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 十 八 章. 북망귀곡진(北邙鬼哭陣) 1
난주에서 북망산이라면 조금 먼 거리였다. 다시금 힘든 노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저번만큼 힘들지는 않았
다. 저번엔 전진교와 북망채 무리에 쫓기고 있을 때였고, 지금은 당당히 북망채로 쳐들어가는 길이니 그러했다. 더
구나 자존자대 무굉도 있으니 두려울 것도 없지 않는가. 진양은 무굉을 대단히 신임하여 그 만 있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자신의 무공이 낮은 것에 대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어느새 동지섣달로 매서운 한풍이 휘몰아칠 겨울이었다. 가는 길엔 다행히도 고지대가 없어서 나쁘진 않았다. 양만
풍이 빠져 길을 잘 몰라 지나가는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행로를 이어가야만 했다. 아는 길이라면 함곡을 지나는 정
도. 그러나 그쪽으로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날씨도 추운데 굳이 그리로 지나려한다면 그건 반드시 미친 작자
일 것이다.
말을 타고 추위를 이겨내듯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자 한 달이 거의 다돼서야 하남 지방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때
부턴 속력을 냈다. 지금쯤이면 융왕의 몸이 완전히 회복됐을 거라며 무굉이 난리법석을 부렸던 것이다. 늦으면 겁쟁
이가 될 테니 한시바삐 가야한다고 저 혼자 말에 채찍질했다.
몇 일 달리니 금새 북망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연 죽음의 산은 죽음의 산. 이전에 왔을 때보다 더욱 황량하게 느
껴지고 초라하며 어둡고 음침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마 겨울이라 그런가보다. 무굉도 북망산은 처음이었다. 어디 있
다는 것만 알았지 실제로 와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도 제법 놀란 것 같았다. 산인지 황야인지 모를 모
습에 한동안 멍한 작태로 산을 둘러보았다.
진양과 형란이 길을 알고 있어 오르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높지 않은 산이고 길 역시 대단히 험한 게 아니
라 힘들지도 않았다. 단지 어디선가 안 좋은 기색이 느껴졌다는 것 정도다. 진양은 오르면서 필시 북망채가 알아채
고 기습을 할거라 생각했다. 문득 무굉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형님. 왠지 누군가 기습할 것 같지 않나요?"
"딱 그렇지! 뭔가 냄새가 나는 걸?"
진양이 그리 짐작한 건 머리가 좋아 가능성을 따진 것이라 할 수 있고, 무굉의 경우는 절정 고수의 경험 정도라 할
수 있다. 고수는 귀가 밝고 작은 것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느낌 반, 능력 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소리예요? 기습이라뇨?"
형란의 물음이었다. 무굉은 실소하며 대답했다.
"왜 이리 멍청하니. 무슨 느낌 안 오냐?"
"무슨 느낌이요? 전 아무것도 못 느끼겠는데……."
"이 바보야! 그… 그… 하여튼 무슨 느낌이 오잖아! 누군가 공격할 것 같은 느낌."
형란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하기야 그녀처럼 내공도 별 볼일 없는 자가 알아차릴 리 없었다. 진양
은 머리라도 있지 형란에겐 그것마저도 없다. 무굉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며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화
술이 뒤떨어져 한참이 지나서야 형란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진양은 그들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나 재밌어 단지 지
켜볼 뿐이었다.
"아! 그렇군요. 저도 이제 알았어요. 전 그게 그냥 북망산에서 느껴지는 귀기인 줄만 알았지요."
"그래 넌 경험도 적은 거 같고 무공도 약한 듯 하니 그럴 수도 있지 뭐.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걸 배우는구
나."
무굉의 오만한 말에도 형란은 뭐가 좋은지 씨익 미소만 지었다. 정말로 좋은 걸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양
은 웃겨 배가 다 터질 지경이었으나 이를 부서지도록 물어 참아냈다. 더욱이 지금은 웃고 나자빠질 상황도 아니다.
북망산에서 벌어질 일대 전투며 지금 이 음침한 기운은 꼭 북망산 자체에서 풍기는 기운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진양 일행이 채 몇 걸음도 못 가서 수십 명이 터트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한 스무 명은 되는 듯 싶었다. 진양은 잘 몰랐는데 무굉이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 재수 없게 숨어서 웃음만 터트리느냐! 얼른 나와!"
"하하하하!"
무굉이 고함쳤지만 웃음소리만 더 커질 뿐이다. 형란은 벌써 기겁을 하여 진양 옆에 찰싹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무
굉이 몇 번 더 고함친다.
"이 망할 것들아! 얼른 나오지 못해? 안 그러면 북망산이고 뭐고 확 뒤엎어버릴 테다."
"하하하하!"
"제기랄. 안 나와? 그럼 내가 간다!"
"하하하하하!"
"북망산 귀신 놈들아! 내가 땅속에 묻어주마."
"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는 완전 북망산을 메워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이쪽 저쪽에서 하하 웃는 소리만 들리고 자꾸 그 소리만 듣
다보니 정말 귀신들 웃음소리 같았다. 그러나 무굉은 겁도 안 나는 듯 한순간 고함치며 몸을 날렸다. 마침 주변엔
언덕들이 자리잡아서 그 뒤에 숨어서 웃는 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막 몸을 날리자 마치 그에 반응하듯 웃음소리가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곤 언덕 뒤에서 다시 수십 개의 채
찍들이 튀어나온다. 하나같이 빠르고 기습적이라 무굉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공이 뛰어나 백타권으로 전부
쳐내긴 했지만 채찍이 어찌나 단단한지 손등이나 손바닥이 빨개지고 말았다. 한 대도 안 맞은 얼굴도 붉게 달아올
랐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누구냐! 어서 정체를 드러내라."
"형님. 알아볼 것도 없습니다. 똥 무더기에서 나온 벌레들이 아니겠습니까?"
진양이 문득 끼어 들며 내뱉은 말이었다. 물론 무굉이 알아들을 리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 똥 무더기에서 나온 벌레들이 어떻게 사람처럼 웃어?"
"그들은 사람들이 아니라 벌레거든요. 그런데 사람의 탈을 뒤집어써서 사람처럼 하고 다닙니다."
"뭐라? 그게 정말이냐? 그것 참 놀랍군!"
"그렇죠. 참으로 놀랍지요."
진양의 말 음색은 굴곡이 매우 심해 명백히 비꼬는 말투였다. 언덕 뒤에 있던 자들은 그걸 알아채서인지 이곳저곳
에서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냐 이 개자식아. 네 까짓 게 감히 나를 벌레 취급해?"
"그렇지 벌레 녀석아. 네 주식은 똥이고 간식도 똥이며 물 대신 오줌을 받아먹지 않느냐?"
"이 개놈새끼!"
"똥 벌레 주제에 사람보고 개라네. 내참 우스워서……."
언덕 뒤에서 들리는 음성은 매우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진양은 그걸 듣지 않고도 대강 짐작했는데 마침 목소리가
들려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형란과 무굉도 한동안은 알지 못하다 조금 후에야 뭔가를 보고 무릎을 쳤다. 언덕
위로 어느 순간 스무 명을 좀 넘는 남자들이 우뚝 서버린 것이다. 그 중 한 명은 융왕의 외아들 융정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시퍼래서 대단히 분노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융정은 그 상태가 다른 자들보다 더욱 심했다.
진양의 말솜씨는 과연 천하제일이라 융정쯤 분노케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굵은 채찍을 들고 당장이
라도 내던질 기세로 진양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포위 당한 건 아니지만 앞과 양옆 언덕 위로 스무 명 정도의 북
망채 무리가 나타나니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무굉은 손이 따가워 찬 물에 담그고 싶은 지경이었으나 체면이 있어 억지로 꾹 참고 입을 열었다.
"이놈아. 그 융왕 도적놈은 어디 있느냐. 겁먹은 게 아니라면 어서 나와보라고 해라."
"뭘 나오라는 것이냐? 한 달째이긴 해도 네가 직접 찾아오기로 했지 아버지께서 찾아가기로 하진 않았다."
융정의 궤변에 무굉은 깜박 속고 말았다. 무굉은 알았다고 대답하며 곧장 걸어나가려고 했다. 진양이 놀라 그를 붙
잡는다.
"아니 왜 잡아?"
"형님. 저희는 절대로 빨리 갈 수 없어요."
"뭐라? 어째서?"
"저 벌레들이 막을 테니까요."
진양은 검지를 융정 등에게로 향했다. 무굉이 쌍심지를 켰다.
"뭐라고! 저 까짓 놈들이 감히 나를 막아?"
"시간 벌려는 수작이겠죠. 그렇게 해서 형님을 제 시간에 못 오도록 해서 겁쟁이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융정이 궤변을 했다면 진양도 마찬가지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융정의 궤변은 단지 없었던 일을 진실로 바꾸는
정도의 역할을 했지만, 진양의 궤변은 무굉의 분노를 사게 만들었다.
"이놈들아! 네놈들은 감히 나를 막을 것이냐?"
무굉은 단단히 분노한 듯 땅에 발을 찍으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과연 목소리 하나는 대단히 커서 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북망산을 떨게 만들었다. 융정도 안색이 살짝 변해서는 뒤로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한마디만 하마. 아버지를 만나고 싶으면 반드시 이 진법을 뚫어야한다."
"무슨 진법!"
무굉의 고함에 융정은 북망채 무리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20여 명의 북망인들이 제각기 몸을 날려 어떠한 진을
이루기 시작했다. 좌측으로 8명이 나열하고 우측엔 7명이 나열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5명이 둥그렇게 몰려 척 보
기에도 단양이십사진과 흡사해 보였다. 진양은 필시 당광이 진의 요체를 융왕에게 알려줘 융왕이 새롭게 만든 진이
리라 생각할 수 있었다.
무굉은 단지 그 진이 단양이십사진과 비슷하다는 것만 알아 매우 요상하게 여겼다.
"너희 진은 단양이십사진과 매우 비슷하구나. 너희들 훔쳐 배웠지."
"흥. 우리가 네놈 같은 줄 아느냐? 어디 이건 북망귀곡진으로 우리 북망채의 절기다."
무굉은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치는지 눈을 반짝이며 싸우
고 싶은 티를 낸다. 진양이 말했다.
"형님. 단양이십사진과 비슷하니 두려울 게 없겠습니다."
"암! 두려울 거 없지. 비슷하든 안 비슷하든 그 어떤 것도 나를 이기진 못해."
무굉이 대답하자 융정이 아니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럼 어디 해보자."
융정은 북망귀곡진 가운데 5명 중 가장 정면으로 나와있었다. 그가 한 발을 구르고 채찍을 살짝 흔들자 마치 약속
이나 한 듯 북망인들은 다 채찍을 흔들어댔다. 땅에 부딪쳐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황량한 북망산을 가득 메웠다.
진양은 선공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봉을 휘둘러 단숨에 달려들었다. 이어 무굉과 형란도 가만있지 않고 덤벼든다. 진
양은 융정을 목표로 달려들었는데 과연 좌우의 15명이 채찍을 날려 진양의 온몸을 후려갈기려 했다. 진양은 이미
짐작한 터고 유루봉법을 믿어 걱정하지도 않았기에 가볍게 봉을 돌려 채찍을 모조리 훑어냈다. 다시 신법을 펼쳐
일단 좌측으로 돌진했다.
무굉은 그 틈을 이용해 융정에게로 달려갔다. 좌측의 8명은 그 순간 4명씩 나누어 진양과 무굉에게 각자 채찍을 후
리기 시작했다. 우측도 가만있지 않았으나 형란이 달려들자 3명은 그녀를 막고 4명은 무굉을 때리기 시작했다. 정면
도 어찌 그냥 있으랴. 융정만 아무 짓 하지 않았고 남은 4명은 모두 무굉을 공격했다. 그야말로 난장판 같았다.
채찍은 하나같이 고룡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단단하기 짝이 없었다. 진양은 유루봉법 덕에 한 대도 안 맞고 열심히
대적할 수 있었지만 무굉이나 형란은 조금 달랐다. 그래도 무굉이라면 무공이 뛰어나니 쉽게 피하고 백타권으로 쳐
낼 수 있었는데 형란만큼은 정말로 위험했다. 본래 형가의 쾌묘검법은 매우 빠르고 예리해서 그 속도 하나만큼은
천하에 대적할 검법이 없다고 하는 유명한 쾌검이다. 만일 형란이 아니라 형웅강이었다면 저 날아드는 채찍의 옆구
리를 빠르고 짤막하게 그어내려 채찍의 위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란은 모두가 알다시피
무공이 변변치 못했다. 천성도 그렇고 자질도 그러해서 쾌묘검법을 조금밖에 못 익힌 그녀는 단숨에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무굉은 형란이 위기에 처하자 방관하지 않고 그녀 곁으로 몸을 날렸다. 이러자 좌측에 있던 북망인들은 무굉을 공
격할 수 없어 자연 그 패가 좌우로 갈리고 말았다. 무굉은 형란의 머리며 몸통으로 날아드는 채찍을 백타권으로 모
조리 쳐내고 크게 일 장을 휘둘러 우측 북망인에게 날렸다. 바로 광표장법인 것이다.
"이놈들아! 어디 이거 막아봐라."
광표장법의 위력은 천하에 모르는 이가 없고 난주에서 본 사람들은 더욱 잘 안다. 하물며 북망인들이랴. 우측에서
무굉과 가까이 붙어있던 북망인 셋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뒤로 내뺐다. 무굉은 이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이
물러서는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달려들어 쌍장으로 두 명의 가슴을 후려갈겼다. 제 딴엔 제법 힘을 뺀 듯 싶지만
그 위력은 백호도 내장이 터져 죽을 위력이다. 북망인 둘은 내공으로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내장이 크게
상하고 전중이 망가져 허무하게도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들 둘이 나자빠지자 진세가 크게 허물어졌다. 마치 저울대 양쪽에 같은 무게의 돌을 올려놓았다가 한쪽의 돌을
몇 개 빼냈을 때처럼 진세 모습이 왠지 진양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측은 본래 인원
도 좌측보다 한 명이 적은데 그 중 두 명이나 쓰려졌으니 무게가 좌측으로 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형란
은 남은 한 명에게 돌진해서 쾌묘검법을 펼쳤다.
무굉은 형란이 이제 버틸 수 있겠지, 하며 융정에게로 덤벼들었다. 융정은 이 광경들을 모두 보고 있었다. 과연 무
굉이며, 광표장법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무굉이 비호처럼 날아오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곁
에 있던 북망인을 밀어내 무굉과 맞서게 하고 좌측에도 신호를 보내 무굉의 진로를 저지하게 만들었다. 유루봉법으
로 시간을 벌던 진양은 무굉이 융정에게 달려드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봉으로 날아오는
채찍을 감고 지난번 융정을 혼내줬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헌데 이번엔 이전처럼 쉽지가 않았다. 어쨌든 수가 한 명이 아니니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진양의 유루
봉법은 더구나 방어를 위한 무공이어서 상대가 여럿일 때든 한 명일 때든 방어가 대단하지 절대로 공초(攻招)가 대
단한 건 아니었다. 여러 번 진양이 유루봉법을 상대를 제압했던 건 상황이 좋았다는 얘기다. 진양도 이를 모르진 않
아 그다지 놀라하거나 답답해하진 않았다. 채찍이 견정으로 날아들면 봉으로 때려 채찍을 감아버리고 다른 채찍이
날아들면 그 또한 감아버린다.
이렇게 되자 결국엔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진양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덕인지 상대가 적어도 4명은 된다는 걸
깜박했던 것이다. 채찍이 날아오는 걸 보며 계속 융정과의 싸움만 생각하여 그들 4명의 채찍을 봉쇄했을 때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만일 그들 4명이 채찍이 뒤엉킨 상황에서 단숨에 끌어당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진양의 몸이 날
아가는 것 내지는 봉이 부러지거나 날아갈 것이다. 진양은 그들 4명의 채찍을 전부 봉쇄하고서야 그걸 깨닫고 말았
다.
과연 4명의 북망인들도 그걸 알았나보다. 진양이 황급히 봉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지만 너무 뒤엉켜 빨리 풀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미 4명의 내공과 완력이 합쳐진 대단한 힘이 진양을 잡아당겼다. 진양은 오래 전 배웠던 천
근추의 수법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려고 했다. 그러나 내공이 부족하고 수련도 깊이 하지 못하여 질질 끌려가는 사
태가 발발하고 만다.
"아이고 아우야! 그게 뭐 하는 거니."
무굉은 좌측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돌아보다 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양은 난관에 부딪쳐 사력을
다해 천근추를 시전하고 있는데 보는 의형은 웃고 있다. 진양이 다급한 눈초리를 보내자 무굉도 알아듣고 정면에
있던 융정 등에게 빠르게 3 장을 후려쳤다. 그들과 거리가 생긴다. 무굉은 그 순간 몸을 번쩍 날려 진양과 맞서는 4
명의 북망인들 위로 날아들었다.
"흩어져!"
융정은 그들마저 깨지면 대패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급히 고함쳤다. 허나 그 4명의 북망인들이 깨
닫고 반응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벌써 무굉의 손바닥이며 손등이며 손날은 그들의 견정, 거골, 지
양, 연액 등으로 매섭게 꽂힌 후였기 때문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힘을 빠지게 하거나 제압하는 혈도로서 일단 제대
로 맞았다 하면 내공의 고수가 아닌 이상 쓰러지고야 마는 요혈이었다. 4명의 북망인들은 모두 고수가 아니었으니
결국 낡은 집 허물어지듯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진양은 서둘러 봉을 채찍들에게서 빼내고 무굉과 함께 융정을 향해 달렸다. 형란도 이미 쾌묘검법을 맞서 싸우던
북망인 한 명을 거의 제압한 상황이었다. 무굉의 움직임은 정말 빠른 게 천하에 겁날 게 없는 비호같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북망귀곡진을 아주 작살내놓았다. 처음엔 중앙으로 뛰어들어 기세를 잡더니 우측으로 달려가 형란을 돕
고 두 명을 폐인으로 만들었으며 또 중앙에서 싸우다 다시 좌측에서 북망인 4명의 혈도를 제압했으니, 이 어찌 두
려운 인물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무굉은 지금 또한 융정에게 덤벼들다가 진양에게 맡기고는 이쪽저쪽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진양의 상황이 안 좋다
싶으면 그리로 몸을 날려 적을 제압하고 형란이 안 좋다 싶으면 또 그리로 날아간다. 틈이 나면 그의 곁에 있는 북
망인들에게 몇 장이고 후렸고 그에 북망인들은 한결같이 두려움에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기랄! 모두 물러서!"
융정은 더 상대해봤자 가망이 없음을 알고 급히 물러섰다. 무굉 한 명 있다는 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신
도 한번 무굉과 붙어보고 싶지만 융왕이 패한 정도니 자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실로 전멸, 두 글자
만 남을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러냐 벌레야. 설마 겁을 먹은 건 아니겠지?"
진양의 비비꼬는 말에 융정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그러나 그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단지 부끄러움만이 아니고 무굉
을 향한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좋아! 이번엔 패했구나. 과연 자존자대의 무공이 뛰어남을 몸소 깨달았다. 하지만 이건 북망채의 장난에 불과한 수
준이다. 나를 놓아준다면 반드시 더 훌륭한 대진을 펼쳐서 너희가 아버지께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겠다!"
진양이 가가대소한다.
"하하. 이 멍청한 놈아. 내 형님은 융왕이 놈과 싸움을 벌이러 온 거지, 북망채의 쓰레기 진법이나 구경하자고 온
게 아니다."
"그럼 너희는 왜 왔단 말이냐? 그럼 무굉은 상대하지 않고 너희만 상대하겠다."
"하하. 속보이는 놈. 네놈 수작을 누가 모를 줄 알고?"
융정의 생각은 뻔할 뻔 자였다. 무굉은 상대하기 힘드니 마침 진양의 말을 빌미 삼아 그와 형란부터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보여지지 않는가. 융정은 이를 빠드득, 갈며 진양을 노려보다가 무굉을 향해 고함쳤다.
"무굉! 넌 우리 북망채의 최고 대진이 보고 싶지 않느냐?"
"오! 나야 물론 보고 싶……."
입이 금새 찢어져서 대답하던 무굉은 진양의 매서운 눈초리에 그만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융정이 어서 대답하라
는 듯 자꾸 쳐다보자 무굉은 어깨를 늘어트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러자 융정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무굉. 넌 우리 북망귀곡이진(北邙鬼哭二陣)을 파훼할 자신이 없는 거로구나."
"뭐가 어쩌고 어째! 난 깨부술 수 있어. 다만 네 아비하고 결투가 약속되어 있잖아."
"진짜 천하제일이라면 북망귀곡이진은 단숨에 뚫고 갈 수 있어야한다. 그 정도도 못 되면 어떻게 천하제일이라고."
"하지만… 그거 꼭 해야하나?"
"당연하지! 안 하면 천하제일은 만 번 죽어도 될 수 없다."
융정은 또 궤변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아무도 안 속을 어설픈 궤변이지만 상대가 무굉이기에 그게 통할 수 있었다.
무굉은 정말 멍청하여 그 말을 또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융정의 얘기가 참 그럴 듯 하다, 하고 생각하는 것
이다. 진양 속 터지라고 하는 건지 깊이 원하는 눈빛으로 진양을 흘낏흘낏 바라보았다. 진양은 그 모습에 화가 나기
도 하고 어이도 없어 웃음이 터졌다. 정말 의제를 너무 위해서 그런 건지 진양 앞에선 꼼짝도 못한다. 하기야 무굉
이 본 진양은 말이나 생각이 잘도 들어맞았으니, 그를 겁내는 건 아니어도 훌륭하게 평가하고는 있을 것이다. 한마
디로 진양의 의견을 매우 중시하는 셈이다.
진양은 잠깐 생각해보았으나 어차피 무굉의 무공은 대단하고 융왕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니 꼭 반대할 필요도 없
을 듯 했다. 북망귀곡이진인지 뭔지 본래 이름에 이(二) 자 하나만 달랑 붙여서 그런지 대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
다. 설령 좀 대단하다 해도 무굉이 방금처럼 동서로 날아다니면 쉽게 쳐부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좋아요. 형님이 그리도 원하시면 그렇게 해야지요."
"와! 역시 넌 내 아우다. 고맙다 아우야."
무굉은 금방 그 큰 입의 꼬리를 귀에 닿도록 잡아 올렸다. 융정을 보곤 소리친다.
"자 해보자! 당장 해보자."
"잠깐……! 어떻게 당장 하자는 거냐? 네 손에 부하들 태반에 쓰러졌는데. 내가 채로 돌아가 애들을 더 데리고 진을
펼치겠다. 너희는 그냥 천천히 전진만 하면 된다."
"아참 그렇지.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무굉이 답하고 신경을 꺼버리자 융정은 슬금 진양의 눈치를 보았다. 만일 진양이 또 융정을 잡으려고 하면 도망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진양은 그를 막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융정은 그 틈에 남은 부하들을 시
켜 쓰러진 북망인들의 혈도를 풀어주고 황급히 북망채로 도망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