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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十 二 章. 고난의 퇴각로 2 (48/90)

                                  第 二 十 二 章. 고난의 퇴각로 2

그들은 비록 떨어졌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황이 위급하여 꼭 오랜만에 만난 것만 같았다.  다시 만난 날 

밤엔 지난번처럼 밤늦게 술에 취하고 서로 담소를 나누었다. 이 객잔은 초라하고  촌이라 사람도 별로 없어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진양은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역시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왕령도 무의식중에 지워져만 갔고 떠오르

는 사람들은 오직 악만풍을 비롯한 그들 일행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늦게 일어난 그들은 오후가 돼서야 촌을 떠났다. 다시 남양에 들려 쉬었다가 난주까

지 향할 계획이었다. 난주에서 가장 큰 방파, 감총방에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제안은 악만풍의 것이었다. 

"용방주는 복차경의 경우에만 그렇지 다른 경우를 보면 성품이 괜찮다고 할 수  있어. 감총 제자들이 그를 잘 따르

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리고 예전에 전효와 한마일이 한번 들려달라고  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들어줄 거야." 

"그들이 오해해서 도리어 공격하진 않을까요?" 

형란의 말에 악만풍은 고개를 저었다. 용상이나 전효나 한마일이나 모두 진양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오인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그때마다 진양의 행동이 좋진 않았지만 악만풍이 직접 잘 말하면 원만히 해결되리라 

믿었다. 모두가 이의를 달지 않아 결국 난주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연경후와 마보강은 혹 모른다고 하며 위험해지면 함종문으로 오라고 했다.  그들은 조덕의 명으로 대신 영웅대회에 

참가한 거라 이제 끝이 났으니 돌아가야만 했다. 진양의 일을 설명해주면 도움도 있을 수 있어 그들은 서로 헤어지

기로 했다. 일단 남양까지 함께 가고 그곳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남양은 그들이 만난 곳이요 헤어지는 곳이 되는 것

이다. 문인능은 마보강과 떨어지기 싫었다. 미워죽겠는 진양과 함께 있는 것보단 역시 마보강을 따라가는 게 백 배 

낫다고 생각했다. 형란과 떨어지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마보강이 더 중요했다. 그녀는 남양에 도착해서 헤

어질 때 마보강을 따라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다. 

남양에 도달한 날은 일단 그곳에서 보냈다. 다음 날 서로 헤어질 걸 생각하며 그들은 안타까운 가슴을 억눌렀다. 진

양은 근 7년 만에 그들을 만났다가 이렇게 헤어진다는 게 몹시 아쉬웠다. 

"내일이면 우린 또 헤어지겠군. 이사형과도.." 

진양은 여전히 연경후를 이사형이라 부른다. 비록 파문 당했지만 그의  마음속에 연경후는 아직 이사형이요 마보강

은 동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함종문으로 도망치지는 못했다. 좋지 못한 일로 파문을 당하고 팔을 내놓아 목숨을 유지

하라는 조덕의 말은 아직도 기억에 똑똑히 남아있다. 그때 진양은 그 말에 거부하여 파문을 당했다. 헌데 오늘날 이

렇게 위급해졌다 하여 조덕의 도움을 받기란 미안하기도 하고 진양 스스로도 원하지 않았다. 역시 자존심이 허락하

지 않는다. 

"그 옛날 사부님이 말씀하셨지. 회자정리라고. 우린 새로 만났지만 어차피  또 떨어지게 되어있다. 너무 안타까워할 

거 없어." 

"그래 이놈아. 내 대천산에 돌아가서 사부님께 말씀드려보겠다.  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했으니  도움을 

요청하면 사부님도 옛 정을 봐서 응하실 거야." 

연경후의 말에 진양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사형. 지난날 안 좋게 파문 당하고 사부님의 말씀도 듣지 못했는데 도움을 받기는 싫어요." 

연경후는 그의 말에서 진양이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옆에서 듣는 마보강과 악만풍도 충분히 눈치챘다. 

악만풍은 헛기침을 하며 술잔을 따랐다. 

"자자. 그런 얘기는 그만 하자고. 그야말로 회자정리잖아. 어차피 만난 자는  떨어지게 되어있고 운이 좋으면 또 만

나게 되어있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리 우울해하나?" 

"그래! 바로 그거다." 

마보강이 손뼉치자 진양과 연경후도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 서로의 잔에 술을 채워주고 건배를 하며 한줌의 

안타까움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됐다. 진양과 악만풍, 가량, 형란은 서북쪽 방향에 서있었고 연경후 마보강 문인능은 서남으

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방향 그대로 떠나면 이제 만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문인능은 과연 생각했던 대로 마보

강을 따라 함종문으로 떠나겠다며 그의 곁에 찰싹 붙어있었다. 이미 그녀에게 모두 실망한 터라 진양 등은 달다 쓰

다 말이 없었고 다만 형란만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능아. 정말 대천산에 갈 거야? 아직 복수도 못 했잖아." 

"네 말대로 복수는 무의미해. 나는 마공자를 따라 함종문으로 가겠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무공을  단련하여 복수를 

해야지." 

그녀가 말하자 악만풍은 말할 것도 없고 연경후와 마보강까지 눈살을  찌푸렸다. 부모의 원수를 개똥으로 치부하는 

그녀가 매우 맘에 안 들었다. 특히 악만풍은 이미 어릴  적 부모를 잃어 불공대천이란 단어를 매우 자주 되뇌었다. 

이대가장이 무너졌을 적엔 복수를 하자며 날뛰던 그녀라던데 마보강을 만난 후로 싹 변하는 그녀를 보니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흥. 그래 어서 가거라. 언제 복수하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잘 살아라." 

악만풍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자네들도 조심히 가게.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 믿네." 

뒷말은 연경후와 마보강에게 한 말이었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한번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대로 몸을 돌

렸다. 진양은 가볍게 손만 흔들고 사라졌고 가량도 읍 한번으로 끝을 맺으며 몸을 돌렸다. 모두가 연경후와 마보강

에게 한 인사이지 문인능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형란은 먼저 그들에게 인사하고는 문인능을 쳐다보았다. 그녀

는 마음이 굳은 듯 하다.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도 몸을 돌렸다. 

진양 일행은 그대로 서북 방향으로 말을 재촉했다. 난주까지 가려면 멀었으니 어느 정도 빨리 가두는 게 좋았다. 사

공환을 만난 이후로 재수 없게 당무 등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 빨리 떠나는 게 좋다고 판단을 내린  셈이

다. 그러나 이미 깨닫기엔 늦었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도 늦었다. 

진양 일행은 모두 말을 멈춘 채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고 사방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은 

모두 전진교 도사들로 가득했다. 과연 재수가 없는 건지 어떤 건지 당무 등과 만나고 만 것이다. 확실히 난주로 가

려면 섬서를 지나야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다. 악만풍은 이것을 많이 걱정했는데 역시 걸려버리고 

말았다. 

전진 도사들 가운데 왕령은 보이지 않았다. 당주고도 보이지 않아 함께 종남산으로 갔음을 알 수 있었다. 당유민도 

보이지 않고 단지 당무만 보였다. 당무와 그의 제자들인지 동문인지 모를 도사들이  진양 일행을 완벽히 포위한 상

황이었다. 숫자는 어림잡아 스무 명. 주변은 허허벌판이라 수가 많으면 유리한  자리였다. 고지도 저지도 없어 오로

지 무공, 아니면 숫자다. 연경후와 마보강이 있을 적 나타났다면 대단히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얼마 전 헤어졌다. 

진양은 정면에 있는 당무를 노려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완벽하게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입가에 걸쳐진 

조소는 좀처럼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방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그는 자신이 진양이란 

걸 알기 때문에 도리어 방해만 될 터다. 진양은 한순간 방립을 벗어 던지며 소리쳤다. 

"당무! 누가 알려줬느냐?" 

그는 조금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물었다. 그에 당무는 한층 더 조롱기만 짙게 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결국엔 음흉

한 웃음까지 흘렸다. 

"오늘 너희는 여기서 모두 죽겠구나." 

진양이 안면을 씰룩였다. 그의 계획은 아주 뻔하디 뻔했다. 여기서 모두를 죽인 후 마옥에게는 이런저런 말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할 것이다. 마옥은 당씨  가문 사람들을 신임하니 당연 믿을 것이고 당광이  저지른 일은 영원히 

땅속으로 파묻힐 것이 뻔했다. 연경후와 마보강  문인능이 있긴 하지만 정작 진양이 없는데다가  당장 알고 나타날 

것도 아니었다. 

"누가 알려줬느냐? 사공환이 확실하겠지." 

"흥. 알면서 뭐 하러 묻느냐?" 

사실 사공환은 진양이 화주대도로 변했다는 걸 모른다. 때문에 그라고 생각할 순 없지만 만난 사람은 그 자 뿐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당무와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방립인 얘기가 나와 이렇게 일

이 불거진 것 같았다. 진양은 당주고 등이 없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오늘은 왜 너만 있지?" 

"하하. 너는 역시 나의 제수를 찾는구나." 

순간 진양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제수라면 남동생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다. 당무도 진양이 왕령을 찾는다는 걸 알 텐

데, 그녀를 제수라고 했다는 건 뭔가. 당주고와 혼인했다는 뜻이 된다. 

"려.. 령아가 당주고와 혼인했느냐?" 

"말조심해라. 누가 령아냐.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함부로 그렇게 부르면 안되지." 

"그럴 수가.." 

진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비록 왕령에 대한 생각을 많이 지웠다고 해도 6년의 기억까

지 모두 지울 순 없었다. 아직도 어딜 가나 왕령이란  말만 들으면 귀가 쫑긋해지는 그였다. 그런데 그녀를 제수라 

부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무는 재밌다는 듯 자꾸 킥킥 웃는다. 

"그래 믿어지지가 않느냐? 사실 이전엔 그녀가 거절해서 혼인을 할 수  없었지. 그런데 네가 종남산에서 도망친 다

음 날 그들은 바로 혼인했다." 

진양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제 손에  들린 봉을 들어 보았다. 그녀의 일생이 담긴  봉, 이것을 넘겨줄 때부터 

뭔가를 직감했었다. 이젠 당주고를 위해 연을 끊겠다는 뜻과 그 날 도움이 마지막이라는 걸 짐작했다. 그러나 설마 

혼인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계속 혼인하지 않는 이유도 몰랐는데 정작 그 생각까지는 하

지 못했다. 

그가 깊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도 당무는 계속 입을 열어 떠들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진양을 분노시키

려는 빈정거림이었다. 악만풍 등은 진양이 또다시 미칠까 겁이 나 그를 쳐다보았다. 진양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진

양은 손이 먼저 떨리지 않았다. 가슴부터 떨리고 어깨를 타 팔로 그리고 손으로 넘어온 후 봉까지 전달된다. 떨림은 

가슴에서 시작되었고 슬픔도 그러했다. 봉은 진양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함께 몸을 떨어주고 있었다. 

당무가 뭐라고 떠들기는 하는데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아니, 안 들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의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모두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왕령이 결국 당주고와 혼인을 하다니, 가슴이 갑갑해졌다. 헌데 기이하게도  이

전처럼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슬픔이 안 느껴지는 건가. 분명 마음은 답답하고 우울하여 슬픔을 느낀다는 건 

알았지만 이전처럼 통곡하고 싶을 만큼 슬프지가 않았다. 진양은 오히려 슬픔을 못 느끼는 자신에 분노했다. 

(왜 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가? 이심치상단 때문에? 아니면 이미  짐작했었기 때문에? 아니면! 그것들도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진양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봉을 땅에 꽂아버렸다. 내공이  뛰어나지 않아도 흙바닥이라 깊이 들어갔다. 땀이 흐른

다. 식은땀인지 무슨 땀인지 어쨌든 땀이 흘렀다. 왜 땀이 흐르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이런 경우라면 꼭 왕령을 생

각하며 왕령, 왕령, 하고 되뇌었다. 이번엔 그 말이 바뀌었다. 다른 건 전부 똑같되 말만 바뀌어 왜, 라는 말만 반복

하고 있었다. 

"왜.. 왜 나는 슬픔을 느끼지 못해? 왜!" 

무의식중에 손에 힘을 가하던 그는 일순 손이 미끄러졌음을 알았다. 알고 보니 이미 봉을 타고 땀방울 주르륵 흐르

고 있었다. 팔을 타고 땀이 흘러 봉에까지 전해졌나보다. 진양은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왠지 봉에서 땀방

울이 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언뜻 보면 봉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미쳤구나. 잘됐다. 미친 상태로 저승에 가는 것도 볼만하겠지." 

"입 닥쳐라!" 

당무가 빈정거리자 악만풍이 고함쳤다. 순간 진양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 

악만풍과 가량, 형란의 안색이 모두 하얘지고 말았다. 저번에 그가 미쳤을 때와는  또 다르게 미친 듯 웃어댔다. 저

렇게 내버려두면 미치는 건 고사하고 목이 터질 것이다. 목청이 본래 큰 사람도 아닌데 오늘은 유난히 힘으로 가득

했다. 내공을 싣고 있는 건지 은근히 가슴이 철렁해졌고 웃음소리엔 통곡보다 안타까운 비애(悲哀)가 담겨있었다. 

"하하! 그래 그랬었어. 역시 그랬었어." 

혼자서 웃음을 터트리고 또 혼자서 지껄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미친놈이었다. 악만풍이 안되겠다  싶어 말리려는데 

그는 무시하며 허공에 대고 외쳤다. 

"그래! 그랬던 거야! 당주고! 너는 행복한 놈이다. 너무나  잘 태어났고 너무나 운이 좋아서 령아의 사랑을  받았다. 

이제 나는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폐인이 되었으니 네가 그녀를 위해 살아주면 되는 것이다. 하하하!" 

진양은 스스로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지만 이미 볼로는 굵은 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입만 벌리고 하하 웃으

며 미친 듯 보일 뿐이지 사실은 우는 것이다. 형란은  참지 못하고 뚝뚝 눈물을 떨구었다. 헌데 당무는 실실거리며 

또 입을 연다. 

"그래 하하. 너는 이제 죽기만 하면 된다." 

악만풍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정말 더러운 인간이라 생각했다. 왕령의 이야기로 진양을 미치게 만들고는  옆에

서 한마디씩하며 비꼬는 게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단숨에 달려가 창으로 꼬치를 만들어버리려 했다. 헌데 진

양의 입에서 갑자기 호통이 터진다. 

"오냐. 네놈은 바로 당무로구나. 이제 당주고는 죽일 수가 없으니 너를 죽여야겠다. 너 같은 놈은 세상에 살 이유가 

없다." 

순간 그는 땅에 박힌 봉을 번쩍 치켜들었다. 마침  바람이 분다. 꼭 거센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꽃잎 같다. 그렇게 

바람을 등지고 진양은 당무에게로 돌진했다. 

당무는 당무 나름대로 놀라 황급히 검을 뽑고 단양이십사진을 명령했다. 이미 천하의  절진으로 유명한 이 진이 일

단 한번 펼쳐지면 진양은 당무에게로 접근도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허나 진양의 경공은  대단했다. 아니, 오늘은 

유난히 빠른 것 같았다. 순식간에 당무의 코앞으로 달려들며 이미 봉을 내려찍고 있었다. 당무는 급하게 검을 올려 

막아냈으나 힘이나 움직임보다도 엄청난 기세에 눌려 오금이 저리는 듯 했다. 

도사들이 놀라 진을 공진(攻陣)으로 변형하며 달려들었다. 공진은 단양이십사진 여섯 개의 변형 진법 중 하나로, 집

중적인 공격에 매우 유용했다. 한마디로 공진을 펼쳤다 함은 진양만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원진과 비슷했지

만 도사들 서로의 간격이나 달려드는 폼이 달라 충분히 구별이 갔다. 악만풍 등은 단양이십사진은 처음이었으나 모

습만 보고도 진양을 맹공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즉각 무기를 챙겨 그들의 등뒤를 습격했다. 

진양은 이 참에 당무를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 단지 슬픔을 못 느끼는 자신에 대해 분노

하고 억울하며 서러워서 혼자 난리를 떤 것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놈일 테지만 그에게 있어선 일종의 회상이요 

분노를 삭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이제 당주고는 죽일 수 없다. 죽일 기회가 와도 그는 죽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왕

령과 혼인을 했으니 그를 죽이면 왕령은 미망인이 될 것이다. 헌데 마침 당무가 자꾸 빈정거렸다. 안 그래도 심란하

고 분통이 터지는 게 그는 그것을 즐기는 듯 비꼬아댔다.  그리하여 진양은 다짐했다. 당주고 대신 당무를 죽여 이 

한을 풀고 왕령에 대한 연을 끊겠다는 다짐을 했다. 

진양은 한없이 유루봉법을 펼쳤다. 시냇물처럼 졸졸 소리내듯 청명하고도 슬픈  자태로 그는 그렇게 유루봉법을 펼

쳤다. 이제 그는 유루봉법을 쓰는데 어떤 주춤거림도 있지 않을 것이다. 왕령이 그에게 봉을 넘겨줬으니 과거에 연

연할 필요가 없다. 진양의 유루봉법은 참으로 오랜만에 펼치는 것이라 처음엔 감이 잘 안 잡혔다. 당무가 일단 기세

에 눌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과연 대성한 무공인 만큼 가면 갈수록 위력은 증가되었다. 점점 예전의 실력이 나오

고 힘이 들어가니 실로 기괴한 봉법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봉은 어김없이 흐르고 흘러 당무의 대혈을 끊임없이 노렸다. 당무는  나름대로 전진수검으로 맞서봤으나 진양이 펼

치는 유루봉법은 예전과는 크게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좌우가 맞아떨어지고 움직임이 통일되어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두려운 봉법이었다. 당무는 이게 유루봉법이며 본래  수녀인 

왕령의 무공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진양에게 가르쳤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진양이 지난날 이 봉법을 펼치는 걸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만한 위력을 내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하여 크게 당황했다. 

당무에게 있어선 다행히도 전진 도사들의 협공이 이루어지자 잠시 몸을 내뺄 수 있었다. 도사들은 공진을 이용하여 

24명이 동시에 진양에게로 덤벼들었다. 전후좌우가 모두 검이요 머리 위까지  검이 날아드니 그야말로 진양은 위기

다. 순간 진양은 봉을 양손에 쥔 채로 이아야마의 절초를 펼쳤다. 유루봉법 최강의 초식이다. 전후좌우가 모두 봉이

요 사방으로 안 닿는 곳이 없이 전부 봉으로 막아버렸다. 하나씩 찍어서가 아닌 물 흐르듯 유유하면서도 빠르게 움

직여 바람개비처럼 움직인다. 사실은 방어를 위한 초식인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공격으로 변초할 수 있는 뛰어

나디 뛰어난 초식이었다. 과연 금녀의 유루철장법을 모방하여 만든 봉법이라 대단하기 짝이 없었다. 

동시에 날아든 검 네댓 자루는 그의 봉에 의하여 한순간 퉁겨졌다. 유루봉법 자체가 흐름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이

런 연달아 들어오는 합공엔 오히려 맞서기가 쉬웠다. 하물며 이아야마랴. 새로 들어오는 검을 피하고 다시 봉을 돌

리며 하나하나 도사들의 대혈을 후려쳐 갔다. 한번 공격이 쏟아 부어지고 물러서면 도사 두 명은 꼭 죽임을 당해있

었다. 진양은 그렇게 대여섯 명의 도사 중 딱 둘씩만 죽였다. 더 많이 하면 다음 방어가 힘들어져 적당선을 유지하

는 게 좋았다. 마침 그들 뒤로는 악만풍 등 세 명이 공격을 퍼부어 상황은 전진교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당무는 상황을 지켜보며 그것을 알았다. 더 있다간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진양을 보며 아까 사실은 

미친 게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순간의  공격으로 단양이십사진이 공진으로 진세를 잡았는데  뒤에서 공격을 

받으니 이젠 승패가 명확해졌다. 공진은 한  명을 집중 공격하기 위해 변형하는 것으로  원진처럼 바깥에서 공격을 

받으면 쉽게 무너지게 되어있었다. 당무는 그걸 알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미리 명령도 내리지 못하고 이리 어이없

게 승패가 갈린 셈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려 먼저 달아났다. 진양은 그 모습을 보았다. 헌데 전진 도사들은 못 본 듯  오로지 진양

과 악만풍 등을 상대로 난잡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진양은 분통을 터트렸다. 

"당무 이놈! 감히 어딜 도망가!" 

그는 봉을 돌려 정면 두 도사의 천령개를 내려치고는 단숨에 당무를 뒤쫓았다.  당무의 경공은 전진교의 신법을 그

대로 익혀 대단했다. 진양은 단지 경공의 묘만 알았지 신법과 같은 특별한  경공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뒤에선 악만풍 등의 기합성이 들렸고 전진 도사들은 당무가 혼자  도망가는 걸 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듯 했다. 

진양은 그대로 한동안 당무를 쫓았으나 결국엔 잡지 못했다. 한 반나절 쫓았는데  갈수록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자

취를 감춰버렸다. 산길로 도망을 쳤는지라 아무래도 틀린 듯 싶다. 더구나 더 가면 종남산이니 진양은 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가니 악만풍 형란 가량은 모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당무는?" 

악만풍의 물음에 진양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숨만 푹 내쉬며 홀로 서북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악만풍 등은 당무

를 잡지 못했음을 알고 그의 곁에 일단 따라붙었다. 잠시 걷던 악만풍이 문득 입을 연다. 

"아. 맞아. 아무래도 크게 우회를 해야겠어." 

"우회라니요?" 

그의 말에 형란이 물었다. 

"이곳은 섬서 지방이야. 아무래도 전진교의 영역이지. 게다가 당무가 도망갔으니 다시 새로 사람들을 구해서 쫓아올 

거야. 이리로 가다간 크게 낭패를 볼 거다." 

"그럼 어디로 우회하자는 건가?" 

이번엔 가량이 물은 것이었다. 악만풍은 북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게 좋겠어요. 섬서 위로." 

"어느 정도까지?" 

"낙양 정도를 지나면 되겠죠 뭐." 

가만히 있던 진양이 한마디했다. 

"낙양엔 좀 못 미쳐 가는 게 좋겠다. 북망채도 안 좋으니까." 

그의 말에 악만풍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북망채는 전진교와 연관이 있어 가까이 하면 좋지 않을 듯 했다. 하지

만 또 북망채에서 멀리 떨어져서 가자니 전진교의 영역이 있어 그 사이로 어중간하게 갈 수밖에 없었다. 

"괜히 이러다가 양쪽 다 만나는 거 아냐?" 

그들은 일단 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가는 도중 악만풍이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

성이 있는 얘기다. 길을 가장 잘 아는 악만풍이 한 말이며 재수가 없으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당무가 도망

쳤으니 자신들도 추격하면서 따로 북망채에 연락을 해 양쪽이 모두 길을 막을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러네." 

진양이 말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차라리 한쪽으로 몰아가는 게 좋겠다. 북망채의 귀곡편법이 위력적이지만 전진교 도사들을 만나는 것보단 나을 테

니 낙양을 크게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거 좋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악만풍이 손뼉을 쳤다. 그들은 한참 더 북으로 오르기로 계산하고 말 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하남 지방에서의 이동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낙양에 도달하니 예전과 전혀 변함이 없다. 성내는 마치 진양의 위기에 

대해선 알 바 없다는 듯 저희들 일 하기에 바빴다. 장사치는 장사한다며  고래고래 고함치고 저마다 시전에서 물건 

고르기에 바쁜 사람들로 가득했다. 임안 때만큼 시끌벅적하진 않아도 이만하면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었다. 과연  낙

양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진양 일행은 낙양으로 들어서며 객잔에 방을 잡았다. 방을 잡아두고 요기를 하러  모인 대청에서 악만풍은 낮은 목

소리로 말했다. 

"낙양에 오래있는 건 좋지 않아. 밤에 떠나도록 하자." 

"밤이요?" 

형란이 약간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실상 낮이든  밤이든 문제될 게 뭐 있겠냐마는 아무래도 밤에  길을 떠나는 건 

좋지 않았다. 더구나 형란은 천성적으로 그런 겁이 많아 별로 찬성하는 태세가 아니었다. 

"너는 어떡하면 좋겠냐?" 

악만풍이 진양을 향해 묻자, 

"마음대로 해라. 네가 밤에 출발하자고 했으면 필시 이유가 있을 테니 난 찬성해야지." 

진양은 그야말로 여유작작이었다. 지금 강호인의 표적이 된 사람도 실상은 진양인데 정작 당사자는 여유로 가득 차 

있었다. 두려움이 없는 호한인지, 생각이 없는 바보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악만풍은 그가 살기를 원하면서도 자

존심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려움 같은 감정은 생각 안 한다 하여 없어질 게 아니지만 진양의 자

존심은 괴팍할 정도로 세기 때문에 아마 무의식중에 표출되는 것일 것이다. 

"그래 사실은 북망채 때문이야." 

"북망채가 왜요?" 

형란이 또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북망채가 왜냐니,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듯 하다.  악만풍은 이미 적응이 

되어 가볍게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이곳은 낙양이니까 북쪽을 향해 오르면 북망산이 있지. 우리는 아마 가는 도중 북망채 무리를 만날 거야. 북망산에 

멀리 떨어져 가면 전진교를 만날 위험이 있고 어중간하게 끼어서 가면 양쪽 무리를 다 만날까봐 차라리 이 길을 택

했잖아." 

그의 설명에 형란이 고개를 끄덕인다. 

"때문에 북망채도 이미 뭔가 조취를 취했을 거야. 당무가 도망쳤으니 북망채에 연락을 안 했을 리가  없어. 헌데 문

제는 이 낙양도 위험하다는 거지. 낙양 이대가장이 무너지기 전에도 북망채 무리들이 변장해서 자주  들락거렸는데, 

하물며 이대가장이 무너지고 진양을 찾느라 천하 강호인이 들썩이는 이 판국에 그들이 가만있겠어?" 

형란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깨달아지는 게 있는지 무릎을 쳤다. 

"아! 이제 알았어요. 그럼 우리는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이미 북망채 무리들이 숨어서 우릴 지켜볼지도 몰라. 아침에 출발하면 우리의 행로가  훤히 보이니 

반드시 낙양을 얼마 못 지나 공격을 받을 테지. 그러니 차라리 한밤중에 몰래 길을 떠나면 그들 공격을 한번이라도 

덜 받고 늦게 받을 수가 있어." 

"그러면 뭐가 좋지요?" 

갈수록 태산이다. 악만풍이 웃으며 술을 한 잔 들이키자 가량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우리는 지금 난주로 향하고 있잖니. 난주에서 감총방에게 도움을 받을  거니까 난주 근접에서 공격을 받으면 탈출

하거나 싸우기가 더 수월할 거야." 

이제 알았는지 형란도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한편 듣는 진양은 악만풍의 치밀한 계략에 사뭇 감탄이 흘렀다. 내

색하지는 않고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어도 과연 악만풍이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지세를 잘 알

고 머리가 좋아 상황판단이 빠른 듯 했다. 

"네 생각대로 하자. 밤이 깊으면 성문이 닫힐 테니 미리 나가두는 게 좋겠군." 

"그래 성외로 나가 있는 게 좋지." 

진양의 말에 악만풍이 동의하자 그들은 곧장 자리를 떴다. 성외로 나서서 작은 객잔을 찾았다. 성내에 있던 객잔처

럼 역시 호화스럽거나 크진 않았지만 은은히 촌의 향기가 묻어나는 곳이었다. 어찌  보면 좀 초라하고 더럽게 여길 

수도 있었다. 물론 진양 일행 중엔 문인능 같은 사람이 없어 그런 말 한마디하지 않았다. 

그 날 밤, 몇 마리 귀뚜라미가 울어대던 때 진양 등은 모두 각자 방 창문으로 몰래 몸을 내뺐다. 주변을  살피며 살

금살금 발을 옮기고 사람의 눈을 모두 피했다. 달빛에 거리가 비춰져 몸이 내밀면 모두 보일 법했으나 조심한 덕에 

사람의 시선은 모두 피할 수 있었다. 진양 일행은 모두 서쪽의 한 지점에서 만나고 난 후 다시 난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과연 예상대로 북망채의 급습은 없었다. 한동안 말을 타고 달렸는데도 북망채는커녕 전진 도사도 안 보이고 평범한 

강호인도 만나지 않았다. 만일 북망 제자가 감시를 하고 있었다면 필시 쫓을 텐데 허허벌판에 아무도 없는 걸로 보

아 아무래도 악만풍의 계략이 성공한 듯 싶었다. 조금 달리다보니 함곡(函谷)에 도달했다. 어느새 점점 주변이 어두

워지는가 싶더니 이제 날이 밝아오는데도 이곳은 여전히 어두웠다. 

형란은 진작부터 밤거리를 달려오느라 약간의 두려움이 머리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날이 서늘해지고 땅바닥이 훤히 

보이기에 이제 곧 날이 밝아지는가 싶었는데  금새 이렇게 어두워지니 갑자기 공포가 엄습했다.  그녀는 몸을 떨며 

악만풍에게 물었다. 

"아.. 악대협. 이게 어떻게.." 

그녀의 떠는 모습을 본 악만풍은 가엽게 여겼는지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이곳은 함곡으로 본래 낮에도 어둡단다. 저 앞으론 함곡관도 있지. 이제 좀만 가다보면 양안(兩岸)이 보일 거다. 우

린 그 중 북쪽 거를 택해야해." 

"그럼.. 여긴 원래 이런 가요?" 

"그렇지. 언덕 위에 수풀이 우거져서 햇빛이 안 들어오는 것이다." 

악만풍의 차분한 말에 형란은 겨우 안심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정말 겁이 많은 소녀다. 진양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

을 탄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함곡에 들어왔을 뿐인데 확실히 햇빛이 차단되어 꼭 흐린 날 오후 같았다. 함

곡(函谷)의 함(函)이라는 것만 봐도 알 듯 모양은 꼭 상자 같다. 

악만풍의 말대로 한참 달리니 함곡관이 보였다. 금국 병사들이 이미 장악하여 길을 점령하고 가끔 지나는 상인들도 

보였다. 악만풍은 원래 금국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여 그들이 점령한 길을 지나기가 싫었다. 또 이것저것 캐물으

며 조사를 할 테니 그만큼 시간도 허비할 것이다. 그래서 함곡관을 통하지 않고 언덕을 타고 지나려는 것이다. 안에

서 밖으로는 나가기가 쉽고 그들의 경공이 뛰어나 금병을 만날 일은 없었다. 

언덕을 오르니 가면 갈수록 산세가 험해지고 수풀이 우거졌다. 말은 도저히 타고 갈 수 없는 길이라 걸어가며 말을 

끌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양은 이런 험난한 지대가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실로 대천산이니 화산이니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병가의 요지로 적을 막는데 쓰이는 곳이라 험난함은 한층 더한 듯 했다. 역시 천하지험(天下之

險)으로 명성이 드센 곳이었다. 

중간에 그들은 말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더 끌고 오르기엔 불가능했던 것이다. 경공을 익힌 진양 등이나 험난한 지

대에 익숙한 악만풍도 거의 기어오르는 듯 힘들게 가는데 하물며 말이 따라올 리가 없다. 그들은 함곡을 지나면 새

로 말을 구하기로 하고 말들은 그냥 내려보냈다. 함곡의 수많은 나무들 밑의 어둠  속에서 네 명은 겨우 앞을 분간

하며 계속 몸을 옮겼다. 가끔 미끄러져 위험이 닥칠 때면 진양이 경공을 펼쳐 그들을 구해내기도 했다. 악만풍이 길

은 잘 알아 가장 이동이 편한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험한 함곡을 지나가고 겹겹이 둘러싸인 나무

들 위로 해는 십여 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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