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 十 四 章. 난주 대전의 서막 3
"아! 진소협. 마침 잘 왔소."
그가 형란을 내려놓기 무섭게 용상이 입을 열었다. 진양이 둘러보니 전진 오자와 당광은 물론이고 당무, 당주고, 당
유민, 왕령까지 모두 있었다. 그 뒤로 전진 도사가 이십여 명이오, 여타 강호인들이 이십여 명이다. 그리고 이쪽엔
용상과 양만풍, 전효, 한마일, 서존 등으로 서른 명에 달하는 듯 했다. 이렇게 되니 연무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버렸
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여차하면 대전이 벌어질 위기였다.
"자네가 진양인가?"
진양이 둘러보는 사이 반대편에서 마옥이 말문은 열었다. 일전에 보았을 때보다 좀 여위고 안색이 파리한 게 아무
래도 왕처일의 죽음으로 조금 고심한 듯 했다. 허나 눈빛에서 보이는 정명함은 그가 시련을 이겨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바로 진양이다. 무슨 일이냐?"
"알맞게 찾았군. 자네가 진양이라니 다행이네."
"그래 다행이겠지."
진양이 가볍게 빈정거렸다. 도사들이 발끈하자 마옥은 손을 들어 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사질이 그러길, 자네가 내 사제인 왕처일을 죽였다 하더군. 사실인가?"
그의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다. 절로 싸울 맛이 떨어질 만큼 엄숙하고 경건한 음성이었다. 진양은 해명하는 게 좋겠
다고 생각하며 막 말하려고 했다. 헌데 당무가 먼저 나선다.
"이 쳐죽일 놈! 감히 왕사숙조를 해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내 오늘 네놈과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그는 빠르게 검을 뽑으며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뛰어들었다. 당주고도 호통치며 함께 달려든다. 진양은 그
들의 속을 뻔히 알았다. 분위기로 보아 아무래도 진실이 드러날 것 같으니 발악을 하는 거다. 진양은 그렇게 생각하
며 비소를 날렸다.
"웃기는 자식들. 난 네놈들의 간을 빼먹어야지."
진양은 유루봉법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다. 일전에 당무를 죽일 뻔하기도 했으니 그들 둘이 합친다고 해봐야 별로
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이 열내며 덤비는 게 꼭 무슨 무공이라도 익힌 듯 하다. 하지만 진양은 겁먹지 않고 단숨
에 봉을 휘돌렸다. 위아래 상하로 봉막을 만들며 물처럼 끊임없는 봉법을 다시 연출해내었다.
괴상하게도 그들의 무공은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당무도 이전과 그대로고 당주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예전보다
훨씬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행여나 뭔가 있을까 싶어 함부로 달려들진 않았지만 시간이 자꾸
흐르자 점점 답답해졌다. 진양은 참지 못하고 봉을 한순간 휘둘러 당무의 검을 날려버렸다. 맹렬히 가슴에 봉을 쑤
셔 넣자 정타당하고 몸이 서너 장 밖으로 퉁겨져 나간다. 당주고가 놀라 그를 잡으려 했지만 도리어 진양의 봉에
여러 대나 맞고 말았다. 그를 크게 해칠 마음은 없어서 가볍게 발로 밀어냈다.
너무 간단히 싸움이 끝나버렸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이가 봐도 이 싸움은 진양이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그런 만큼 정작 진양 자신도 이상하게 여겼다. 생각해보니 그들의 무공이 너무 약해진 것 같았다. 순간 무슨
계책이 있는 게 아닌가 하여 가슴이 뜨끔해졌다.
"그 봉법은 어디서 배웠는가?"
마옥의 질문이었다. 좀 전과 말투는 비슷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뭔가 다르다. 진양은 그제야 머릿속을 강타하는 뭔
가가 있었다. 완벽히 당한 것이다. 이런 계책을 당무가 냈을 리 없다. 눈을 크게 떠 당광을 바라보니 그의 입가엔
조소가 걸쳐져있다.
"그 봉법을 어디서 배웠는가?"
마옥이 똑같은 음색으로 묻자 진양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왕.. 아니 수녀에게. 이 봉법은 유루봉법."
순간 좌중에서 욕설이 쏟아진다.
"과연 수녀와 한 패였구나!"
"수녀는 어디 있느냐? 네놈은 알고 있지? 어서 말해라!"
"그년을 죽여 내 어머니의 한을 풀겠어! 네놈부터 죽일 테다."
감총방 사람들도 보통 놀란 게 아닌 듯 싶었다. 용상도 그것까진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양만풍은
입까지 벌린 채로 멍청하게 있었다. 진양은 갑자기 화가 치솟았다. 왕령을 꼭 마녀로 몰아세우는 것 같아 화가 치미
는 것이다. 본래 악행은 금녀가 다했고 그녀는 이미 죽었는데 왕령을 모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입 닥쳐라! 악행은 금녀가 다했다. 수녀는 할 수 없이 제 어머니를 따라 일을 벌인 거다. 더구나 이제 회개하고 조
용히 살고 있으니 따지지 말아라!"
"웃기는군. 그럼 남을 따라서 도적질을 하면 그건 죄가 아니란 말이냐?"
"어서 말해라! 어디에 그녀가 있느냐? 말 안 하면 네놈도 죽여주마!"
도사나 감총 제자들보다도 강호인들의 분개가 대단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진양을 쳐죽일 듯 살벌하게 무기를 꺼
내들고 있었다. 마옥이 황급히 소리친다.
"멈추시오! 모두 일단 기다리시오."
지난번처럼 그가 한번 소리치자 과연 분위기가 틀려진다. 그는 조금 소란이 진정됨을 느낀 후에야 진양에게 말했다.
"정말 유루봉법이 맞는가?"
"내가 뭐 하러 그걸 숨긴단 말이냐? 설령 숨긴다 해도 모르는 이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느냐?"
그의 말에 마옥은 길게 한숨을 뽑았다.
"휴. 그런가. 아무튼 그건 나중에 거론하기로 하고… 자네가 왕처일을 죽인 건 맞는가?"
진양은 분통이 터졌다. 당광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홱 고개를 돌려 용상을 바라보니 그는 마
치 자신의 생각대로 될 거라는 듯 가볍게 미소하고 있었다. 진양은 갑자기 용상이 미워졌다. 그 자의 생각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따라가 주긴 싫었다. 마옥을 보니 겉으론 정색한 얼굴이지만 속으론 자신을 욕하고 있을 거란 생
각이 들었다. 모두가 적이다.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적이다. 형란과 양만풍만 뺀다면 모두가 적이 될 수도 있
다는 걸 연달아 상기했다.
"그렇다 내가 죽였다.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그의 말에 사방이 일순 고요해진다. 이 자리에 모인 수십 명이 모두 숨이 멎은 듯 동시에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
다. 그리고 숨 한번 내쉴 시간, 좌중에선 놀란 경호성, 욕설 등이 터져 버렸다. 그 외침들이 서로 섞이고 섞이자 이
큰 감총 대전이 다 울릴 만큼 대단했다. 하기야 왕처일을 죽였다고 자백했는데 누가 분노를 하지 않으랴. 전진 칠자
는 모두에게 존경을 받으니 그 중 한 명을 죽였다는 건 실로 무림공적으로 몰릴 만 하다.
"진양! 왜 제대로 말을 안 하냐?"
양만풍이 소리친 것이다. 그는 진양이 설마 이렇게 답할 줄은 몰라 어이가 없었다. 바른대로 대답만 해도 누명을 벗
을 수 있는데 이런 대답이 터지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죽인 게 맞다. 유루봉법으로 잔인하게 왕처일을 죽여버렸지."
"진양!"
"내가 죽인 게 아니면 누가 죽였다는 거냐? 이 세상에 나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겠느냐?"
진양이 버럭 외쳤다. 눈은 양만풍에게 가있지만 말은 모두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제야 양만풍도 깨달아지는 게 있
었다. 진양의 그 괴팍한 성격을 떠올리며 실로 할말이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당광! 왕처일은 네가 죽였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농간을 부려 언제까지 진실이 감추어질 것 같으냐?"
"흥. 네놈도 한 패로구나. 아니지 이 감총방 모두가 한 패겠지. 오늘 너희들은 왕사숙조를 죽인 대가를 치러야 한
다."
정작 당광은 대답도 안 하는데 당무가 먼저 나서서 소리쳤다. 그가 외치자 많은 강호인들과 도사들이 박수를 치며
찬동했다. 엄숙히 있던 마옥이 진양을 향해 말한다.
"정말 자네가 죽였나?"
"그래 내가 죽였다. 왜 믿지 못하지?"
"그럼 어디 시험을 해봐야겠군!"
갑자기 마옥은 무림의 대선배라는 것도 망각한 듯 빠르게 달려들었다. 진양이 놀라 봉을 휘젓자 그는 가볍게 그 봉
을 피해댔다. 그가 일순 우수를 내질렀다. 봉이 그 팔의 곡지혈을 강타하려 날아가는데 금방 손이 빠지며 반대로 좌
수가 날아들었다. 너무나 쾌속하고 정확한 허실이라 진양은 당황하고 말았다. 다행히 유루봉법의 특성상 봉을 돌려
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진양이 몸을 빙글 돌리며 맹렬하게 반격했다. 마옥은 두 발짝 가량 뒤로 몸을 날리더니 재빨리 달려들며 또 우수를
내민다. 진양이 똑같은 방법으로 맞서자 그는 또 좌수를 내밀었고, 마찬가지로 막으니 역시 그도 좌수를 빼내고 말
았다. 헌데 그 순간, 그의 우수가 맹렬히 엄습했다. 진양의 전중혈을 향해 두 손가락이 겹쳐진 채로 빠르게 돌진했
다. 진양은 이런 수가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몰라 급히 봉을 돌렸다.
다행히 봉이 근접해있어 마옥의 손가락보다 봉이 먼저 그의 손에 닿을 듯 했다. 막 닿으려는 때 마옥의 초수가 변
초했다. 손을 쫙 펴며 봉의 중심을 덥석 움켜쥐고 만 것이다. 유루봉법에서든 다른 봉법에서든 봉의 가운데는 잡혀
선 안 된다. 봉은 그 특성상 돌리는 게 일반적인데 가운데가 붙잡히면 모두 끝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유루봉법처럼
회전을 기반으로 하는 봉법임에랴. 이 싸움은 끝이 난 거나 다름없다. 마옥은 봉의 가운데를 쥐고 세게 잡아끌며 진
양의 어깨에 일 장을 후려쳐 봉을 뺏어버렸다.
"내 봉을 내놔라!"
진양은 크게 분노하여 발악하듯 달려들었다. 마옥은 냉소하며 그에게 봉을 휙 던져준다. 그 속도가 빠르고 내공이
담겨져 있는 듯해 그냥 잡기는 위험했다. 차라리 피하고 봉을 줍는 게 나을 듯 하다. 그러나 그 봉은 보통 존재가
아니었다. 뺏긴 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지는데, 위험하다고 하여 봉이 내팽개치게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화살처럼 날
아오는 봉을 진양은 기어코 막고야 말았다. 두 손을 벌렸다가 한순간 모아 봉을 잡았지만 그 위력이 대단하여 가슴
을 밀치고 만다.
"그게 무슨 짓인가?"
도리어 당황한 건 마옥이었다. 진양은 가슴을 밀려 볼썽사납게 나자빠지면서도 끝까지 봉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마
옥은 그 봉에 담긴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억지로 악인인 척 하지 말게."
진양은 그가 확인하려 해보겠다 한 걸 기억하고 버럭 소리쳤다.
"무슨 말이냐? 내 무공이 그리 형편없단 말이냐?"
"유루봉법에 힘입어 제법이긴 하네. 허나 그 실력 갖고는 죽어도 왕사제를 죽일 수 없어."
좌중이 놀라 고함소리가 여럿 터졌다.
"스스로 인정했으니 말할 것도 없소이다!"
"수녀와 얼마나 친한지 봉법도 전수받았어. 분명 옥양자는 진양이 죽인 거야!"
"맞아! 게다가 당소협은 저 진가 놈이 옥양자를 기습했다고 했잖소. 기습이라면 옥양자도……."
마옥은 그런 외침들을 듣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뒤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니오. 진양이란 친구는 왕사제를 기습해서 죽일 실력도 안 되는 자요. 설령 기습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죽을 왕사제가 아니오."
"그럴 리가……."
"좀 전 대결을 펼치며 보니 내공이 형편없었소. 유루봉법의 초식이 하나같이 기괴하지만 잔악한 무공도 아니오. 오
히려 선한 기운마저 느꼈소."
마옥의 말은 대단한 신빙성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그만큼 무공이 뛰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그가 직접
확인한 바인데 누가 감히 토를 달겠는가. 점점 숙연해지는 좌중을 향해 마옥은 계속 말을 잇고 있었다.
"내가 두 번이나 같은 공격을 시도한 건 그의 반응이 어떤가 보고 경험이 어떤가 보려 함이었소. 반응은 괜찮았소.
공격을 보기가 무섭게 봉이 치고 올라오고 또 봉법이 기괴하여 완벽히 봉막을 만드니 그야말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봉법이오. 하지만 경험은 확실히 형편없소. 나이가 어린 만큼 모양새를 똑같이 했더니 쉽게 속았소. 경험이 많다면
이런 속임수엔 넘어가지 않다는 걸 모두 잘 알 거요."
강호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험도 부족한 친구가 왕사제를 죽인다는 건 힘드오. 실력도 대단한 게 아니고…"
마옥은 그렇게 말끝을 얼버무리며 당광을 쳐다보았다. 당광은 뻔뻔하게도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양은 진작부터 분통이 터진 상태다. 마옥이 엄숙히 입을 열었다.
"당사질. 분명 진양이란 친구가 죽인 게 맞는가?"
"물론 맞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그가 쉽게 당한 건 일부로 당한 것 같군요. 그의 무공은 사실 제법입니다."
"붙어봤는가?"
"그럼 당연하지요. 더구나 그는 소림사의 절학인 탄지신통도 알고 있어 더욱 위험한 자입니다."
진양은 그의 말에 치를 떨었다. 양만풍은 더 참지 못했다.
"이 더러운 작자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집어쳐라."
"너는 또 뭐라고 끼어 드느냐?"
당광이 호통치자 그가 몸을 파르르 떤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가 보구나!"
"흥. 너희 같은 더러운 무리는 모두 힘으로 해결을 보려 하는구나. 하지만 오늘은 안 될걸. 여기 계신 다섯 분이 누
군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전진교의 명성은 나도 안다. 저분들은 시비를 잘 가리시는 분들이니 너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광은 크게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 그래 그런 말을 하면 우리가 당하는데 사백님, 사숙님들께서 가만 계시리라 생각하느냐?"
"오냐 어디 시험해봐야겠다."
양만풍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전진 오자에 대해선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고 있었지만 당광은 보기만 해도 치가 떨
렸다. 사람을 죽여놓고 남에게 덮어씌우며 교묘한 모계로 진양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게 너무 밉고 더럽다고 생각
했다.
그는 인정사정 없이 누가 말리든 안 말리든 즉각 창을 꼬나 쥔 채로 달려들었다. 당광은 짐짓 놀란 체 하며 허둥지
둥 검을 뽑는다. 양만풍은 그의 계획을 다 알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이는 속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형란 같았으면 좋겠다. 그는 저렇게 허둥거려서 일부로 전진 오자의 힘을 빌리려는 게 분명하다. 자신은 손 하나 쓰
지 않고 그들의 힘을 빌어 모두 제압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훗날 진실이 밝혀져도 전진 오자들 또한 크게 상
심하게 될 테니 나쁜 꿍꿍이가 있는 그로서는 아주 좋은 것이다.
양만풍은 이 모든 걸 다 듣고 보고 추리하며 느낌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 철판을 두껍게 깐
후 유들유들하게 거짓말을 하는 그 모습은 참으로 열이 뻗쳐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다. 이토록 흥분해본 적도 생각
해보면 없다. 양만풍이 언제 이렇게 분노한 적이 있던가. 본래 악가창법을 전수해준 사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위선
의 무리나 남을 모함하는 무리는 매우 싫어했었기에 그의 분노는 더 컸다.
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독룡출동의 묘수를 펼쳤다. 용상은 말리려고 몇 마디 소리쳤으나 그가 듣는 체도 안 하여 의
미가 없게 됐다. 그는 짐짓 허둥대는 척 하는 당광의 대가리를 향해 창을 빠르게 내질렀다. 독룡출동은 원래 창을
가슴 앞으로 놓고 그대로 찔러들어 가는 초수라 상대방 역시 가슴을 맞아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양만풍은 덩치가
매우 커서 당광의 머리를 찌르게 된 거다. 날아오는 창을 당광은 힘겹게 몸을 젖혀 피하고 중심까지 못 잡으며 뒤
로 내뺐다. 양만풍이 다시 오로파금(五路破金)을 펼쳐 머리와 목, 가슴 양팔에 번갈아 창을 찌르자 그는 두어 수 피
하더니 급기야 위기를 맞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게 진짜 위기일 리는 없다. 적어도 양만풍은 그렇게 확신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아 창에 사정없이 힘을
가했다. 과연 훌륭한 창법 그대로 초수도 대단하다. 보법의 상태가 진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그만
큼 움직임도 빨랐다. 남들이 보기엔 마치 잠시 후엔 당광이 죽을 것처럼 보였다. 알면서도 속은 당무가 앗, 하고 경
호성을 발하고 있었다.
순간 움직이는 다섯 명이 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전진 오자다. 구처기와 왕처일이 빠져 오자인 그들은 동시에 몸
을 날려 양만풍과 당광 사이로 끼어 들었다. 다섯 명이 역시 동시에 검을 뽑아 내지르지 찔러가던 창의 전후좌우가
모두 막혀버렸다. 당광은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고 양만풍은 창을 잡힌 것처럼 빼낼 수 없어 당혹해하고 있었다.
손불이(孫不二)가 일순 검을 빼내며 그의 중부혈을 노렸다. 양만풍은 이대로 창을 들고 빠질 수 없음을 알았다. 몸
만 뒤로 꺾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요, 그걸 알고 찌르는 손불이겠지만 양만풍 또한 진양처럼 자존심이 제
법인 사나이였다. 더구나 악가창법의 전인이 어찌 창을 버리고 목숨을 구걸하겠는가. 그는 검에는 신경도 안 쓰고
도리어 창을 꾹 쥐며 세게 잡아당겼다.
이만하면 놀란 건 아마 손불이일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그녀의 얼굴은 일순간에 새파래지고 말았다. 그가 알면서도
안 피한다는 걸 알고 결국 피하지 않을 것까지 알자 그녀는 더 검을 내지를 수 없었다. 검을 중도에 멈추며 잡아
빼니 마옥 등도 이를 보고 함께 몸을 빼냈다. 양만풍은 그들이 갑자기 힘을 빼자 제 힘에 밀려 볼썽사납게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죽고 싶은가?"
손불이가 반쯤은 어이없다는 듯 가볍게 호통쳤다. 물론 양만풍도 지지 않는다.
"그럼 손선배님은 사부님이 물려준 무기를 버리고 나 살자 도망갈 수 있습니까?"
그의 말에 전진 오자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마옥이 조금 뒤에야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째서 당사질을 괴롭히는가?"
"그걸 말이라 합니까? 왕선배님은 저 자가 죽인 거란 말입니다!"
"뭐라고?"
마옥이 놀라 소리지르기도 전에 당무가 먼저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친 거였다. 그는 제자리서 한 발짝 나서며 버럭
버럭 고함을 쳐댔다.
"진양이 네 절친한 벗임은 온 천하가 다 알고 있다. 그를 보호해주려고 하는 건 안다만 어찌 생사람을 잡으려 하느
냐?"
진짜로 기가 막히는 건 양만풍이다.
"그거야말로 내가 할말이다. 진양은 나와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럴 일을 벌일 시간조차도 없었다. 우리가 왕선
배님을 만난 건 지난날 종남객잔에서 본 적 딱 한번뿐이다."
"그런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사람들이 믿을 거 같으냐? 더욱이 진가 놈 스스로 인정한 사실인데 네놈이 다시 얼버무
리는 건 무슨 수작이 있다는 것이렷다!"
"너……."
양만풍이 참지 못하고 다시 뛰어들으려 하자 당무는 황급히 마옥의 등뒤로 숨어버렸다. 양만풍은 전진 칠자를 존경
하던 터라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나와라 이 겁쟁이야. 네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어디 내 눈앞에서 당당히 말해봐라."
"이런 미친 작자를 봤나. 내가 그리로 가면 네놈이 날 죽일 텐데 어떻게 간단 말이냐? 나를 죽여 살인멸구를 하려
는 계획이겠지."
양만풍은 어이가 없어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어떻게 부자가 저리 똑같이도 거짓말을 잘할까. 참으로 적반하장이
다. 그 틈을 당무가 놓칠 리 없었다.
"할말이 없구나. 그래 네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지. 진가 놈도 스스로 인정한 죄고 너희는 그걸 알면서도 그놈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사백조, 사숙조들께선 워낙 너그럽고 정명하신 분들이니 봐줄 수도 있다."
양만풍이 뭐라고 또 따지려 했으나 당무는 용상 등을 바라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할 테냐! 진가 놈 일행 셋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우린 감총방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너희가 그들 죄
를 알면서도 옹호한다면 크게 패망할 것이다. 자 어서 결……."
"그만 입을 다물거라."
혼자 계속 떠들고 있던 당무를 더 보지 못하겠는지 마옥이 그를 만류했다. 그는 금방 목을 움츠리며 입을 꼬옥 다
물고 말았다.
용상은 한동안 가만히 생각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오늘 전진 오자를 직접 대면하고 또한 전진교의 많은 영웅들을 보아 참으로 기쁩니다. 거기에 강호의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니 실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옥을 비롯한 전진 도사들과 여타 강호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좀 전 당무라는 친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진소협 스스로 인정한 죄니 저도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전 그가 죄를 지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의 성품이 많이 괴팍해도 사실 그런 나쁜 짓을 할 친구는
못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용상의 느긋한 말이 답답한 듯 듣던 한 강호인이 소리쳐 물었다. 그러자 용상은 씨익 미소하며 대답한다.
"당연히 그들을 계속 지켜줘야지요."
"그럼 볼 것도 없다! 모두 쓸어버리자."
한 강호인은 계속 고함을 치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진양은 그가 갑자기 수상해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다름
아닌 융정이 아닌가. 그의 곁엔 덩치가 큰 남자 융왕이 당당히 서있었다. 융정이 몇 번 고함침에 모두들 난리가 일
어나고 말았다. 확실히 상황이 판가름났다고 생각한 강호인들은 분노를 터트리며 감총방 사람들을 모두 죽일 기세
였다. 마옥이 놀라 소리친다.
"모두 가만히 있으시오!"
"언제까지 가만히 있으란 말이오? 우리는 악독한 진가 놈을 감싸고 있는 감총방을 쳐부수고 진가 놈을 알맞게 처리
할 것이며 또한 수녀의 행방도 알아낼 것이오. 모두 싸우자!"
"그만 하라니까!"
융정의 말 몇 마디는 많은 강호인들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마옥이 엄숙한 음성으로 내공까지 담아 여러
번 고함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는 게 더 맞았다. 융정의 말로 이미 그들의 분노는 폭발한 셈
이었다. 그들은 각자 제 병기를 꺼내들고 맹렬히 감총 제자들을 향해 돌격했다. 용상이 급한 대로 어떤 손짓을 보내
자 감총인들은 세 명씩 짝을 이루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양만풍은 진양과 형란을 데리고 일단 안쪽으로 물러섰다. 감총방 사람들이 위험에서 보호해줄 것이니 한동안은 안
심이다. 형란은 두려움이 드는 듯 몸을 자꾸 가늘게 떨었다. 그러면서도 진양이 어이없는 모함을 받고 있다는 건 아
는지 안색에서 조금 푸른색의 노기가 엿보였다. 그렇게 난주 대전은 서막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