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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十 六 章. 절대절명의 위기 (55/90)

                                  第 二 十 六 章. 절대절명의 위기

이로써 당광의 반란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반란을 일으킨 지 채 반나절도 못  버티고 도리어 부하에게 배반을 당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그 누가 짐작했으랴.  진양 일행을 제외하고는 북망채가 당광의  휘하였다는 것도 몰랐다. 

거기에 북망채가 결정적인 순간 반기를 들어  당광을 죽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융왕의 무공까지 포함되었다. 

융왕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당광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묵묵히 바라보더니 문득 

자신의 휘하들을 돌아보았다. 융정, 그리고 그 이하 수십 명의 북망채 무리들. 모두 하나같이 그를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그런 눈빛을 가진다는  보장은 없다. 누가 알 것인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살기를 띤 눈빛으로 변할지. 

한편 진양은 당광이 왠지 불쌍하게 느껴졌다. 듣자하니 전진교를 손아귀에 넣고 천하제일에 오르는 일을 위해 수많

은 노력을 한 듯 싶었는데 이렇게 떠나니 가엽기도 했다. 그러나 인과응보라 생각했다. 지난날 대명사의 휴정이 말

했듯 선행선답, 악행악답인 법이라 생각했다. 좋은 일엔 반드시 좋은 대가가 따르고 악한 일엔 반드시 저런 악한 대

가가 따르는 법이다. 배신을 일삼는 자는 역시 배신으로 말로를 맞이한다. 칼로 흥한 자, 어찌 칼로 안 망하겠는가. 

감총 대전 안은 아직도 정적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융왕이 중앙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히 있었고 그 

주변엔 혈도를 짚인 강호인들, 감총 제자들이 늘어져있었다. 왕령과 당주고, 당유민은 제각각 혈도를 짚이고 부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의 휘하인 전진 도사들이 있었지만 당광이  죽음을 맞이하는 걸 보고 두려움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한쪽으론 용상과 그 제자들이 정좌한 채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그 옆엔 진양 일행 

셋이 융왕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주변엔 북망채의 수십 명 무리가 이리저리 나눠져 단 한 명

도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는 듯 했다. 모두 합치자면 100명은 훨씬 넘을 듯 싶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당광의 허무한 반란과 융왕의 새로운 반란을 알고 있다. 당광이든 융왕이든 둘 다 천하제일

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많이 알면 죽임을 당한다. 융왕은 이제 그들을 죽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은 누워있기만 했는데 이처럼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융왕이 쓰러져있는 강호인들과 감총 제자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융정에게 눈짓하자 북망채 무리들 10여 명이 그 주

변으로 몰려들었다. 칼을 뽑아 모두 죽이려는 심산인 듯 했다. 양만풍이 버럭 고함쳤다. 

"이놈! 여기가 북망산인 줄 아느냐? 아무도 못 죽인다." 

"네 창법이 제법이다만 당광도 못 이기는 주제에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사실은 사실이었다. 분명 양만풍은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도 없다. 이제 

강호인을 비롯하여 감총 제자들까지 수십 명의 목숨이 사라질 터인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꼭 이기는 싸움만 하는 게 아니다. 싸우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너 같은 도적이 뭘 알겠냐마는 강호

인들 사이엔 의리가 있다." 

실제로 강호인들 사이엔 그 정도의 의리가  있진 않았다. 평범한 강호인들이라면 벌써 혼자  살고자 도망치다가 다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양만풍이 말한 건 명목상의 의미였다. 

"흥. 그래서. 그래서 나와 맞서보겠다는 얘기냐?" 

"어디 두고보자!" 

양만풍은 더 주춤거릴 시간이 없었다. 북망채 무리 십여 명은 이미 칼을 뽑아 융왕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

호가 일단 터지면 한순간에 10명이 죽을 것이요, 숨 한번 몰아쉬기도 전에 또 10명이 죽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대

여섯 번만 반복하면 강호인들, 감총 제자들, 그리고 전진 도사들까지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창을 하늘 위로 높이 쳐들었다가 한순간에 융왕의 어깨로 내리찍었다. 그 기세가  자못 대단하여 융왕은 입가에 걸

쳐진 미소를 슬쩍 지워버렸다. 가볍게 좌수를 내밀어 마치  창을 붙잡아버리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 양만풍은 그에 

깜짝 놀랐다. 설마 창을 잡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또 생각해보니 그라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

았다. 안전을 위해 일단 변초하여 방향을 바꿔 그의 허벅지를 향해 찔러들었다. 그러자 융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치며 갑작스레 오른손이 움직였다. 왼손은 그대로 양만풍의  어깨를 잡아버렸고, 오른손이 대신 창을 움켜쥔 

것이다. 찔러오는 창을 잡다니, 이야말로 화살을 잡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

다. 화살은 빠르지만 무겁지가 않아서 힘이 세거나 내공만 제법이면 방향을 포착하여 쉽게 잡을 수 있다. 허나 이런 

창의 경우는 매우 근접한데다 양만풍의 힘도 보통이 아니라서 찔러오는 창의 몸통을 잡기란 대단히 힘들었다. 헌데 

지금 융왕의 표정을 보면 조금도 힘들어하는 표정이 아니지 않는가. 도리어 양만풍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

다. 어깨를 타고 무서운 공력이 가슴속을 공격했고 창은 꿈쩍도 안 했다. 

이대로 있다간 그도 죽고 말 것이다. 양만풍은 내공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서  무시무시한 내공을 가진 융왕을 절대 

당해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진양은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양만풍과 형란 

만큼은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일단 손에 봉이 없으니 빠르게 달려들며 탄지신통을 전개했다. 중지를 퉁기자 양만풍

의 어깨를 잡고있던 융왕이 조금 놀라며 팔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양만풍은  몸을 뒤로 빼며 사력을 다해 양손으

로 창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양이 금새 다가와 유리장쾌로 융왕의 가슴을 공격했다. 융왕은 웃으며 두세 동작  피해주고는 어느 순간 그의 따

귀를 때려버렸다. 짝, 하는 아플 법한  소리가 진양을 멍하게 만들었다. 어질어질하고  뺨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또 융왕의 일 장이 날라 와 그는 황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만풍! 괜찮나?" 

"으음……. 난 괜찮아. 네 얼굴이나 신경 쓰지 그래." 

양만풍은 내상을 조금 입은 듯 안색이 파리했다. 그러면서도 굴하지 않고 진양을 놀리는 폼이 과연 보통 인물은 아

니었다. 융왕이 다시 한 발짝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지. 탄지신통에 대하여 말이지." 

"무슨 수작이냐?" 

진양이 날카롭게 따지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별 거 아니다. 그저 소림72절예 중 하나인 탄지신통을 어떻게 네가 익히고 있느냐 하는 의문일 뿐이다." 

"너 까짓게 알 게 뭐냐. 네 초저망장(超低亡掌)이나 잘 다루어라." 

융왕은 순간 웃음을 뚝 그치며 진양을 가볍게 노려보았다. 진양이 지지 않고 눈을 부라리자 그는 다시 웃음을 흘렸

다. 아까 터트렸던 만족의 웃음과는 다른 조금은 살기에 찬 음습한 웃음이었다. 진양은 그가 다시 공격을 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급히 수식을 취하는데 벌써 그의 일 장이 진양의 앞가슴에 덤비고 있었다. 진양은 일단 몸을 뒤로 날

리며 양손을 이용하여 사량발천근의 묘수를 썼다. 유리장묘로 몸을 뒤로 누이며 양손을 빙글 돌리다가 한순간 위로 

올리니 놀랍게도 융왕의 일 장 방향이 슬쩍 틀어졌다. 진양의 앞가슴을 노리던  일 장이 유리장묘에 맞부딪쳐 하늘

로 솟은 것이다. 

융왕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냈다. 놀랄 수밖에 없다.  탄지신통을 썼을 때도 크게 놀라지 않았던 그인데 이번엔 

제법 놀랐다. 탄지신통은 북망산에서 그가 쓰는 걸 보아  알고 있었지만 사량발천근은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량발천근의 수법은 그도 잘 알지만 진양이 갑작스레 그걸 쓰니 놀란 것이다. 

"본래는 이런 무학도 알고 있었구나." 

그가 알 턱이 없다. 진양은 함종절검법을 잘 쓰지 않아서 사량발천근도 잘 쓰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처럼 여러 방법

으로 응용할 순 있었지만 유루봉법의 효과가 대단하여 굳이 쓸 일이 없었다.  위기가 닥쳐도 탄지신통과 잘 혼합하

여 쓰면 언제든 위기는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때쯤 마옥이 학대통, 손불이를 데리고 융왕  앞으로 다가왔

다. 

"이제 그만하길 바라오." 

마옥은 다짜고짜 그 말부터 했다. 말투는 부드럽지만 담긴 내용은 뻔했다. 융왕도 그걸 알아듣고 대소했다. 

"하하. 그만하지 않는다면?" 

"그만하지 않는다면 사생결단이지 또 뭐가 있느냐." 

마옥이 대답하기도 전에 학대통이 먼저 성질을 부렸다. 융왕은 그들조차도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사생결단이라니. 어차피 너희들은 여기서 전부 죽을 텐데 너 혼자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거냐?" 

"네 이놈이……." 

"잔말말고 이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면 어서 나서봐라." 

융왕의 말은 매우 오만했다. 학대통은 즉각 심사가 뒤틀려버렸다. 크게 일갈하며  검을 그의 어깨로 날렸다. 마옥이 

말리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융왕이 어깨를 틀어 가볍게 피하고 단숨에 완맥부터 움켜쥐려고 하자 학대통은 이

게 일부로 보인 빈틈이란 걸 알고 반격하지 않은 채 팔을  빼냈다. 융왕이 다시 한 발 나서며 일 장을 후려갈겼다. 

학대통이 이에 어찌 그냥 물러설쏘냐. 역시 우장을 힘차게 내밀며 그의 절학인 호둔장법(虎遁掌法)을 펼쳤다. 두 손

바닥이 맞닥뜨리는 순간 학대통은 안색이 금방 벌게지며 뒤로 서너 발짝 물러서고 말았다. 

모두 놀라던 차 융왕은 숨쉴 틈을 주지 않고 곧장 덤벼들었다. 마옥과 손불이가  동시에 그 앞을 막으며 검법을 펼

쳤다. 마옥은 칠성수(七星手)를 알아 전진수검법과 적절히 혼합하여 융왕에 맞섰다.  허나 융왕의 무공은 매우 뛰어

나 마옥은 물론 손불이의 검법까지 손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쌍장을 이용하여 칠성수를 막아내는가 하면 종종 빠르

게 발을 올려 그들의 검도 쳐냈다. 전진 칠자 중 두 명이 맹공을 펼치는데 융왕은 조금도 패색의 기운이 없어 보였

다. 

학대통도 잠시 운기조식 한 후 마옥과  손불이 사이에 끼어 들어 호둔장법을 펼쳤다.  상대하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도 호둔장법과 전진수검법을 잘 혼합하여 융왕에 맞섰다. 세 명이 동시에 공격하자 상황이 동등해지는 것 같았다. 

마옥과 손불이가 덤빌 때는 여유만만하던 융왕도 이젠 정색하고 신중히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갈하며 

쌍장을 번갈아 그들에게 일 장씩 날리자 마옥 등은 그 기세에 눌려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동등하다 싶어도 

워낙 초고성장이 위력적이라 하수에 놓이기를 반복했다. 이러다 보니 반 각도 채 못되어 승부가 갈리는 듯 싶었다. 

더구나 마옥 등은 모두 지친 상황이니 더 그랬다. 당광과 융왕이 한참 대화하고 싸우는 동안 나름대로 운기조식 하

여 몸을 가다듬었어도 그리 쉽게 회복될 체력이 아니었다. 

양만풍은 더 볼 수 없어서 함께 싸우기로 했다. 한순간 뛰어들며 악가창법을  펼치니 짙어졌던 패색이 점점 사라지

는 듯 했다. 양만풍이 덤벼드는데 진양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함께 함종권법으로 융왕을 협공하기 시작

했다. 이리되자 다섯 명이 융왕 하나를 둘러싸고 맹렬히 공격하는 태세가 이루어졌다. 융왕은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

었는데 진양까지 끼어 들자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즉시 쌍장을 전후좌우 사방팔방을 내뻗듯 괴상하게 후리더니 크

게 고함쳤다. 

"하하. 마옥아, 학대통아, 손불이야. 감히 이따위 협공을 펼쳐?" 

마옥 등 전진자 셋은 얼굴을 붉혔다. 학대통이 뭐라고 입을 여는데 진양이 먼저 악을 썼다. 

"이 뒷간 똥 무더기에서 나온 놈아. 냄새나게 주둥아리 놀리지 말아라." 

"이놈이 죽고 싶으냐?" 

융왕은 매섭게 손을 뻗어 마옥 등의 공격을 막고 좌장을 진양에게 연달아 내밀었다. 오른쪽에서 튀어나오나 싶더니 

갑자기 왼쪽에서 날아들고 하여 진양은 금방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냄새나는 놈. 더러워서 못 살겠다." 

진양은 상대할 수 없음을 알고 그를 놀리며 몸을 내뺐다. 그러자 융왕은 분기가 솟는 듯 안색을 시퍼렇게 만들었다. 

진양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마옥 등이 그를 사력을 다해 공격했다. 이리되자 융왕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진양을 잡아

죽이고 싶었지만 검과 장, 수, 창이 난무하니 평수는 유지해도 단숨에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마옥 등 전진자 셋은 힘이 빠져 지금 거의 발악으로 덤비고 있으니  잠시 후엔 거의 늘어져 단 몇 수

로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융정이 도우려 하자 융왕은 고함쳐 말렸다. 혼자서 전부 이겨보겠다는 듯 했다. 융정과 이하 북망채 무리들은 모두 

그의 경천동지할 무공을 알았기 때문에 그 고함을 듣는 즉시 몸을 멈췄다.  융왕이 쌍장을 이리저리 날리며 소리친

다. 

"자 보거라! 여기 정파라고 자칭하며 치사하게도 협공하는 놈들을 내 한순간에 날려버리겠다." 

융왕은 말을 마치며 즉각 우장을 마옥에게로  발출했다. 마옥이 검을 눕혀 그의 손바닥을  찌르고 동시에 학대통이 

그의 팔에 호둔장을 날렸다. 헌데 융왕은 변초하더니 손을 끌어당기다가  갑작스레 팔꿈치를 날려 학대통의 안면을 

갈겨버렸다. 제법 세게 맞아 학대통은 2장 밖으로 퉁겨져 나갔다. 그들 두 명의 공격을 한 수로 피하고 역습하는 걸 

보면 알 듯 과연 융왕은 절정의 고수였다. 손불이가 분노하여 매섭게 그의 다리를 찔렀다. 손불이의 무공은 주로 표

홀하여 허초도 많았다. 융왕은 좀 전 그들과 붙으며 그들의 무공을 전부 꿰뚫고 있었다. 그는 손불이의 공격엔 신경

도 안 쓰고 도리어 일 장을 그녀의 안면에 날렸다. 

그녀는 크게 놀라 급히 검을 빼고 허리를  옆으로 꺾었다. 그와 동시에 양만풍의 창이 융왕의  허리를 찌르자 그는 

창을 한순간에 잡으며 손불이에게로 날렸다. 손불이는  미처 피할 수가 없어 찔릴 위기였으나  마옥이 급하게 창을 

내리찍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모두 융왕이 매우 악랄하다고 생각했다. 양만풍은 마옥이 창을 쳐내서 자세가 흐

트러져있었다. 융왕이 일 장을 날리자 양만풍은 어떻게 피할  생각도 못하고 가슴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 역시 2장 

밖으로 날아갔다. 

마옥과 손불이가 양옆으로 검을 찌르자 융왕은 갑자기 발을 놀려 정면으로 매섭게 돌진했다. 마옥과 손불이가 검이 

빗나갔다는 걸 느꼈을 때 이미 그들 등뒤로는 쌍장이 맞닿아있었다. 등엔 대혈이  많아 잘못하면 즉시 절명할 수도 

있었다. 피하기는 글렀으니 그들은 최대한 크게 공력을 일으켜 등의 대혈 곳곳을 보호했다. 퍼퍽, 소리가 들리며 마

옥과 손불이는 2장 앞으로 날아가 고꾸라지고 말았다. 

융정과 북망채 무리들이 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과연 대단하다며 모두 저마다 칭찬을 하고 있었다. 

"역시 채주님께선 천하제일이십니다. 감히 누가 채주님을 당하겠습니까?"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전진 칠자가 전부 모여 더럽게 협공한다고 해도 채주님은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누가 채주님을 따르겠는가!" 

융왕은 짐짓 부끄러운 채 하면서도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만족으로 가득 찬 웃음이었다. 진양은 그 꼴이 재수 없어 

소리쳤다. 

"융왕 따위가 천하제일이라고? 웃기는 소리는 하지 마라." 

"뭐라고! 그럼 네가 천하제일이냐?" 

한 북망인이 소리치자 진양은 피식 웃었다. 

"똥 속에서 태어난 융 씨 변(便)도 이기지 못하는 내가 무슨 천하제일이냐? 천하제일은 따로 있다." 

북망 무리들이 모두 악독한 눈빛을 발했다. 그가 말마다 융왕을 모욕하자 분노하는 것이었다. 융왕도 분노했다. 

"그래 그 천하제일이 누구냐?" 

"너 같은 똥은 그 함자를 들을 자격도 없다." 

진양이 끝까지 놀리자, 

"오냐! 어디 네가 말하나 안 말하나 두고 보자." 

융왕은 단숨에 진양을 잡은 후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양이 꼭 입만 열면 분통이 터졌다. 말마다 사람 약올리

는 말들이며 하나같이 웃음 터지는 말이었다. 물론 융왕이 듣기에는 분노만 치솟는다. 자신을 똥으로 취급하는데 그 

누가 웃을 수 있겠는가. 

융왕이 달려가 두어 장을 내뿌리자 진양은 황급히 몸을 피했다. 본래 발이 빨라  신법이 뛰어나서 몇 수는 쉽게 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섯 동작 이상이 되면서부터는 도저히 피할 자신이 없었다. 점점 공세가 빨라지고 기세가 험

악한데다 위력도 대단해 맞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갑갑했다. 급한 대로  사량발천근을 이용했으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듯 싶었다. 위력이 점차 강대해지고 너무 빨리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 10여 동작이 지나자 진양은 피하기에만 

바빠졌다. 만일 그가 어렸을 적 대천산에서 그리 놀러 다니지 않았다면 이미 몇 장은 맞아 죽었을 지도 몰랐다. 

형란은 더 볼 수가 없어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쾌묘검법은 본래 대단하지만  그녀의 자질은 평범해서 위력은 발휘

하지 못했다. 다만 진양도 틈이 생겨 조금은 숨을 돌리고 반격도 할 수가 있었다. 융왕이 문득 너털웃음을 터트리더

니 빠른 형란의 검을 피하며 그녀의 검병을 쳐버렸다. 더불어 손까지도 맞아 검을 놓쳐 우물쭈물 하는 사이 융왕이 

그녀의 얼굴에 일 장을 날렸다. 

"넌 그냥 죽는 게 좋겠구나!" 

진양은 소스라치게 놀라 급히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 덕에 겨우 일 장을 피할 수는 있었다. 헌데 새로운 위험

이 닥쳐왔으니 바로 무방비한 진양에게 날아드는 일 장이었다. 형란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세가 흐트러지고 반쯤 등

을 보인 상황이었다. 진양은 허리를 슬쩍 틀어 어깨로 일 장을 받을 생각을 하고 전신 공력을 그리로 집중했다. 형

란에게 공력이 전해지지 않도록 그녀는 세게 밀어버렸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진양은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몸이 붕 떠서 바닥을 한참 뒹굴고는 기침도 연신 

해댔다. 하마터면 폐인이 될 뻔했다. 전신 공력으로 대항해서  그나마 산 거지 아니었으면 단전이 파괴되고 내장이 

모조리 작살나 그 자리에서 숨질 뻔했다. 이렇게 막았는데도 가슴이 매우 아팠고  어깨도 크게 다쳤는지 심히 아팠

다. 

"진대협!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긴 하지만……." 

그는 뒷말을 흐리며 융왕을 쳐다보았다. 융왕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듯 양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히 걸어오고 

있었다. 한순간에 쳐죽일 심산이었다. 형란은 겁에 질려 그를 막지 못하고 단지 진양의 앞을 가로막을 뿐이었다. 몸

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무척이나 안되게 보였다. 융왕이 더 접근하자 용상  뒤에 정좌하고 있던 전효가 몸을 벌

떡 일으켜 달려왔다. 

"넌 또 뭐냐?" 

"이 대협은 지난날 내게 도움을 줬으니 은혜를 갚는 건 도리가 아니겠느냐?" 

"그래서 너도 죽고싶다는 거냐?" 

전효가 눈을 번뜩이며 일 권을 가했다. 기습적인 공격이라  매우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왕은 비소하며 그의 

주먹을 가볍게 붙잡아버렸다. 전효의 무공은 수준이 떨어져서 형란 정도보다야  낫겠지만 진양보다는 떨어졌다. 즉, 

융왕에게 홀로 덤빈다는 건 미친 짓이란 얘기다. 허나 전효는 한 주먹을 붙잡히고도 가만있지 않았다. 도리어 몸을 

붕 띄워서 다른 주먹으로 융왕의 안면을 갈기려했다. 혼연권법을 배운 자라 이미  잡힌 손과 팔은 절대로 구부려지

지가 않았다. 단지 융왕의 손에 매달려 그의 얼굴에 다른 일 권을 때리려는 것이다. 이 동작 역시 처음 동작처럼 빨

라 어지간해선 피할 수가 없을 듯 했다. 

그것에 맞으면 어찌 융왕일까. 융왕은 잡은 전효의 주먹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진작부터 혼연권법에 대해  봐뒀기 

때문에 팔을 절대로 구부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잡았던 주먹을 휙 던지자 자연 전효의 몸도 그에 따라

가 수장 밖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정말 안하무인이군. 감히 감총 대전에서 감총방 제자를 건드려?" 

용상이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한바탕 붙을 모양이다. 융왕은 오히려 크게 웃었다. 

"하하! 너도 덤빌 테면 덤벼라. 어차피 여기에선 내 부하들만 빼곤 모조리 죽일 거니까." 

"건방진 놈……." 

용상도 혼연권법을 펼치며 융왕에게 달려들었다. 아까 붙었을 때 상대가 안됐지만 멍청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여러 

초식을 펼쳐 혼연권법의 모든 정수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날 영웅대회 때 묵산을  상대로 싸울 때보다 더욱 사력

을 다했다. 여기서 그마저 패하면 모두 죽는다는 걸 인식해서 그런 것일까. 

힘을 다해 싸웠지만 역시 융왕은 이기지 못하는 듯 싶었다. 융왕은 그를 마치  가지고 놀 듯 막기만 하고 피하기만 

하더니 슬슬 공격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좌수와 우수가  번갈아 용상의 어깨를 노렸다. 몸이 철저하게 굳어있는 

듯 딱딱한 동작이라 어깨를 망가트리면 혼연권법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융왕은  몇 번을 보고 그걸 깨

달아서 연달아 그의 어깨만 공격했다. 용상이 방어하지만 막을  수가 없다. 워낙 기세가 대단하여 막았다간 팔마저 

통째로 부서질 것 같았다. 그는 심신일도(心身一道)의 수로 결딴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빛이 한번 번쩍할 순간에 펼쳐지듯 용상은 그렇게 심신일도의 초수를 펼쳤다. 말  그대로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는 

길이다. 몸을 붕 띄우며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는 혼연권법의 절초였다. 몸의 무게가 실리기 때문에 그 위력은 대단

하여 묵산과의 대결 때도 쓰지 않았던 초식이었다. 융왕은 그 기세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이전과는 다른 

듯 하여 경시하는 마음을 버리고 신중히 그의 공격을 노려보았다. 용상이 몸을 빙글 돌리더니 한순간 몸을 날려 융

왕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전신이 쫙 펴진 채로 날아와 그대로 받아버릴 자세였다. 다만 우 권이 앞으로 내밀어져

있어 저것만 막으면 될 듯 했다. 

이 동작은 본래 빨라서 보통 사람들은 잘 보기도 힘들었다. 용상은 이 초수를 대성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융왕에겐 통하지 않았다. 빠르지만 이미 그는 포착했고 피한다면 가볍게 피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가 피하지 않고 

더 접근하길 기다리는 건 한순간에 승부를 볼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용상의 주먹이 점차 다가들어 순식간에 융왕의 

가슴에 근접했다. 융왕은 한순간 눈을 부릅떴다. 

"이 따위 권법으로 나를 막으려 한단 말이냐!" 

갑자기 좌장으로 용상의 주먹을 후려쳤다. 주먹과 장이 부딪치면 당연 장이 유리하다. 더구나 내공에서도 융왕이 앞

서고 위력에서도 초고성장은 대단하니 용상이 당해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절초라 해도 단지 빠르게 쳐버려 끝장을 

보는 것이니 어찌 보면 좀 단순한 초수였다. 아무튼 자세에 있어서나 장과 권의 차이에 있어서나 융왕이 고지를 점

령하고 있던 셈이다. 용상은 그가 이리 쉽게 반응할 줄 몰라  입을 쩍 벌렸지만 이미 늦었다. 융왕의 일 장은 그의 

주먹을 받아쳤고 곧 와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용상은 비명을 지르며 몸이 날아가고 말았다. 

"방주님!" 

조용히 앉아서 보고 있던 감총 제자들도 결국 벌떡 일어서며 그에게 달려갔다.  용상은 이미 손목과 팔이 부러져있

었다. 어깨의 뼈가 밀려나갔고 내장도 손상을 입은 듯 했다. 다행히 내공으로 단전을 보호하여 목숨이나 무공에 지

장은 없었지만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로써 융왕에게 대적할 자들은 모두 쓰러지고 만 것이었다. 

"하하! 드디어 내가 모두를 눕혔구나. 이 세상에 감히 누가 내게 적대하느냐?" 

"과연 아버지는 훌륭합니다. 천하제일이에요." 

융정이 달려와 소리쳐 떠들었다. 북망채 무리가 이에 또 어찌 가만히 있으랴. 하나같이 우르르 몰려들어 융왕을 추

켜세웠다. 반 아부요, 반 존경이다. 정말로 반은 존경심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만한 무공을 가진 사람을 어찌 존경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거기에 아부가 빠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건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하는 거니까. 

북망채 무리가 융왕을 천하제일이라 평가하는 걸 보고 진양은 또 심사가 뒤틀렸다.  아까 했듯 모욕을 해주고 싶었

지만 내상을 입어 힘이 없었다. 형란에 기대 몸을 일으키고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융왕이… 천하제일?" 

목소리가 작고 또 북망채 무리의 목소리는 커서 못들을 법도 했다. 그러나 융왕은 공력이 심후하여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모두가 나를 인정한다. 나는 그들이 인정하게 만들었고 나 또한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생각한다. 넌 그렇게 생

각 안 하느냐?" 

"당연하지 똥아. 천하제일은 따로 있단다……." 

융왕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누구냐? 어서 데려와 봐라." 

"그 분은… 어느 순간 연락이 두절됐다." 

"그럼 누군지 그거나 말해봐라. 천하에 나 천하제일 융왕이 그 자에게 대결을 청하면 되겠지." 

융왕은 보통 자신만만한 게 아니었다. 진양이 픽, 하고 웃었다. 

"당 씨 개들의 명령에 따라… 너의 똥 냄새나는 아들이 나와 그 분을 습격했지……." 

그의 말에 융왕이 융정을 돌아보았다. 융정은 뭔 소린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한참 뒤에야 손뼉을 쳤다. 그가 융왕에

게 말했다. 

"진가 놈이 말하는 그란 바로 자존자대 무굉입니다." 

"자존자대 무굉이라!" 

융왕은 그의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자칭하지만 그만큼 실력도 대단하다는 얘길  들었다. 

진양이 기침과 함께 웃는다. 

"그래 바로 자존자대 무굉… 내 의형이다." 

"나도 안다. 그 얘기라면 진작에 당광에게 들었지. 과연……." 

융왕은 곧 앙천대소했다. 

"좋아! 하하. 바로 그 정도라면 나와 대적할 수 있겠군. 그러나 천하제일은 역시 나다. 무굉의 장법이 매우 무섭다는

데 나와 붙어보면 어떨지 궁금한 걸!" 

"초저망장 가지곤… 내 형님의 광표장을 이길 수 없을 거다." 

"흥. 그럼 너는 어떠냐?" 

그의 기세가 또 험악해졌다. 진양이 자꾸 모욕하자 살기  등등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진양은 계속 조롱기를 

담아 힘없이 웃으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냐 그럼 너부터 죽여야겠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고 나중에 소문을 퍼트려서 무굉과 대결을 펼치면 되

겠지." 

"날 죽이거나 내 일행을 죽이면… 넌 내 형님께 더욱 처참하게 죽을 거다." 

"그 자 따위가 뭐라고 나를 죽이느니 살리느니 한단 말이냐!" 

융왕이 갑자기 발로 진양의 턱을 걷어찼다. 진양은 몸이 붕 떠서 뒤로 밀려났다. 형란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일으켜 

세운다. 

"진대협! 괜찮아요? 안 아파요?" 

"헤헤… 안 아파 하나도. 형님이 만일 나를 걷어찼다면 내 턱이 부서졌을 걸." 

진양도 융왕이 발에 힘을 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로 이렇게 말해 그의 분노를 돋구었다. 사실 그를 열 

받게 하여 얻어지는 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대항할 방도가 없고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리니 이런 식으로라도 한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융왕은 진양의 말에 분기충천했다. 

"좋아! 이번엔 어찌 되나 보자." 

"안돼요!" 

형란이 급히 막아섰다. 

"이 년이… 비키지 못해?" 

"절대로 못 비켜요." 

"흥. 어리석은 년……." 

융왕이 일 지를 뻗어 그녀의 눈을 노렸다. 느리지만 그녀에게 있어선 매우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정말 그런 듯 그

녀는 사색이 되어 겨우 피했다. 허나 또 날아온 발에 허리를 차이고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안… 안돼요……." 

형란은 쓰러졌다가 곧장 일어서며 말했다. 목소리가 공허한 게 좀 전 타격이 좀 있었던 듯 싶었다. 옆 허리도 아픈

지 허리를 잡고 신음소리를 내며 털썩 쓰러졌다. 기절한 건 아니되 몸이 잘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진대협을 건드리지 말아요……." 

"그거 참 시끄럽게… 정아. 처리해라." 

그의 말에 융정이 잽싸게 나서며 대답한다. 곧 쓰러진 형란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음흉한 표정을 하고 가는 게 매

우 안 좋은 뜻이 담겨진 듯 싶었다. 형란은 누운 채로 그걸 보고 기겁하여 비명을 질렀다. 

"왜 이리 시끄러워? 빨리 처리해." 

"그럼 저 대청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야겠군요." 

융정은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을 부렸다. 진양이 얼굴이 시퍼래져 소리친다. 

"융정! 죽고 싶으냐?" 

"흥. 죽는 건 넌데 왜 내가 죽는다는 거냐?" 

"이 개놈새끼…… 그녀를 건드리면 사지를 찢어버릴 테다." 

순간 융왕이 다가와 그의 안면을 걷어찼다. 아까보다 위세가 있어 진양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덕분에 세게 

맞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이건 엄청난 모욕이었다. 진양은 상한 자존심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힘이 없는 게 매우 

한스러웠다. 융왕을 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럽고 융정의 사지를 찢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제기랄! 제기랄!" 

"분노할 거 없다. 천하제일의 손에 죽으니 도리어 감사해야 할거다." 

"난 똥에 파묻혀 죽는 재수 없는 운명이었구나!" 

융왕의 일순 눈을 부릅떴다. 

"이놈이 아주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 오냐 죽여주마. 천하제일의 손에! 하하." 

그의 우수가 서서히 들려지고 장내엔 함부로  떠드는 이가 없었다. 예외라면 융정과 형란  정도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이제 진양은 영락없이 죽을 위기라는 걸 모두가 알았고  그 다음으로 자신들도 죽는다는 걸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우연은 존재하고 그것이 필연인 경우도 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진양도 지금 일어나는 일이 우

연인지 필연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안다. 모두를 구제해줄 수 있는 인물이자, 진양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인물이 나타났다는 얘기. 스스로 가장 귀하다 여기고 스스로 가장 큰 인물이다 여기는 남자. 이미 나

이는 많이 먹어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늙은이. 그러나 무공만큼은 정말로 천하에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

하게 센 늙은이……. 그는 수년 간 무슨 고생을 했는지 허연 백발을 날리며 감총방 대청 건물의 옥상에서 고래고래 

악을 썼다. 

"누가 천하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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