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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十 一 章. 여인의 마음 1 (64/90)

                                   第 三 十 一 章. 여인의 마음 1

북망산 등산로는 지난번과 변함이 없었음으로 매우 순탄했다. 산세가 대단히 험하지도 않고 의외로 융정 또한 나타

나지 않아 장애 되는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여전한 건 오로지 그 모를 귀기. 무덤이 많은 북망산이라 그런 

것일까. 북망산을 오르며 진양 일행은 한번 더 그 으스스한 귀기를 느꼈다. 그러나 진양 일행은 두려움을 갖지 않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힘찬 발걸음. 보복하겠다는 마음이요, 구하겠다는  마음이요, 이기겠다는 마음이다. 그들

의 마음이 그러하니 어찌 발걸음이라고 축 늘어지겠는가. 

꽤나 오랫동안 막는 무리가 없어 그들은 쉽게 북망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예전에 잠입할 때 보았던 그 울타리도 

그대로고, 그 옆의 돌에 새겨진 북망채란 글자 또한 여전하다. 헌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깜짝 놀랄 만하게도 

북망인들이 정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것이다. 참으로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지난날 왔을 때 분명 보았듯이 북망채

는 보초를 서지 않았고 또 설 이유도,  설 필요도, 서서도 안 된다. 그것이 바로  허실의 묘임과 동시에 북망채라는 

도적 집단을 무사하게 만드는 방도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보초를 서고 있는 자들은 분명 북망채 무리가 맞았다. 북망채  본채를 중심으로 널찍하게 울타리가 둘

러싸 있는데 그 가운데로 갈라진 정문에 그들이 당당히 서있는 것이다. 3명이 허리춤에 채찍을 매고 손에는 장도를 

들은 채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형님. 잠깐 기다리세요. 좀 더 동태를 살펴봐요." 

진양은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형란과 무굉의 몸을 끌어 숨었다. 북망산은 풀과  나무가 적어 숨기에 적당하진 않지

만 그래도 기슭에서 몸을 낮추니 그런 대로 감출 수 있었다. 

"동태는 무슨 놈의 동태. 저 까짓 세 놈이 무슨 문제가 되려고." 

"아니지요. 만일 융정이나 융왕이 이 주변에서 매복이라도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흥. 매복 따위는 두렵지도 않다. 튀어나오면 나오는 족족 없애버릴 테야." 

무굉은 역시나 오만했다. 허나 그렇다고 내버려둘 순 없었다. 단순한 매복이면  차라리 낫지, 더 심각한 함정이라도 

있다면 어찌할 텐가. 그걸 다 설명하여 무굉을 이해시키자면 반나절로도 부족할지 모른다. 진양은 그것 때문에 일단 

그의 옷깃만 잡을 뿐 뭐라고 말은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 녀석아. 놓고 너도 얼른 나와." 

그렇게 말해도 진양이 놓지 않자 그는 씩, 웃으며 갑자기  빠르게 두어 걸음 내딛었다. 진양은 그의 옷깃을 영원히 

놓지 않을 듯 꾹 붙잡고 있었던 터라 미처 손을 놓지 못하고 끌려나가고 말았다. 

"형님. 안 돼요. 융정이 저번처럼 또 뭔가 비열한 술책을 부려놨을 겁니다." 

"좋아! 하라고 해. 내가 가서 다 쓸어버리면 되니까." 

무굉은 막무가내로 몸을 날렸다. 진양은 막 끌려나가 엎어지는 바람에 깜빡하고 손을 놓아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렸을 때, 무굉은 이미 북망채 무리 3명의 정면으로 나선 후였다. 

"멈춰라! 넌 누구냐?" 

"내가 누구냐니. 너희는 내 대명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이냐!" 

북망인 셋이 나와 막으며 소리치자 무굉은 그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이래선 작전 세우기는 틀린 셈이다. 저만한 고

함이면 북망채는 고사하고 본진 깊숙이 융왕까지도 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모르지 그럼 네가 누구기에 우리가 알아야한다는 말이냐?" 

"이놈 봐라. 건방진 놈!" 

순간 짝, 하는 소리가 공허한 북망산을 메워버렸다. 보초서는 북망인의 말에 무굉이 따귀를 때려버린 것이다. 그 위

력이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 몸이 붕 떠서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금새 벌겋게 퉁퉁 부어오르는 것이 과연 무굉의 백

타권다웠다. 

"이 겁 대가리 없는 놈이! 이곳이 감히 어딘 줄 알고!" 

남은 두 명은 대노하여 그 자리에서 장도를 내려쳤다. 말투나 안색으로 보아 그냥 보초만 서라고 명령을 받았지 딱

히 다른 말은 없었던 듯 했다. 그들의 장도 움직임은 제법 괜찮았다. 도법을 수련한 듯 움직임이 세차고 자세가 정

교하여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루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무굉을 당해낼 순 없다. 그는 무식하게도 

그들의 가슴에 먼저 쌍장을 후려친 것이다. 장도 두 자루가 그의 양어깨로  떨어지는데 피하지도 않고 빠르게 뛰어

들어 먼저 때리니 그야말로 쾌속한 동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두 명은 가슴에 광표장을 맞아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우지끈뚝딱 하는 소리와 함께 울타리로 만들어진 정

문을 부수고 그 안까지 날아간다. 무굉은 크게 웃으며 진양과 형란에게 얼른  오라는 손짓을 보내고는 먼저 안으로 

뛰어들었다. 

"진대협. 이제 어떡하지요?" 

형란이 어쩔 줄 몰라 걱정스런 표정으로 진양에게 묻는다. 그에 진양은 진지함으로 대했다. 

"이미 형님이 일을 벌여놨으니 부딪쳐보는 수밖에. 하지만 조심할 것은 분명 저들에게 무슨 계략이 있을 거라는 거

야. 분명 함정이지. 그러나 만일 허장성세였다면 저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거겠고." 

"그럼 진대협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양은 그녀의 질문에 그냥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는 건지, 또 어떤 

계략인지는 역시 안으로 들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형란을 이끌어 곧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막 들어선 그들이 본 것은 굉장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진양은 물론이고 형란도 눈을 크게 떴다. 앞서 들어갔던 무

굉 또한 적들과 싸울 생각은 안 하고 그 살벌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광경이란 바로 사지가 매달려

진 웬 남자였다. 봉두난발로 풀어지고 사지가 나무 봉에 매여져  꼼짝도 못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밑에는 

독질려(毒疾藜)가 십여 개 떨어져 있고 작은 호리병 몇  개가 흩어진 채였다. 호리병 안에선 웬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자의 핏물로 보이는 것들이 바닥에 즐비 차게 늘어져 있었다. 

사실 이만하면 덜 놀라지, 진짜 크게 놀라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그 자의 정체. 그 자는 어이없게도 융

정이 아닌가. 봉두난발로 얼굴이 많이 가려졌지만 그래도 보이는  눈매, 코, 입 등 면모는 확실한 융정이었다. 그럼 

융정이 왜 저기에 매달려 있는 것인가. 그의 곁으로 장도를 들고 있는 10명의 북망인들은 그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진양은 크게 황당하여 일단 무굉 곁으로 달려가 물었다. 

"형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융정이 저기 왜 매달려 있나요?"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나도 오고 보니까 저러고 있더라." 

진양은 한번 더 융정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상의가 벗겨져 상체의 맨살은  다 보였는데 이리저리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상흔이 있어 꼭 고문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매우 괴이쩍어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북망채의 눈치만 보

고 있었다. 매달린 융정 곁으로 둘러싼 10명의  북망인들 역시 진양 일행의 행동 하나하나를 잘  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지? 왜 갑자기 융정이 저 꼴이 된 걸까? 그가 무슨 잘못을 해서 융왕이 벌을 주는 것인가? 하지

만 벌이라 한다면 너무 심한 거 같은데…….) 

진양은 뭔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안 잡히는 생각에 더욱 골똘히  빠져들었다. 다시 한번 융정의 상태를 바라

보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문득 무슨 냄새가 맡아진다. 이 안으로 들어온 후부터 계속 맡았던 건데 이제야 이게 무

슨 냄새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진양은 조용히 그 냄새를 음미했다. 

일순 진양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시선은 곧바로 아까 그 호리병으로 향했다. 바로 저거다. 이 냄새는 저 호리병 

안에서 나오는 연기, 바로 저것이었다. 

"아차! 속았어!" 

그의 난데없는 부르짖음에 무굉과 형란이 깜짝 놀랐음은 당연했다. 이유를 막 물어보려 하는데 그가 먼저 고함쳤다. 

"빨리 도망가요! 어서 도망쳐야해요!" 

"아니 갑자기 왜 도망을 쳐?" 

무굉은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동글동글한 눈만 빛냈다.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허나 진양은 그걸 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듯 급하기만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무작정 무굉과 형란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요! 이곳에 있으면 안 돼요. 일단 도망쳐요!" 

"왜? 이유나 듣고 도망치자." 

"그럴 여유가 없어요!" 

그 순간이었다. 

"하하! 맞아. 그러나 도망칠 여유도 없지." 

기가 막히게도 그 말은 매달려있던 융정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무굉과 형란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입

만 쩍 벌리고 말았다. 다만 진양만이 정황을 아는 듯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 빌어먹을 놈… 설마 또 이런 비열한 수단을 쓸 줄이야." 

"너희들이 멍청하니까 당하는 거지 누구를 탓해? 하긴 뭐 이번 작전은 좀 대단했지. 나도 이런 작전을 짜내서 매우 

놀라웠다." 

"너……!" 

진양은 대노한 듯 안색이 시퍼래져있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묵묵히 있기만 하던 북망인  10명이 매달린 융정을 

풀어주었다. 그는 땅에 내려와서 봉두난발한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 북망인이 주는 흑포를 받아 입는다. 

"후후. 좀 전에 보니 무슨 계략이 있었는지 알아챈 거 같은데 어디 한번 들어볼까?" 

그가 흑포를 입으며 진양을 향해 한 말이었다. 진양은 몸을 부르르 떨 뿐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설마 모르면서 알아챈 척 한 건 아닐 테지. 그냥 말해봐라. 저기 두 년놈도 궁금해서 개구리 눈만  뜨고 있지 않느

냐?" 

"흥……. 네놈은 이런 야비한 수단이 아니면 우릴 이길 수 없었겠지." 

"그래 그게 아니면 무굉을 누를 수 없다. 하지만 너는 쉽지." 

융정은 마음껏 진양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씹으며 분노를 누르고는 최대한 차분히 말문을 열었다. 

"또 이런 술수에 말려들 줄은 몰랐다. 아니, 인간으로서 설마 또 이런 수작을 부리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어. 아

무리 인면수심이라 하지만 대결을 약속해놓고 이럴 수 있는 것이냐? 융왕이 이리 시켰나?" 

"하하. 아버지께선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지만 내 실력도  시험할 겸 굳이 막으시진 않았다. 그리고 너희는  이렇게 

또 걸려든 거지." 

"과연 그 아비에 그 자식이군. 아비란 작자가 그 모양이니 자식이 이런 쓰레기가 되는 거 아니겠어? 어쩌면 북망채 

도적들 모두가 그럴지도 모르고." 

그의 말에 융정은 그저 뜻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나를 분노케 하려는 것일 테지. 이번엔 안 당한다. 너에게 하도 당해서 이젠 면역이 생긴 셈이지." 

"흥.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워라. 난 질질 끄는 걸 싫어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그 독향은 무슨 독이냐?" 

그는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융정은 무굉과 형란이 크게 놀라는 걸 보며 대답하였다. 

"신선폐(神仙廢)!" 

순간 무굉과 형란의 안색이 대변한다. 

"뭐가 어째서 어떻다고? 저게 신선폐라고?" 

"그렇다. 바로 신선폐지. 이미 너희는 중독되었다는 말이다." 

무굉의 고함에 융정은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무굉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보았다. 과연 신선폐에 중독된 것은 사

실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내공을 모으자 갑자기 단전으로 괴상한 기운이  느껴지며 모은 공력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신선폐는 산공독(散功毒)의 일종으로 한번 당하면 12시진 동안은 내공을 모을 수가 없는 독이다. 당

해도 내공을 일으키지 않으면 잠잠히 있는데, 만일 모으려고만 하면 마치 쌓인  먼지가 바람에 의해 흩어지듯 어이

없이 사라지게 되어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언제 나에게 신선폐를 썼느냐?" 

"이 멍청한 무가야. 네 진가 아우 놈이 저 호리병 연기를 가리키며 물어봤지 않느냐? 저 연기가 바로 신선폐다!" 

무굉은 깜짝 놀라, 

"저거라고? 말도 안 돼! 독이라면 이 자존자대가 모를 리 없다. 신선폐는 한번 당하면 12시진 동안 공력을 쓸 수 없

지만 비린내가 은은히 난단 말이다. 내 코에 똥이 없으니 분명 내가 비린내를 맡았어야 해!" 

"멍청하긴. 하기야 네 아우도 속았는데 네 까짓게 뭘 어쩌겠느냐. 하하!" 

무굉이 발끈하여 뭐라고 고함치려하자 진양이 막으며 고개를 젓는다. 

"이미 중독됐으니 성을 내면 좋지 않아요. 저는 산공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중독 당했을 때는 차분히 독을 몰아내

라 하더군요." 

"아니야. 신선폐는 몰아낼 수 없어. 이미 단전으로 들어갔다면 12시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산공독이라서 내공

을 일으키면 곧장 사라지기 때문에 독을 몰아낼 수조차 없는 거야." 

진양은 새로운 사실을 앎과 동시에 크나큰 위기에 빠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융

정의 계략은 매우 악랄하고도 교묘한 것이었다. 허와 실을 잘 응용하여 진양 일행을 완벽히 속였다. 과연 융왕처럼 

허실의 묘를 잘 깨우친 듯 했다. 

처음부터 이 북망채 안에는 신선폐가 퍼져있었다. 무굉이 들어서며 이를 모를 사람이 아니다. 만일 신선폐만 퍼져있

었다면 무굉은 들어가자마자 사실을 깨닫고 몸을 내뺐을 것이다. 그러나 융정의 심계는 깊었다. 스스로 나무 막대에 

매달리고 아래 독질려를 깔며 온몸이 까진 채로 있어 마치 고문을 당한 듯한 자세로 무굉의 시선을 유혹했던  것이

다. 북망채 안에서 북망채 소주가 고문을 당한 것처럼 보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작전은 실로 오

묘하여 무굉은커녕 진양조차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밑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호리병을 보고도 수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더욱이 사실성을 돋보이기 위해 매달린 융정  주변으론 건장한 북망인 10명이 마치 감시하듯  서있었다. 그래서 막 

들어오며 그 광경을 봤던 진양 일행은 북망인 10명이 꼭 고문하는 자들로 보인 것이다. 이 정도면 대단한 작전이라 

웬만큼 예리한 자가 아니라면 필시 속게되어 있었다. 허나 지금 이렇게 본색이 드러나고 보니, 사실 북망인 10명은 

융정을 감시하던 자들이 아니라 호위하던 자들이 된다. 진양 일행이  알아채고 공격한다면 목숨이 위험해지니 미리 

호위하는 자들을 둘러싸게 하고 꼭 고문하는 감시자처럼 위장한 셈이다. 만약을 대비한 방도니 어찌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까 진양은 머뭇거릴 때가 돼서야 비로소 신선폐의 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융정 등을 잘 살피며 매우 조심조심 

하다보니 그제야 후각이 트인 것이다. 그는 신선폐가 어떤 독인지 잘 몰랐는데 속았다고 깨달을 수 있었던 건 비린

내 덕이었다. 함종문에서 지낼 당시 조덕이 말하길, 

<강호에는 비열한 수단이 난무하여 언젠가 독에 중독될 날이 있을 수 있다. 중독된 다음 해독하기보다  중독되기도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피하는 게 좋은데, 무색무취의 독만 아니라면 모두 냄새가 있어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독은 

태반이 비린내를 풍긴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걸 떠올려 호리병에서 나오는  연기가 독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도망치려 했으나 

늦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이 신선폐라는 것과 그 독의 내성을 들어 완벽히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완벽히 당했어! 완벽히! 젠장……." 

"진대협……. 이미 당했으니 후회하지 말고 도망쳐요. 뒤에 아무도 없어요." 

형란 역시 신선폐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확실히 신선폐는 제법 널리 알려진 터다. 그래서 이대로는 도무지 

싸울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북망채 정문으로 막는 자가 없다는 걸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게 마

치 좋은 작전이라도 된다는 듯 융정이 듣지 못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진양은  그녀의 저능함에 웃음부터 터져 버렸

다. 이 상황에 웃음이 터지니 웃는 진양 자신도 어이없지만 그보다도 형란의 생각 자체가 어이없었다. 융정이 이렇

게 극도로 잘 대비했는데 어떻게 퇴로를 막지 않았으랴. 이번 기회는 아주 완벽한 기회라 융정이 놓칠 인물이 아니

다. 그는 필시 오늘 진양과 무굉을 처단하고 형란을 가지겠다는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데 아주 기

초적인 퇴로 차단 정도도 안 했을 리가 없다. 

과연 진양의 추리에 발을 맞춰주듯 융정이  손을 들어 흔들자 북망채를 둘러싼 울타리로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사삭사삭, 하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금방 울타리를 뛰어넘어 들어오는  북망인들과 정문을 통해 당당히 들어

오는 융왕을 볼 수 있었다. 무굉은 그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호통부터 쳤다. 

"이 야비한 인간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와 대결하자면서 자식놈에게 이런 비열한 수단을 실행시켜?" 

"흥. 웃기고 있군. 내가 언제 정아에게 이런 걸 시켰다는 거냐? 정아. 내가 시켰느냐?" 

융정은 미소하며, 

"아니요. 의견은 제가 냈고 실행 또한 제가 했습니다." 

"거봐라. 나는 저 녀석이 좋은 작전이 있다 하기에 해보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고 했을 뿐이다.  더구나 듣자하니 이

번이 계략에 빠진 게 두 번째라던데, 당한 자가 잘못이지 어떻게 한 자가 잘못이냐?" 

"너… 너……!" 

융왕도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진양 일행을 가운데 두고 앞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부자의 모습이 참으로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이제 왔으니 대결을 벌여야지. 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약속된 기한은 오늘

로 끝이야." 

"야 이 나쁜 놈아! 너는 신선폐에 중독되고도 싸울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마!"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어쨌든 약속은 했었는데 설마 지키지 않을  셈이냐? 난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또 너에게 인정을 베풀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상대로 약속을 들먹거리며 무굉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무굉은 그에 할말을 잃고 말았다. 한평

생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약속한 걸 어길 수도 없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진양은 이대로 두면 무

굉이 할 수 없이 나설 거라 생각하여 급하게 입을 열었다. 

"융왕! 너의 수작은 참으로 더럽고 상판은 철판으로 만들어져 정말 단단하기 짝이 없구나. 혓바닥엔 뭐가  달렸는지 

그렇게도 거짓말을 잘하며, 입 속엔 또 뭘 넣었는지 똥내가 나느냐?" 

"흥. 비꼰다고 살아갈 구멍은 생기지 않을 걸. 이미 이 주변으로 본방  제자 수십 명이 둘러싸고 있다. 어차피 나를 

이기지도 못할 테지만 이긴다면 그냥 보내주지. 허나 도망친다면 내 제자들이 달려들어 너희를 비참하게 죽일 것이

다. 무굉은 자존자대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켜야하고 나머지는 끼어 들어선 안 된다." 

진양이 황당하여 소리친다. 

"네놈 자식새끼가 끼어 들어 독을 썼는데 나라고 끼어 들지 말라는 거냐? 역시 도적놈들답게 매우 이기적이군!" 

"하하. 좋아. 그럼 끼어 들어도 된다. 너희 셋이서 함께 덤벼도 되고 칼이든 창이든 검이든  봉이든 뭐를 써도 좋다. 

난 맨손으로 상대해줄 테니 얼마든지 덤벼 보거라." 

과연 융왕도 심계가 깊었다. 이렇게 말하면 도무지 끼어 들 수가 없다. 무굉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

령 끼어 든다해도 모조리 죽임을 당할 건 뻔했다. 신선폐를 당하여 무굉 10명이  와도 융왕을 꺾을 수 없을 상황이 

아닌가. 

진양은 정말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포위 당하여 도망칠 수도 없고 신선폐를 당하여 싸울 수도 없고. 마지막 

방법이라곤 오로지 융왕을 이기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내공을 끌어올리지 못하니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묘안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방도도 없다. 

이쯤 되자 자신 일행이 걱정되는 건 당연하고 왕령까지도 크게  걱정이 되었다. 아니, 오로지 걱정 뿐은 아닐 것이

다. 그것은 미안한 마음일까. 갑자기 죄스러운 마음이 치솟았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고 있는 것이었다.  마

치 무슨 계략이라도 다 부수고 알아낼 것처럼 뛰어들어와서는 그리 간단히도 중독되니 자신의 무능함을 새삼  느꼈

다. 또 인간이 야비해지려고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야비해질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진양은 큰 허탈감을 느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다. 정정당당히 정면으로 맞서

려 올라왔거늘, 악독한 무리에 의해 한순간 위기에 직면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물론 진양이 정정당

당한 대인은 아니다. 양만풍처럼 호한도 아니고 무굉처럼 약속을 철석같이 지키는 대장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

겐 함종문에서 자란 과거가 있었다. 사부 조덕이 평생동안 '사불승정'을 되뇌며 살아온 사람인 만큼 함종문에서  자

란 그는 조금이나마 도의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당히 산을 올랐고 덕분에 이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고로 위기를 맞게된 이유는, 첫째로 도의를 알아서 무의식중에 <인간이라면  설마 그럴 수 있으랴>하는 생각을 가

졌던 것이요, 둘째로 강호인의 지독한 수법을 잘 알지 못했다는 것 두 가지로 줄일 수 있다. 

그는 크게 한숨을 몰아쉬며 무굉과 형란을 돌아보았다. 무굉은 성이 나서 얼굴이 시뻘개져있었고 형란은 겁을 먹어 

창백해져있었다. 그는 먼저 무굉에게 말했다. 

"형님. 결국 이렇게 죽게 되었군요." 

"아니!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죽지  않아. 천하제일 자존자대 무굉이 여기서 설마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과연 무굉다운 대답이었다. 천하제일 자존자대라. 그의 말을 들은 융왕은 가볍게 코웃음치며 조소를 머금었다. 진양

은 할말을 잃고 형란을 향해 말했다. 

"너는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셋 다 갈 수는 없어. 무 형님은 융왕과 싸워야하고 나는 형님을 도우며 의형

제로서 공생공사해야지. 하지만 넌 문제될 것이 없으니 어떻게든 도망쳐." 

"전 혼자 가지 않아요. 저도 함께 공생공사 하겠어요!" 

"내 말을 들어! 넌 아직 어리니 벌써 죽기는 아깝잖아. 내가  너보다 겨우 5~6년쯤 더 산 정도지만 내 말을 듣도록 

해. 만일 나와 형님이 죽게 되면 넌 나중에 복수를 해주어야지. 안 그래?" 

그녀는 곧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끝까지 가지 않을 태도를 보였다. 

"전 가지 않겠어요. 죽어도 가지 않아요! 저도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같이 죽을래요! 지금껏 고난을 함께 해왔는데 

저 혼자 살아가라니 말도 안 돼요." 

어떻게 말해도 듣지 않는 소녀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 배운 건 많았어도, 조금 모자란 만큼  정을 매우 

중시하는 소녀였다. 진양은 그녀의 마음을 생판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필시 진양,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

기 때문에 함부로 공생공사 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동안 두말없이 그를 따랐으며 또 그와 함께 했던 것이리라. 진

양은 이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유는 그도 잘 모른다. 그녀가 너무 어려

서일까. 아니면 아직 마음 한구석에 왕령의 그늘이 있기 때문일까. 

"정말로 공생공사할 거야? 모든 걸 함께 하여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 나와 무 형님처럼 공생공사를 하겠다고?" 

"그래요! 저만 버리지 말아요. 진 대협은 제가 혼자 살자고 도망치는 걸 원하세요?" 

웬일로 그녀의 말이 제법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진양은  조금 놀라면서도 그녀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정녕 그녀를 

살리고 싶어서 차라리 도망치는 걸 원한다고 말할까 했으나, 그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그

녀가 마음이 굳건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정에 연연하고 마음이 약하여 만일  그런 말을 들으면 크게 상심하

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좋아! 네가 정녕 원한다면 나도 막지 않겠어. 이제부턴 함께 해왔던 날들처럼 공생공사하고 융왕을 죽인 후 령아를 

구하자! 이렇게 우리의 뜻이 맞았는데 어찌 북망채 도적놈들 따위가 막겠느냐?" 

진양은 봉을 땅에 꽂으며 거세게 고함쳤다.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형란의 행동에  갑자기 불끈 힘이 솟았던 것

이다. 물론 반쯤은 허장성세나 다름없었다. 평소 같으면 2 촌(寸)은 패였을 흙바닥이 오늘은 채 1 촌도 패이지 않는

다. 융왕은 이걸 놓치지 않고 눈을 번뜩였다. 

"하하. 제법 근성은 보인다만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구나." 

"흥. 비열한 수법을 쓰는 주제에 잔말이 많다. 너도 인간이라면 냄새나는 입 구멍을 닫고 가슴에 손을 얹어라." 

융왕은 진양의 말에도 그저 코웃음만 친다. 갑자기 융정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진가야. 이제 죽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 발악은 그만하고 순순히 내 칼을 받으시지." 

"넌 또 뭐야? 그 아비에 그 자식새끼라고 참으로 개 벌레는 개 벌레로군." 

"흥. 어디 그 개 벌레한테 죽어봐라." 

그는 발끈하여 진양에게 손을 쓰려는 듯 했다. 허나 융왕이  슬쩍 눈짓을 보내자 바로 멈추며 악독한 눈만 빛냈다. 

진양 쪽에선 무굉이 걸어나왔다. 

"자! 신선폐고 지랄이고 다 덤벼라. 나 자존자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약속대로 오늘 융왕 네

놈하고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하하. 원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각오해라!" 

융왕은 그 말을 받아들이고 흑포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수많은 북망인들은 제각각  두어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공

간을 크게 만들어주었다.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였지만 일단 융왕이 나서자 그들은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무위를 구

경하려는 듯 했다. 무굉은 진지한 안색으로 진양에게 말하였다. 

"아우야. 오늘 내 저놈과 사생결단을 낼 것이다. 넌 어떻게 하겠느냐?" 

"저들은 개 같은 수단으로 악독한 독을  썼으니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상황에  따라 이에는 이로 대처해야지

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형님이 위기를 맞으면 돕고 틈이 나면 악랄한 수단이라도 서슴대지 않겠다는 거지요." 

무굉은 그제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인정 못하는 건 하나 있다. 

"걱정 마. 내가 위기에 처할 리는 없을 걸. 난 천하제일 자존자대니까." 

가만히 있던 융정이 또 한마디한다. 

"네놈이 무슨 천하제일이냐? 진정 천하제일이면 아버지를 눌러보아라. 만일 네가 정말 그렇게 한다면 난 너의 평생 

종이 되고 네게 천 번 '천하제일 자존자대' 라고 외쳐주마." 

"하하. 그럼 넌 이제 내 종이구나." 

"이길 경우를 말하는 거다 이 멍청한 작자야!" 

무굉은 한번 더 크게 웃으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융왕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평소라면 융왕은 긴장했겠지만 오늘

은 그렇지 않았다. 벌써 무굉의 상태도 충분히 가늠한 상황이다. 더욱이 좀 전 그가 웃었을 때 지난번과 같은 진동

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스스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융왕은 황소처럼 달려오는 무굉을 향해 먼저 선공을 가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을 낼 거 빨리 내기보다는 저번에 당

했던 치욕도 갚아줄 겸 천천히 데리고 놀 심산이었다. 그래서 저돌적으로 날아드는 무굉의 주먹을 슬쩍 피했다. 그

는 내공을 일으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동작이 정돈되어 있고 수법이  빨랐다. 과연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하

는 건 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황소처럼 돌진하여 융왕의 안면을 향해 일 권을 날렸는데 융왕이 피하자 순간 

연달아 3 초 변초하여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세는 확실히 위협적인 것이었다. 내공이 무산되어 당장 기를 쓸 수 없으니 그만큼 기세가 무섭지 않은 건 

분명하다. 허나 무굉, 그는 지금 대노하여 온몸에서 풍기는 살기만큼은 소름끼칠 만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세 번 

연달아 변초한 그의 초식은 화려하고 매우 빨라 맞으면 꼭 부상을 입을 듯  할 정도다. 공력을 운용하지 못해서 그 

실제의 위력이 형편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 살기가 주변을 가득 메워 관전하는 북망인들은 절로 안색이 새파래지

고 말았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무너질 융왕이 아니다. 

융왕은 본래 무굉보다 한 수 아래로 이건 지난날 난주 대결에서 파악했다. 융왕 그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비열한 수법을 쓴 걸지도 몰랐다. 무굉 덕분에 자신의 계략이 차질을 빚고 강호인의 경멸 대상이 되

었으니, 무굉을 제압하여 천하에 다시금 대명을 울리리라 다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융왕은 당시 융정이 독을 쓸 

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수수방관하여 결국 그 자신이 쓴 것과 같았다. 그게 신선폐라는 것도 알았지만 절대

로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비켜주며 아들이  착실하게 용독하도록 도와주었다. 무엇보다도 신선폐의 효능은 

잘 알고 있었다. 오래 전 그의 사부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산공독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미혼약은 당해도 

내공만 심후하면 쉽게 몰아낼 수 있지만, 산공독은 일단 당하면 혼자서는 절대로 치유할 수 없다는 걸 재차 들었다. 

그러므로 지금 무굉의 살기충만한 기세는 허장성세로밖에 안 보였다. 아주 정확히 판가름하여 그 정곡을 꿰뚫고 있

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살기에 주눅이 들어 실체를 보지 못하겠지만, 융왕 만큼은 다르기에  정확한 판단

을 내릴 수 있었다. 

"무가야. 네 의지는 칭찬할 만 하지만 신선폐 때문에 어쩔 수가 없나 보구나.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오늘 끝장을 

봐야겠지?" 

"물론! 오늘 끝장을 봐야지. 내가 죽거나 네가 죽거나 아예 사생결단을 내야해!" 

융왕은 피식 웃었다. 

"허나 어찌하겠느냐? 적어도 12시진 동안 너는 이전의 무굉이 아니고, 한낱  힘만 센 무뢰한에 불과하다는 게 사실

이니… 쯧쯧.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언뜻 듣기엔 탄식으로 보이지만 곱씹어 보면 사실은 희롱이라는 걸 모를 자가 없다. 명백한 조롱으로 지금 그는 무

굉을 놀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무굉은 깨닫지 못하고 헛소리만 지껄여댔다. 

"이상하군! 독을 써서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안타깝다니… 하지만 걱정 마. 나는 천하제일이라 공력 없이도  너를 

제압할 수 있으니깐." 

"흥. 내가 그리 우습게 보이느냐? 능력이 있으면 해봐라." 

그의 말에 무굉은 한번 더 전진하여 빠르게 3 장을 날렸다. 확실히 진양이  보기에도 뭔가 이전과는 다른 광표장이

었으나 여전히 기세는 범상치 않았다. 융왕은 낮게 웃으며 삼 장을 모두 피해버린다. 너무나 가볍게 넘기는 모습이

라 무굉은 이를 악물며 또 2 장을 날렸다. 본래 광표장법은 그 근원이 내공이라 공력을 운용하지 못하면 별다른 위

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동작은 내공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에 비하여  제법 빠르고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

지만, 평소 무굉의 동작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설령 맞는다 해도 타격이 거의 없을 정도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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