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 十 五 章. 허무한 반란 1
그야말로 혼전이었다. 양측 모두 각자의 절학을 펼쳐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전진 오자가 말리려고 몇 마디 더
소리쳐보았으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의 외침마저도 많은 강호인들과 감총방 무리 사이에서 사라져가고 있었
다. 사방으로 기합과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칼에 베이는 끔찍한 소리, 주먹에 맞아 골이 부서지는 소리까지 참 살
벌함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수는 분명히 감총방이 더 많았다. 감총방은 난주 제일의 문파, 아니 감숙 지방 제일의 대파다. 분타만 해도 난주를
중심으로 곳곳에 다섯 곳이나 있고 정도를 지켜 이 지방에서 감히 도적질을 일삼는 무리는 찾기가 어려웠다. 근래
엔 몽고군과도 친해졌으니 자금도 풍부하겠다 세력도 크겠다, 뭐가 문제이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붙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분명 감총방의 혼연권법은 일세의 절학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이다. 그러나
첫째로 그들 감총 제자들은 묘수를 익히지 못해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하수들, 중수들과는 동등하거나
이길지 몰라도 고수 앞에선 맥없이 무너지게 되어있었다. 지금 이곳에 온 강호인들은 대부분 고수다. 군웅들끼리 서
로 화합하여 뽑은 사람들이니 얼마나 강할까. 둘째로 강호인들 중엔 융왕과 융정도 있다. 융왕의 무공은 형웅강과
문인강목 같은 고수를 한 손으로 상대한 절정 고수요, 융정도 갑자기 무공이 진보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들이 나
름대로 실력을 숨기며 적당히 힘을 쓰고 있었지만 한 두어 동작 붙어주고 죽이는 식의 행동이니 삽시간이 그들 손
에 여러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용상은 이런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그도 융왕과 융정을 보고 있었다. 실력
을 숨기곤 있지만 용상 같은 인물의 안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는 그 두 명을 보며 곧 알았다. 대단한 고수 두 명
덕분에 감총방이 힘을 못쓰는 거라는 걸. 그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 몸을 번쩍 날려 융왕의 정면으로 날아
들었다.
진양은 그가 몸을 날려 융왕의 앞에 이르자 눈을 반짝이며 한 동작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융왕의 무공을 실제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용상은 융왕의 면전에 이르며 일갈했다.
"네 이놈! 정체를 밝혀라."
그는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빠르게 일 권을 내질렀다. 팔과 어깨가 수평이고 몸은 혈도라도 짚인 듯 딱딱했다. 바로
혼연권법인 것이다. 그에 융왕은 픽, 하고 웃으며 난데없이 발을 들었다. 그리곤 재빠르게 용상의 무릎을 밟아버렸
다. 본래 덩치가 커서 발을 들자 가슴까지 올라왔는데, 용상은 이를 상체 공격으로 착각하고 급하게 팔을 들었다.
그 순간 그는 틈을 놓치지 않고 용상의 무릎을 밀어내듯 밟은 것이었다. 용상이 가볍게 신음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융왕은 그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예 죽여버릴 심산인지 맹렬하게 일 장을 내밀었다.
양만풍은 더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얘긴 들었다. 자신도 그 말에 승낙했고 이제 그들은
사제지간이 된 셈이다. 헌데 어찌 제자가 사부의 위험을 모른 척 하겠는가. 그는 창을 꼬나 쥐고 독룡출동의 묘로
일 장을 후려갈기는 융왕의 목젖을 노렸다. 융왕은 서둘러 손을 빼고 반대 좌수로 양만풍의 창을 잡으려 했다. 속도
가 매우 빨라 거의 반사적인 행동만이 안 잡히는 길이다. 양만풍은 그런 것에 이미 잘 적응이 돼서 순간적으로 창
을 빼냈다. 발과 몸을 빙글 돌리며 다시 탐해거룡을 선보였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며 창은 빠르게도 융왕에게 찔
러들어 가고 있었다.
"흥. 네까짓 것들이 나를 이기겠느냐?"
융왕은 버럭 고함치며 한순간에 창을 붙잡아버렸다. 중심을 잡지는 못했지만 내공이 워낙 뛰어나고 재빨라 양만풍
이 알아차렸을 땐 이미 창대를 잡힌 후였다. 그는 이 창을 매우 소중하게 여겨서 급히 변초를 시도했다. 창을 위아
래로 덜컥덜컥 흔들어주고 그 상태에서 바로 독룡출동을 펼쳤다. 헌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해괴한 게 아무리 힘
을 줘도 몸이든 창이든 모두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꼭 창을 산에다 꽂고 산을 밀려고 하는 것과 같았다. 태산처
럼 융왕의 손은 조금도 떨림이 없었다.
양만풍은 안되겠다 싶어 주먹을 휘둘렀다. 거의 발악에 가까운 몸부림으로 융왕에게 있어선 아무런 효과도 없는 행
동이었다. 물론 양만풍 자신도 알았지만 뭘 어찌하겠는가. 그냥 앉아서 죽을 수도 없고 어떻게든 해봐야만 했다. 융
왕은 그의 주먹을 다른 손으로 덥석 움켜쥐고는 발로 그의 배를 걷어찼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리자 하
하, 웃으며 그를 진양 쪽으로 휙 날려버렸다.
그러는 사이 용상은 잠시 몸을 피해 감총 제자들 틈에 끼어 들 수 있었다. 양만풍도 목숨엔 지장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진 오자는 매우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작부터 이 싸움을 보고 있어서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용상과 양만풍을 데리고 노는 실력이라니, 이런 자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뭐 어찌되었건 간에 이
싸움은 말려야만 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으니 이젠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단숨에 몸
을 날려 그들 사이로 끼어 들었다. 강호인들과 감총 제자들은 잠깐 놀랐으나 그래도 무시하고 싸운다. 마옥이 소리
쳤다.
"모두 멈추게 하라!"
순간 전진 오자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옥을 중심으로 네 명의 전진자가 동서남북 위치에 자리잡았다. 자세는
분명 하나같이 같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 다르게 느껴지는 건 바로 시선이었다. 마옥은 가운
데에 서서 사방을 쓸어보고 그들은 각자 오른쪽 위, 왼쪽 위, 오른쪽 아래, 왼쪽 아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야말
로 참 해괴한 시선이라 할 수 있었다.
강호인들과 감총 제자들은 이를 보았다. 조금 어이가 없었으나 그래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왠지 그들이 방해할
느낌이 들어 한시라도 빨리 서로를 더 죽여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쯤 드디어 오자의 몸이 움직였다. 마옥이
뭐라고 소리치자 다섯 명이 꼭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갑자기 멈춰 서며 그와 동시에 동서남북의 네 명은 빠
르게 치고 나갔다가 다시 원위(原位)했다. 정말로 신속하게 비호와 같은 움직임으로 어지간한 안목이 없는 사람은
제대로 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들 네 명이 다시 휙 하고 갈라섰다가 또 다시 돌아온다. 다시 나갔다 또 들어오고 이를 세 번 반복했다. 그렇게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호흡 세 번할 시간도 안됐다. 이 얼마나 빠른 진퇴의 움직임인가. 무엇보다도 그들 네 명
이 한번 나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강호인 둘, 감총 제자 둘씩은 쓰러져있었다. 혈도를 짚여 힘도 못쓰고 나무처럼 단
단히 굳어 풀썩 쓰러지고 마는 것이었다. 강호인들과 감총 제자들은 놀라 잠시 흩어졌다. 전진 오자에게서 떨어지려
하다보니 자연 자세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용상이 이를 보고 고함쳤다.
"물러서지 말아라!"
융정도 가만있을쏘냐.
"우리도 물러서지 맙시다. 다 쓸어버립시다."
양쪽에서 한마디씩 터지니 다시 혼전은 시작됐다. 전진 오자는 그 괴상한 자세를 유지하며 계속 네 명 단위로 점혈
을 해나갔다. 처음엔 강호인들과 감총 제자들이 싸울 때 전진 오자의 손에 네 명씩 쓰러졌지만, 시간이 흐르니 모두
멍청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실력이 대단해도 이들 양측이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니 종종 실패하고 다
시 돌아오는 경우가 생겨났다. 급기야 한 감총 제자가 몸을 날려 마옥의 머리 위로 뛰어들었다. 마옥의 정수리에 좌
권을 지르자 그는 오른손을 가볍게 돌려 쳐내고 그대로 그 자의 따귀를 쳐버렸다. <짝>하는 소리가 울리며 그 자
는 몸이 2장 밖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계기였다. 전진 오자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은
어떤 계기였다. 강호인들은 대부분 전진 칠자를 존경해서 함부로 그를 공격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감총방이라면 다
르다. 그들은 오로지 감총방 방주 용상뿐이고 그 새로운 후계자 양만풍뿐이다.
그렇게 되니 자연 공격도 여러 번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몰래 두 명이 뛰어오르며 공격을 가하더니, 잠
시 뒤엔 다른 감총 제자 두 명이 손불이와 유처현을 공격했다. 그 후로 세 명, 네 명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본래
전진 오자는 그들을 말리려고 할 수 없이 무력을 사용하는 건데 이렇게 되자 완전 포위를 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감총 제자들은 점점 그들이 한 수에 모두를 못 뿌리치자 기회로 여기고 단숨에 달려들고 있었다. 강호인들은 그에
매우 놀라 우물쭈물 행동을 결정하지 못했다. 한둘씩 오자 쪽으로 몰리더니 급기야 모두가 강호인들에게서 등을 돌
려버린 것이다. 아예 등을 돌리고 전진 오자만 공격하고 있었다. 강호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정말로 그러했다.
강호인들은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분통이 터져도 모두가 정도의 인물, 어찌 상대
의 등을 공격하겠는가. 그러나 융정이나 융왕이 이런 걸 지킬 리가 없었다.
"모두 뭐들 하는 거요? 전진 오자를 도와야지 어찌 좌시한단 이오? 자! 감총방의 개 같은 무리들을 칩시다."
단연 융정의 외침이었다. 그가 또 그렇게 고함치자 강호인들은 마음에 혹 하는 게 있어 서로 눈치만 보았다. 그러자
융정이 또 소리친다.
"전진 오자를 안 돕는 건 대체 무슨 이유요? 설마 당신들 감총방과……."
"무슨 소리요 그게! 어서 도웁시다."
융정의 수작에 강호인들은 쉽게 말려들고 말았다. 융정의 뒷말은 안 들어도 알만한 이야기여서 모두 병장기를 움켜
쥐고 맹렬히 감총 제자들의 등을 치기 시작했다. 감총 제자들은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크게 놀라 전진 오자
와 강호인들을 상대로 반으로 갈라져 싸움을 시작했다. 다시 혼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진양과 양만풍은 융정, 융왕이 얄미워죽을 것 같았다. 좀 진정되는가 싶으면 다시 기름을 붓고, 또 가
라앉는다 싶으면 다시 돋구는 식으로 자꾸 싸움을 벌이게 하니 분통도 분통이요 무엇보다도 그들의 수작이 의심스
러웠다. 계속 싸움을 벌어지게 하는 이유가 뭘까. 당광 등을 바라보면 그들은 다만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
들을 따라온 전진 제자들도 모두 말없이 서있기만 했다. 도저히 전진 오자가 처한 상황을 생판 모른다는 듯 꿋꿋하
기만 했다. 그런 모습들에 진양과 양만풍은 뭔가 일이 터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러는 중 싸움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강호인들과 감총방 양측 모두 지치고 부상을 많이 입으며 사상자
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었다. 일대 살육전이라 해야할까. 전진 오자는 최대한 살육을 줄이고자 재빠르게 혈도를 짚
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들 다섯 명으론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본래 그들 전진 오자가 행하는 자세는 전진교 3대 절진 중 하나인 선인칠진진(仙人七珍陣)으로 전진 칠자 일곱 명
이 모여 만드는 진법이었다. 단양이십사진과는 다르게 절대로 남에게 전수해선 안되고 훗날 수제자들에게만 전수하
여 그 맥을 유지하라는 왕중양의 명이 있었던 진법이었다. 그만큼 위력도 대단하다. 보면 단순하게 치고 빠지는 듯
한 수법인 듯 싶지만 그 속도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빨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포위를 당했든 한 명과 싸우든 똑
같이 빠르고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뛰쳐나가는 네 명은 사실 마옥의 힘으로 몸을 날리는 것
이기 때문이다.
선인칠진진을 펼칠 때 위치는 이렇다. 마옥과 구처기 담처단(譚處瑞)이 가운데에 삼각 모양으로 자리잡고, 그 밖으
로 남은 네 명이 동서남북의 방향에 서서 진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3명이 바깥 4명의 등을 힘차게 밀어주는
것이다. 헌데 이건 단순히 미는 게 아니다. 서로 자리를 교차하며 내공으로 맹렬히 밀어주고 그 힘을 받아 그 4명이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공격을 한 후에 곧장 내공을 일으켜 다시 되돌아오는 수법이었다. 내공의 조절은
필요 없다. 오로지 속력만을 중시하여 상황에 맞게 힘을 낼뿐이며 많은 내공을 소모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
는 게 원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공 소모가 심한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걸 증명하듯 전진 오자의 안색은 어느새 창백해져있
었다. 그 중에서도 마옥이 가장 심했다. 왕처일이 빠지는 바람에 담처단이 그 자리를 채워 홀로 그들 4명을 밀어주
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옥의 내공이 중후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만한 속력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
나 이젠 지쳤다. 아무리 단양자 마옥이라도 오랜 시간동안 홀로 선인칠진진을 유지시킬 순 없었다. 마옥은 그만두기
로 하고 각자 흩어져 사람들을 제압하기로 명령을 내렸다.
선인칠진진이 와해되면서 마옥만 남고 4명은 그대로 사람들 틈에 끼어 들었다. 이리 박고 저리 박고 하면서도 교묘
히 혈도를 짚어가고 있었다. 좀 전처럼 대단한 움직임이나 수법은 없되, 이만하면 과연 전진자라 감탄을 터트릴 만
큼 훌륭했다. 이쪽 저쪽에서 갑자기 검이 튀어나오고 주먹이 날아왔지만 그들은 제각각 제 절학을 잘 이용하여 그
들 모두를 제압하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들은 일단 제자리로 돌아오며 위치를 고수했다. 마옥은 그동안 자리에 앉아 내공을 고르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모두를 제압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용상도 함부로 나서지 않아 다행이었고 좀 전에 보이던 무서운 강호인
두 명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진양과 양만풍도 융왕, 융정의 행적을 몰랐다. 한참 그들 무공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갑자기 사라진 걸 깨닫고는 의혹은 더욱 커졌다.
용상이 한 발짝 나서며 제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모두가 힘없이 늘어진 채로 답답한 눈빛만 빛낼 뿐이었다. 그는 문
득 한심한 생각이 들어 크게 한숨쉬고는 전진 오자를 향해 말했다.
"오늘 우리 감총방은 대패했소. 과연 전진 칠자의 명성은 진짜였구려. 장춘자와 옥양자가 없는데도 이런 실력이라니
모두가 모이면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소름이 다 끼치오."
마옥은 그의 말이 다 마쳐졌을 때쯤에야 몸을 일으켰다. 담처단 등이 말렸지만 그는 괜찮다며 억지로 입을 열고 있
었다.
"나 역시 감탄했소. 감총방의 혼연권법은 일전에 영웅대회에서 본 일이 있어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오늘 감총 제자
들이 쓰는 권법을 보며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또 가졌소. 모두 하나같이 훌륭한 영웅들이오."
"영웅이라니. 놀리지 마시오. 우린 패했고 패배자는 반역도요."
용상은 이미 자존심이 크게 상해있었다. 그렇게 자부하던 무공으로도 일개 강호인 중 한 명조차 못 이겼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참 세상은 넓은 거라 생각했고 지금껏 본 전진 오자의 무공에도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전의
를 상실한 상태인 셈이다. 그는 패배자는 반역도라는 말을 마치고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좌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게 하고싶은 데로 하라는 듯 했다. 그가 그런 자세를 취하자 싸움에 참가하지 않았던 10여 명의 감총 제자들
도 모두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같이 용상 뒤로 나열해 정좌한 채로 눈을 감으니 실로 영웅의 호탕한 기운이 느껴지
는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마옥은 그들을 해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좀 더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만일 사실이라면 진양만 데려가 교화를 시키
고 싶었다. 강호인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해도 그는 함부로 살생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아직 명확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진양의 무공을 시험해본 바 그런 실력으로는 왕처일을 죽일 수 없었다.
"그만 다들 일어나시오. 난 다만 진양이란 친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싶소."
"흥. 동정은 받지 않소. 감총방의 규율 제 3조를 읊어라!"
용상이 눈을 감은 채로 소리치자 뒤에 나열한 십여 명의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감총 제자라는 사실에 자존심을 가지며, 그 자존심이 뭉개지지 않도록 남의 동정이나 도움은 함부로 받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에 마옥은 씁쓸한 미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단 그들을 무시하기로 하고 진양을 돌아보았다.
진양과 양만풍, 형란은 그들 곁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다.
"자네. 마지막으로 사실을 물어봐야겠네. 만일 그대가 진정 왕사제를 죽였다면 그대는 우리와 함께 전진교로 가세.
교화를 받고 새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을 걸세. 그러나 만일 죽이지 않은 거라면 여기서 정황을 모두 밝혀주게나."
아까 만큼 힘이 담기지 않은 마옥의 음성에 진양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본래는 그가 아무리 물어도 끝까지 나쁜
놈 행세를 하려고 했다. 왕령을 악녀 취급하고 유루봉법을 무슨 마녀의 무공으로 취급하며 모두 하나같이 적이라는
생각을 가져서 그런 것이다. 허나 지금 그의 말을 들으니 조금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여기서 또 왕처일을 죽였다고
선언하면 꼼짝없이 그의 손에 잡혀가야 할 것이다. 전진교에 가서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교화라는 명목으로 갇혀
살아야 할 것이다. 진양은 그런 거라면 절대 사양이었다. 어차피 이만하면 충분하니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듯 싶
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뽑으며 막 입을 열려고 했다.
"잠깐!"
그 순간 갑자기 당광이 나서며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담처단이 눈을 치켜 뜬다.
"당사질. 아까부터 자꾸 그럴 건가? 마사형이 진양의 말을 원하니 조용히 있게."
"아니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저 진가 놈에겐 매우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비밀이라니?"
담처단 등이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진양은 또 그가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가 싶어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매우 중요한 비밀이라 함부로 떠들 순 없습니다. 저기 강호인들과 감총 제자들이 모두 있으니 귀를……."
가장 가까이 붙어있던 유처현과 담처단이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때,
<퍼퍽!>
갑작스레 터진 둔탁한 음향에 모두가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에 눈을 휘둥그래 뜰 수밖에 없었다. 귀
를 달라는 당광에게 고개를 들이민 유처현과 담처단이 실 끊어진 연처럼 훨훨 날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은 고
통스러운 듯 인상을 크게 찌푸리고 있었고 둘 다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땅에 우당탕 떨어지고는 뒹굴뒹굴 제자
리를 굴렀다.
"담사제! 유사제!"
마옥이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급히 일으켰다. 몸이 매우 안 좋았지만 그들이 당한 게 더 중요한 거라 서둘러 그들
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둘 다 맹렬한 장법을 맞아 있었다. 대단히 웅후하고 강렬하며 포악한 장법인 듯 그들 옷자락
을 풀어보니 가슴엔 커다란 장인이 찍혀있었다. 손불이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벌떡 일어서며 당광에게 호통쳤다.
"네가 미쳤느냐?"
"내가 뭘 미쳤다는 거냐? 안됐지만 너희는 여기서 모두 죽어야한다."
당광은 놀라운 말을 하고 있었다. 혈도가 짚여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는 강호인들이나 감총방 제자들이나 진양이나
양만풍이나 모두 하나같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말이다. 사백, 사숙들에게 너희는
모두 죽어야 한다, 라니. 그 누가 놀라지 않을 경운가.
"너… 네가 감히……."
손불이는 분노를 못 참고 연신 더듬거렸다. 몸을 가늘게 떨며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당광을 노려보았다. 그 뒤에
선 마옥의 다급한 음성이 들리고 있었다.
"담사제! 괜찮은가? 유사제!"
"괘… 괜찮습니다 사형. 장법이… 좀 맹렬해서 그런 겁니다……."
진양이 봐도 그들의 목숨엔 지장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동안 움직일 수조차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지
금 상황으로 보아 당광은 무슨 큰일을 저지를 심산인가 본데, 전진 칠자 중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세외로 갔으며
두 명은 중상을 입었으니 남은 사람은 마옥과 손불이, 학대통(학大通)뿐이다. 분명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것 같다.
마옥은 길게 호흡하며 당광을 돌아보았다. 가늘게 조소를 띄우고 있는 그에게 엄숙한 음성으로 물음을 던졌다.
"왜 그랬는가?"
간단한 물음이다. 짧지만 직접적인 말이었다. 당광은 그 물음에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 뻔하지. 본래 내가 전진교에 들어선 것은 전진교를 휘어잡으려고 한 것이었으니까."
"뭐라고? 그럼 네놈이 감히 전진교를 넘보았단 거냐?"
지금껏 조용히 있기만 하던 학대통이 분을 못 참고 소리를 내질렀다. 당광은 여전히 조롱기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쓸어보고 있었다. 학대통은 더욱 분노하여 그 뒤에 선 전진 도사들을 보곤 소리쳤다.
"모두 뭐들 하는 거냐? 어서 저 역도를 잡지 못하겠느냐?"
"……."
놀랍게도 그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있었다. 학대통이 펄쩍펄쩍 날뛰었다.
"네놈들도 저놈과 한 패란 말이냐!"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이들은 모두 아버님께 충성하기로 맹세한 영웅들이다. 이제 전진교 교주는 당광이란 얘기
다."
당무가 나서며 한 말이었다. 학대통은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설마 당광은 고사하고 당무까지 이런 작자일 줄은
전혀 몰랐다. 그동안 자신들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걸 생각하니 더욱 열이 받고 억울했다.
"네놈들이 감히……."
"감히 뭐 어떻다는 거냐? 그래서 네놈이 우릴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정말로 그 아비에 그 자식이었다. 당무가 말을 이으며 가볍게 손짓하자 도사들이 그의 곁에 쫘르르 나열했다. 즉,
네가 덤빈다면 네가 죽는다라는 말과 같다. 지금 전진 오자는 매우 지쳐있지 않는가. 하물며 도사들만 이십여 명이
나 되는데 오자가 이길 방도가 없었다. 감총방 제자들도 모두 쓰러져있고 강호인들도 모두 혈을 제압 당한 상황이
었다. 바로 당광이 노린 게 이거였을 것이다.
"이럴 수가……."
상황이 도저히 말이 아님을 깨달은 학대통은 절망하듯 허무하게 중얼거렸다. 당광은 낮게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리고 선인칠진진과 중양대진을 전부 알
려주면 역시 살려주겠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라! 네놈의 비열한 계책에 당하여 이런 꼴이 됐지만 자존심까지 버릴 줄 아느냐?"
"그럼 모두 죽어야겠군."
당광은 코웃음치며 가볍게 손짓했다. 전진 도사들이 앞으로 와르르 쏟아 나온다. 마옥 등은 모두 허탈함에 한숨만
내쉬었다. 설마 이런 계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토록 성실한 당광이 이런 작자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그러나 이건 현실이고 이제 죽음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난주 감총 대전에서 천하를 울리는 쟁쟁한 전진 칠
자 중 다섯 명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더불어 감총방도 모두 죽을 것이고 진양, 양만풍, 형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네가 감히 사숙에게 손을 쓰겠다는 거냐?"
학대통이 노곤한 몸을 가누며 외치자,
"누가 내 사숙이냐? 구처기는 단지 명목상의 존재였다. 나의 입지를 단단히 다지기 위한 존재 정도에 불과했다고나
할까."
"네놈이 감히 구사형을 모욕하는구나!"
"네놈 목숨 걱정이나 해라."
당광은 이어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도사들은 당광이 전수한 단양이십사진을 펼쳤다. 24명의 도사들이
모조리 튀어나와 진을 펼치고 진형은 전진(全陣)인 듯 싶었다. 전진은 단양이십사진 변형진 중에 가장 강력한 진법
형태로 정공법에 자주 쓰이는 진형이었다. 상대는 고작 마옥 등 셋 뿐이고 이미 지친 상태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했
는지 전진을 펼친 것이다. 학대통은 이를 보고 황당하여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너… 이놈이… 감히 단양이십사진을 멋대로 전수해?"
"흥. 내가 전수하건 말건 네 따위가 알 바 아니다. 넌 그냥 그렇게도 되고 싶은 선인이나 되면 되는 것이다."
당광이 다시 손짓했다. 그 신호에 24명의 도사들은 진을 유지한 채로 한 발 한 발 마옥 등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학
대통이 이를 갈며 검을 뽑아들었고 손불이와 마옥도 나섰다. 학대통이 마옥을 보며 말한다.
"사형. 사형은 몸이 편찮으니 쉬십시오."
"괜찮네."
마옥은 간단히 줄이며 전진수검의 수식을 취했다. 세 명은 모두 지친 상태요, 전진 도사는 왕성한데다 단양이십사진
까지 펼쳤으니 이 승부야 안 봐도 뻔한 승부였다. 양만풍은 더 보지 못하고 몸을 날려 마옥 곁에 떨어졌다.
"저도 돕겠습니다."
"아닐세. 자네 같은 인물은 보기 드무니 어서 이 자리를 피하게."
"절 그런 놈으로 평가하십니까!"
양만풍은 이미 의지가 확고히 굳은 듯 했다. 마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보고 있던 당광이 웃음을 터트
렸다.
"하하.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군. 호인들이야! 감동의 물결이 밀려든다. 하하."
"당광!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불어라. 왕선배님은 왜 죽였느냐?"
"하하하."
당광은 그의 물음에도 한동안 대답 않고 웃기만 했다. 양만풍이 다시 뭐라고 외치려 하자 그때쯤에야 겨우 입을 연
다.
"멍청하긴. 당연히 그를 죽여야지 그럼 내버려둔단 말이냐? 그래 왕처일은 내가 죽였다. 종남산에 온다는 말을 듣고
미리 애들을 시켜 준비해뒀지."
그야말로 매우 대담한 말이었다. 이 말을 함으로써 그는 천하의 공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당당함을 보인다
는 건 그만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과 같았다. 양만풍은 그것을 깨닫고 얼굴을 씰룩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왕선배님의 시신은 어찌 했느냐?"
"뻔한 걸 묻는구나. 당연히 강에 버렸지 그걸 어디다 버려? 설마 내가 묻어주길 바랬던 건 아닐 테지?"
"너… 너… 오늘 사생결단을 내자!"
잠자코 듣고있던 학대통이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검을 번쩍이며 전진 도사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마옥,
손불이, 양만풍도 물론 가만있지 않았다. 모두 분기충천할 대로 한 상황이라 수단이고 자시고 없었다. 전진 도사들
은 그들의 공격에 맞서 단양이십사진을 멋들어지게 펼쳐댔다. 당광은 맞대응의 신호를 보내는 듯 가볍게 손짓하고
는 뒷짐진 채로 느긋하게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학대통과 양만풍은 선두에 달려서 전진 도사들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학대통의 검법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빠르기 때문에 다수를 상대하는데 편했다. 더욱이 양만풍은 창의 특성이자 악가창법의 특성을 잘 살려 전진 도사들
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손불이는 종종 뛰어들어 그들을 지원했고 마옥은 홀로 몸을 날려 당광에게 접
근하고 있었다. 당광은 점차 그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네 따위가 오면 뭘 어쩌겠
느냐 하는 식의 태도라 마옥은 절제하려 해도 자꾸 분노가 치밀었다. 도가의 명망 높은 사람일지라도 저처럼 오만
하고 뻔뻔한 당광을 보자니 분을 누를 수가 없었다. 진양에게 누명을 씌워 살인자로 몰아붙이고 이젠 사문의 도(道)
도 잊은 채 감히 살인멸구를 하려하지 않는가.
양만풍 등 3명의 고전분투로 단양이십사진이 약간 주춤했다. 다행히 학대통과 손불이는 단양이십사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약점을 잘도 파헤쳤다. 유약한 부분이나 허술한 부분을 밀고 남은 부분은 양만풍이 알아서 대처하니 훌
륭하게 맞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단양이십사진은 명성 그대로 전진교의 3대 절진 중
하나다. 스물 네 명이 모여 펼치는 이 진은 일단 한번 펼쳐지면 설령 학대통, 손불이가 지치지 않았어도 상대하기
힘든 대단한 진법이라는 것이다. 양만풍 등 3명이 열심히 싸워 잠시 동등한 태세를 유지했지만 일 각도 채 못되어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물론 마옥은 당광에게 접근도 못하고 있었다.
"하하. 단양이십사진을 어디 뚫어봐라. 너희들이 내게 가르쳐준 진법이 아니더냐? 하하."
"네 이놈! 직접 나와라."
학대통이 분을 터트리며 악을 질러댔다. 그러자 당광이 유들유들하게 웃는다.
"내가 어찌 전진 오자와 직접 맞설 수 있겠느냐? 내 부하를 내보내야지."
그의 말은 매우 모욕적이다. 전진 오자를 추켜세우며 감히 맞설 수 없다는 식인 것 같아도, 실상 <너희 따위는 직
접 상대할 필요도 없다>라는 말이었다. 그걸 마옥 등이 못 알아들을 리 없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참에 당광은 갑
자기 손뼉을 쳤다. 두어 번 치자 도사들이 검을 내리고 물러서기 시작했다. 과연 단양이십사진을 가르칠 때 알려줬
던 후퇴 방법대로 한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한 명씩 교차로 물러섰다. 학대통이 쫓아 뒤엎으려 하자 마옥이 말린다.
당광은 단양이십사진을 넓게 펼치도록 하여 원진을 만들게 했다. 마옥 등은 그냥 그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진이 포위라는 걸 알면서도 함부로 뛰어들 수 없다. 그건 원진을 만드는 동안 사람이 덤벼들면 그 순간 원진이
그 자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여 마옥 등 4명 모두가 달려든다 하더라도 어차피 원진에 의해 포위될 것
이기 때문에 공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양이십사진이 원진으로 펼쳐지자 당광은 앙천대소하며 크게 고함쳤다.
"나오너라!"
마옥 등은 그의 난데없는 말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감총방 담 위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몸을 날리고 있었다.
검붉은 옷과 검붉은 띠에 무겁고 단단한 채찍까지. 그들은 다름 아닌 북망채 사람들이었다. 마옥이나 학대통, 손불
이는 그들을 잘 몰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그러나 양만풍은 한번에 보고 깨달아 이를 갈았다. 한마디로 융왕
의 손을 빌어 자신들을 없애겠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저들은 누구냐?"
"북망채도 모르더냐? 북망 채주 융왕과 그의 제자들이다."
학대통이 묻자 당광이 미소한 채로 답했다. 마옥 등 셋은 적지 않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그 융왕이
란 사람을 보고 더욱 놀랐다. 당연히 아까 그 대단한 무공을 보여주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옆에도 역시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던 융정이 있었다.
"당광! 네놈은 이들과 무슨 관계냐?"
학대통이 뭔가를 직감하고 소리친 것이었다. 당광은 숨기지 않았다.
"물론 네 부하들이지. 이들은 내가 전진교에 들어가던 날 부하로 삼은 자들이다."
"뭐라고? 그럼 네놈도 본래는 북망채 도적놈이었구나."
"하하. 내가 당 씨인 걸 너희들도 알지 않느냐. 전대에 웅웅객(雄熊客)을 모른단 말이냐?"
마옥이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쳐 묻는다.
"서… 설마… 그럼 자네가 웅웅객의 후손이란 말인가?"
"그런 셈이지. 바로 이 장법 말이다."
당광이 갑자기 몸을 날려 감총방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한순간 우장을 날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통째로
부서져버렸다. 그 큰 문짝이 반으로 쩍 갈라지며 가운데엔 장인의 모양으로 구멍이 나고야 말았다. 마옥 등은 그의
집안 내력에 놀랐고 무공엔 더욱 놀랐다.
"융왕!"
당광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융왕을 불렀다. 그러자 융왕이 공손히 그에게 허리를 굽힌다.
"이제 네 실력을 보여줘라."
"그럼 지금 전진 오자를 죽이면 되겠군요."
"물론이다. 더불어 감총방, 강호인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진양과 저 꼬맹이 년의 목도 가져와라."
융왕은 씨익 웃으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흑포를 벗어 던졌다.
"어떻게 죽일까요?"
"그거야 네 맘이지. 삶아 죽이든 볶아 죽이든 네 맘대로 해라."
당광이 낄낄거렸다. 그에 따라 당무 등도 함께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헌데 융왕은 뭐가 그리 문제인지 자꾸 주춤거
렸다.
"그래도 제 주인님이신데 반드시 정확히 해야지요.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죽일까요?"
"맘대로 하라지 않느냐. 왜… 설마 저들을 죽일 자신이 없느냐?"
"하하."
융왕이 웃음을 터트린다.
"제가 설마 저들 따위도 못 죽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왜 그리 주춤대느냐. 명령이다 어서 죽여라."
"전진 칠자는 강호에서 명성이 쟁쟁한데 제가 죽였다가 나중에 후환이 있으면 어찌 합니까?"
당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고 숨을 토해냈다.
"이 멍청한 놈아. 여기 있는 놈들은 모조리 죽일 텐데 어떻게 네가 죽였다는 걸 타인들이 안단 말이냐?"
"모조리 죽인다니요? 그럼 주인님도 죽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