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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十 七 章. 일단락, 그리고 갈등 1 (56/90)

                                第 二 十 七 章. 일단락, 그리고 갈등 1

엄청난 고함소리. 저 대청 옥상에서 미친 듯 악을 써대는 인물은 도대체 목구멍에  뭐가 붙어 있는지 아예 듣는 이

의 귀를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가래가 낀 듯 걸걸한 목소리요, 듣고 나니 속도 울렁거려 더욱 해괴하고 무시무시했

다. 고함친지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여전히 감총 대전은 그 목소리에 두려움을 떨 듯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귀가 

윙윙거리고 모두 한결같이 안색이 창백하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궁금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돌아보고는 일부는  얼굴이 딱딱해지고 일부는 

어리둥절해하며 일부는 안색이 환해졌다. 그 자의 모습이란 백발의 노인에  덩치가 산 만하고 얼굴색이 시퍼랬으며 

눈은 호랑이도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 백발을 날리는 걸로 보아  나이는 꽤나 먹었겠는데 허리가 꼬부라지기는

커녕 아예 뒤로 꺾을 듯이 가슴을 내밀고 있었다. 손은 자연히 허리에 맞닿아 있고 한눈에도 저 잘난 맛에 사는 인

물이란 게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진양은 그를 바라보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너무나 보고 싶었고 또 너무  오래되어 은근히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인물. 자신을 위해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요, 절정의 무공으로 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그의 의형이라는 점. 그 노인은 바로 자존자대 무굉이었던 것이다. 

"형님!" 

그의 외침소리에 응답하듯 무굉은 대청 위에서 몸을  휘딱 날렸다. 새가 나는 듯이 훨훨 날아  단숨에 진양 곁으로 

떨어졌다. 일부로 소리를 내서 뭐 하겠다는 건지 발이 땅에 닿을 때 고의적으로 세게 찍어 쿵, 소리가 대전을 또 울

려댔다. 

"하하! 우리 아우 드디어 찾았다." 

"혀… 형님……!" 

"어이구 그래 우리 아우!"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진양에게 무굉은 갓 태어난 애 다루듯 등을 툭툭 쳐주었다. 

"형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대체 어디 계셨었어요." 

"아… 그건 말이다. 음……. 좀 복잡해. 나중에 설명해줄게." 

무굉은 붉게 물든 진양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하더니 곧장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융왕에게 당당히 걸음을 떼어 이

동했다. 그의 정면에 서면서 무굉도 그처럼 어깨를 활짝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며 버럭 고함부터 쳐댔다. 

"네가 천하제일이냐!" 

"넌 또 뭐냐?" 

융왕은 이 자가 무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은 못해 일단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무굉은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뭐라고! 나도 모른다고?" 

"생판 처음 보는 네놈을 내가 어떻게 알라는 거냐?" 

"이놈이 말버릇 좀 보게." 

무굉이 갑자기 그의 따귀를 때렸다. 너무 기습적이라 융왕은 막지도 못하고 얻어맞고 말았다. 볼이 얼얼한 게 아프

지만 무엇보다도 치욕적이었다. 분명 그의 손이 날아오는 건 보였는데 융왕은 손만 쳐들다가 맞고 만 것이다. 융왕

은 대노했다. 

"네놈이 감히 나와 대적하겠다는 거냐?" 

"이 자식이… 얻어맞고도 까불어?" 

무굉이 또 때리려고 손을 휘두르자 이번엔 융왕도 대비를 한 터라 쉽게 피해냈다. 기습적일 때도 막지만 못했을 뿐 

반응은 했으니 지금처럼 미리 대비를 했을 경우는 생각보다 피하기가 쉬웠다. 무굉이  놀란 듯 입을 동그랗게 벌렸

다. 

"얼레. 요놈이 잘도 피하잖아. 놀라운 걸!" 

융왕은 분통이 터져 이 자를 우선 반 죽여놓고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 출수하려는데 그의 말이 들렸다. 

"넌 어느 사문의 제자냐?" 

"너부터 말해라. 넌 누구며 어느 사문의 제자냐?" 

"잠깐잠깐… 내가 먼저 물었으니까 네가 먼저 대답해야지." 

융왕은 그가 무굉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멍청한 소리를 하면서 무공이 센 자는 무굉 뿐일 것이며,  더구나 진양이 

그를 보고 형님이라 불렀으니 무굉이 분명했다. 

"난 네가 안 말해줘도 알고 있다. 너의 이름은 무굉이고 별호는 자존자대지." 

"뭐야. 모른다며 또 어떻게 알았니?" 

무굉은 제법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너처럼 멍청한 놈인 줄 아느냐? 넌 저  진가 놈을 의제로 삼고있고 광표장법으로 유명하며 스스로를  대단히 

높이 쳐 남들이 자존자대라고 하며 비웃지." 

"너…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알고 보니 넌 독심술을 할 줄 아는구나. 하지만 한 가지는 틀렸다. 자존자대라고 하

며 남들이 비웃는 게 아니라 날 존경하는 거야." 

융왕이 대소했다. 

"하하! 누가 너를 존경한다는 거냐? 무공도 별 볼일 없는 주제에 남들이 널 존경한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뭐야? 넌 나한테 한 대 맞았잖아!" 

"흥. 더럽게 기습했으니 맞았지, 그 다음 건 맞지 않았다." 

무굉이 펄펄 날뛰었다. 

"그럼 내가 더럽다는 것이겠다!" 

"그렇지. 넌 더러운 놈이다." 

그의 말에 무굉은 더 참지 못하고 매섭게 일 장을 날렸다. 우장이 맹렬히 돌진하자 사방으로 무슨 광풍이라도 부는 

것 같았다. 융왕은 이런 공격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기에 일단 한 수 피해줄 수 있었다. 무굉이 또 좌장을 휘저어 그

의 안면을 후려치려 했다. 기세가 좀 전만큼 대단하여 일단 맞았다면 머리통이 부수어질 게 분명했다. 융왕은 한 번 

맞서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여 공력을 끌어올리고 초고성장을 펼쳤다.  두 장법이 꽝, 하고 부딪치자 그들 둘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무굉은 한 발짝 뒤로 융왕은 네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융왕은 좀 전 일 장에 8성 공력을 집중했다. 그는 이미 옛날에 초고성장을 10성 대성했고 1년 전에 다시 11성 대성

하여 그 위력이 대단했다. 5성만 써도 이미 웬만한 자들은 다 눕힐 수가 있었고 아까 당광과 싸울 때도 7성만 써서 

그를 쉽게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자는  달랐다. 무굉이라 하여 혹시 몰라 8성까지 끌어올렸는데 그의 

장법 위력이 너무나 대단했다. 그가 대체  몇 성까지 광표장법을 끌어올렸는지는 몰라도 안색을  보니 전력을 다한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안이한 생각으로 8성만 끌어올렸다가  망신을 당하고 또 약간의 내상도 입고 만 셈이었다. 

융왕은 좀 전 일 장으로 벌써 내상을 입은 상황이다. 

무굉은 그의 안색만 보고도 자신이 승리했다는 걸 알았다. 융왕이 겨우 8성 쓴 줄은 모르고 자신이 너무 대단해 그

런 거라며 무작정 기뻐했다. 

"하하. 거봐라. 너도 별 거 아니구나. 난 또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하기에 뭐 대단한 놈인 줄 알았지." 

융왕은 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나 일단 내상을 억누르기 위해 운기조식을 해야했으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다만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무굉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떠들어댔다. 

"역시 천하제일은 나다. 내가 천하제일이니까 남들이 나를 자존자대라 부르며  존경하는 게 아니겠느냐? 넌 나보다 

어리니 한 10년 연마하면 그땐 나를 이길지도 모르겠다. 그때면 나는 팔순이 다될 테고 넌… 넌……." 

그는 한참 말을 잇다가 문득 머리를 긁적이며 융왕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얼굴부터 머리색과 수염, 체격 등을 쭉 훑

어보고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보니 너도 꽤 늙었네. 한 쉰 살은 됐느냐?" 

"흥. 다시 해보자." 

그의 물음에 융왕은 답하지 않고 곧장 몸을 일으켰다. 잠시 내공을 운행하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내상이 

완치된 건 아니어도 무공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어서 무굉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만일 붙으면 단숨에 

11성까지 끌어올려 한 수로 끝내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무굉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놈아. 무림의 선배에게 한 수 배웠으면 감사를 해야지 주제에 또 뭘 덤비겠다고." 

"닥쳐라! 내가 8성까지만 끌어올려서 그렇지 10성까지 끌어올렸으면 넌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거다." 

"오오. 그게 8성이란 말이야?" 

융왕은 무굉이 사실 감탄하고 있는 거라 짐작하곤 입가에 미미한 조소를 머금었다.  헌데 무굉의 다음 말은 정수리

까지 오른 불길에 장작을 처넣는 소리였다. 

"난 그게 10성은 되는 줄 알았지." 

"뭐라고? 네놈이 날 무시하는 것이렷다!" 

"그래 난 누구든 무시할 수 있단다. 나는 천하제일 자존자대잖니." 

융왕이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이… 그래 넌 북망채 채주 융왕의 명성을 들어보았느냐?" 

"아… 그 도적놈 악명은 몇 번 들었지." 

무굉은 실제로 융왕이란 이름을 몇 번 들었다. 그래서 들어보았느냐고 묻기에 사실대로 솔직하게 알려준 건데, 융왕

은 그걸 모욕하는 걸로 오인했다.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이 융왕임을 알  턱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도적놈의 악명이라 

말하니 분통이 터졌다. 

"좋아 이 오만한 작자야. 내가 바로 그 도적놈이다." 

"네가 융왕이란 말이냐?" 

무굉은 놀라하며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도적놈치곤 무공이 세구나." 

"오냐 어디 한번 도적놈한테 죽어보거라." 

"나 말이냐?" 

"그럼 너 말고 여기 누가 있다는 거냐!" 

융왕은 호통치며 맹렬히 전도직로(前導直路)의 수로 무굉을 공격했다. 오른발을 뒤로 빼고 왼발을 앞으로 두어 허리

를 돌리며 함께 우장을 내미는 간단한 공격이었지만, 그 위력 하나만큼은 매우 대단했다. 하물며 융왕의  내공은 대

단하니 이번에 10성 공력까지 끌어올린다면 무굉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무굉은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무작정 맞섰다. 무굉은 융왕보다도 지극히 양적인 무공류라 오로지 실이요, 오로지 맞

대응이었다. 광표장법이란 이름만 봐도 알 듯 미친 표범이 발광하는 자세가 바로 이 장법의 기초이지 않는가. 그러

나 그가 멍청하긴 해도 무학에 있어선 지식이 남달랐다. 경험도 많고 실력도 대단하여 융왕의 일 장이 아까 하고는 

크게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정색하며 즉각 공력을 크게 돋구었다. 

두 장이 또 부딪치자 아까보다 심한 진동이 들렸다. 꼭 호랑이가 우는 소리 같고 천둥치는 소리처럼 살벌했다. 헌데 

상황은 좀 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무굉이 그처럼 공력을 더 끌어올린 탓인지 무굉은 단 두 발짝 물러서고 융

왕은 세 발짝 물러섰던 것이다. 이 뒷걸음질친다는 건 힘이 아니라 내공과  장법에서 밀렸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몇 

발짝 물러서느냐, 또는 자세가 얼마나 무너졌느냐에 따라 서로의 고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번에

도 융왕이 한 수 진 것이다. 아까 만큼의 내상은 없었으나 역시 가슴이  갑갑해지고 얼굴이 벌게지는 걸 융왕 스스

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된다. 10성까지 끌어올렸는데 밀리다니 그럼  저 무가 놈은 대체 얼마만큼 공력을 운행

했단 얘긴가? 아니… 설마 내가 그보다 약하다는 얘기란 말인가?) 

융왕은 인정할 수가 없어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걸 본 융정은 그가 어지러워한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달려와 그의 

어깨를 붙잡아주었다. 형란은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어떠냐. 넌 내 상대가 안 된다니까." 

무굉이 말하자 이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굉이든 융왕이든 몇  성 공력을 운행했건 어쨌든 융왕

은 밀렸다. 사실 10성 공력이라면 그 무공을 대성한 것이고 11, 12성의 경우는 그보다 더 대성한 경우를 말한다. 모

두들 융왕이 10성 공력을 운행했다는 건 몰라도 거의 힘을 다했다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모두가 무공을 하는 강호

인이라 표정만 봐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융왕 자신도 무굉과 싸워선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무굉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 자존자대라고 하며 무공이 

매우 대단하다 하기에 제법 괜찮은 수준인 줄 알았건만 실제론 정말로 대단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늦

었다. 첫 수부터 한 방 먹고 내상을 입었으니 벌써 그때부터 싸움은 끝이 난 거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융왕은 실

력이 부족해서 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아! 좋아! 정말 자존자대란 대단하군." 

"그래 이제 알았구나. 너도 제법이니까 오늘은 봐주마." 

융왕은 대노했으나 그가 만일 봐주지 않는다면  여기서 목숨을 잃게될 상황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자신이 

천하제일이 아니라는 것엔 역시 인정하지 못했다. 

"오늘 내가 패한 건 너와의 처음 일 장 대결에서 너무 안이한 생각으로 공력을 적게 운행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내

상을 회복하고 다시 붙는다면 죽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아… 사실은 그랬구나. 좋다 그럼 다음에 또 붙자." 

그렇게 대답하던 무굉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언제 붙지?" 

"치료는 보름 정도 해야할 듯 싶으니 한 달 뒤에 북망산으로 찾아와라." 

융왕의 명쾌한 대답에 무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제 다 끝이 났으니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휙휙 저었다. 

융정이 머뭇거리자 융왕은 그에게 눈짓을 주며 무굉을 향해 말하였다. 

"미리 말하는데, 만일 한 달 전에 온다면 넌 천하의 비겁자가 될 것이고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면 넌 천하의 

겁쟁이가 될 것이다." 

"뭐라고? 왜 그렇다는 거냐?" 

융왕은 미리 이걸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무굉에게 확답을 들어야 안심할 수 있다. 한 달 전에 무굉이 온다

면 그는 막 회복이 된 상태라 감을 잡지 못해 패할 것이고, 한 달이  넘어도 오지 않는다면 무굉과 그의 싸움이 무

굉의 승리로 끝났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굉에게 그 사실을 일일이 설명해주자 무굉은 하하 웃었다. 

"이 어린놈아. 감히 자존자대 무굉을 뭐로 보느냐? 그런 짓들은 절대로 안 한다!" 

"좋다 내 자존자대를 믿어보지." 

융왕은 제법 호연한 기세를 보였다. 이에 무굉이 어찌 질랴. 그도 가슴을 쫙쫙  펴며 온갖 호기를 선보였다. 융왕은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곧 융정에게 뭐라고 하며 먼저 앞서 나섰다. 

북망 제자들은 감총 대전을 모조리 덮고 있다가 융정이 한번 손짓하자 일순간에 모여들었다. 융왕과 융정의 옆으로 

잘 나열하는 게 과연 단련이 잘된 것 같았다. 융왕이 한쪽에 쓰러져있던  당주고와 왕령, 당유민, 전진 제자들을 보

곤 무굉에게 말했다. 

"이들은 당광과 연관이 깊은 자들로 네가 오기 전에 모두를 괴롭혔다. 물론 네 의제 진양도 괴롭혔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 당광이 놈은 어디 있어!" 

무굉은 진양을 괴롭혔다는 말에 금방 살기등등해진다. 융왕도 그걸  미리 짐작하고 한 말이었다. 그는 낮게 웃더니 

그동안의 정황을 짧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곤 슬슬 할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들은 모두 내가 데려가겠다.  모두 전진교를 뒤엎으려 했던 자들이니  내버려둬야 무림에 해만 

갈 것이고, 언제 또 진양을 괴롭힐지 모른다." 

"맞아 정말로 그럴 수가 있겠군. 그렇다면 네가 데려가도 상관없겠다." 

그는 그 말을 듣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편 진양은 이 모든 걸 보고 있었다. 척 보아도 벌써 왕령  등을 반드

시 데려가려는 수작이 엿보인다. 무굉은 모르고 있겠지만 분명 융왕은 무슨 모계가 있는 것 같았다. 슬쩍 마옥 등을 

바라보니 그들은 몸의 상처가 심해 함부로 융왕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마옥이  입을 열려고 노력했으나 역시 무리

인 듯 싶다. 진양은 융왕이 왕령을 데려가면 필시 해가 있으리라 생각하곤 그를 막았다. 

"수작 부리지 말아라. 령아는 데려갈 수 없다." 

융왕은 이것도 짐작했었는지 그가 막는데도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네 의형이 허락했는데 왜 의제가 거부한단 말이냐? 설마 동생이 감히 형에게 반기를 든다는 거냐?" 

"흥. 이간질하지 마라. 형님은 전후사정을 명확하게 모르고 너란 놈을 잘 알지 못하니 그런 것이지. 이곳에 있는 다

른 자들은 모두 네가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다." 

"억지다!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진양은 더 따져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발뺌한다면 도리가 없지. 네가 그들을 데려가는 이유가 뭐였지?" 

융왕이 막 그 말에 대답하려다가 뭘 깨달았는지 퍼뜩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진양은 조롱이 가득 찬 조소를 띄

웠다. 

"그 이유는 바로 나를 괴롭히거나 또는 무림에 해가  되기 때문이라 했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가둬두마.  아무리 

뭐라 해도 역시 도적 손보단 평민 손에 갇혀있는 게 더 확실하지 않겠느냐?" 

"흥. 너야말로 무슨 수작이냐? 난 순수한 마음에서 그들을 잡아두겠다 한 건데 그런 모함을 하고 도리어 네가 가둬

두려 하니 무슨 수작이 있는 게 틀림없다." 

진양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도 나서 길게 탄식했다. 융왕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알아차리니 안타까운가 보군." 

"무슨 개소리냐? 한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그 똥내 나는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 

"그래 넌 부상자를 공격하겠다는 말이냐?" 

그의 말에 진양은 분통이 터졌다. 하나 하나 말 같지도 않은 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했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 목을 

날려버리고 싶지만 이미 무굉과 그가 약속을 잡은 터라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또 북망 제자들도 움직일 테니 무굉

이 있더라도 좀 위험할 것이다. 그는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왕령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혈이 짚여 진양에게 시선

만 보내고 있었다. 몸의 혈도 짚였으니 손짓 발짓도 못한다. 그러나 혈도라 해도 어찌 눈빛까지 사로잡겠는가. 

그녀의 눈은 역시 슬퍼 보였다. 할말이 태산같이 많은 듯 눈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진양은 그 말이 뭔가 듣고 싶

었다. 무슨 말을 한다거나 어쩌면 좋은 계책이 있을지도 몰랐다. 

"융왕. 령아의 혈도를 풀어줘라." 

"흥. 그걸 풀어서 뭘 어떻게 하라고." 

"겁내는 거냐? 그녀 정도는 쉽게 또 제압할 수 있을 텐데 뭐가 두렵지?" 

진양은 아까 그가 하던 식으로 반격했다. 당하고 나니 융왕도 어이가 없었다. 그는 진양의 심정을 알고 낮게 웃으며 

왕령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하기야 분명 그녀가 날뛴다 해도 다시 잡을 힘은 충분히 남아있었다. 

왕령은 혈도가 풀리는 순간 진양에게서 시선을 떼어버렸다. 줄곧 그녀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혈도가 풀릴 땐 입만을 

바라보며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고대했는데, 그녀는  매정하게도 혈도가 풀리자마자 고개까지 돌려버렸다. 더불어 

몸도 돌리고 그 돌린 방향엔 당주고가 엎어져있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이거 좀 먹어봐요." 

그녀가 옷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단약이 하나 나오는데 운기요상 때 쓰이는 약 같았다. 당주고는 그걸 한 

입에 삼키고 즉각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왕령은 당유민에게까지 달려가 혈도를 풀어주었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옆을 지나다 진양에게 도착한 후 짤막하게 멈추었다. 진양은 지금 좀 화가 난 상태였다. 아무리 

당주고가 좋다지만 도움을 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으니 왠지 기분이 상했다.  이전 만한 분노는 아니어도 섭섭

한 감은 있었다. 그녀의 눈과 마주치자 진양은 마치 어서 인사라도 하라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도 그 눈빛에 

사로잡힌 듯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잠시를 못 버텼다. 금방 시선을 돌리고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라는 듯 진양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걸 지켜보던 융정이 킥킥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진양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점점 화가 치밀어 가는 상태라 

남들이 비웃건 욕을 하건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단지 황당한 표정으로 왕령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주고가 조식을 

다 끝냈는지 몸을 일으켰다. 

"령아 정말 고마워. 명약 덕에 금새 몸을 회복할 수 있었어." 

"아니에요. 전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당주고의 말에 왕령이 대답한 것이었다. 진양은 순간 불똥이 눈에서 튀었다. 

(빌어먹을… 내가 저런 꼴이나 보자고 융왕과 언쟁을 벌였단 말인가? 이젠 그녀가 나를 좋아하든  당주고를 좋아하

든 상관없지만 이건 정말 해도 너무 하는구나. 좋다 어디 잘먹고 잘살아 보아라.) 

그는 기어코 앙심을 품고 말았다. 이전과는 다른, 질투심이 아닌 섭섭함. 그리고 섭섭함이 분노로 변하고 또 앙심으

로 변한 셈이다. 그는 융왕을 보며 말했다. 

"됐다. 네 맘대로 해라. 나는 신경 쓰지 않겠다." 

그의 말에 융왕은 눈웃음을 지었다. 아마 가가대소라도 하고  싶겠지만 참으며 겨우 눈웃음만 보내는 게 분명했다. 

그의 말은 왕령 등도 들었다. 왕령의 눈빛이 그제야 변하며 진양을 황급히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젠 진양이 몸을 돌

려버린 상태였다. 아까 그녀가 진양을 외면했듯 진양도 이제 그녀를 외면하고 있었다. 

"야… 양아……." 

그녀도 스스로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는 듯 그에게 부탁하기 무안한 것 같았다. 예전 같았다면 그녀의 부름에 진양

은 즉각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헌데 이번에는 달랐다. 분명 그 부름을 들은 듯 한데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아예 무

굉에게 가서 말까지 걸고 있었다. 융왕은 대세를 보며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너희도 똑똑히 들었듯이 진양은 너희를 맘대로 하라고 했다.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으니 방해하는 일도 없을 거다. 

자… 이제 따라 나서시지." 

"닥쳐라! 누가 너를 따라나선단 말이냐?" 

당주고가 분을 표출했다. 융왕은 싸늘하게 웃으며 조금은 빠르게 그들에게 걸어갔다. 당주고가 왕령과 동시에  뒤로 

살짝 물러선다. 당유민도 뒤에 있다가 그들과 나란히 섰다. 

"뛰어봐야 벼룩이다. 너희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으냐?" 

"장담은 못한다!" 

"장담을 왜 못해? 보여줄까?" 

순간 융왕의 몸이 번쩍였다. 미풍이 얼굴에  맞닿는다 싶었는데 어느새 융왕의 거대한 덩치는  당주고 등의 면전에 

도달해있었다. 실로 대단한 움직임이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저 정도라니 아까 그들과 싸울 때 보였던 실력은 역시 

전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굉과 대결할 때 딱 한번만 빼곤 전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게 확실했다. 

당주고 등 셋은 소스라치게 놀라 각자 그 자리에서 공격을 펼쳤다. 너무 급한  대로 펼친 공격이라 셋의 공격이 전

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융왕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당유민의 혈도를 짚고 날아오는 두 주먹을 피한 후에 또 왕령

의 혈도까지 짚어버렸다. 당주고가 놀라 몸을 뒤로 빼는데 이미 융왕의 큰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은 뒤였다. 살짝 힘

을 가하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팔 어깨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오라버니!" 

왕령과 당유민이 놀라 부르짖었다. 당주고는 이미 고통에 몸을 떨며 엎어진 상황이었다. 당광이 다가가 그의 혈도도 

짚었다. 제자들에게 손짓하자 북망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들 셋을 일으켜 끌고 갈 태세를 취했다. 

"너희는 어쩔 테냐? 나를 따라가겠느냐 아니면 팔이 부러지고야 따라가겠느냐." 

융왕이 한쪽에 몰려 눈치만 보고 있는 전진 도사들에게 한  말이었다. 그의 말에 그들은 모두 몸을 떨었다. 지금껏 

그가 보인 무공을 보아서 전혀 대적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끌려갈 텐데 뭐 하러 반항을 하겠는가. 그

들은 그렇게 생각하곤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하하. 좋아. 그럼 그냥 따라와라. 이젠 방해할 사람도  없을 테지. 모두가 찬동하는 듯 하고 진양과 무굉도  반대할 

뜻이 없다고 했으니까 뭐. 하하하!" 

융왕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자 기쁨에 크게 웃었다. 진양의 몸이 움찔하는 듯 싶으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융왕은 잠시 사방을 훑어본 후에, 전진 도사들과 당주고, 당유민,  왕령을 데리고 감총 대전을 떠났다. 나가

기 전 진양을 향해 조소를 날렸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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