. 악만풍이 달려가자 그가 귓속말했다. 

"이쪽은 침입할 수 없다. 너무 경계가 삼엄해." 

악만풍은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지세라면 진양보다 그가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두 곳이 아니라면 침입할 곳이 없었다. 땅굴을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날아갈 수도 없으니 참 골치 아픈 

노릇이다. 그러다 퍼뜩 뇌리를 스쳐 가는 게 있었다. 

"진양. 차라리 이건 어떨까?" 

"어떤 거?" 

악만풍은 갑자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진양이 궁금해하자 그는 더 조용하게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정공법." 

진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그건 말도 안 돼. 우린 정보를 캐내고 당광에게 죽여야하는데 그렇게 침입하면 전진교 수백 명의 도사가 한순간에 

튀어나올 거다." 

"아니 그런 정공법말고." 

진양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뜨다가 뭘 깨닫고는 낮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하. 소란스럽지 않게 침입해서 보이는 도사들을 계속 죽이며 전진하자고?" 

"그래. 도사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다른 도사를 부르지 못하도록 단숨에 죽이던지 아혈을 짚던지 해서  처리하자. 잠

깐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다 보면 당광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진양은 잠시 상상을 해보는 듯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찬성한다. 

그들은 다시 좀 전의 큰 집채로 올라섰다. 도사들이 순찰하여 담장을 넘는데  조금 기다렸다가 넘고 기다렸다가 넘

고 해야만 했다. 진양은 경공이 뛰어나 단숨에 건물까지 이르렀지만 악만풍은 그러지  못해 담장에서 한번 더 발을 

디디어야만 했다. 

건물에 오른 그들은 일단 주변을 잘 보기 시작했다. 만일 한 명을 죽이는데  멀리서 다른 도사가 본다면 달려가 죽

이기도 전 먼저 소리를 지를 게 뻔했다. 그러니 근접해있다면 모를까, 멀리서 다른 자가 볼 수 없는  위치에서만 기

습을 해야하는 것이다. 진양과 악만풍은 이미 홀로 잠입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문득 뒤쪽

으로 세 명의 도사가 돌고 있었다. 진양이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방향에서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기회라 여겨 악만풍에게 눈짓하고는 동시에 몸을 날렸다. 

"한숨 자라." 

웬 기척과 말소리에 도사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뒤엔 방립을 눌러쓰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진양이 있었

다. 헌데 그는 멍청하게 서있기만 한다. 도사들의 입이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순간 뭔가 턱 막힌 듯 목소리가 나오

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치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희미하게 바람 새는 소리만 나왔

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검을 뽑으려 했으나 몸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이미 혈도

를 짚인 것이다. 

뒤에서 악만풍이 걸어나왔다. 사실 진양이 그들 뒤로 가 시선을 끄는 동안  악만풍은 특유의 발놀림을 이용해서 소

리 없이 접근한 것이다. 천하를 떠돌며 온갖 일에 끼어 들다보니 자연 이런 일도 많이 겪었는데, 그러면서 부지중에 

익히게 된 특유의 발놀림이었다. 그가 뛴다해도 생각만 해두면 소리하나 내지 않을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 도사들

은 웬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인 때문에 놀란 상황이니 악만풍의 존재를 느낄 리가 없었다. 

진양은 걸어가 손을 쳐들었다. 죽여둬야 뒤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날 금국 병사를 죽이려할 때처럼 

악만풍은 그를 말렸다. 

"죽일 필요는 없어. 내 얼굴이야 알려져도 상관이 없으니까." 

"그래도 살려두면 좋지는 않을 텐데." 

그의 말에도 악만풍은 됐다는 듯 도리질 쳤다. 진양은 그의 마음이 선한 걸 알고 더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

들은 도사들을 그곳에 내버려두고 다시 건물 위로 올랐다. 도사 세 명이 줄자 왠지 침입하는 게 쉬울 것 같았다. 세 

명이 사라지면 6개의 눈동자가 사라진 셈이니 그만하면 이제  일이 잘 풀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젠  이 건물 위에서 

틈을 볼 필요가 없을 듯 했다. 

이제부턴 소리 없는 정공법이다. 멈추지 않고 달려 반드시 누구하나 소리내지 못하게 하면 된다. 진양은 경공이 뛰

어나니 달려가 처리하고, 악만풍은 건물 위에서 태세를 보기로 결정했다. 함께 가는 것도 좋으나 갑자기  다른 곳에

서 도사가 나오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악만풍은 진양에게 절대 살인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서로 주고

받을 신호를 정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진양은 건물 아래로 내려와 조용히 틈을 보았다. 위에서 본대로 앞에 중양궁까지 가는데는 사방팔방에 도사 20여명

이 깔려있었다. 중양궁 정면에는 네 명이 짝을 지었고 좌우에 셋씩, 나머지는  모두 둘씩 짝을 지은 형세였다. 진양

은 길을 돌아서 기습하기로 했다. 여기 정면으로 뛰어가면 20여명의 한가운데로 달려가는 형세라 미친 짓이기 때문

이었다. 옆에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뒤축으로 달렸다. 

가장 먼저 만난 건 두 명의 도사였다. 농땡이를 피우는지 한 명은 앉아서 쉬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진양은 눈에 살기를 내뿜으며 한순간 기습을 가했다. 확실히 진양의 경공은 고수와 비교할 땐 형편없

지만 이런 도사들과 비교할 땐 대단한 편이었다. 때문에 그가 일단 속력을 내자 도사 두 명이 눈치챘을 땐 이미 면

전으로 접근한 후였다. 그리고 그들이 막 검병을 잡는 시간, 진양의 두 손은 그들 견정혈을 내리찍고 있었다.  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허물어진다. 진양은 가급적이면 소리가 나지  않도록 그들의 목덜미를 재빠르게 붙잡았다

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 자리에서 보이는 도사는 과연 없었다. 멀리 돌아온 보람이 있었다. 진양은 기어가듯이 허리를 굽히고 달려 좌측 

세 명의 도사를 발견했다. 이들은 그냥 칠 수가 없을 듯 했다. 이편저편 다른 도사들의 시야에 걸쳐져 있었기 때문

이다. 진양은 일단 악만풍이 있는 꼭대기를 향해 양손을 교차시켰다. 여러 번 흔들흔들 교차시키고 나서 그는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좀 전 보낸 신호는 진입할 수 없다는 뜻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좀 기다리자 악만풍이 정원을 돌아 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악만풍은 그보다  전진교 안 지리를 잘 알고 위

에서 계속 태세를 보아왔기 때문에 좋은 방책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진양이  방도가 있냐는 듯 그를 건드리자 그

는 씨익 미소하며 속삭였다. 

"네 경공이 뛰어나니 저 멀리 있는 세 명을 해치워. 나는 여기 옆에 있는 두 명을 해치울 테니." 

"중양궁 앞에 네 명이 처음엔 못 봐도 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릴 텐데, 바로 정공으로 죽이면 되나?" 

"정공으로 제압하면 되지 죽일 필요는 없어." 

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일단 기척은 최대한으로 죽여야 한

다. 저 중양궁 앞에 있는 네 명의 도사가 등을 돌린 채 서있는 상태라 기척이 들리면 반드시 돌아볼 것이기 때문이

었다. 어찌 보면 지금 진양과 악만풍의 행위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걸 수도 있다. 

진양은 맹렬히 돌진해 아까처럼 세 도사의 견정혈을 내리찍었다. 먼저 두 도사를 제압하고 다른 한 명이 검을 뽑는 

순간 곡지혈을 찍으며 다시 견정혈을 찍은 것이다. 세 명의 도사의 몸이 차례로 무너졌다. 악만풍이 간 방향을 보니 

그는 이미 두 명을 제압하고 중양궁 앞에 네 명의 도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역시 뛰어가면서도 발 놓이는 소

리하나 들리지 않는다. 진양은 감탄을 뒤로하며 자신도 빠르게 경공을 펼쳐 내달렸다. 

그가 막 발을 떼는 순간 네 명 도사 중 한 명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입이 막 벌어지고 있었다. 진양으로선 너무 

거리가 멀어 도저히 제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악만풍이 단숨에 창을 날려 그의  머리통을 때렸다. 딱, 

하는 소리가 울렸지만 그리 크지는 않다. 창날로 맞춘 게 아니라 그는 그 자리에서 기절 정도만 할 뿐이었다. 남은 

세 도사가 그 소리를 듣고 동시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앗, 하는 경호성을 냈다. 그들의 시선이 이미 진양과 악만풍

에게로 꽂힌 것이다. 

악만풍은 이미 그들과 근접한 상태였다. 그들은 너무 놀라 무작정 검부터 뽑아들었다. 한 명이 기합을 넣으며 검을 

빠르게 휘두르자 악만풍은 그의 팔을 걷어차며 함께 봉안(鳳眼)혈을 짚었다. 그가 쓰러지자 그제야 남은 두  도사는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악만풍이 급한 대로 한 명의 혈은 짚었으나 남은 한 명은 어떻게 할 수가 없

었다.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진양이 비호처럼 몸을 날려 그 자의 입을 덥석 막아버렸다. 그가 깜짝 놀라기도 바쁘게 

악만풍이 그의 혈도를 짚어버린다. 

그들 모두가 쓰러졌다. 진양과 악만풍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쓰러진 도사 한 명을 

일으키며 악만풍이 캐묻기 시작했다. 아혈을 짚여 대답할 수 없으니 눈동자로 대답을 하게 하자 시간이 꽤 걸렸다. 

다른 도사가 나타날까봐 전진교와 북망채의 관계 같은 깊은 얘기는 물어보지 못하고 먼저 당광부터 처리하기로  했

다. 그의 무공이 대단할 것 같지만 힘을 합쳐서 싸운다면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제압한 후 북망채와

의 관계를 물으면 되는 것이다. 

악만풍의 물음에 도사는 술술 대답하여 당광이 중양궁 후원 옆에 있는 숙소에서 자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진양은 교

주라는 자가 다른 도사들과 한 집에서 잘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악만풍은 분명 그곳에서 잘 거라 생각했다. 사실 

전진교에는 숙소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도사들이 쓰는 숙소고 다른 하나는 장문을  비롯한 배분 높은 도사들이 사

용하는 숙소였다. 악만풍은 전진교를 존경하여 많은 걸 조사하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걸 잘 알고 있었다. 

중양궁 후원 옆에 있는 숙소는 바로 배분이 높은 도사들이 쓰는 집채였다. 소박한 차림새를 한 집이 중양궁을 돌아

가자 보였다. 이제 한시바삐 침입하여 당광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이 그의 방인 줄 몰라 일단 아무 방으로 

들어섰다. 자는 도사를 깨워 캐물으니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이라고 한다. 진양과 악만풍은 그를 기절시키고 다시 그 

방으로 향했다. 

악만풍은 당광의 방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당광이 만일 자고 있다면 절대로 암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고 있는 자

를 죽이는 건 매우 비열한 행위라 그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존경하는 인물을 죽였다 해도 그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양은 어떻게 알고 있을지 몰라도, 악만풍은 사실 처음부터 당광과 대결을 벌이려고 했다. 자고 있

다면 깨워서 하면 되고 안 잔다면 바로 싸우면 된다. 

진양이 방문을 살짝 열었다. 안이 고요하여 당광은 자고 있을 듯 했다. 진양과  악만풍은 일단 들어와 문을 닫았다. 

천천히 접근해보니 저편에 하얀 이부자리가 보인다.  불룩 튀어나와 있으면서 자세히 보면 조금  움직이는 게 분명 

당광이 자고 있는 것이다. 진양은 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악만풍의 창을 보며  찔러 죽이라는 듯 눈짓했다. 그러

나 악만풍은 본래 암살하고자 하진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창을 찌르지 않았다. 

"왜 안 찔러? 어서 죽이고 가자." 

진양이 속삭이는 식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악만풍은 절대 찌를 생각이 없었다. 만일 진양이 창을 뺏어 그를 찌르

려 한다면 그것도 말릴 생각이 있었다. 그도 자신의 친구니 비열한 인간이 되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다. 아무리 어둠 

속의 대협이라 하여 자객이 된다고 해도, 몰래 숨어들어 가서 자는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진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악만풍이 손을 안 쓰는 걸  보며 자는 사람을 죽이려 하진 않는

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경우는 사실 짐작한 상황이었다. 악만풍은 본래 선하고 협이란 말을 알아서 비열한 행위는 

눈을 뜨고 보지 못한다. 헌데 어떻게 스스로 비열한 행위를 하겠는가. 왕처일의 복수야 분명 하고 싶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비열한 수단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걸 진양은 모두 깨달았다. 그는 더 주춤거릴 시간이 없다고 느끼고 

단숨에 달려들었다. 

"앗! 그건 안 돼!" 

악만풍이 소리쳤다. 본래 조용히 해야하는데 진양이 갑자기 튀어나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터진 것이었다. 악만

풍은 진양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늦게라도 말릴 수 있을 만큼 말려야 한다. 그

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퍽> 하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진양의 주먹이 그냥 침상에 꽂힌 것이다. 그는 당광의 정수리를 가격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진양은 그게 피한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적중하기 직전 뭔가 번쩍 하고 지나가는 걸 봤기 때문이었

다. 과연 고개를 돌려보니 창가 옆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검은 수염을 기르고 달빛이 비춰져 은은히 품위가 느껴지

는 자, 바로 당광이었다. 

"웬 놈들이냐?" 

악만풍은 드디어 복수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악만풍라고 하오. 당신이 당광 맞소?" 

"그래 내가 당광이다." 

그의 말에 악만풍의 목에 힘줄이 불끈 튀어나왔다. 

"그럼 옥양자 왕선배님을 죽인 일을 모른다 하진 않겠지." 

당광이 눈을 부릅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임이 명백했다. 그가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악만풍이 먼저 말했다. 

"정정당당한 대결을 신청하오!" 

당광은 그제야 이들이 왕처일을 죽인 일을 가지고 복수하러 왔다는 걸 깨달았다. 

"정정당당이라면 나도 좋다. 그러나 좀 전 너희가 한 건 정정당당하지가 못했다." 

"이 친구가 복수심을 억누르지 못해 그런 거니 당신이 이해하시오. 자! 여기서 바로 시작합시다!" 

악만풍은 어지간히 급한 듯 했다. 당광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네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 둘이 힘을 합쳐도 날 이길 순 없을 것이다." 

"당신이 신이라도 되오? 설령 신이라도 나는 왕선배님의 복수를 해야겠소!" 

그는 화가 치미는지 창을 땅에 쾅, 하고 꽂았다. 당광도 그 모습에  정색하며 벽에 걸려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

고는 검 끝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한다. 

"한번 덤벼보시지." 

당광의 말에 그는 더 참지 못하고 창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방이 비좁은 편이라 창법을 펼치는데는 조금 불편한 감

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좁은 것도 아니라서 큰 초식만 쓰지 않는다면 방해가 되지 않을 듯 했다. 진양은 침상 부

근에서 그들의 싸움을 관전하고 있었다. 

당광은 진양이 일전에 봐뒀던 전진단검의 묘수를 펼쳤다. 전진수검에 비하여  초식에 정묘함이 떨어지고 위력이 적

은 대신, 매우 빠르고 상대의 혈을 자주 찔러 가는 검법이다. 보던  진양은 문득 복면인들이 떠올랐다. 이 종남산에

서 만났고 화산에서 또 만났던 그  복면인들의 검법은 바로 이 전진단검법이었다. 한번  눈여겨보니 과연 비슷함을 

넘어서 완전 판박이였다. 중간중간 보이는 대단한 묘수는 처음 보는 수법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비슷했다. 

그렇게 보는 사이 악만풍은 밀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악가창법은 초식이 많고 빠르며 위에서 아래로 공격하

는 수법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시전자의 덩치가 크면 상당히 위력을 발휘하는 창법이었다. 악만풍은 마침 덩치가 

크니 위력이 대단할 텐데 당광 앞에선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이쪽 저쪽으로 공격을 퍼부었으나  번번이 그의 검에 

의해 막히고 도리어 역습만 당하고 있었다. 

악만풍은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껏 당광은 공격한번 하지 않았다. 계속 방어자세만 취한 채로 그의 창을 

막아내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화가 나 창을 움켜쥐며 한순간 빠르게 돌진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독룡출동

의 묘수였다. 창 끝이 보기 겁날 정도로 매섭게 달려들었다. 당광도 조금 놀란 듯 살짝 물러서더니 갑자기 검을 똑

같은 형식으로 찔렀다. 하나는 창 끝이요 하나는 검 끝이니 두 끝이 정확히 부딪치면 둘 중 하나가 부러질 게 뻔했

다. 이런 때에는 내공이 상당히 힘을 발휘한다. 악만풍은 내공이 거의 없지만 이런 사실은 잘 알고 있어 할 수 없이 

탐해거룡(探海居龍)으로 변초할 수밖에 없었다. 창을 살짝 쳐들고 몸을 옆으로 뉘며 당광의 얼굴을 향해 창을  찔러

버렸다. 순식간에 변초하여 공격을 하니 따지고 보면 악가창법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광은 빠르게 반응했다. 마치 그가 변초할 줄 알았다는 듯 창이 떨어지자 몸을 돌리며 그의 팔을 걷어찬 

것이다. 악만풍은 팔이 아련히 저려와 창을 부르르 떨었다. 억지로 이를 악 물며 창을 휘둘러보지만 당광은 또 몸을 

숙여 피하며 그의 배를 걷어 차버렸다. 아무래도 악만풍 혼자서는 무리인 듯 싶었다. 진양은 이를 알고 하는 수 없

이 끼어 들기로 했다. 악만풍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그대로 두면 반드시 크게 부상을 입을 것이다. 

"만풍! 그는 옥양자를 죽인 자니 사정 봐줄 것 없다!" 

진양은 돌진하며 여느 때처럼 유리장쾌의 수법을 펼쳤다. 그러나 당광은 유리장쾌의 초수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진양의 주먹을 가볍게 발로 돌려 차곤 검을  세차게 휘저었다. 진양이 놀라 몸을 뒤로 날렸지만  조금 늦어 얼굴을 

가린 면사가 북, 하고 찢어졌다. 

면사가 찢어지니 얼굴이 조금 드러났다. 완전히 드러난 건 아니되 입이 드러나 있었다. 당광이 웃으며 말한다. 

"넌 누구라고 얼굴을 가리고 있느냐?" 

"네가 알 바 아니다!" 

평소 같으면 화주대도 석앙이라고 외쳐줄 텐데  이미 면사가 조금 찢어졌다는 걸 알고  말하기가 거북했다. 더구나 

석앙은 별로 좋은 인물이 아니니 당광과 안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크게 일갈하며 다시 돌진했다. 악

만풍도 기회를 엿보며 창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냐! 한꺼번에 덤벼라. 그런 실력으론 내 발치도 못 따라올 테니까. 하하!" 

당광의 외침에 분노한 진양은 유리장묘(柔裏藏妙)의 진수를 부렸다. 왼팔부터 마치 파도 물결 타고 넘어오듯 넘실넘

실 오른팔까지 이동하더니 오른 주먹이 자꾸 흔들거리며 당광에게 접근했다.  순간 그의 주먹이 조그맣게 오므라들

며 당광의 전중혈을 때리려했다. 본래 이 초식은 괴상한 몸짓으로 시선을 끌며  한순간 돌진해 상대의 빈틈을 때리

는 초식이었다. 때문에 지금 당광의 전중혈 부근은 별로 방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허나 당광은 과연 보통 인물이 아

니었다. 갑자기 왼손을 들어 그의 주먹을 잡아버린 것이었다. 어이없어 하던 진양은 그게 내공의 힘이라는 걸 깨달

았다. 아무리 힘이 뛰어나고 묘수를 안다해도 함종권법은 이렇게 단숨에  잡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주먹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주먹도 안 빠진다. 이미 당광의 왼손에 꽉 잡힌 것이다. 진양은 분통이 터져 다른 

주먹으로 일권을 더 내질렀다. 한손엔 검이 있는데다가 옆에선 악만풍이 창을 찔러들고  있으니 격중 시킬 수 있으

리라 생각한 것이다. 

우습게도 당광은 검으로 악만풍의 창을 막고  발로는 진양의 가슴을 걷어찼다. 그러면서도 그의  주먹을 쥔 왼손은 

펼치지 않아 진양은 앞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악만풍이 놀라 빠르게 세 번이나 찔러봤으나 당광은 검을 가볍게 

움직여 다 막아내고는 검병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검날로 베면 그냥 죽일 수 있었는데, 마치  데리고 놀겠다는 

듯 일부로 안 죽인 것 같았다. 

"아버지!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드디어 일은 터지고 말았다. 부딪치는 쇳덩이 소리에 결국 다른 도사들이 깨어난 것 같았다. 진양은 이 와중에도 당

광을 보고 아버지라 부르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목소리를 들으니 매우 낯익은 목소리요, 지긋지긋하고 생각만 해

도 가슴에 열화가 번지는 바로 당주고의 음성이었다. 진양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미칠 것만 같았다. 

"이 개 같은 당가 놈들. 다 죽여버리겠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무작정 당광의 가슴으로 돌진했다. 함종권법 최후의 초식으로 아주 끝장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초식을 채 펼치기도 전에 당광은 왼손을 휘둘러 그를 날려버렸다. 역시 내공의 힘으로 진양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해 문 방향으로 몸이 날아가고 말았다. 

<콰직>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진양은 볼썽사납게 쓰러졌다. 아픔을 뒤로하고 보이는 자들을 보니 당무요  당광이요, 

여러 전진 도사들이 아닌가. 그들도 그들대로 놀란 듯 검을 뽑으며 진양의 목 앞에 갖다대려 했다. 그는 여기서 잡

힐 수 없었다. 아직 왕령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당주고도 당광도 죽이지  못했으며 북망채와의 관계도 캐내지 못했

다. 그는 그들이 검을 뽑을 때 재빨리 한 도사의 발을 밀어 밑으로 밀려나갔다. 마치 빙판길에 누워 밀려나듯 주르

륵 바닥을 쓸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며 몸을 일으키는데 악만풍의 몸집이 날아왔다. 진양은 놀라 두 손을 뻗어 가까스로 받아냈으나 하마터면 손

목이 부러질 뻔했다. 그의 무게도 무게지만 어찌나 맹렬히 날아드는지 안 막았으면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제 손목을 움켜쥐며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을 통해 당무 등 전진 도사 네댓 명이 들어왔다. 당광은 승리를 감

미롭게 느끼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양과 악만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별 볼일 없는 실력이구나. 그런 실력으로 날 죽이겠다니 꿈도 크다." 

"흥! 당신의 실력이 뛰어나 오늘 이렇게 패퇴하지만 훗날은 다를 거요." 

그의 빈정거림에 악만풍이 소리치자, 

"누가 너희를 그냥 보낸다고 했냐? 아는 것도 많으니 살려둬선 안 되겠다." 

악만풍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통쳤다. 

"전진교 장문인이란 자가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거요?" 

"그렇다. 멍청한 놈들아." 

악만풍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몰랐다. 허나 진양은 이미 그에 대해서 

많은 걸 알았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만 지금 빠져나갈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다. 방문에는 당무 등 도사들

이 많아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창문이 있지만 당광과 거리가 가까워 그냥 나가는 꼴을 보고 있을 리도 없다. 생각

해봐도 도대체 탈출로가 없었다. 

한편 악만풍은 분노를 못 참고 다시 창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당무 등이 끼어 들으려 하자 당광이 손짓하며 막는다. 

그는 이번에도 직접 상대하려는 듯 했다. 악만풍이 횡소천군(橫掃千軍)을 펼치자 그는 좀 전과는 다르게 전진수검법

을 이용해 그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같은 점이라면 여전히 방어만 한다는 점이었다. 

진양은 한가롭게 그걸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몰래 발을 움직여 창가로 두어 발  다가간 후 창문을 발로 걷어차 부

수며 악만풍에게 소리쳤다. 

"만풍! 가자!" 

악만풍은 분노로 냉정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진양의 외침을 듣자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한순간 창을 빼서 

돌리며 몸을 뒤로 날렸다. 당광이 빠르게 접근하여 잡힐 뻔했으나 진양이 달려와 악만풍을 안고 뒤로 몸을 또 날렸

다. 그러자 당광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진양과 악만풍은 그렇게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바닥이 흙이라 다행히도 부상은 입지 않았다. 그래봐야 2층이니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전력으로 질주해 도망을  가

기 시작했다. 숙소 창문을 열고 도사들 수십 명이 뛰쳐나온다. 진양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뿌리칠 수 있었으나 악

만풍의 경공이 대단치 못해 혼자 달려갈 수 없었다. 그의 덩치가 작다면 업고  갈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큰일도 이

만저만한 게 아니다. 

급한 대로 그의 팔을 잡고 달렸다. 악만풍은 진양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자꾸 휘청거렸다. 이렇게 되자 도리어 달

리는 속력이 줄어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쫓아오는 도사들 중엔 당무와 당주고도  있어 진양은 열불이 났지만 지금

은 그걸 떠올릴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악만풍의 속력을 맞춰주면서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한참 달리니 어느새 전진교의 정문으로 도달했다. 원래 이리로 오려 한 게 아니었다. 정문으로 오면 도사들이 많을 

거란 건 진양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담장으로 향할 때마다  이쪽 저쪽에서 도사들이 튀어나와 도무

지 갈 수가 없었다. 그냥 맞붙어 뚫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당무 등이 접근해서 단숨에 포위 당할 것이

다. 그래서 오로지 피하기만 하다보니 어떻게 정문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과연 정문엔 도사가 수십 명이나 있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도사도 20명은 족히  되겠고 앞에 있는 도사들의 숫자도 

그 정도는 될 듯 하다. 진양과 악만풍은 사력을 다해  닥치는 대로 돌파를 시도해 보았다. 악만풍은 이런 상황에도 

살인은 피하며 창을 휘저었고 진양은 한 수 한 수가 모두 살초로 인정사정  없었다. 그러나 어찌 그렇게 쉽게 돌파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걱정했던 대로 당무 등 20명에 근접하는 도사들은 진양과 악만풍을 에워싸고 말았다. 정면에 

있던 도사들도 일단 한 발 물러서며 넓게 포진한다. 돌파란 이제 물거품에 가까운 셈이다. 

"하하. 두 도적놈이 감히 전진교의 교주를 죽이려 하다니. 담도 크구나." 

진양이 돌아보니 당무였다. 갑자기 화가 치민다. 

"빌어먹을 당가 개자식. 전진교의 개 한 마리 잡는데 네까짓 것들이 방해해?" 

"흥. 왜 얼굴을 가리고 있는가 했더니 사실은 매우 더러운 놈이었구나. 말투부터 매우 더럽다." 

진양은 그를 죽이고 싶어 손이 다 떨렸다. 생각 같아선 달려가 사지를 절단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걸 허용

하지 않고 진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지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며 분노를 억누를 뿐이었다. 

그때 뒤에서 당광이 걸어나왔다. 도사들이 갈라서며 그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는 매우 오만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 

내리며 진양과 악만풍을 쳐다보았다. 명백히 조롱하는 자세였다. 악만풍이 외친다. 

"당광! 너는 전진 칠자 중 한 명인 옥양자 왕선배님을 살해하고 사실을 은폐했다. 또한 전진교를 차지하여 온갖  나

쁜 짓을 저지르고 급기야 수하들 몇몇에게 복면을 쓰게 하여 함부로 사람도 죽이려 했다. 네놈의 정체는 대체 무엇

이냐?" 

악만풍은 당광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만 왕처일이 죽은 사실을 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에 전

진 도사들은 서로를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 눈에 악만풍은 자객이어도 근래  왕처일의 연락이 끊긴 건 사

실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진교 도사들은 전진 칠자를 매우 경외하기 때문에 그만큼 놀라운 얘기이기도 했다. 허

나 당광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으며 유들유들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자객이라 죽이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걸 보니 수상하구나. 요즘 왕사숙의 연락이 

없는 건 사실이다. 이리로 떠났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도 안  오신 게 이상하지. 혹시 네놈들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 

"빌어먹을 당광 개자식아! 참으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따로 없구나!" 

"그래. 정말 그렇구나. 참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진양은 분통이 터져 가슴을 쿵쿵 쳤다. 심기가 불편하여 평소처럼 놀려먹지도 못하고 열심히 악만 질러대고 있었다. 

게다가 당광의 꼴은 참 적반하장과 같아 그리 소리쳤는데 그가 같은 말을 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가 인정하며 정

말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고 한 말은 반대로 진양을 도둑놈으로 몬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거 살아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떠나지는 않는다." 

"혼자 떠나지 않으면 저 악만풍이라는 녀석도 데리고 갈 테냐?" 

갑자기 당주고가 끼어 들었다. 지난번 악만풍에게 잡혀 여러 가지 정보를 일러주고  모욕을 당했기 때문에 끼어 든 

것이다. 그가 나서자 진양은 한층 더 분노했다. 보기만 해도 역겹고 화가 폭발해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오냐 이 개놈아. 오늘 네놈과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진양은 분을 참지 못하고 뛰어들었다. 악만풍이 깜짝 놀라 그를 잡으려 했지만 워낙 빠르기 때문에 손이 닿지 않았

다. 그는 맹렬히 돌진해 순식간에 당주고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당주고도 그가 아까부터 자꾸 당가가 어떻다고 욕

했었기에 불만이 있었던 터라 혼을 내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절정의 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

을 테니 오늘 저 방립인을 죽여서 공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네놈이 감히 날 이길 수 있겠느냐?" 

그는 검을 뽑아 순양검요(純陽劍搖) 초식을 시전했다.  순양검요는 사실 전진수검법의 절정 초식이다.  그는 단숨에 

그를 죽여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허나 진양이 당주고에게 멍청히 당할 리가 없었다. 그는 천하절

색이요, 자신의 무공을 일일이 다 알고 있는 미녀가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함종권법으로 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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